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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10.08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9편 13
  2. 2013.10.0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8편 8
  3. 2013.10.0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7편 8
  4. 2013.09.27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6편 6
  5. 2013.09.25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5편 12
  6. 2013.09.23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4편 16

 

마을 외곽에 위치한 사찰 역시 형태는 조금 달라도 갓쇼즈쿠리 양식을 갖추고 있다.

왠지 바삭하고 폭신하게 느껴지는 지붕 모양인데, 느낌과는 별개로 역시 크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건물의 형태가 여느 일본식 마을과는 달라서 묘하게 크기에 대한 감각이 다르게 느껴진다.

 

참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인지 여기서도 세전함에 동전 넣는 사람들이 많은데

형이상학적 존재한테 돈으로 뭘 좀 빌어보겠다는 행동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5엔짜리 하나 던지면서 여행 안전하게 끝나도록 해 달라고 빌어본 적은 있어도

사실 그건 저 위의 어떤 분한테 빌었다기 보다는, 관광 체험과 비슷한 감정으로 해 본 놀이의 일종이었을 뿐이고.

 

 

 

겨울 풍경이 훨씬 유명한 시라카와고임에도, 시원하게 쭉쭉 자라나는 벼들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

혹시 겨울에 먼저 이곳을 찾아와서 '겨울이 진국이라니 여름엔 안가도 되겠지' 라고 생각해 버렸다면

오히려 훨씬 더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케이크 위의 딸기는 마지막에 먹는 성격인데, 이런 경우엔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나고야의 더위는 좀 더 매마르고 강렬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의 더위는 뭐라고 할까, 같은 온도임에도 '이 정도는 있을수 있을 법한' 그런 날씨라는 기분이 든다.

사람이 느끼는 날씨라는게 단순히 온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지상의 여러 대상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바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

 

 

 

그림같은 풍경임에 틀림없는데, 그림같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순수함이란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사람마다 틀리니, 어느 쪽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말 그대로 너무 그림같은 풍경이라서 농촌 생활의 흔적이 퇴색된다고 할까.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촌락 중 가장 유명하고 교통 시설이 그나마 잘 갖춰져 있어서

관광객도 많이 오고, 그들을 맞이할 여유수준도 가장 높다.

너무나 정비가 잘 되어있다 보니 마치 공원 산책하듯 느껴지기도 하고

그 점에 있어서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역사를 이어온 마을의 거친 손길이 많이 바랜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좀 더 깊숙한 곳에 위치한 스가누마(菅沼)등의 마을은 이곳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객을 위한 시설도 부족하지만

고립된 만큼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경치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촌락의 진짜 숨결을 더 느끼고 싶어하는 매니아들에게는

시라카와고보다 더 인기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인도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이곳과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라서.

 

 

 

좀 사는 주택은 담 속의 마당에 고운 잔디를 깔고 산다는 소문을 듣기는 하는데

이곳은 잔디가 필요없는 듯 하다. 집 앞에 깔린 논밭이 훌륭한 잔디 역할을 해 주고 있으니.

 

겨울엔 이런 곳에 물 좀 채워놓으면 자동으로 스케이트장이 만들어 지니까 놀기 편할것 같은데

이곳은 눈이 워낙 많이와서 스케이트장이 깨끗하게 유지되기가 힘들거라는 예상을 해 본다.

한국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척박한 산골 소년소녀들은 일년내내 밖에서 뛰어노는게 일이라

이런 산간지방 출신 사람들은 체력이 평범하게 괴물같은 경우가 많았다.

 

잠깐 산책나가는게 500m쯤 되는, 길도 안나있는 야산에 훌쩍 올라가는 것이고

겨울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나무숲 사이를 급조 썰매에 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가기도 하더라.

나무에 정면으로 박으면 정말 영화의 엑스트라들처럼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노는데

도시 아이들의 건강함과 산골 아이들의 건강함은 그 기준부터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받는다.

 

 

 

일본은 마당 역시 정원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두고 축소화된 자연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예술로서의 마당은 역시나 돈과 권력이 충분한 계층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고

특히나 이런 외진 산골마을은 실용과 효율로 똘똘 뭉친 생활만이 생존의 열쇠였기 때문에

그런 정원은 거리가 먼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들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풍부하기 그지없는 물을 이용해, 옆집에 놀러갈 정도의 작은 공간에 나름 멋들어진 정원이라 할 만한 모습을 갖춰 놓았다.

더울 때 뒷문 열어놓고 이곳을 감상하는 것도 산골 생활의 여유라고 할까.

 

중앙의 두꺼비 녀석은 마치 자기가 신선인 것 처럼 구름 위에 앉아있다.

 

 

 

가난하다보니 여행중엔 적당히 돈 좀 아끼는 성격이라서

숙소에서 교통비만 4만원이 넘게 들어가며 관광하러 가는 경우는 참 드물다.

 

자칫하면 괜히 큰돈 들여 이런 거 보러왔나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인데

다행이랄까, 이곳 시라카와고만은 출발 전에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은 곳이다.

실제로 와 보지만 않았을 뿐 워낙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고

사진속에 담긴 마을의 모습은, 작가의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아름다울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

 

웅장한 스케일이 아니라서 부담없이 즐겨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 곳인데

막상 마을 입구로 다시 돌아오니, 뭔가 놓친 풍경은 없나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담은 마을 사진은,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와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그 모습이 된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지만,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갖춰야 할 요소가 이 풍경 속에는 모자라지 않게 담겨있기 때문일까.

 

 

 

다리 위는 어쨌든 시야가 확 트이기 때문에 사진 찍기 좋다.

장소가 같아도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진이 찍힐리는 없다.

하지만 두명이 스쳐가기에도 좁은 다리 위에서 언제까지나 사진을 담는건 좀 부담스럽다.

그나마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다들 사진찍는데 정신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는 듯 하다.

 

마을 내부의 풍족해보이는 수량에 비하면 뭔가 좀 부족한 기분이 들긴 해도

이건 홍수방지를 위해 일부러 도랑 폭을 넓게 잡은것에서 비롯되는 착시현상이라 이해하기로 한다.

 

 

 

강가에서 낚시하는 분이 있길래 이럴 때를 위한 망원렌즈다 싶어서 도촬을 시도한다.

복합매체의 힘이란 이런 것인지, 이런 광경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난다.

 

유속이 상당히 빨라서 어떤 고기가 잡힐려나 궁금한데

내가 저기까지 성큼성큼 내려가서 친근하게 말 걸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저기 멀리 시로야마 천수각 전망대의 모습이 보인다.

천수각 쪽에서 본다면, 마을 쪽까지는 시야에 잘 담겨도 이곳 다리 위까지는 시선이 잘 머물지 않는다.

 

망원렌즈로 찍어보고 확대해 보니 좀 전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시라카와고에 왔다 하면 최우선 목표가 저기서 전망 감상하는 일인 듯 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버스 도착시간까지 40분쯤 남아있다.

한번 놓치면 1시간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버스가 다 끊겨버리는 곳이라

시간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좀 일찍 나왔는데 그래도 볼것 많고 산책할 곳 많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오늘 식사를 호텔 조식외엔 아무것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좀 전 민가원에서 메밀 아이스 하나 빼고.

시라카와고의 풍경이 찍사로서의 본인에게 포만감을 준 것인지 여지껏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시간도 좀 남았고, 수분 보충하는 겸 음료수 사면서 뭐라도 하나 먹어봐야겠다고 생각.

 

가게 안에 앉아서 제대로 식사하기는 시간이 좀 애매해서 간단한 요기거기를 찾아본다.

이곳 시라카와고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듣한 히다규(牛)를 이용한 먹거리가 많다.

이곳도 물론 히다 지역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래 소를 많이 기르는 곳은 아닌데.

 

원래 수량 풍부한 산골 마을에서 먹는 간식으로 유명한 건 '이와나'라고 하는 곤들매기 구이다.

내장 제거하고 꼬치에 끼워서 숯불에 구운 후 굵은소금 쳐서 뜯어먹는게 진짜 맛인데

일단 이와나 꼬치구이는 시간과 손길이 굉장히 많이 가는 간식이라 아무래도 손님 많은 이곳에서는 팔기 힘들것도 같다.

 

히다규가 들어간 고로케라도 먹어볼까 싶어 사진에 보이는 가게로 다가갔는데, 왠걸 품절이라고 한다.

관광온 사람들이 간식도 많이 사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세삼스럽게 하게 된다.

본인은 관광지에서 실컷 돌아다니고 난 뒤에, 돈 한푼이라도 보태주자는 의미로 겨우 한가지 정도 먹을까 말까인데.

그러고보니 본인같은 관광객은 돈이 안되니 별로 좋아하지 않을듯 해서 좀 소심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옆집 가게에는 아직 코로케가 남아있는지 사람들이 들고가는게 보인다.

그게 수량을 넉넉하게 준비해서 남아있는건지, 옆집보다 인기가 없어서 남아있는건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은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 왕복 버스비만 소비하고 가 버리기엔 이 마을에 좀 미안한 듯 해서 먹는 것.

그렇다고 배고 안고픈데 제대로 된 정식을 먹어치우는 것도 아깝다.

 

 

 

의외로 하나 남은 고로케집은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들에게 대인기라서

하나 먹으려면 3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냉동된 완성품을 가져와서 튀겨내는건줄 알았는데

재료를 전부 직접 반죽해서 만들어내는 수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북적이는 관광지에서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심히 놀랍다.

 

물론 그런 경우엔 재료가 떨어지면 눈에 보이는 손님을 포기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등의 손해가 있지만

그 손해가 아까워서 저급의 냉동재료를 잔뜩 들여와 팔아재낀다면

관광객들의 실망이 키워내는 실망감은 우물에 풀어버린 독처럼 천천히 뿌리까지 파고들어 갈 것이다.

 

물론 시라카와고가 남아있는 한에는 욕하면서도 먹을건 먹는게 관광객이란 부류겠지만

만약 그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면 지금 나처럼 이곳에 대한 좋은 감정을 글로 쓸 수 있을까?

한국의 상당수 관광지를 다녀와서 입도 뻥긋하기 싫은 이유가 그런 것이니까.

 

관광지는 손님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니, 자기 살아있을 동안 돈이나 좀 빨아먹고 끝내자고 생각한다면

애초에 이런 마을이 관광지로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햇살에 피부가 따끔거리긴 해도 느긋하게 앉아 일기 좀 쓴 다음 막 튀겨낸 불같은 고로케를 손에 쥔다.

크림 고로케도 좋고 해산물 고로케도 좋고 고기 고로케도 좋아하는 박애주의자라서

딱히 그 유명한 히다규를 사용했다고 해도 그닥 특출나게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러번 말하지만 그 드높은 위상을 가진 히다규는 제대로 된 고기집에서 비싼 녀석을 먹어야 체험할 수 있지

한개 2천원짜리 고로케에서 일본 최상급 소고기의 맛을 판단하는건 좀 무서운 일이다.

 

그래도 히다규 고로케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고로케가 이거밖에 없어서.

그리고 아무리 가난한 여행자라 핸들 그 지방에서만 '제목이나마' 한정으로 붙어있는 녀석에 손을 대고싶지 않겠는가.

미각이 둔감하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대강 아무거나 맛있게 먹는 성격이라서

히다규 같은 고급육이 아니라도 고기는 맛있게 먹는다. 질이 떨어지는건 뱉어버려도 적당히만 맛있으면.

 

그러니 히다규를 썼던 안썼던, 재료를 직접 섞어서 바로 튀겨낸 이 고로케가 맛이 없을리는 없다.

 

 

 

좀 전에 뭔가 우두두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이커들이 떼마실을 나온 듯 하다.

다행히도 구경간 듯 주인들이 보이지 않아서 슬쩍 한장 담아본다.

 

바이크에 대해 아는게 없어도 이 녀석들 한대값이 왠만한 중형차 정도 한다는 것 쯤은 알 법 하다.

나름 험한 길이라고 해도 원래 바이크가 커브를 즐기는게 재미있다고 하니, 이 사람들에게 이곳 투어는 스릴 만끽하는데도 좋은 곳일 듯.

본인은 이 정도로 큰 바이크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넓직한 사이드백을 떡하니 달아도 전혀 미관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자태는, 자전거 여행경험을 가진 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두시간쯤 버스를 타고 산길을 꼬불꼬불 통과해서 히다 타카야마로 돌아오니 시간은 늦은 6시를 넘어간다.

어제 그 마을 제가 오늘도 이어진다고 하는데,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오늘 여행은 이걸로 끝이라는 기분이 마음속에 드는 이상

무리하게 어딜 더 둘러본다던가 하는 일은 꺼진 불씨에 허무하게 바람을 불어넣는 일인 뿐이다.

 

어째 그 맑고 깨끗했던 타카야마가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네오 LA처럼 느껴지고

나고야에서 버스 한번 타고 온것만으로도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잠들었던 어제에 비해

아침부터 하루종일 걸어다니기만 했음에도 아직 정신은 말짱하다. 취향에 맞는 곳을 다녀온 덕일지 피톤치드의 효능일런지.

 

야행성인 한국민족에게는 아직 초저녁과 같은 시간이지만, 오늘은 시라카와고만으로 충분한 느낌이다.

가볍게 먹거리 좀 사고, 내일 버스 시간표 안내서를 뒤적이며 TV를 본다.

문득 사진 좀 잘 찍혔나 싶어서 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눌러보기도 한다. 낮에는 시안성이 낮아서 그냥 윤곽과 컬러채널만 확인해서

어떻게 찍혔는지 유심히 보지 못했는데, 어두운 숙소 안에서 보니 아주 광채가 번쩍번쩍 하는게, PC로 옮겨서 보면 실망할 듯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고야에서 구입한 책도 좀 읽고 TV도 보고 일기도 쓰고 하면서 하루의 마무리까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보낸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흥분을 가져다 주는 곳은 아니지만, 시라카와고에서의 하루는 내가 열받을 요소가 하나도 없어서

여행중에도 온갖 사념이 머리속을 휘젓는 본인치고는 꽤나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을듯 하다.

 

 

딱히 관광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곳은 아니지만 외곽으로 걸어갈수록 평범한 일본 민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얼마 후엔 이런 곳에서 묵게 되겠지만 아직 실감나지는 않는다. 이 사진을 담으며 괜스레 조금 마음이 답답해진다.

 

특이하다는 점만 빼면 이곳 시라카와고에 서 있는 건물들은 다들 정겹고 아담하다. 주위 환경의 덕을 톡톡히 보는 듯.

 

 

 

정비를 하긴 했겠지만, 이곳에서 상수도 하수도의 개념이 있는건가 약간 궁금하긴 하다.

가끔 이곳에 손을 찰싹찰싹 담궈보는 관광객도 보인다.

 

물의 외견만으로 충분히 깨끗하다는 느낌을 받긴 해도

이런 개울 근처에 피어있는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물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냄새나는 물에는 뭔가 진득진득한 식물들이, 사흘째 야근하며 담배 피워댄 샐러리맨의 눈가에 드리워진 다크서클처럼 우중충한 색깔로 포진하고 있다.

어쩌면 그 식물들은 몸소 환경정화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의 좁은 아량으로는 그걸 보기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다른 갓쇼즈쿠리 가옥과는 뭔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싶었더나, 까페로 사용중인 녀석인 듯 하다.

담벼락을 대신하듯 여유있게 늘어서 있는 화분도 나름 자기주장을 하고 있지만

레이스의 끝자락같은 덩쿨 목걸이가 과하지 않게 까페 뒤쪽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역시 분위기로 먹고 사는 까페라 그런지 남다른 센스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는게 느껴진다.

 

 

 

글쎄, 확실히 매력적인 디자인에 사람 발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유감없이 어필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버스가 2시간도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저기 들어가는건 괜히 아쉬움만 더할 듯한 기분이 든다.

 

좋은 까페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커피 여러잔과 함께 책 반권 정도는 읽을 정도의 시간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으로는

지금처럼 멋진 간판을 뽐내고 있는 시라카와고의 까페를 즐기기에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라는 녀석이다.

여행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시간에 쫓기는 일은 없도록 하고 있어서, 들어가면 쫓길 것이 분명한 까페는 살짝 기피 대상.

 

하지만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아쉬운 기분이 드는것도 아니다. 여행은 갈망하는 것이며 미련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겨울엔 좀 더 일찍 와서 따뜻한 커피로 손을 녹여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또 뭐하는 녀석들인지 모르겠다. 시라카와고가 이렇게 깨끗하다는 데몬스트레이션의 일종인가.

잘들 크고 있으니 확실히 깨끗하긴 하겠는데, 관광객들에게 어필하는 의미 이외의 뭔가가 더 있는 것일까.

 

혹시 이렇게 잘 키우고 있다가 식당에서 관광객 상차림에 올라오거나 하는 것인지.

이 수로 양쪽 끝에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녀석들이 도망갈 수는 없다. 장식용이 아니라면 뭔가 이유는 있을듯 하다.

다음에 까페 들어가면 이런 거나 한번 물어볼까 싶다.

 

  

 

같은 곳을 여러번 찍지는 않는 성격인데, 저 까페에 역시 조금이나마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일까.

괜스레 자리를 떠나기 전 한번 더 둘러보게 된다. 커피가 그리운게 아니라 정말 참 잘 꾸며놨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언뜻 대문 바로앞에 논자락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가옥처럼 보여도, 확실히 까페라는 공간의 자기주장력이 스믈스믈 세어나오는 느낌.

 

2층 창가쪽이 꽤나 인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갓쇼즈쿠리 가옥은 이곳만의 전매특허니 침해하고픈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밖에서 봤을때 기분좋은 까페 분위기는 다른 형태로라도 구성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멋진 까페 탐방같은 잡지에 한번쯤은 실려도 좋은 곳 아닐까.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걷다보니 가끔 관광객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빠지기도 한다.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좁던 길은 그냥 끊겨버리고, 그 앞에는 어떤 민가의 앞마당과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길 위에 있다고 하지만, 왠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빠져나온다.

 

빠져나오기 전에 건너편 가옥의 뒷마당 모습을 한장 담아본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는 않은 이곳 사람들의 좁은 공간.

뒷마당이든 앞마당이든 이렇게 집 주위에 일정 공간이 있으면 그것만으로 사람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듯 하다.

 

뒷마당에 나오자 마자 잘 여물어가는 벼이삭 풍경이 펼쳐지는 농촌생활이라면 꽤나 즐거울 것 같은데.

 

 

 

개인적인 영역이라면 앞마당 가꾸기, 주변 길가 청소하기 정도.

마을 공동체라는 영역에서는 가로수 정비, 도로 청소, 하천가 청소 등등

자본의 핏줄이 땅 속까지 흐르는 도시가 아닌 이상, 시골 마을은 알아서 부지런해져야 하는 일이 많다.

아직도 회람판 돌려가며 팀과 구역을 정해 종종 청소, 수리, 유지 등의 업무를 협동하는 시골 마을은 많이 있다.

 

아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법한 일들도 없잖아 있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디지털 TV 화면에서 물흐르듯 굴러가는 귀족적인 게으름과 전혀 다르다.

풍성하고 맑은 공기를 주는 대신 그만큼의 땀을 흘려야 굴러가는게 진짜 자연이라는 녀석.

 

이곳의 청결도나 정비 수준을 보면, 자연이 그들에게 배풀어주는 것 만큼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남에게 맡기면서까지 바빠야만 굴러가는 도시라는 생태계에 비하면 좀 더 인간적이라 이렇게 정감이 가는 것이겠지.

 

 

 

좀 전에 얼핏 보였던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큰' 갓쇼즈쿠리 가옥인 와다 씨의 저택이 보인다.

앞서 말했든 입장료가 300엔이나 해서 굳이 들어가고픈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저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공짜로 볼 수 있는 전망대 풍경도 원없이 안구신경속에 집어넣어놨으니까.

 

저기서 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들어와 볼 만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다면

나 역시 저 사람들이 창가에 선 모습을 이렇게 담으며 '밖에서 보는 걸로도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갓쇼즈쿠리 가옥이 얼마나 큰지 알아서 대비되어 주니 고마운 느낌도 든다. 창문이란게 그냥 창문이 아니다.

보통 거주용으로는 1층만 사용하고, 위층들은 창고로 사용하거나 방직 등 가내수공업에 사용되었고 하는데

그걸 감안해도 정말 보통 큰 건물이 아니다. 300여년 전에 한 가문의 가족 전체가 모여살던, 작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큰 건물이라는 느낌.

 

 

 

서두르지도 않았고 아쉬움에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지도 않은 산책은

점점 얼핏 시야에 들어왔던 듯한 풍경들이 다시 한번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하며 그 끝을 느끼게 한다.

 

충분히 이곳저곳 둘러보았고, 정감이 가는 풍경에는 5분이고 10분이고 멈춰서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등

관광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부족함이 없는 시간을 보내왔지만, 아쉽다거나 부족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아닌 이 감정은

아마도 '2013년 8월의 시라카와고' 라는 시간의 단면만을 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백이 아닌가 한다.

 

수백 년간 이곳에 순응해 오고 저항해 온 마을 사람들이 남긴 실체적 흔적들은 관광객의 시선을 멈추게 하지만

그 이어짐과 별개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따른, 1년이라는 주기의 흔적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서 되풀이 중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 이어짐을 경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돌아가는 발걸음을 살짝 무겁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단면의 인식이 나의 여행에 대한 머릿속 정의에, 어느 의미에서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끌고 1년동안 일본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틈나는대로 이 단편만이라도 즐기려 애를 쓰는 일반인이 되어 있다.

 

시라카와고는 자연의 권능이 남아있는 곳임에 틀림없고, 그 곳의 흐름을 끊김없이 느끼려면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다못해 다른 시간대의 단편이라도 더 느껴보려고 겨울 방문을 또 한번 생각해 본다.

 

물론 서두를 건 없어서 그게 올해가 될지 내년이 될지 몇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마음속에 메모를 해 두면 어쨌든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잊고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바닷바람의 강인함을 품고 있는 자연이 사람의 마을을 살짝 아플 정도로 감싸안고 있는 모습이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건조 시기에 비해 거대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갓쇼즈쿠리 가옥과 함께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삼나무와 깎아지르는 산맥,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에 번갈아 눈을 빼앗기곤 한다.

 

사진을 담을때도 무의식적으로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 중 한 장면을 프레임 크기로 잘라내어

그 장면안에 들어간 모든 모습, 의식,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기분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생각한다.

풍경만큼이나 욕심을 내었다고 할까, 이곳은 이곳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나의 감성이 초라해 질 정도의 큰 그릇을 가진 곳이니까.

 

하지만 논 가장자리에 살짝 피어있는 수국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단렌즈의 조리개를 최대로 개방하여 한 장을 담는다.

담아내고 싶은 것과 담아내야 할 것, 그리고 그 만큼의 공간을 똑같이 비워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이곳 시라카와고에 압도되어 한참 황홀해 하던 마지막 찰나에 다시 한번 되새겨 낸다.

  

 

이런 더운날 올라가기에는 심히 편안하다고 할 수가 없는 길이다.

멀리서 본 전망대 높이를 생각하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은근히 이 오솔길 경사가 급한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온다.

몸무게 탓도 있고 카메라 탓도 있고. 건장한 사람이라 해도 5kg 짜리 숄더백 매고 오르는게 쉽지는 않을 듯.

 

 

 

그래도 친절하게 계단을 만들어 줘서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지만

왠지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기분에, 후세에 내가 여기 올랐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고 한다.

이렇게 찍어놓지 않으면 또 엄살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출몰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사실 날씨 탓이 가장 컸고, 여기는 그냥 동네 마실 나가는 수준밖에 안 되는 높이긴 하다.

 

 

 

근데 진짜로 좀 힘들긴 하다. 경사가 그리 만만한 편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치는 형태라서

이렇게 사진 한장 담아내는게 오히려 휴식시간이라 느껴진다.

 

훅훅거리는 숨소리와 후두둑 떨어지는 땀방울이 산의 정적을 깨트리고 있다.

다행히도 앞뒤로 나 말고 이곳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좁은 길목에서 사진 찍으며 좀 쉬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노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에서 땀덩어리 본인을 지나쳐 갈 때, 가끔 계곡 너머로 몸을 던지고픈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저 곳을 돌면 확 트인 정상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몇 번이고 배신당해가며 어쨌든 한걸음씩 발을 뗀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서도 느꼈지만, 어쨌든 발을 떼면 언젠가는 끝나는 일.

 

 

 

막상 정말로 평지가 나오고 나니 좀 맥이 풀린다. 사실 땀 좀 흘렸다 뿐이지 조그만 언덕 같은 곳일 뿐.

원래 성터였다고 하는데, 이런 외진 마을 어귀에도 성이 있었나 싶다. 이곳 성터에 대해서는 그리 알아본 적이 없었다.

 

산 위의 공터치고는 확실히 인위적으로 닦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는걸 보면 성이 있긴 있었나보다.

손수건이 흠뻑 젖을 정도로 시원하게 땀 한바가지 흘리고, 그늘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앞에 펼쳐진 전망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전경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는 2~3군데쯤 유명한 스팟이 있는데

이곳은 오솔길을 따라 왔을 때 만날 수 있는, 제대로 된 펜스조차 없는 등산길 도중의 조그만 창문같은 느낌의 스팟이다.

 

가장 유명한 곳도 아니고, 여름의 생명력 덕분에 나무들이 워낙 울창하게 자라서 시야각이 제한되는 불편한 곳이지만

일부러 험한 길 올라왔다는 달성감도 있고 해서 한동안 머무르며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다.

 

가치가 있는 곳이니 그렇겠지만, 왠만한 농촌 역시 한국의 농촌보다 훨씬 정비가 잘 되어있는 이곳에서도

정말 예술적으로 가꾸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절경이다. 사실상 평범한 농촌이 아니긴 하지만.

 

 

 

좀 전에 화사한 커플 둘이서 열심히 사진찍던 그 건물을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좀 새롭다.

논마지기 공간을 살짝 비집고 들어간 녀석인데 어쩌면 저렇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거기다 같은 높이에서 걸어다닐때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돌길로 만들어놓은 농로의 깔끔함 역시 인상적이다.

겉으로는 농촌 마을같아 보이지만, 속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돈 많은 귀족들이 산책 즐기는 곳처럼 어느 한군데 세심히 손을 쓰지 않은곳이 없다.

 

 

 

한 국가와 그곳의 자연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틀림없다.

일본 가옥의 평기와와 저 곧게 뻗은 삼나무가 어울린다면

한옥의 굽이친 기와 형태는 허리를 늘어뜨린 소나무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시에서는 이미 어디가 한국이고 어디가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해져 버렸지만

이런 시골모습만큼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나라별 특색이 사라지지 않는 듯 하다.

 

좋긴 좋은데, 이곳 아이들도 어릴때 나무위에 올라가 놀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어릴적엔 올라가기 쉬운 소나무를 참 수백번도 더 오르내리고 했는데

여기 삼나무 잘못 올라갔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조그맣지만 꽤나 오래된 듯한 사당이 위치한 이곳 전망대에는

사람도 별로 오지 않고, 그늘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어서 땀 식히기엔 좋다.

카메라를 내던지듯이 아무렇게나 퍼질려 놓고 벤치에 앉아서 땀을 닦는다. 손수건을 짤면 땀이 떨어질 정도로 허용량이 오버되고 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앉아만 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서양인 관광객 부부가 이곳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사람들 눈에도 이런 풍경은 꽤나 신선하게 느껴질까. 한국과 일본에 비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산이 많은편은 아니라서

이 정도 산지에 둘러싸인 마을이 그리 흔하진 않을 법 하다.

 

그 부부는 실컷 사진찍고 난 후, 왠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나에게 와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다.

찍어주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본인이 사용하지 않는 캐논 DSLR 이라서 조작이 항상 어색하다.

본인들이 오토모드로 해 두고 나한테 건네줬으니 그걸 바꿀필요는 없을 듯. 그냥 구도만 맞춰서 두어 장 찍어줬다.

받아들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걸 또 붙잡고 '난 위대한 한국인이여~'라고 설명해주기도 귀찮다.

 

내가 그들을 미국사람인지 영국사람인지 프랑스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내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한국사람인지 나미비아사람인지(?) 모르는 것이니, 그걸 그들에게 수정해 줘야 할 의무감 같은거 느끼지 않는다.

 

 

 

이곳부터는 제대로 닦여있는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는데, 가장 유명한 천수각 전망대에는 거대 식당과 가게가 포진해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마을 아래서도 보이는 곳이고, 전망 해치지 않으려고 작업을 다 해놓은 곳이기 때문에 시야가 매우 시원하다.

 

마을 안에서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만들수도 없기 때문에, 이곳 전망대 가게는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체 관광이라면 이 곳을 놓칠수 없으니, 식당쪽에는 벌써 '2층은 예약, 단체손님 전용입니다'라고 써 놓을 정도.

 

전망대에는 쉴 수 있는 의자도 몇 겹이나 층층히 배치되어 있고, 펜스 바로 앞에서는 아무것도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그림같은 시라카와고의 사진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앞에서 대신 사진 찍어주는 사람도 항시 대기중이며

물론 관광객 자신들이 가져온 똑딱이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DSLR로 사람들 찍어주고 출력하며 돈 받는 일도 한다.

 

사진 찍어주면서 '치즈~' 대신에 '시라카와 고~' 하면서 주먹을 하늘로 올리라는 주문만큼은 좀 촌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긴 했지만.

 

 

 

임팩트라고 할까. 어쨌든 마을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곳 천수각 전망대에서 사진을 담지 않는 관광객이란게 과연 현실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귀찮아 죽을것 같은 렌즈를 화각별로 담아온 이유의 절반이 이곳 전망대를 위해서였으니까.

광각으로도 담고 망원으로도 담고,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전망대 공간이 상당히 넓고

단체 관광객은 잠깐 구경하고 단체사진 찍고 훌쩍 가버리기 때문에

시간이 남아도는 홀로여행자는, 무제한 회전초밥집에 앉아있는 기분으로 원없이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참 뭐랄까, 이런 폭발적인 자연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인공미의 깔끔함을 유지하는 이쪽 사람들의 특성은 신기하다.

깨끗하고 깔끔한 건 좋은데,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 사는 냄새'라는게 좀 적다고 해야 하나.

사실 그거 조금만 나쁘게 말하면 게으르고 지저분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어서 쉽게 적용하기는 어려워도

확실히 한국에 이런 자연의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면, 지금 이 모습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를거라 생각한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수십장도 넘게 담았지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은 들지 않는다.

2D 화면에서 사진 구경하는 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더 많이 올린다고 이곳을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마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면 역시 직접 가서 느끼는게 제일 좋은 방법.

본인은 이 모습을 보면서 겨울의 시라카와고를 상상하고 있다. 눈으로 덮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을까 싶고.

사실 적지 않은 관광객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여기까지 태워주는 버스 있대!'

물론 본인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돌아보는데 내연기관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아서 걸어 올라왔다.

 

겨울엔 방금 그 길 오르다가 인생이 좀 꼬일수도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고민중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긴 했는데,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지금도 배가 눈꼽만큼도 고프지 않다.

여행중에는 그리 많이 먹는편이 아니긴 해도, 이만큼 더운날 돌아다니고 있어도 허기지지 않는다는건 좀 신기하다.

그래서 전망좋은 전망대 앞의 식당에도 들어가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시원한 음료수나 하나 뽑아 마신다.

 

타카야마로 돌아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2시간 30분쯤 남았는데, 시간은 충분해도 뭔가 가게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결론은 대충 납득이 간다.

시라카와고에서는, 더운 여름날 에어콘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추운 겨울날 살짝 따뜻한 가게로 들어가는게 더 어울리기 때문에.

 

여름이 본인에게는 참 버티기 힘든 날이라는게, 건물 안의 인공적 에어콘 바람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울엔 난로나 보일러 강하게 돌리지 않아도 집이라는 건물 자체가 어느정도 단열효과를 내기 때문에

들어가 앉아도 살짝 추워서 손바닥을 한두 번 비벼주는 정도가 딱 좋다. 거기서 식사 한끼 하면 몸이 포근해 지니까.

그런 면에서, 겨울이라도 난로나 히터 팍팍 틀어버리는 가게는 들어가기 싫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휴식 취하고 나서 반대쪽 길로 내려간다. 반대쪽은 자동차로 통과할 수 있을만큼 반듯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

마을 어귀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훨씬 낮다. 올라올 때 이쪽으로 왔으면 몸은 편했을 듯.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길은 아니라서, 내려올 때 느긋하게 내려오는 쪽으로 사용해도 불만은 없다.

 

진짜로 물이 풍부한 곳인지, 내려가는 도중에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놓은게 보인다.

 

 

 

마을 어귀를 빙글 돌며 내려오는 길이라서, 마을 속에서 헤엄치며 담던 사진의 시각과는 또 다른 맛의 결과물이 나온다.

슬슬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지, 이런 길에서 숨듯이 걸어가며 저 너머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일종의 휴식과도 같은 시간.

 

 

 

이제 왔던 길과는 다른 길로 다시 한번 마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아내면

그리 넓지 않은 시라카와고 여행은 끝이 난다. 그림같은 풍경과는 별개로 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를 기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식욕이 안생기는데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서는 설사 농사터가 있다고 해도 땅이 아까워 이렇게 꽃밭을 만들기는 힘들 텐데.

판매용으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뒤뜰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만 자연스럽게 자라는, 약간 무질서한 꽃들의 모습이 더욱 반갑다.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꽃밭을 키우는 갓쇼즈쿠리 가옥 역시 살짝 힘이 풀린듯한 모습이 더욱 잘 어울린다.

 

 

 

좋은 마을은 물이 맑은 마을이라는 말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하는 진리.

좋은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과 나쁜 물을 마시고 자라는 식물은 생각보다 차이가 많이 난다.

애초에 나쁜 물을 마셔도 자라는 녀석들은, 그만큼 터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녀석들이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진드기나 벌레 잔뜩 꼬이는 녀석들보다는 좀 순해보이는 녀석들이 더 마음에 드는것도 사실.

 

이곳은 자연 환경에 비하면 기분나빠질 만한 벌레가 별로 눈에 안 띄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물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공원처럼 인위적으로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로

자연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력까지 느껴지는 이곳 풍경은, 조화라는 면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여행에서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자연 풍경과 사람 사는 모습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이곳 시라카와고는 그 두가지가 배합되는데 있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훌륭하다.

관광객들이 오고가며 감탄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남겨놓은 인간의 모든 흔적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예쁘게 보이거나 하는 인위적인 색이 아닌, 순수하게 생활하기 위한 노력과 조화의 흔적이라는 점이 말이다.

 

사람들이 풍경에서 느끼는 평온함과 아름다움이란, 결국 원래 그렇게 있던 것들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긴 한데

일본 내부적으로는 그 중의 몇몇 사찰이나 가옥들이 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그런 곳은 관람하는데 대부분 입장료가 필요하다. 유지 보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민가원에서 500엔 내고 구경하고 나니, 개별 건물에 각각 요금내고 들어가서 구경하는게 왠지 시들해진다.

내부도 실컷 구경했고, 마을쪽 문화재들은 사람들 밀도가 높아서 흥미가 동하지 않는 이유도 있고.

 

 

 

문화재를 구경한다는 감각은 민가원에서 충분히 만끽했고

이곳에서 느끼는 것은, 이런 문화재같은 가옥 안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다.

 

갓쇼즈쿠리 방식에다가 물받이를 포함한 현대식 처마가 퓨전된 하이브리드 가옥의 모습도

보수용, 땔감용으로 쌓아놓은 장작 무더기도

관광객들 지나다니는 길을 피한 구석에 살그머니 걸려있는 빨랫감도

전통성을 지닌 문화재와는 다른, 현실감을 느끼게 해 주는 좋은 소재들이다.

 

 

 

도시 입장에서 보면 이런 자연에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점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해도

중간중간 뒷마당에 주차중인 자동차들이 이런 곳에서는 오히려 괜찮은 데코레이션이 된다고 할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해 줘서 나쁘지 않다.

 

문화유산이니 뭐니 해도 주민들의 편의성을 아예 무시해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딱딱한 인상을 줄 테니까.

 

도로를 주욱 걸어가다가 옆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뭔가 굉장히 큰 갓쇼즈쿠리 가옥의 옆모습이 살짝 보인다. 푯말이 세워진 것으로 봐서 중요문화재에 들어가는 보존용 건물인 듯.

루트가 단순한 곳이어서 저쪽 길은 돌아오는 길에 둘러볼 예정이라, 가기 귀찮아 망원으로 찍어본다.

 

뭔가 유명한 건물인 듯. 아직까지 별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민가원에 있었는데 가장 큰 건물은 마을에 위치해 있다. 가다 보면 보일텐데, 혹시 밸런스를 의식한 것일까.

 

 

 

좀 특이하긴 하지만 어쨌든 시골집, 자그마한 논밭과 짜투리 비닐하우스, 낡은 전신주와 구식 전등, 아담한 자동차.

단어의 나열만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마을임에도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왜 이렇게 셔터를 누르고 싶어지게 만드는지.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지만, 이상의 세계에서 떠오르는 농촌 풍경과 상당히 가까운 이미지를 현실에서 감상하고 있다.

 

 

 

일반적인 거주 문화에서 본다면 한국은 목조 뼈대에 점토, 석회를 이용한 복합건물이 발달했고 일본은 목조 주택이 발달했다.

과학적, 기술적인 측면에서 객관성을 두고 파악한다면 한옥 쪽이 더 우수한 면이 많은데

집이라는게 지리적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개념이다 보니, 사실은 다들 자기 지역에서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집을 만들어낸 게 정답일 듯.

 

일본의 전통 가옥은 기둥부터 벽면까지 거의 모두 목재를 사용하는데

온돌과 흙벽으로 무장한 한옥에 비해서 거주의 안락함 면에서는 확연히 떨어지지만

반대로 내구성과 공간 확보에는 강점을 보인다. 계절변화가 심한 지역에서도 목재가 유리하고.

 

한옥이 목재로만 지은 집보다 더 튼튼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반대다.

한옥은 담이나 벽, 지붕 사이에 현대의 시멘트 대용으로 복합 점토나 회반죽을 사용하는데

이런 재료들은 습기를 매우 잘 머금고, 계절에 따라 부피의 변화가 심하다.

연결 부위가 목재인 이상 그것과 오래 접해있으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집 전체가 휘어진다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

 

그외 반대로 일본은 목재를 사용해 중량이 가벼웠으므로 일반 가정집에서도 2층 3층 주택을 짓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한옥은 온돌의 무게가 워낙 무거워서 복층 주택을 짓기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나는데는 온돌 없는 복층주택보다 온돌 있는 단층주택이 월등히 안락하고 편안하다. 복층이 필요가 없는 것.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멀지 않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다른 지형, 기후, 자재, 문화 등의 요인으로

모양만 비슷하다 뿐이지 판이하게 성격이 다른 거주 환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도쿄 정도 가면 한국하고 별 다른것도 없네 싶겠지만, 일반 거주지역 골목으로 한걸음 가 보기만 해도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갓쇼즈쿠리 가옥과 현대식 주택이 공존하는 시라카와고의 모습은, 특히나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특색이 묻어있어서 관광온 기분이 난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꽃망울부터 준비하는 성격급한 녀석이 있다.

덕분에 묘하게 정갈한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고맙긴 하다.

 

 

 

그냥 지나가길래 과연 이 카메라로 담을 수 있을까 하며 셔터 눌러봤다.

원본 크기에서 반쯤 잘라낸 사진인데, 그래도 대강 디테일은 남아있어서 다행.

 

이 여행을 떠나기 전, 건물 안으로 들어와 기진맥진한 참새 한마리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잡아서 놔주려고 해도 도망가느라 바쁘고, 혼자서는 어디가 창문인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패닉 상태였다.

꽤나 지친듯 해서 조금만 다가가면 잡을 수 있을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는데

마지막 순간에 후다닥 날아올라서 도망가더니, 그대로 닫혀있는 아크릴 창문에 들이받고 떨어져 버렸다.

내 두 손 안에서 생명이 마지막 두어 번의 가쁜 숨을 내쉬던 경험은 처음 해본듯 하다.

 

참새는 아니지만, 이 녀석은 적어도 창문에 머리를 들이받아 뇌진탕으로 생을 마감할 일은 별로 없을테니

그것만으로도 이 마을이 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정말 무덥다. 각오는 했지만 이런 여름날에 야외를 하루종일 걸어다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몸만 왔으면 별것 아니었겠지만, 어깨에 맨 카메라 장비만 5kg는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시라카와고의 공기가 도시와는 전혀 다른 상쾌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입에서 육두문자가 쏟아지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한국은 지금 농촌이라 불리는 지역의 상당수가 10km 이내에 금속공장이나 화학공장 등

오염 폐기물 처리가 극히 어려운 산업체와 인접하고 있다. 도시에서 가까우면 허가와 동의받기가 정말 힘들어서.

시골이 깨끗하다는 건 이제 한국에서는 옛말이 되어가는 듯 하다.

 

공장이고 뭐고, 이런 전통 한가지만으로 마을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주민들은 배운게 없고 지원해야 할 공무원들은 자기 호주머니에 들어올 게 없으면 극도의 게으르니스트가 되어 버리니.

이런 곳에 올때마다 한국에서 이런 곳 찾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아쉬움이 들지 않을때가 없다.

 

하다못해 관광객들이 고로케 사먹는다고 도로에 삐져나와있어도

경적 한번 울리지 않고 슬금슬금 돌아가는 자동차만큼이라도 배워보면 안될까 싶다.

 

 

 

다리를 건너 마을 입구에서 전망대 쪽으로 걸어가면 거의 왠만한 중요문화재는 다 구경할 수 있는데

이 와다(和田)가문의 집은 시라카와고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유명한 녀석이다.

오래되기도 약 300년 정도로 오래되었고, 크기가 현존 갓쇼즈쿠리 건물 중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당연히 그냥은 못들어가고 입장료가 300엔이다.

그 아름다운 민가원을 전부 다 둘러보는데 500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 한 채 관람에 300엔이 든다는 건 좀.

사실 이곳에서 기대한 것은 건물 내부의 모습이 아니라 이 갓쇼즈쿠리 건물이 마을과 조화되어 있는 풍경이었으니

굳이 들어가고픈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밖에서 봐도 참 크다는 생각이 들긴 하니까.

 

 

 

하이브리드 갓쇼즈쿠리 가옥도 생각외로 밸런스가 좋은듯 하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 와서 프라이버시가 좀 위태위태하겠지만

대인관계에 부담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곳에서 살아도 좋을듯 하다.

 

이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순백의 세계 안에서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저 멀리 논마지기 안쪽에는 창고로 보이는 건물이 처연하게 서 있다.

시라카와고가 다른 마을과는 충분히 고립된 곳이지만, 건물들이 상당히 조밀하게 밀집해 있어서

마을 내부는 꽤나 북적북적한 느낌이다. 이렇게 홀로 서 있는 건물 모습이 오히려 새로워 보인다고 할까.

 

그림같은 풍경이라고 생각하는건 나 뿐만이 아닌지, 좁은 농로 사이를 산책하는 커플 한쌍이 시야안으로 들어온다.

양복입은 단정한 남성과, 폭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하늘하늘한 흰색 스커트를 가끔 휘날리는 여성이 나란히 걸어가는데

옷차림으로 봐서는 젊다기 보다는 30대 중후반 즈음의 적당한 나이인 듯.

 

한동안 계속 저 창고 사이에서 알짱거리며 사진 찍고 있길래, 자연스럽게 본인 카메라에도 담겨 버렸지만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세간에 널리 알리고 싶지는 않으니 사진은 컴터 하드안에만 보관하기로 한다.

 

 

 

시골 생활의 좋은 점중 하나는, 마음껏 손가는대로 식물을 키워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는 좁아터진 베란다와 항상 일정 각도로만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식물들이 답답해 하는것 처럼 보이기 일수고

요즘엔 아예 베란다를 터 버리는 일도 많으니, 동물원에 갖힌 코끼리를 보는 기분마저 들기도 한다.

 

저렇게 떡하니 화분 늘어놓고 알아서 잘 자라는 꽃들 모습을 보니, 사람 자라는 데도 좋은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라카와고는 그닥 맛있는 요리가 없다고 소문을 들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물좋고 공기좋은 것과는 별개로, 이런 외진 관광지는 밖으로 새는 손님이 없기도 하고

장인 소리를 들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요리사가 이곳에 머물며 어중이 관광객 상대할 일도 없으니.

 

그와 별개로 여관 요리는 상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여관의 요리는 자신들의 프라이드나 마찬가지라서.

이번에 원래 묵을 예정이었던 여관은, 주인장이 사냥꾼의 후예라서 지금도 산과 강에 나가 직접 잡고 기른 재료로 식사를 만들어 준다는데

예약이 되지 않아서 조금 아쉽긴 하다. 물론 그만큼 여관에 머문다는건 지출도 생각해야 하는 일이긴 해도.

 

 

 

주민들의 소일거리라고 할까, 마데인 차이나의 걱정을 무릅쓸 필요 없이

이곳의 선물가게에 전시된, 대나무나 싸리를 엮어서 만든 제품들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다.

굳이 중국 것을 수입해 만들 필요도 없이 예전부터 만들어 오던 것들이고, 순간의 차익을 위해 마데인 제품을 들여오는 순간

이곳의 선물시장 구조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지도 모르니까.

 

시골 마을 사람들의 단합심이랄까, 나쁘게 말하면 왕따정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집단에서 빠져나가서는 살기 힘든 생활공간 덕에

여전히 이런 수제생산품은 원산지를 잘 지켜나가고 있는듯 하다. 그것과 별개로 아동용 모자 참 인상깊다. 핑크펭귄인가?

 

 

 

자연에 둘러싸인 시라카와고라지만, 이런 최첨단스러운 기술도 가지고 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길가 골목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 일렬로 배치되어 그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보통 이곳 사람들이라면 히다 타카야마와 마찬가지로, 바가지를 이용해 물을 퍼서 뿌릴듯 한데

이렇게 자동으로 물이 나오는 것은 더위 해소 외의 다른 이유가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대구시 전체를 동서로 관통하는 달구벌 대로의 몇몇 구역에도 이렇게 중앙성 내부에 물이 나오는 장비를 설치해 놓았다.

예전 국제육상대회를 위한 도시정비계획에 들어있었던 녀석인 듯 한데, 이번 여름이 워낙에 더워서 그런지

환경 미화와는 관계없이 대낮에 한번씩 물이 나와서 도로를 식혀주곤 했다.

 

기술 발전이 대단한건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지면에 얌전히 박혀있는 모습이 시라카와고의 모습에 위화감을 더하지 않는다.

 

 

 

8월 초순에 방문한 시라카와고의 모습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쯤이면 슬슬 들판이 황금 비스무리하게 변해가기 시작할 만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위도도 좀 높고 산 속의 마을이라 추수시기는 좀 늦어지겠지만, 10월 중순이면 이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런지.

 

그것과는 별개로, 겨울의 시라카와고는 언제쯤 가볼까 하고 한여름 여행중에 벌써 고민중이다.

 

 

 

본인같은 초보도 이런 사진 담아내는 것을 보면

실력 좀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가서 얼마나 굉장한 사진을 뽑아오는지 상상이 갈 듯.

 

아무리 시간이 느긋하다고 해도, 사진을 잘 담기 위한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이런 곳에서 눈과 손이 이끄는 대로의 감성을 사진에 담아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부러 여관까지 잡아가며 하루정도 머무려고 했던 곳인데.

 

사진에 대한 아쉬움이야 뒤로 넘기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걸어도 눈에 거슬리는게 없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어느 정도 계속 걸으면 갓쇼즈쿠리의 향기가 남아있는 마을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평범한 시골마을이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그쪽에도 관광객을 위한 여관이나 민박, 가게등은 늘어서 있지만, 마을 중심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관광지라는 건 결국,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니까.

 

조금만 더 가면 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열기 넘치는 도로가를 걸어가는데

몇몇 건물에서는 '외부자본으로 들어오는 호텔 결사반대!' 라는 플랫카드를 걸어놓은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 오기 전 히다 타카야마에서도 수많은 체인 호텔을 보며 느낀 점이었지만

숙박업이란 게 관광지 주민들의 생계수단이자 파이가 큰 장사거리다 보니, 힘있는 세력들이 눈독들이지 않을 리가 없다.

타카야마와는 달리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된, 고립된 시골마을인 이곳이라서 아직까지는 숙박업의 규모가 제한되고 있는 듯 한데

사실 돈이 얽히기 시작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숙박업을 확장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문화유산지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도, 외부 자본의 입장에서는 숙소와 시라카와고를 잇는 셔틀 몇대만 있으면 별 문제 아니다.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속에 생활하고 있어도, 자본주의 세상에서마저 고립될 수는 없나보다.

실제로 교통이 워낙 불편하고 숙소도 비싸고 제한된 시라카와고라서 불만을 가지는 관광객도 없지 않으니

외부 자본이 들어오면 관광의 편의성 면에서는 환영할 사람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어느 게 좋은 방법일지. 앞으로 시라카와고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런지.

 

무서운 플랫카드를 보며 조금 복잡한 심정으로 걸어다가 보니, 조그만 샛길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 녀석이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인 듯. 생각보다는 좁고 험하다.

마을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은 두 군데가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제대로 정비된 길이고 하나는 아마 이 산길일 것이다.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도, 올라갈 때나 내려갈 때나 같은 길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아서

어깨에 맨 카메라를 좀 더 단단히 둘러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본다.

 

민가원을 나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온다. 아침보다는 월등히 사람이 많다.

그리 짧지 않은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저 다리를 보니 이제부터 진짜 시라카와고 둘러보기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남의 다리'라는 의미를 가진 데아이바시(であい橋)라는 긴 다리는, 튼튼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사람이 지나가면 아주 시원하게 흔들흔들거리는 녀석이라, 조금 무서워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갓쇼즈쿠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시라카와고의 풍경은 언제나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삼나무라는게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는 녀석이라,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산의 모습도 사실 직접 보면 꽤나 느낌이 다르다.

곧고 높게 뻗은 침엽수가 높은 밀도로 서식하는 일본의 산은 한국의 산보다 머리칼이 더 풍성해 보인다고 할까.

나무의 높이와 밀도 때문에 지면이 거의 보이지 않고, 산이 좀 더 거대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풍경을 보니 무심하게도 목숨을 잃은 한국인 등산객이 또 생각난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여기는 외국인데 말이지. 한국의 산과는 분명 다르다.

 

 

 

렌즈 갈아끼우는게 아무리 귀찮아도 여기서는 그만두기가 힘들다.

온통 자연으로 흘러넘치는 이곳에서 굉장한 인공미를 자랑하는 녀석이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리를 바로 건너기가 아쉬울 정도의 경치 훌륭한 장소가 여기저기 있어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본다.

 

수량에 비해 폭을 널널하게 잡아높은 곳이라, 물이 살짝 적어보이는 강이 흐르고 있지만

가까이 가 보면 의외로 무난한 물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내려가도 문제 없는 듯, 사람들이 여기저기 강가를 거닐고 있지만

강가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다가는 마을 둘러보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아서 그냥 카메라로 당겨보기나 한다.

 

 

 

저 멀리 언덕 위에 건물의 모습과 함께 꼬물딱거리는 사람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시라카와고의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명한 전망대. 원래는 성의 천수각이 존재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온 사람중 저기서 사진 담지 않는 사람은 없을거라 확신해도 좋을 만큼, 세상 어떤 시라카와고 관광 정보에서도

거의 동일한 구도의 사진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베스트 스팟이 그냥 딱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올라가려면 힘좀 써야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냥 걸으면 별 문제 없는 높이지만 카메라 장비가 무거워서.

 

 

 

하늘도 더할 나위 없이 내 취향이다. 구름 한점 없는 푸르름보다는 이런 모습이 훨씬 좋다.

밑에 살짝 보이는 억새지붕은 방금 전까지 둘러보고 있었던 민가원 쪽 건물의 모습.

 

관광 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람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바쁘게 다리를 건너야 할 텐데

혼자 오다보니 왠지 다리를 건너지 않고 건너편에서 어물쩡 거리는 것 역시 일종의 특권으로 느껴진다.

사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해서, 그냥 주변만 산책하며 걸어다녀도 서너시간 정도는 거뜬히 즐길 수 있을 법 하다.

 

 

 

DSLR 급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동양인 여행객은 상당수가 중국인이다.

일본 사람들은 똑딱이 아니면 미러리스를 많이 들고 다니는 듯.

서양 관광객은 DSLR이긴 한데 보급형 조그마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카메라 가지고 자랑할만한 실력은 아니라, 본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도 그리 당당해지진 않는다.

화각에 대한 욕심은 또 있어가지고 커다란 렌즈를 달아 다니고 있으니.

 

망원으로 후다닥 찍어버리면 거리 덕분에 사람들 눈치채지 않고 찍을 수 있기도 한데

자연스러운 사진이 좋다고는 하지만 역시 좀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것도 아니다. 세계화 시대라 어디서든 이 블로그 접속이 가능할테니.

그래도 뭐, 지난번 여행때 겪었던 모 축제 영상에서 본인이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떡하니 걸려있는 걸 보니

이런 곳에서 슬쩍슬쩍 찍히는 건 큰 문제 없는건가 생각하며 합리화를 해 본다.

 

 

 

바람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라 거기에 실려가는, 엷지만은 않은 구름이 만드는 그림자의 명암은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 한동안 시선을 멈추고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 준다.

 

무지개빛 스펙트럼뿐 아니라 그 양과 세기만으로도 프리즘처럼 반짝이는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모습은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리는 액션 페인팅 같은 느낌이다.

게르니카 같은 큰 작품들을 직접 볼 떄의 위압감이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리가 생각보다 높고 꽤나 많이 흔들려서 약간 두근두근하긴 해도

하단부가 워낙 튼튼하게 보강되어 있어서 그냥 재미로 넘길만 하다.

 

가능한 한 지나가는 사람들 방해가 되지 않게 옆으로 물러서서 이리저리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강의 모습을 보니 세삼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곳이 '천혜의 비경'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간다.

 

물론 환경이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이곳은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이다.

인류의 생활이 퇴적층처럼 시간을 걸쳐 쌓이며 만들어 간,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를 가진 곳이지

그랜드 캐년이나 장가계처럼 자연의 힘과 순수성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

갓쇼즈쿠리 가옥과 푸르른 산맥만 줄창 바라보다가 강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사람의 힘으로 이것저것 꾸며진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치수 공사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제외한 부분에서는 가장 인공미가 느껴지는 듯 하다.

 

 

 

물론 자연 경관도 빼어나기 그지없는데, 이곳의 자연은 인간과의 조화로움이 훌륭한 평가를 받는 것이고

야생에 가까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사람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모습은 의외로 상냥해진다. 이곳도 그런 풍요로움과 포근함이 느껴지지만

워낙 보기가 좋아서일까, 문득문득 홋카이도의 시레토코가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쪽은 세계자연유산이라 정말로 야생을 그대로 간직중이라서.

이것도 좋은 의미에서의 아쉬움이라 다행이다. 시레토코를 생각나게 할 만큼 이곳 풍경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다리를 건너면 마을 입구를 알리는 소박한 토리이(鳥居)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의도적인 연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을은 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나무숲으로 시야가 막혀있어

다리를 건너서 이곳에 도착하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도 든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국경의 긴 터널을 벗어나자 눈의 나라였다) 라는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첫 장면이 워낙 유명해서, 이제 일본인의 유전자 속에 그 심상이 박혀버린걸까.

장소와 장소 사이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의 극적인 심상 변화를 실생활에서도 구현해 놓은 듯한 이곳 시라카와고의 입구.

 

날씨도 좋고, 세계 어디서나 한창 연휴 시작중일 시기라 사람이 적지는 않은 편이다.

벌써 구경할거 다 하고 돌아가려는 사람도 있고 더운 날씨에 땡기는 빙수를 그늘에 앉아서 퍼먹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은 빙수 종류가 꽤나 명확히 갈리는 편이데, 밖에서 간단히 사 먹는 빙수는 얼음에 달콤한 식용색소만 뿌른 녀석이고

까페에서 메뉴로 나오는 녀석은 단팥, 떡, 과일 등등 다양한 데코레이션으로 무장한 녀석이다.

 

까페에서 돈 좀 주고 먹는 빙수는 일단 얼음 갈아내는 수준부터 굉장한 녀석들이 많아

TV에 소개되기도 할 정도의 유명 빙수 얼음은, 마치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듯 얼음을 만들어 겨우내 보관하고

여름이 되면 출하하는 장인정신의 산물인 녀석도 있다. 1년에 단 한번만 먹을 수 있는 비단같은 식감의 얼음이라고.

 

본인은 식용색소 넣은 얼음조각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이런 곳에서는 빙수를 잘 먹지 않는다.

 

 

 

갓쇼즈쿠리 가옥의 밀집도만으로 따진다면 좀 전의 민가원이 훨씬 높다.

실제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기 때문에 전부 갓쇼즈쿠리 가옥에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처음 마을로 들어오면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본 시골의 마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생명력 넘치는 환경이 주위를 감싸주니,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 굉장히 특별하게 보인다.

 

 

 

강설 대비책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고, 농촌 마을역시 핵가족화가 가속되고 있는 요즘이라서

몇몇 갓쇼즈쿠리 가옥들은 지붕만 억새일 뿐 거의 일반적인 현대식 주택의 형태와 닮아가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절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었지만

정작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혹한 자연에 힘들게 맞서고 있었고

근대화 이후 빠르게 건축 기술이 발달하자 개조되거나 버려지는 갓쇼즈쿠리 건물도 늘어갔다.

 

1976년 중요전통건물보존지구로 지정되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 곳은 현대와 과거의 숨가쁜 발전상의 중간 즈음에서 시간이 정지된 듯한,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있는 생활 습관이 발현도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고립된 마을일수록 사람들 손재주가 좋다. 뭐든 스스로 만들고 수리해야 했으니까.

지금처럼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 발전한 마을이라도, 대대로 내려오는 습관은 남아있는지

여전히 시골 사람들은 필요한 거 직접 만드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장담하는데 이 폭포형 음료수 냉장연못(?)은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들었으리라.

더운날 보고 있으니 참 시원해 보이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 관광지가 원래 그런데다가 시라카와고는 교통도 불편하니 어쩔 수 없다.

 

지불은 가게 안의 레지에서 해 달라고 적혀있다.

그냥 가져가 버리면 어쩌나 싶은데, 관광지의 격식이라고 할까, 그런 짓을 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만한 곳이 있는 반면

왠지 사고치거나 비행한번 해 볼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묘한 경직감이 느껴지는 관광지도 있는 법.

 

 

 

자연 풍경이야 어느 계절이나 아름답지 않을 때가 있을까만은

시라카와고의 특징인 갓쇼즈쿠리 가옥의 특이성을 생각해 보면,

이곳은 다른 정원이나 시골마을과 달리 가을의 정취가 상대적으로 덜할 듯한 느낌이 든다.

사방에 침엽수가 많고, 눈이 내리기 전의 갓쇼즈쿠리 가옥은 마치 털갈이 전의 북방여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것만 같아서.

아마 논밭에서 익어가는 황금빛 곡식들의 모습이 그나마 최고의 계절이라는 가을의 면목을 세워주지 않을까.

 

물론 가을에 와 본적이 없으니 그냥 상상일 뿐이다. 이 풍경을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갓쇼즈쿠리 가옥의 상당수는 민박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기 어려운 이곳에서 여행자들이 머물고 싶은 곳이라면 단연 갓쇼즈쿠리 가옥일테니까.

본인은 쿄토에서 옛 건물 민박을 실컷 즐겨봤으니 충분히 실감했지만,

이런 가옥은 체험적으로 숙박해 보기엔 좋지만 편리함과 편안함을 추구하긴 힘들다.

방음시설 전무에, 화장실 욕탕은 시간별로 공동 이용이니까. 좋은 점은 화덕에 둘러앉아 모르는 사람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것 정도일까.

숙박시설이라 보다는 방 딸린 인터내셔널 까페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사람 사는 세상이야 다 그렇겠지만, 관광지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다.

관광객과 현지 주민들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서로서로 얻을 걸 얻어가는 관계이기 때문에 배려심 역시 동등한 레벨이어야 한다.

 

관광객들이야 뭐, 쓰레기 버리지 않고 낙서하지 않고 돈 좀 많이 써주고 가는것 정도겠지만

이쪽 사람들이 관광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많고 세세하다. 특히 재화를 판매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판매 전략 자체가 공격 수단인 동시에 관광객에 대한 배려로도 이어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보기 좋게 진연될 상품들, 호기심을 끌어들일 마스코트의 배치, 가게 주변의 깔금한 청소 등등

여기까지가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의 배려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에는 마음에 드는 또 한가지가 있다.

2층 창문 옆의 에어콘 실외기 설치 장소를 이곳 분위기가 잘 맞는 나무 판대기로 둘러싸 놓은 점.

크게 드러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발견하면 뿌듯한 배려심이

나같이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은 맨홀뚜껑에 특징 집어넣는게 관광지에서는 거의 일상화 되어 있다.

내 생각에, 전국 관광지에 놓여있는 다양한 맨홀 뚜껑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관광상품화 하면 꽤 잘 팔릴것 같은데.

500원 동전크기로 만들어 놓으면 다녀온 관광지만큼 전리품이 늘어가니, 관광청 같은 곳에서 시도하면 어떨까 싶다.

 

 

 

민박집은 그냥 가정집을 살짝 개조만 해 놓은 모습이라서 부담이 없고 정겨운 느낌이다.

단지, 이런 곳의 이득을 극대화 하려면 적어도 해당 국가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게 좋다는게 함정.

 

본인 경우엔 비슷한 민박집에 들어가서 처음에 아주머니한테 말 잘 터놓으면

외국인이 말 잘한다는 징검다리 효과 덕인지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해 주시기 때문에

맛있는 것도 하나 더 챙겨주시고 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일어난다.

 

한국의 시골이나 일본의 시골이나 근본적인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 나이드신 분들은 의외로 말상대가 없어서 쓸쓸해 하신다.

 

 

 

손님이 사용하는 민박이지만, 동시에 평생을 생활하는 자기 집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민박들의 분위기는 더없이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있음을 느낀다.

꽤나 더운 여름인데도 아직 제대로 덩쿨이 자라지 않았던 게 좀 신기했지만

워낙 빨리 자라는 녀석이니, 한 1주일만 지나면 시원한 차광막이 하나 마련될 듯 하다.

 

교통이 워낙 불편한 곳이라, 버스로 오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미가 없지만

자가용으로 민박하러 오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에 주차 문제는 나름 고민을 하게 만든다.

다리 건너기 전의 버스 정류장 옆에는 꽤나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자가용으로 온 관광객들은 단순히 시라카와고 마을 한 곳만 둘러보는게 아니라

그쪽 계곡길에서 이어지는, 자동차 없이는 가기 힘든 거리의 천연 온천여관이나 명산 트래킹 등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민박집에서 제공해주는 주차장을 사용하는게 제일 편리한데, 장소가 장소다 보니 그런 주차장은 매우 협소하다.

 

2011년에는 그 탓에, 농지로 등록된 땅의 일부분을 주차장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적발된 민박집이 신문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전통가옥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농지의 용도변경 역시 철저한 조사를 통한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곳이다.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시라카와고의 거리는 단순하다.

자동차가 다니는 중앙 도로와 그 옆에 난 자그마한 산책길 두어 개가 전부.

 

이곳 큰길로 나오자 비로소 관광객들이 생기있게 돌아다니며

그런 일말의 번잡함을 포용하고도 남는 푸근한 흑갈색 건물들과 푸른 산덩어리가 저 멀리 펼쳐져 있다.

가게가 많지만 물건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고,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눈 속에 각인시키려고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가 본다.

 

날씨는 점점 맑아져서 아침의 잿빛은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도시와는 향기가 달라서 아직까지 기분이 그리 나빠지지 않지만, 요즘 몸이 몸같지 않아서 살짝 걱정 되는것도 사실.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려고 천천히 느긋하게 이동중인데, 그래도 숄더백의 무게만큼은 어쩔 수 없다.

가지고 온 세 개의 렌즈중에서 원래는 50mm 단렌즈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렌즈 갈아까우는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24mm 단렌즈와 70-300mm 줌렌즈 두개만을 주력으로 사용중이다.

중간 화각은 대강 이런저런 방법으로 때울 수 있지만 광각와 망원은 렌즈빨이 너무 강하다.

 

 

 

민가원이 귀중한 볼거리들과 압도적인 전원 풍경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규모면에서 그리 큰 편은 아니라 사진찍으며 느긋하게 둘러봐도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날씨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제 슬슬 시라카와고의 진짜 모습을 구경하러 가 봐야 할듯.

 

히다 타카야마를 왕복하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기 싫으면 어쨌든 시간만큼은 잘 지켜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아직 4시간 넘게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시라카와고 정도의 마을은 조금만 방심해도 시간을 잊어버리는 무서운 곳이니 조심해야 할 듯.

 

 

 

관리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입장료 받을 만큼은 꾸며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입장료 받는 일본의 정원도 산책로로서 훌륭한 구성을 이루고 있지만

이곳 민가원은 산책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산책하기에 모자란 점이 없는 곳이다.

억새지붕 위에 돋아난 새싹들의 모습만 봐도, 정통 정원의 기계적 예리함마저 느껴지는 인공적 자연미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언덕을 살짝 돌아서 내려오면 보이는 조그만 집은 방앗간인 듯 하다. 물레방아와는 다른 단순한 방식.

일본식 정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대나무 소리 통통 울리는 그 방식과 똑같다.

소리를 내기 위한 조합이 아니라 곡식을 빻기 위한 절구통이 반대쪽 끝에 구비되어 있을 뿐.

 

물론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구동되고 있다. 저 곳에 물이 가득 차면 바닥으로 쏟아지고, 가벼워진 무게로 반대쪽의 절구가 곡식을 찧는다.

물레방아에 비하면 단순하고 효율이 떨어지지만, 제작이 간단해서 많이 쓰이곤 헀다.

 

 

 

무게 조절은 돌맹이로 했나 보다. 과학적인 계산보다 사실 이쪽이 실생활에서는 더 간단하다.

대나무의 통통거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실용적인 작업의 결과물로서 들리는 쿵쿵 소리도 나쁘진 않다.

 

 

 

언덕을 내려오고 나니 전체적인 풍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조금 전 임시 거주용 건물 주위에 만들어진, 연못처럼 생긴 곳의 물은 이렇게 밑으로 내려오게 되어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디자인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의식이 함축된 전통 정원과는 달리

일단 형태를 갖춰놓으면 나머지 부분을 알아서 자연의 손길이 메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물이 있는 곳에는 방앗간이 있는게 인류 공통의 문화이긴 한데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공부는 하는 본인 입장에서도 아직 알아보지 못한 정보가 있다.

한국의 물레방앗간처럼 이곳도 밤중에 남녀간의 데이트 장소로 사용되었을까나?

 

방앗간이라는 게 단순히 인기척이 없고 소음(?)을 줄여주는 곳이라 애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방앗간 자체의 이미지도로 충분히 성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장소였으니

일본에서도 적당히 비슷한 일화가 있지 않을까 조금 궁금하긴 한데, 이런 걸 어디다 물어봐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세삼스럽게 느끼는 점인데

도시의 철근 콘크리트 숲 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주택가의 꽃들이, 전쟁의 포화속에서 병사가 꺼내 들어보는 애인 사진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꽃들은 온통 녹색과 암갈색의 조화속에 살짝살짝 포인트를 찍어주는 발레리나의 발끝과 같은 느낌이 든다.

 

척박한 환경의 꽃은 의무감을 가진 듯 강렬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반면

너그러운 환경의 꽃은 없어도 될 것 같지만 은근히 밋밋함을 지워주는 향신료 역할을 한다.

 

꽃과 녹색 자연에 뒤덮혀 조금은 우충중해 보이는 저 갓쇼즈쿠리 건물은

이곳 민가원에 입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 역할을 하고 있다.

당연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으니 다시 요금을 낼 필요는 없다.

 

물론 들어가서 쉬어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은 되겠지만

이런 하늘 아래에서 굳이 건물 안에 들어가 쉬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아, 나중에 그냥 야외에서 앉아 쉬기로 한다.

 

 

 

휴게소가 한 군데가 아니다. 멀리 보이는 저곳은 아예 신발 벗고 올라가서 편안히 누워있을 수도 있는 곳이다.

안쪽에서는 시라카와고와 민가원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방송이 TV를 통해 상영중이다.

 

젊은 사람이 없는건 아닌데, 아무래도 쉬어가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 좀 있는 분들이라 그런지

저 안에 들어가려는 의지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만약 들어가서 슬쩍 앉아있다 보면 또 나이든 분들이 말 좀 걸어올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보면 또 일본어 잘하네~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죽이 잘 맞으면 식사 한끼나, 집에 초대받거나 하는 일도 생겨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일본에서의 본인은, 나이 든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평소같으면 여행의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결코 마다하지 않는 그런 가상의 이벤트도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원하지 않고 생겨날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인연을 되짚어가기 위한 여행이니까.

 

 

 

동그란 공터 옆에는 아담한 선물 가게가 문을 열고 있다.

그 앞에 적당히 그늘을 만들어 주는 벤치가 놓여있어서 일단 거기 앉아 숨을 고른다.

날씨는 점점 맑아지고, 그러면서도 비를 머금지 않은 밝은 구름이 데코레이션을 잊지 않아서 경치 감상에는 최적의 구성.

 

일기도 좀 쓰고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시라카와고의 마을 안은 훨씬 바쁘고 상업적이겠지만, 이곳 민가원은 보존되어 있는 갓쇼즈쿠리 가옥만큼이나

가게도 힘은 뺀 느낌이랄까. 80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가게와는 관계없는 잡일하면서 앉아 계신다.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마음껏 찍으라 하셔서 다행.

고추다발은 천으로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진짜 말려놓은 녀석들도 판매중이다. 먹으라는 건 아니겠고.

한국과 비슷하게 복이 들어오는 부적같은 것이긴 한데, 남아선호사상과 결부된 이미지는 없다.

 

 

 

마을 안 가게들은 아마 이것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다양한 물품으로 관광객들의 신경을 자극할거라 예상해 본다.

이곳은 정말 할머니와 가족들이 직접 만든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난 것 없이 수수한 상품들이 대부분.

 

헝겊이나 혼수건, 인형, 짚을 꼬아 만든 것들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건 실제로 사용할 사람과 함께 오면 구매해도 아쉽지 않겠는데

시라카와고를 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 줘봤자, 이 곳의 느낌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닥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곳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할까, 직접 체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릴만한 선물이 별로 없다.

 

 

 

그나마 무난한 선물로는 이게 제일 눈에 들어오긴 한다.

완성도도 상당하고, 모두 수작업으로 만든 녀석이라 다들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일본 역시 거의 어디서나 마데인 차이나의 손길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시라카와고 토종 수제품이라 흥미가 간다.

 

그런데 역시, 이 녀석을 선물할 만한 관계에 있는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이 곳에 직접 와보기를 권유하는 입장에서라도

이 녀석을 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것으로 먼저 접하기보다는 일단 시라카와고에 한번 가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입체적인 실물이 아닌 사진 정도라면 뭐,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불 때마다 묘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나무로 만든 풍경이 내는 소리였다.

귀를 간지럽히는 유리 풍경의 맑은 음색과는 달리 또르륵 거리는 부드러운 화음이 시라카와고의 풍경에 잘 맞는다.

아파트에서 그닥 활용할 일이 없어서 항상 아쉬운 풍경인데, 이 녀석을 보니 본격적으로 집에 풍경 설치할 만한 곳을 찾아보고픈 욕망이 샘솟는다.

 

여름의 시라카와고에 발을 들인 이상, 겨울에 다시 찾아가지 않을 일은 없을거라 확신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지금 뭔가를 사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다음에 찾아오면 좀 더 생각해보고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생길 테니까.

 

그러고보니 이게 판매용인지 그냥 달아놓은건지도 모르겠다.

 

 

 

기념품은 접어두고, 흔쾌히 촬영을 허가해 주신 할머니의 가계에 도움을 보태기 위해

크게 구미가 당기진 않았지만 아이스크림을 하나 주문해 먹는다.

 

200엔짜리 아이스크림 치고는 많이 작아서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는 것은, 이곳 민가원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들은

시카라와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메밀 아이스크림 역시 이곳 사람들이 기른 메밀로 만든 녀석이라.

 

사먹으면서도 쓴웃음이 난 것이, 메밀을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봤자 맛과 향이 느껴질 일이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중간에 땅콩도 박아넣고 한 성의가 느껴지는데

결국 아이스크림은 설탕 없이는 맛이 나지 않는 녀석이라, 그 강렬한 맛이 메밀의 미묘한 맛을 다 가리는 바람에

그닥 맛있다고 칭찬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완전히 메밀의 맛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맛 배합상 좀 무리가 있는 모델이다.

 

하지만 수제 아이스크림인데다가,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의 아이스크림이라 후회없이 즐겼다.

 

 

 

벤치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뿌리까지 씹어먹고 나서도 한동안 가만이 앉아있는다.

이제 발걸음을 옮기면 민가원을 떠나게 되는데, 이 앞에 진짜 시라카와고 관광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곳의 풍경을 좀 더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다. 마을은 마을대로, 이곳은 이곳대로 매력이 충분한 곳이다.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눈을 부라리며 사냥감을 찾아 다닐때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되는 장면들이 많다.

이렇게 시각과 화각이 제한되는 벤치에 퍼질러 앉아서

망원렌즈를 갈아끼우고, 슬쩍 훑어보면서 미처 눈에 들어오지 못했던 장면들을 되새겨 본다.

 

좀 더 익숙해지면, 이렇게 벤치에서 느긋한 기분으로 뷰파인더를 훌훌 돌려보는 기분을 유지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 보며 휴식을 겸하는 촬영을 계속한다.

 

 

 

민가원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전시용 가옥이라는 점만 빼면

마을 사람들이 유지 보수하며, 실제로 마을에서의 생활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정원을 많이 둘러본 사람이라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대비되는 듯한 엄격함과 자연스러움의 조화가 눈에 들어올 듯.

 

경남 사천의 조그만 시골집은 엄니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끔 가는 곳인데

거기도 한가족이 아궁이에 사용할 만큼의 장작은 모아놨다. 겨울에 불 때고 들어가면 참 뜨끈뜨끈한데.

 

한국은 이제 그런 장작도 꽤나 비싸서, 자칫하면 도둑맞을지도 모르는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적어도 그럴 걱정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일본 전체가 한국보다 목재가 훨씬 풍부한 편이기도 하고, 이곳은 특히 목재 수급에 별 어려움이 없는 곳이라.

 

시골마을 하면 생각나는, 이렇게 목재를 가득 재여놓은 모습은, 이 모습 그대로가 마을의 풍족함을 나타내는 지표처럼 느껴진다.

 

 

 

여행 차림새는 아닌 듯, 총천연색 조금 촌티나는 분홍 셔츠 입은 5~6살짜리 꼬마숙녀가

자기 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달려와서 그네를 한동안 타다가 사라진다.

주위에 부모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해서, 시라카와고 주민일 것이라는 예상이 틀리지 않으리라 본다.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었겠지만, 부모도 없는 아이들 노는 사진을 담는 건 왠지 유리가슴인 본인으로서 좀 겁나는 일이다.

아시아쪽에서 특히 한국과 일본은 사진 찍히는데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더더욱 셔터 누르기가 힘들다.

서양쪽은 별 문제없는 듯 하고, 인도같은 곳은 아예 서로 찍어달라고 난리인데. 국민성 탓하기 전에 본인의 담력을 기를 필요가 있겠지만.

 

그건 그렇고, 국가 중요 문화재가 산재한 이곳 민가원 한켠에, 관광객 용으로는 보이지 않는 자연미 넘치는 그네가 놓여있다는 사실은

본인이 이곳 시라카와고를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참 아름다운 녀석이다.

 

 

 

십여 분간 벤치에서 엉덩이 한번 떼지 않고도 이것저것 찍을 수 있는 것은

시라카와고가 그만큼 건질 장면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일수도 있고

망원 줌렌즈가 사람 좀 편하게 만들어 주는 이유 덕분일수도 있고

이렇게 앉아있지 않으면 괜히 마음 조급해져서, 담을 수 있는것도 못 담는 성급한 초보 여행자가 원인일수도 있다.

 

나비의 날개짓처럼 흔들리는 꽃잎들을 쳐다보며 조금 더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