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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11.04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4편 18
  2. 2013.10.30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3편 18
  3. 2013.10.29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2편 6
  4. 2013.10.28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봉봉 1편 10
  5. 2013.10.20  과거로의 여행 - 마츠모토 방황 11
  6. 2013.09.09  과거로의 여행 - 청춘이 필요해 18

 

이제 1년에 하루 열리는 마츠모토 축제도 슬슬 끝을 향해 달려간다. 슬슬 도로에 주저앉아서 쉬는 사람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의 8월 첫째 주 토요일이라는 시공간이 가지는 공포스러움은, 사계의 변화가 뚜렷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신기루같은 항변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오히려 북극 사람이나 적도 사람들보다 날씨에 덜 민감한 듯 하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본인 역시 11월의 싸늘한 날씨에 익숙해져, 그 때의 섬뜩한 더위가 벌써 사진 속의 추억처럼 바래지고 있으니까.

 

한바탕 날뛰고 나서 들이키는 음료수의 짜릿함이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쾌락일 듯.

4시간이나 계속되는 축제다 보니 지쳐 나가떨어질 참가자나 관광객들이 좀 생기리라 예상했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거리에 사람이 더 많아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춤 자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조금씩 줄어들고

삼삼오오 무리들이나 달달한 커플들이 자기네들만의 시간을 가지는 뒷풀이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밤까지 계속되는 축제라면 역시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축제가 끝나가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이 생긴다.

지금 이곳 축제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마츠모토 시 인구보다 더 많은 20만명이 넘는데

이 사람들 다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여기가 서울처럼 큰 도시도 아니고.

 

특히 축제 끝날때 까지 주요도로가 전부 보행자 천국이라서, 대충 다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싶다.

이런 축제 후라면 뒷풀이 거하게 하고 새벽에 한시간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전혀 힘든 일은 아니겠지만.

 

본인은 축제 장소 한가운데 서 있는 호텔에 투숙중이니 돌아가는거 하나는 신경쓸 게 없어서 홀가분하다.

 

 

 

짧지 않은 축제가 끝을 향해 달려가자 일본인 특유의 질서가 조금씽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것도 아니다.

아무리 마이크에서 떠들어대도 이미 힘이 다한건지, 춤 추는 도중에도 길을 건너려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통제가 되지 않는다.

진행요원이 대열 사이사이에서 '건너가지 마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스스럼없이 건너가 버린다.

강제력을 가지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진행요원들은 그냥 속이 탈 뿐.

 

사실 춤추는 사람과 부딪친다거나 하는 사고는 사소한 것일 뿐이지만

운영위원회 입장에서는 어쨌든 제일 신경쓰이는게 물리적인 부상이니까.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은 이미 통제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다행히도 본인이 보는 한 사고가 생긴 일은 없었다.

 

 

 

뭐 하는 팀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앞쪽에, 여자들이 뒤쪽에 서서 춤을 추는데

복장도 강렬하지만 안무 역시 일반적인 동작과는 달리 무릎과 허리를 지면에 엎드리듯이 굽혀가며 몸을 크게 휘젓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다른 팀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체력이 소모되는 안무인데, 다들 의무감에라도 휩싸인 듯 악과 깡으로 춤을 이어가고 있다.

 

복장을 봐서는 무슨 빠칭코 회사 직원들이거나, 아니면 폭주족 팀원들 같은 분위기.

사회적으로 눈총받는 그룹들이긴 해도 사실 축제 때 분위기 제일 잘 띄우는 사람들 역시 좀 놀아본 사람들이다.

상세한 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참가 팀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는 건 확실히 기억한다.

 

 

 

축제의 규모에 비해서는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게 이 마츠모토 봉봉인 듯.

큰 축제는 원래 준비할 것도 많아서 아예 축제 준비를 전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다.

아오모리의 네부타 축제는 네부타라는 거대한 구조물 만드는 데 1년이 걸린다. 축제 역시 1년에 한 번씩 열리고.

축제 후엔 그 인형들 바다에 띄워 불태워버리니, 사실상 평생 축제 인형 만든다는 의미.

 

하지만 이 축제는 뭐, 의상 맞추고 안무 연습만 하면 되니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다.

네부타 축제처럼 일본 3대 축제에 들어가는 유명한 녀석들은 인건비와 규모를 감당하기 힘들어

점점 찾아오는 사람도 줄고 축제 규모도 축소되어가는 분위기인데, 마츠모토 봉봉은 매년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해석이 필요하다. 특히 관 주도로 열리는 축제 관계자들은.

세계대회 열리는 기간엔 문화, 예술을 즐긴답시고 재즈축제 열고 잰척 하더니

대회 끝나니 재즈축제 없애버리고 치맥축제 따위나 열어서 거지들 줄세우기나 하는 꼬라지 보니 참 한숨밖에 안나오더라.

 

 

단지 지역 사람들 모여서 춤추며 돌아다니는 이 축제가

어째서 이 도시 인구보다 더 많은 20여만명의 관광객들을 매년 불러모으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돈 내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온 김에 좀 더 둘러보고 갈 만 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축제가 돈을 밝히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결코 수면위로 스스로 올라와서는 안되는 양면성을 가진다.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러 온 거지 가게들 선전 보러 온게 아니다.

축제는 축제대로 관광객을 만족시켜줘야 그 뒤에 지갑이 열리게 되어 있는 것.

축제 참가에서 장사나 좀 하고 가겠다는 마인드 가지고 있는 회사들

그것보다는 아예 축제 자체를 회사들 선전하는 장소로 만들어 버리는 조직위가 더 문제이긴 하지만.

 

 

 

습한 더위 속에서 4시간 가까운 강행군을 하면서도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축제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단순한 증거일 듯 하다.

 

쉬는 시간마다 스피커에서 미아가 된 아이 보호하고 있다는 메세지가 흘러나오고 있지만

묘하게도 그리 걱정되지 않는 것은, 충분히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의 사고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 때문일까.

 

 

 

거의 마지막 휴식시간이 아닌가 싶다. 어째 사람들은 점점 힘이 나는 듯 하다.

스피커에서는 여느 때의 안내방송이 아니라 뭔가 시상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방송하고 있다.

 

몇몇 눈에 띄는 팀이 있긴 했는데, 아무래도 시상식장까지 가서 구경하는건 너무 힘들것 같아서 패스.

애초에 여기 참가한 사람들 중에 반드시 시상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은 없을거라 본다.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쳐가며 뿌듯한 기분으로 맥주 한캔씩 따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혼자 조용히 이곳저곳 누비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 같은 홀로 관광객은 기분이 묘하다.

쓸쓸하다거나 초라하다거나 하는 기분은 아니고, 축제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구나 싶은 생각.

 

실제로 춤은 안 췄지만 또 하나 예정에 없던 귀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비록 이 축제를 보게 된 이유가 쓸데없는 자괴감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 또한 여행의 한 부분으로 각인되었으니까.

 

 

 

굉장히 화려한 총천연색 의상을 자랑하는 팀. 간판이 있긴 한데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쉬는 시간 외에는 이동하기가 힘들어서, 내가 참가 팀의 몇% 정도를 본 건지 알 수가 없다.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도 모든 팀들을 한 번쯤은 볼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너무 심심할 테니까.

 

보통 축제 끝나면 뒤풀이로 또 한번 시끌벅적해 지는데

이렇게나 사람들이 많으면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궁금하다. 가게는 거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텐데.

젊은 사람들은 벌써부터 인도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서 술 마시며 여자 꼬셔대고 있다.

나도 슬슬 편의점에서 먹을 거 좀 챙겨 나와야 하는데,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타이밍 잡기가 힘들다.

 

 

 

마지막 춤이 시작된다. 으레 그렇듯이 참가자들의 목소리나 동작은 더욱 커진다.

4시간 동안이나 마징가 Z 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니 그것도 이미 익숙해져서 흥이 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남녀노소 참가할 수 있는 축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세삼스럽게 느낀다.

 

도로가에 위치한 전망 좋은(?) 가게 안은 벌써 사람들이 가득 앉아서 아련한 눈길로 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기분같아서는 어디 가게나 패스트푸드점 같은데 들어가 마지막 마무리를 지켜보고 싶기도 한데

빈 자리가 있을리 없기 때문에 깔끔하게 포기하고 편의점에 들어간다.

 

화장실 가려는 사람들의 줄과 물건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섞여있어서 혼잡하지만

의외로 편의점에서 먹을거리 사는 사람은 적은지 도시락 같은 건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하긴 축제날 편의점 도시락 사먹는다는 건 뭐랄까, 이곳 사람으로서는 이미 최후의 수단 같은 행동일 테니까.

나는 인파 헤치고 줄 서서 간신히 타코야끼 하나 집어물고 하는 짓은 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은 이상할 정도로 예정외의 이벤트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히다 타카야마에 갔을 때도 운 좋게 그날 저녁 마을축제가 있었고.

 

축제 시작때까지만 해도 키소 마을에 가지 않고 하루 더 눌러앉아 있으려는 본인의 소심함에

매우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활기찬 사람들의 축제를 구경하며 좀처럼 담기 어려운 사진을 찍어대고 있으니

그 죄책감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 하다. 내일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으니 당연히 키소로 향하겠지만, 그 전에 얼굴이 좀 풀려서 다행이다.

 

마지막 음악이 흐르고 춤은 모두 끝났지만, 한참 동안 동료들끼리 인사, 지나가던 지인들끼리 인사, 수고한 팀들간 인사 등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 시간이 흘러간다. 운영팀에서는 우수팀 시상하느라 정신이 없고 슬슬 사람들은 한잔 하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등 소금이 물이 녹아내리듯 서서히 흐트러지는 집단의 모습이 보인다.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맥주 한 캔과 도시락 하나를 싸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9층의 객실에서도 여전히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결국 축제가 끝난 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드디어 모든 만남이 끝나고 고리는 해체되어 서서히 흩어진다. 본인은 이미 목욕을 마친 상태.

맥주 한잔 들이키며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축제 현장에 건배 한 번.

 

애들 나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훗날 이 축제의 기억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본인의 경우 어릴 적의 기억이란 건 대부분 사회생활 시작부터 구체적으로 그림이 잡혀가는 듯 한데

유치원 가기 전의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고 흐릿한 기억밖에 없지만

유치원 때부터의 기억은 입학식때부터 꽤나 상세히 기억이 난다. 유치원 구조까지도.

 

이런 큰 축제에서 어마어마한 인파와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직접 뛰어들어가 경험해 봤으니

이 애들이 내 나이즈음이 되어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문득 축제 생각하니, 내가 어릴 당시의 한국이란 지금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기억이 난다.

유치원 때부터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내가 겪을 수 있었던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축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추수감사절 부근에 펼쳐지는 미군부대 내의 축제와 불꽃놀이였다.

 

설날에 용돈이나 받고 추석에 친척들하고 놀이터나 나가보는 그런 시시껄렁한 놀이밖에 없었던 당시엔

1년에 단 한번 미지의 철창 문이 열리는 미군부대 축제는 마치 외국 여행을 온 듯한 신비의 세계였다.

 

그림 그려진 나무판의 구멍 안에 공을 넣으면 인형을 주는 놀이에서, 나이가 어린 애들 전용 구멍이 상당히 컸기 때문에

무리없이 확확 집어넣고 인형을 서너 개씩 막 건져오던 기억이 난다. 그 인형들 정말정말 좋아해서 4년 이상 가지고 놀았었는데.

 

어릴적 가장 기억에 남는 축제가 미군부대의 추수감사절 축제였다는 사실을 마츠모토 봉봉을 보며 떠올리니

요즘이나 수십년 전이나 한국의 어린이가 겪어야 할 정체성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기분이 든다.

사실 요즘 애들이야 이런 축제 연습한다고 학원못가고 LOL 못하고 그러면 얼마나 서글프겠는가. 벌써부터 인생은 바쁜 것이다.

 

 

 

여기는 무슨 가장 행렬 팀인지, 중간중간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유카타 차림의 여자사람들이 춤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일본의 전통 의상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어떤 축제라도 자국의 전통의상 입고 참가하는게 가장 보기좋은 것이 당연하니까.

 

한국에서는 유카타와 키모노의 구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복과 유카타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실상 한복은 예절을 갖춘 행사에 입는 키모노의 일종인 후리소데(振袖)와 비교할 대상이지 유카타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유카타는 목욕 후에 파자마 대용으로 입는 간단하고 편리한 옷이라서.

 

개량한복이 적절한 가격과 뛰어난 편의성으로 발전된다면 한국 축제에서도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겨울이라면 괜찮겠지만 8월 첫째 주 토요일 저녁의 기온은 30도 가까이에, 습도가 50%를 넘는 지옥의 언저리였다.

개구리 아저씨,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처럼 축 늘어져 버리는게 아닌가 심히 걱정되었지만

휴식시간에 수분 섭취를 잘 하고 있는지 아직까지는 생생하다.

 

그 옆에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분도 열심히 부채 휘두르고 있다. 여기가 남반구인가?

 

본인 역시 소박한 소망으로,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 다스 베이더 복장으로 완주해 보는 꿈을 꾸곤 하는데

막상 실제로 비슷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나마 현실 감각이 돌아오곤 한다.

 

 

 

'나가노 고전'이라는 학교에서 출전한 팀이다. 매우 활발하고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

내가 카메라 가져다 대니 긴장하는게 아니라 앞으로 쑥 다가와서 웃으며 부채춤을 춰 준다.

 

고전이라는 학교는 고등학교와 직업전문대를 합친 일종의 특수학원으로

취업쪽에 굉장히 강한 학교라 요즘 일본에서는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편이다.

물론 이러나저러나 인문계보다 날라리들이 많고 출석률이 떨어진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지만

학교 잘 안다닌다고 잘 다니는 학생보다 인간이 덜 됐다던지 하는 캐캐묵은 상식따위가 통하지 않는 시대니까 별 문제 없다.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을 일본이나 한국에서 보는 건

집앞을 걸어가는데 UFO와 충돌할 뻔 해서 외계인이 뚜껑 열고 나와 '죄송합니다 다치셨으면 보험으로 하죠'  하고 떠나는 경험만큼 진귀한 편이다.

 

 

 

마츠모토에서 가장 큰 축제다 보니 어지간한 대기업들 역시 필수 참가나 마찬가지.

NTT 도코모 사원분들도 열심히 춤추고 계신다.

절도있게 잘 추긴 하는데 역시 이쯤 되면 좀 전의 학생들과는 달리, 축제 역시 사회활동의 일종이라고 몸에 베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하기 싫으면 안 하는게 축제일 터인데, 축제란 것도 사람이 만든 것이라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권력의 집중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개인의 의사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는 것일 듯.

 

NTT 정도 되니 팀원 수도 100명을 넘어가는 듯 하고, 대규모 인원이 펼치는 대규모 춤사위는 꽤나 박력이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생후 1년 이내로 보이는 아기들도 많다.

유모차는 움직이기가 워낙 불편해서 안고 나온 사람도 많고.

 

그런데 결코 조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축제라, 아기들 귀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물론 F1 그랑프리처럼 귀를 파괴해 버리는 소음은 아니지만 아기의 청각에 대해 잘 모르니 괜히 신경쓰인다.

나 역시 한국사람이라 그런지, 아기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애지중지, 과보호하는 민족성이 깊게 스며들어 있는 걸까.

머리로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는 거 알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의 과보호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

 

아기 분유타는데 개량 숟가락 위로 분유가 솟아나왔다고 날 아기 살해자처럼 노려보던 그 날의 일은 죽을 때까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아기 크면 나중에 말해줘야지. '내가 니 분유를 5g 정도 더 타서 배불려 죽이려고 했는데 니 아비가 막아내는 덕에 아직 살아있는 거란다'

 

 

 

점점 해가 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어둠이 가져다주는 흥분의 마약에 점점 취해갈 준비를 하는 듯 하다.

본인 역시 인생 절반을 야행성으로 살아왔지만 요즘엔 사진 찍는다고 밤이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북적이는 곳에서 삼각대 척 펼쳐놓는 야만스러운 짓은 할 수 없으니까.

 

통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듯, 막 해가 지려는 이 때가 참가자들의 피로도가 올라가는 시기일 듯.

 

 

 

체력적으로 힘든 축제이긴 하지만 자발적 참여라는 플러스 요소 덕인지 다들 싱글벙글하다.

축제 시작된지 2시간이 넘어가고 있지만 도로는 여전히 쓰레기 한점 없다.

마츠모토가 원래 물 좋고 공기 맑은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름값을 지키려 하는 것인지 원래 깨끗하긴 한데

이런 대규모 축제에서도 바닥이 이렇게 깨끗하다는 건 정말 본받아야 할 점이다.

 

세상에 전부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쓰레기 무단투기는 없어질 텐데.

이건 자만이 아니고, 본인은 평생 살면서 쓰레기 무단투기를 해 본적이 없다.

대신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이런 축제는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날이 어두워지니 미리 준비해놓은 대형 라이트가 도로 곳곳에서 불을 밝힌다.

도심이라 밤이 되어도 어지간히 불빛이 남아있긴 해도, 축제 특성상 최대한 밝은 게 안전할 테니까.

 

 

 

나처럼 평생 처음 축제를 체험하는 외국인들에게야 1년에 단 하루 4시간의 축제라

놓치기 힘든 순간의 연속임에 틀림없겠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들에게는 그냥 일년에 한번 주기적으로 열리는 놀기좋은 날일 뿐.

 

축제 기간엔 노점상들이 장사 휘어잡는게 보통인데, 이 축제는 도시 인구만큼이나 관광객이 찾아오는 초대형이라서

도시 곳곳의 가게들 역시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렁찬 함성소리를 반찬 삼아서 스테이크를 썰어먹는 기분은 어떨런지. 사진 왼쪽의 가게는 '가스트'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미리 먹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게, 음식점은 물론이고 편의점란 편의점도 줄이 장난이 아니다.

사실 반 정도는 화장실 사용하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날씨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이 발산하는 열정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1년에 단 하루의 여름밤 축제가 슬슬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이미 3시간 넘게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춤추며 행진한 사람들의 얼굴엔 땀이 흥건하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휴식시간을 알리는 안내가 흐르면 점점 더 활기찬 얼굴로 아이스박스에서 맥주와 음료수를 꺼내 든다.

 

춤 출때 보다 휴식을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이 더욱 동질감 느껴지는 듯 하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내 주위엔 이런 데 뛰어들어 화기애애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시원하게 한건 했다고 만족스러워 하는 저 모습은 순수하게 부럽고 동경하는 장면이다.

 

대구 치맥축제라는 괴이한 이벤트가 잠깐 생각났는데

먹이 받아먹는 동물처럼, 불볕더위에 한참 줄서가며 공짜 맥주와 치킨 몇조각 얻었다고

그렇게나 환한 미소를 띄우며 의기양양해 하던 젊은이들 모습은 별로 동경스럽지 않았다는 기억이 난다.

 

 

 

안내방송에서 시상식 이야기도 나오는 걸 보니 이 축제에도 팀별 시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팀들이야 상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만.

 

대규모 축제 때야 사람들 많이 모이는 건 익숙한 모습이지만

딱히 다른 이벤트가 없이, 마을 사람들이 춤 추는 것 하나만 이루어지는 이 축제가

이렇게까지 바글바글한 것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과의 단절을 쿨하고 시크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에서는 뿌리내리기 힘든 형태의 축제인데

사실 한국도 일본만큼이나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한 소속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쿨하고 시크해봤자 그딴 허세는 조금만 흔들리면 날아가버리는 연기같은 녀석이니까.

 

 

 

처음 축제가 시작될 때는, 춤이 그렇게까지 과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약간 김이 빠졌는데

언뜻 짧아보이는 4시간의 축제동안 이렇게 계속 춤을 추는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닌 듯 하다.

 

물론 축제 자체의 난이도는 여느 다른 축제에 비해 낮은게 사실. 대부분의 축제는 특정 행사를 중심으로 하며

그 행사는 무거운 물건을 들고 으쌰으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을 장정들이 특훈을 거친 후에야 겨우 완료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에 비해서 이 축제는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겠지만, 그 덕에 남녀노소 모두 참가할 수 있고

몇몇 젊은 팀들은 안무 동작 자체를 거창하고 과격하게 바꿔서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식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축제를 즐기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피로해 진다고 해도, 아마 기분이 다운되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한다.

학생 때 하드락이나 핌프 등의 막나가는 언더 공연에서 신나게 흔들어 본 적이 몇번 있는데

셔츠를 짜면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어깨동무하며 뛰어다녀도 피곤해서 괴롭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그렇게 운동을 하라고 하면 입에서 육두문자부터 튀어나올텐데.

 

 

 

일본의 거대 체인 '이온'에서도 당연히 참가했다. 다른 팀들보다 복장이 전통스럽다.

주부 되는 분이 아기를 안고 춤추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

 

이렇게 행진하며 추는 춤은 옆에서 바라볼 때와 직접 참가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예전 아오모리의 축제 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열 맞춰 동료들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의외로 뭔가 뿌듯하고 내가 지금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기는 듯 하다.

 

 

 

축제의 끝이 다가올수록, 날이 어두워 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힘이 날거라 예상한 것이 틀리지 않았다.

원래는 이 팀도 최소한 줄은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체력을 마치 외부 인자의 공격이라 느끼는 듯이

그것을 떨쳐내 버리려고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기 시작한다. 것도 줄 같은거 맞출 필요도 없이 서로서로 뭉쳐서.

 

이게 바로 축제지 하는 느낌. 사실상 미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한국의 광폭한 축제에 비하면

이제까지 좀 차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었는데, 슬슬 이사람들도 감정에 몸을 맡기기 시작하는가 보다.

물론 다음 음악이 흐르면 빨리 앞 팀을 후다닥 따라가야 뒤쪽 팀에게 폐가 되지 않으니 서두르긴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나처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니, 축제는 역시 좋은 스트레스 해소거리.

 

약 30분간의 도돌이 노래가 끝나면 비로소 사람들이 부채를 든 손을 내리고 휴식에 들어간다.

축제라는 게 노동이 아닌 이상 휴식이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낯설은 분위기.

그리 힘들지 않은 동작을 멈췄다 뿐이지, 노래가 멈추자 다들 참았던 말을 쏟아내듯이 동료,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다.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에게서 음료수 받아 마시고, 쓰레기 역시 뒤에 달린 비닐 봉투에 잘 담는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 휴식시간이 마츠모토 시내가 더욱 활기넘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는데

춤이 진행되는 동안엔 도로를 건너갈 수가 없어서 인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반쯤 고립되어 버리기 때문.

 

춤이 끝나면 신호 대기하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오듯 물밀듯이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나 역시 4시간 동안 이 쪽에서만 서 있기는 지루하니 어디로든 가 보려고 길을 건넌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더운 8월 첫 번째 토요일이라 동작이 과격하지 않은 춤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건 힘든 거다.

아이들은 과연 축제가 끝나는 4시간 후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쉴 때는 최대한 쉬어줘야 다음 춤을 준비할 수 있다.

 

유치원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인데, 이런 아이들이 벌써 마을의 축제에 참가하며 땀을 흘리고

어른들은 휴식 시간이 되면 음료수을 갖다 주며 부채로 땀을 식혀 준다.

 

학교 다니는 도중에도 백년지대계라는 교육과정계획이 몇 차례나 바뀌는 줏대없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마을의 축제에 참가한다는 이미지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저 친구하고 놀 시간 있으면 학원이나 가야겠지.

 

 

 

사범이 한국 사람인 듯 하다. Lee's 태권도라고 적혀있는걸 보니.

한국인들에게만 가르치는 것은 아닐텐데 태권도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있는 모습도 참 특이하다. 기본 뼈대는 카라테에서 나왔으니.

 

도복 입고 춤추는 것도 신선할 듯 하다. 혹시 마지막 점프 동작에서 날아차기 같은거 시연하고 그러지 않나?

휴식 시간에는 당연히 일반인도 도로 쪽을 걸어다녀도 되는데, 왠지 춤추는 사람들의 공간 같은 느낌이라서

괜히 중앙으로 나가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좀 더 붙임성이 좋다면 쉬는 팀들 아무한테나 가서 수고했다고 해 주고 사진 찍고 하면 될 텐데.

 

 

 

두 번째 타임이 시작된다. 어지간히 장소를 이동했으니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한번 담아볼까 했는데

막상 중요한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이 춤의 행렬이 일본의 자동차 진행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건너편이든 이쪽이든 무조건 인도에서는 동일한 각도만 사진에 나온다는 점.

 

이걸 타파하려면 프레스 기자들처럼 과감히 도로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건너편에서 반대쪽 행렬을 담는 신기에 가까운 촬영기술을 습득하는 수 밖에.

 

 

 

어디서 어떻게 모인 팀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나 기업체 팀이 아닌 동호회 분위기의 팀도 분명 존재한다.

하반신은 자유에 맡겨도 일단 어느 팀이든 통일된 복장 하나쯤은 갖추고 있는데

본인들은 뭔가 어필을 위해 만들었겠지만 도통 알 수가 없다. 기어 같이 생긴걸 봐서는 무슨 공대에서 나온 건가.

 

대체로 나이 좀 드신 팀은 조금 더 통일감이 느껴지고 일부러 힘을 넣으려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젊은 팀은 좀 더 과격하고 열정을 방출하고픈 의지가 느껴진다.

축제를 계승해야할 문화적 전통으로 여기느냐, 소속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의 방출 장소로 여기느냐의 차이일런지.

 

 

 

춤추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이 인상깊었던 것이 뒤에서 따라오는 서포터들의 모습이다.

어떤 팀이든 반드시 서포터들은 동행하는 것이 규칙인 듯 한데

이온 음료에서부터 맥주까지 없는게 없다. 더운날 축제의 든든한 버팀목.

 

사진에 담긴 서포터는 독특한 컨셉으로 눈길을 끈다. 아무래도 욕조 비스무리한 걸 통째로 떼어온 듯 한데

공돌이 기질이 있는 건지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다. 리어카 하단부에 모터라도 달린 걸까.

 

 

 

초등학교 학생 학부모 팀인 듯 한데, 아이들이 정말 신나게 노래부르며 춤추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묘하게 촌티나는 듯한 마츠모토 봉봉 노래도, 1시간 넘게 계속 반복되니 의외로 흥이 나고 리듬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은 더욱 신명이 날 듯.

 

처음에 어색해 하던 사람도 익숙해 질 수록 더 크게 소리도 질러보고 동작도 크게 휘둘러 보고 하면서

그렇게 축제에 점점 물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는 개념도 상당히 중요한 점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가득한 곳에 젊은이들이 가서 춤추기도 어색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기본적으로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긴 한데, 요즘엔 축구가 무섭게 차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한국은 월드컵 열풍 후 국내 리그는 그만큼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일본은 매년 팬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한다.

 

저 유니폼 입은 그룹 역시 어느어느 축구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인 듯 한데, 응원에 익숙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우렁차다.

춤 추는데 목소리가 왜 필요한가 싶을수도 있지만,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노래의 후렴구에 '봉봉~' 이라는 후렴구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 때는 도시 전체가 따라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참고로 '봉봉'이란 마츠모토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어린 여자아이의 행사.

실제로는 죽은 사람들의 영령을 달래는 애상깊은 행사였는데, 40여년 전부터 나가노현이 마을 부흥을 목적으로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런 식의 축제를 기획할 당시 마츠모토에서 잘 알려진 '봉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더욱 참고로 '봉봉'이라는 여자아이의 행사에 대응하는 남자아이의 행사는 아오야마사마(青山様) 라고 하는데

현재 마츠모토 봉봉 축제의 주제곡은 여성 가수 한소절 남성 가수 한소절로 돌아가며 부른다. 이 역시 유래된 행사에서 파생된 것.

 

 

 

축제 참가자들이야 각자의 유니폼이 있으니 딱히 튈 일은 없지만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또 그네들 나름대로 화려한 의상쇼를 즐길 수 있다.

 

아이들이야 뭐, 부모들이 정성들여 입혀놓은 유카타로 공주님이 되는 날이기도 하고

5살 정도 되어보이는 금발 외국인 여자아이가 유카타 입은 모습은 이쪽에서 대단한 화제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물 쳐다보듯이 '귀여워~'를 연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청법이라는 개똥때문에 겁날만한 일이겠지만.

 

젊은 처차들도 이런 날 아니면 언제 한번 뽐내보겠느냐고 청초한 유카타에서부터 미니스커트 퓨전 유카타까지 한껏 멋부리고 왔다.

사람들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영 익숙하질 않은데다가, 이 정도 활발한 축제에서라면 사진 좀 찍자고 말 걸어도 크게 문제 없을듯 한데도

본인은 성격도 그렇고 실제로 흥미도 별로 생기지 않고 해서 그다지 담아온 게 없다.

 

 

 

춤을 추는 사람들과 때로는 순방향으로, 때로는 역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는 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길을 건널 수 있는 시간은 춤이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춤이 진행되는 30여분간의 시간동안은 자신이 속한 블럭 밖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축제라는 게 어디 그렇게 스스럼없이 진행되는 것일까. 축제가 가지는 본질적 야성은 일본이 한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

쉬는 시간이 될때마다 본부석의 마이크에서는 쉴새없이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을 읊어대고 있다.

춤 추고 있는 사람들 중간을 가로질러서 길을 건너는 일은 부디 삼가해 달라고. 자칫하면 사고의 위험성이 있단다.

 

하지만 본인도 이제껏 한 시간 반 가까이 정말 수도 없이 보아온 광경이라 좀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 모양.

것도 당연한 게, 축제를 즐기러 왔지 가만히 서서 춤만 바라보라고 온 게 아니니

30분 가까이나 자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좀처럼 참기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양심은 있어서, 노래와 노래 사이의 간주 부분 잠깐을 이용해 후다닥 달려가곤 한다.

한두 사람이라면 이 정도 배려로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마츠모토 시내에 마츠모토 인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이 축제에서는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무단횡단을 막아보려고 노력하는 중.

 

 

 

인파에 휩쓸리다가 우연찮게 메인 루트와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다리를 건너서 좀 더 가면 마츠모토 성이 있는 거리인데, 오늘 축제의 메인 이벤트장이 역 앞과 성 앞이라

잘못 갔다가는 피눈물이 흐를 수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마츠모토는 많은 미술관과 예술 공연 등 문화의 도시로 유명한 곳인데

그 중에서도 내가 인상깊었던 곳은 저기 노란색 건물이다. 시계 박물관이었는데 이곳 부유한 지주가 자비로 모은 콜렉션을 전시한 곳.

입장료도 싸고,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상업적인 용도가 아니라면 괜찮다고 말씀까지 해 주시는 친절함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다.

 

개인이 모았다고 하기엔 신빙성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콜렉션이 소장되어 있는데

예전의 잘나가는 일본의 부자는 취미활동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편이었나 보다.

 

시끌벅적한 축제와는 별개로, 시냇가에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혹은 끈적끈적한 연인들이 보인다.

시끄럽고 복잡한 축제일수록 이런 순간의 한적함이 더욱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아직 한참 남았으니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저 멀리 다리에 보이는 노점상가 쪽으로 이동해 본다.

가게들이 꽤나 길게 줄지어 서 있으니 뭐라도 맛있는 군것질거리 하나 입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런데 너무 멀리서 보는 바람에 실수했다. 마츠모토 성과 너무 가까운 곳까지 와 버렸던 것.

이곳은 야외공연장도 설치되어 있고, 여하튼 인도와 도로의 구분까지 불가능할 정도로 인파가 몰려 있다.

 

휴식시간이긴 한데 이미 이동 자체가 힘들 정도로 사람이 가득가득하다.

이런 인파 속에서도 길 가다가 이웃 주민 만나서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창설된 축제가 이제는 마을 사람들끼리의 친목 도모로도 훌륭히 작용하고 있는 듯.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도로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증거사진이라도 남기자고 생각하며

손을 최대한 높이 들어서 한 장 찍어본다. 운이 좋아서 광각렌즈가 마운트 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찍을 수 있었다.

 

 

 

어차피 4시간 동안 질리도록 춤추는 축제인데, 저 멀리 이벤트장에서는 또 댄스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창작무용이라고 할까, 남녀 둘이서 시시각각 변하는 기묘한 비트에 맞추어 예술적인 춤을 피로하고 있는 모습은

봉봉 댄스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니 공통 분모로 묶을 필요는 없겠지만.

 

프로급의 댄스 실력을 가지고 있는 팀들이라,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재밌게 구경해 보겠는데

이미 마야 문명의 벽돌만큼이나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는 인파의 벽 때문에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한다.

 

 

 

이렇게까지 혼잡한 곳이라도 다시 댄스 타임이 돌아오면

어찌됐든 구경꾼들이 인도로 밀려나가고, 스무스하게 춤으로 돌아가는 묘한 풍경이 연출된다.

 

휴식시간 도중엔 중앙 안내소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을것 같은 것이, 쉴새없이 미아가 된 아이들 부모를 찾고

쓰레기 버리지 말아달라고,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지 말아달라고 호소를 쏟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쓰레기는 확실히 거의 버리지 않고, 버리더라도 회수율이 높아서 도로가 더러워지지 않는데

춤 추는 도중에 길 건너가는 행위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는 듯 하다.

 

자동차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지, 스스럼없이 지나간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30~40분동안 기다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고 하면 지킬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

 

이제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별다른 사고 없이 무난히 끝나길 바라며 행렬을 따라 슬금슬금 이동해 간다.

 

마츠모토는 나가노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참 아담한 도시로 기억되기 쉬운데

숙박, 식사, 관광 등 모든 즐길거리를 역 주변에서 도보로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

 

국보 마츠모토 성도, 빈지티 시계를 모아놓은 박물관도 모두 도보로 15분 이상 걸리지 않는다.

경기가 그렇게 좋진 않아도 여전히 넉넉한 숙박시설과 온갖 패스트푸드에서 고급 음식점까지 충분히 갖춰져 있고.

나가노현은 고원 목장에서 말을 많이 기르는 곳이기도 해서, 바사시(馬刺し)라고 하는 말의 육회도 유명하다.

 

거의 모든 호텔이 역 근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걸어서 10분인 토요코 인은 오히려 다른 호텔보다 먼 편.

그렇지만 4시를 넘어가니 벌써부터 주위가 왁자지껄해 지는게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마츠모토 시내 도로 전체를 보행자 천국으로 만든다고 했는데,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 모일런지 궁금했다.

 

축제 시작 30분 전에 장비 챙기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 축제는 본인이 상상했던 것과 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봉오도리라 불리는 일본의 축제는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오봉(お盆)에 추는 춤이 축제로 발전된 것인데

회장 중앙에서 마을 남녀노소가 강강수월래처럼 빙글빙글 돌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축제에 먹을게 빠질 순 없으니 주위에 여러 장터가 생성되고

보통은 춤추는 사람이 30% 정도, 나머지는 구경하고 군것질하고 연애하고, 가끔씩 행렬에 들어가서 춤추고 나오는 식.

 

봉오도리는 축제의 분위기에 따라 댄서(?)들의 의상도 바뀌는데

팔의 스냅을 이용한 소박한 춤은 가랑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 유카타를 입고 사박사박 움직이는게 일반적이지만

남자들이 많이 참가하는 박력있는 춤의 경우엔, 적당히 전통과 현실을 타협해서 반바지 비슷한 녀석을 입고 펄쩍펄쩍 뛴다.

위의 의상이 좀 과격한 봉오도리 축제에 사용되는 녀석.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닌 이곳 마츠모토 시내 도로를 전부 통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본인 머릿속에는 '구역별로 팀이 몇개씩 있어서, 각각의 덩어리를 이루어 돌아다니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축제 시작 전 처음으로 보게 된 대기자들의 모습은 상상과 크게 다르다.

팀이 나누어 진건 사실이다. 적게는 10명 정도, 많게는 100명이 넘는 팀들 대부분이 회사 직원이나 상점연합의 직원들.

물론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도 와 있고, 대학교 동아리 팀들도 특색있는 복장을 하고 대기중이다.

 

내가 저지른 제일 큰 착각은 이 대열의 길이였는데, 덩어리 덩어리져서 끊어진다기 보다는

이 모든 팀들이 마츠모토 시내 도로 전체를 꽉 매우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쉽게 말해 축제 코스 전체가 사람으로 꽉 차 있고, 시작점과 끝이 없이 원형으로 계속 이동하며 돈다는 것.

 

1년에 한번 있는 축제라고 해서 규모가 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전거 여행중 즐겼던 아오모리의 네부타(ねぶた) 축제가 규모면에선 단연 큰 축제지만

거기는 사람보다 거대한 네부타 모형이 주가 되는 축제고, 오직 사람 몸만으로 즐기는 축제 중에서 이렇게 규모가 큰 녀석은 처음.

 

의외로 젊은 층의 참가도 굉장히 두드러지는데, 그 일본의 젊은 층들이 당당하게 춤판에 나온다는게 참 신기하다.

특히 뒷머리에 하츠네 미쿠 달고 다니는 저 사람은 더더욱.

 

 

 

이 사람들에게 축제는 공동체 유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조금만 삐끗해도 광란의 아포칼립스가 펼쳐질 이런 축제에도 굉장한 결속력을 보인다.

참가 팀이 수십 개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의상이 단 하나도 없다.

이건 분명히 참가신청 할때 의상 디자인까지 전부 공개에서 겹칠 염려는 없앴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 전부터 사람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 도로가 통로가 되고 원래 인도였던 곳은 군것질거리 가게가 차지하고 있다.

나처럼 축제 자체만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어서, 거진 1:10 정도의 비율로 구경과 참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앞에서 즐겁게 기념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맥스 밸류'라는 체인점 직원들.

 

맥스 밸류는 한국의 그마트와 비슷한 대형 슈퍼로, 여행하면서 이런 대형 몰에 접근성이 보장된다면 그건 땡잡은거다.

비싸고 맛난 가게만 찾아다니는 여행이라면 별 의미 없지만 나처럼 하루에 한두 끼는 꼭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헝그리 여행자들에게는 신의 은총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음료수, 간식, 도시락 등등 모든 먹거리가 편의점보다 압도적으로 싸다.

 

맥스 밸류 정도만 되어도, 콜라 1.5L 한 병에 98엔, 한국 돈으로 1천원이면 살 수 있고

한국에서 5천원은 족히 받을만한 빵빵학 도시락도 180엔이면 충분하다. 저녁 떨이시간이라면 100엔에도.

 

 

 

축제란 게 전통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특성상 전통에 대해 많이 관대하기도 하다.

잘 차려입은 전통 의상도 있는 반면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아이들과 함께 준비중인 팀 역시 보인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지만 일단 검은 셔츠에 핫팬츠 비스무리한 옷으로 통일한 여자사람들은

나보다 늙어보이진 않아도 대부분 애 딸린 유부녀인듯 하다. 그냥 동네 미시 동호회 같은 것인가.

 

 

 

힘이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야 판만 벌여주면 알아서 뛰어 노는 법이겠지만

울 엄니보다도 확연히 연세를 더 드신 분들이 같은 의상 입고 가지런히 정렬해서 출발을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축제의 순기능 중 가장 멋진 것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39년 전 마츠모토 봉봉 축제가 처음 시작되던 때 부터 춤을 추던 아가씨가 여전히 이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

자발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인 여건이 마련되어야 가능한 이런 대규모 축제는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웃간 네트워크가 완전히 무너지고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만 붙잡혀 있어야 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강변에서 술판 벌이고 흥겹게 춤추는 아줌씨들의 모습이 이거보다 더 가치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문제는 대규모 축제에서 필연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웃, 동민, 구민, 시민들간의 연계감을 전혀 발전시킬 수 없다는 것.

이런 축제를 한국쪽에서 보며 툭하면 나오는 소리가 '단체의식 쩐다'느니 '쌓인게 많으니 저렇게 놀지'라느니 하는 말인데

한국처럼 철저하게 고립화 된 사회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거 참 신기하긴 하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나왔다기보다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춤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들 보니

이 축제가 정말 재미있긴 재미있나보다. 확실히 옆에서 구경하는것보다는 직접 뛰어드는게 축제의 참맛이긴 하다.

 

도로엔 축제 참가자들, 인도엔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방향 감각도 잃어버리고 촬영 스팟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프레스 자격증을 가진 기자들은 개인용 사다리까지 들고다니며 사진 찍을 준비에 한창이다.

 

확실히 건물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이 정도 인파를 제대로 담으려면 사다리가 필요할 듯.

물론 본인은 프레스가 아니니 그런 거 써가며 통행을 방해할 수는 없다.

DSLR 모양을 하고 있지만 LCD 라이브뷰 촬영이 가능한 모델이니 그냥 손을 위로 쭉 쳐들고 찍어보는 수 밖에.

 

 

 

이런 곳에서는 워낙 사진찍는 사람이 많으니 부담을 좀 덜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축제 속에서도 한두 사람만 클로즈 업으로 잡아내는 건 좀 부담스럽다.

사진에 사전허가가 필요하다면 매체가 가지는 속성의 태반이 무의미해 지긴 하겠지만.

 

이런 대규모 축제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담아야 할지 조금 난감하다.

지금이야 해가 지지 않았으니 망원으로도 어지간히 버티고 있지만

밤이 되고나면 어두운 조리개값을 가진 망원으로 활발히 춤추는 사람을 잡아내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필연적으로 광각이나 50mm 렌즈를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이라도 망원으로 좀 잡아보려 한다.

 

 

 

마츠모토 역 앞에는 본부가 마련되어 있나보다.

도로 옆 스피커에서 들뜬 듯한 여성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인파때문에 이동이 힘들어, 거의 숙박하는 호텔 앞 도로에 박혀있는데

마츠모토 역 앞이나 마츠모토 성터 앞에는 따로 이벤트장을 마련해 두고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축제는 어마어마한 인파의 홍수를 구경하는 맛이니, 딱히 이벤트장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높으신 분의 이야기가 대충 끝나고 슬슬 축제의 시작이 다가오는데, 첫 환호성을 생각만큼 열정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축제라는 건 시간에 흐르면서 점점 달아오르는 불판 같은 녀석이니

아직 달아오르기 전의 시작 환호성은 역시 약간의 어색함과 우물거림이 뭍어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 같은 경우엔, 세상물정 모르는 참가자들이 첫 스타트때 아주 미친듯한 아드레날린 분비를 경험하지만

몇 시간만 뛰다 보면 에라이 F 같은 세상 하면서 고통에 찬 레이스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장면.

 

 

 

바글바글한 마츠모토 시내 전체에 울려퍼지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뭔가 동작을 취한다.

익숙한 건지 연습을 한 건지 전혀 스스럼없이 동작을 이어가는데

여느 봉오도리 음악과 달리 뭔가 마징가Z 오프닝을 듣는 듯한, 묘하게 촌티나는 음악이 반복 재생된다.

 

시작한지 39년 째라고 하니 역사적 의미가 있는 축제는 아니겠고

그 당시 만든 음악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거 아닌가 싶다.

음악 나오면 실실 쪼개는 현지 사람들이 있는걸 보면 쫌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닌 듯.

 

마츠모토 봉봉의 음악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으니 흥미가 동하는 사람은 한번 들어보는 것도.

 

 

 

아이들은 반응이 명확해서 좋다. 어른들은 대부분이 회사나 상가연합 소속의 참가자들이라

한국보다 훨씬 고착화된 사회적 입장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발휘되다 보니

어른들의 얼굴은 미우나 고우나 웃고 즐겨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한데

아이들은 반쯤 그냥 따라나와서 시간이나 때우는 무료한 얼굴, 나머지 반은 상당히 재미있어 하면 손동작을 크게 휘두르고 있다.

 

참가 인원만 약 3만명, 관광객까지 모두 합하면 20만명이 넘는 대규모 축제라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꿈틀꿈틀 움찔움찔하며 슬금슬금 이동하는 모습은 뭔가 살아있는 생물체같은 느낌을 준다.

폄하의 의도는 없고, 왠지 문득 유명 SF 소설 '듄'의 샌드웜이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나가노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규모가 큰 축제라고 하니

외국인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실 나 역시 외국인이고.

 

원래 예정대로라면 이 날 키소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이런 축제는 있는줄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

규모를 보니 '놓치면 아까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키소 여정을 연기한 소심쟁이가 용납되는 건 아니라 본다.

 

 

 

춤도 대낮 광장에서 혼자 발광하는 것 보다

어두운 나이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비부비 하는 것이 훨씬 마음 가볍고 흥겨운 것 처럼(본인은 경험이 없어서 그냥 그렇다고 말만 들었지만)

아직 주위가 많이 밝아서 사람들의 리미터가 해제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든다. 살짝 어색한 느낌이 동작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곳 단체들 상당수는 지금도 '참가자 모집중'이라고 푯말을 들고 다니는데

이런 축제는 참가자 제한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구경하다가 재미있겠다 싶으면 그냥 뛰어들어가 인사 하고 같이 춤추면 된다.

그리고 각 팀마다 반드시 후미에 커다란 박스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반은 팀원들이 중간중간 마시는 음료수들이고, 절반은 쓰레기 담기 위한 통이다.

 

 

 

준비성이라고 할까, 시민의식이라고 할까.

동작이 그렇게 화려한 춤은 아니지만 어쨌든 4시간 동안 계속되는 축제인데다

자정이 넘어도 좀처럼 30도 이하로 내려갈 생각을 않는 8월의 살인적인 더위에

조금이라도 팀원들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아이스박스나 얼음 가득 채운 박스 등을 준비한 모습은 감격스럽다.

 

사실 축제 시작하기 전에 사회자가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쓰레기 나오지 않는 멋진 축제를 만들어 보자는 문구였으니.

관광객들 중에는 근처 마을에서 놀러온 사람이나 외국인 관광객도 있지만

아웃사이더 티를 내고싶어서 견딜수가 없는 중2병 양아치들이나, 여자나 좀 꼬셔보려고 두리번거리는 녀석들도 많이 있어서

인도에 가끔 보이는 쓰레기는 아마도 그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것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점 하나는, 축제에 참가해 춤을 추는 팀원들은 절대로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 않는다는 점.

 

 

 

팀들이 대열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하는 형식이라서

이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어쨌든 참가 팀은 다 둘러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춤을 추는 건 꿈도 꾸지않는 소심한 본인이라도, 그렇게까지 지루한 축제를 보낼 수는 없다.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좀 어리둥절하지만, 봉봉 댄스에는 전혀 관심없이 맛있게 군것질중인 사람도 있는 걸 보면

뭘 하든 자기가 즐기기만 하면 만사 OK 라는게 축제의 본질이라는 느낌이 세삼스럽게 든다.

이미 이 사람들에게는 봉봉 댄스가 그렇게 희귀한 볼거리도 아닐테고 하니

축제를 핑계로 꼬치구이와 맥주를 즐기는 한량틱한 모습 역시 축제의 일부분이라 할 만 하다.

 

원래 봉오도리에서는 여성의 춤이 주를 이루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춤을 이어나가려면 자연스럽게 이동폭이 좁게 설정되는 편.

 

특히 마츠모토를 가득 채운 이 행렬은 마치 군대 행군과 같아서

실수로 대열간 간격이 조금 흐트러지면 다음 노래에서 100m 스퍼트 하듯이 튀어나가야 하는 부분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이건 노래와 춤의 특징이기도 한데, 마츠모토 봉봉에 쓰이는 안무는

2분 남짓한 노래의 특정 부분 몇 초 구간에서만 앞으로 서너 걸음 전진하도록 되어 있고

나머지는 거의 흔들흔들하면서 한두 걸음 갈까말까 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앞 팀과 거리가 벌어지게 되면 그 몇 초 구간에서 아주 튀어나가야 하는 재미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점프로 마무리가 되는데, 2분 남짓한 짧은 노래가 약 30분간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그리 체력을 요하는 동작이 아니라고 해도 전혀 힘들지 않은 수준은 아니다.

 

특히, 30분 춤춘 후 5분에서 1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춤을 추는데, 이걸 4시간동안 반복하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축제란 몸이 힘들고 목이 마르고 끝이 다가올수록 점점 그 야성적인 본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분명 뒤로 갈수록 카메라를 잡은 나의 손은 떨리겠지만, 부채를 흔드는 팀원들의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활기가 보이겠지.

 

공기좋은 곳에서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푹 자고 조식 맛있게 먹고 하니 기분이 상쾌하다.

여행중 호텔 조식이 맛있으면 보상 심리 덕에 좀 많이 먹게 되는데, 이게 돈은 아낄 수 있지만 여행에는 좀 불리하다.

아침부터 점심 너머까지 배가 든든하다보니 여행지에서 뭘 한번 먹어보려고 해도 배가 불러 포기하는 일이 많으니.

 

자전거 여행때는 그야말로 먹을 게 보이면 일단 입에 집어넣어야 살아남는 시절이었으니

가끔 비지니스 호텔 들어가서 조식 먹을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 시선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아주 무식하게 먹어대곤 했다.

되려 그 시절이 정말로 먹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실감할 수 있던 시절이라는게 삶의 아이러니가 아닌지.

 

오늘 루트는 좀 복잡하다. 현재 히다 타카야마와 목표지인 키소(木曽)라는 마을은 직선거리상으론 그렇게 멀지 않은데

이 두 마을을 잇는 어떤 전철이나 버스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안내소에도 물어봤지만 이곳에서 키소로 가는 방법은 사실상 약 2배의 시간을 들여 마츠모토(松本)까지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타카야마와 키소, 마츠모토는 지도상의 위치를 이어보면 삼각형의 꼭지점 같은 형태가 되는데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까지 버스를 3시간 가까이 타고 간 다음 다시 마츠모토에서 전철을 타고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이런 극도로 비효율적인 이동수단을 통해야 갈 수 있는 지역은 선택의 범위에 넣지 않았겠지만

본인의 이번 목적은 사실 이제까지의 모든 볼거리가 아닌, 키소에 가는 것 단 한가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버스 출발시간 30분 전에 호텔을 나와서 역으로 걸어간다. 여전히 하늘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예술이다.

 

 

 

버스 기다리면서도 시간이 남아 황홀한 하늘을 좀 더 담아본다. 오른쪽에 새 한마리는 우연히 들어왔는데 멋지게 날고 있다.

 

이번 목적지인 키소 마을은 예전 일본의 수도였던 쿄토와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잇는 내륙도로인 나카센도(中仙道)의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 중 만난 학생 한 명과 여차저차해서 인연이 만들어져, 그쪽 집에서 세 달간 머물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곳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년동안 꾸준히 한국 과자나 김 등을 연하장과 함께 보내드리곤 있었는데

이제 슬슬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여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연락도 하지 않고 그냥 일본으로 건너온 것.

서프라이즈라고 할까, 괜히 간다고 미리 연락해 놓으면 본인들 예정까지 변경해가며 나를 맞이할 것 같아서

아무 연락도 없이 그냥 이동중인데 이건 이거대로 또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마츠모토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는 지금, 왠지 생각만큼 기분이 들뜨지 않는건 어째서인지.

 

 

 

히다 타카야마가 참 험한 곳이라, 나고야같은 해안쪽 대도시와의 연계는 그럭저럭 되어 있어도

일본에서 가장 산세가 험한 나가노현 쪽으로 통하는 산속 도로는 만든지도 오래 되어서 아주 스릴이 넘친다.

 

끝도없이 올라가다가 터널 빠져나오니 강원도 깊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꼬불꼬불한 도로가 이어진다.

만들어 놓은 건 좋은데 2차선 도로 폭이 너무 좁아서, 버스 정도 크기의 차량이 커브를 틀 때는

사실상 반대선 차량들이 멈춰서야 할 정도로 순간순간이 스릴의 연속이다.

 

당연하겠지만 어느 쪽 차선이나 속도는 20~30km 를 넘지 않는다.

버스나 트럭의 이동도 무시하지 못할 이곳에서, 한국처럼 객기부리며 쌩쌩 달렸다간 대자연의 품으로 뛰어들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해발 1000m 가 넘는 이런 도로에 보행자용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 건 참 놀랍다.

저 길이 있으면 아무리 도로가 좁아도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으니, 나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모습. 애초에 이 높이까지 올 일이 없긴 하지만.

 

험한 곳인 만큼 풍경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장관이다.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지만 도통 셔터를 누를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중간에 유명한 온천 지역이 있어서 버스가 멈춘다. 이곳에서 내려 여관 등으로 이동하는 관광객도 많다.

험하디 험한 길임에도 아침부터 사람들오 왁자지껄한 것이 놀랍다. 주변에 경치와 온천, 멋진 여관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한데.

10분 정도의 정차시간에도 이 풍경을 남기지 않고 떠나기는 아쉬워 서둘러 달려나가 적당한 포인트에서 셔터를 눌러본다.

 

겨울엔 원래 스키장으로 나가노 전체가 들썩이곤 했는데, 동계올림픽 끝나고 점점 스키인구가 줄어들어 요즘엔 힘든 상황이라고.

 

버스로 이동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은, 일단 그것만으로도 점수 충분히 따는 여행이다.

유럽 기차여행이 그래서 나름 재미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버스타고 이렇게 시간 잘 가는 여행은 참 오랜만.

 

 

 

히다 타카야마에서 마츠모토로 가는 길은 오래된 구 도로가 많아 현대의 버스가 다닐만한 길이 아니다.

도로 전체 최고시속이 30km 정도에, 버스 정도의 크기라면 중앙선과 바퀴가 거의 맞닿을 정도로 폭이 좁은 2차선이라

터널을 통과할 때는 맞은편 차하고 스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것도 터널이 어찌나 긴지, 10km 가까이 되는 길이에 저속으로 주행하는 버스 안에서는 왠지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동류의 버스나 비슷한 크기의 트럭, 레미콘 차량이 서로 마주쳐 갈 때로,

반드시 한 쪽이 완전히 정차를 하고 나머지 차량이 기어서 빠져나간다.

같은 버스기사던 트럭 운전자던 운전석끼리 스칠 때는 인사 한 번씩 하고.

 

산골이라 그런지 이런 운행방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인가 보다.

 

말로 하기 어려운 꼬부랑길을 통과하니 꽤나 해발이 높은 곳인데 호수가 만들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풍경을 본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십중팔구 댐 때문에 만들어 진 인공호의 결과물.

수표면이 너무 올라와 있어서 이 부자연스러움은 단연 인공적인 어색함을 느끼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적응력이라고 할까, 흉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묘한 특징이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렇게 원래 물길이 있던 골짜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마을이 들어서 있기에

댐을 건설하면 물 속에 잠기는 인간의 흔적이 꼭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은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마츠모토 근처에 다가오면 그 험하디 험한 산과 터널이 싹 사라지고 상당히 넓은 평야가 드러난다.

나가노 현은 거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이라 큰 도시가 들어서기 힘든 지역.

산맥 사이사이에 생성된 평야에 들어선 도시가 나가노 시와 마츠모토 시다.

 

인구는 현청소재지인 나가노 시가 조금 더 많지만 그래봤자 두 도시 합해도 50만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츠모토 쪽이 교통, 도시계획적인 면에 있어서 유리한 점이 많아 나가노보다 상업지구가 더 발달한 편이다.

 

두 도시 모두 각각 국보를 한 가지씩 갖고 있어서 묘하게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마츠모토는 현존하는 몇 안되는 오리지날 천수각을 가진 마츠모토성, 나가노에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인 젠코지.

 

자전거 여행때 홋카이도에서 만난 소야노라는 이름의 소년은 당시 17세로, 고등학생이었다.

외국에 혼자 떨어져 나왔으니 1년 채울때까지 바락바락 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본인과 달리

나가노현의 키소(木曽)마을이 고향인 소야노는 슬슬 학교 과제물과 개인적 활동 몇 가지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홋카이도를 거의 다 돌아가던 당시의 나는, 자기 두 발과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제패한다는 목적 같은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냥 여행하지 않을 때의 자신보다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 이 소년 집에 따라가서 잠깐 머물러 보는 경험도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애를 따라 버스를 10시간이나 타고 도쿄로 내려간 적이 있다.

 

자전거 여행에다 승차 직전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정말 토가 올라올 정도로 악취 풍기는 사내 두 명이

버스에 처박혀 10시간이나 이동했으니, 자전거 여행 당시 만들어진 죄책감의 8할은 거기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쿄에서 소야노 군의 할일을 마친 후에 키소의 집안에 초대되어 마음껏 휴식을 취한 후

모자란 자금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으며 자주 들렀던 곳이 이곳 마츠모토.

 

키소 마을은 정말 작은 시골이라 마땅한 바이트 자리가 없기도 했고, 마츠모토와 나가노는 의외로 재일한국인이 굉장히 많이 사는 곳이라

한글간판을 내건 고기집도 있고 여러가지 눈에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게 바이트가 구해지진 않았다.

 

당시에 심심하면 전철 1시간 타고 도착하던 이곳 마츠모토역 앞의 풍경을 2년만에 다시 보게 되니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

 

 

 

그러고보니 자전거 여행 당시 머물렀던 때도 이만큼 더운 날이었다.

마츠모토역 전광판에 '38도' 라고 찍힌 모습에 아연실색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34도 정도. 그래도 덥다.

 

타카야마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여기서 키소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역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왠지 멍하니 건널목 앞에 서서 예전에 자주 신세기던 맥도날드 앞에 서 있다.

이 맥도날드는 소야 군이 학교 가러 마츠모토에 갈 때 바이트 자리 찾는다고 함께 따라와서 시간 좀 보내던 곳.

 

2년 전과 크게 변한것 없는 역 앞 풍경이지만 축제를 알리는 등이 곳곳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도 축제인가 싶다.

 

마츠모토 역 3층의 티켓 판매소까지 올라가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는다.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키소 마을에,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인사하러 한국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한 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만나러 가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

 

이렇게 찾아가면 반가워 할 것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인데도, 내 마음 속에서는 항상 '추억은 추억으로'라는 본능이 내제되어 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과 동시에 추억으로 미화된 과거와 현재와의 어색한 괴리를 체험하고 싶지 않으려는 도피 본능이 심한 편.

 

 

 

소소한 이유야 얼마든지 있다.

 

괜히 미리 준비하는 부담 끼치기 싫어서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오는게 되려 실례는 아닌가.

오늘 가게되면 스케쥴상 이틀간 머무르게 되는데, 갑자기 찾아가서 이틀씩이나 머무르게 되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진다.

실은 부담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 3달간의 홈스테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만,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만큼 폐쇄적이라는 의미일지도.

 

소야 군 집안 사정상 아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을 해도

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괜스레 자기 내면의 문제를 밖으로 전가시켜서 변명하는 이 기분도 싫다.

 

가끔 생각하길, 정말 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사교적으로 예전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행동조차, 블랙홀처럼 안으로부터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애쓰는 발버둥처럼 느껴진다.

어떤 곳 어떤 시간에 있어도 결국 혼자이고 싶어하는 미친 놈인가 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생각하며 전철 시각표를 멍하니 쳐다본다. 키소 마을까지 가는 열차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온다.

 

한숨 푹 쉬면서 마츠모토 역 안을 한바퀴 둘러보다가, 뒤쪽 관광안내소에 떡하니 붙어있는 '마츠모토 봉봉'이라는 축제 문구가 들어온다.

좀 전 거리에 장식된 호롱등 행렬은 저 축제를 위한 것이었나 싶다. 광고를 의외로 크게 하는 바람에 흥미가 동해 안내소로 들어간다.

 

안내원에게 저 축제가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것도 모르나' 라는 얼굴로 설명을 해 준다. 중간에 외국서 왔다고 하니 이해를 하긴 했지만.

마츠모토 봉봉(松本ぼんぼん)이라는 축제는 올해 39주년을 맞이하는 나가노현 최대규모의 축제로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마츠모토 시내 모든 도로를 전부 보행자 천국으로 바꾸고 200여개가 넘는 기업, 단체와 그룹별 참가자들이

특유의 오리지날 음악에 맞추어 대열을 유지하며 춤 추고 행진하는 축제라고.

 

광장 중심에 모여서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대표적인 일본의 축제인 봉오도리(盆踊り)와 비슷한 형식의 축제지만

매년 8월 첫째 주 토요일, 1년에 단 하루만 개최하는 엄청난 규모의 춤추기 축제인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안내소 직원 아가씨는 설명을 다 듣고 내가 내쉰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갈팡질팡하던 마음에 형식적으로나마 못을 박아줄 이유가 생긴다는 것은

부단함을 떨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반면

어느 방향으로든 책임전가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진취성은 없는 변명거리일 뿐이다.

 

사실 외국인 여행자의 입장에서, 1년에 한번 이루어지는 큰 축제에 정말 우연찮게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그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결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얼마나 큰 여행의 추억이 될 것인가.

 

하지만 지금 본인은 축제따위에 별 관심도 없이, 만나러 온 사람과 만나기 꺼려하는 괴상망칙한 심리상태에서

조금이나마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방편의 하나로밖에 그 일반론을 이용해먹을 뿐이다.

 

생각해보니 마츠모토는 나에게 있어서 항상 도피처였다.

 

소야노 집안은 진실성과 순수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가족임에도

나같은 대인기피증 인간이 때로는 견디기 힘든 삶의 흔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끔 답답해지면 별 시덥잖은 이유를 대며 전철로 한 시간이 넘는 이곳 마츠모토까지 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 2년 전과 변하지 않은 건 이곳 마츠모토의 풍경이 아니라 나의 내면이라는 사실에 괜히 씁쓸해 진다.

 

일본에서 가장 물이 깨끗한 곳이라고 소문한 마츠모토라 마을 곳곳에 예전 우물터가 아직도 사용중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키소도 마찬가지라서, 그쪽에서는 생수를 사 먹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싱크대의 물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기만 해도 뭐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나 싶을 정도였으니.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여기 와도 방사능 걱정때문에 이런 우물물 떠 먹는데 주저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 본인은 오랜만에 마츠모토의 물을 한모금 떠 마셔본다.

이곳에서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가 2년 전의 그 여행과 연결되어 있어,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 나를 즐겁게도 괴롭게도 만들고 있다.

 

 

 

역 옆의 슈퍼 호텔에 들어가니 지배인 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표정 지어주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인데, 아주머니는 지도를 한장 주며 이 근처의 각종 비지니스 호텔들을 표시해 주신다.

 

사실 마츠모토엔 여러 번 와 봤기 때문에 시내 어디에 어떤 호텔이 있는지는 거의 다 알고 있지만

성의가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한 후 소중하게 지도를 들고 나온다.

 

그러고보니 오늘 축제라 쉽게 숙소를 구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역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토요코인 호텔엔 빈자리가 있었다.

나쁜 위치는 아닌데, 카운터 아가씨가 참으로 무표정한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일까.

좀 전의 슈퍼호텔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차가운 태도라 별로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가 짐을 푼다.

 

2시간 정도 쉴 시간이 있는데, 머리가 여러가지 생각으로 어지러워서 쉬기가 어렵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도시락을 사 와서 먹어둔다. 늦은 점심이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일부러 먹어두는 것은 축제가 열리는 시간 동안엔 정말 뭐 사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도피든 뭐든 어쨌든 내일 키소로 가는 것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니

빨리 마음속의 죄책감을 지워버리고 축제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4시 30분쯤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도로를 점거중이다.

도시 전체가 보행자천국이 된다는 설명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는데

막상 어마어마한 인파를 직접 보고나니 이 축제의 규모가 비로소 실감나 머리에 피가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확실히, 갔던 곳을 또 가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좀 전에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도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양쪽을 두리번거리며 어지럽게 돌아다닌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얼핏 기억으로는, 좀 전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느낌이 든다. 축제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처음보다는 많이 적혀있는 듯.

신사에 봉납하는 에마 모양의 낙서장인데 아이디어는 좋다고 본다.

아무데서나 낙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배출구를 마련해 주는게 누이좋고 매부좋은 것이니.

 

 

 

에마에 소원적는건 역시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듯 하다.

아직 살 날도 창창하고 하고싶은것도 많을테니 적고싶은것도 많을테지.

늙은 사람은 이룰거 대충 다 이뤘거나, 이런 데 적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자각할만큼 인생 경험해 왔으니 그럴수도 있고.

 

덕분에 뭐, 이런 에마를 훔쳐보는건 나름 재미가 있다. 절실한 사람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많으니까.

평범한 소원에는 관심이 없어서 약 좀 빤듯한 소원을 찾아보는데, 왠지 타카야마엔 솔로가 많은듯한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가 청춘을 즐기고 싶어♡ 우햐~' 라고 수정선까지 넣어가며 적은 저차 3명에게 남친이 강림하시길.

 

 

 

일반적으로는 남자 비율이 높아서 여자가 남자 고르기 더 쉬운게 아닌가 싶은데

이곳 에마에는 이상할 정도로 여자쪽에서 남친 구하는 소원이 많다. 뭔 일일까.

 

BOB and RiN 이라는 여성도 남자친구가 갖고 싶다고 떼를 쓴다.

 

평범한 내용으로는, 축구가 인기 있는지 축구 잘하게 해 달라거나 대회 우승하게 해달라던지 하는게 좀 보인다.

 

 

 

1984년 8월 31일생 28세 남성은 욕심이 너무 많다.

 

지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가 잘나나기를 바라는 등, 타인을 배려하는 따스한 소원도 있긴 하지만

'엄마가 휴대폰 돌려주기를'이라거나 '빨리 일본에 카지노가 생기기를'이라거나 '언젠가 카나자와 경마장에 갈수 있기를' 따위의

묘하게 실현가능성이 있을랑 말랑 한 소원들을, 그 이전에 소원을 빌 필요가 있나 싶을 것들을 장황하게 적어놓았다.

 

카나자와까지 가는 버스비는 3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으니, 그냥 가면 안되나?

 

 

 

세계일주 하고싶다는 소원에서는 눈길이 멈출 수밖에 없다.

이것도 베르테르 효과처럼 전염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똑같은 세계일주 희망이 나란히 적혀 있다.

 

하지만 진짜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 희망과 염원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려나.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이상하다 이곳 에마.

아무리 찾아봐도 '여자친구가 필요해' 보다 '남자친구가 필요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어로 쓰인 문장까지.

 

물론 남자 여자 숫자만 맞는다고 덜렁 커플이 생기는건 아니겠지만, 여친이 필요하다면 일어 배워서 타카야마로 날아가는게 좋지 않으려나.

 

 

 

'가족 사이좋게 주욱 함께' 라고 적은 귀여운 아이는, 확실히 좋을 때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느 순간부터 그 가족들이 '빨리 좀 시집가'라고 밀어낼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번 에마에서 가장 스트레이트 소원은 저 '金'이다. 반짝반짝 빛난다.

 

 

 

에마를 구경하고 다시 길을 걷는데, 정말로 가게들이 거의 파장 분위기다.

이러다가 더 이상 먹을게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녀석이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지만 예전의 점보야키처럼 큰 녀석이고, 문어가 아니라 히다 소고기가 들어간 히다규 야키라고 한다.

 

고급 소고기의 맛을 살리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은 묘한 조합이지만, 어쨌든 혼자서 그 비싼 히다규를 먹을 생각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한번 맛을 볼까 싶어서 하나 주문한다. 타코야키와는 달리 접시에 간장과 파를 소스로 넣어준다.

 

속에는 히다규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타코야키와 달리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밑에 깔린 간장을 살짝살짝 찍어먹으면 나름 맛이 난다. 숙주나물도 들어가 있어서 식감도 나름 즐길 수 있고.

중요한 히다규는 예상대로, 이렇게 먹어봤자 맛을 음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타코야키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이 지역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녀석으로 체험해 보기에 나쁜 편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것보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많으니 반드시 먹어봐야 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다.

 

 

 

축제 거리의 끝부분까지 돌아왔다. 역시나 여기도 좀 전까지는 볼수 없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느 공연이나 아마추어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아도, 그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한 상승요건이 되는 곳.

 

라틴 전통무용 같은 춤을 보여주는 공연인 듯 한데, 네이티브도 있고 이곳 주민들도 섞여있는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어느 무용학원에서 나온 사람들 아닐런지.

 

 

 

밤이지만 날씨가 더워서인지 열정적이고 깔끔한 음악과 부채춤이 분위기에 녹아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뒤쪽에 서 있는 여성분이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데, 굉장히 파워풀한 음량이 혼자서 댄서들 전부와 동등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무대 앞에는 신발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돗자리가 있었지만 의외로 앉아있는 사람은 적고 옆에서 서서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나 혼자만 그런건 아니구나 싶어 약간 안도하는 기분. 왠지 무대 바로 앞의 자리는 부담스럽다. 돈 주고 보는 공연은 제외하고.

 

 

 

사실 앉아서 구경하면 카메라 화각이 너무 한정된다는 이유도 있다.

틸트 액정이 있어서 이럴 때 구도잡기는 편한 카메라라, 예전처럼 눈대중으로 촛점 맞추고 셔터 누를 필요가 없다.

사람이 여전히 꽤나 서 있어서 자리를 마구 옮겨다니기는 힘들어도, 나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장점.

 

마지막에는 돌아가며 공연하던 팀이 한꺼번에 나와서 즐겁게 춤추기 시작한다.

함께 추실분은 올라와도 된다고 안내를 해 줬지만, 역시나 이 틈에 끼어들어서 춤을 출 만한 용사는 그리 많지 않은듯 하다.

좀 더 격식없고 막가는 춤이라면, 의외로 축제하면서 신이나 발광하는 일본인들이 꽤나 많은데

이런 식으로 동작이나 의상이 정해진 무대에 난입해 기분에 따라 몸을 흔들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적은 듯.

 

 

 

마지막 라틴댄스 공연이 끝나자 축제의 열기도 함께 진정되어간다.

길지 않은 시간과 길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진 축제라, 사람들은 그다지 피곤한 기색 없이 즐겁게 원래의 길로 돌아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2차를 위해 술집을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교복입은 학생들은 슬슬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을 사람도 아니고 같이 여행온 사람도 없는 본인은, 그냥 아직 불이 켜진 공예점의 전시품이나 한장 찍고 숙소로 돌아간다.

예전 이즈모 여행때 들렀던 ANTWORKS GALLERY 정도로 흥미깊은 작품은 별로 찾을 수 없어서 살짝 아쉽다.

 

 

 

축제가 이뤄진 구간은 마을의 아주 짧은 한 구역만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벗어나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하니, 이미 마을 전체는 어둠에 파묻힌 시골마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

도심지가 아니라면 일본의 상점들은 늦어봤자 9시 전에 문을 닫아버리니, 축제 구역 이외에서는 이미 하루가 끝나 있었던 셈.

 

쓸쓸하지 않은 적막함이 바람처럼 흐르는 관광마을의 밤거리를 걸으며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오늘 오후 좀 더 많은 시간을 소유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술집 말고는 전부 문을 닫은 상가 거리지만 여전히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다.

축제의 인파가 진통제 역할을 한 것인지, 무뎌져 있던 피곤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 같아

밝은 가로수 아래서 음료수 하나 뽑아마시며 벤치에 앉아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 본다.

 

호텔에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왠지 호텔에 돌아가는 순간 남아있는 이 기분은 전소되어버릴것 같아서.

가정집 대문앞에 자연미 물씬 풍기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돌아가는 끝까지 흡족한 기분이 드는 것도 멋진 일이다.

과연 자연좋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미술 작품 재료를 고르는 것도 대담하다.

 

더운 날 호텔로 돌아오면 또 하나 즐길거리가 있다.

에어콘을 켜고 나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즐긴 후 수증기 가득한 욕조를 빠져나와 문을 열고 객실로 돌아가면

충분히 시원해진 방의 공기가 덥혀진 몸을 짜릿하게 만든다.

 

여기서 맥주 한캔 까서 마시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경이 되겠지만

본인은 술을 그리 즐기지 않으니 그냥 낮에 사놓은 콜라나 한잔 따라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밤이 좀 늦었지만 일본까지 온 이상 TV 프로도 좀 챙겨보고 싶어서 잠깐잠깐 몸을 뒤척이며 남은 시간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