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로 내려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부모님들이 모두 바쁘셔서 세 그루 있는 난초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셨더군요.

물도 서너달에 한번 줄까말까 하고, 햇빛이 잘 안드는 구석에 처박혀 있어서 거의 죽어가는 도중이었습니다.

 

제가 본가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어찌 한번 살려보자고 생각하고

물도 적당히 주고 햇빛드는 곳에 슬금슬금 자리도 옮겨가면서 너댓 달 정도 신경을 써 줬죠.

효과가 있었는지 새 잎도 몇개 솟아나오고 어제 근 몇년만에 꽃도 피웠습니다.

 

 

 

난이란 게 원래 참 단아한 느낌인데, 꽃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군요.

향기는 정말 대단해서, 은은히 퍼지는게 꽤나 넓은 범위를 커버합니다.

 

베란다에 두기 아까워서 거실 양지바른 곳으로 이동시켰네요.

개방된 거실이라 전부 퍼지진 못하지만 근처에 가면 묘하게 코를 즐겁게 만드는 향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선비들이 일획으로 남겼던 난의 느낌을 살려볼까 해서 살짝 흑백으로도 변환해 봤습니다.

근데 꽃이 피어있으니 아무래도 먹이 옅어지는 느낌을 막을 수 없네요. 은은한 향기에 취해서일까요.

 

 

 

뿌리가 화분을 감쌀 정도로 열심히 성장중인 풍란 주천왕입니다.

제가 자전거 여행갔을때 꽃을 한번 피웠다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피우질 않았네요.

 

풍란이 꽃피우기가 좀 더 힘들다고 합니다. 저야 뭐 죽지않고 살아주는것만 해도 바랄게 없지만.

아무래도 화분을 바꿔야 할런지.. 튀어나온 뿌리가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죽은 잎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집에서 동고동락한 녀석입니다.

사실 제가 돌보기 전에는 살아있는 잎이 5포기 정도밖에 없었는데...

 

그닥 섬세히 돌봐주지도 않고 그냥 햇빛 적당히 비치는 곳에서 물만 시원하게 준 것 뿐인데

키우기 어렵다는 녀석이 이렇게 다시 살아나서 꽃도 피워주고 하니 되려 제가 고맙군요.

 

근처의 포인세티아는 잎사귀 그늘쪽에 뭔가 흰 먼지같은 날벌레들이 하도 많이 서식해서

담배잎을 물에 우려내어 뿌려주고 있는데도 잘 없어지질 않는데

난은 분위기대로 벌레도 별로 꼬이지 않고 느긋하게 다시 성장중이라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군요.

 

그저 피워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