휴일이라 빈둥거리고 있는데(백수가 뭔 휴일) 엄니께서 바람 좀 쐬고 운동 좀 하자고 신천 둔치 걷자고 하십니다.
벚꽃은 싹 없어져 버렸지만 신천 산책로엔 꽃이 좀 피어있을려나 싶어서 카메라 챙기고 나갑니다.
그 전에 테스트겸 해서 의미없는 사진 한 장.
밥도 한 숟갈은 정이 없다고 하는데 사진인들 어련하겠습니까.
그래서 화려하게 피고 지금은 휴식중인 화분도 한장 남겨봅니다.
뿌리없이 줄기만 물에 담궈놓은 애들은 불쌍해서 못보겠는데, 이런 녀석들은 든든한 흙이 받쳐주니
잘 기르다 보면 알아서 또 꽃피고 하겠죠.
지난번 벚꽃사진을 남겼던 도로가 나무는 역시 거의 대부분의 벚꽃이 떨어져 있더군요.
그래도 아직 조금은 남아있었고, 끝물 한번 빨아보려는 꿀벌의 모습도 하나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산책 후 앞산 등산로 근처에서 메밀묵 먹을 예정이기 때문에 저녁이 되어갈 때쯤 출발했는데도
대구는 요즘 꽤 덥군요. 오후 5시에 24도라니. 반팔 입고 가도 아무 문제가 없네요.
지난번 포스팅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전 벚꽃만큼이나 그 후에 올라오는 푸른 잎도 좋아합니다.
화려하게 만발하는 꽃무리도 좋긴 한데, 이렇게 끝에 살짝 남은 녀석과의 매칭도 깔금하고 좋아요.
꽃잎은 다 떨어져도 남아있는 암술부분 역시 별개의 꽃처럼 느껴져서 보기 좋습니다.
이제 완전히 시즌이 지나면 어라 이게 벚꽃나무였나 할 정도로 환골탈태를 하게 되겠죠.
그러다가 또 겨울이 가고 봄이 그리워질 때쯤 되면 아 이게 벚꽃나무였지 하고 생각하게 될 테고.
엄니는 예나 지금이나 사진찍을 시간도 없이 혼자서 쓩 하고 걸어나가 버리시네요.
운동을 위해서 걸음을 빨리 하기 때문에, 사실 내가 왜 따라왔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주위 눈따윈 아예 신경도 안쓰시는 아버지는 혼자서 노래와 시를 낭송해가며 걸으시니 전 그냥 모르는 사람인 척 빠집니다.
역시 이건 산책이 아니라 운동이네요. 말 한마디 나누긴 커녕 서로 얼굴도 못봅니다.
전 카메라를 들고 왔기 때문에 사진도 찍고 해서 부모님과는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져 버렸군요.
그건 그렇다치고, 현재 신천 상황이 매우 안좋습니다. 아주 비린내와 똥내가 작렬을 하네요.
급격하게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 탓도 있고, 신천을 가로지르는 대구철도 3호선 공사때문이기도 하죠.
대구 행정이 대체로 그렇습니다만, 신천 산책로라는게 탁상행정의 결정판이라서
처음에 자전거 주행 금지로 시작한 산책로가 여론에 밀려 결국 자전거도 주행가능하게 바뀌었는데
문제는 산책로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보행자, 자전거 공용' 산책로라는 애매한 녀석이 되어버렸습니다.
딱 사람 두명 나란히 서면 꽉 차는 좁은 길이라서, 자전거들은 그야말로 곡예를 해 가며 달리고 있죠.
물론 한국의 시민의식덕에 보행자 우선이라는 개념은 쌈싸먹은 인간들이 많아서 신천 산책로는 매일 무법천지입니다.
보행자야 뭐, 산책로 옆의 잔디를 걷는게 더 마음 편하긴 한데, 그렇다고해서 공무원들이 욕을 안먹을수는 없죠.
날씨와 냄새에 맞춰서 저녁저음부터는 아주 상상을 초월하는 날파리떼가 사람들을 덮칩니다.
입을 열면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날아들기 때문에 영 기분이 좋지 않죠.
신천의 오리들은 똥내나는 물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니 어릴적엔 여기가 공용 빨래터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나름 깨끗한 물이었는데
대구가 조금 발전하면서부터 아예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할 정도의 오염수가 되었다가
최근 10여년간 대대적인 정화작업을 펼친 끝에, 지금은 오리도 살고 수달도 사는 그럭저럭 괜찮은 하천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사와 날씨변화 등의 요소엔 자정작용을 발휘하지 못하는 위태위태한 녀석이기도 하죠.
어쨌든, 저녁부렵의 신천은 온통 금박을 입힌 듯한 모습이 아련한 느낌입니다.
어릴적에 다들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흐르는 물은 몇십 분씩 계속 신기하게 쳐다보게 되곤 하네요.
손을 집어넣으면 형태가 흐트러지지만, 가만 놔두면 참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힘이 있습니다.
자연계에 안 그런 존재가 어디있겠습니까만 물이란 녀석도 참 아름다운 녀석이네요.
희망교쪽을 관통하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공사현장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3호선은 지상 모노레일 형식으로 결정났지만
우리는 진짜 이유가 결국 예산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죠.
도시철도는 흑자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적자경영이 당연하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대구 도시철도는 그런 기준을 넘어서 심각하게 적자가 쌓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차피 인원수 못채울거 덩치작은 무인 모노레일로 가자는 것도 일리있는 이야기이긴 하죠.
위치상으로는 대구의 부촌인 수성구와 떠오르는 강자 북구 칠곡부근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3호선까지 들어서면 대구 도시철도도 희망이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사실 대구에 가장 필요한 건 순환선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죠.
냄새와 공사, 날벌레 등으로 인해 기분좋은 산책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내 동성로를 제외하고 사람이 제일 많이 모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산책, 운동, 휴식을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걷다보니, 이 정도 산책로조차 감지덕지로 걸어다녀야 하는 도시의 삶이란 참 각박하구나 싶네요.
사실 신천대로와 동로의 어마어마한 교통량과 소음,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는 이곳 산책로는
아무리 좋게 평가해줘도 B급 이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데... 여기 말고는 다들 나올 곳도 없으니 참.
가끔 황량한 산책로에 꽤나 노골적으로 인공미를 풍기는 화단도 조성되어 있습니다.
조성 방식 자체는 고리타분해서 흥미를 못느끼지만
그래도 꽃의 매력때문에 그나마 걷다가 멈춰서 시선을 돌리는 여유는 만들 수 있네요.
산책로 주변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진 잘못 찍다간 괜히 문제생길 것 같기도 하고
어째 지금까지 올린 사진은 산책 사진이라고 보기엔 사람 모습이 너무 안보이는 것 같습니다.
사진찍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발전하는건 사진에 사람 안나오게 찍는 기술인 듯.
반대로 동물 사진은 점점 늘어나는군요.
제 방 에어콘 실외기로 날아들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귀엽게 봐줄 수 있습니다.
잔디와 꽃밭 사이에 서 있는 비둘기는 그다지 천덕꾸러기로 보이지 않네요. 여기가 녀석들이 있을 곳인데.
알 낳으려면 천적들의 습격이 적은 곳을 찾다보니 이게 고층 아파트라는 묘한 장소로 모여들게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자연계의 천적만큼이나 무서운게 사람이니, 아슬아슬한 동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도 왠만하면 그냥 점잖게(?) 쫓아보내는 편이지만 아침부터 계속 X싸재끼면서 러브송을 읊어댈 때는
가끔 살충제에 라이터 불 붙여서 화염방사기로 구워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단 말이죠.
아님 BB총을 가스건으로 개조해서 푹신푹신한 몸통에 한발 먹여서 죽지 않을 정도로 임팩트를 준다던가...
훗날 과학자들이 새들에게 똥오줌 가리는 유전자를 주입해 주기를 기대할 수 밖에요.
이런 기발하고 유용한 상상을 하면서 신천 산책은 다음 포스팅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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