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소바'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12.24  과거로의 여행 - 무인역 8
  2. 2013.11.25  과거로의 여행 - 키소 마을 주민들 9
  3. 2012.10.06  산인 여행 - 이즈모 군것질 16
  4. 2012.09.19  산인 여행 - 소바의 추억 20

 

소야노 어머니가 역까지 바래다 주신다고 하셔서 시간은 널널하겠다 싶었는데

짧은 거리일수록 사실상 걸어가는 것과 자동차로 가는 것의 시간 이득차는 점점 없어진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일본에서는 장애인용 휠체어를 몇 년에 한번씩 제공해 주는데

이번에 소야노 어머니가 좀 튼튼한 녀석을 주문했더니 생각보다 의자 덩치가 커서 자동차 위쪽의 수납함에 들어가는게 아슬아슬하다.

일반인이라면 의자를 이리저리 옮겨도 보고 하겠지만, 메뉴얼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손쓸 방도가 없는 것이 장애인의 고달픈 점.

옆에서 내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간이 좀 간당간당한 편이다.

 

쇼야 군은 마츠모토로 가고, 난 나고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 반대편 정거장이다.

도착 5분 전까지는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일단 예의상으로라도 연락없이 불쑥 찾아와 미안했다고 말해 둔다.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전철을 기다리는 건 의외로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산골 마을이라는 걸 어필이라도 하듯, 역 옆으로 조금 걸어가면 작은 신사도 있어 구경갈 수도 있고.

 

 

 

쇼야 군이 자전거 학원을 다닌다는 건 생각지 못한 전개였는데

이것도 인연인지, 그 소식을 들으니 자전거 세계일주를 계획중인 나침반님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나침반님이 자전거 제작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함께 도쿄로 가서 세계 정상급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장거리 여행용 자전거는 일단 속도보다는 내구성 중심이라 제작이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쇼야 군은 아직 작별이 익숙한 나이가 아니라 이렇게 역 앞에 서 있으면 조금 서먹한 느낌도 든다.

마을의 유일한 친구는 자위대 지원했다가 키가 작다는 이유로 떨어졌고, 반동으로 경찰쪽에 들어가 버렸는데

음낭친구인 둘도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갈림길을 걸어가고 있다.

 

일본은 신칸센이 있어도 자주 지역을 왔다갔다 할 만큼 교통요금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해서

성인이 되어 고향이나 친구와 멀어지게 되면 그리 쉽게 만나거나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마치 돈 없어서 새마을도 못 타고 무궁화호로 서울과 부산을 왔다갔다 하는 케이스라고 할까.

 

이곳 키소에서 도쿄까지만 해도 바로 가는 전철이 없을 뿐더러, 버스로 4시간 반이 걸린다.

지도를 찾아보면 알겠지만 키소와 도쿄는 일본 전체에서 본다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던 비가 조금 잠잠해져서 키소의 마지막 풍경을 열심히 찍어대고 있었는데

문득 마츠모토로 가던 2010년의 기억이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는 엄청 쨍쨍하고 무더웠다.

2013년 이 순간의 쇼야 군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건너편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당시엔 마츠모토에 놀러가던, 좀 더 시간을 들여 나가노에 놀러가던

다시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도 편안하게 순수한 관광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나면 항상 뒤에서 무엇인가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아마도 그 쫓아오던 것은 계절이란 녀석이 아닐까 싶지만, 그보다 더 심리적인 압박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락없이 찾아가다 보니 이번엔 소야노 집안에서 뭔가 제대로 식사를 먹질 못했다. 저녁에 치즈 조각과 함께 맥주 한 잔이 전부라고 할까.

당연히 부담갖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지만

소야노 가족들이 괜히 나한테 대접도 제대로 못했다고 미안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걸 보면

무슨 선택을 해도 항상 반대쪽의 후회는 남아있는게 삶의 갈림길이란 녀석이라는 기분이다.

 

2010년 내가 신세를 지던 당시엔, 지금 나 때문에 이렇게 해 주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맛있는 것만 잔뜩 만들어 주셔서 죄책감마저 들 정도였는데

쇼야 군도 원래 자기 어머니가 요리하는거 좋아한다고 말해주기도 했고

소야노 어머니도 자식들 다 떠나고 적적하던 찰나에 내가 와 줘서, 밥 만드는 보람이 있었다고 좋아하셨다.

 

그 마음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는대로 맛있게 많이많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사양을 하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었나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맛 없어서 억지로 먹은 식사는 한 번도 없었다고 확신한다.

 

밥솥에 송이를 포함한 각종 야채를 조미 간장과 함께 넣고 쪄 낸 송이밥은 심각하게 맛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보면 놀랄만한 크기의 그릇에 마구 퍼담아 입에 집어넣곤 했었다.

소야노 어머니는 '원래 밥이 좀 남도록 만드는데 싹 비웠네요'라고 웃으셨는데, 어디까지 분위기를 읽었어야 했을지.

 

 

 

소야노 어머니의 밥도 맛있었지만, 도로 앞 휴게소에서도 키소의 명물 먹거리를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산책하던 도중 슨키 카레(すんきカレー)라는 녀석이 있어서 신기한 마음에 하나 사들고 왔다.

 

한국에서는 일본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라 대체 슨키가 뭔가 싶었는데

소야노 어머니가 설명해 주시길, 이 지방만의 독특한 순무절임이라고 한다.

 

보통 절임이라고 하면 소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슨키는 매우 독특하게도 소금이 아니라 유산균을 이용한 발효 절임 음식.

산간지방인 키소에서는 '쌀은 빌려줘도 소금은 빌려주지 마라'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금이 귀하디 귀한 지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유산균을 이용한 독특한 절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정말로 지역적 특색이 강한 희귀 음식에 들어가지만

내 입장에서는 잘 말린 시래기와 살짝 느낌이 비슷해서 위화감없이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카레에 넣어 만들 필요까지 있었나 싶긴 했지만, 카레의 향이 워낙 강렬해서 슨키마저도 느슨해진다.

 

제작 방식상 시래기와 비슷한 맛이 나는게 당연하지만 여기는 바람만으로 건조시키는게 아니라

유산균이 든 절임물에 넣고 진짜로 삭히는 개념이라, 시래기보다 훨씬 새큼하고 쌉싸름한 산미가 입맛을 자극한다.

나이 든 한국 사람이라면 꽤나 좋아할 만한 녀석. 이걸로 시래기국을 만들어도 꽤나 재미있는 녀석이 만들어질 듯 하다.

 

실은 이후에 소바집 쿠루마야 사장님이 나와 함께 슨키 절임 받으러 건너 마을에 가자고 권유해 주기도 했다.

겨울에 따뜻한 국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키소 지방의 고유 음식인 슨키를 조합해서

가츠오부시 국물에 슨키를 듬뿍 넣은 슨키 소바가 이곳의 겨울 특별 메뉴였던 것.

수십 년동안 이런 가게들을 위해 슨키를 만들어 온 농가에 직접 들려서 매년 구입해 온다고 한다.

 

뜨끈뜨끈한 슨키 소바도 먹어봤는데, 혀를 싸르륵 자극하는 산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맛이 강한 시래기국을 먹는 느낌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은 묘한 매력이 있는 음식.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겠지만, 짠 거 싫어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메뉴라고 생각한다.

 

 

 

숙련된 프로 요리사 쿠루마야의 사장님도 지지 않고 내 체중 증가에 도움을 주셨다.

창업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바집 딸내미 분께서 공교롭게도 메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점심때 딸이 집에 있으면 사장님은 항상 소바 이외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내 경우엔 소바가 질려서 먹기 싫어진다는 경우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지만

업으로 삼고 일을 해 오시는 가게 분들 몇몇은 소바가 지겹다며 밥과 반찬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내가 소바만 줄창 흡입해대고 있으니 가끔 사장님이 '가게 부담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소바만 먹는가' 싶어

다른 것도 먹어보라고 권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 면 종류를 원래 미친듯이 좋아하는 데다가, 이곳 소바는 결코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기에

후회 남기지 않으려고 끝도없이 소바만 먹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사장님의 호의를 생각해서 본의아니게

따로 만들어 주시는 식사를 즐기기도 했는데, 어느 날 만들어 주신 카레가 참 인상적이었다.

 

소바집 사장님이 왠 카레인가 싶지만, 젊을 때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가서 음식수련을 했을 정도로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장인정신을 발휘했던 사장님이라서 사실 못 만드는 요리가 없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오가사와라 제도를 구글 지도에서 한번 찾아보시길.

 

딸내미 분이 먹고싶다고 말만 하면 뭐든 척척 만들어 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본업이 음식점 치프가 아니었다면 내조 킹 남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위인이 되었을 텐데.

 

사장님을 이 녀석을 음식점용 카레라고 불렀는데, 일반적으로 집에서 만드는 카레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

마치 한국에서 먹는 중국음식점의 전가복이나 해삼탕을 연상시킬 정도로

전분을 듬뿍 넣고 신선한 야채와 카레 소스를 강력한 식당용 화력으로 확 볶아내어 만드는 녀석인데

일본사람 취향에 맞춰서 너무 달짝지근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맛의 색다름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한국서 결코 먹어본 적이 없는 매우 독특한 카레였음에 틀림없다. 카레 소스가 물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 탕수육 소스처럼 탱글탱글하다.

 

 

 

라면보다 짜장면보다 소바가 더 좋기 때문에, 쿠루마야에서의 점심시간은 나에겐 천국이었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하루 두 끼 정도의 소바라면 죽을 때까지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친절한 쿠루마야 분들은 내가 자신들의 가게에서 좀 더 다양한 맛을 즐겨보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어서

예약 손님의 수가 갑자기 변경되거나, 예상보다 반찬이 좀 더 남았을 때에는 그 남은 도시락을 나한테 주기도 하셨다.

 

이 도시락은 단체 예약시에만 주문 가능한 녀석으로, 일반적으로는 메뉴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소바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도쿄에서도 단체 관광버스 타고 이곳으로 식사하러 오는 경우가 빈번한데

그럴 경우 다른 메뉴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도시락.

이런 녀석이라면 손님 오기 30분 전쯤까지 대량으로 만들어 세팅해 놓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멀리서 오는 손님한테 아무렇게나 내어 놓는 싸구려 도시락은 절대 아니다.

간 무를 머무린 버섯, 곤약 무침, 신선한 채소 등등 상당한 정성이 들어가는 밑반찬에

연한 간장을 밑에 깔아놓고 살짝 올린 메밀 두부도 그 있는듯 없는듯한 고소함이 매력적이다.

이 도시락과 함께 소바 한 자루씩 제공하는 것이 단체 예약손님에게 내 놓는 기본 코스.

 

개수가 안맞아 남은 도시락을 나보고 먹어보라고 건네줬을 때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이게 내가 점심값으로 일당에서 공제하는 금액보다 훨씬 더 비싼 도시락이라서

반쯤 농담이긴 하지만 이걸 먹는다는 건 쿠루마야 직원들에게서는 제비뽑기에 당첨되는 그런 개념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무리 비싼 도시락보다도 소바 팍팍 건져내서 흡입하는게 제일 행복했지만.

사실 소바집 메뉴 중에서 소바가 제일 싸다.

 

 

 

쿠루마야에서 떠날 날이 얼마 남지않은 나를 위해 고기집에서 회식을 열어주었다.

참가비가 있었지만 결코 나한테는 받으려 하질 않아서 고기를 넘길 때 조금 목이 매이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구워먹는 고기의 원조는 한국이며 일본은 아주 늦게서야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고기 맛은 한국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그 이론이 통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와서는 고기값이 일본보다 더 싸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인데다가, 일본은 그 특유의 꼼꼼함 때문인지

한국의 고기집보다 훨씬 더 세세하게 부위를 분류해서 조금씩 시켜먹을 수 있어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는 고기집에 가면 한국 고기집의 메뉴와 더불어 소혓바닥, 곱창, 간 등등도 함께 주문할 수 있다.

 

이 날만큼은 고기도 신나게 집어먹고 술도 마구 들이키고 해서 광란의 하룻밤을 보낸 기억이 난다.

휴게소에 돌아와서 한국의 엄니한테 전화를 했는데, 술이 들어간 탓인지 자꾸 일본어만 튀어나와서 당황했었다.

 

 

 

식당 업무란 거의 노동집약적이라, 나이 든 여성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기업화된 대형 음식점이 아니고 전부 가족들처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다 보니

손님이 좀 뜸해서 가게의 저력을 100% 발휘하지 않아도 될 때에는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알아서 쉴 사람은 쉬고 일할 사람은 일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서포트가 중심이라서

굳이 쉬지 않아도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커피 마시고 쉬라고 권유를 받아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에 간식 즐겨먹는 것도 이런 일의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참 다양한 과자 많이 준비해 놓았다.

그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건 나고야 명물인 우이로(ういろう)였는데, 가끔 나고야에 가는 사장님이

내가 이걸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난 후 꾸준히 사 오셔서 원없이 먹곤 했다. 참 지금 생각하면 낮짝 두꺼운 일이지만.

 

우이로는 양갱과 떡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녀석으로, 팥이나 쌀을 적당히 반죽해서 쪄 내는데

바리에이션이 다양하고, 양갱처럼 과하게 달지 않은 은은한 달콤함이 마음에 들었다.

 

 

 

떠날 무렵 날씨가 추워지면 소야노 가족과 함께 해 먹던 전골.

당시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녀석인데, 전골 자체보다는 그 어마어마한 편리함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준비할 것이라고는 버섯, 양배추, 얇게 썬 고기 등 전골의 기본 재료들 뿐.

물조차 필요없다. 그냥 재료를 나베(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은 후 가열하면 끝이다.

소야노 가족들은 나에게 재미있는 볼거리를 하나 소개한다는 들뜬 마음에 꽤나 신나게 재료를 준비하곤 했다.

 

 

 

당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냄비는 타진 나베라고 하는데, 척 봐도 일본의 전통 냄비는 아니다.

이 녀석은 원래 모로코의 전통 냄비라고, '타진'이라는 단어 자체가 냄비를 뜻하기 때문에 사실상 '냄비 냄비'라는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물이 적은 모로코에서 발달할 만한 냄비로, 중앙 부분의 파인 곳으로 수증기가 집중되어 다시 재료로 떨어지는 순환 구조를 하고 있다.

싸구려 타진은 유리나 금속 재료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두꺼운 도자기로 만들어야 수분과 열기가 충분히 내부에서 순환할 수 있다.

수분이 많은 생야채만 잘 넣어놓으면 물 한방울도 넣지 않고 훌륭한 전골요리가 만들어 진다.

국물 먹으면 비만의 원인이 된다고들 하니, 이렇게 물기 별로 없이 만들어진 전골을 소스에 찍어 먹는게 유행이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물조차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찜요리라서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 좋은 음식이다.

훗날 한국 귀국할 때 이 냄비만큼은 하나 사 갈까 고민했는데, 언제든지 살 수 있으니 그 때 바로 구입은 하지 않았다.

자취생에게도 매우 환영받을 만 하고 해서 조사해 보니 한국에도 역시 많이 들어와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15분 동안 멍하니 서서 옛 추억들을 되감아 본다.

 

2010년 당시엔 다시 출발하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느낌 때문에

아쉽고 서운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에 흥분되었는데

이번엔 인사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아서 예전보다 더 적적한 느낌이다.

 

아예 못 만날 사람들도 아닌데 항상 헤어질 때는 묘한 기분.

 

떠나 보내는 건 오히려 낫지만, 내가 탈 열차가 쇼야 군보다 먼저 와서 배웅을 받는 모양이 되어 버렸다.

열차 창문에서 어색하게 손 한번 흔들고 나고야로 가는 긴 열차길에 몸을 맡긴다.

나고야까지 직통으로 가는 열차가 없어서 한번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하면 3시간 가까운 이동.

 

 

 

키소를 찾아갈 때는 오랜만에 보는 녹색 풍경의 향연에 눈이 즐거울 따름이었지만

나고야로 돌아갈 때는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의 잔향이 남아있을 때는 자연 풍경도 뇌리에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그래서 다들 인연을 만드는 것일지도.

 

 

 

기온이 키소와 거의 비슷하지만, 역시 나고야의 밤은 습하고 무덥다.

내일 하루 자유시간이 더 있지만 사실상 이번 여행은 오늘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키소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덤으로 즐긴 8일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정을 소화해 버린 후의 여행은 잔잔한 여운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며칠 전 나고야에 도착한 날과 같은 호텔의 같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왠지 그때보다 조금 더 쓸쓸하고 아쉬운 기분만 남아있다.

과거로의 여행은 항상 플러스 마이너스 해서 남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의무감과 같은 감정이 이끄는 것이 그런 되짚어 가는 여행이기도 하고.

 

키소와 같은 곳이 내 인생에서 점점 늘어난다면 그건 그거대로 인연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 지는 고통을 초래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인연은 본인이 계획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묵묵히 갈 길을 가다가 나를 부르는 인연이 있을 때 거기에 응답할 뿐이다.

 

 

휴게소에서 멍하니 한참을 시간 보내고 다시 언덕을 올라간다.

완만한 경사가 산자락까지 이어진 이 길에는 느긋한 밀집도의 주택가가 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좀 더 깊숙히 들어가면 단순한 주거용 주택이라기 보다는, 도심의 좀 잘나가는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는 별장 단지가 나오기도 한다.

일본의 시골이 한국보다 정비가 잘 되어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곳은 확실히 경치가 좋은 편이다.

별장이 늘어서 있는 산자락의 수려한 환경이 아닌 순수하게 사람들 살아가는 논밭 사이의 주택가임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소가 한 두곳이 아니다.

 

일본에서 홋카이도의 해안가 말고는 '여기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든 곳이 별로 없었지만

바다 근처가 아닌 산속 깊은 곳에서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은 아마 이곳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땅값이라던가 그런건 잘 모르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거의 텅텅 빈 곳에 지금은 새로 집 짓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고.

가게 하나 차려도 될 만한 이런 예쁜 디자인의 집 역시

돈 좀 만지는 사람들이 놀러오는 별장이 아니라, 그냥 이곳에서 사는 주민들이 일반적인 주택이다.

 

예전에 소야노 가족과 이야기 할 때, 적당히 땅값만 싼 곳 고르면 주택 짓는것까지 합해서

한국돈으로 2억 조금 넘으면 무난할거라 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가끔은 진지하게 이곳에 눌러앉아버릴까 하는 생각도 한다.

 

좋긴 하지만 역시 현실과는 달리 포기할 수 없는 꿈은, 홋카이도처럼 바다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

이곳의 많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말뚝을 막아버릴까 생각하면 꼭 마음속에서 막아서는 요소들이 있는게 아쉬운 점.

 

 

 

소야노네 집까지는 휴게소에서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오랜만에 즐기는 키소 마을의 정경에 도저히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

번호판을 떼어버린 걸로 봐서 폐차 수순을 밟는 녀석인 것 같은데

저런 녀석마저 거부감없이 프레임속에 녹아들게 만드는 이곳의 풍경이 가지는 힘은 실로 강력하다.

 

한두 걸음 걸으면 또 이런 풍경들이 날 유혹하고

동네 할머니가 지나가면, 마치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듯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물론 그 할머니가 나를 알 리는 없지만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전혀 거리낌없이 웃으며 인사를 받아준다.

 

의외로 소야노네 가족과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쇼야 군의 할머니만큼은

절대 사교적이지 않은, 꽤나 무뚝뚝한 표현력을 가진 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무뚝뚝함은 상대에 대한 경계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평생 마을 이웃들 외엔 말 한번 걸어보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본능적인 수줍음인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 나쁘지 않았다.

 

 

 

3년 전 마을 사람들이 나에게 꼭 한번 보여주려고 데리고 가던 온타케 산의 풍경은 이번엔 시간이 부족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산과 함께 살아가는 나가노 중부의 키소 마을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많은 마을들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산이 이 온타케 산(御嶽山이다.

 

한국처럼 등산가기 좋은 친숙한 산이라는 느낌보다는, 마을의 조상님쯤 되는 신성한 산으로 추대받고 있어서

그만큼 이 산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라고 할까, 자부심은 굉장한 수준이다.

 

해발이 높은 산인데다가, 나가노 산맥의 특성상 기후 변화가 심해서 깔끔한 봉우리를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보는 온타케 산의 위엄은 굉장한 것이었다.

 

 

 

점이 아니라 선의 형태로 아름다움을 간직한 한국의 산맥과는 달리

온타케 산은 화산의 분화로 생성된 독립봉으로, 일본 최대의 산맥지역인 나가노 중앙알프스 산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엄을 자랑한다.

 

해발 3000 미터를 넘는 산 중에서는 일본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지진대 중앙에 위치한 산인데다가, 아직까지 가끔 연기도 나는 활화산이기 때문에 마냥 인자한 녀석만은 아니다.

예로부터 후지산과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신성한 산으로 유명한 녀석이라, 한국 등산객들도 상당히 많이 찾는 산.

 

자동차로 갈 수 있는 지역에서 밤 9시쯤 출발하면 정상에서 새벽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키소 주민들이라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광경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물론 쇼야 군은 나보고도 많이 꼬셨지만, 자전거 여행의 여파로 지친 데다가 주 6일 아르바이트로 바쁜 본인이라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자전거 여행이 끝난 지금은 날 잡아서 소야노 가족들에게 연락해 놓고 일출 보러 가 볼 생각을 하고 있다.

등산은 특히나 나이와 별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레져인지라 급할 거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야노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언덕을 내려오는 소야 군과 딱 마주쳤다.

원래 연락도 하지 않고 놀래켜 주려고 슬금슬금 이동중이었고, 소야 군은 올해부터 도쿄로 자취하러 갔다고 들었던 터라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보다 쇼야 군이 더 의아했을 듯. 뭔가 낯익은 사람이 올라오긴 하는데 설마 그게 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몇 초간 얼굴을 유심히 살펴본 후 드디어 나라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란다.

서프라이즈를 기대했는데 이렇게 집앞 길위에서 만나버리니 오히려 긴장이 풀려서 안면 근육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쇼야 군은 마침 도쿄에서 다니던 자전거 전문학교가 방학이라 본가로 돌아온 참이라고.

사실 본인이 소야노 집에 찾아간다고 전화를 하지 않은 것에는 쇼야 군의 사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괜히 내가 간다고 말했다가 쇼야 군의 귀에 들어가서, 무리하게 키소까지 돌아오는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인간의 인연은 항상 우연이 필연처럼 얽히는 묘한 타래와 같은 것이라,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나고 만다.

 

쇼야 군이 집에 들어가며 깜짝 손님이 왔다고 어머니한테 소리를 친다.

쇼야 군의 어머니는 하반신 마비라 전용 침대에 누워계시는데, 이때만큼은 너무 예의없는것 아닐까 걱정이 된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보여드려도 처음엔 누군지 잘 모르는 표정이었는데

이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자 목소리로 구분을 했는지, '리 상~' 하면서 깜짝 놀라주신다.

 

대낮 시간대에 침대에 누워있다는 점이 마음에 좀 걸렸는데, 어제까지 열이 약간 있어서 쭉 쉬고 있었다고.

소야노 어머니의 상처는 자동차 사고로 생긴 척추 골절이라, 단순히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외에도 여러가지로 몸이 아플 때가 있다.

몸 아픈데 괜히 신경쓰이게 하는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소야노 어머니는 오늘 거의 다 나았으며, 오랜만에 내 얼굴 보니 굉장히 기뻐서 기운이 난나고 웃으며 대답해 준다.

 

젊을 때 간호보조사, 노인복지사 등등 봉사활동과 관련된 일이라면 안해 본 것이 없는 분이라

자동차 사고가 난 뒤 허리 아랫부분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병상 위에서 깨달았을 때에도

'어차피 나이 더 들면 휠체어 생활하는데, 조금 더 앞서서 체험하는 것일 뿐' 이라고 생각할 만큼

누구한테나 웃음을 잃지 않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 주는 편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힘든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쪽에서 항상 순진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미소만큼은 정직한 것임에 틀림없어서

이 분와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많은것을 배우고 얻어간다. 나에게는 인생의 스승 중 한명이나 다름없는 분.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넓은 소야노네 이층집은 여전히 별로 변한 게 없다.

차이점이라면 어머니 몸이 불편해 쇼야 할머니 집에 맡겨놨던 '리쿠'라는 푸들 강아지가 다시 집에 돌아와 있다는 점 정도.

 

리쿠는 쇼야 할머니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지 그곳에서는 되게 우울해 했고, 할머니 쪽도 힘들다고 해서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다시 이쪽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물론 리쿠는 엄청 기뻐하며 쇼야네 어머니한테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사진은 내가 생활하던 현관 옆 빈방이었는데, 여행중 묵었던 어떤 비즈니스 호텔보다 더 넓은 방이었다.

물론 사람이 살던 방이 아니라 에어콘이고 뭐고 없어서 여름에 상당히 덥긴 했지만

자전거 여행중의 본인은 이미 불편함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선풍기 한 대만으로도 천국일 뿐.

 

소야노 집안의 특징 중 하나로, 소야노 어머니 한분 빼고는 도무지 '정리'와 '청소'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대를 잇고 이어 수백년간 시골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한정된 공간에서 무언가를 정리한다는 생각 자체에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그냥 예전처럼 창고 하나 뚝딱 만들어서 거기다 뭐든 집어넣어 버리면 해결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애초에 시골 토박이일수록 쓰레기를 버린다는 개념도 없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다 싶으면 그냥 창고행이다.

 

몇년 전 화재로 창고가 없어졌다지만, 당시 그 창고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의 거울이나 갑옷, 검도 있었고

개화시대 초기 물건으로 추정되는 나무 벽걸이 시계 등등... 온전한 상태였다면 진품명품에서 고가에 팔릴만한 녀석들도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쪽 사람들은 500년 전의 물건도 자신들한테 쓸모없다고 그냥 창고에 처박아 놓는 그런 부류란 것.

 

현대식 주택에 살아도 그 마음가짐만은 훌륭히도 변한게 없어서

소야노 어머니가 몸이 멀쩡할 때는, 천성적인 깔끔함으로 그래도 집안이 깨끗했지만

몸을 다친 이후로 2층에 올라갈 수가 없게 되고나서는 그냥 포기해 버렸다고.

지금은 리쿠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3년 전보다 좀 더 지저분해 진 듯 하다.

 

본인도 방이 돼지우리라고 엄니한테 지탄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엄니를 소야노네 집으로 한번 초대하고픈 생각이 소떼처럼 밀려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아마 엄니가 이쪽 집안 모습을 본다면 기절하실것 같지만.

 

 

 

소야노 어머니는 들뜬 목소리로 여기저기 전화하기 바쁘다.

나한테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준 친구 카미무라 씨한테 연락해서 누가 우리집에 왔는지 맞춰보라고...

사실 이렇게 조용히 온 것도, 그냥 혼자 돌아다니면서 한분 한분 인사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렇다고 좋아서 여기저기 전화 걸고 있는 소야노 어머니를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카미무라 씨 따님은 내가 여기서 지낼 때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은 키소후쿠시마의 작은 선술집에서 남편과 함께 가게를 열고 있다.

거기서 저녁 한 끼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가 나와서 전화해 보니, 불행히도 저녁에 가게 전체를 빌리는 모임이 있다고.

 

본인은 일단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 전해주고 인사하는 것만 목표로 삼았지만

그 가게 술의 수준도 그렇고 안주나 음식 수준이 상당한 편이라 살짝 아쉽긴 했다.

 

카미무라 따님의 시어머님, 그러니까 남편의 어머니 되는 분은, 내가 가니까 놀랍게도 김치를 작은 접시에 담아 주셨다.

발효과정을 거치지 않은 기무치와는 달리 진짜 삭아있는 한국식 김치여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부산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배워온 것이라고. 외국인이 그 정도 경험으로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아주머니 요리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술과 요리가 참으로 맛있었던 곳.

 

카미무라 씨 일행과는 저녁 함께 먹기로 했고, 소야노 아버지는 오늘 일때문에 늦게 오신다고 하니 밤에 집에서 맥주나 한잔 하기로 한다.

그럼 시간 있을때 아르바이트로 신세를 졌던 소바집에가 가보려고 하니

소야노 어머니가 차로 태워주겠다고 자꾸 호의를 배풀어 주셔서 살짝 난감하기도 했다.

사실 자전거로 15분 가까이 걸리는 거리라 걸어가려면 왕복 1시간은 넘게 잡아야 하는 곳이긴 하지만

가는 길의 풍경이 워낙 좋아서, 사진이나 좀 찍으며 느긋하게 즐길까 싶었던 나의 계획은

그러고보니 이쪽 가족들이 내가 그렇게 발품 팔도록 놔두지 않으리라는 기본적인 추측을 하지 못함으로서 멋지게 빗나가 버렸다.

 

3년 전 내가 신세를 지던 당시 소야노 어머니는 상반신만으로 운전 가능한 특수차량을 주문해 받았고

타고 내리는 것까지 남의 도움 필요없이 혼자서 모두 해낼 수 있는 차량이라서

장거리를 제외한 많은 곳을 혼자 운전해 돌아다니며 집안에 틀어박히는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역시 시간이 지나서인지 아주 능숙하게 휠체어에서 운전석으로 이동하고, 후크에 휠체어를 걸어 자동차 위쪽의 보관대에 집어넣고

두 손으로 엑셀과 브레이크도 자연스럽게 밟아가며 순식간에 나를 소바집 앞에 내려놓아 주셨다.

 

유턴해서 다시 올라가는 소야노 어머니 차량을 지켜본 다음에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서 소바집 쿠루마야(くるまや)의 전경을 담아본다.

원래 쿠루마야는 창업 300년이 넘은 전통있는 소바집인데, 오리지날은 마을 안쪽 거리에 아직 영업중이고

이곳은 예전 가족들이 분가하면서 도로가에 새로 만든 쿠루마야이다.

드라마처럼 사이가 틀어져서 분가한 건 아니고, 추구하는 맛이 달라서 하나 더 차린 것이라고. 이름도 두 가게 모두 '쿠루마야'를 쓴다.

 

이곳 사장님은 서글서글한 거구로, 음식에 대해서는 엄청난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장인이다.

마을 소방대 단장을 맡을정도로 활동적이면서도 매우 세심한 성격을 가진 분으로,

가게 바로 옆 키소 경찰청 사람들이 회식왔을 때 모두들 앞에서 '한국서 자전거 여행하며 알바하는 리 군'이라고 아주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정도라

쑥쓰럽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의미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만큼 고마운 사람도 없다.

 

그 사장님 눈썰미가 아주 좋은 편이라, 길 건너에서 사진찍고 있는 나를 주방 창문에서 단박에 알아보시고 '리 군~' 이라고 소리를 친다.

요리를 하면서도 항상 창가에서 손님이나 가게 관계자가 오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분이라, 3년만의 재회도 순식간에 파악해 버린다.

 

 

 

가게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겠지만, 점심시간을 넘겨 왔는데도 손님이 상당히 많아서 바쁜 편이다.

사장님과 인사를 한 후 주방쪽으로 들어가자 모든 직원들이 몰려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직원 대부분이 친인척이고, 그렇지 않은 직원 아저씨도 10년 넘게 함께 해 온 분이라 모두들 가족이나 마찬가지.

 

본인 역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한 몸이라, 일부러라도 돈 내고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그걸 허락해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척하고 내어주는 소바를 감사 인사와 함께 후르룩 빨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여전히 내가 평생 먹어본 소바 중에서 최상의 맛을 자랑하는 녀석.

 

소바는 전문가 수준의 매니아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미묘한 맛도 있지만

나같은 일반인 레벨에서는 면의 목넘김과 소스의 깔끔한 맛 정도로 판단하는 수준.

이곳 소바가 너무 맛있어서 소야노 어머니한테 물어보기까지 했는데

소야노 어머니도 이곳에서 한번 먹어보고 이 주변 소바집 중에서도 상당히 맛있는 편이라고 감탄하시는걸 보면

절대 맛 없는 소바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참고로 이 주변은 일본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소바 가게가 진을 치고 있다. 이곳에서 망하지 않고 장사한다는 것만으로도 레벨 보장은 된다는 뜻.

 

 

 

할아버지 한 분을 제외하면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모두 주방 요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힘쓰는 일은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이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때 운 좋게도 내가 바이트를 시작하면서 2층에 음식 나르기나 설거지 등의 업무를 맡았기 때문에

초보 알바생 치고는 나름 도움이 되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일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틈만 있으면 앉아서 쉬라고 자리 내 주고 커피 타 주고 과자 주고 했는데

바이트 하면서 마음이 이렇게 편했던 적이 과연 한국에 있었던가 지금도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주방에 앉아있으니 다시 몸이 근질근질해서, 자기가 먹은 소바 그릇이라도 좀 씻으려고 싱크대 쪽으로 걸어가니

사모님이 웃으면서 일 안해도 된다고 말리신다. 하지만 기분은 이해하시는지 심하게 말리진 않는다.

괜히 안절부절하게 앉아있는 것 보다는 슬쩍슬쩍이라도 일 도와주는게 역시 맘 편하다.

 

강력한 성능으로 인해 한동안 나의 손가락 끝을 화끈하게 해 줬던 스팀세척기도 여전히 잘 작동중이다.

여름엔 쪄 죽을듯 했는데 겨울이 다가오자 세척기의 스팀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변화무쌍함이 음식점의 주방이라는 곳.

 

 

 

이곳에서의 수많은 추억은 간단히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좀처럼 끝이 나지 않을듯 하다.

내가 바이트 하던 당시의 미친듯한 혼잡함과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시간대에 비해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던 터라 약간의 미안함을 가지고 자리에 앉아서 그 때의 충실한 하루하루를 되짚어 본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이제 대학교 가서 집에는 없다고 하고

소바집 딸내미이면서 메밀 알레르기가 있는 따님은 내년에 결혼한다고 한다. 역시 변하지 않는 모습 속에서 사람만은 같은 시간을 걷는다.

 

2층 단체손님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면서 '아들내미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걱정하던 사모님의 고민거리도 들어줬고

메밀 알레르기로 소바를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볶음밥이나 카레 덮밥 같은 굉장한 요리들을 척척 만들어 던져주던 사장님의 모습도 새록새록하다.

 

젊은 시절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음식 수련을 한 사장님이라, 이런 주방과 조리도구만 있으면 못만드는게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하지만, 소야노네 가족이 사정상 1박 2일로 멀리 떠나가면서 나한테 집을 맡겨놓은 상황도 종종 발생했는데

그럴 때 편의점 도시락을 사 가려고 하니 사장님이 아무 말 없이 즉석해서 눈물나게 맛있는 도시락을 훌쩍 만들어 건네주시곤 했다.

당연히 다음 날 도시락을 씻어서 돌려드리며 500엔을 함께 드렸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프로 요리사들에게는 그만한 값어치를 지불하는 것이 예의니까.

 

 

 

소바를 끓이는 거대한 가마솥은 항상 열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 뒤쪽에 이렇게 소바를 놓는 대나무 판을 씻어서 올려놓는게 내 소소한 일과중 하나였다.

워낙 뜨거워서 아주 바싹하게 잘 마르는 곳이었으니. 의외로 겹치지 않게 착착 늘어놓는 이 일도 꽤나 재미있었다.

 

사모님은 굉장한 여장부이면서도 접객에 일가견이 있는 만능인으로

거대한 체구의 사장님이 요리 장인이라 그런지 젊으면서도 우직한 면을 가진 반면

여러가지로 도심지의 아이덴티티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분이라, 주방 외의 가게 주인이라 할 만하다.

 

체력적으로는 역시 건장한 사장님을 따라가기 힘들어서, 바쁜 하루가 끝나는 날엔 꽤나 힘들어 하시기도 하는데

이 정도 가게를 열면서도 평생 여행한번 제대로 갈 시간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함께,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을 세삼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격일로 출근하시는 할머니께서 쉬는 날이라 전 멤버가 다 모이진 않았지만

내가 해 왔던 어떤 일보다 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이곳 소바집 멤버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손님이 적은 편도 아니었는데 이곳 역시 소야노 쪽과 마찬가지로 휴게소까지 차로 태워주겠다고 한다.

사진도 좀 찍고 싶었기에 걸어서 올라갈 거라고 하니 꽤나 힘들고 시간 많이 걸린다면서 자동차 시동을 건다.

하긴, 나라는 사람은 이곳에서 애초에 혼자 걸어다닐만큼 홀로 서 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삼 깨닫는다.

 

1년간의 자전거 여행동안 질리지도 않고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달려왔던 본인도

이 마을에서만큼은 그 고독을 즐길 여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

한국에서라면 솔직히 기분 좋지만은 않은 일이겠지만 이곳은 고독하지 않아도 괜찮은 극소수 장소 중 한 곳이다.

뭔 배짱인지 지역 신문기자가 기사를 쓰고 싶다고 하는데 승락을 해 버리는 바람에 신문에도 나와버렸으니...

 

다음엔 좀 더 많은 지인을 데리고 와서 소바 맛을 좀 보여주고 싶다고 인사를 하며 추억의 쿠루마야를 뒤로 한다.

휴게소에 내려서 매번 하던 것처럼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캔을 뽑아 마신다. 이 날은 담배가 없어서 그건 패스하고.

소야노 집으로 돌아갈 필요없이, 도로 건너편의 카미무라 씨네 가게에 소야노 일행이 도착해 있다고 한다.

소바도 얻어먹고 해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이런 날은 배가 터지더라도 이 사람들의 환대에 대답하는 것이 도리일 터.

쿠루마야의 추억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정갈한 모양새를 자랑하고 있는 카미무라 가게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주택가를 활보하다가 슬금슬금 방향을 상점가쪽으로 바꾼다.

좀 더 느긋하게 돌아봐도 되겠지만, 날씨도 덥고 점심시간도 지나가고 있으니.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안내 팜플렛에서는 여러가지 맛집이나 기념품점을 한국어로 부담없이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 가면 괜히 사람 많을까봐 오히려 꺼리게 된다.

팜플렛에 적힌 가게들은, 아주 특출나진 않지만 충분히 이름을 올릴 가치가 있는 실력파들이긴 하다.

모든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지역이라서, 창업 40~50년은 넘은 소바집, 까페 등이 포진하고 있고

아무리 텃세가 있다고 해도 맛에 대한 보장없이 수십년을 이어올 만큼 일본의 상업정신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관광객으로 붐빈다고 해도, 맛있는 요리 먹기 위해서라면 친절한 가이드북에 의지하면 되지만

원채 다른 관광객하고 섞이는걸 꺼리는 성격이라서, 맛조차도 포기할 수 있다.

 

여행은 다른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인데, 동류의 이방인들이 가득 모이는 장소는 마치 블랙홀같은 느낌.

 

 

 

상점가로 나오니 많은 간판들이 손님을 유혹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이렇게 풍부하게 자리잡은 상점가가 아닐까 생각.

과연 이렇게도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관광지 주변에 상점가가 많다.

 

일본 관광지의 가게들이 나름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여행 선물이라는게 당연히 지켜야 할 예절의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

어른과 얼굴 맞대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한국의 예절처럼

출장이든, 관광이든 타지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그쪽 지방 특산품을 지인들에게 사오는 것이 예절이다.

 

예절이라고 언급했듯,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욕먹을 정도의 행동이라서

심지어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에게도 부모들이 선물용 용돈을 따로 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관광지의 상가들이 활기를 띄게 되고

일정 크기 이상의 시장이 형성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쟁이 시작되어 품질의 하락을 걱정할 염려도 없다.

 

오미야게(御土産)라고 부르는 이 여행 선물의 특성상, 일정 금액 이상은 지불하기 힘들고, 반대로 싸기만 한 녀석도 인기가 없다.

부피가 큰 녀석은 받는 쪽에서도 집안에 전시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장 인기있는 선물은 지역 특색을 살린 먹거리, 그 뒤로 인기있는 선물이 열쇠고리같은 작은 기념품이다.

방향과 상한선이 분명히 정해진 덕에 상점들의 경쟁은 가격 논리보다 독특함과 아이디어의 승부가 되고

제로섬 게임으로 흐르는 일 없이, 가족이나 직원 회의에서 괜찮은 아이템에 대해 토론하는 정도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 블로그 오사카 여행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꼬리흔드는 고양이' 인형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오미야게 아이디어상품 대상을 수상한 그 인형은, 제작비가 비싸지도 않으면서도 로또에 버금가는 대박을 터트려서

이제는 왠만한 여행지에서 다양한 바리에이션 상품이 제작되어 지역 경제 전체에 톡톡히 이바지하고 있다.

이곳 이즈모의 선물가게에서도 그 꼬리흔드는 녀석을 볼 수 있었고.

 

지역특색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지역특색을 만들어가는 이런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다.

한국은, 그 지역 관광지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이란게 뭐가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

것도 홍삼 등의 이름난 녀석들은 너무 비싸서, 지인들에게 돌릴만큼 구매할 수도 없고.

 

 

 

일단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니, 선물을 꼭 준비해가야 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그렇게 여유있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라서 마음은 홀가분한 편이다.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한테 면세점 담배나 한보루 사다드리고, 나머지는 그냥 돌아보다가 괜찮은거 있으면 사고

없다 싶으면 그냥 돌아오면 되는 것. 주위에서 그정도는 이해해 주니까 뭐.

애초에 가족들은 물질적인 뭔가에 관심이 굉장히 희박한 편이다. 필요하다 싶은건 자기가 사버리기 때문에

먹는게 아닌 뭔가를 선물로 사들고 가면, 한두 달만 지나도 선물로 뭘 받았는지조차 기억 못한다.

 

일단 배나 좀 채울까 싶은데, 가이드북에 전시된 이즈모 소바집은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서 패스.

이미 어제 마츠에에서 가장 유명한 소바집에서 식사를 했으니, 이번에는 이름값과 관계없는 곳에 갈 생각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행의 즐거움인 군것질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중.

이곳 이즈모의 유명한 군것질거리는 젠자이(ぜんざい)라고 하는, 한국의 단팥죽과 비슷한 녀석.

죽은 아니고, 밀떡이나 쌀떡을 달콤한 팥국물에 동동 띄워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게 예전 자전거 여행중 아르바이트 하던 소바집에서도 가끔 나오던 요리였는데, 요즘엔 물맑은 지방에서 많이들 만든다.

나가노 지방 사람들이 이거 한국에도 비슷한거 있다고 하니까 상당히 놀라던데

사실 팥국물에 단거 넣어서 떡하고 같이 먹는건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지방 어디든 익숙한 요리.

 

젠자이는 나가노에서 신나게 먹었었고, 굳이 여기서 먹을 필요가 없어서 다른 곳을 물색중이었는데

직접 만든 오야키라고 광고하는 집 앞에서 결국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오야키(お焼き)는 호떡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근래들어 기름 철철 뿌려서 철판에 튀겨버리는 그런 호떡 말고

기름 하나도 쓰지 않고 그냥 철판위에서 구워내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리지날은 고기 따위의 고가품이 아니라 산나물이나 삭힌 야채 등이 들어가는 서민의 음식.

 

원류를 따지고 가자면, 고대 아프리카 시절부터 존재하는 에인션트 푸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나가노 지방의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어디서나 다들 만들지만.

 

나가노 지방은 고지대에다 산세가 험하고 물이 맑아서, 에전부터 쌀농사보다 메밀과 밀농사가 주류를 이뤘고

한랭지의 야채 특성때문에(시래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시길. 일본에도 시래기가 있다) 오야키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메밀의 본고장인 나가노이다 보니 메밀피로 된 오야키가 유명한데, 쫄깃한 맛은 떨어져도 그게 오히려 야채의 식감과 잘 어울리는게 특징.

 

 

 

야채가 든 녀석과 호박이 든 녀석 두가지를 주문해서 맛만 보기로 한다.

뭐든 넣으면 되는 녀석이라 종류가 수십가지를 넘는데, 제일 인기있어 보이는 카레와 고기속은 이미 품절.

주문후 바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려도 따끈따끈 바삭바삭한 식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홈스테이하던 나가노현의 키소마을 앞에는 '길 안의 역'이라는 뜻의 미치노에키(道の駅)가 있었는데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하지만, 국도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상당히 활성화가 잘 되어 있다는게 특징인 곳.

지역에 따라서 판매하는게 다르기 때문에, 그냥 운전하다가 이곳에서 선물이나 먹을거리를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본섬 하나만 놓고 봐도 자동차로 끝에서 끝까지 24시간 이상 걸리는 일본이라, 이런 휴게소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홈스테이하던 집에서 3분만 걸어내려오면 이 미치노에키가 있었는데, 나가노 지방이다보니 역시 오야키도 팔고 있었다.

어느날 아르바이트 후 들러서 잠깐 쉬는 도중, 한번 먹어볼까 싶어서 고기가 든 오야키 하나를 주문했는데

한입 물고나니 고기가 아니라 산나물이 들어있었던 것. 크기가 작은 간식거리에 불과해서 이것도 맛보고 고기 하나 더 먹을까 싶었는데

아주머니는 미안해 죽으려고 하시면서 고기 오야키를 그냥 덤으로 주셨다. 괜찮다고 한사코 말려도 그냥 주시니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그런 추억이 있는 간식이라서 이곳에서 오랜만에 접한 반가움에 먹어보기로.

사실 이쪽도 카레와 고기 오야키를 먹고 싶었지만, 대중들의 휘향이란 비슷한 듯 이미 품절상태였다.

야채 오야키는 쌉싸름하게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매력있고, 호박향기 가득한 오야키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듯.

 

만든 후 바로 먹어야만 최고의 맛을 내는 녀석인데, 굽기 전의 오야키를 냉동해서 선물세트로 파는 모습을 보니

진짜 장사하는 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싶다. 메밀피 오야키를 불에 직접 구우면 그 포근포근한 향기가 아주 일품.

 

 

 

오야키 두 개로 배가 든든해질 일은 없지만 어쨌든 관광기분좀 내 보고 다시 걸어간다.

역사가 오래된 관광지이다 보니 신기한 자판기도 볼 수 있다.

아마 일본서 본 자판기중 가장 오래된 녀석이 아닐까 싶은데, 건전지를 파는 녀석.

 

아직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전지를 사용하던 카메라 시절에 제 역할을 하던 녀석이 아닐까 싶다.

온몸으로 어마어마한 연식을 어필하는 녀석이라, 조만간 골동품점에 팔려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역을 지나서 한적한 길을 계속 내려가면 Ant Works Gallary 가 나온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 팜플렛에서 뭔가 느낌이 팍하고 왔던 곳이라서

꽤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평범한 시골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는 분위기가 편안한 느낌이 든다.

 

시마네현이 일본에서 꼴찌를 다툴만큼 인구도 적고 개발이 덜 된 지역이지만

예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라프카디오 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아다치 미술관을 위시해, 예술 쪽에서는 상당한 기반을 다진 곳.

그래서 이렇게 개인이 운영하는 공방도 군데군데 암약중이다. 이런 데 관심있는 사람은 유심히 살펴봐야 할 곳.

 

한국사람에게 익숙한 가이드북에는 큼직큼직한 공방밖에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진짜배기를 보려면 현지 조사가 좀 필요할 듯.

 

 

 

개미공방은 좀 있다가 들어가보기로 하고, 일단 좀 더 길거리를 둘러본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도로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녀석.

그러고보니 요즘엔 한국사람들도 우물에 동전 잘 던진다고 하더라.

 

우물과는 달리 이건 손만 뻗으면 바로 가져갈 수 있는 거리인데, 용감도 하다.

사실 대부분 1엔짜리 동전이라서 가져가봤자 음료수 하나도 못뽑아먹긴 하지만.

 

 

 

열성적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이즈모타이샤 앞의 상점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 구간만 지나버리면 금새 한산한 시골가로 모습이 변해버린다.

상권의 생성과 성장이라는게 실은 굉장히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정착되는 것이라서

의도적으로 상권을 이동시키거나 범위를 넓히려는 위정자들의 수많은 시도는 번번히 물거품이 될 때가 많다.

 

자전거 여행중이었으면 표지판에 보이는 미치노 에키에서 잠깐 쉰 후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을텐데.

밤중에 도착한다면 이런 시골 미치노 에키는 훌륭한 야영지가 되기도 한다.

붐비는 곳은 눈치보여서 못하지만, 7시만 되면 문을 닫아버리는 시골 휴게소는

넓직한 주차공간과 텅 비어버리는 야외 판매부스, 24시간 가동되는 화장실 덕에 천국과도 같은 곳.

 

드물기는 하지만 지붕이 딸린 무인휴게소를 24시간 개방하는 곳도 있어서, 그런 곳에 도착한다면 운수 좋은 날이다.

 

 

 

적당히 돌아보는것도 점점 채력이 딸리기 시작한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흐리고 가끔 비가 철철 내린다는 예보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물론 화창해서 정말 다행이긴 하다.

 

미치노 에키까지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평범한 관광에 거기까지 갔다가는

또 한번 자전거 여행의 그 추억들이 폭풍같이 밀려와서 괜히 괴로워 질것 같아서 무심히 방향을 돌린다.

 

이즈모타이샤는 한참 뒤지만, 이미 여기서부터 토리이가 서 있다. 상점가의 시작을 알린다고 보면 될 듯.

큰것 좋아하는 이곳답게, 이 토리이도 일본에서 가장 큰 토리이. 그런데 느껴지는 매력은 없다.

물 위에 떠있는 것도 아니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나무향기가 나는것도 아니고, 그냥 큰 돌덩이일 뿐.

 

 

 

토리이를 통과해서 쭉 직진하면 신사가 나오지만

방금 그 상점가를 한번 스윽 둘러봤기 때문에 다시 방향을 왼쪽 골목으로 틀어본다.

역시 일직선 상점가를 빼면 어디나 평범하게 사람들이 하는 풍경.

 

시간도 충분하고 다시 주택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 천천히 걸어간다.

마당이 조금 작아서 아쉽지만, 나무들이 아주 건강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집이 인상깊다.

아침마다 이 녀석들한테 물 뿌리면서 얼마나 컸나 한번씩 살펴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일 듯.

 

 

 

조금 걸어가다보니 수타소바점이 보이길래 이것도 인연이겠지 싶어서 들아가 본다.

관광지에서 좀 떨어진 곳이다 보니, 안에서 한국어가 들릴 일은 없을 것 같고.

 

아마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단련된 유명 소바집보다 맛있지는 않겠지만

일단 수타소바라고 광고를 하고, 맛의 레벨과는 별개로 지역민들이 찾는 식당이라는것도 나름 매력이 있으니

생각없이 걸어가던 내 눈앞에 이렇게 나타난 것만으로도 들어가볼 가치는 충분하다.

 

 

 

카운터를 포함해서 자리가 10개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식당.

원래 카운터에는 잘 앉지 않는 편인데, 뭔가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서 끌려가듯 앉게 된다.

이건 일본식 장기에서 쓰는 말의 모양인데, 카운터에 조각을 한게 아니라 홈을 파고 끼워넣은게 재미있다.

 

주인장이 장기를 좋아하나 싶었는데, 그다지 인상이 친근해 보이지 않는 주인장이라서 물어보진 못했다.

동네 가게라는 이미지에 딱 맞게, 어디서 일하고 온 듯한 아저씨들 서너 명이 모여서 주섬주섬 정치 이야기 중.

무뚝뚝한 주인장은 일단 인사는 잘 하는데, 뭐라고 더 말 걸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어쩐지 예상한 것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오히려 미소가 떠오르는 듯.

 

 

 

어제 마츠에에서 먹지 않고 일부러 남겨 둔 와리고 소바(割り子そば)를 주문한다.

도시락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렇게 나뉘어 진 녀석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식당에서 지역 명물로 소개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한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먹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맛보다는 먹는 느낌이 중시되는 편이랄까. 본인 스타일과는 그닥 맞지 않는 명물이긴 하다.

 

그래도 담궈먹는 방식이 아니라 부어먹는 방식이라 다신 국물이 상당히 진한 맛이라는 건 특징이라 할 만하다.

어제 먹었던 야쿠모안이라는 가게는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양에 비해 좀 비싼 편이었는데

이곳은 일단 양이 많은 편이라서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기분이 든다.

배가 큰 사람들은, 일본에서 특히 맛만큼이나 양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듯. 먹어도 배가 차질 않으니.

 

물론 저렇게 3단계로 나눠서 나온 녀석이라고 해도, 예전 아르바이트하면서 먹은 양의 절반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소스의 향이 달아나지 않게 하려고 목 부분을 종이로 막아놓은 것도 괜찮은 배려.

 

수타소바라는, 고급스럽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단어에 비하면 확 띄는 인상은 없는 편인데

지역이 지역이다보니 이런 허름한 동네 가게도 일정 수준은 넘기는 듯 하다. 중상급 정도라고 하면 되려나.

 

다신 국물에다가 소바를 푸욱 담궈서 후루룩 흡입하는 본인 스타일 상

진하다고는 해도 저기다가 졸졸 부어서 먹는 방식은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맛없지는 않으니 이쪽 명물 맛을 봤다는 쪽으로 만족하고 넘어가면 될 듯.

 

단지,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심으로 소바를 마구 퍼먹던게 워낙 뇌리에 남아있어서

손님으로서 돈을 내고 소바를 먹으면 항상 양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손님에게 내 놓는 격식있는 모양새를 갖추지 않고, 그냥 커다란 라면그릇에다가 마구 퍼담아 먹었으니...

그렇게까지 입맛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원래 소바 그릇은 물이 밑으로 빠지도록 되어 있어서

라면그릇처럼 하단부에 면과 물이 닿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면이 정말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공기와 함께 흡입해야 향기를 느끼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미스터 초밥왕을 생각케 하는 이것저것 미묘한 포인트가 많은게 소바라는 음식이라

사실 어지간히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냥 대충 먹는것하고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요리만화에 익숙해지면 자기가 뭔가 대단한 미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만화는 만화일 뿐.

 

너무 조용해서 소화가 잘 안될듯한 분위기였지만, 혼자 먹는데 익숙한 본인은 그냥 묵묵히 맛을 음미하고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주인장분은 내가 외국인이라는걸 알고 있는지, 그쪽에서도 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는 외국인에게 익숙한 그런 가게가 아니라서, 아마 괴이한 몰골의 외국인 덩치가 들어와서 좀 긴장했겠지.

 

간식도 먹었고 식사도 마쳤고, 이제 먹는것에 대한 미련은 충분히 해소했으니 조금 전 지나친 개미공방에 구경이나 하러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래도 비가 완전히 그칠 것 같지는 않고, 맞으며 걸어다닐 정도라고 판단될 때 일어나서 언덕을 오른다.

오르기 전에 홀로 고고히 피어있는 꽃을 한장 찍어주고.

이 녀석 좀 전 주택가에서 봤던 빨간 꽃과 색만 다르지 같은 녀석인 듯 하다. 이름이 뭘까.

 

 

 

언덕 위에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올라가보니 무사 저택하고는 상관없는 볼거리였다.

이 지역의 축제때 사용하는 거대한 북 가마를 전시해 놓은 곳.

 

아무래도 무사 저택만 구경하기에는 입장료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까.

보통 일본의 축제는 그 지역의 토지신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는 '오미코시'(御神輿)라는 가마를

장정들이 어깨에 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 주변에서 북을 치고 흥을 일으키는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의 축제는 오미코시보다 이 거대한 북이 메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북이 매우 크고 무거워서 가마처럼 사람들이 직접 매고 이동하지는 못하고, 밑에 바퀴를 장착해서 끌고 다닌다.

 

신성함과 부정탐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일본 사람들 답게, 원래 축제에 사용하는 오미코시나 이런 가마들은

마을 사람들도 축제 전까지는 보지 못하도록 안치하는것이 보통인데, 관광객을 위해서 특별히 전시해 놓은 것이라고.

 

조그만 브라운관에 영상과 함께 흐르는 설명도 일본어, 한국어, 영어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작은 무사 저택이지만 외국인을 위한 배려가 상당히 인상깊어서, 입장료 낸 만큼의 만족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북을 보고 나오니 또 비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한다. 이젠 그냥 포기.

오후 3시를 넘어갈려나 말려나 하는 시간인데, 15시간의 항해중 잠다운 잠은 자질 못했으니

사실상 어제 아침 9시부터 지금까지 30시간을 뜬눈으로 깨어있는 셈이다. 멀미는 덤으로.

 

무사 저택 앞에서 레이크라인 버스를 타면 아직 어디든 구경갈 수 있는 시간이고

멀미만 아니었으면 느긋하게 호리카와 유람선에 몸을 맡기고 뱃사공의 입담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인데

풍경을 즐길수 있는 몇몇 곳은 비때문에 가나마나한 상태, 배는 도저히 탈 기분이 아니고.

 

비는 좀 맞겠지만 그냥 시오미나와테 거리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녀보기로 한다.

 

 

 

시오미나와테 거리는, 해자 건너편에 고풍스러운 무사 저택이 늘어서 있고

해자 쪽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만한 흙길이 늘어서 있다. 날씨가 좋은 날 걸어다니면 매우 훌륭한 산책로.

 

이곳 홍보 팜플렛에는 '일본의 산책로 100선'에 선택된 곳이라고 하는데

무엇무엇 100선 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서, 그냥 그렇다고만 생각한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100선 정도면 각 도도부현에 2개씩 최고의 장소 뽑고도 몇개 더 남으니까.

마음에 드는 풍경이란 건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건 그렇고, 이 묘한 모양의 노송은 나이가 600살쯤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사람의 보살핌이 없이는 호리카와에 처박힐 운명이긴 하지만

나이를 진득하게 먹은 나무라는 건 어떤 생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연륜이란 걸 온몸으로 표현하는 듯 하다.

지구가 생명체의 어머니라는 가이아설을 문학적으로 생각한다면, 가이아의 직계 자손이 이런 녀석들이고 우리는 10대 후손쯤 되려나.

 

외딴 섬이라서 자전거 여행과는 맞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지만

이 젊은(?) 노송을 보고 있으니 야쿠시마(屋久島)의 7천년된 삼나무가 다시 그리워진다. 언젠간 반드시 가게 될 터.

 

 

 

이번 여행 포스팅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게 누구 흉상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옆에는 아일랜드 대통령이 내방했을 때 심은 기념수도 있다.

그쪽의 라프카디오 헌이나 이쪽의 코이즈미 야쿠모나 모두에게 참 자랑스러운 인물이겠지.

 

지금에서야 세계화다 뭐다 해서, TV 앞에서 전세계의 비경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시대지만

처음으로 배나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떨어진 나라에 도착한 사람들의 문화적 충격은 얼마나 어마어마했을지.

경계가 명확할수록 낭만이 넘치는 시대였고, 이제는 외국이라는 절대적인 놀라움의 대상도 그저 즐기러 훌쩍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존재가 되었다.

옛 향수를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인간이 지식을 쌓아가면서 점점 놀라움의 대상이 사라져 간다는 건 좀 재미없는 일.

 

이대로 발전이라는 걸 계속한다는 가정하에, 만약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지식마저 습득하는 그 때에는

모든 존재에 대한 신선함과 호기심을 잃고 멸망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에 중심을 두긴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과학에 대해서 매번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즐거움이 광산에서 캐내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라면

대통일이론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과학이란 끝이 보이지 않는 노다지나 같으니까.

 

 

 

비가 와도 유유히 호리카와 강을 흐르는 유람선의 모습이 보여서 서둘러 한장 담는다.

50분간 고즈넉한 마을과 마츠에 성 주변의 풍부한 자연을 감상하는 저 코스는 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한다.

비싸긴 해도 외국인 할인까지 되니, 일본어를 알아듣는 나로서는 즐길거리가 많을 텐데.

 

아무래도 다음엔 비행기로 가볍게 날아와서 멀미 없이 유람선을 타 봐야 할것 같다.

 

 

 

쿨맥스 소재라서 마르기는 기가 막히게 잘 마르는데

비 맞으면서 동시에 말리는 듯한 묘한 산책을 잠시 즐기다가 다시 출발점이었던 무사 저택 앞으로 돌아온다.

문득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주변에 먹을만한게 있나 둘러본다.

 

역 근처에 가면 적당히 배 채울만한 곳이야 있겠지만,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좀 유명한 거라도 먹어볼까 싶다.

입장료가 비싼 곳도 별로 없고, 대부분 외국인 할인이 되다 보니 거기서 아낀 돈을 음식에 투자하면 되니까.

아끼려고 작정하면야 일본 1주일 돌아다녀도 식비로 5만원 정도만 쓰면 충분하지만

지금 자전거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돈 남겨가서 뭐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시오미나와테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라면 단연 소바집 야쿠모안(八雲庵)이다.

이곳 역시 원래 무사 저택이었던 곳을 음식점으로 개조한 건물인데, 예전 미관을 크게 해치지 않아서 그 풍경이 예사롭지 않기로 유명.

 

음식점도 대를 잇는 곳이 많은 일본에서, 특히 소바집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쟁쟁한 가게들이 많기 때문에

중장년층이 많이 찾기도 하고, 이름값 탓에 새로 생긴 맛있는 소바집이 괜히 평가절하받는 경우도 있다.

 

제대로 면을 뽑아먹은 역사는 약 500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지만,

메밀이라는 게 워낙 아무렇게나 뿌려놔도 잘 자라는 잡초같은 녀석이라

메밀을 이용한 음식은 일본에서 14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녀석. 뭐든 장인정신으로 승화시키려는 이쪽 사람들이라서

각 지역마다 이름 날리는 소바집이 산재해 있다. 특히 물 맑은 지방의 소바집은 그 맛이 일품이라, 먼 시골까지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본인이 몸담았던 나가노현 키소(木曽)마을의 소바집도 창사 300년쯤 된 이름있는 곳이었는데

수익성 때문에 직접 메밀을 재배하진 않고 홋카이도에서 가져오긴 하지만

평균 해발 1000m를 넘는 산간지방에서 흐르는 물과 함께 만들어낸 소바의 퀄리티는 일본에서도 최상급.

도쿄 관광 가본 사람들중에는, 유명한 관광버스인 하토버스를 알고 있는 분도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도쿄에서 출발하는 그 하토버스의 코스중에 이 소바집을 찾는 것도 있을 정도. 도쿄에서 그곳까지는 버스로 4시간이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있는 일본의 메밀국수 형태의 소바의 시초가 된 곳이 그곳 키소였기 때문에

사실 이곳에서 유명한 이즈모소바(出雲そば)도 원류를 따지고 들어가면 키소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골짜기 나가노현 안에서도 정말 이름 그대로 산골짜기중의 산골짜기 키소마을이라

이즈모타이샤를 찾는 사람들 덕에 이곳 이즈모소바가 훨씬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신슈소바(信州そば)라고 불리는 그 지역 소바의 맛은, 매니아들이 찾아가는 일본의 극소수 특 S급 소바집을 제외하면

평균적으로 일본 최고라고 판단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점심시간엔 그 소바를 정말 마음껏 퍼먹을 수 있었는데

조금의 과장도 없이,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받으면서도 그 소바맛 하나때문에 아르바이트가 조금도 후회되지 않았을 정도.

 

커피나 중국차도 마찬가지지만, 미각의 레벨을 올리려면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녀석을 맛의 기준으로 삼는게 쉬운 방법이듯이

소바의 맛도 일단 제대로 된 녀석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음부터 맛을 구별하는데 좋은 비교점이 된다.

키소의 소바에 익숙해진 후로, 같은 일본에서 먹는 다른 지역의 소바도 레벨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한국 일식집에서 나오는 소바는 이제 손도 대지 않는다. 비교하는게 미안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

지하실에서 직접 메밀을 탈곡해서 바로 면을 뽑아올려 만드는 소바가

대량생산되어 비닐에 쌓인 채 배송된 후 가게에서 삶아 나오는 녀석과 맛이 같을수가 있나.

 

일단 마츠에에서 가장 유명한 이즈모소바집인 이곳 야쿠모안도, 직접 탈곡해서 수타로 면을 만드는 곳이니 퀄리티는 보장된다.

소바는 그 퀄리티는 둘째치고, 지역마다 차별된 방식의 먹는 방법이 존재하는데

이즈모 소바는 도시락 소바인 와리고소바(割子そば)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따로메밀국수' 정도로 해석가능.

야외에서 소바를 갖고 나가 먹는데서 유래한 소바로, 이곳 특유의 칠기그릇을 도시락처럼 단을 나눠 그안에 소바를 담는다.

각각의 단마다 소바 위에 얹는 고명의 종류를 달리해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특징.

 

원래 소바는 작은 그릇에 담긴 다신 국물(だし汁)에 면을 듬뿍 담궈서 먹는 방식이지만

야외 도시락 개념의 이곳의 와리고소바는, 국물의 맛을 유지시키기 위해 소바에다 직접 뿌리는 방법을 사용한다.

국물을 여러번 담궈 쓰면 소바에서 나오는 수분이 스며들어 맛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곳 다신 국물은 타 지역보다 맛이 진하다. 담궈먹는 방식보다는 어쩄든 양이 적으니까.

 

와리고소바는 이즈모소바의 원류인 이즈모타이샤에 가서 먹어보기로 하고

이곳에서는 브랜드 상품으로까지 알려진 청정생달걀과 함께 나오는 4색소바를 시식해 보기로 했다.

 

 

 

흰 쌀밥에 풀고 간장뿌려 비벼먹으면 맛이 일품일 듯한 최고급 계란을 얹고

다신 국물을 좌악 뿌려서 입으로 넘겨본다. 계란의 담백한 맛 때문에 강한 국물의 맛이 약간 중화되는 느낌.

국수 자체의 퀄리티는 꽤나 괜찮은 편이고, 위에 올라온 4가지 색의 고명을 조금씩 섞어서 함께 흡입하면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레퍼런스급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맛은 합격점.

 

키소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먹은 소바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끈적끈적한 참마를 국물에 갈아넣고

무와 와사비를 갈아넣은 후 담궈먹고는 했다. 참마의 끈적함 때문에 면에 국물이 훨씬 많이 달라붙고

무의 시원함이 함께 느껴져서 먹고있으면 그저 행복할 따름.

 

이게 상당히 맛을 진하게 먹는 방법이라서, 이곳의 소바는 거기에 비하면 조금 약한 맛이지만

사실 원래 소바는 그렇게까지 진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커스텀 취향.

한국인 입맛에는 좀 허전하다고 느껴질수도 있고, 소바는 면류음식 중에서는 가격이 좀 비싼 편이라서

아무래도 여기서 한그릇 먹어보고 좀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 하다.

 

소바의 맛은 있는듯 없는듯 느껴지는게 정상이고, 다신 국물의 퀄리티에 따라서 평가가 갈리는 음식.

면을 뽑을 때 껍질부분까지 같이 뽑느냐, 핵만 뽑느냐에 따라 면의 색깔이 바뀌고, 목넘김과 향기도 달라진다.

소바를 먹을 때 일부러 후루룩 소리를 내며 공기와 같이 삼키는 것도 그 목넘김과 향기를 즐기기 위해서.

 

소바는 끓는물에 삶으면 영양소의 대부분이 물에 녹아버리기 때문에, 칼로리도 없고 별로 건강에 좋은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부탁하면 소바 삶은 희멀그레한 물을 한잔씩 내놓기도 한다. 그걸 남은 다신국물에 섞어 마시면 진득한 육수.

겨울에는 물론 소바째로 넣고 각종 야채를 넣어 우동처럼 삶은 뜨끈한 녀석도 판매한다. 겨울에는 그게 별미.

 

이곳의 소바는 이름값은 하는 만큼 괜찮은 수준이지만, 역시 추억거리가 잔뜩 쌓여있는 키소의 소바와 비교하는건

개인적인 감상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말할 수가 없다. 나름 평가해 보려고 해도 진짜 키소쪽이 맛있게 느껴지긴 하는데.

호텔의 최고급 코스요리보다 어머니가 해 주는 된장찌개가 더 맛있는 건 어쩔수 없는 일 아닌가.

 

한 번만으로 평가하기엔 소바라는게 꽤나 민감하고 애매한 맛이라서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가게 정원이나 내부 인테리어는 참 정감있게 꾸며놓았다.

마츠에의 유려한 산책로에서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곳이니, 먹고 후회할만한 퀄리티는 아니다.

 

배도 조금 채웠겠다, 체력이 조금 돌아온 사이에 오늘 여행은 이걸로 접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

사실 갈아입을 옷을 한벌씩밖에 안가져왔는데, 이렇게 쫄딱 젖었으니 조금 일찍 가서 빨래도 해야 한다.

그래도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레이크라인 버스를 타고 숙소와 반대방향으로 한바퀴 빙 돌아본다.

반대쪽으로는 15분만에 도착하지만 , 이곳의 일반 버스는 50분에 한대씩 오기 때문에 기다려봤자 헛일.

 

오늘 돌아보지 못한 다른 관광지를 버스 안 창문을 통해 슬그머니 바라보는 것도 나름 운치있다.

버스가 30km 를 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감상이 가능한 것. 한국의 시내버스를 타면 경치 감상이고 뭐고...

 

역 앞에서 내려 편의점서 적당한 간식거리 구입후 호텔로 돌아온다.

코인세탁기와 건조기는 돈 내고 사용하지만, 원래는 세제도 프론트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이럴줄 알고 한국서 세제를 한움큼 퍼담아 왔기 때문에 5백원정도 아낄 수 있었다. 참 잘났다.

 

시골 지역이라서 TV 채널이 4개밖에 없다. 참고로 도쿄는 기본채널이 10개 정도.

하지만 되려 좋은점도 있는게, 채널 수가 적으니 각종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몰려서 한꺼번에 나온다.

예를들어 도쿄에서 월요일엔 무한도전, 화요일엔 유한도전, 수요일엔 제한도전 따위의 방송이 나온다고 하면

이곳에서는 6시에 무한도전, 7시에 유한도전, 8시에 제한도전이 나오는 셈. 물론 날짜상으로는 재방송이지만.

일본은 지역별로 편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동시간대에 방영하지는 않는다.

 

자전거 여행때 A 지역에서 본 TV 프로그램이, 1주일 달린 후 들어간 B 지역에서 또 방송되는 경우도 있었고.

 

덕분에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 돌리고 하는 사이 속이 꽉꽉 찬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일본어가 가능하니, 남들보다 일찍 들어와서 TV 틀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침대에 누워도 여전히 배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오늘만 잘 넘기면 내일부터는 머리도 정상으로 돌아올거라 생각한다.

흐리며 때때로 비, 강수확률은 70%를 넘고 있어서 내일 일정이 조금 걱정이긴 하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안 가보면 큰일나는 곳도 없고 그냥 날씨 맞춰서 그때그때 발길을 정할 뿐.

'떠나자 > 山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인 여행 - 이즈모 타이샤  (10) 2012.09.25
산인 여행 - 혼자 가는 인연맺기 신사  (10) 2012.09.24
산인 여행 - 무사 저택  (14) 2012.09.18
산인 여행 - 이방인  (20) 2012.09.17
산인 여행 - 여우신사의 심술  (23) 2012.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