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아사히야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9.15  2월 12일 아사히카와 - 동물원의 마스코트 12
  2. 2014.09.11  2월 12일 아사히카와 - 무더운 열차여행 14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지 유리창 너머는 매우 뿌옇다. 카메라 촛점 잡기가 힘들 정도.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펭귄이라 귀여울 뿐이다. 종류별로 차이가 있지만 저 펭귄은 왠지 성이 난 듯 보인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온 탓인지 이 녀석들은 동물원에 놔둬도 적응을 잘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육장에서 스트레스가 없진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대표적인 동물이라 다들 느긋한 모습.

 

저렇게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있는 건 헤엄칠 때나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쉴때는 저렇게 엎드리기도 한다고. 토실토실한 지방살을 배게삼아 엎드려있는 모습을 보니 조물거리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펭귄은 거의 단일화된 색상과 체형에도 불구하고 종류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단순하기 때문에 소소한 차이점만으로 눈에 띄기 때문일까.

 

작고 귀여운 소형종에서부터 강남 신사(?) 같은 패셔너블한 눈썹을 가진 녀석이라던가, 매체를 통해 익숙하긴 해도 사실은 크고 거대한 황제펭귄이라던가.

좀처럼 만지기가 어려운 동물이라서 매번 귀여운 몸매만 바라보며 애를 태워야 하지만, 조류중에서 이만큼 귀여운 녀석도 드물긴 하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긴 하지만 역시 동물원에 와서는 뭔가 배워가는 게 있어야 할 듯.

이곳은 규모가 작아도 꽤나 알찬 정보를 공부에 진저리나는 학생들도 부담가지지 않게 잘 정리해 놓았다.

동물원에서 교과서에서 실릴 만한 도감같은 실사 사진과 함께 차가운 금속 플레이트에 적힌 딱딱한 문구를 적어놓는 것은 정체성 상실이라고 생각.

 

 

 

펭귄 하면 남극을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남극에 살지 않는 펭귄 수가 2배나 더 많다.

일반 관람객 수준으로는 매우 상세하게 섬 이름과 서식하는 펭귄 사진까지 구별해서 거대한 원판 위에 그려놓았다.

펭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바다표범과 범고래가 대양을 점거하고 있는 모습도 잘 표현해 놓았고.

 

 

 

제작 주문보다 수고가 들지만 동물원을 찾는 대상을 고려하면 이쪽이 더욱 인상적이리라 생각한다.

수기로 작성한 것도 친근한데, 아이들을 위해 한자 위엔 흰색으로 독음을 적어놓은 것 역시 칭찬받을 만하다.

 

사실 동물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기는 힘든데

그런 면에서 어른들 역시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편이다.

펭귄 머릿속에는 염분을 저장했다가 코로 배출하는 부위가 있어서 먹이를 먹을 때 함께 섭취하는 염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콩알지식도 재미있다.

 

 

 

동물원이 나즈막한 언덕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펭귄관 역시 입구와 출구의 높이가 다르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며 건물을 빠져나와도 바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밖에는 뿌연 유리창때문에 아쉬웠던 기분을 일소해 주듯 탁 트인 곳에 펭귄들이 일광욕중이다.

 

노란 눈썹이 임팩트를 주는 이 녀석은 아마도 마카로니펭귄이라는 유쾌한 이름을 가진 녀석인데

이름과 달리 꽤나 훈남형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는 익숙한지 카메라를 들이대도 쿨하게 고개만 돌려준다.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이라면 꽤나 쌀쌀한 홋카이도의 겨울도 느긋하게 느껴질 듯.

홋카이도에서도 유독 추운 토카치 평야 쪽은 한겨울 밤에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긴 하는데

남극의 겨울처럼 시계가 제로에 가까운 눈보라가 한 달 가까이 끊이지 않는 극한의 환경은 아니니까.

 

햇빛만 따사로우면 이 녀석들에게는 아늑한 휴양지처럼 느껴질 듯 하다. 반쯤은 털고르고 반쯤은 그 자세로 졸고 있다.

 

 

 

사실 이 녀석들 크기가 그렇게까지 아담하지 않기 때문에 여럿 몰려있으면 꽤 무섭다.

닭한테 쪼여도 피가 나는 것이 사람의 피부인데, 이 녀석들은 체중이 닭의 10배가 넘기 때문.

 

따뜻한 곳에 사는 펭귄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만 남극 펭귄들은 사람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굉장한 호기심을 보이며 달려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한번 쪼이기라도 하면 살점 떨어지거나 눈알 찢기는 건 일도 아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펭귄들은 2~3대에 걸쳐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란 녀석들이라

사람을 공격할 일도 없고 그렇게 호기심이 빠방하지도 않다. 그냥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다른 건물로 들어가니 바다표범이 기다리고 있다. 이동 반경이 워낙 넓은 동물이라 수족관도 마리수에 비하면 꽤 넓다.

그 탓에 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좀처럼 모습 보기가 힘든데, 빠르기도 엄청 빨라서 헤엄 치는 도중엔 카메라에 담는 것이 거의 불가능.

 

펭귄을 잡아먹고 범고래한테는 잡아먹히는 녀석이지만, 실은 표범이 아니라 지상의 곰과 비슷한 계통을 가진 녀석이라

어릴때 잘 키워놓으면 사람에게 상당히 친근해서 동물원의 귀염둥이로 유명하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아자라시(あざらし)라고 불리고, 동물원 이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한국과 달리

홋카이도 주변 해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보이는데다 가끔 도쿄 해안에서 장난치는 모습까지 보여서

대중적으로도 꽤나 인기있는 녀석이다.

 

 

 

바다표범관 중앙에는 커다란 수로가 있는데 이곳으로 녀석들이 통과할 때가 셔터 찬스.

 

처음엔 너무 빨리 올라가서 촛점 잡을 시간조차 없었는데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이 녀석이 아주 느긋한 포즈로 미동도 없이 하강하는 퍼포먼스를 피로해 주신다.

완전히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계였다면 아마 시체가 아닌가 할 정도로 여유있게 스르륵 내려간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취득하고 있는 노련한 녀석이다.

 

자세히 보니 바다표범이 아니라 점박이물범처럼 보이는데, 일본어로는 둘 다 같은 표기를 하기 때문에 일어난 착각인 듯.

사실 거의 같은 종이라 구분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바다표범은 이거보다 훨씬 크다.

 

 

 

온 몸이 지방덩어리니 당연히 물 속이 더 편하겠지만

진짜 죽은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모습은 살짝 섬뜩하기까지 하다.

얼마나 폐활량이 좋으면 포유류가 저렇게 물 속에서 편안히 뻗어있을 수 있는지. 평균 20~30분간은 잠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바다표범관 끝에는 규모는 작지만 귀여운 해파리 수족관이 위치해 있다.

오사카의 카이유칸에 비하면 매우 작은 수족관이지만 그래도 유유히 헤엄치는 해파리 즐기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사람들 중에는 거대한 고래상어보다 이 해파리들을 더욱 좋아해서, 수족관에 가면 하루종일 해파리만 쳐다보는 부류도 있다고.

 

이 흐물흐물한 녀석들이 6억년 전부터 바다를 지배해 온 강자라고 생각하니 참 세상은 여전히 신비로운 곳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당연히 그냥 구경하는 사람에 비해 시간을 좀 잡아먹지만

그걸 감안해도 역시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폐장시간이 워낙 이르기 때문에 아마 펭귄 산책이 이 동물원의 마지막 이벤트일 터.

일본사람들처럼 미리미리 줄 설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등 뒤에서 발끝 세워 보는 일이 없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자리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동물원이 그리 크진 않아도 구경 한번씩만 하려고 해도 2시간 30분은 너무 짧다.

 

 

 

밖으로 나오니 동물원 소속은 아닌 듯한 까마귀가 눈속을 활보하고 있다.

겨울엔 먹이구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름 머리를 써서 이곳에 서식하고 있는 듯.

 

위장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지만 눈 속에서는 이만큼 인상적인 대비도 없다.

 

 

 

바다표범관은 야외까지 연결이 되어있어서, 이쪽에서 보는 물범이 더욱 사진 담기가 쉽다.

굉장히 맑은 날이라 눈이 부신 듯 물 밖으로 나오면 거의 눈을 뜨지 않는다.

 

펭귄과 물범은 먹이 잡을때가 가장 활동량이 많고 고된 편이고, 남는 시간은 탱자탱자 하는 녀석들이라

동물원에 있어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듯 하다.

 

 

 

원래는 물 밖으로 나올수도 있지만 역시 홋카이도. 눈이 너무 내려서 올라갈 방법이 없자 동물원측에서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물이 그렇게 좋은지 한 마리도 밖에서 일광욕하는 녀석이 없다.

 

물범이 아니라도 신기하게 얼어붙은 고드름이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지만.

 

 

 

이 시기엔 홋카이도 전체가 눈축제 기간이라, 이곳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곳에는 없는 하마 조각상을 우람하게 전시중이다.

투박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하마의 강렬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이빨도 무섭고.

 

 

 

다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늘어선 인파와 함께 안내원이 지금 줄 서시면 다음 번에 볼 수 있다고 바람을 넣는다.

알아보니 15분쯤 기다리면 북극곰에게 먹이 주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어차피 북극곰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 정도 기다리는 건 큰 손해가 아니리라 생각하고 맨 끝줄에 붙어 선다.

북극곰 역시 야외에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어째서 먹이 주는 모습을 보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지도 궁금했고.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사람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후 입장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입구 앞에 너덜너덜해진 물통이 하나 보인다. 북극곰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

뜯긴 흔적을 보니 역시 곰은 곰이구나 싶다. 사람하고 놀고 싶어 가볍게 쓰다듬기만 해도 걸레가 될 듯 하다.

 

 

 

먹이주는 거 구경하는데 적정 인원이 필요한가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해가 된다.

육지가 아니라 물 속으로 먹이를 던져서 그 모습을 보는 것이라, 커다란 유리창 앞으로 계단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어차피 다들 서서 유리창 앞으로 돌진하면 뒤쪽에서는 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니까 선택한 방법이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리던 타이밍 상 맨 앞줄에 앉게 되었는데

앞이란 게 거의 유리창과 딱 붙어버릴 정도라서 오히려 시야각이 좁아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뒤쪽은 서서 보기 때문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반쯤 무릎꿇은 상태로 카메라 들고 미어터질 정도로 밀집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꽤나 힘들다.

 

수면 위에는 벌써 북극곰이 먹이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위를 쳐다보고 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그 크기에 압도된다.

 

 

 

먹이를 물 속으로 던지니 순식간에 잠수해서 낚아채는 모습이 매우 날렵하다.

2m를 가볍게 넘는 녀석임에도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놀라운 수준.

실제로 육상동물중 가장 수영이 뛰어나서 북극의 바다를 100km 가까이 헤엄치기도 한다.

 

워낙 빠르게 움직이고 관객이 밀집되어 있어 동체를 따라 카메라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시끄러워서 연사를 갈기는 것도 미안하니 그냥 되는대로 싱글샷을 날리는데 열 장 넘게 찍어서 남은 건 한두 장 밖에 없다.

 

그래도 눈앞 30cm 앞에서 솟아오르는 북극곰의 모습은 압도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니 곰이 어떤 동물인지 더욱 실감이 간다. 사람 머리통만한 앞발과 전신을 뒤덮은 근육덩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압도적.

먹이만 주면 재미없으니 해설자가 북극곰의 생태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설명해 준다.

 

북극곰의 특징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역시 저 털. 흰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색이 없는 투명한 털이다.

가시처럼 뻣뻣한 바깥 쪽 털과 보드라운 안쪽 털이 빛을 반사시켜 흰색으로 보이는 것.

북극에서도 홀로 살아가며 곰 중 유일한 프레데터 계열에 들어갈 정도로 사냥능력이 뛰어난데, 이 털의 보온능력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수준이라 한다.

 

이런 대륙의 제왕도 범고래한테는 쪽도 쓰지 못한다 하니, 수족관에서 재롱부리는 녀석들을 우습게 봐서는 안될 듯.

 

 

 

하루종일 사람들 구경 시켜준다고 먹이를 던져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줄을 서도 이벤트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생각하면 나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듯.

 

실 이 동물원은 북극곰을 초근접 상태로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유명해서 가까이서 보려고 굳이 애쓸 필요는 없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2시 쯤인데, 허탈하게도 2시 45분부터 실시 예정인 펭귄 산책구경에 벌써부터 사람이 늘어서 있다. 진짜 기다리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

산책로가 동물원을 완전히 가로지르는, 펭귄들에게는 꽤나 긴 거리라서 아직 뒤쪽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양쪽으로 나눠서 구경하기 때문에 아예 못 볼 정도는 아니니 일단은 안심.

 

펭귄 산책을 관람하면 그대로 동물원 폐장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줄을 설 수는 없고, 조금이라도 나머지 동물들을 구경하려 발걸음을 옮긴다.

 

 

잠깐동안의 삿포로 오타루 여행은 쾌적한 휴식이었다는 느낌이었고

적지 않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호텔을 나오는 지금부터는 조금이나마 진짜 여행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겨울인데다가 10일간의 여행이라 평소보다는 옷가지가 많아서 카메라가 든 사이드백과 함께 드니 조금 묵직하다.

홋카이도가 워낙 넓다보니 한 곳에서 이리저리 다니기 힘들어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데

예약해 놓은 기차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살짝 부담이 간다.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지 않은 삿포로와 아사히카와 간이지만 열차로 가도 가볍게 1시간 30분은 걸린다.

사실 앞으로 이동해야 할 경로에 비하면 가장 짧은 거리지만, 짐을 전부 들고 움직이는 건 역시 귀찮다.

 

 

 

열차 안은 겨울 홋카이도인 만큼 그 반작용으로 히터를 두둑하게 틀어놓는 바람에

상단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좁은 의자 사이에 사이드백을 끼워놓고 짐짝처럼 꽉 조인 상태로 부자연스럽게 앉아있어야 한다.

 

몸이 굵은 탓에 옆좌석 승객에게도 부담 끼치지 않으려고 웅크리다 보니 극기훈련 받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전날까지 조금 무리해서인지 꽤나 피곤한데, 그나마 오늘은 여행 일정이 매우 짧아서 부담은 적다.

 

아사히카와는 그간 여러 번의 홋카이도 여행 중 한 번도 들러본 적이 없는 곳이고

그만큼 본인에게는 그닥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없는, 삿포로 제2의 대도시.

자전거 여행때는 굳이 아사히카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루트를 잡을 수 있어서

큰 도시에 들어가면 오히려 불편한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 아사히카와를 넣은 것은 한 번도 안가봤으니 경험삼아 가보자는 생각과 함께

펭귄으로 유명한 동물원이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

 

 

 

주 목적지인 시레토코까지는 하루만에 가기에 너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동 경로상에 위치한 아사히카와에서 동물원을 살짝 즐긴 후 다음 날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원은 확실히 동물 보는 재미가 있는 반면, 아무래도 동물원이라는 곳이 결코 동물들을 위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자주 가는 곳은 아니다.

 

아무리 배려를 잘 해준다고 해도 역시 최종적으로는 사람의 욕심을 위한 곳이다 보니 동물들에게는 미안할 뿐.

입장료가 동물들을 위해서 가감없이 쓰여지길 바라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삿포로도 그랬지만 열차가 외곽으로 벗어나자 온통 사람이 건드린 적 없는 설원밖에 펼쳐지지 않는다.

눈에 대한 동경심이 있는 본인으로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이 그저 놀라울 뿐이지만

포근하게 쌓인 눈이 강렬한 햇빛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사되어, 창문이 한 번 걸러줌에도 불구하고 눈에 상당한 자극이 간다.

스키 타는 사람들이 왜 고글에 신경쓰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피곤해서 언제부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옆에서 조심스럽게 깨우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승객이 죄송하지만 좌석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해서 허둥대며 짐을 싸들고 일어선다.

 

실은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까지 가는 도중 어느 마을에 정차해서 열차를 분리한 후, 다시 다른 방향으로 운행하는 바람에

특정 구간부터 좌석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앉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느라 듣지 못했던 것.

 

일본 열차는 종착지에서 간단한 청소만 끝낸 후에 바로 역방향으로 재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인지 등받이 부분을 수동으로 넘길 수 있는 차량이 많다.

홋카이도 철도는 그 방대한 토지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덕분에 삿포로에서 아사히카와라는, 홋카이도 전체 인구수의 70%를 차지하는 두 도시를 달리는 기차마저도 중간에 노선 변경이 필요한 듯.

 

아무튼 잠이 확 깬 탓에 실눈을 뜨고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나 눌러댄다. 본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매번 즐거움을 준다.

 

 

 

아사히카와에는 주력 서식지인 토요코인의 지점이 존재하지 않아서 두 번째 주력인 슈퍼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역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시내 중심가쪽과는 반대방향이라 이동이 약간 번거롭긴 하다.

 

아사히카와는 분지 형태긴 해도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평야지역이고, 땅이 남아돌다보니 건물이 전부 넓직넓직하다.

크기는 삿포로역에 밀리지만 그닥 많지 않은 사람들 때문인지 고즈넉한 매력이 남아있어서 첫 인상이 좋다.

 

실내에 파라솔 올려놓은 모습도 신선하지만, 거대한 창문 밖으로 펼쳐진 설원과 함께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라

멀리서 조용히 한 장 담아본다. 얼굴도 안나왔으니 이 정도면 초상권 걱정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본인도 느긋한 한 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동물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부족하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기 때문에 짐만 맡겨놓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 도시엔 처음 온 터라 정확히 어디가 동물원행 버스 정류장인지 찾기가 힘들었는데

고개를 조금 이리저리 흔들고 있으니 옆에서 휴식중이던 젊은 공사장 인부가 걸어나와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 준다.

 

관광객에게 익숙한 사람들이라곤 해도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건 일본에서 참 기분좋은 경험.

버스가 자주 오는 편이 아니라 자칫 해매다가 꽤나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는데, 기분이 뿌듯하다.

 

 

 

삿포로, 오타루때와는 달리 오늘은 매우 쾌청한 하늘이 지속되고 있다.

동물원은 눈이 와 봤자 이득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세삼 이번 여행에는 운이 따른다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에 보이는 멋들어진 녀석은 맥주 관련 건물인 듯 한데, 2002년에 인터네셔널 비어 컨버티션에서 수상했다는 광고가 보인다.

하나하나 파고 든다면 아사히카와 역시 며칠동안 머물며 볼거리가 많은 곳일 텐데

계획된 일정만으로도 빠듯한 여행 중에는 그런 여유를 부리기가 힘들다.

어차피 여행 마지막 날에는 삿포로 맥주 정원에 가서 한껏 퍼마실 예정이라서 아쉽지만 사진만 남기고 전진하기로 한다.

 

 

 

이제 막 정오가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이렇게 서두를 수 밖에 없는 것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겨울 폐장시간이 매우 이르다는 이유에서 기인한다.

 

워낙 해가 빨리 지고,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곳에 위치한 동물원이라 겨울엔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버스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30분은 걸리기 때문에 지금 출발해야 간신히 두 시간 정도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삿포로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면 조금 여유가 있겠지만 연이은 강행군으로 인한 피로도 무시할 순 없었고.

애초에 그렇게 큰 동물원은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으니 기분전환으로 잠깐 즐기고 온다고 생각했었다.

 

 

 

아사히카와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어서 여름엔 36도까지 올라가는 곳이지만

그래도 홋카이도라는 위치상 겨울엔 신나게 눈이 오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눈벽 사이에 그나마 연결부까지는 보이는 저 소화전은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눈을 치워 놓은 곳일 터.

안전에 대한 소소한 준비성은 이렇게 셔터를 누를만한 가치가 있다.

 

 

 

매우 단순하지만 그만큼 시원시원한 느낌을 주는 아사히카와 역은 아쉽게도 메인 출입부가 공사중이다.

광각의 묘미를 살려 밑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담아보면 참 재미있을 듯 한데, 아쉽지만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삿포로가 원가 대도시라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들이 촌동네로 보이는 면이 있지만

이곳에서 재미있게 즐기고 간 사람들의 후기도 매우 많은 것으로 보아 진득하게 둘러볼 만한 도시일거라 생각.

 

본인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볼만한 곳이 시레토코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시레토코가 홋카이도 가장 끝자락에 붙어있다 보니 항상 이동 시간에 따른 일정 계산이 중요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아사히카와는 단순한 경유지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기엔 효율이 나쁜 곳이어서 매번 본인에게는 찬밥 신세.

 

좀 더 여유를 부려도 되는 여행이라면 언젠가 느긋하게 마을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기는 하다.

홋카이도는 이번처럼 10일간의 여행도 시간 부족해서 난리라, 과연 느긋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싶기는 한데.

 

 

 

버스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처음엔 무난하게 좌석에 앉을 수 있었음에도

정류장을 거칠수록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바람에 매우 혼잡해진다.

 

절반 정도는 중국인 관광객이고, 나이 70은 넘어보이는 관광객들도 많은데

버스가 혼잡스러워서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노인분들이 오질 못해서 안절부절하며 바라만 보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일어나 드리겠는데, 그렇다고 여기 앉으라고 멀리서 소리치기도 부담스럽고.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으로 시골길을 달려 동물원 앞에 도착한다.

버스가 한 시간에 두 대 정도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해 놓은 것이다.

 

도착하니 1시가 되어가는데, 동물원 폐장시간이 3시 30분이라 뭔가 허탈한 기분이 든다.

피곤해서 잠 좀 더 자자고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본인으로서는 역시 무리 좀 해서라도 새벽에 출발했어야 하는가 하는 후회도 든다.

 

 

 

깔끔하게 치워놓은 눈길이 걷는 사람의 기분도 상쾌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니 이 정도로 눈이 쌓인 겨울 동물원도 인생 첫 경험이라 생각보다 기분이 들뜬다.

 

아이들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 큰 어른들끼리 온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들이야 명성을 듣고 관광 겸 오는 것이겠지만, 백발 성성한 노인들이 아이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은 고무적인 풍경.

 

 

 

동물원 입구에 설치된 아사히카와 시민헌장은 눈으로 뒤덮혀 밑부분이 보이지도 않는다.

위에 붙어있는 앙증맞은 펭귄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눈더미가 더욱 인상적이라는 사실을 현장 주민들은 알고 있으려나.

 

 

 

지금은 한창 화사함을 뽐내고 있는 이곳이지만 저 멀리 고드름 모양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 싶다.

바람이 어떻게 불면 고드름 모양이 저렇게 될런지 경험이 없는 본인으로서는 신기할 뿐.

 

최소한 동물원이 폐장하는 3시 30분까지만이라도 이 멋진 하늘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기념사진 찍으라고 남아도는 눈과 약간의 노동력을 더해 멋진 스팟을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 열심히 촬영중인데, 틈을 노리긴 했지만 하트를 전부 잡아내기엔 사람들이 비켜주질 않았다.

 

하트모양은 둘째치고 사슴과 눈 결정모양을 재치있게 결합한 동물원 심볼이 인상적.

 

 

 

눈이 아닌 원래 아사히야마 동물원 스팟. 북극곰은 여름이든 겨울이든 색깔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좋다.

그러고보니 이곳은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인데 북극곰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북극곰은 활동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사실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건 그 자체로 미안한 일이다.

펭귄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그닥 문제가 없지만.

 

 

 

빨리 이동해서 동물 구경을 하고 싶지만 계속 괜찮은 풍경이 나타나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실제 동물원은 저기 언덕부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옆에는 식당이나 기념품점이 위치한다.

산책로로도 충분히 보기 좋은 광경이니 나쁠 것 없지만, 시간에 쪼달리는 겨울엔 이것도 왠지 사람 서두르게 만드는 듯.

 

 

 

겨울에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역시 펭귄들의 산책 이벤트라고 한다.

하루에 두 번 펭귄들을 우리에서 내보내 동물원을 가로질러 산책시키는 이벤트가 있다.

펜스 같은것도 없이 그냥 주위에 둘러서서 구경할 수 있기에, 펭귄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경험.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모일 것 같으니 시간 전에 서둘러야 하겠지만 일본 사람들의 미리 줄서기 능력을 앞서기는 힘드리라 예상해 본다.

 

 

 

산책 이벤트는 제외하고라도 이 곳의 주력 동물이 펭귄이라, 역시 펭귄 사는 곳을 들어가보지 않을 수 없다.

입구로 들어가면 요즘 수족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원형 터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햇빛이 직접 비치는 곳이라 어두운 수족관보다는 훨씬 보기 편안하지만 길이가 매우 짧다. 잠깐동안의 체험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

 

 

 

위에는 펭귄이 보이긴 하는데 이 녀석 물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다.

관광객들이 웃으며 올려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녀석 역시 물 밑을 지나가는 우리들을 지켜볼 뿐.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헤엄치는 물 속을 유유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한번 뛰어들어 시원하게 헤엄을 쳐 주면 좋겠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서 그냥 아쉬운대로 수면에 흔들리는 모습만 담고 통과.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처음부터 섬뜩한 모습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당연히 일부러 죽였을 리는 없지만 이런 생생한 모습은 역시 두려움과 함께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만든다.

 

아이들 학습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표본이라도, 동물원 들어와 처음 보는 모습이 이것이라면 약간 트라우마가 될지도.

 

 

 

단순히 펭귄 구경뿐 아니라 이곳에는 상당한 양의 펭귄에 대한 정보가 이곳저곳 전시되어 있다.

일본어만 읽을 줄 안다면 펭귄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통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구성해 놓았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동물에 관심이 많은 본인의 성격상 거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가볍게 보면서 지나간다.

'이쪽'이라고 적힌 펭귄상이 본인에게는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