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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2.10.16  산인 여행 - 유시엔 1/3 18

 

 

코스가 여기저기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잘 둘러보면서 걸으면 거의 모든 지역을 다 볼수 있다.

수리중인지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한두 군데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있는 곳도 있는데

그렇게 넓은 정원은 아니기 때문에 멀리 서서도 감상하는데는 지장이 없다.

 

 

 

예를들면 이런 곳. 지나갈 수 없게 만들어서 아쉽긴 하다.

오리지날 정원은 통로를 저런 자갈로 깔아놨기 때문에, 주인장이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고 나면

하인들이 매일 자갈을 고르게 펴서 깨끗한 형태로 만드는게 일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식 정원은 100% 확률로 개장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옛날 이 정원의 주인은 해가 지고 나서도 정원 곳곳에 설치된 불빛과 초롱 하나 들고 밤의 정원을 즐길 수 있었을 듯.

연못가에 반딧불이라도 서식하고 있다면 밤에 보는 풍경도 참 운치있을것 같다.

 

 

 

여름 한철이 지나가고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애매한 시기라서

푸른 초목과 이끼에 비해 화사한 꽃들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중간에 모란관이라는 작은 건물이 한채 있는데

그곳은 초겨울이라고 할만큼 선선하며, 안에는 형형색색의 모란들로 이루어진 조그만 정원이 있다.

단순히 모란꽃만 모아놓은게 아니라, 작은 공간이지만 제대로 정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훌륭한 볼거리.

모란은 향이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지만 폐쇄된 공간에 그만한 모란이 피어있으니 은은한 향기가 가득 차 있다.

 

사진 촬영금지라는 푯말이 적혀 있어서 그냥 감상만 했는데, 단체 한국인 관광객은 그런거 신경쓸 이유가 없다.

모란꽃 앞에 가족들 세워놓고 신나게 찍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사실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을때는 찍어도 큰 문제 없을듯 하다.

작은 건물이라서 사람들에게 방해될까봐 촬영금지라고 붙여놓은 듯 하니까.

 

어쩄든 관리자한테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모란관의 내부 모습은 촬영없이 눈으로만 감상하고 나왔다.

어쨰서 이 정원이 모란을 그렇게 중요시 하는지는 심히 궁금하다. 사시사철 다른 종류의 꽃이 피는 곳이라서 모란에 집중할 이유가 없는데

모란관이라는 별장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분명 이 정원과 관련된 뭔가가 있겠지. 훗날 알아보기로 한다.

 

 

 

밖은 덥고 모란관 안은 시원해서 나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햇살 아래 반짝이는 이끼들 모습을 보니 땀 흘리며 셔터 누르는 보람이 있어 즐겁다.

 

 

 

숲 속의 숲이라고 할까. 고개를 숙이고 가까운 곳에서 지면을 바라보면

이제껏 봐 왔던 정원과는 다른 마이크로 세상이 따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조경용으로 심어진 이끼는 나름 모습도 준수한 편이라, 방금 전 뿌린 비로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더욱 매력적.

 

 

 

절반쯤 코스를 돌다보면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조그만 가게에 도착한다.

분위기 타면서 한잔 해도 되겠지만 너무 여유부렸다간 버스 시간을 못맞출수도 있으니 조심하기로 한다.

호텔 숙박이라면 아무리 늦게 가도 관계없지만, 페리 승선시간에 늦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와버리니.

 

차 한잔은 넘기기로 하고, 그냥 그늘 벤치에 앉아서 숨좀 돌리며 주변의 꽃이나 찍어본다.

한달 정도만 더 넘기면 계절에 맞는 꽃이 활짝 필것 같아서, 그 모습도 기대가 된다.

 

 

 

가끔씩 코스가 두 부분으로 나눠지기도 하는데, 조그만 언덕으로 나 있는 길 앞에는 폭포가 있단다.

정원의 크기를 볼떄 폭포라고 할 만한 녀석은 아니겠지만 아마 인공적으로 지어졌을 그 폭포의 모습이 궁금하긴 하다.

 

사실 일본의 정원은 뭔가를 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길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곳이라서, 이렇게 걸어가는 코스의 사진을 담는게 목적에 더 부함하는 듯.

 

 

 

인공 폭포임에도 꽤나 볼만하다.

인공은 인공이지만 돌 색깔로 칠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진짜 돌을 쌓아 만든 녀석이라서.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중간중간 제주도에서나 많이 보이는 현무암이 많이 놓여있는 걸 보고

이곳도 화산융기로 솟아난 곳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여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곳 유시엔이 속한 곳은 여의도같은 내륙의 섬이다.

내륙 호수이긴 하지만 바다와 연결된 곳이라서, 사실상 그냥 섬이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

 

이름은 재미있게도 다이콘지마(大根島), 다이콘은 무라는 뜻. 총각김치 만드는 그 무.

무리는게 생으로 먹으면 좀 매운 느낌이 있는데, 소바 양념장에 갈아넣는 무 종류중에는 특히 더 매운 녀석이 있다.

카라미다이콘(辛味大根)이라는, 의미 그대로 '매운맛 무'라는 이 녀석을 갈아서 양념장에 넣으면

시원시원하면서도 톡 쏘는듯한 매운맛이 소바의 맛을 더해준다.

 

아르바이트하던 소바집은 젊은 사장님부부과 그 부모님, 친척, 동네 할머니등이 이끌어가고 있었는데

키가 190은 되는 거구의 사장님은 전반적인 요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그 외의 잡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 없는 다른 분들을 대신해, 재료중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가는 무 갈기는 항상 내가 도맡아 했던 기억이 난다.

 

점심시간에 카라미다이콘과 와사비를 듬뿍듬뿍넣고, 한입 먹을때마다 머리속이 찡해지는 느낌을 즐기고 있으니

역시 한국사람이구나 하는 말을 하면서 놀라워하던 그쪽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아마 이곳이 제주도처럼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라면, 벼농사보다는 무 재배같은게 주를 이루었을 수도 있겠지.

 

 

 

중간중간에 묘한 나무판이 보이길래 뭔가 싶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태우는 모기향이 설치된 상자였다. 대낮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조금씩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미 시원하게 물린 뒤라서, 이 넓은 곳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이란 건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손님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에 기분은 꽤나 흡족하다.

 

 

 

단체 관광객들은 이미 구경 다 마치고 기념품점에 와글와글 몰려있다.

나로서도 이곳 유시엔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기념품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제 이즈모의 개미공방에서 몇가지 기념품을 구입해 놓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패스.

애초에 이 풍경을 놔두고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기념품점에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이제 산책로도 중반을 넘은 듯 한데, 거닐어보면 참 즐거울듯한 연못 위 나무다리는

아쉽게도 출입할 수 없는 장소였다. 예전에는 실제로 거닐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게 조금 아쉽다.

 

사진 담으면서 여러번 느꼈지만, 단풍이 한창 물드는 시기의 유시엔은 정말 환상적일 듯 하다.

너무 꽉꽉 들어차있는 느낌이 드는 지금에 비해서, 소나무의 푸른색과 단풍의 붉은색이 적절히 혼합된 가을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완성도있는 풍경을 선사해 주지 않을까 싶다.

 

가을에도 꼭 한번 들러보고 싶지만, 사진을 담을 당시가 9월 초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올해 가을에 다시 가기엔 좀 그렇지.

 

 

 

키우는 녀석인지 알아서 들어와 사는 녀석인지 모르겠다.

연못 안의 붕어들이야 구입해와서 기르는 녀석들이겠지만.

 

그래도 뭐 먹이 받아먹고 하다가 알아서들 정착한 녀석들이지 않을까 싶다. 천적도 별로 없고 사람도 안건드리고.

오리가 고개를 뒤로 접어서 턱을 앞가슴에 괴고 있는 저 모습은, 사람이 보기엔 뭔가 어색하지만 실은 편안한 휴식 자세.

일광욕을 즐기며 홀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나보다도 저 녀석이 이 정원을 더 즐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느긋하게 걷다보니 처음 출발했던 건물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면적 자체는 그리 크지 않은 정원인데, 오솔길마냥 시야가 가려지는 부분이 많아서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도 각각 다른 공간을 산책하고 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게 나름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강인한 생명력이 아직 충분히 남아있던 시기라서

조경수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녹색 에너지에 조금 지쳐갈 즈음이면

이렇게 사진을 만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로와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어차피 푸른색 위주의 단색 풍경이었지만

무채색으로 바꾸고 나면, 화려한 색에 산란된 형태적 미학이 좀 더 쉽게 느껴지는 듯 하다.

 

 

 

모기들이 극성을 부리는 곳에서 렌즈를 갈아끼우는게 나름 귀찮은 일이긴 해도

광각으로 담은 이끼와 망원으로 담은 이끼의 모습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즐거운 작업이다.

 

멀리서 보면 보슬보슬한 녹색 모래처럼 보이는 이끼지만

가까이서 보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엄연한 조경수의 동료로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크로 렌즈까지 가지고 왔다면 조경용 이끼의 모습을 좀 더 세밀하게 담을 수 있었겠지만

24mm 단렌즈, 50mm 단렌즈, 70-300 망원렌즈를 들고도 이렇게 헥헥거리는데.

 

육중한 본인의 카메라는, 일단 결과물에 불만을 주지 않기 때문에 굳건히 내 옆구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방을 내려놓고 렌즈를 여러번 교환하는 도중에는 역시 가벼운 최신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완전 기계식 필름카메라와는 달리, 수명이 정해진 디지털 기기라서 언젠가는 다른 녀석으로 바꾸겠지만

훨씬 작아진 녀석을 만지작 거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또 지금의 육중한 반사식 카메라의 느낌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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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보여주고 입장료 반값 할인받은 후 짐 맡기는 곳을 물어보자 자기들이 직접 맡아주겠다고 한다.

백팩이 좀 커서 보관함에 안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애초에 보관함이 없으면 어떻하나 하는 생각도 했고.

입구 부분이 수리중이라서 약간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정원쪽은 돌아보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하니 다행.

 

변형된 입구로 들어가는데 안내하시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방금 도착하신 일행분이신가요?' 라고 물어본다.

아마도 같은날 이곳에 페리로 도착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이곳에 온 모양인데, 그쪽과는 관계없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출 리는 없을텐데... 아무래도 그쪽 팀 역시 비 그치기를 기다린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얽히는 일 없이 혼자서 느긋하게 돌아보고 싶으니 전후방 주시해가며 전진.

 

아직 비구름이 지나가고 있는 도중이라서 그렇게 화창하진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쨍쨍해 질듯한 하늘이다.

입구를 통과하고 처음 마주한 유시엔의 모습은 생각보다 넓으면서도 생각보다 좁은 듯 하다.

 

뭔 선문답인가 하면, 정원 전체의 크기는 생각했던것보다 커서

지역의 대표급 정원들에 비하면 좀 작아도 충분히 입장료를 지불할만한 넓이였다는 뜻이고

생각보다 좁다는 것은, 정원에 심어진 조경수들의 밀도가 좀 빡빡한 느낌이 들어서 확 트이는 시원한 느낌보다는 오밀조밀하다는 뜻.

 

 

 

그래도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한적한 시골마을의 외딴 정원이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다.

굉장히 세심히 주의를 들여 가꾸고 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드는 조경수들의 상태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정원이란 온갖 식물들을 최상의 상태로 보전하면서, 산, 물, 땅 등의 요소를 축소해 집약시킨 공간.

인위적인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쟀든 이런 인공적인 미를 유지시키려면

마치 축산업에 종사하듯이 휴일없이 사시사철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확실히 관리 하나는 잘 되어있다는 느낌.

 

 

 

입구가 달라졌기 때문에 원래 이 루트인지, 내가 지금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건지 알 수 없지만

산책 시작하자마자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앞에 들어온다. 정원 내부의 식당인데, 정원을 둘러보기도 전에 식당이 나오는건 조금 의아하다.

 

하지만 공사중이라고는 해도 소소한 서비스 정신을 잊을리가 없는 이쪽 사람들 탓에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정확한 루트라고 나무 푯말이 확실히 박혀있기 때문에 어쨌든 지금은 이 방향이 맞다.

보통 식당이나 기념품점은 관광이 다 끝나는 지점에 세워놓는게 지극히 정상적인데, 어째서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건지.

 

아무튼 마츠에에서 밥은 여러가지 많이 먹고 왔으니 여기서 한끼 할 일은 없다.

정원을 바라보면서 한끼 하는 식사도 매력적이지만, 아무래도 여기에서까지 외국인 할인은 되지 않겠지.

 

정원의 미관을 전혀 해치지 않는 외관이나 색상, 소재 선택은 이곳의 완성도를 재차 어필하는 듯 하다.

 

 

 

이곳에 발을 들이면서 기분이 좋아진 이유중 하나는, 이곳이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이끼 정원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고, 일본의 정원 중에서는 단연 이끼 정원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유명한 정원이라고 해도 이끼 정원이 아닌 경우는 많다. 정원 전체를 이끼로 덮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기 때문.

예전에 도쿄 옆의 하코네 이끼정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태양빛에 반사되는 찬란한 이끼들의 향연이 너무나 인상깊었기에

오랜만에 접하는 이끼정원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은 일시에 기분을 고취시켜준다.

 

하코네 이끼정원에 대한 포스팅은 아주 옛날 녀석이 남아있으니 보실 분들은 이곳으로.

 

 

 

이끼 정원은 일반 정원에 비해 풍성함이라고 할까,

걸어가는 루트 이외의 장소가 전부 자연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는 느낌을 들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힘들지만, 습한 기후의 일본에서도 이끼 정원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수십 가지의 이끼를 배양해서 정원을 만들어도, 그 기후와 토양등 수많은 요소에 적합한 녀석 몇종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생장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냥 놔둬서 되는 녀석들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공간에서 살아가려면 사람의 철저한 관리가 필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끼 정원은 별천지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자연적인 동시에 비현실적인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 저 사진의 토양 부분이, 이끼가 없는 평범한 흙이라고 생각해 보면 그 느낌이 어떨지 짐작이 갈까.

잔디와는 완전히 별개의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는 생소한 풍경이다.

한국에서도 이끼 정원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지만, 야외에 광범위하게 만들기에는 기후상 어려움이 따른다.

 

가장 일본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게 이 정원이라면, 그 중에서도 이끼 정원이야말로 타국 여행이라는 느낌을 확실히 전해준다고 할 수 있다.

밀도가 조금 높긴 하지만 부족한 부분 없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유시엔의 모습은 1등급 정원이라고 결론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본의 3대 정원이라는 곳중 두군데는 돌아봤지만, 그 몇대 어쩌구 하는 수식어에 휘둘리는 듯한 느낌.

훌륭하기로야 더할 나위 없지만, 그 이름값 때문에 언제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정원의 모습은

본연의 가치를 감상하기에는 참으로 힘든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 유시엔은 한적하게 홀로 거닐만큼 여유가 있어서, 조금 빡빡한 느낌이 들어도 충분히 마음에 든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쪽도 여기저기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긴 한데

대부분 가족이나 친구를 앞에 세워놓고 찍는 기념사진인듯, 나하고는 다른 차원의 생물 같으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세워놓고 사진 찍는 반면 이동속도는 나보다 훨씬 빨라서, 내가 몇장 찍고 있으면 금새 앞질러 가버린다.

덕분에 이쪽은 얽힐 필요없이 천천히 진행할 수 있으니 나쁠거 없지만.

 

 

 

규모로 보면 그렇게까지 큰 편에 속하지 않지만, 이곳저곳 둘러봐도 상당히 알찬 느낌의 유시엔.

정원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동선과 그 주변의 풍경 등 설계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복잡하다.

걷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 차 한잔 할 수 있는 가게 등도 철저하게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적한 시마네현이기 때문에 이렇게 멋들어진 풍경 촬영에 열을 올려도 방해받지도, 남을 방해하지도 않는 여유가 가능.

유명한 정원에 가면 걷다가 마음껏 사진 담을 공간마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틀간의 페리 여행과 이어지는 비 때문에, 시작부터 뭔가 꿀꿀하고 초초한 기분이었던 이번 여행에서

오랜만에 홀로 녹음속을 마음껏 거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듯 하다.

 

 

 

사진 찍을 포인트만 찾아다니는 건 아니고.

사진 한장 찍기전에 1분쯤 그자리에 서서 천천히 주변 풍경을 음미하는 시간도 잊지 않는다.

 

옛날 일본 다이묘들은 이런 정원을 자기 집 안에 떡하니 지어놓고 매일 산책하며 물고기들에게 먹이나 주는 호사를 누렸다.

극단적인 계급사회에서만 가능한 사치스러운 행위가, 다행히도 오늘날엔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함으로서 체험이 가능하다.

 

물론 옛 다이묘들 중에는, 백성들 생활이 어려워지자 자기 소유의 저택과 정원을 팔아서 곡식을 구입해 나눠준 사람도 있긴 하다.

 

 

 

자연 그 자체라면,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예술성을 뛰어넘는 장관을 연출하지만

미약한 사람의 힘으로 그 흉내를 내려는 노력이 빚어낸 일본식 정원은, 아주 세심한 곳까지 신경을 써야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시멘트 길 위에는 자갈이라도 뿌려서 그 인공적인 느낌을 감춰야 하고

들어가서는 안되는 정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철봉이 아니라 굽이진 대나무로 위화감을 없애야 한다.

 

소소한 곳에 신경을 쓴다면, 보는 사람 역시 소소한 곳까지 뜯어봐도 만족감이 드는 법.

나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벌써 저 멀리 기념품점에서 바글거리고 있는 단체관광객은 이런 요소들을 음미하고 있을려나.

 

 

 

햇살에 반짝이는 이끼의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다.

하코네 이끼 정원에서 받았던 그 감격을 실로 오랜만에 느낄 수 있으니 셔터를 누르는 횟수도 늘어난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왼편의 저 나무가 단풍으로 물드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잘 만들어진 정원은 사계절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가을의 유시엔이 매우 절실해지는 느낌.

봄과 여름에는 이렇듯 색이 좀 단조로워지는 느낌이 있지만, 가을의 정원은 그야말로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절경을 뽐낸다.

 

물론 눈으로 덮인 겨울정원의 모습도 빠뜨릴수 없고, 자연을 모방한 정원이니 계졀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것도 당연하다.

 

 

 

이끼의 생육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잘 자라다가도 조금만 일조량과 습도 등이 변화하면 곧 죽어버리는 녀석들이라서

나무 앞쪽의 이끼들은 이미 누렇게 죽어버렸다. 물론 타이밍이 맞으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지만.

 

죽은 이끼들 사이로 다른 종류의 이끼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도 보인다.

정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변화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저 틈을 되살릴 것인지도 궁금하다.

 

 

 

반대로 그늘이 많아서 습도가 높은 지역의 이끼는 또 그 느낌이 다르다.

색도 진해지도 조밀해져서 이름 그대로 그늘에 걸맞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항상 일정한 색과 밀도를 유지하는건, 천해의 혜택을 받은 지형과 날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현재로서도 불가능에 가깝고

넓은 벌판에 고립된 정원이 아닌 이상 주변 건물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여기저기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오늘 갈아입은 반바지 밑이 좀 가려워진다.

장소가 장소다보니 모기가 아주 신나게 활동중인듯 하다. 마지막 날이라서 편하게 반바지 입었는데 이런 함정이 도사릴줄은.

다 잡아낼수도 없으니 그냥 물리면 물리는대로 놔 두는수 밖에.

여담으로, 그때 물린 흔적은 한달 반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이끼 정원의 매력은 역광 촬영시에도 잘 드러난다.

빼곡한 조경수 덕분에 직광을 어느 정도 막아주기 때문에 빛은 부드러워지고

오밀조밀한 이끼가 지면 가까이서 반사되는 빛에 부드럽게 퍼지는 모습은 푸근하기 그지없다.

 

인공적인 산물이긴 해도, '이 곳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모습.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기를 여러 차례.

 

 

 

나무의 새순들은 어떤 운명을 맞을지 궁금하다. 조경수라는 목적상 이런 새순은 쳐내버리는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새순 잎사귀 밑에 매미껍질이 보인다. 이번 여름은 한껏 더웠으니 이 녀석들, 원없이 울어대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늦여름이긴 하지만 아직 30도를 넘나드는 날씨라서, 어디선가 매미소리가 남아있는 듯 느껴진다. 착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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