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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바'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5.23  킨키 방황 - 거품같은 축제의 마무리 10
  2. 2012.05.19  킨키 방황 - 오사카 난바 16
  3. 2010.02.24  오사카 여행기 마지막 - 구테~ 19

 

 

이제 이벤트장 하나만 더 지나가면 종착지인 난바역.

마지막 이벤트장에서는 미도스지 미나코이 그랑프리(御堂筋みなこいグランプリ)가 열리고 있었다.

미나코이라는 단어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요사코이춤(よさこい踊り)이다.

 

요사코이란 코치현(高知県)에서 시작된 일본의 전통 집단군무인데, 서민들의 축제 전야제 의식으로 시작된 춤이라서

기본적인 몇 개의 규칙만 지키면 남녀노소, 음악의 종류, 안무의 형식, 의상 등등이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절제되고 웅장한 춤에서부터, 신나게 날뛰는 춤까지 매우 다양하고 창작적인 형식을 선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본 각지에서 이런 요사코이 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꽤나 자유로운 군무.

 

한일 문화 페스티발 같은 곳에서는 이런 요사코이춤의 배경음악으로 아리랑이 흘러 나오기도 하는 등, 타문화에 녹아들어가기에도 좋은 녀석이다.

 

 

 

일단 대회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출전 팀들은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응원단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깃발에 맞춰 한 동작 한 동작 절도있는 움직임을 피로하고 있는 중.

 

아오모리현(青森県)의 대표적 축제인 네부타(ねぶた) 축제는

그야말로 누구나 행렬에 뛰어들어서 마음 가는대로 춤추며 소리를 지르는 야성의 기쁨이 살아있는데

요사코이춤은 형식에 있어 자유롭긴 해도, 정해진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집단 군무에 속하기 때문에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예술 행위 관람으로서의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동네 아주머니도 옆집 꼬맹이도 참가할 수 있는 춤이라서 연령대가 다양하다.

이번에 나온 팀은 꽤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분위기라서 일종의 신성함이 엿보인다.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는 대회다 보니 나름 힘을 준 것이겠지만, 막상 정말 축제날에 가 보면

거의 전성기의 X-JAPAN 같은 펑크록 스타일과 모히칸 머리를 한 젊은이들이 날뛰는 요사코이춤도 있으니

이런 사진만으로 요사코이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슬그머니 운을 띄워 본다.

 

 

 

나처럼 우연찮게 축제에 찾아든 관광객도, 작정하고 구경하러 온 타지인도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의 축제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오사카 시민들을 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만들어가고 즐기는 그런 축제.

 

거대한 규모와 압도적인 스펙타클을 보여주는 일본 각지의 대표 축제들과 비교하면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듯한 친근함을 가진 축제라는 느낌이다.

 

그냥 자동차에 점령되던 미도스지의 대로 중앙을 산책하듯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길만큼 즐긴다는 감각.

입장료도, 긴 대기시간도 필요 없는 가벼운 축제지만 일요일 오후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는 의미로서는 굉장히 성공적이다.

이런 축제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던 내가 운좋게 이날 오사카에 도착한 것은 여행중 만나는 돌발적인 보물과 같다.

 

 

 

난바역에 도착한 후 다시 요시노야에 들어가서 규 나베동(牛鍋丼)을 하나 주문한다.

배가 고팠다기 보다는, 아침에 사진을 찍지 못한게 마음에 걸려서. 

 

규 나베동은 규동의 소고기를 조금 줄이고 두부와 당면을 넣은 녀석. 고기가 줄었으니 규동보다 가격은 좀더 저렴하다.

한국에서 규동을 한번 먹어봤는데, 가격도 요시노야보다 비싸고 맛은 정말 먹다가 내다버릴 정도라서

규동 먹으려면 일본 가야겠구나 싶은 생각에, 일본 갈때면 한번씩 먹곤 하는 요리다. 대(大)자 이상이 아니면 간식이라고 할 만큼 양이 적지만.

여행중 일본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일본사람에게도 보통 사이즈의 규동은 배가 전혀 안찬다고 하더라.

 

자전거 여행중 꽤나 즐겨먹었던 규 김치국밥이라는 메뉴가 사라져서 조금 아쉽다.

한국의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지만, 일단 고춧가루를 쓴 붉은 음식이라는 것 자체가 꽤나 그리웠던 시기라.

 

 

 

지금은 사라져버린 메뉴인 규 김치국밥의 모습.

이 사진은 2010년 나고야 헌혈센터에서 헌혈 한번 해주고 난 뒤 근처에서 영양보충했을 때.

 

숙성되지않은 싱싱한 배추일 뿐이지만 그래도 내게는 그리운 맛이었다. 가격도 싸서 여행중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국밥이라고 하기엔 국물에 든게 너무 없었지만, 저렇게 밥을 말아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일본에서는 그나마 한국 냄새 나던 음식.

 

 

 

난바역 근처엔 그럭저럭 큰 서점인 쥰쿠도(ジュンク堂)가 있긴 한데

막상 축제길을 다 걸어오고 나니 피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넷까페에서 새우잠 2시간 잔 후, 거진 14시간 가까이 계속 걷기만 했으니.

 

몸은 이미 형편없는 체력으로 돌아와 있는데, 마음만은 계속 1년간의 자전거여행 당시에 맞춰져 있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다니는데도 체력은 예전같지 않다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통 두시간 정도 책을 훑어보기 때문에, 지금 체력으로는 그것도 상당히 무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한 강행군이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은 이정도로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일 코야산 가기 위해 난바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칸사이 스루패스 2일권을 구매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종료한다.

외국인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스루패스 티켓이라서 여권까지 확인하고, 구매명단 리스트까지 작성한 후 티켓을 건네준다.

 

참 징하게도 세세한 곳까지 신경쓰는구나 싶었는데, 그런 나라가 얼빠진 대처로 치명적인 원전사고를 일으켰다는 건 일종의 희극이다.

낙하산 인사들의 편안한 안식처였던 도쿄전력 임원들이야, 고위공무원의 얼빠진 나태함은 일본이라고 해서 빗나갈 리가 없지만

자신들이 원전 사고로 입은 피해만큼이나, 지금 일본인들은 그 우쭐해 하던 프라이드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거다. 애써 외면하고 싶겠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돈내고 전철 두 코스 타기는 싫어서 왔던길을 다시 돌아간다.

내일 스루패스를 사용하면 칸사이 각 도시를 잇는 전철은 물론 오사카 시내의 왠만한 전철도 전부 무제한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전철 타는건 왠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호텔까지 가는데 한국 돈으로 3천원만 내면 되는데도.

여행가면 얼마 안되는 돈은 최대한 아끼고 비싼건 팍팍 써버리는 이상한 금전 감각이 발동해 버린다.

 

오후 6시쯤 다시 미도스지 거리를 걸어가는데, 그 북적이던 이벤트장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싹 정리되어 버리고

벌써 자동차들이 평상시처럼 운행을 하고 있다. 물론 도로쪽이나 인도쪽이나 쓰레기도 눈에 띄지 않고 평소 그대로.

한국에서 축제 뒤에 남겨지는 쓰레기더미의 산을 자주 봐 온터라, 5시간 남짓한 축제만큼이나 이런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숙소에 도착. CM 광고에서 나에게 깊은 임팩트를 주었던 닛신 컵누들(日清カップヌードル) 하나 사들고 간다.

기름많고 짜기만 해서 인스턴트 컵라면은 한국에 비해 영 맛이 없는데, 이 컵누들만큼은 내 입맛에 잘 맞는다. 시푸드나 카레맛 말고 오리지날이.

 

 

 

나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컵누들 광고 그 첫번째.

중간의 일본어 부분을 간략하게 해석해 보자면

 

'아들내미는 중3. 수험공부 하고 있었다 (있었다)'

'야식 컵누들, 엄마가 잊어버렸다(잊어버렸다)'

'아들내미는 삐졌다'

 

왠만한 일본 버라이어티 쇼보다 이 광고가 더 재밌더군.

 

그리고 충격과 공포 그 두번째.

 

 

 

이건 뭐 해석할것도 없이 '딴거 싫어~ 컵누들 좋아~' 다.

 

 

뜨거운 물 받아놓고 욕조에 몸 누이니 온 몸이 짜릿짜릿한게 정말 무리좀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돌아와서 긴장이 풀리면 느껴지는 그 무거운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심해서 스스로도 놀란다.

침대에 누우니 밑으로 몰렸던 혈액이 쏵 퍼지는 걸 느끼며 TV 틀어놓고 되는대로 보다가 새벽 1시쯤 취침.

 

 

나침반님과 오후 2시에 만나 OM-D 등을 건네드리고, 밥도 한끼 얻어먹고 공항으로 출발.

일본 가기전에 건네드릴 수 있어서 가슴이 후련하다. 내가 일본 가있는 동안 많이 연습해 보시겠지.

 

야간 공항 도착이야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출국을 밤늦게 하는건 처음이라서 나름 신선하다.

피치항공은 출항한지 1달도 안된 새내기 항공이라 인천공항에서 타려면 전철타고 버스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구석탱이에 있다.

저가항공답게 좌적 지정, 수화물 위탁 등등 어떤 옵션에도 추가금액이 붙기 때문에

짐은 모두 갖고 타고 좌적 지정같은것도 없이 최대한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니 세금포함 왕복 13만원.

도착시간이 밤 11시경인 점이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지만

그냥 다음날부터 여행시작이라 생각하고 그날 밤은 대충 알아서 때우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꽤나 유용한 노선이다.

 

그냥 싼게 아니라 항공기 내부는 이제껏 내가 타본 어떤 것보다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다.

나보다 더 덩치가 굵은 사람은 아마 무릎을 옆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앉을수도 없을 듯.

그래도 반짝반짝 새 비행기라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

 

물론 음식이나 물까지 유료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도시락을 세일중이었지만 어차피 1시간 40분밖에 안걸리는 거리.

이 짧은 시간동안에도 나름 여행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는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한테 외국인 입국카드를 주지 않고 내국인용 세관신고서만 주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이 첫 에피소드.

 

무심코 펼쳐 본 기내쇼핑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딱 드는 유니버셜 어댑터가 있어서 큰맘먹고 인생 첫 기내 구매를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그 제품은 6개월 후에나 재고가 들어온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에피소드.

그 어댑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도 좋고, 160 개국 사용가능에, 아이패드까지 충전 가능한 USB 포트도 2개 달려있어서.

아직 피치항공 기내구매 외에는 입수할 방법이 없는 제품이라서 더더욱 안타깝다. 6개월 후에는 구매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귀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국어 설명을 더듬더듬 이어가던 승무원의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착륙후 마지막으로 'ほんま、おおきに~’ 라고 말하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만 것이 마지막 에피소드.

구수한 칸사이 사투리로, '증말 고맙심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칸사이 국제공항을 나서자 생각보다 훨씬 싸늘한 날씨에 놀랐다. 12도라고 하는데 반팔을 입고 있으면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반팔 중에서도 시원하기로는 둘째갈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어서 시작부터 극기훈련하는 느낌.

오늘은 그냥 공항 안에서 대충 책이나 보면서 새우잠을 잘 계획이었는데, 운좋게도 아직 오사카로 가는 전철이 남아있었다.

6시간쯤 이득 본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전철타고 40분간 달려서 오사카 난바(難波)역에 도착.

 

전철 안에서 들려오는 정차역 이름은 지난 일본 자전거 여행때 분명 본 기억이 나는 것들이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결코 들러볼 일이 없는 평범한 주택가 지명들이지만, 나에게는 잊어버리기 힘든 이름들.

자전거로 너댓시간 달려온 거리를 40분만에 질주하는 전철 안에서는, 이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게 일상이 되어간다.

 

 

 

밤 12시경 도착한 난바역은 오사카 최대의 중심가중 한곳이라서 아직 그럭저럭 활기에 차 있다. 토요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물론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노상에 기타들고 앉아서 열심히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인상적.

아쉽게도 내가 막 도착했을 때 마지막 곡을 끝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래하는 모습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에서 나침반님에게 밥을 얻어먹어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어쩐지 뭐라도 입에 넣어보고 싶어서 24시간 영업중인 맥으로 들어간다.

1층엔 좌석이 텅텅 비었는데 날씨가 너무 싸늘해서 지하로 들어갔더니, 다들 생각하는건 비슷한지 그곳은 꽤나 바글바글했다.

 

밤 12시의 맥도날드 지하는 피로에 찌들어 신문을 덮고 누워있는 양복 차림의 회사원, 다음엔 노래방이나 갈까 하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학생들,

경마신문을 펼쳐들고 무언가 고민중인 백발 할아버지 등등, 관광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부 칸사이 사투리로 말을 하고 있으니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걸 반찬으로 햄버거를 씹어먹는 맛이 있다.

예순쯤은 가볍게 넘어버리는 백발 할아버지가 새벽 1시에 맥에서 커피와 함께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 이 정도면 충분히 이국적이지 않은가?

 

 

 

 

적당히 휴식하며 일기를 쓴 후 밖으로 나오자 '맛사지 안할래요?'라고 젊은 여성들이 엉겨붙는다.

사실 일본의 풍속업은 문제 일으키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자국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한테 말 건 것은 뭔가 착오가 있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밤거리를 걸을때면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젠 별로 세삼스럽지도 않지만.

새벽 1시를 넘어가자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거리의 활기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24시간 영업점 근처의 인적 말고는 고요해진다.

조금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남아도는 넷까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한국의 PC방과는 달리 일본은 개인룸이 주를 이루며,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의자가 아닌 매트리스 룸도 있기 때문에

밤에 잠시 눈 붙이고 쉬기에는 그나마 저렴한 수단으로 유용하다. 음료수와 만화책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점도 좋고.

 

 

 

 

특히 야간 나이트팩은 6시간 10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대신 기본요금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더욱 이득.

맥도날드보다 훨씬 저렴한 규동집도 일본 와서는 빠지지 않고 한끼 즐기곤 하는데

지금은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넷까페로 들어간다.

 

6시간 팩키지를 끊었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잠만 자기에는 왠지 아까워서 항상 음료수 마셔가며 한국에 발매되지 않은 코믹스를 찾아 읽는다.

한글보다는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6권쯤 읽는데 2시간이나 소모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잠도 잘 오질 않는다.

매트리스 룸이라고 해도 호텔방같은 분위기는 아니라서 잠자리는 불편하고 좁다. 이리저리 뒤척여서 간신히 잠 잘만한 자세가 나올 정도.

 

하지만 이것도 신기한 게, 한 시간동안 그렇게 잠이 오질 않아서 뒤치닥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머리 끝에서부터 밑으로 쑤욱 내려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달콤한 수면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후엔 가끔 깨더라도 금새 편안하게 잠 들수 있고, 잠시 깨어나는 그 순간도 아늑하게 기분이 좋다.

잠이 오기 전의 그 딱딱하고 불편한 매트리스가 그렇게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항공편이 저녁 늦게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마지막 날엔 시간이 촉박하죠.
그나마 이번엔 오후 항공편이라 오전에 조금 돌아다닐 시간이 있긴 하지만
숙소 주변이 아니고서는 후딱 다녀와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갈 곳은 정해져 있는거나 마찬가지.

체크아웃 후 짐을 숙소에 맡겨놓고 후다닥 나옵니다.
오사카로 여행가는 헝그리 한국 여행자들에겐 이미 유명한 그린파인.


그러고보니 숙소에서 나와 3분 거리인 츠텐가쿠에는 결국 못 올라가봤습니다. ㅡㅡ;
주유패스 무료 티켓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 후 숙소로 돌아올 즈음이면
이녀석 개장 시간이 지난 후라서 결국 올라가보지 못했군요.

지금이라면 돈 내고 올라갈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공짜 전망대는 숱하게 올라가봤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이럴 때 쓰는건가 싶네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구경하지 못하다니.


이른 시간이라 저녁때만큼 사람이 많진 않은 난바역입니다.
이곳 난바역 지하상가는 난바 워크(なんばウォーク)라고 해서 다양한 잡화점,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볼거리입니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엄니께서 부탁하신 홍차를 구해보기 위해서였지만
그 홍차는 사실 도쿄 쪽에 가게를 두고 있어서 이곳에서 구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네요.

일단 찾아보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역시 제대로 된 홍차를 파는 곳은 없었습니다.
난바역 지하의 거대 식품매장도 둘러봤지만 전부 녹차 종류만 있고 홍차는 없네요.


홍차 찾기는 실패하고, 일단 다시 걸어서 숙소가 있는 에비스쵸 역으로 가기로 하는데
일단 그 전에 동생분이 오사카에서 먹고 싶다는 음식 중 하나인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난바 워크에서 적당한 가게 하나 찾아 들어가서 오무소바(オムそば) 하나하고 모던야키(モダン燒) 하나를 시켰습니다.

저는 지난번 히로시마 여행때도 굳이 오코노미야키를 찾아먹진 않았던 만큼
좋아 환장하는 타코야키에 비해 그닥 끌리지는 않는 음식이지만
일행과 함께 온 여행이니 이런 것도 한번 도전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먹어보기로 결정.


아침녘에 오코노미란 것도 참 특이한 조합이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
오무소바는 말 그대로 오무라이스에 쌀 대신 소바를 넣은 음식이구요.

모던야키는 오코노미야키에 소바를 넣어 만드는 퓨전음식 비슷한 겁니다.
이것도 오코노미의 종류이기도 하고, 오사카 명물이라고 하니 시켜봤는데
그냥 소바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 이외엔 오코노미야키와 다른 점이 별로 없네요.
원래 오코노미야라는 녀석이 기본 재료만 들어가면 뭘 넣던 철판에 굽기만 하면 되는 녀석이라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왜 이녀석은 모던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기다리고 있으면 종업원이 알아서 만들어줍니다.
저는 오코노미를 맛있게 만들 능력은 없기 때문에 그냥 숙련자가 만들어주는게 편하네요.
바로 만든 것이라 따끈따끈하게 맛있긴 했는데, 역시 제 취향과는 그닥이었습니다.
집에서 부쳐먹는 정구지 찌짐이 더 맛있어서 그런지 이런 류의 음식은 밖에서 먹고싶은 생각이 안나는군요.

그냥 오사카에 왔다는 기념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난바워크를 이동하면서 다시 숙소 쪽으로 걸어갑니다.
숙소 근처에 오덕들의 성지인 덴덴타운이 자리잡고 있으니 시간 보내기로는 제격이죠.

친구녀석은 아직 더 사고싶은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저도 지난번 포스팅 때 보여드린 보컬로이드 피규어를 손에 넣고 싶었기 때문에.


매번 밤에만 찾아와서 그런지 낮에 보는 덴덴타운은 꽤나 신선하군요.
여기서부터 덴덴타운을 가로질러 쭈욱 걷기만 하면 숙소가 나옵니다.


가게 안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주변 거리만 줄창 찍어댔습니다.
이곳 거리는 마치 용산 선인상가 주변을 보는 것 같아서 친근한 느낌도 듭니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비하면 아직 컴퓨터 관련 상가도 좀 남아있는 편이라.


일본이 전체적인 불황이다 보니 이곳도 장사 쉽게 할수는 없는 듯.
아키하바라가 오덕들의 성지로 거듭나기 전에도 이곳에서는 나름 유명한 지역상가들이 꽤 있었는데
애니메이트나 게이머즈, 메론 북스 등의 거대 체인점들이 들어서면서
이곳만의 특색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네요. 어느 나라나 거대 체인이 지역 상권을 점령해 가는 모습은 서글픕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라는 문구입니다.
길고양이나 비둘기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네요.

처음 일본에 갔던 중학교 2학년때는
비둘기 먹이 자판기 옆에 가기만 해도 비둘기들이 온 몸에 달라붙기도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물론 자판기도, 비둘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일본에 올 때마다 항상 궁금하지만
매번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 메이드카페.

까페는 느긋하게 차 마시면서 숨좀 돌리고 책이나 읽는 재미로 가는 건데
저런 데서 냥냥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하는 메이드복 차림의 종업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면
별로 느긋하게 있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남은 돈 탈탈 털어서 피규어 등등을 구입하고
아직도 수중에 돈이 남아 뭐 좀 더사야 하나 안절부절하는 친구를 닥달하면서
다시 숙소가 있는 신세카이로 돌아왔습니다.

공항 검색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필름을 다 써야 하기때문에
의미없어 보이는 늠름한 할리 데이비슨도 한 장 찍어줬습니다.

사실 고성능 필름카메라인 세븐이에는 필름 끝단 남기고 강제 이송해주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남아도 별 관계는 없지만, 기분상 매거진에 들어있는 필름은 다 찍어주고 싶은 게 여행이란 녀석이죠.


결국 올라가지 못한 츠텐가쿠를 바라보면 언제나 쓴웃음만 나옵니다.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러 다시 난바역으로.
기념품이다 오덕 물품이다 해서 짐이 뭔가 좀 늘어난 느낌입니다.
책이 무게도 무겁고 부피도 크고 해서 좀 힘들군요.


4박 5일만에 오사카와 쿄토를 둘러본다는 건
그냥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도 4박 5일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적인 여유는 꽤 있군요.
늦어서 헐레벌떡 하는것 보다는 여유있는게 좋으니.

이곳에서 이곳 오사카 여행의 마지막 별미를 맛볼 차례입니다.


각종 여행 매체에서 추천하던 빵집 구테(グーテ)의 신선한 빵입니다.
아침에 돌아다녔던 난바 워크에 자리잡고 있는 이 빵집은 1948년에 개점한 이후
오사카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사카 시내에만 10개가 넘는 체인점이 있고, 각각 개성있는 빵과 음식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본 난바점 하나만으로는 이 곳의 매력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역시 빵은 맛있었습니다. 천연 효모를 사용해서 신선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빵만 먹고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결국 공항내 식당에서 또 한끼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라면을 너무 적게 먹은 것 같아서... ㅡㅡ;

별 맛없는 평범한 라면이라도 돌아가는 길의 아쉬움을 달랠 만큼의 가치는 있더군요.


저만 먹는것도 좀 그러니 다른 것도 시켰습니다.
따끈따끈한 닭튀김과


앙증맞은 닭꼬치도 함께.
자금을 두둑하게 소지한 친구 일행덕분에 이런것도 먹어보는군요.
사실 전 소지금이 완벽하게 바닥나서... T_T

처음부터 얼마 갖고가지도 않았지만 예상이 없었던 고양이 인형과 피규어 지출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여행가면 얘네들이 만족을 좀 했을려나 하는 눈치때문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혼자 다닐때와는 다른 즐거움도 있으니 가끔은 이렇게 떼로 몰려가는것도 나쁘진 않겠죠.
다음엔 또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군요.

동생분은 아픈데 질질 끌고다녀서 참...
다음엔 몸상태 좋을때 가기로 하죠.

친구한테는 조금만 더 바람잡아넣었으면
닌텐도 DS도 사게 만들수 있었는데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