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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3.09.12  과거로의 여행 - 시라카와고 1편 20

 

다른 마을에 있었던 조그만 신사인데, 약간 어설픈 갓쇼즈쿠리 양식이긴 하지만

거주용 저택처럼 큰 녀석은 아니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눈을 막을 수 있는가 보다.

 

이렇게 느슨한 양식은 얼핏보니 한국의 초가집과 별로 다르지도 않다는 느낌.

이곳이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지붕의 각도도 낮고 펑퍼짐하게 만들어져

보기엔 좀 편안한 대신, 이렇게까지 관광객이 찾아드는 유명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어울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실 고생한 사람과 낙을 받은 사람이 몇 세대는 차이나지만.

 

 

 

정확히는 '민가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박물관인데

각지의 건물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여러 단체의 힘을 모은 큰 공사였지만

현재 이곳은 유지 보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 주민들이다.

 

전통 방식으로 건물을 유지 보수하는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

갓쇼즈쿠리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지붕을 이루는 억새인데

제대로 만든 지붕의 수명은 약 30여년이지만, 마을에 건물이 한두 개 있는게 아니다보니

거의 매년 한두 번씩은 새 지붕으로 교환하는 일이 생긴다. 마을의 모든 장정들이 동원되는 일년 중 가장 바쁜 대목.

 

지금은 지붕 교체를 마을 축제로 결부시켜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제때 지붕을 갈지 못하면 그해 겨울을 나기가 힘들어지는, 목숨과 직결된 일이었기에

마을의 공동체 생활의 힘을 가장 여실히 보여줄 수 있는 협동의 장이기도 하다.

 

 

 

원래 담이란 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쟀든 지붕과 비슷하게 정감넘치는 담장도 만들어져 있다.

집의 유지 보수가 중요한 일과인 마을이라서 창고엔 항상 목재가 쌓여있는게 보인다.

 

그리고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외발수레의 모습이 뒤의 정원에서 화려하게 자태를 뽐내는 꽃과 어우러지니

살짝 전원일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라면 이웃과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살아보는것도 좋을 듯.

 

 

 

건물들 돌아보고 있을땐 손가락 끝으로 셔터를 느끼며, 코끝으로 풀내음을 맡으며, 눈끝으로 녹색 향연을 즐기는데

좀 쉬자고 생각하며 주면의 꽃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으면 감각들이 정말로 쉬어버리는지

그제서야 지금이 얼마나 무더운 날인가를 실감하게 되고, 참고 있던듯한 땀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담기는 사진들이 전부 소중하니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다행.

누가 하라고 하면 이렇게 돌아다니지는 못할것 같다. 사진도 의뢰받아 찍는건 그닥 땡기지 않고.

 

 

 

이곳을 거닐면 머릿속에 생각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보고 찍고 느끼고 하는 단순하면서도 즐거운 행동의 반복일 뿐.

 

작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 한 장을 위해 수많은 발걸음을 옮겨 최적의 스팟을 찾아내어야 할 텐데

본인은 아직 여행에 미쳐있어서 그런지, 사진보다는 일단 보고 즐거워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덕분에 사진은 그저 그렇다.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힌 곳이라 이런 꽃의 강렬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시라카와고는 겨울이 진국이라 하던데, 여름의 모습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수준이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겨울에 가 보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되는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적어도 이 꽃만큼은 겨울의 어떤 풍경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니 귀하게 담아준다.

 

 

 

광합성을 통해서 땅에서 솟아난 건지, 구름이 점점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자

슬금슬금 혼자였던 민가원 안이 관광객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어로 추정되는 말을 피로하는 외국인들도 많다.

 

아직 풍경 감상에 전혀 지루해지지 않고 있지만, 이곳 안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건물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고 만다.

구석기 시대에 출토된 갓쇼즈쿠리의 초기양식... 이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은 아닌듯 하고.

 

다행이랄까, 연못 중앙에 떡하게 놓인 이 건물은 아무런 방해물 없이 편하게 들어가 감상할 수 있었다.

원래는 손이 닿지 않을 억새지붕도 손쉽게 만질 수 있는 위치인데, 아무래도 사고칠까봐 마구 만지지는 못했다.

 

 

 

처음엔 농담삼아 생각해 본 구석기 이야기였는데

실제로 갓쇼즈쿠리의 초기 형태는 죠몬시대의 이러한 거주지 모양을 본뜬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다층식 갓쇼즈쿠리 양식은 약 300년 전에 확립된 기술.

 

약 1만년 전 즈음의 죠몬시대 일본에서는, 땅을 파서 동굴처럼 만든 후 기둥을 새우고 건초로 지붕을 만들어 생활하는 방식을 이용했는데

원형적으로 지금 보이는 갓쇼즈쿠리의 초기 형태와 비슷한 면이 있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원시인에 가까운 생활방식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이런 지붕만 달랑 남은 건물은 뭐하는데 쓰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안내판을 보니 '화재 등으로 집을 잃었을 때, 집이 재건되기 전까지 살았던 임시 거주지'였다고 한다.

 

내용을 알고 나서 생각해 보니 과연 그럴 법도 하다.

집이 없이는 절대로 겨울을 날 수 없는 곳이고, 그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갓쇼즈쿠리 양식의 지붕이 필요하다.

집이 완성되기 전까지 생활이 가능한 모양이라고 하면 이것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내부로도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놀랐다. 지붕과 가까워질수록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든달까.

내부는 간이 바닥이 반쯤 깔려있고, 나머지는 그냥 흙바닥이다. 적어도 오래 살수 있을만한 공간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목재마저 풍족하지 못했다면, 이 지역은 결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불모지가 되지 않았으려나.

하지만 사람의 적응력이란 상상을 초월하니, 그 경우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은 어떨런지 상상해 보는것도 재미있을 듯.

 

 

 

갓쇼즈쿠리 지붕의 맺음 형태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모습.

가장 강하고 굵은 기둥을 합장하듯이 세우고, 그 기둥을 지지하는 보조 기둥을 양쪽에서 겹쳐 세운다.

메인 기둥에 평행한 방향으로 억새를 지지할 기둥을 세운 후, 마치 젠거 막대를 겹쳐쌓듯이 꼼꼼하게 추가 기둥을 덧붙인다.

 

중간중간 지지대 기둥의 각도를 엇갈려 배치해 놓음으로서 최대한 눈의 하중을 분산시려고 노력해 놓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런 식의, 하중이 여러 기둥들에 의해 세세히 분산되는 구조에서는 강도와 함께 탄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금속 지지대보다는 이런 목재 지지대가 재료 구하기도 쉽고 수십년간 오래 버틸 수 있다.

 

 

 

여름에 별로 시원하지 않고, 겨울에 별로 따뜻하지 않은 갓쇼즈쿠리 구조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이곳 시라카와고는 바닷바람이 계곡을 통해서 직선으로 통과하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여름에는 남쪽에서 북쪽 바다로, 겨울에는 바다쪽에서 남쪽으로 바람이 통과한다.

 

갓쇼즈쿠리 양식은 눈의 하중을 버티기 위해 지어진 방식이라서

그 가파른 지붕 측면에서 매서운 바람을 받으면 한쪽 부분에만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수명의 단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곳 마을의 건물들은 모두 출입구 부분, 건물 정면의 삼각형 부분을 남북으로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야 지붕의 측면으로 바람이 부딪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완성된 갓쇼즈쿠리 건물은 출입문이 측면에 위치하지만, 이런 가건물은 구조상 지붕과 출입문이 같은 방향으로 나 있다.

그래서 바람이 잘 통하는 여름에는 어떻게 버틸만 하지만, 겨울은 추위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구조.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 하나를 위해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빨리 새로운 집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면서.

 

 

 

가건물을 한참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강렬한 햇빛에 잠깐 시야가 몽롱해진다.

추정 이탈리아 처자 세 명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탱크탑 차림으로 뭐라뭐라 이야기하며 주변을 거닐고 있다.

 

건너왔던 다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건너가보고 싶었는데, 이쪽 다리는 게걸음이라도 해야 할 정도로 좁다.

물론 빠져도 발목 조금 위까지만 잠길만한 연못이라 생명엔 지장이 없겠지만

이런곳에서 푹 빠져버리면 그 쪽팔림 만으로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을테니 신중하게 한걸음 한걸음 이동하며 다리를 건넌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집이 있어서 다가가 본다. 크기가 다른 집에 비해서 좀 크긴 한데, 그것만은 아닌 듯한 느낌.

좀 더 현실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묘하게 다른 건물들보다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약간은 이해가 된다. 현재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오래된 갓쇼즈쿠리 건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크기도 상당히 크고, 높이보다는 길이가 길쭉한 것이 평범한 일반 민가와 약간은 닮은 점이 남아있는 점이 특징.

 

 

 

창고쪽에는 주민들이 거주 당시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이곳에 사람이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현실감이 느껴진다.

말 썰매라는 뜻의 바소리(馬橇)라는 이 기구는, 말 그대로 말이 끄는 썰매다. 지형이 험하고 날씨가 추운 이곳에서는 소보다 말이 더 효율이 높았다.

 

예전에는 산간 지방에서 자주 사용되던 녀석인데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실제로 사용하던 녀석을 보존한 것은 아마도 이 녀석이 최후의 1개일 거라고 설명에 적혀 있다.

 

 

 

오래된 민가일수록 목재에 끊임없이 옻칠을 하고, 목재 자체의 수명이 더해져서 흉내내기 힘든 색상이 덧입혀져 있다.

내부에 들어와보니 정말로 오래되긴 오래된 녀석이구나 싶다. 좀 전의 가옥 내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마을의 역사에 비하면 전기같은거 들어온 건 아주 최근 들어서이기 때문에

형태를 갖춘 등불과 촛대들이 현실감을 간직한 채 전시되어 있다.

 

적당히 모양 갖춘 목재를 살짝 다듬어서 자연미를 살린 녀석도 있는 반면

대자연 속에서 폭발하는 예술 감각을 주체하지 못했던지, 멋들어지게 깎아낸 촛대도 보인다.

실용적이고 간소함이 느껴지는 물건들이지만, 금속 촛대나 옥 촛대 등은 그래도 좀 사는 편이라고 자부하던 사람들의 유산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전통 가옥의 내부 형태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다. 지금도 시라카와고의 여관이나 민박집에서는 이런 구조를 쉽게 볼 수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넓은 거실은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고

지금도 민박집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젊은이들이 옹기종이 모여서 자신들이 가진 각각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온통 목조로 만들어진 데다가 주변엔 산과 나무로 불러싸인 지형, 그리고 갓쇼즈쿠리의 생명인 거대한 억새 지붕은

모두 불에 극단적으로 취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마르고 말라 굉장한 밀도로 제작된 억새 지붕에 불이 붙으면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도 절대로 꺼지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화재는 마을 전체의 운명이 걸린 최악의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수백년동안 어떤 괴로움을 감내하면서도 화재만큼은 막으려고 노력해 온 마을이고

이런 식으로 집안에 불씨를 피울 수 있는 곳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고, 반드시 모래더미 안에서만 재와 숯을 다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민가원에 조성된 건물 중 절반 이상은, 예전 마을에서 화재로 소실된 녀석들을 100여년 전 재건한 녀석들이다.

억새 지붕의 수명이 30~40년인 것을 감안하면, 100여년 된 건물들은 새로 지은거나 마찬가지.

 

시라카와고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물은 175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척박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 생각.

고양이 구멍이라고 이름지어진 조그만 구멍은, 말 그대로 고양이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전용 출입구다.

당연히 곡식을 훔쳐가고 가옥을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 설치된 문.

 

물론 실용적인 고심의 결과 만들어진 결과물이겠지만

이렇게 머리를 문에 들이대고 조용히 쥐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냥이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충분히 즐거웠으리라 생각.

실제로 갓쇼즈쿠리 가옥에 사는 산간 지역 주민들은 동물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무리 대자연의 포옹 속에서 살아가도, 그만큼 쉽게 쓸쓸해 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센스있게 냥이 인형을 딱 설치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고양이가 없는 집이 없었다고 하는데, 재미있게도 요즘의 시라카와고에서는 고양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갓쇼즈쿠리 촌락 지역에서 좀 떨어진 일반 민가에는 평범하게 키우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떠돌이 냥이를 만난 적은 없다. 사람의 도움 없이 이곳의 험한 자연을 극복하며 살기엔 냥이도 너무 물러져 버렸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냥이는 사람에게 잘 길들여지지 않고 적응력이 뛰어나니

자연으로 돌아가도 잘 살거라 생각하는데, 기본적으로 고양이는 따듯한 지역에서 살던 동물이다.

사시사철 추운 곳이라면 몰라도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큰 곳에서는 자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특히, 쥐나 사육된 닭 따위를 잡아먹는 현재의 고양이가 자연계로 돌아가면 사냥가능한 동물은 거의 없기도 하고.

어떤 시뮬레이션에서도 현재의 고양이는 자연 상태에서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한다.

 

 

 

고양이가 가방의 의무를 다하던 주방 겸 창고.

목재가 풍부한 지역답게, 불과 직접 접촉하는 기구들을 빼면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지지대로 세워놓은 기둥 두 개가 이 곳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듯 하다.

 

 

 

아쉽게도 2층으로 올라갈 수는 없다. 일단 중요문화재이기 때문에.

갓쇼즈쿠리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로, 지붕이 높기 때문에 다락방이라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그냥 복층 주택이라고 하는 편이 낫지만

실제로 층별로 사람이 살거나 하는 형식은 아니었다. 보통 창고로 쓰기도 하고, 에도시대 중기 이후부터는 양잠 등의 사내수공업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2층에 올라가 볼 수 있는 가옥은 마을 여기저기 산재해 있으니 체험하기 쉬운데

2~4층에 보이는 창문 크기가 성인 한 명의 신장만큼 크다. 보통 떠올리는 창문과 달리 지면에서부터 시작하는 창문이라 앞에 서 보면 약간 섬뜩하다.

 

 

 

일본이라면 어느 집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불단.

화장이 주를 이룬지가 꽤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보통 부모나 조부모의 유골함을 집 안에 두고 생활하는 편이다.

이 풍경을 보니 정말 이 집은 실제로 사람이 살던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집을 구경하고 나가려는데 사진이 한 장 눈에 들어온다. 1930년대 이 집에 거주하던 가족사진이다.

요즘엔 시라카와고에서도 보기 힘든 조랑말을 사진으로나마 접할 수 잇어서 기분이 묘하다.

 

도착하고나서부터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도, 실제로는 참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는데

동물들과 함께 찍은 이 사진을 보니 이곳에서도 재밌게 한번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진의 꼬마는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80세를 훌쩍 넘겼을 터, 어떻게 되었을려나.

 

이런 거미집은 아무래도 흔히 보이는 녀석보다 훨씬 더 긴 세월동안 만들어 진 녀석일 듯.

전통을 느끼러 방문하는 시라카와고의 갓쇼즈쿠리 양식과 왠지 어울릴 법한 집이다.

 

 

 

산책이랄 것도 없지만, 조금 걸어가자 본격적인 박물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장료를 받는 곳인데도 '그냥 거기 있었던 것'처럼 조성된 자연스러움은

지금 여기가 박물관인지 사람 사는 마을 안인지 헷갈리가 만들 정도.

 

첫인상은 '자기가 지향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지만 날씨는 오전임에도 30도를 훌쩍 넘겼고

구름 너머에서 후광으로 멋을 부리고 있는 햇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런 날씨는 지금 뿐인듯 하다. 저 구름이 걷히는 때부터 이곳은 최고의 한여름 날씨를 보여줄 기세.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전통 가옥을 보러 오는 시라카와고지만, 이 주변 환경만 둘러봐도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많은 관광객이 마을 쪽을 먼저 찾는지, 이곳엔 아직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도 무료 관람이 가능한 곳을 먼저 돌아보고, 마음에 들면 유료 관람쪽으로 올 거라 나름 추측을 해 보는데

본인은 어차피 오늘 하루 시라카와고의 여름 풍경을 속속들이 빨아먹을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과 섞이지 않도록 루트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다행히도 첫 번째 예상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혼자서 길 어디서나 멈춰서서 느긋하게 풍경을 즐긴 후, 슬금슬금 카메라를 치켜들고 셔터를 누를 때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누군가를 방해하거나 누군가가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 신선 놀음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겨울엔 끝없는 눈이 내리고, 연간 강수량도 상당한 곳이라 자칫하면 빗속의 관광이 될 가능성도 높았지만

이번 여행은 뭔가 날씨에 있어서는 축복을 받은건지, 가는 곳마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 뿐이다.

 

시라카와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속에서 드러남에 틀림없지만, 그런 아쉬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여름의 시라카와고 역시 눈과 귀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라고 생각.

 

본래 자연의 매서움을 사람의 힘으로 극복해 살아가는 의지와 노력이 깃들어 있는 갓쇼즈쿠리 양식이라도

이렇게 풍요로움이 넘치는 한여름 풍경과의 묘하게 어색한 언밸런스 역시 대조를 이루어 관광객의 시야를 자극시킨다.

 

 

 

자전거로 오기가 보통 힘든곳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괴수는 많으니

정말로 도보나 자전거로 이곳까지 여행오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에 현대식 호텔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노숙도 금지되어 있어서, 당일치기로 떠나지 않는 한엔 민숙이나 여관에 묵을 수 밖에 없는데

자전거 여행자들이 그런 사치를 누리기는 쉽지 않은지, 가끔 이런 공터에 텐트치고 자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도 골머리를 썩히곤 한다고, 돈이 없다는데 여관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여행은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 관광객들이나 상호 협조없이는 결코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돈 내고 왔으니 내가 갑이라고 큰소리 치는 천한 것들은 제발 여행따위 좀 때려치워 줬으면 한다.

뭐, 자전거 여행자들은 돈도 없으면서 은근히 자존심과 서바이벌 정신으로 불타는 애들이 좀 있기도 하고.

일본같은 풍요로운 곳에서 서바이벌 같은거 해 봤자 그냥 어린애 장난일 뿐이다.

 

 

 

이곳 민속 박물관은 원형으로 된 부지 위에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열되어 있고

루트는 일직선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가옥들 뒤쪽 언덕으로 한바퀴 돌아보거나

조성된 개울가 주위를 산책하거나 하면서 마음대로 걸어볼 수 있다.

 

일단 입구와 출구도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사실은 순로라는 방향지시가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이 붐빌때나 단체 관광같은 경우에 필요한 하나의 가이드 역할 정도는 해 낼듯 하다.

 

길을 따라갈 일이 없으니 여기저기 뒤척이며 정신없이 동공 안에 이 풍경을 마구 각인시키며

거의 본능에 가깝게 카메라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수능이라도 준비하는 학생처럼 맹렬한 기세로 관광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시라카와고 하면 생각나는게 갓쇼즈쿠리 양식 밖에 없었는데

직접 와서 감상해보니 갓쇼즈쿠리는 이를테면, 이곳의 본질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의 일종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눈과 비에 강한 갓쇼즈쿠리 양식이 태동하게 된 이유가, 시라카와고를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생명력으로 넘쳐흐르는 듯한 압력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 이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곳은 홋카이도의 비경 시레토코(知床) 정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중앙알프스 쪽이 원래 이런 곳이라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험한 산맥 골짜기 사이의 조그만 평지에 형성된 마을의 외부와 단절된듯한 고립감과,

동시에 산맥의 풍요로운 품 속에 안긴 듯한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과거에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갓쇼즈쿠리 건물과 함께

이곳의 폭발적이며 잔인한 생명력이 어우러진 결과, 눈에 보이는 풍경에는 고즈넉함과 함께 거칠고 율동적인 힘의 파동이 느껴지는 듯 하다.

 

가옥 역시 이곳 자연에서 난 소재만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위화감이라곤 느껴지지 않고,

여름의 은혜로 인해 억새지붕 위쪽도 푸른 생명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곳이 겨울에 그렇게도 혹독한 곳인가 싶을 정도로 대조적인 인상을 남긴다.

 

계절의 흐름은 이렇게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동시에 시련이 되고, 그 반복에서 사람은 더욱 강인해 지는 것일까.

 

 

 

억새로만 지붕을 만들면, 눈은 둘째치고 비를 막을 수 있나 싶었는데

처마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런 걱정은 별 의미가 없을 법도 하다. 두께도 밀도도 굉장해서 비가 샐 염려는 없을 듯.

실제로 이곳은 비도 아주 많이 오는 곳이지만,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지 않는 이상 비가 샌 적은 없다고 한다.

 

 

 

박물관에 위치한 가옥들은 전부 들어가 볼 수 있다.

마을쪽에 남겨져 있는 몇몇 중요문화재 건물들은 따로 요금을 받고 입장이 가능한데

이곳에서 이렇게 구경을 하다보니, 마을쪽 건물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쪽엔 사람도 많을것 같고.

 

갓쇼즈쿠리 건물도 시대 차이가 많이 나고, 지역에 따라 내부 양식은 차이가 큰 편이라

모든 집이 이런 구조는 아니다. 이 쪽은 특히나 기본적인 구조에서 많이 벗어난 듯한 모습.

날씨에 크게 곤혹스럽지 않은 지역에서 지어진 집인지, 꽤나 여유있는 공간 배치가 인상적이다.

 

 

 

유지 보수의 흔적은 확실하게 남아있어, 실거주 시기의 흔적은 조금 줄어든 느낌인데

그래도 몇몇 나무 기둥들은 한 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목재가 매우 풍부한 지역이었던 지리적 이점 외에도, 갓쇼즈쿠리 가옥의 지붕 이음새는

방향과 각도를 달리한 나무 기둥들이 엇갈려 배치됨으로서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탄성이 강한 목재가 금속성 재료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눈이 쌓였을 때와 쌓이지 않았을 때의 하중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속 기둥으로 지붕을 지탱하면 스트레스로 부러지거나 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곳에서 금속을 쉽게 가공, 제련할 수 있었다고 해도 목재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어떻게 돌고 돌아도 이 모습이 이 자연속에서 가장 적합한 모습이라는 것.

 

 

 

이 가옥은 이탈리아 한 도시와 자매결약을 맺은 기념 전시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탈리아도 참 가보고 싶은 곳인데, 비행기값이 워낙 비싸서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라카와고가 산골 깊숙한 마을이긴 한데, 제대로 된 자치회도 있고 홈페이지도 열성적으로 만들며

많지 않은 인원으로도 축제 꾸준히 여는 부지런한 곳이라서 이렇게 이탈리아와 자매결연도 맺고 하는가 보다.

 

 

 

요즘 일반적인 주택 기준으로는 이것도 꽤나 큰 편에 속하지만

갓쇼즈쿠리 가옥치고는 평균적인 크기인 듯 하다. 물론 일가 전체가 한 집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방식이니까 클 수밖에 없다.

 

오른쪽의 살짝 튀어나온 부분은, 의외로 깨끗한 화장실이었다.

시골에서 제일 난감할때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풍기는, 형언하기 어려운 악취를 참으며 일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다행히도 최신식 시설에다가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 맞은편에 옛날 화장실이 놓여있었는데, 여기는 외관 분위기만으로도 그런 냄새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 법 하다.

지금은 폐쇄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용도폐기된 간이건물이라 그런지 억새의 밀도도 떨어져있고, 주변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렴풋이긴 하지만 나이를 먹은 갓쇼즈쿠리 건물이란 이런 식으로 바래져 가는건가 싶다. 100년이 넘어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봉분처럼.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이라

개발도 그만큼 많이 진척된 편이다. 교통도 나름 편리해졌고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상점도 많이 생겼다.

 

반대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전통성이라던가 고즈넉함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옛 건물들을 보전하고 있는 박물관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가옥을 하나의 틀에서 감상할 수 있어

마을 산책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곳보다 아이노쿠라(相倉) 같은 마을이 더욱 더 옛 모습을 잘 보존한 마을의 삶을 보여주는데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게 이동 관광이 가능한 이곳을 배제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행에 있어서 시간관념에 대한 느긋함이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요소인데

이것저것 다 즐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돈을 벌고싶고, 그런 마음을 길렀으면 좋겠다.

 

 

 

이곳 박물관은 좁은 부지에 건물들을 마구 이전해 놓은게 아니라 충분히 산책이 가능한 지형에 넉넉한 공간을 두고 만들어 놓은 덕에

어떤 곳은 '왜 이렇게 넓은 마당이 비어있나' 싶은 곳도 있다.

 

사실 성수기때는 100명이 넘는 단체관광도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라

현재 본인이 즐기고 있는 1인 관람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공간적 구조가 느껴진다.

슬슬 하늘도 맑아져 오고 햇살은 따가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공기 덕분에 아직까지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나고야의 매연에서 탈출해 히다 타카야마의 깨긋한 공기를 이틀동안 즐겨서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깨끗한 타카야마와도 차원을 달리할 정도의 상쾌한 풀내음이 기분좋게 코를 자극한다.

 

이곳은 지형상 소가 없어서, 한국의 깊은 농촌에서 풀내음과 함께 섞여흐르는 구수한 소똥 냄새가 없다는게

오히려 약간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곳의 자연이 뿜어내는 향기란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그리스 절벽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나, 스위스 초원의 가슴벅찬 풍경등과는 달라도

일본의 산간마을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데 가장 알맞은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같은 동아시아 지역이라도 한국과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가진다.

사찰이나 궁전 등 상당수의 옛 것들에서 나름 공통점을 보이는 국가들이지만

각각의 자연에 순응하는 인내와 적응력을 가진 오지의 주민들이 가지는 독특함은 다른 곳에서 흉내낼 수 없다.

삶이 고스란이 녹아들어가 있는 이 곳의 풍경은 동양인이 봐도 충분히 이국적이며 아름답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먹으러 가며 '오늘 원래 체크아웃인데 1박 더 가능한가' 물어본다.

예정했던 시라카와고 근처의 온천여관이 연락을 받지 않아서, 그냥 당일치기로 이곳에 돌아오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실제로 그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어차피 이곳 타카야마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나치게 교통비를 많이 쓰는 루트이긴 했다.

 

오늘부터 일본은 진짜 휴가철 시작이라 직원에게 물어볼 때도 좀 걱정은 되었다.

타카야마에 숙소가 워낙 많아서, 이곳에 빈방이 없어도 그냥 아침 일찍 역앞에 가면 빈방 있는 호텔 찾는게 어렵지는 않지만

또 짐 챙겨서 나가고 하는거 굉장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곳 슈퍼호텔은 여러가지로 마음에 든다.

 

일본서 가장 애용하는 비지니스 호텔은 토요코인이지만, 그건 서비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지점이 워낙 많아서이다.

슈퍼호텔이 위치한 도시에서는 가급적 슈퍼호텔을 이용하려 한다. 서비스의 질은 확실히 이쪽이 낫기 때문.

 

슈퍼호텔은 모든 지점의 객실에 열쇠가 필요없는 암호식 도어락을 설치했으며

카드키조차 필요없이, 숙박료를 지불하고 받는 영수증에 비밀번호가 적혀있어서 그 후로 카운터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암호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퇴실시에도 그냥 짐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조식의 수준은 토요코 인의 두 배 정도 뛰어나다. 구색맞추기인 토요코 인의 조식에 비해

제대로 된 반찬이 최소 서너가지는 나오는데다, 낫토 등의 건강반찬도 항시 구비되어 있고, 음료수 자판기도 조식시간에는 무료 이용이다.

 

거기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시스템이 또 마음에 든다. 치약과 칫솔을 한국서 가지고 왔으니 이곳의 비치품을 사용할 일이 없는데

지나칠 뻔하고 넘어가려던 일회용 치솔세트 표지에 '사용하지 않은 칫솔을 프론트에 가져다 주시면, 소소하지만 과자를 선물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혹시나싶어 가져다주니 정말로 과자를 하나 준다. 과자 자체는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녀석이지만

크기는 매우 매우 작아서, 사실 한국 돈으로 300원쯤 할 만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칫솔 반납하고 받는 이 기분은 뿌듯하다.

환경보호도 되고 호텔측에서도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되니 나쁠 거 없다.

 

슈퍼 호텔은 이런 식으로,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까지 최대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여유자금으로 조식의 질이나 다양한 높이의 배게 등등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중이다.

토요코 인에 비해 인간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 인간미도 접객능력이 좀 부족한데서 오는 어설픔의 미학에 들어가는 범주니까

숙소로서의 편의성만을 이야기하자면 슈퍼호텔이 더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단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

 

2008년 즈음의 슈퍼호텔은 아직 이런 시스템적인 우월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초보 수준이었고

불결해 보이는 실내 구조나, 과하게 절약하려고 하는 인건비 때문에 불편함도 느껴지곤 했었기 때문에

당시엔 토요코 인보다 더 추천한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랬던 것이 5년 지난 지금에는 확실히 성과를 보고 있는듯 해서, 경영이라는게 참 피말리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토요코 인은 한때 서비스를 너무 강화하다가 수지가 안맞았는지, 신용카드사처럼 슬슬 혜택을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라

현재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급에서는 유일무이한 라이벌 체인이라 어떻게 승부가 진행되는지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다.

 

매번 말하지만, 요금 조금만 올리면 이 두 체인보다 훨씬 뛰어난 루트인 호텔이 있다.

비지니스 호텔은 필요하지만 너무 싸구려는 싫다 싶은 사람, 무조건 루트인이다. 불만스러운 점이 거의 없는 최고의 1인용 비지니스 호텔.

 

알아보던 직원이 조금 머뭇거리며 '방은 있습니다만'이라고 말끝을 흐리는게 묘하게 걱정된다.

원래 어제는 5600엔 정도에 투숙했지만 오늘부터는 성수기 시즌이라 요금이 7500엔으로 확 오른다고.

비지니스호텔이 8만원 가까이 하는건 확실히 뼈아픈 가격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이곳 시설수준이 꽤 마음에 들어서

흔쾌히 1박 추가를 요청했다. 사실 오늘 예정되었던 온천여관 요금은 그거보다 훨씬 비쌌으니 별 손해도 아니긴 하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슈퍼호텔의 1층 온천도 진짜 천연온천이라고 크게 광고를 하고 있으니, 거기도 한번 이용해 볼까 싶다.

 

 

 

조식 든든히 먹고 타카야마역 버스 터미널로 나왔는데, 출발 20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카와고 방면의 버스 정류장 앞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줄을 다 서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인파라서

버스 한 대로는 다 타지도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들 정도. 하지만 익숙한 일인 듯 버스가 꽉 차면 바로 후속버스가 사람을 실어간다고 한다.

 

시라카와고의 명성이 과연 허언만은 아니구나 싶다.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이곳에서 버스 타는게 그나마 제일 편하고

타카야마 하나만 해도 외국인이 잔뜩 찾아오는 곳인데, 이곳보다 더 외진 곳인 시라카와고로 가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미어 터진다.

 

아슬아슬하게 첫 번째 버스를 탔지만, 빈 자리 한 군데도 없이 빡빡하게 앉아있으니

차라리 뒤에 오는 버스를 좀 기다렸다 타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탑승객의 절반쯤은 외국인 관광객.

 

날씨가 생각만큼 화창하진 않았지만, 자주 언급했듯 일본의 전통 가옥들은 흐린 날씨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좁고 험한 터널을 몇 개씩이나 지나가며 점점 현실 세계와 멀어지는 듯한 산속을 통과한 끝에, 마침내 탁 트인 공간이 보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이라 주차장은 여유가 있는 편인데,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대기중인 외국인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한 듯.

타카야마 역시 자연 풍부한 곳이니까 괴리감이 덜한 편이지, 도시에서 바로 이곳 시라카와고로 이동하면 주위를 둘러싼 풍경에 현실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내리자마자 바로 다리가 보이는데, 저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나타난다. 하지만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바로 저곳으로 달려가 버리는건 왠지 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반대쪽으로 돌아 걸어가 본다.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정류장쪽에도 옛 가옥들이 몇채 서 있다. 물론 대부분 장사하는 가게이긴 하지만.

구름은 잔뜩 끼었지만 비가 올 만한 구름은 아니고,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비치는 걸로 봐서는, 조만간 구름이 걷혀질지도 모르겠다.

가게 간판이 약간 미스매치인 기분도 들지만, 여기서도 이곳 시라카와고 건물의 특징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곳에서 건축물 구경좀 하고 돌아가버려도 문제는 없을듯 한데

생각보다 훨씬 관광지화 된 느낌이 들어서 첫 인상은 기대보다 살짝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이곳 시라카와고를 포함한 주변의 몇몇 마을들은 특이한 건물 구조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지만

자전거로 이곳을 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좁고 험한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자전거 여행때는 보고 싶었음에도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몇 안되는 장소중 하다였다.

 

문득 여름에 어디 가볼까 싶다가, 본가 차실의 벽에 걸려있는 달력 사진에 이 시라카와고의 전경이 나와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곳에 대한 흥미가 발동해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

사실은 눈이 한창 내릴 무렵의 시라카와고가 진정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건 언젠가 또 가볼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상업 활동을 위해 오리지날에 비하면 여러가지로 개,증축이 이루어진 건물이긴 해도,

원래 어디서나 보기 쉬웠지만 이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건축양식을 유감없이 발산중인 건물은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불리는 녀석.

뜻 그대로 합장하는 듯한 지붕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지역 여기저기에 많이 지어져 있었지만, 대부분 깊은 산골에 위치한 마을이었기에 점차 사라지고

이곳 시라카와고 근처와 고카야마(五箇山)에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보존중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명칭도 '시라카와고와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 이라고 되어 있어

버스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전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구 1800명 정도의 아담한 산골마을인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생활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버스 정류장 앞의 기념품점 혹은 매점이라는, 제일 상업성에 물들고 품질이 떨어질 듯한 위치에 놓인 가게들마저

놀라울 정도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전통적인 갓쇼즈쿠리를 그대로 본받았고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는 현대식 구조들도

스스로 모습을 감추는 듯 주위 분위기와 이질없이 통일감을 형성한다.

 

실제로 시라카와고 전체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에 있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로

이곳이 가지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 건축물의 조합은, 일본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이번엔 아주 찬찬히 씹어먹어줄 요령으로, 다들 향하는 마을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걸어가 본다.

뭔가 있을까 싶었는데, 입장료는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야외박물관 갓쇼즈쿠리 민가원' 이라는 곳의 입구아 눈에 들어온다.

 

설명을 보니 시라카와고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주택이나,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떠날 때 두고 간 건물들을 모아서

옛 생활상을 표현해 놓은 민속박물관 같은 곳이라는 듯. 아직 마을쪽에 비해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볍게 생각하면, 시라카와고에서 최대의 볼거리이자 유일한 볼거리인 이 갓쇼즈쿠리 주택은 마을로 들어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굳이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곳이었으면 아마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중 하나가 이곳 시라카와고였으니

오늘 이곳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건 전부 다 휩쓸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임없이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본 갓쇼즈쿠리 건물이었지만, 한동안은 아무리 많이 봐도 심심하지 않을 듯 하다.

이곳 박물관에 진짜 사람이 사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은 실제 사람이 거주하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

그 현실성과 함께,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묘한 모양새의 건물들이 내뿜는 비현실적인 감각은

앞으로 반나절 넘게 주욱 바라볼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기가 힘들다.

 

 

 

꾸민다는 단어의 의미는 매무 미묘해서, 아주 사소한 표현방식의 차이만으로도 부정과 긍정의 경계를 넘어간다.

이곳 시라카와고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주욱 느끼고 있는 점인데, 이곳은 분명 관광객을 위해 '꾸민' 곳이지만

결코 치장이나 가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순수한 꾸밈이라는 기분이 든다.

 

마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장사를 위해 모여든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험한 산속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생활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들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따뜻할 때는 농사 짓고, 겨울이 오기전에 지붕을 수리하고, 끝없는 눈이 오면 그저 묵묵히 눈을 치울 뿐.

 

집은 예쁘고 튼튼하게 꾸며져 있지만, 사람이 꾸밈없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순수함이 느껴진다.

 

 

 

당시 일기를 쓰면서도, 블로그에서 갓쇼즈쿠리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놔야 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일단은 단지 그 때의 시선만을 따라가기로 하며, 언젠가는 포스팅에서 설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알고 가면 더 재미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모르고 간다고 해서 이 건축물이 가지는, 자연에 대해 순응적이면서도 저항적인 사람의 힘을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다.

박물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이 건물은, 갓쇼즈쿠리 마을의 전체적인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소 역할을 한다.

 

 

 

그 앞에 놓인 갓쇼즈쿠리 지붕의 골격 샘플이다. 이제껏 나온 사진 몇장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갓쇼즈쿠리 지붕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우며, 경사 또한 따가울 정도로 매섭게 설계되어 있다. 지지대가 하중을 얼마나 견디느냐가 큰 관건.

혹독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거기에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가는 인간의 적응력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이런 숲속이 뭐 그리 혹독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독하지 않은 곳이었다면 이런 가옥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해발 3000m 의 산맥에 둘러싸인 해발 500m 부근의 이 마을은 세계적으로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스크바보다도 더 많이 내리며, 한국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하는 울릉도가 1.5m 정도인 반면 이곳의 평균 강설량은 10.5m 정도.

 

아주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긴 했으나, 워낙 산세가 험하고 눈이 많이 내려서 주위 마을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으니

전후 일본이 이렇게까지 부흥하지 못했다면 아마 갓쇼즈쿠리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안내소 안에는 비디오 상영이나 예전 신문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에 직힌 60년대 도로 사정을 보면, 그나마 저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시절의 모습이라는 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자동차도 전기도 없는 시절에 이곳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하다.

 

당시 시카라와고 근처의 카즈라(加須良)라는 지역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촌을 실행했는데

그때 남겨진 갓쇼즈쿠리 건물들을 옮겨와 보존한 것이 이곳 야외박물관이라고 한다.

 

 

 

2층에는 갓쇼즈쿠리 건물의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데, 크기만 작을 뿐이지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지붕이 워낙 두껍고 가파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집의 다락방과는 달리 4~5층에 달하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집이 커지고, 이곳 사람들은 친족 전체가 모이는 공동체 생활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겨울 약 4개월 가까이 밖에 나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설이 내리는 곳이라, 집단생활은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는 주위에 댐도 많이 건설되고 전기도 들어오기 때문에 살만 하지만, 예전엔 겨울을 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이었다.

 

이런 식의 건축물은, 눈의 무게를 분산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지만 난방 등에는 매우 취약하다.

그저 눈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이 갓쇼즈쿠리 가옥.

실제로는 더욱 공고히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임에도, 너무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인해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말의 의미는, 이곳 시라카와고에서는 단어의 의미가 살갗을 파고들 만큼 절실하리라 생각한다.

이곳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었으니. 협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밖으로 나오니 길이 군데군데 갈린다. 꼭 순번대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는듯 하다.

이런 작은 건물은 보통 거주용이 아니라 창고 역할을 한다.

 

마을의 95%가 산지라서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만, 갓쇼즈쿠리 건물의 지붕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양의 억새와 땔깜용 나무를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보다는 말이 유용했고, 곡식 역시 동물의 힘보다는 넉넉한 물의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고.

 

 

 

그런 물레방앗간의 모습도 참 고즈넉하게 전시해 놓았다.

야외 박물관이고, 실제 사용하던 건물들을 이전해 놓은 것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풍요롭고 보존 상태가 훌륭한 모습은 아마 실제 주민들의 생활상과는 좀 다를수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람들이 생활중인 시라카와고 내부의 갓쇼즈쿠리 60채조차 유지 보수하는데 큰 노력이 따르는데

그 험한 산골에 방치된 폐가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이곳까지 가져와 다시 재건하는 일은 어땠을지.

 

본인의 성격이 좀 뒤틀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 살지않는 이런 박물관에서는

좀 더 당시의 생활상을 과격하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야 물론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을 최대한 소개하고 싶겠지만, 시라카와고는 고요함 속에서 자연에 대한 거친 투쟁으로 완성된 마을이니까.

 

 

 

물레방아는 한중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분포되어 있으니 그리 신기할 건 없다.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왠지 어릴적엔 요녀석이 언제 방아를 쿵하고 찧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일본의 중앙알프스쪽은 의외로 물이 풍부해서, 아직도 물레방아를 쓰는 곳이 조금 남아있는데

아직 기계로 찧은 밀가루와 물레방아로 찧은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과자, 국수의 맛 차이를 체험해보지 못해서

과연 맛이 다르긴 할까 하고 가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빙글 돌며 올라가는 언덕 위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듯 하다.

이곳 박물관은 입구부터 처음 물레방앗간 까지는 그냥 자연 풍부한 산책로 느낌이라

돈 내고 들어와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법 하지만, 좀 더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건축물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마을쪽의 갓쇼즈쿠리 건물은 상당수가 민박집이나 가게를 열고 있고,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고있으니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곳은 박물관이라 그런 염려가 없이, 계획적으로 디자인된 길을 따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고 했지만 사실 단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긴 하다. 사람 사는 냄새는 외국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니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을것 같진 않지만

입구 만들어놓고 박물관이라고 해 놓았어도, 사실상 박물관 주변에 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태어나서 처음 온 본인으로서도, 그냥 뒤쪽에 수풀 좀 헤치며 들어가면 얼마든지 숨어들어갈 수 있을듯 하다.

역시 이곳까지의 교통비만 수만원이 넘는 곳이다보니, 겨우 500엔의 입장료를 아끼려고 이 고요한 마을을 더렵히진 않겠지.

도쿄의 시부야 같은 곳이라면 왠지 사악해 질 수도 있을것 같지만, 이곳의 가득한 녹색은 사람 마음을 씻어주는 기분이다.

 

 

 

약 7시간동안 돌아다니기에 그리 다급하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카메라 들고 다니며 사진 담는데는 생각만큼 널널한 시간도 아니다.

 

보통은 렌즈를 바꾸지 않고 한바퀴 돌며, 그 다음 렌즈를 바꿔서 또 한바퀴 도는게 보통인데

이번엔 그럴 만한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을 듯 하다. 여전히 온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 봐 가며 렌즈를 갈아끼우며 전진한다.

혼자 서서 렌즈 꾸물꾸물 교환하는게 좀 민망하긴 해도, 이곳만큼 사진 찍는데 부담가질 필요 없는 곳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오늘 진짜 마음먹고 배터지게 사진 찍을 수 있을법한 기분이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