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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10.08  히로시마 여행기 11편 - 미야지마, 미센의 주인들 4
  2.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9편 - 미야지마, 플라나와 함께 미센으로 4
  3.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8편 - 미야지마, 사망금지 4
  4. 2009.10.05  히로시마 여행기 7편 - 미야지마, 신들의 섬 6


요즘엔 친절하게 망원경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가 보다. 00엔이라고 되어 있네.
안개가 조금 낀 편이라 망원경으로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없었지만.


기둥이 방해가 되어서 참 아쉬운 사진이 나와버렸다. 등을 베고 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원숭이들의 흉폭함을 잘 알고 있어서 카메라 들이대기가 좀 무서웠는데, 얼마 있어보니 정말 사람에게 무신경한 녀석들이었다.
일단 먹을것 냄새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등 흥미가 없는 듯 하다.
사슴은 일단 다가와서 뭔가 요구라도 하는데 원숭이들은 처음부터 사람이 보이지 않는듯이 행동한다.


세상물정 모르고 잠자는 녀석들. 관광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다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주니 사진 찍을때도 편하긴 하다. 저런 자세로 어떻게 잠을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털 골라주는 원숭이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녀석들의 심리는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가만히 누워 있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털 고르던 원숭이를 공격하기도 하더라.
나만큼이나 어리둥절했는데 털 고르던 원숭이도 도망가면서 고성을 지른다. 억울하겠지.


전망대 옆에는 이렇게 원숭이들의 서식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아서 사람이 다니는 길에도 널부러져 있고, 정말 당당하게 사람 앞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도 한다.

구전상으로는 천 년 가까이 성지로 추앙받던 곳이라서,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보아온 동물들이 경계심을 잃은 것일까.
가장 비자연적인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다.
이게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어색한게 공존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매일매일 죽기 위해 길러지는 수억마리의 소, 돼지, 닭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공존은
동물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은 동물의 영역권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야생동물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



자연 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한다고 해도
이곳 미야지마의 원숭이들은 이미 인간이 만든 장소를 제공받고, 비록 먹이를 주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이들을 굶겨 죽일 일은 없다.

먹이경쟁도 천적도 없는 낙원같은 곳에서 늘어져 있는 원숭이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찾는다는것은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비정함을 지워버린, 화려한 유화같은 낭만으로 가득 찬 도원향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미센 전체를 돌아볼 시간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산책해 볼까 싶어서 산길을 걸어본다.
원래 미센의 볼거리들을 다 구경하려면 최소 5km 이상은 걸어야 하는데, 이미 해가 조금씩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을 놓칠 순 없었다.
10분 정도 적당히 걸어보다가 경치 구경만 하고 다시 전망대쪽으로 발을 옮긴다.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빠짐없이 둘러봤을텐데.
그런 생각으로 사진을 찍으니 왠지 모르는 여성의 뒷통수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등따숩고 배부르면 인상에서 여유가 느껴지나보다.
젖을 문 체 잠든 새끼나,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듯한 눈빛의 어미나.


나무 위에서 어미를 따라다니며 돌아다니는 새끼도 있다. 몇 안되는 깨어있는 새끼라 카메라를 든 손이 바빠졌지만
렌즈가 ZF 50.4 수동이라 훌쩍훌쩍 움직이는 새끼의 움직임을 잡기가 쉽진 않았다.


그래도 70%의 성공률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있어서 만족.
용케 그렇게 움직이는 녀석에게 포커스가 맞았다 싶다. 사실 찍는 순간에도 보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라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동물원에 갖혀 있는것 보다는 낫겠지.
원숭이들의 얼굴에 지루함이 아닌 느긋함이 엿보이는 것 만으로도 이곳 미센의 정상은 충분히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고 본다.


어딘가 일그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계속 이 모습이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원숭이들을 실컷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내 앞을 가로질러가는 카리스마 사슴.
실제로 덩치도 꽤 크고 산 아래서 봤던 사슴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순간적이나마 이 녀석이 가장 신과 가까운 사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슴은 아주 잠깐 멈춰서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그대로 숲속으로 걸어간다.


원령공주의 사슴신을 생각나게 하는 녀석은 힘있는 뒷모습을 남기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살짝 경건한 마음이 든 것은, 옛날 이곳에 신사를 세우고 사슴을 신성시하던 사람들의 기억 때문일까.


관광객들의 루트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지, 올라왔을 때 거의 텅텅 비었던 내려가는 줄이 지금은 또 가득 차있다.
결국 또 30분 정도는 줄서서 기다려야 할 판. 마지막으로 세토 내해의 사진을 기분 정화용으로 날리고 줄을 섰다.


신사가 없는 이곳에도 에마(絵馬)가 있다.
상술이라고 생각하기도 지친 것이, 이제는 경건함이 사라진 애교수준의 장난으로 전락했으니 이것도 여행의 즐거움이겠지.
단지 그 즐거움을 만끽하기엔 에마가 너무 비싸서. ㅡㅡ; 일본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지만 에마를 사서 소원 빌어본 건 딱 한번 뿐이다.

한국어, 영어, 일어, 아랍어, 중국어... 왠만한 언어는 전부 다 쓰여있다. 이곳의 신은 다국어에 능통해야 자격이 생길 듯 하다.

이츠쿠시마 신사 뒷쪽에 마련된 미니 신사(?)
내 머리통만한 크기인데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공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삶겨져 있는 싱싱한 놈이라면 불쌍한 중생의 배를 보전하기 위해 몇개 까먹었을텐데.


손을 좀 씻을까 싶기도 했지만, 신종플루 예방 차원에서 휴대용 알콜 핸드워셔도 갖고 왔고, 카메라에 물 묻히기 싫어서 패스.
아까 단풍만쥬를 먹으면서 렌즈를 칼 짜이스 ZF 플라나 50.4으로 바꿔끼웠다.
여행중에 렌즈 갈아끼우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라 보통은 같은 장소를 두 번 돌아볼 생각하고 왕복점에서 렌즈를 갈아끼우곤 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체력적 여유도 없으므로 그냥 마음 내키는 장소에서 바꿔봤다.


카메라 렌즈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어서 이젠 고성능이라 말하기도 뭣한 칼 짜이스지만
세계 3대 광학 메이커에서 항상 이름을 올려놓는 응축된 기술력은 어디 가는거 아니다.
웃기게도 AF 가 안되는 녀석이라 수동으로 조리개와 초점거리를 설정해야 하지만
요즘같은 광속 AF 시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녀석이 하나 있어야 초점 링 돌리는 손맛을 계속 느낄 수 있다.


ZF 플라나 50.4의 특징이라면 깊은 색감과 회오리 빛망울.
색감은 확실히 깊긴 한데 대부분 RAW 로 촬영해서 보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렌즈보다 센서의 수광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

회오리 빛망울은 보이그랜더나 칼짜이스 예전 렌즈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조리개를 개방할수록 빛망울이 회오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지금 히로시마 여행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나? ㅡㅡ;


예전에 쿄토에서는 건물 밖에서 찍으려는 사진도 제지당해서 기분이 팍 상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왠지 우물쭈물하며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어 밖에서 살짝 촬영했다.
그냥 찍어도 되냐고 시원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소심쟁이. ㅡㅡ;

사실 별로 관심갈만한 상품은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니 사슴 관련 인형이나 그런것들은 조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사슴들은 어디 갔다놔도 그림이 되는구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슬금슬금 다가온다. 아마 먹을거 없나 보러 오는거겠지.
이 ZF 50.4 렌즈는 수동이면서 초점 링이 움직이는 범위가 아주 넓어서 굉장히 스무스하고 세밀한 포커스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한 신속한 포커싱이 어려워진다는 뜻도 된다.

어지간한 MF 렌즈는 거의 AF 쓰듯이 추적하면서 찍을 수 있지만 이 녀석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서 안 될게 뭐가 있으랴. 슬금슬금 움직이는 사슴 따위는 나의 초점링돌리는 신묘한 손가락에 한방이다.
겨우 D3 정도 되는 뷰파인더가 있어야 그나마 찍지. 135 판형 필름바디 대비 크롭바디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MF 로 초점 잡는건 괴롭다.

A900 의 눈동자 굴려야 할 만큼 광활하고 밝은 뷰파인더가 그립다. ㅡㅡ;


시간도 어지간히 되었겠다 로프웨이를 타고 미센(彌山)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른다.
중간중간에 일반 가정집도 많이 있는데, 신식 주택집에도 은근히 옛 정취가 풍기는 느낌의 건물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산 위의 사슴들은 밑의 녀석들보다 좀 더 순수한 눈을 하고 있나 싶은 경건한 마음이 들었는데
먹이를 주지 않자 묘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신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면 의연함을 기르라고 해 주고 싶네.


날씨가 더웠지만 그늘이 시원해서 그럭저럭 산을 올라간다.
로프웨이를 타면 떡하니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는데, 로프웨이 자체가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산 위로 좀 올라가야 있다.
사슴도 있고 풍경도 좋으니 느긋하게 셔터 눌러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썰물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미센 위에서 시간보내고 와도 충분하다.


앞서 말한 칼 짜이스 플라나 렌즈의 특이한 회오리 빛망울.
보통 이 렌즈를 구입하면 처음에 이 빛망울에 현혹되어 이런 심도낮은 사진을 마구 찍어다가, 어느순간 회오리가 실증나서 평범하게 찍는다는 소문이...


빛망울이 아니더라도 수동렌즈의 손맛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녀석이라 갖고 다니며 링을 돌리는 것만 해도 재미있다.
색감도 과연 칼 짜이스라고 깊고 진득하게 잘 나오는 편이고.


로프웨이까지 가는 길은 겨우 수백미터밖에 안되지만 11월쯤에 오면 여기서부터 화려한 단풍잎이 관광객들의 혼을 빼 놓는다.
이츠쿠시마 신사를 둘러싼 단풍도 절경이지만 미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와 어우러진 원시림의 단풍은 금강산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매력이 있다.


일단 렌즈를 바꿔끼고 출발하면 어디서 쉴 만한 장소가 안 나오는 한 계속 그 렌즈로 촬영한다. 귀찮아서.
오히려 좁은 사물을 포커싱할때는 측거점 위치 신경쓸 필요없는 수동렌즈가 더 나을 경우도 많다. 뷰파인더가 넓고 밝다는 전제 하에서만.


오중탑 뒤쪽을 통과해서 계속 걸어오면 이곳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나보다.
조그마한 토리이와 그 위에 올려진 돌맹이들이 앙증맞다. 아마 소원을 바라면서 올려놓은 거겠지.
크고 단단한 토리이(뭔가 어감이... ㅡㅡ;)도 좋긴 한데, 산속 산책길 안에서 만나는 이런 조그만 토리이도 엄청 마음에 든다.


신사하고는 꽤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도 누가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나무에 묶어놨다.
원래는 나쁜 점이 나왔을 때 액땜한다는 의미에서 나무에 묶지만 요즘엔 그런거 없이 좋던 나쁘던 기념으로 마구 묶더라.
뜯어서 뭔 내용일까 보려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 묶어놨던 사람에게 미안한 듯 해서 얌전히 사진만 찍었다.


아마 저 돌은 사람이 일부러 올려놓은 것이겠지.
시끌벅적한 이츠쿠시마 신사와는 달리 새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소리만 들리는 산 속에서
이런 살짝 인위적인 듯한 풍경을 만나면 기분이 아늑해진다.
뭔가 거창하게 소원을 비는 것 보다 이렇게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뭔가를 바라며 행하는 소박한 느낌이 좋다.


로프웨이로 가는 도중 물이 별로 남지 않은 계곡 위를 다리로 건넜는데 이곳이 관광 명소중에 하나인 단풍계곡 모미지타니(紅葉谷)라고 적혀있다.
11월에는 아마 다리 위가 구경하고 사진찍는 관광객들로 꽉꽉 차 있겠지.


로프웨이 타는 곳까지 올라가니 지금부터 50분은 기다려야 한단다... ㅡㅡ;
일단 티켓 순서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금 티켓 받아놓고 밑에서 놀다 와도 된다니 일단 티켓부터 받았다.
로프웨이 바로 밑에는 음식점이 있어서 우동이나 맥주 등을 팔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산 속 음식점이 비싸기로 유명한것은 다를 바 없다보다.
혹여 굴 덮밥 같은거라도 있다면 한끼 먹어볼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앉아서 물이나 마셨다.


산 속에서라면야 50분 정도 시간 때우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카메라가 있다면 더욱 그렇고.
가방 속에는 E-Book 도 있으니 읽다 남긴 소설을 펼쳐들어도 금방인데
기왕 왔으니 그냥 사진만 좀 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즐기기로 했다.

여행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평범한 휴식이 귀중한 명상의 시간이 되고, 훗날 추억을 되돌리는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새 40분이 지나갔다.
이제 슬슬 로프웨이로 올라가서 줄을 서 봐야겠다. 거기는 다시 사람들이 만든 줄로 가득가득하겠지.


사슴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멀어지지만, 적당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진 아이는 삥뜯기 좋은 표적.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 역시 먹을거 주지는 않더라.


이츠쿠시마 신사가 가까워지자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앞서있는 곳엔 이 조각배가 놓여있는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인가 보다.
공짜로 태워줄리가 절대로 없으니 무리.
사실 미야지마는 로프웨이 말고는 돈 내고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곳이다. 섬 전체가 볼거리 많은 곳이니까.
내 자금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유람선보다 굴 구이나 몇조각 더 먹겠다.


좀 더 큰 배도 있다. 아마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오오토리이(大鳥居)는 썰물 때가 아니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배로 주변을 둘러보는 듯?
물위에 둥둥 떠서 오오토리이를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썰물의 힘을 믿는다.


아마 이츠쿠신사의 진짜 입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인가보다.
여기 오기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츠쿠신사 경내는 입장료도 300엔으로 꽤 비싸고, 엄청난 인파때문에 쓸려다니는게 고작이고, 중요부분은 보존을 위해 공개하지 않으므로
거기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신사 구경하러 온게 아니라서. 진짜 구경하고 싶은 것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야 있다.


어느 신사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문의 이 토리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첫 번째 관문인 만큼, 지역별로 나름 특색이 있다.
돌덩이로 만들어진 토리이 치고는 꽤 큰편으로, 명물인 수중 오오토리이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게 또 돌맹이의 거친 감촉과 어울려서 나름 듬직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는게 마음에 든다.


여기라고 사슴이 없을리가.
훔친건지 받은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이는 몸에 별로 좋지 않을텐데...
굶고 살진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하는 행동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처럼 먹을걸 갈구한다.
늘어진 모습이 어울리긴 하네.


이곳에 왜 그리 사슴이 많은가 하면, 원래 일본에서 사슴은 가장 신에 가까운 동물이자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 신성시 되어왔기 때문.
일본에서도 신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야지마라서 사슴이 많은가 보다.

이곳 미야지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한 이츠쿠시마 신사의 박력과 고립된 섬이 가지는 독립성으로 인해
수백 년 전부터 나무의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섬 안에서의 출산, 장례도 금지되어왔다.
그래서 이 곳엔 묘지가 없다.

덤으로 강아지 등의 동물도 살 수 없었다지만 그건 주민들의 경우일 뿐, 아주 많은 관광객이 이제는 개들을 끌거나 안고 들어온다.


신성함과 출산, 사망을 반대급부로 묶은 사상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다.
사실은 출산, 사망만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신성이라는 개념이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면 아마도 이곳은 생물학적 행위를 비신성함으로 여겨왔을 터.

신성함을 드러내는 방법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간다움, 혹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자연의 순환고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과
철저한 군림자로서의 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비인간적인 엄숙함을 고취시키는 방법.

미야지마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 두번째겠지. 지금은 그걸로 돈 벌어먹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쓰레기.
저녁에 이곳으로 다시 오게되는데 쓰레기보다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많고 흐린 편이라 아쉬웠는데, 쨍한 날씨의 미야지마는 정말 멋진 풍경을 자랑할 것이라 상상했다.
특히 산 위에 올라가면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츠쿠시마 신사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공짜로도 저런 곳에서 줄 따라가며 구경하고 싶지 않은데, 입장료까지 받으니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쿄토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저런데 돈 내고 들어가서 얻는건 아쉬움밖에 없었으니 깔끔하게 포기.

굳이 안보여줄곳은 어차피 안보여주는 신사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주변의 풍경은 감탄할 만 하니 문제될 것 없다.
지금은 밀물때라 신사 전체가 바다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것이 바로 신성함의 근원 중 하나겠지.


이츠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현재 신사는 120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로 옆의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개발살이 났음에도 무사했던 미야지마라서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장소일 거다.
그 신사와 함께 저기 보이는 오중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귀찮아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저 오중탑은 사실 미완공된 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당나라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자세히 보면 꽤나 묘한 느낌을 주는데, 140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는 절경은 절경이다.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면 정말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그런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 같다.

유명 관광지에 서 있을 때 항상 아쉬운 점.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문화 유산은 뭔가가 빠져나간 듯 힘이 꺾인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아마 내가 사람 북적이는걸 싫어해서 그렇겠지.


신사 주변에도 노닐거리는 많다. 수많은 가게들과 사슴들.
오모테산도를 비롯한 상가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났다기 보다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오는 전통있는 가게들.
일본인과 상업정신을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일본 역사의 중요한 고리를 빼먹는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관광 천국 일본에서 그 장사꾼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유다. 그네들은 이미 천 년전부터 장사꾼이었으니.


정오가 지나고 태양이 달아오르자 살짝 지쳤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드디어 즉석해서 미야지마의 명물 과자인 단풍잎 만쥬를 만들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주머니에 돈은 간당간당하지만, 그리고 별로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한 맛이 아니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관광객 흉내나 한 번 내볼까 싶어서 예전부터 계획해 왔으니 이번엔 큰맘먹고 먹어보기로 했다.
속에 넣는 앙금은 한국에서도 익히 먹을 수 있는 갈아만든 앙금과, 통짜 팥이 든 앙금이 있었는데
주문이 밀리다 보니 바로 먹을 수 있는건 갈아만든 앙금 밖에 없었다.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한건 참 마음에 들었다.
단품으로 3개 사서 가게 옆 마루에 걸터앉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선물용으로 15개, 20개씩 포장된 만쥬를 여러 개 사고 있었다.
이게 아마 한개 70엔 정도 했을거다. 3개 210엔. 비행기타고 일본까지 간 녀석이 쪼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걸 많이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차라리 돈 좀 모아서 굴 요리를 먹지. 굴 요리는 이거보다는 훨씬 비싸다.
그리고 원서 사려고 생각했던 게 좀 있어서 어쨌든 책값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다.

관광지 기분 한 번 내보려고 샀는데, 방금 만든 녀석이라 그런지 달콤한게 휴식을 취하며 먹기엔 딱 좋은 느낌.
왜 이런 단풍잎 만쥬가 유명하냐. 이곳 미야지마의 단풍은 정말 눈돌아갈 정도로 멋지기 그지없기 때문에.
불행히도 이곳은 단풍이 좀 늦게 들어서 11월이나 되야 붉게 물든 이츠쿠시마 신사와 미센 산(彌山)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

그런데 단풍이 들 때의 미야지마는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꽉 차버리기 때문에, 보고는 싶어도 용기가 안난다.


신사 뒷쪽까지 빙 둘러서 걸어갔다. 출구쪽에는 들어오지 마시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얼굴에 철판 깔면 들어갈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물리칠 정도의 얼굴 두께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신사 뒷쪽의 무료지역에도 볼거리는 많이 있는데, 바다위 오오토리이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원목이 전시되어 있었다.
1875년에 세워진 오오토리이는 워낙 거대해서 바다 속에 파묻은게 아니라 그냥 세워놓기만 했다. 토리이 자체의 무게로 서 있는 것.


상당히 거대한 원목이었는데, 오오토리이의 기둥 둘레가 10m 라고 하니 납득갈만한 크기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가 참 마음에 든다. 수백, 수천년 있다보면 이건 돌처럼 변하겠지.


사진으로 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무단으로 관광객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현지인들이 많이 와 있어서 (골든위크라 다들 여행가느라 정신없다) 내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

머리에 버프를 둘러쓰고 고글을 끼고 있어도, 이런 유명 여행지에서는 눈길을 끌지 않아서 좋다.
가끔 눈길을 끌게 되면 대부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말을 걸어온다는게 항상 의아스럽긴 하지만. ㅡㅡ;

무리를 해서있지 아침 8시가 될때까지 눈 한번 안뜨고 잘 잤다.
잘 잤다고 하기보단, 일어나니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좀 어지러운게, 피로의 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에 널려있긴 했다.
덕분에 심야 프로그램들을 못봐서 좀 아쉽긴 하다. 여행와서 보는 TV는 또 각별한 맛이 있는데.

싸구려 호텔이라 공짜 조식도 없으니 9시 반이 될때까지 뒹굴뒹굴하다가 짐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오늘은 한국에서 예약해놓은 호텔이 있으니 미리 짐 맡겨놓고 나올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히로시마 여행의 백미인 미야지마(宮島)로 갈 예정.
미야지마는 아마노 하시타테(天橋立), 마츠시마(松島)와 더불어 일본 3대 절경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
이 곳에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嚴島神社)와 오중탑(五重塔)는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것들 보러 가는게 아니지만.

어제는 JR 전철을 탈 일이 많아서 프리패스 끊는게 오히려 손해였지만 오늘부터는 모든 교통수단을 히로덴 프리패스에 의존한다.

2일짜리 프리패스는 이틀간 히로덴과 미야지마행 마츠마에 기선(松前汽船), 그리고 미야지마 로프웨이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가격은 2000엔.
히로덴은 한번 타는데 150엔, 마츠마에 기선은 편도 170엔, 로프웨이는 왕복 1800엔이니 이것들을 이용할 생각이면 무조건 프리패스를 추천.


그러한 프리패스에도 단점은 있으니, 이 미야지마라는 곳은 히로시마역에서 JR 전철로는 2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히로덴으로는 50분에서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가격을 생각하면 프리패스를 끊은 시점에서 무조건 히로덴을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조금 아쉽긴 하다.
JR 프리패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이러나 저러나 미야지마에서 로프웨이를 타려면 프리패스가 유리한것이 사실.
다른 자동차와 똑같이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했다가, 느긋하게 내리는 손님에게 돈을 받고 천천히 출발하는 히로덴을 타고 미야지마구치(宮島口)역에 내린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이 곳에서 내리고, 사실 이곳은 히로덴 종점이라서 요금도 전철 내리면서가 아닌 개찰구 앞에서 정산한다.

내리자마자 미야지마행 배를 타러 간다.
이곳에서 미야지마까지는 배로 10분밖에 안떨어져 있지만 이권탓인지 JR에서 운영하는 JR 페리와  마츠마에 기선이 바로 옆에서 따로 운행되고 있다.
프리패스를 가진 사람은 마츠마에 기선 역시 맘대로 탈 수 있으므로 생각할 것도 없이 그쪽으로.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인지 미야지마행 기선은 10분에 한번씩 쉴새없이 왔다갔다하고, 걸리는 시간도 10분밖에 안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면 사실 게임 셋.
일부러 일요일을 피해서 온 미야지마였지만 지금이 일본의 골든위크라서 의미없는 몸부림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현기증이 생길 정도.


선착장 옆에서는 무슨 수상 경기장 같은게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뭔가가 트랙을 돌고 있다.


출발하자마자, 사실은 출발하기전에도 잘 보이는 미야지마.
특이하게도 좌석 앞에 미야지마 소개 영상을 틀어주는 TV도 있다. 그거 볼 시간이나 있을까.


기선들은 정말 쉴새없이 왔다갔다한다. 확대해보고 알았지만 기선들끼리 스쳐지나갈때는 서로서로 사진 찍는 장면이 많이 잡혔다.


드디어 일반 관광객다운 관광이 기다리고 있는 미야지마에 도착.
평범한 여행도 이쯤 되니 제법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날씨가 꽤나 더워서 시작부터 조금 사기 저하.
선착장 앞에는 관광객을 마중나온 여관 차량도 있고, 지도와 가이드북을 뒤적이는 외국인들도 많다.


내가 미야지마에 온 이유 첫번째.
길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이 사슴들을 보기 위해.

미야지마에 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고,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장면이다.
교토 근처의 나라(奈良)와 이곳의 사슴은 아무런 제약없이 돌아다니고 손님들을 갈취해 뜯어먹는 유명한 터줏대감들이다.
나라에서 먹이를 돈으로 주고 사도록 하는 바람에 관광객들에게 이골이 난 사슴들이 사람들을 덥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지만
이곳은 먹이 주는것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 사슴들보다는 조금 순한 편이다.

먹이주는걸 금지해서인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안내서까지 뺏어먹긴 하지만.


나라의 사슴들을 겪어봤다면 충분히 공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사슴들은 꽤 무섭다. 순해보여도 힘도 세고 떼거지로 얼굴 들이밀면 힘약한 노약자나 여자는 나자빠질 정도.
이곳에서도 가끔씩 방심하고있는 사람들에게 서든 어택을 가하는 녀석들이 있어서 사진찍을 맛이 난다.
하지만 손안에 먹을게 없다는걸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무심하게 떠나버리므로 크게 걱정하진 말자.

손안에 먹을걸 들고 이런 벤치에 앉아있다면 당신 머리위에는 사조성이 빛나고 있으리라.


미야지마는 그리 큰 섬이 아니라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거의 없다.
세계문화유산인 이츠쿠시마 신사까지는 거의 일직선으로 길이 나 있어서 그냥 길따라 가기만 하면 만사 OK.


물론 중간엔 관광객을 쉽게 보내지 않으려는듯 오모테산도(表參道) 상점가가 포진하고 있다.
오모테산도라는 이름은 도쿄 하라쥬쿠(原宿)에도 있는데, 특정 지명은 아닌듯? 둘다 유명 상점가를 지칭하고 있다.


온갖 공예품과 특산품이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도 여행지의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는게
유명하고 발길이 많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의 상점가일수록 공예품의 질이 떨어지고 얄팍한 상술이 드러나 보인다는 점.

차라리 홋카이도 후라노의 라벤더 특산품이 더 나았다는 느낌이다.
경주에서 토산품 살게 제일 없듯이 쿄토나 미야지마에서는 선물 살 생각 않는게 좋을 듯.

이러나 저러나 이곳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굴과 단풍잎 만쥬(もみじまんじゅう). 특산품은 못사도 먹을건 먹어야지 작정중이다.
여기서 한끼 먹으면 어지간히 하루치 식비를 다 써버리는 결과라서 조금 겁을 먹고 있긴 하다.
진을 뺄 정도로 둘러보고 피로와 허기짐에 쓰러질 듯 선착장으로 향할 그 순간에 굴을 먹어볼까 싶다.


말을 안 해서 그런데, 선착장에서 800m 정도 떨어진 이츠쿠시마 신사까지 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세상 천지에 사슴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찍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
쿄토에서도 느낀 거지만 난 일본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본의 전통 문화엔 딱히 흥미가 없는 듯 하다.
절이나 신사같은거 봐도 별로 느껴지는 것 없고, 과대포장된 문화재나 2중 3중으로 입장료를 받아챙기려는 장삿속에도 실망했기 때문일까.

애초에 한국에서도 절이나 문화유산엔 거의 관심이 없었으니.
내 관심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 나와의 심리적 차이에 쏠려있고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무생물적인 관점에서라면, 사람이 만든 유산보다는 지역별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미묘한 차이를 구경하는게 더 좋고.


슬금슬금 이츠쿠시마 신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바닷속 토리이(鳥居)도 어렴풋이 보인다.
물론 바다와 바로 맞닿은 거리에서 파도를 넘나보며 걷는 분위기도 꽤나 마음에 든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데도 정말로 사슴한테 먹이를 주는 사람도 없고 (나뭇잎을 주려는 애들은 몇 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보기 힘든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
쓰레기에 관련된 일본인들의 소심함과 결벽주의에 대해 냉소하는 이들도 많지만,
난 아무래도 더러운것보다는 깨끗한게 낫다. 특히 사람이 더럽힌 것에 대해서라면.


묘하게도 바다를 따라 늘어선 담 사이사이에 이렇게 출구가 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보안이 허술한데...
바닷물은 금방이라도 밀고 들어올 것 처럼 바로 앞에서 출렁인다.


물론 중간중간에 사슴들의 애교를 찍는것도 잊지 않았다. 내 앞에서 친히 털까지 골라주시는 사슴님.
소심한 나는 카메라에 때 묻을까 싶어 만지진 않았지만.
변명 좀 더하자면 가이드에는 먹이주는것 외에 만지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사슴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게 좋으니까. 그리고 혹시 병원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써놓긴 했는데 이미 이 사슴들은 자연 그대로고 뭐시고도 없다. ㅡㅡ;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희한하게도 먹이는 안주면서 만지기는 잘 만지고 있었다.


접사로 마구 들이대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별로 겁먹는 기색도 없다.
단지 손에 먹을것이 안 들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심이 없어져 버리는 것만 빼면.
사진 잘 보면 눈동자에 내 모습도 비춰지고 있지만 명암을 높여서 잘 안보일듯.


원래같으면 이곳 명물인 굴 튀김이나 굴 구이, 오징어 구이, 닭꼬치, 구운 옥수수와 생맥주 한잔 들고 이런 벤치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며
극락 기분을 만끽해야 정상이지만 이번 여행은 좀 과도하게 헝그리한지라 그럴 여유가 없다.
사실은 이곳에서 먹기로 계획했던 단풍잎 만쥬도 2~3개 정도만 사서 맛만 볼 정도의 자금적 여유밖에... T_T

자전거여행 할때는 가난과 배고픔이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오는터라 딱히 감정상할것도 없는데
정상적인 관광객 행새를 하며 유명 관광지에 서 있으니, 왠지 무일푼이라는 사실이 괜스래 서글퍼지는 느낌이네.
나도 먹으려면 카드 긁어가면서 먹을 수 있지만 그러려고 온게 아니라서.
그리고 이 은근히 만성적인듯한 피로감과, 나를 적당히 소심하게 만들어주는 초라함이 오히려 솔직한 나다워서 그게 낫다.

수백만원짜리 DSLR 매쳐들고 다니며 배곯는 헝그리 여행자라. 나름 매력있지 않나.


애고 귀여워라.
고양이가 제일 좋긴 하지만 이녀석들의 태평스러움을 보고 있어도 기분이 맑아진다.

잡아먹을 순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