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외곽에 위치한 사찰 역시 형태는 조금 달라도 갓쇼즈쿠리 양식을 갖추고 있다.
왠지 바삭하고 폭신하게 느껴지는 지붕 모양인데, 느낌과는 별개로 역시 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건물의 형태가 여느 일본식 마을과는 달라서 묘하게 크기에 대한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참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여기서도 세전함에 동전 넣는 사람들이 많은데
형이상학적 존재한테 돈으로 뭘 좀 빌어보겠다는 행동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5엔짜리 하나 던지면서 여행 안전하게 끝나도록 해 달라고 빌어본 적은 있어도
사실 그건 저 위의 어떤 분한테 빌었다기 보다는, 관광 체험과 비슷한 감정으로 해 본 놀이의 일종이었을 뿐이고.
겨울 풍경이 훨씬 유명한 시라카와고임에도, 시원하게 쭉쭉 자라나는 벼들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
혹시 겨울에 먼저 이곳을 찾아와서 '겨울이 진국이라니 여름엔 안가도 되겠지' 라고 생각해 버렸다면
오히려 훨씬 더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성격인데, 이런 경우엔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나고야의 더위는 좀 더 매마르고 강렬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의 더위는 뭐라고 할까, 같은 온도임에도 '이 정도는 있을수 있을 법한' 그런 날씨라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느끼는 날씨라는게 단순히 온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지상의 여러 대상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바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그림같은 풍경임에 틀림없는데, 그림같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순수함이란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틀리니, 어느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너무 그림같은 풍경이라서 농촌 생활의 흔적이 퇴색된다고 할까.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촌락 중 가장 유명하고 교통 시설이 그나마 잘 갖춰져 있어서
관광객도 많이 오고, 그들을 맞이할 여유수준도 가장 높다.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다 보니 마치 공원 산책하듯 느껴지기도 하고
그 점에 있어서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역사를 이어온 마을의 거친 손길이 많이 바랜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스가누마(菅沼)등의 마을은 이곳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지만
고립된 만큼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촌락의 진짜 숨결을 더 느끼고 싶어하는 매니아들에게는
시라카와고보다 더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인도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이곳과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좀 사는 주택은 담 속의 마당에 고운 잔디를 깔고 산다는 소문을 듣기는 하는데
이곳은 잔디가 필요없는 듯 하다. 집 앞에 깔린 논밭이 훌륭한 잔디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겨울엔 이런 곳에 물 좀 채워놓으면 자동으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 지니까 놀기 편할것 같은데
이곳은 눈이 워낙 많이와서 스케이트장이 깨끗하게 유지되기가 힘들거라는 예상을 해 본다.
한국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척박한 산골 소년소녀들은 일년내내 밖에서 뛰어노는게 일이라
이런 산간지방 출신 사람들은 체력이 평범하게 괴물같은 경우가 많았다.
잠깐 산책나가는게 500m쯤 되는, 길도 안나있는 야산에 훌쩍 올라가는 것이고
겨울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무숲 사이를 급조 썰매에 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가기도 하더라.
나무에 정면으로 박으면 정말 영화의 엑스트라들처럼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노는데
도시 아이들의 건강함과 산골 아이들의 건강함은 그 기준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받는다.
일본은 마당 역시 정원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두고 축소화된 자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예술로서의 마당은 역시나 돈과 권력이 충분한 계층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고
특히나 이런 외진 산골마을은 실용과 효율로 똘똘 뭉친 생활만이 생존의 열쇠였기 때문에
그런 정원은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풍부하기 그지없는 물을 이용해, 옆집에 놀러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 나름 멋들어진 정원이라 할 만한 모습을 갖춰 놓았다.
더울 때 뒷문 열어놓고 이곳을 감상하는 것도 산골 생활의 여유라고 할까.
중앙의 두꺼비 녀석은 마치 자기가 신선인 것 처럼 구름 위에 앉아있다.
가난하다보니 여행중엔 적당히 돈 좀 아끼는 성격이라서
숙소에서 교통비만 4만원이 넘게 들어가며 관광하러 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자칫하면 괜히 큰돈 들여 이런 거 보러왔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다행이랄까, 이곳 시라카와고만은 출발 전에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은 곳이다.
실제로 와 보지만 않았을 뿐 워낙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고
사진속에 담긴 마을의 모습은, 작가의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아름다울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
웅장한 스케일이 아니라서 부담없이 즐겨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곳인데
막상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오니, 뭔가 놓친 풍경은 없나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담은 마을 사진은,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그 모습이 된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지만,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갖춰야 할 요소가 이 풍경 속에는 모자라지 않게 담겨있기 때문일까.
다리 위는 어쨌든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에 사진 찍기 좋다.
장소가 같아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진이 찍힐리는 없다.
하지만 두명이 스쳐가기에도 좁은 다리 위에서 언제까지나 사진을 담는건 좀 부담스럽다.
그나마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다들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는 듯 하다.
마을 내부의 풍족해보이는 수량에 비하면 뭔가 좀 부족한 기분이 들긴 해도
이건 홍수방지를 위해 일부러 도랑 폭을 넓게 잡은것에서 비롯되는 착시현상이라 이해하기로 한다.
강가에서 낚시하는 분이 있길래 이럴 때를 위한 망원렌즈다 싶어서 도촬을 시도한다.
복합매체의 힘이란 이런 것인지, 이런 광경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난다.
유속이 상당히 빨라서 어떤 고기가 잡힐려나 궁금한데
내가 저기까지 성큼성큼 내려가서 친근하게 말 걸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저기 멀리 시로야마 천수각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쪽에서 본다면, 마을 쪽까지는 시야에 잘 담겨도 이곳 다리 위까지는 시선이 잘 머물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찍어보고 확대해 보니 좀 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시라카와고에 왔다 하면 최우선 목표가 저기서 전망 감상하는 일인 듯 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버스 도착시간까지 40분쯤 남아있다.
한번 놓치면 1시간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버스가 다 끊겨버리는 곳이라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좀 일찍 나왔는데 그래도 볼것 많고 산책할 곳 많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오늘 식사를 호텔 조식외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좀 전 민가원에서 메밀 아이스 하나 빼고.
시라카와고의 풍경이 찍사로서의 본인에게 포만감을 준 것인지 여지껏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시간도 좀 남았고, 수분 보충하는 겸 음료수 사면서 뭐라도 하나 먹어봐야겠다고 생각.
가게 안에 앉아서 제대로 식사하기는 시간이 좀 애매해서 간단한 요기거기를 찾아본다.
이곳 시라카와고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듣한 히다규(牛)를 이용한 먹거리가 많다.
이곳도 물론 히다 지역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래 소를 많이 기르는 곳은 아닌데.
원래 수량 풍부한 산골 마을에서 먹는 간식으로 유명한 건 '이와나'라고 하는 곤들매기 구이다.
내장 제거하고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굵은소금 쳐서 뜯어먹는게 진짜 맛인데
일단 이와나 꼬치구이는 시간과 손길이 굉장히 많이 가는 간식이라 아무래도 손님 많은 이곳에서는 팔기 힘들것도 같다.
히다규가 들어간 고로케라도 먹어볼까 싶어 사진에 보이는 가게로 다가갔는데, 왠걸 품절이라고 한다.
관광온 사람들이 간식도 많이 사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세삼스럽게 하게 된다.
본인은 관광지에서 실컷 돌아다니고 난 뒤에, 돈 한푼이라도 보태주자는 의미로 겨우 한가지 정도 먹을까 말까인데.
그러고보니 본인같은 관광객은 돈이 안되니 별로 좋아하지 않을듯 해서 좀 소심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옆집 가게에는 아직 코로케가 남아있는지 사람들이 들고가는게 보인다.
그게 수량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아있는건지, 옆집보다 인기가 없어서 남아있는건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은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 왕복 버스비만 소비하고 가 버리기엔 이 마을에 좀 미안한 듯 해서 먹는 것.
그렇다고 배고 안고픈데 제대로 된 정식을 먹어치우는 것도 아깝다.
의외로 하나 남은 고로케집은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들에게 대인기라서
하나 먹으려면 3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냉동된 완성품을 가져와서 튀겨내는건줄 알았는데
재료를 전부 직접 반죽해서 만들어내는 수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심히 놀랍다.
물론 그런 경우엔 재료가 떨어지면 눈에 보이는 손님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등의 손해가 있지만
그 손해가 아까워서 저급의 냉동재료를 잔뜩 들여와 팔아재낀다면
관광객들의 실망이 키워내는 실망감은 우물에 풀어버린 독처럼 천천히 뿌리까지 파고들어 갈 것이다.
물론 시라카와고가 남아있는 한에는 욕하면서도 먹을건 먹는게 관광객이란 부류겠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지금 나처럼 이곳에 대한 좋은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을까?
한국의 상당수 관광지를 다녀와서 입도 뻥긋하기 싫은 이유가 그런 것이니까.
관광지는 손님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자기 살아있을 동안 돈이나 좀 빨아먹고 끝내자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이런 마을이 관광지로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리긴 해도 느긋하게 앉아 일기 좀 쓴 다음 막 튀겨낸 불같은 고로케를 손에 쥔다.
크림 고로케도 좋고 해산물 고로케도 좋고 고기 고로케도 좋아하는 박애주의자라서
딱히 그 유명한 히다규를 사용했다고 해도 그닥 특출나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러번 말하지만 그 드높은 위상을 가진 히다규는 제대로 된 고기집에서 비싼 녀석을 먹어야 체험할 수 있지
한개 2천원짜리 고로케에서 일본 최상급 소고기의 맛을 판단하는건 좀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히다규 고로케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고로케가 이거밖에 없어서.
그리고 아무리 가난한 여행자라 핸들 그 지방에서만 '제목이나마' 한정으로 붙어있는 녀석에 손을 대고싶지 않겠는가.
미각이 둔감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대강 아무거나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히다규 같은 고급육이 아니라도 고기는 맛있게 먹는다. 질이 떨어지는건 뱉어버려도 적당히만 맛있으면.
그러니 히다규를 썼던 안썼던, 재료를 직접 섞어서 바로 튀겨낸 이 고로케가 맛이 없을리는 없다.
좀 전에 뭔가 우두두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이커들이 떼마실을 나온 듯 하다.
다행히도 구경간 듯 주인들이 보이지 않아서 슬쩍 한장 담아본다.
바이크에 대해 아는게 없어도 이 녀석들 한대값이 왠만한 중형차 정도 한다는 것 쯤은 알 법 하다.
나름 험한 길이라고 해도 원래 바이크가 커브를 즐기는게 재미있다고 하니, 이 사람들에게 이곳 투어는 스릴 만끽하는데도 좋은 곳일 듯.
본인은 이 정도로 큰 바이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넓직한 사이드백을 떡하니 달아도 전혀 미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자태는, 자전거 여행경험을 가진 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두시간쯤 버스를 타고 산길을 꼬불꼬불 통과해서 히다 타카야마로 돌아오니 시간은 늦은 6시를 넘어간다.
어제 그 마을 제가 오늘도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오늘 여행은 이걸로 끝이라는 기분이 마음속에 드는 이상
무리하게 어딜 더 둘러본다던가 하는 일은 꺼진 불씨에 허무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일인 뿐이다.
어째 그 맑고 깨끗했던 타카야마가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네오 LA처럼 느껴지고
나고야에서 버스 한번 타고 온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잠들었던 어제에 비해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만 했음에도 아직 정신은 말짱하다. 취향에 맞는 곳을 다녀온 덕일지 피톤치드의 효능일런지.
야행성인 한국민족에게는 아직 초저녁과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시라카와고만으로 충분한 느낌이다.
가볍게 먹거리 좀 사고, 내일 버스 시간표 안내서를 뒤적이며 TV를 본다.
문득 사진 좀 잘 찍혔나 싶어서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보기도 한다. 낮에는 시안성이 낮아서 그냥 윤곽과 컬러채널만 확인해서
어떻게 찍혔는지 유심히 보지 못했는데, 어두운 숙소 안에서 보니 아주 광채가 번쩍번쩍 하는게, PC로 옮겨서 보면 실망할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고야에서 구입한 책도 좀 읽고 TV도 보고 일기도 쓰고 하면서 하루의 마무리까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보낸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흥분을 가져다 주는 곳은 아니지만, 시라카와고에서의 하루는 내가 열받을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여행중에도 온갖 사념이 머리속을 휘젓는 본인치고는 꽤나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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