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오래된 녀석들도 아니긴 합니다.
모처의 창고 정리하다가 나온 녀석들인데, 이걸 보니 고등학교때부터 컴퓨터에 미쳐 살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가져왔습니다.
컴퓨터에 미쳤다는게, 그냥 앉아서 전원켜고 PC를 돌린다는게 아니라, 컴퓨터 하드웨어에 여러가지로 관심이 많았다는 뜻이죠.
고등학교때부터 왠만한 부품들 이리저리 만지고, 필요할때는 납땜도 해가며 만지작거리곤 했습니다.
이거보다 더 옛날 CPU 들도 많이 만졌는데, 요즘 보지 못한지 오래됐네요.
저도 뭐 그리 나이가 많이 든건 아니라서... 어릴적 기억나는 인상적인 CPU 는 인텔의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이었습니다.
486 컴퓨터 쓸때 발매한 녀석인데요, 뭔가 칩셋을 더 끼우면 CPU 성능을 업그레이드 해 준다는 마법같은 녀석이었죠.
그거 달때는 중학교 1학년땐가 그래서 그냥 동네 컴터집 아저씨가 달아주는거 그대로 쓰기만 했는데
훗날 케이스 열고 메인보드 살펴보니, 오버드라이브라는 건 그냥 CPU 하나 더 꽂아서 성능 좋은녀석만 작동하고
원래 장착되어 있는 녀석은 비활성화 시키는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녀석이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그 당시엔 의미가 있었던게, 메인보드 하나도 워낙 비싼 시절이라서 말입니다.
온보드 CPU 하나 쓰지 못하더라도 그냥 CPU 만 달아서 쓰는게 더 저렴한 시절이기도 했었죠.
이 녀석은 참 오랜만에 봅니다. 지금은 사라진 사이릭스라는 회사에서 나온 686 CPU 입니다.
1995년 캐나다에서 생산된 녀석이군요.
사이릭스는 제 나이또래 사람들이 잘 알고있을 286,386,486 시절에만 해도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였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당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IBM 에 납품하는 CPU 를 만들기 위해서는
IBM 의 보드와의 호환을 위해서 마이크로칩셋 제조사들이 서로 기술공유를 울며 겨자먹기로 실시해야 했던 것이 큰 원인이었죠.
이런 CPU 들을 IBM 호환, 혹은 인텔 호환 CPU 라고 하는데, 성능은 좀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해서 당시 꽤나 인기가 있었던 녀석들입니다.
이 모델은 펜티엄 1과 경쟁하던 녀석인데, 성능은 뭐 말할것도 없지만 워낙 저렴해서 많이들 사용하던 CPU 죠.
세월의 흔적 때문에 뒷면의 핀이 많이 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고쳐놓으면 멀쩡하게 쓸 수 있죠.
물론 지금은 이 녀석 지원하는 보드, 램도 구하기 힘들고, 호환되는 주변기기나 호환되는 OS 마저도 멸종한 상태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음?) 지금 현생인류들이 봐도 사실 이 정도면 굉장히 놀랍지 않은가 싶습니다.
저 조그만 녀석이 컴퓨터의 머리가 되어서 그 복잡한 연산을 찰나의 순간에 실행해 버린다니 말이죠.
시대를 확 뛰어넘어 AMD 애슬론64 CPU 가 등장했습니다. 사실 제 컴퓨터 하드웨어 취미는 딱 이정도 시기까지였죠.
제가 가장 열심히 하드웨어를 만지작거렸을 때가 99년부터 2002년 정도까진데, 이 녀석은 그 최후반에 나온 녀석입니다.
펜티엄 3까지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말할 수 없는 악행을 많이 저질러 왔었습니다.
펜티엄 2에서 갑자기 CPU 소켓을 슬롯 형식으로 바꾸질 않나 (흔히 보는 예전 게임팩같은 모양)
걱정스러워 하는 사용자들에게 앞으로 이 슬롯으로 갈테니 걱정마라고 해 놓고 펜티엄 3에서는 다시 소켓형식으로 회귀하곤 했죠.
견제할 사람이 없으니 CPU 도 설렁설렁 개발하고 가격도 무지하게 받아먹었는데
그동안 2인자 자리도 간신히 따라가던 AMD 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K7 - 애슬론 CPU가 그 틈을 노렸습니다.
이제껏 성능은 떨어져도 가격때문에 산다는 인식을 완전히 바꿔서, 동급의 펜티엄 3를 능가하는 성능에 가격도 저렴했죠.
당시 최초로 1GHz 를 돌파해서 인텔이 잔뜩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때는 정말 인텔과 AMD 가 자존심을 걸고 승부를 벌였던 만큼, CPU 개발의 황금기였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인텔이 역사상 최악의 작품인 펜티엄4 를 대차게 말아먹고 있는 동안 AMD는 꾸준히 갈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나온 이 녀석이 세계 최초의 x86 64비트 CPU 애슬론 64 입니다.
지금이야 윈도우64bit 정도는 어떤 기기나 다 지원하지만, 당시엔 CPU 자체가 64비트를 지원하지 않았죠.
이 녀석은 최초의 64비트 지원 CPU 지만, 사실상 64비트 윈도우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훗날을 기약하는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상 64 비트가 보편화될 시점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되고 만 비운의 모델이죠.
상단부의 저 금속 덩어리는 CPU가 아니라 CPU의 열을 발산시키는 히트 스프레더라는 방열판입니다.
초기 애슬론 모델들은 저런 히트 스프레더가 없이 코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죠.
그 코어라는게 내구성이 꽤나 약한 녀석이라서, 개인들이 PC 조립할때 조금만 힘 잘못 부면 모서리가 부서지는 참사가 일어나곤 했습니다.
요즘엔 전부 저렇게 히트 스프레더로 덮혀 있어서 들고 던져도 CPU가 깨지지 않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AMD 는 아직까지 CPU 뒷면의 핀을 사용하고 있더군요. 좀 전 사이릭스에서도 보이듯, 저 핀은 조금만 충격을 줘도 휘어버립니다.
사실 핀 한두 개 빠져도 작동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저처럼 개인 조립을 하던 사람들에게는 CPU 들고 용산을 왔다갔다 하는것도 조심스러웠죠.
이 녀석은 지금도 당당히 현역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델입니다.
펜티엄 4로 휘청거리던 인텔의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 단초가 된 펜티엄 듀얼코어 모델이죠.
펜티엄 4가 완전히 실패한 모델임을 인정하고 새롭게 새발한 아키텍쳐로
이전까지의 클럭올리기 경쟁에서 손을 떼고, CPU 의 심장인 코어를 두 개로 늘려서 연산량을 분산시키자는 전략으로 태어난 녀석입니다.
펜티엄 4가 무려 3.8GHz 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음에도 불구하고 1.8GHz 인 이 듀얼코어보다 성능이 떨어졌으니 말 다했죠.
특히 클럭이 올라가면 전력소모와 발열도 늘어나는 관계로, 펜티엄 4는 완전히 불덩어리였으니까.
이 녀석으로 개발 로드맵을 새로 정비한 인텔은 그 후에 출시되는 코어2 듀오 모델의 압도적인 성능으로 시장을 다시 제압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AMD 는 인텔의 아키텍쳐에 밀려서 애슬론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실정이네요.
그리고 인텔은 CPU 뒷면의 핀의 내구성이 너무 약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핀을 전부 없애서 평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핀은 전부 메인보드에 박아버렸죠. CPU 는 전기적 접점만을 가지고 매끈하게 변해버렸죠.
저같은 하드웨어 매니아들은 이 덕분에 핀 구부러질까 노심초사 하는일 없이 그냥 가볍게 주머니게 CPU 를 넣어 다닐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벌어지는 인텔의 괴물같은 공정 미세화는 거의 미시물리학의 한계를 시험할 정도로 고집적화 되어가고 있어서
AMD 가 따라가기에는 힘에 겨운듯 하더군요. 지금 인텔은 거의 외계인 고문수준의 기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슬슬 끝물이 보이는게, 현재 이런 CPU 들보다 더 수요가 많은 건
성능 떨어져도 저전력 작동이 가능한 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사실이죠.
현재 지구상 대부분의 모바일 기기에 CPU 로 사용되는 녀석은 영국의 ARM 이라는 회사의 것입니다.
절대성능은 10년전 제품인 펜티엄4에도 못미치는 정도지만, 인텔의 어떤 CPU 보다도 전력소모가 적어서 휴대용으로 폭발적인 성장중입니다.
그 10년전 펜티엄 4와 비슷한 성능의 ARM 코어는, 전력소모가 무려 펜티엄 4의 1/300 수준이기 때문에, 인텔마저도 여기서는 상대가 안됩니다.
전 모바일 세대가 아니라 x86 세대라서, 이런 CPU 들을 보면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만
좀 더 시대가 지나면 '뭔 CPU 가 이렇게 커' 라는 소리가 들려오겠죠. 모바일 CPU 는 손톱만하니까요.
출시 당시에는 저것들이 전부 돈뭉치였는데, 지금은 거저 줘도 금가루 빼먹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않으니
기술의 발전이란 놀라우면서도 공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장애학생 체육대회 2/2 (16) | 2013.06.04 |
---|---|
대구 장애학생 체육대회 1/2 (12) | 2013.05.13 |
조카 중기 사진들 (8) | 2013.04.28 |
감기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14) | 2013.04.14 |
조카 초기 사진들 (20) | 201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