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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해당하는 글들

  1. 2013.08.24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7편 8
  2. 2013.08.22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6편 4
  3. 2013.08.20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5편 8
  4. 2013.08.19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4편 8
  5. 2013.08.18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3편 15
  6. 2013.08.17  과거로의 여행 - 토요타 박물관 2편 14

 

 

길고 긴 토요타 박물관의 순회도 드디어 끝이 난다.

사실 시간이 별로 많이 걸린건 아니다. 넉넉잡아 세 시간 정도.

느긋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느긋하게 구경하고 휴식까지 취한 뒤 나고야로 돌아가도

볼거리 한두 군데는 더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하다. 본인은 예정된 일도 없어서 그냥 쉬러 돌아가지만.

 

시간에 비해서 많이 지치는 느낌은 든다. 꽤나 열심히 설명까지 읽어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체력소모가 꽤 되는데

찍은 사진만 200장이 넘으니 이게 또 쉽게 볼게 아니다. 미러리스였다면 좀 덜 피곤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신관을 나오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제임스 릿지라는 사람의 '트래픽'이라는 작품.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일부러 살짝 각도를 틀어서 담아본다.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제목에 더 어울리는 듯한 복잡함이 매력적.

예술가에겐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밑에 가격이라도 적어놓으면 좀 더 맛을 음미해 보려고 노력할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식사까지는 할 생각이 없고, 일기를 좀 적으며 목이나 축이고 싶어서

아담한 까페에 들어간다. 까페 중앙엔 기념품 가게가 듬직하게 위치해 있어서

휴식을 위해 들어갔다가 아이들에게 이끌려 지갑을 열게 되는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의외로 아이가 없는 어른들까지 진지하게 둘러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음료수나 한잔 마실까 했는데, 핫도그 세트가 100엔 정도 저렴하다고 선전중이라 그걸로 간다.

음료수값이 한국보다 비싸니 오히려 이런 세트메뉴를 먹으면 좀 손해를 덜 본다는 느낌일까.

 

창가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밖을 바라보는데, 1920년대 자동차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앞의 서킷에서 꾸준히 주행중이다.

정비를 마치고 시운전이라도 하는 것일까. 자동차란 녀석도 참치와 마찬가지로 달리지 않으면 죽어버릴 듯.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 일도 즐겁게 해낼 수 있을듯 하다.

팜플렛을 얼핏 보니, 좀 레어한 자동차가 시운전 할때는 미리 선전도 하고 해서 관람객이 많이 모이는 모양.

 

 

 

핫도그는 미국식이 아니라 아주 아담한 녀석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는 탱글탱글한게 씹어먹는 맛이 있었다.

사실 여기서는 사진 찍을 생각이 없었지만 지친 몸을 추스리면서 일기 쓰고 찍었던 사진을 점검하다보니

문득 한장 찍고 싶어지는 바람에 핫도그의 자태를 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정말 풍족한 여행이 아닌 이상, 남들처럼 맛집 찾아가서 증거사진 착착 남기는 멋들어진 행동은 못하고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동네 분식집에서 수백만원짜리 카메라 펼쳐놓고 심각하게 셔터 누르는 짓만 하고 있다.

여행의 먹거리라는게 꽤나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에 납득은 하지만, 찍고 있으면 묘하게 초라해 보인다.

 

예정대로라면 예산이 꽤나 널널하기 때문에, 일부러 남겨오려 하지 않는 이상

한 번쯤은 돈 좀 들여서 제대로 식사를 즐길 기회가 있다. 그 때는 정말 인정사정없이 찍어줘야겠다고 생각중이다.

 

 

 

밖에 나오니 그래도 박물관 안은 시원한 편이었다고 향수에 젖을만큼 무덥다.

습도는 아직 조금 낮은 편이지만 36도에 달하는 낮시간 온도는, 어디서 솟아나는지 모를 정도로 땀을 송글송글 맺게 만든다.

2시쯤 되니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이곳 주차장이 워낙 넓어서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다.

 

대도시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이런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건

나같은 여행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나고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소소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그리 싫어할만한 곳도 아니고, 그렇게 성장하다보면 첫 자동차를 토요타 제품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질테니.

'돈만 있으면 어디 횬다이 따위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한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국 자동차 메이커의 근시안적인 발상은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잘 가꾸어진 조경을 한번 둘러보고 돌아가려다 오랜만에 깔끔한 녀석을 한 마리 만난다.

손가락으로 시야 앞에서 깔짝깔짝 거리면 양손으로 공격도 걸어온다. 물론 꽉 잡히면 조금 따끔하지만.

황색 사마귀보다는 이런 녹색 사마귀가 귀여워 보이는건 역시 색채의 이미지가 가지는 힘일까.

 

자전거 여행 도중 워낙 많이 짜부를 만들어버린 녀석이라서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산길 언덕을 내려갈 때면 나나 저녀석이나 도저히 피할수가 없으니 그냥 밀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사마귀는 체형 자체가 뒤로 물러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빠른 물체를 피하는 능력이 전무하다.

그 덕분에 가진 공격성으로 포식자 위치를 점하고는 있지만, 사람에게도 덤벼드는 무모함은 사실 겁이 없어서라기 보다 도망갈수가 없어서이다.

 

 

 

주차장에는 전기 자동차를 위한 무료 충전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과연 자동차 박물관이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배려 역시 사람에 대한 그것 못지 않다.

외부 디자인은 그냥 조금 수수한 정도이지만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이 녹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푸른 하늘 아래서는 단정한 인상을 주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더워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자동차를 끌고 온 듯 하다.

들어올 때나 나갈때나 이렇게 걸어서 역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따가울 정도의 햇살이 힘들긴 하지만, 덕분에 사진 담는것도 수월하니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나고야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주위도 한적하고.

관광객 상대가 아닌 본토 사람들 상대하는 가게가 드문드문 보이는 것도 나에게는 즐거운 요깃거리다.

시 외곽에는 커다란 창고형 북오프나 잡화점, 파칭코 가게 같은게 들어서 있어서

의외로 정해진 코스만 이동하게 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다.

자전거 여행하면서 실컷 즐겼으니 그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리니모에는 벌써부터 학생들이 많이 타고있어 소심한 나는 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관광객이라면 이 리니모를 타고 주변을 구경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하다.

가이드 역할을 할 일은 없겠지만,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이 정도 정보는 얻어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고야역에 돌아오니 4시쯤 되는데, 호텔까지의 무료 셔틀버스는 오후 5시부터 운행한다.

1시간 일찍 들어가서 쉬어봤자 시간만 아까울 뿐이니 역 주변을 술렁술렁 돌아다녀본다.

여행중 가장 먹기 힘든것이 야채나 과일이다보니, 편의점 들어가서 야채주스 하나 마시기도 한다.

 

다행히도 역 근처에 부탁받은 물건을 살 만한 가게가 있어서 잠깐 들어가 구입해 온다.

사람이 너무 바글바글해서 오래 있고싶진 않았지만, 한국에 좀처럼 나오지 않는 코믹스가 있어서 그것도 서둘러 몇권 사고 나온다.

학생이 많이 몰려드는 시간대라서 그런 듯. 한번쯤은 더 갈 기회가 있으니 다음엔 오전에 일찍 나와서 조용하고 느긋하게 쇼핑을 즐기고 싶다.

 

일단 나고야에서의 초반 일정은 이걸로 끝이고, 내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밤엔 식초에 절인 문어라도 좀 뜯으면서 한 잔 마셔보려고 생각중인데

그래도 이거 한그릇 더 먹는다고 내 배가 포만감을 느낄 일은 없으니, 휴식을 겸해서 요시노야에 들어간다.

딱히 엄청 맛있다고 생각이 드는 녀석은 아니지만, 어째선지 일본에 오면 반드시 규동집에 들어가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한 끼 식사라기보다, 휴식을 취하며 허기를 달래는 간식이라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한국서 규동 한번 먹어보고는 그 생각이 좀 더 강해졌다. 한국에서 규동 먹는건 돈이 아까운 행위다.

이미 40년 가까이 맛이 거의 변하지 않는 우직한 요시노야 규동은, 어딜 가도 꽝을 뽑을 일이 없어서 안심이니까.

 

 

 

나고야 역 안내센터에 가서 내일 목표인 히다 타카야마(飛騨高山)에 가는 방법을 물어본다.

처음엔 JR 전철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던데, 내가 좀 더 싼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자 버스 시간표를 알려준다.

 

20분쯤 더 소요되지만 무려 1500엔 정도나 저렴하다.

나고야로 돌아오는 하루 루트가 아니라 거기서 숙박할 예정이라, 20 분의 시간차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히다 타카야마가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그곳 역시 그냥 전초기지 역할이라서.

 

호텔에 도착하니 6시가 넘어있다. 나고야 여행중에 하루 꼬박을 토요타 박물관 하나 돌아보는데 소비했다고 하면

아마 아까워 할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홀로 여행의 즐거움이란 이런 느긋함에서 오는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안주, 술을 좀 사왔다.

오늘은 세탁기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아주 편하게 쉬기는 힘들지만,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 어쩔수가 없다.

보통 호텔에 들어가면 옷이고 뭐고 다 벗어버리고 속옷 한장으로 뒹굴거리기 때문에.

 

1층에 위치한 코인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옷 입고 세탁 돌리고, 1시간 뒤에 내려와 건조기에 집어넣고, 또 한시간 뒤에 걷으러 가야 한다.

한마디로, 약 2시간 반이 넘는 시간동안 방 안에서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 이거 나한테는 꽤나 불편한 일이다.

 

 

 

쥐꼬리만한 세제도 30엔씩 받아챙기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에서 세재를 비닐봉지에 담아온다.

 

매번 담으면서도 참 이 돈 아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의외로 여행이란, 수천 엔씩 들여서 맛있는거 먹고 수천 엔씩 버스비 내고 이동하는 것보다 빨래하는데 30엔 쓰는게 더욱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조리도구와 쌀과 반찬을 들여와 여기서 만들어 먹을수는 없지만 세탁세제는 충분히 갖고 올 수 있으니까.

 

그리 길지 않은 토요타 박물관 관람이었지만, 찍어온 사진을 보니 오늘은 만족감으로 충만하다. 이 정도면 하루 잘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도시락을 먹고 한 시간쯤 지나서 빨래 돌려놓고 냉장고에서 식혀놓은 캔을 꺼낸다.

나고야를 떠나는 날이라 기분이나 좀 낼까 싶어서 한잔 마셔볼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TV에서 선전하던 녀석이 기억에 남아있어 일부러 이 녀석을 찾아 구해왔다.

 

한국에서는 분류되기 어려운 츄-하이(チューハイ)라는 주류인데, 증류주에 소다와 함께 각종 과일향을 첨가한 술이다.

발포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소주와 같은 증류주 계열이라도 거의 맥주 마시는 느낌으로 알싸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물론 여성들이 좋아하는 술인데, 이게 마셔보니 한국의 왠만한 맥주보다는 낫다.

 

정통 맥주도 나쁘진 않지만, 이번에 기린에서 자사의 '빙결'주에 가장 원하는 과일 앙케이트를 했을 때

1위를 먹은 녀석이 이 복숭아맛이라고 아침 TV 에 광고가 나와서 구매해 봤다.

당연하게도 기간한정 제품이라 지금 한번 먹어보자 했지만

사실 기간한정이라고 이름붙이고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한 과일종류가 나왔었기 때문에 반쯤은 그냥 상술.

 

증류주의 깔끔함과 탄산의 시원함, 달달한 복숭아맛이 아주 훌륭하다.

 

빙결이라는 이름의 이 술은 일본에서 매우 대중적으로

캔을 뜯으면 기압차로 인해 표면의 프리즘처럼 생긴 무늬부분이 자동적으로 구겨지기 때문에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게 만드는데, 이 아이디어가 대박을 터트렸다. 지금도 기린 빙결의 심볼과도 같은 녀석.

 

원래는 레몬이나 오렌지 빙결을 마시곤 했지만, 신경 좀 써서 만들었는지 확실히 맛과 향이 잘 조합되어 있다.

술이 그리 강하진 않아도 즐겁게 시큼한 문어다리를 뜯으며 술과 함께 TV 버라이어티를 시청한다.

여행와서 이렇게 초저녁부터 느긋하게 방에 틀어박혀 술과 TV를 즐긴다는건, 조금 사치러운 행동일런지.

 

내일도 버스가 10시 30분에나 출발하기 때문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 필요도 없다.

세탁 때문에 계속 1층으로 왔다갔다 해야 한다는 귀찮음만 제외하면 후회없는 느긋한 하루였다고 자찬하며 한 모금 들이킨다.

 

 

신관의 테마는 일본의 자동사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사람으로서는 별로 구미가 당기진 않지만

전후 폐허에서 발전하는 시대상이란 게 상당히 닮은 모습이기도 해서 크게 위화감은 없을거라 본다.

 

 

 

자동차 개념과는 다르지만 어쨌듯, 이런 녀석들이 훗날 자동차의 원형이 되지 않았나 싶긴 하다.

역사 전시관이라고 해도 설마 이런 녀석을 전시해 놓았을줄은 몰랐지만.

 

 

 

이 미니어처는 1924년 도쿄 시내를 달렸던 버스. 중국 영화에도 자주 나와서 그리 신기하진 않은 모습이다.

아무래도 실물이 존재하기는 힘들어 작은 녀석으로 대체되어 있는데, 이곳 토요타 박물관 바깥에는 이거보다 좀 새거긴 하지만

꽤나 낡은 버스 한대가 정차되어 있다. 관객들 사진 찍고 들어가서 놀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너무 더워서 쉬러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이곳 부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시 생활상과 자동차의 발전상을 나열해 놓았는데

전쟁중에는 암흑기였으니, 자전거조차 귀중품이었다는 몇 가지의 설명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젓가락까지 녹여서 무기를 만들던 시대였으니 당연하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일본 역사관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침략전쟁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그러고나서 바로 전쟁복구가 스타트되었다는 말이 시작되는데

이게 한국전쟁 덕이라는 설명은 별로 쓰여있지 않은 듯.

 

 

 

미쯔비시 실버 비전이라는 모델. 스쿠터인가 싶은데, 전동자전거라 해도 될듯.

형태나 색깔이나 전쟁직후 생산되었다는 느낌을 물씬 풍긴다. 실제 사용하던 사람들은 어떤 계층이었을까.

 

 

 

전후 가장 활발했던 이동수단이라면 단연 자전거였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훨씬 이전에 기술적 이론이 충분히 검증된 녀석이라서

낙후된 시설과 사회상 아래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자전거가 지탱해 온 근거리 사회 기반망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전쟁기간동안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던 자동차 개발과 생산도 다시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게 1950년 초반.

사실 좀 전의 빈티지 전시관과 달리, 한국사람인 나로서는 이 시기의 일본 문물들이 그리 반갑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들이야 그땐 그랬지 하면서 추억을 되살릴 순 있지만

그 당시의 한국은 아직 일본의 지배와 한국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시기였으니까.

 

 

 

전후 사용되던 소방차와 소방대원들의 옷, 불조심 포스터 등등.

일본은 근대화되기 이전부터 화재에 신경질적으로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전쟁중 히로시마 원폭 피해보다 훨씬 더 참혹했던 도쿄 대공습의 악몽 역시 사라지지 않은 시기라서

소방관이라는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청장년이라면 기꺼이 뛰어들어야 할 자경단 조직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목재가 풍부해서 대부분의 가옥이 목조였는데다가, 쇼군의 성 중심으로

골목길은 고사하고, 나무벽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 끼고 가옥끼리 바싹 붙어있는 형태였던 옛 마을은

일단 한번 불이나면 도저히 진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대참사를 불러왔기 때문에, 메이지 이전 시대까지 민가에서 불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되곤 했다.

 

아직도 작은 산골마을에서는 정부의 소방서 외에도 마을소방대라고, 제복 입고 정기적으로 점검을 도는 그룹이 있다.

본인이 바이트를 했던 소바집의 사장님도 소방대 소속이라, 예전 회식때 나를 불러서 대원들한테 소개시켜 주시도 했다.

 

 

 

아마 전시된 물품들이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법한 노부부의 모습을

도저히 따로 떨어져 담을수가 없어서 죄송하지만 허락없이 슬쩍 프레임에 끼워넣었다.

 

시기적으로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한국의 노인들에게도 익숙한 물건들일 듯.

슬픈 역사임에 틀림없지만, 당시 일본과 한국은 십여 년의 시간차를 제외하면 사용하는 제품이 거의 동일했으니.

 

유치원즈음 찾아가곤 했던 아버지의 시골 고향에는 저런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양 쪽으로 나무 여닫이문이 장치되어 있던 흑백 TV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버리지 말고 가져와 보관했으면 좋았을 텐데.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카메라 코너가 이런 전시장에 빠질리가 없다.

카메라 매니아라면 하나쯤 가져오고 싶은 모델들이 좌르륵 전시되어 있다.

물론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코너이니만큼, 라이카나 짜이스 등의 제품보다는

떨어지는 광학기술이지만 당시 인기를 끌었던 녀석들이 주를 이룬다.

 

가난한 자의 라이카라는 별명이 붙은 야시카의 카메라. 물론 라이카의 1/10 정도 되는 가격이었지만

당시엔 카메라라는 물건 자체가 꽤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아무나 만질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지금도 야시카 렌즈는 골동품 중에서 꽤나 성능이 좋아서 시장에 나돌곤 혼다.

 

 

 

개인적으로는 꽤나 반가운 모델. 미놀타 A-2 라고,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은 아는 모델이다.

현재 사용중이고, 이번 여행중 찍은 사진을 모두 소화해 준 소니의 DSLR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 시장의 선구자였던 미놀타의 후계기이고

이 녀석은 1956년 미놀타에서 발매된 녀석이기 때문. 지금은 사라졌지만 미놀타는 세계 최초의 기능을 가장 많이 집어넣은 공돌이 집단이었다.

 

당시 미놀타의 고급렌즈군인 ROKKOR 렌즈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 녀석 성능이 워낙 뛰어나서

지금도 교환형 록코르 렌즈가 나오면 옥션에서 굉장한 가격에 거래되고는 한다.

 

 

 

당시의 일본 카메라는 바디나 렌즈나 라이카의 카피품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완전히 바르낙 라이카처럼 보이는 이 바디 역시 닛카 IIII (Nicca III) 라는 카피품. 사실상 완전히 같은 모델이라고 보면 된다.

렌즈는 일본공학이라고 적혀있는데, 현제 카메라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니콘의 전신이다.

 

 

 

카메라 매니아들이라면야 여기서 시간때우기 좋지만 이걸 자동차처럼 한장한장 담아서 설명하다가는

오늘중으로 가져간 메모리 용량이 쫑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 수 접고 눈으로만 즐기기로 한다.

 

자동차야 토요타 박물관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니 많이 담았지만

여기서 구형 카메라들에 대해 썰을 풀어봤자, 조금만 사이트 검색하면 카메라의 역사는 후덜덜하게 나온다.

 

 

 

되려 요즘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할 올림푸스 PEN F 모델.

원래 오리지날 펜은 이 녀석이 아니지만, 요즘 발매되는 디지털 펜과 동일한 모습이라 담아본다.

 

올림푸스 최고의 공돌이 집단이 'PEN' 처럼 누구나 들고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목표로 만들어 낸 이녀석은

6천엔이라는, 당시의 카메라 가격에 비해 획기적으로 저렴하면서도 기능상으로 전혀 꿇릴게 없는 획기적인 모델로

요즘 디지털 펜도 잘 팔린다고 하긴 하지만, 당시엔 정말 없어서 못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프 사이즈 필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카메라보다 2배 더 찍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

 

올림푸스는 여전히 그 때의 철학을 살려서 35mm 판형의 절반 사이즈 센서를 가진 포서드 규격을 만들어

60년이 지난 지금도 펜은 다른 의미의 하프사이즈 카메라로서 그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60년전 모델을 거의 그대로 복각해 내도 그 디자인에 홀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참 굉장한 일이다.

 

 

 

SLR 구조가 정립되기 전의 카메라들은 사실 현재의 거물인 캐논이나 니콘이 그리 힘을 쓰던 시대가 아니다.

아사히 펜탁스와 미놀타, 올림푸스 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시절이었는데

올림푸스는 언제나 주류와는 살짝 떨어진듯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재미있게도 펜탁스만이 여러번 타사에 인수 합병되면서도

브랜드 네임만은 버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하며 여전히 매니아들이 좋아할만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당시 펜탁스 카메라는, 손에 쥐어보면 설명이 필요없다고 할 정도로 굉장한 완성도와 내구성을 자랑했다.

 

 

 

카메라쪽에 너무 시선을 뺏기는것도 좀 그래서 서둘러 시야를 돌려본다.

바이크쪽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도 이름쯤은 들어봤을 듯한 혼다 벤리.

지금은 스쿠터로도 나오고 오리지날의 향수를 자극하지 않는 일관된 디자인으로 발매가 되는데

바이크만은 아무리 세련되어도 역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런 디자인에 끌리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63년 모델인데, 아마 검색해보면 최신형 벤리 역시 이 모양에서 거의 벗어나 있지 않다.

굉장히 조그마한 모델로, 가벼운 산책나가기엔 딱 알맞은 녀석.

수리도 쉬워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당시 모델 타고다니는 사람이 꽤 많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건 또 음악 매니아들이 군침흘릴만한 장소가 나온다.

사실 60년대 중후반부터는 일본 역사에 남을만한 황금기가 지속되는 탓에

당시 사람들의 유희는 2013년의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윤택했으리라 확신한다. 그야말로 매니아들의 전성시대.

 

 

 

풍요롭던 시대라서 그런지,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재즈 색소포니스트라면 단연 존 콜트레인이었다.

마일스가 지독한 폭군이었다면, 재즈의 성인으로까지 불린 콜트레인이 풍요의 시대와 어울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

 

개인적으로는 마일스를 좋아하지만, 일단 재즈에 흥미를 가지려면 콜트레인 없이는 이야기가 안된다는데 동의한다.

만약 여기 끼워져 있는 앨범들이 전부 진짜 초판이라면, 은행 터는것보다 여기 터는게 더 나을거다.

 

 

 

여성 재즈보컬이라면 일단 생각나는 사람이 엘라밖에 없다. 정말로 그 시대는 엘라를 위한 무대였다.

재즈의 난해함에 힘들어하는 입문자라면 다른 말 필요없이 엘라의 앨범을 듣는게 만고 장땡.

사실 당시 일본에서 제일 인기있는 재즈보컬은 사라 본이었지만, 본인은 빌리 홀리데이와 엘라를 손꼽아도 사라 본은 조금...

 

 

 

소품 구성도 참 허투로 하지 않는다. 당시 재즈가 흐르던 어두운 BAR 안에 한개쯤은 비치되어 있던 냉장고.

원래는 술이 가득 차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저것도 나름 어울리긴 한다.

이 녀석을 보니 왠지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당시 신문이나 잡지 광고를 배경으로 한 미니 TV 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

전시관 안에 이런 독립적인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서, 그것도 주제의식에 딱 맞는 디자인으로 배치해 놓는 것은 감탄할 만 하다.

한국에서도 쓰이긴 했지만 일본만큼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몇 안되는 당시 물건이다.

 

 

 

아무래도 이 정도의 미니멀리즘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까.

TV 들은 당시 광고들을 틀어대고 있다. 화질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건

내부를 따로 개조했기 때문일까, 화면이 너무 작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채널을 틀어보고싶은 욕망이 들지만 만지면 안되기 때문에 한동안 그때 그 광고를 구경해 본다.

사실 일본은 이런 쪽에서 변화를 싫어해서인지, 2013년 현재도 굉장히 촌티나는듯한 광고가 꽤 나온다.

처음엔 보는 쪽에서 소름돋을정도로 촌티나지만, 자꾸 보고 있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은 CM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1년간 일본 CM만 줄기차게 보다가 한국 돌아오니, CM들이 너무 구름속을 훨훨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사람냄새가 너무 옅은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슨 게임인지는 모르겠지만,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시작한 나로서는

도저히 맨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즐거운 표정과 포즈의 배트맨과 로빈을 오래 지켜볼 수가 없다.

 

물론 팀 버튼과 놀란 감독 사이에 가히 쓰레기라고 불려도 될 만한 괴작 배트맨이 나오기도 했지만

저건 대체 언제적 배트맨일런지... 아마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화사한 배트맨 시리즈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는것도 같고 없는것도 같고.

 

 

 

이 만화잡지를 읽으며 자란 아이들은 지금쯤 환갑을 훌쩍 넘기고 있을 듯 하다.

희소성때문에 이렇게 전시만 되어 있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속을 한번 보고싶다는 욕망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쿄토의 만화박물관에 가면 이런 잡지의 극히 일부분을 직접 손으로 넘겨서 감상할 수 있긴 하다.

1980년대 발간된 한국의 만화잡지 보물섬조차 초판부터 마지막 판까지 보존상태 좋은 녀석이 극히 드물 정도인데

1960년대 발간된 잡지를 이렇게 모아놓은 일본사람들의 콜렉터 기질은 정말 혀를 내두른다.

 

물론 이거보다 더 오래전, 테즈카 오사무와 후지코 F. 후지오 등이 만화를 그리던 초기 시절 작품들은

일본에서도 극히 구하기 힘들어, 한 권에 1천만원 가까운 녀석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한번 읽고 버리는 만화잡지를 이렇게 모아놓은건 참 징하다고밖에.

 

 

 

이런 녀석들 역시 오리지날이라면 가격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오리지날 철인 28호나 아톰 장난감도 초 레어아이템이긴 한데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로봇 '로비'는,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인 '금단의 행성'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데

상태좋은 초판 장난감의 경우 수백만원은 넘어간다. 저 사진에 찍힌 녀석들이 전부 초판 오리지날이라면 중형차 한대값은 나올 듯.

 

 

 

테즈카 오사무는 그 연식에도 불구하고 워낙 일본 만화계의 신으로 알려진 사람이라

그의 작품은 오히려 그 후의 만화작가들 작품보다 보존상태가 더 좋은 편이다.

 

테즈카 오사무의 뒤를 이은 '도라에몽'의 후지코 F. 후지오 콤비의 데뷔작들은

이름을 알리기 전에 출판된 것들이라, 대스승인 테즈카의 작품보다 수십 배는 희귀하기도 하고.

아톰 옆에는 요코하마 미츠테루의 철인 28호가 진열되어 있다.

일본은 이 두 작품의 원본을 이렇게 전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국 문화의 자긍심을 가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일본에서도 대인기였던 모노폴리. 한국에서는 이것보다 부루마불로 더 알려져 있다.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부루마불조차 스마트폰 네트워크 게임으로 즐기는 시대지만

저 지폐의 감촉과 함께, 신성함조차 느껴지던 가장 비싼 빌딩의 플라스틱 모형의 풍채를 느끼기는 힘들지 않을까.

 

의외로 결판이 잘 나지 않아서 서너 시간 하다가 때려치우는 경우가 많았던 추억이 되살아난다.

나이가 좀 더 들고나서는, 무인도에 짱박히는게 의외로 중요한 전법이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모노폴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게 그 부분이었다. 무인도도 돈이 있어야 갈 수 있구나, 이놈의 세상.

 

 

여행도중에 이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성격인데 셔터를 누르면서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이렇게 찍어대고나서 언제 블로그에 사진 다 올리나 하는 걱정이.

 

사실 라이트룸으로 살짝 보정하는건 아무리 많아도 별로 귀찮지 않다.

라룸을 만지는 시간은 꽤나 즐기는 부분이기도 하고. 살짝 그 때의 의도와 다르게 느껴질때 조금씩만 조물러주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글 쓰면서 블로그에 포스팅하는건, 사실 돈 한푼 받지 않는 순수한 자기만족임에도 불구하고

비공개 글이 아닌 이상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주구장창 자동차 사진만 올리고 있으면

지쳐 나가떨어지는 방문객들이 꽤나 생기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면야 힘을 내서 포스팅을 전진시키겠지만, 이거 실질적인 여행 첫 날째의 기록이다.

9일간의 여행동안 나고야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매일매일 이만큼의 사진을 마구 찍어댔기 때문에

이번 여행기는 대체 언제쯤 끝날지 본인도 감 잡기가 힘들다.

 

특히 이 날의 토요타 박물관은 아무런 상념없이 그냥 즐기기만 했지만

앞으로 다가온 여정은, 가볍지만은 않았던 과거 속으로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발걸음이라

일본 여행 포스팅이라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한 기억만 남겨주지는 못할 듯 하기도 하고.

 

 

 

일본 메이저 자동차 메이커에 비해 뛰어든 시기나 기술적으로도 뒤쳐진 감이 있었던 미츠비시는

이 콜트 갈랑 모델을 시작으로 타 메이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현대자동차가 존재할 수 있었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로, 현대자동차 최초의 자체생산모델인 포니를 필두로

초기 에쿠스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후반의 거의 모든 모델에 미츠비시와의 기술제휴가 녹아들어있다.

포니, 엑셀, 소나타 등은 사실상 미츠비시의 제품을 그대로 갖다 쓴 것이나 다름없었고.

 

재미있게도 지금은 세계 시장의 영향력에 있어서 두 회사의 위치가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참 역사는 이래서 알 수가 없다.

 

 

 

이 녀석의 색깔과 모양이 어쩐지 울 가족의 생애 첫 번째 자동차였던 마크 V 와 꽤나 닮아있어서

다른 기종임에도 불구하고 신경써서 둘러보게 되었다. 토요타의 소아라 모델.

 

중고로 받아왔던 포드사의 코티나 마크 V 는, 1988년 즈음의 꼬꼬마 시절엔 어디서 나온건지도 모르고 그냥 탔던 기억이 나는데

그 모델 이후에 아버지가 구입한 엑셀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마크 V보다 훨씬 조악한 성능을 자랑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보급형 모델이긴 했지만 포드사의 기술력이 그래도 어디가진 않았던 것일까.

 

 

 

우연이겠지만, 이 소아라 모델은 마크 V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제품.

당시 울 가족의 마크 V도 이런 똥색에 가까운 금색이었고, 디자인 역시 각이 확실히 잡힌 디자인이어서 지금 봐도 참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성능은 이녀석이 훨씬 좋았는데, 애초에 이 소아라는 젊은 의사, 변호사와 같은 떠오르는 야심가들을 타겟으로 한 고급형이었기 떄문이다.

마크 V의 엔진이 1600cc, 이 녀석의 엔진은 2750cc 니까 비교할 건덕지도 없긴 하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1900년부터 시작되어, 1930년 중반에 뛰어든 일본이 그로부터 40년 후 세계 정상에 서게 되었는데

이 녀석이 개발되던 1980년까지 자체기술로 자동차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던 현대자동차가

40년쯤 후 자신들과 어깨를 동등하게 세울 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을, 이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런지.

 

가족의 생애 첫 자동차가 이녀석과 닮은 마크 V라서, 이 앞에서는 뭔가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그 외에도 전시된 자동차는 상당히 많이 남아있지만, 아무래도 일본 자동차의 역사는 이 정도로 만족감을 느꼈기에

이곳에 전시된 멀쩡한 자동차 중 가장 미래지향적인 느낌의 자동차를 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토요타에서 이런 차도 발매했었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잘 빠진 디자인.

 

 

 

알고봤더니 이 녀석은 토요타 LFA 라고, 자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슈퍼카 개념의 모델이었다.

이 녀석은 2009년 모델이지만, 정식 개발이 아니라 프로토타입 모델로, 온전히 구경할 수 있는 곳은 아마 여기밖에 없을 듯.

 

자동차의 프로토타입은 양산형과는 달리 돈 따위 생각지 않고 마구 때려부은 녀석이라

2009년 프로토타입이라도 현재 생산되는 어떤 스포츠카보다 고급스러운 느낌을 팍팍 풍긴다.

 

 

 

2013년 LFA 는 전 세계 500대만 제작되었다고 한다.

2009년 모델이라도 이 정도만 되면 아마 돈뭉치 들고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법 한데.

 

정중앙에 개틀링처럼 위치한 배기구가 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느낌이라서 신선하다.

 

1901년에 제작된 자동차를 한두 시간 전에 구경하고 왔는데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자동차는, 조금 과장해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가슴을 펴고 자신만만하게 냉소덩어리 성격이라 외칠 수 있는 본인으로서도

사람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무형의 산물을 이렇게 실현화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일종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지식의 발달과 지성의 발달은 전혀 별개의 문제고, 내가 냉소하는 것은 보통 지성의 공허함 때문이긴 하지만.

 

 

 

LFA 가 온전하게 보존된 가장 최근의 모델이라고 한 이유는

온전하지 않게 해부되어 있는 현 토요타의 주력 모델 프리우스가 박물관 통로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 생산자 답게, 사운을 걸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장점에 대해 역설한다.

 

토요타가 협력을 한 어떤 자동차 박물관에서라도 반드시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설명은 들어가 있다.

 

 

 

긴 흐름으로 봤을때 분명히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자동차 혹은 수소자동차로 향하는 과도기같은 모델이지만

전문가들의 예측보다 좀 더 자동차의 개발 흐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어서, 그 수명을 연장시킬 가능성은 남아있다.

 

개발 흐름이 엿가락같다는 뜻은, 석유 자동차의 연료효율이 워낙 발달해서 상당한 수명연장효과를 보고 있는 동시에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는 간단히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들이 생각만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이브리드는 이제 연비경쟁만으로 이점을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전기모터의 믿어지지 않는 정숙성, 토요타의 기술력을 총집합시킨 높은 완성도 등으로 아직 세계적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프리우스가 처음 나왔을 때, 베터리 수명 다되면 교채비가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된 프리우스중 베터리 수명문제가 발생한 모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면

토요타라는 회사가 모든것을 걸고 개발한 녀석이라, 비와 감성에 젖으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횬다이의 대강대강 모델보다 신뢰도는 높을 듯.

 

 

 

이제 슬슬 자동차 담는것도 배가 불러오기 시작할 무렵이라서

담아내지 못한 녀석들에 조금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전시장의 모습을 한번 더 담아본다.

 

출구쪽으로 걸어가니 안내원이 '3층 갤러리에 작품 전시중이니 괜찮으시면 보고 가세요' 라고 권유한다.

이나가키 토시하루(稲垣利治)씨 의 키리에(切り絵) 작품전이 무료로 열리고 있었다.

사진촬영은 금지니, 뷰파인더로 지쳐있는 오른쪽 눈을 좀 쉬게 하면서 느긋하게 한바퀴 돌았다.

 

'키리에'라는 기법은 일본의 전통공예중 하나로, 한자 그대로 종이를 잘라서 만드는 예술활동.

이나가키씨는 자동차의 성지인 나고야에서 태어난 탓도 있는지, 전통공예를 세계의 명차와 접목시켜서

훌륭한 팝 아트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듣는 예술가라고 한다.

 

 

 

그림을 누르면 아마도 이나가키씨의 홈페이지인 PAPER'S GARAGE 로 이동할 듯?

실물로 전시된 저 작품들은, 그리거나 색칠한 게 아니라 각각의 색종이를 토대로 겹쳐붙여 만들어져 있다.

 

쉽게 말해서 유치원때 한번씩 해보는 스크래치 기법과 비슷하다.

검은색 종이 위에 빨간색 파란색 등의 종이를 오려덮어 만들어진 작품들.

 

실제 작품을 잘 살펴보면 종이끼리 살짝 떠 있기 때문에 묘한 입체감이 느껴진다.

특히 키리에의 특징인 강렬한 원색강조와 검정을 베이스로 한 명암의 표현이

금속 자동차가 광원에 반사되어 표현되는 강렬한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이게 굉장히 절묘한 밸런스를 지니고 있다.

 

신 시티 등의 미국 카툰을 연상캐 하는 느낌에, 색상마다 높낮이가 다른 오묘한 느낌은 실물 자동차 구경만큼이나 흥미롭다.

 

 

 

다행히도 갤러리까지 무료라 더더욱 1천엔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된다.

갤러리 맞은편에는 어른과 아이들 모두를 위한 조그만 도서관까지 운영되고 있어

전문 자동차 잡지와 함께 유아용 그림책 등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진짜 제대로 된 박물관이다.

 

본관을 모두 감상하고 다시 시작점의 토요타 AA형이 놓여진 1층으로 내려와 마지막으로 한장 담는다.

사전지식도 없었고, 오늘의 일정은 그냥 진짜 여행이 시작되기 전 여흥으로 즐기려던 것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알찬 구성에, 하루를 낭비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토요타의 고향인 나고야 시는, 조금만 둘러봐도 알겠지만 도시를 둘러다니는 자동차의 90%가 토요타 제품이다.

단지 토요타가 시작된 곳이라는 이유만이라면 조금 폐쇄적인 지역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역에 이런 박물관을,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에 건설하는 회사라면 나름대로 납득은 간다.

 

 

 

본관을 다 둘러봤으니 이젠 신관을 둘러볼 차례.

신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레스토랑도 있어서, 요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어느센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 일행이 늘어나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식당 밖에서도 들려온다. 아무래도 저기서 한끼 먹는건 소화가 잘 되지 않을것 같으니 패스.

 

신관 통로 앞에는 아이들의 그림이 주르륵 늘어서 있다. 아마도 박물관 견학후에 뭔가 만들어서 제출한 듯.

 

 

 

아이들의 비상한 창의력을 느낄만한 작품이 없나 좀 둘러본다.

이건 나름 시원한 컨셉. '렛츠 고 윈드'라는 제목의 이 자동차는 무려 바람의 힘으로 달린다!

그것도 자기 자동차 위에 달린 조그만 프로펠러를 파닥거려서 풍력발전으로 달린다.

친절하게스리 컬러 베리에이션까지 그려놨다. 남자라면 핑크고 여자라면 블랙이지.

 

핑크 모델에 프로펠러를 달아놓으니 뭔가 악마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렸으리라 생각한다.

 

 

 

슈퍼 드림카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붙여진 이 자동차는

몸이 불편한 사람도 쉽에 운전할 수 있게, 핼멧에서 뇌파를 받아 자동으로 운전하는 무시무시한 녀석.

초음파로 간격을 계산해서 사고도 나지 않는다. 윈도우에 필름이 붙여져 있어 사고가 났을 때도 파편이 튀지 않는다고.

 

뇌파조절이라는 신기술만 빼면 이미 탑재되어 있는 자동차가 많긴 한데, 그 한가지가 좀 오버테크놀로지스럽긴 하다.

 

 

 

KNK354REX 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자동차. 어디에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아서

사실 그림 내용보다 저 이름이 어디서 나온것인지가 더 궁금하긴 했다.

 

이 자동차는 '철'로 되어있어서 리사이클이 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어린이로세.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녀석 역시 프로펠러로 달리는 풍력자동차니까.

일본에서는 주정차시 엔진을 끄는 아이들링 오프가 중요한 환경보호행동으로 인식되는데 여기도 적혀있다.

 

특히 버스들은 한국사람들이 보기에 질릴 정도로, 3초 이상 정차하면 거의 무조건 엔진을 꺼버린다.

그렇게 켰다 껐다 하면 오히려 가스가 더 나오는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버스엔진에는 당연하게도 그런거 커버되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고.

 

 

 

노파심에서 설명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이 만든게 아니다.

마츠야마 타카시(まつやま たかし)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어디를 그린 것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사람 홈페이지에 가보니 카툰식 표현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 대체로 밝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작품을 주로 그리는 듯 하다.

 

존경하는사람이 토리야마 아키라라고 되어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나니 왠지모르게 그림의 방향성이 조금은 느껴진다고 할까.

 

 

 

신관으로 향하는 통로 역시 관객을 그냥 보내주진 않는다.

빈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비싸보이는 자동차 미니어쳐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뒤에는 휴식공간과 함께 이런 장난감들을 구매할 수 있는 샾이 마련되어 있다. 유혹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리얼리티를 중시한 모델도 있는 반면, 미니어쳐의 장점을 살린 파스텔풍의 모델도 인상깊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관심 없다가 여기 오고나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이들에게

이런 진열장은 부모에게 살짝 쓰라린 고통의 시간을 마련해줄지도 모른다.

 

 

 

자동차 매니아들이란 그 범위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는데

개중에는 이렇게 특수목적 차량에 환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좀 더 파고들어가면 소방차만 중점적으로, 엠뷸런스만 중점적으로 등등.

어디서 본 건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런 매니아들은 미니어쳐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엠뷸런스 소리만 들어도 그게 어떤 차종인지 알아차릴 정도였다.

 

 

 

신관 연결통로는 정갈함 그 자체인데, 일부러 블라인드를 몇개 걷어놓고 그 앞에 의자를 배치해 놓았다.

휴식하기도 좋을 뿐더러, 앞에 보이는 풍경의 설명사진까지 배치를 해 놓으니, 앉지 않아도 배려심에 기분이 좋아진다.

본관에서 자동차 구경하느라 지친 사람들은 여기서 좀 쉬고가면 좋을 듯.

 

밖을 보니 날씨가 상당히 좋긴 한데, 문제는 날씨가 너무 좋았는지 바깥의 수목들이 너무 많이 자라는 바람에

사진에 나와있는 풍경은 거의 나무가 가려버리고 있었다.

 

 

 

신관 입구쪽에는 조금 전 조그마한 미니어쳐와 달리 본격적인 콜렉터 지향인 듯한 모델들이 가지런지 놓여있다.

잘 자란 요크셔테리어 정도 크기의 꽤나 정교한 모형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쉽게 판매할 정도의 가벼운 금액은 아닌듯 하다.

 

 

 

세계의 명차라기보다는 토요타의 예전 기종들을 모아놓은 듯한 모습인데

조금 전 조그만 장난감들은 공간이 부족해서 실력발휘를 못했다고 자기주장을 하는 듯이

내부 시트에서부터 휠 세공까지 거의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조그만 장난감이 아이들을 위한 마녀의 과자집이었다면

이 녀석들은 왠지 지갑 두둑한 어른들의 정신줄을 잡아당기는 유혹의 손길이 아닌가 싶다.

 

본인도 남자이긴 한데, 남자는 시계와 자동차에 열광한다는 통념과 달리 그 둘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어서

이런 녀석들을 보고 하악하악거리는 심리를 완전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쨌는 눈돌아가는 사람이 많을거라는데는 충분히 공감.

 

 

2층 관람을 마치고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체험학습관으로 이동한다.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내가 굳이 둘러볼 필요는 없지만

나로서는 체감하기 힘든 '아이들의 눈높이를 어른들이 맞추는 방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카 크면 조금이라도 어른 행세를 해야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마을 여기저기서 큰일이 벌어졌을 때 자동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거대한 벽보.

노트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곳을 넘기면 상황에 맞는 자동차와 함께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그림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넘기도록 놔두고, 나에게 재미있었던 부분은 중앙의 색색글자로 쓰여진 곳이다.

'이럴 때 어떤 자동차가 활약하는걸까?' 라는 뜻인데, 활약이라는 한자를 '活やく' 라고 한자와 히라가나를 섞어서 사용한 부분이 센스있다.

한국에서도 아마 저 한자를 다 쓸수 있는 젊은이가 거의 없을 듯. '活躍' 중에 뒷글자는 아무래도 아이들이 읽기에 쉬운 녀석이 아니니까.

 

사실 뉴스에서도 상용한자에 들어가지 않는 어려운 한자가 포함된 단어는 히라가나와 병기하기도 한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活약'이라고 사용하는거나 마찬가지라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한테는 좋은 배려가 되겠지만.

 

 

 

빈티지 자동차라고 해 봤자 아이들에게는 거기서 거기일테니, 이곳에서는 각종 현장에서 활약중인 자동차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쿠보타 트랙터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것으로 안다. 이거 한대만 있으면 수확철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국서나 일본서나 이런 것들은 꽤나 비싼 편이고

한국의 농협 역할을 하는 JA 역시 한국에서와 비슷하게 일본 농민들에게 별로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다.

작은 면 단위나 이웃 농가 몇몇이 돈을 모아서 계절별로 기계를 JA 에게 대여받아 공동사용하곤 하는데, 대여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

 

 

 

각종 특수차량들에 맞는 제복을 아이들이 시착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진짜 제복은 아니고 그냥 옷 위에 수술복처럼 걸칠 수 있는 녀석.

 

자동차 박물관이란게 상당히 어른을 위한 장소이긴 한데,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코너를 착실히 마련해 놓는다.

나갈때쯤 수많은 자동차 장난감들이 포진해 있는것 역시 아이들을 위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착실함을 나타낸다.

 

 

 

외국인에게는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만큼 신기한 일본의 택시.

앞문은 수동이고 뒷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것도 신기하고

옆으로 누워서 데굴데굴 굴러가도 도착할만한 거리에도 놀랄만큼 쑥쑥 메터기의 금액이 올라가는 것도 신기하다.

 

일본의 택시는 사이드 미러가 차체 앞에 부착되어 있는데, 보기엔 볼품없지만 시야가 굉장히 넓어져 사고의 위험이 줄어든다.

숨은그림찾기는 아니지만 저기 택시의 사이드미러를 한번 찾아보길. 외관보다 안전을 중요시하는건, 손님을 태우는 택시의 미덕이다.

 

 

 

1898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동력자전거. 오토바이와 자전거와 자동차의 정중앙에 위치한 녀석이다.

작은 엔진과 체인으로 움직였으며, 페달 역시 달려있어서 인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연료통 위에 살짝 놓여진 조그만 가방이 인상적이다.

카울과 프레임이 얹혀지기 전의 가장 순수한 동력 이동수단에

세월 흐른 가죽 가방의 향수가 더해지니, 기술이란게 이렇게 발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지금도 타고 다닐만한 녀석인데, 한국선 몰라도 일본에서는 이런 거 불법이다.

 

예전에 일본서도 가솔린을 이용한 동력자전거가 사용되었는데, 개조 조금만 하면 60km 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위험함 때문에 금지되었고, 지금은 전동자전거 역시 사람의 힘이 몇% 정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다.

 

 

 

3층에 올라가기 전에 조그만 암실이 눈에 들어온다.

르네 라리끄의 카 마스코트 전시실이라고 한다. 누군가 싶었는데 1920년부터 유명 자동차들의 마스코트를 제작한 유명한 디자이너라고.

 

 

 

자동차 마스코트로도 유명하지만 원래 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스탈 조각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미술이나 공예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들어봤을 법 하다.

 

지금도 기싸움을 벌리고는 있지만 자동차의 마스코트는 결코 싸구려 장식이 아니다.

롤스 로이스의 마스코트 '환희의 여신상'은 그거 한개만 6천만원이 넘는다. 백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때문인지 웃기게도 마스코트를 차체에 집어넣는 기능마저 있다고.

 

 

 

크리스탈의 영롱함을 드러내기 위해 실내는 매우 어두운 가운데 정확히 조각상에만 빛이 집중되어 있다.

카메라로 담기 쉬운편은 아니지만, 가공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감각에 있어서도 르네 라리끄라는 사람은 범인이 아닌듯.

 

 

 

그가 디자인한 자동차 마스코트는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자동차란 자신들의 역사와도 같은 것이라, 메이커들은 마스코트를 한번 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때문에 결코 쉽게쉽게 제작하지 않는데, 그런 마스코트를 29 종류나 의뢰받아 제작한 르네 라리끄는 장인의 대열에 들어가기게 부족함이 없다.

 

여담으로, 날개모양을 한 벤틀리의 마스코트는 무단도용 방지를 위해 양 쪽의 날개 갯수가 한개 차이나게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제네시스 엠블렘이 벤틀리를 완전히 베낀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하게도 양 쪽의 날개 갯수는 같다.

 

 

 

여기 전시된 르네의 작품들은 자동차 마스코트는 아니지만 그가 즐겨 제작했던 동물 조각들이고

사실 마스코트의 많은 부분은 동물들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동물은 기원전부터 상징성을 나타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으니.

 

 

 

2층 관람을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간다.

똑같은 U 자 구조고, 자동차는 2층보다 더 빡빡하게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몸으로 느끼는 밀도는 2층보다 낮다고 느껴진다.

 

왜냐하면 2층은 전 세계를 주름잡은 빈티지 자동차들의 집합소였지만

3층은 어찌됐든 일본의 자동차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기 때문. 일본인이라면 감회가 새롭겠지만 나로서는 좀 김이 빠진다.

 

일단 어지간한 녀석은 다 카메라에 담아오긴 했지만, 왠지 2층과 달리 그녀석들은 전부 소개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귀엽고 인상적이었던 이 녀석은 토요탸 최초의 소형차 토요펫 SA 모델.

소형차 브랜드를 위한 이름을 공모해서 선택된 것이 TOYOPET 이라고 한다. 좋은 센스다.

 

 

 

앞선 SA 모델보다 훨씬 중후하게 만들어진 이 녀석 역시 토요펫 라인이다.

애완동물이 갑자기 늙어버렸나 싶었는데, 당시 소형차의 기준이 1000cc 에서 1500cc 로 바뀜에 따라 제작된 녀석이라고.

물론 성능이 그만큼 좋아져서 주로 택시기사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뭔가 덕지덕지 붙은 이 녀석도 토요펫 크라운 RSD.

1957년 일본 자동차로서는 최초로 오스트레일리아 랠리에 참가해 47위를 기록한 모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랠리는 19일간 14000km 를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랠리 경주.

 

랠리 경주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한번 찾아보길. 본인이 예전에 경험했던 사하라 사막 마라톤의 자동차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이 랠리는, 완주만 달성해도 그 자동차의 기술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원래는 이런 녀석. 붉은색도 꽤나 잘 어울린다.

 

 

 

토요펫 코로나 RT40 모델. 적혀있듯이 1964년 제작된 녀석이다.

이 모델을 기점으로 토요타 자동차의 기술력이 세계의 메이커와 대등해졌다고 평가를 한다.

일본은 당시 고속도로 건설 붐이었기 때문에, 막 건설된 고속도로에서 10만km 를 연속으로 달려 성공적인 이미지 전략을 달성했다고.

 

 

 

3층엔 토요타뿐만 아니라 일본의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의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와는 달리 3륜차에 중점을 두고 실용성을 강조한 메이커들이 많았다.

 

지금도 다이하츠 중공의 자동차들은 작고 튼튼한 직사각형 모양의 자동차를 중점적으로 생각중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녀석은 후지 자동차에서 제작된 후지캐빈 5A 형 모델.

원래 오토바이 엔진을 만들던 회사였던 후지자동차에서, 극도의 저가격과 실용성을 무기로 내세워 출시했던 녀석이다.

 

디자인만큼은 귀엽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절륜함을 자랑하지만 무게를 위해 프레임을 FRP로 만들어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유리 섬유 플라스틱인 FRP는, 지금에서야 기술력이 좋아져서 항공기의 부품에도 쓰이지만, 당시의 FRP는 자동차 차제로 쓰기엔 역부족.

 

거기다 원래 오토바이용 125cc 엔진을 장착했고, 와이퍼를 운전자가 손을 내밀어 수동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끝내주는 아날로그 삼륜차였다.

결국 모양외에는 별다른 장점도 없이 딱 85대만 생산되고 바로 단종되어버린 모델. 그래도 시도면에선 칭찬을 줘도 되지 않을까.

 

 

 

프린스 자동차공업이 1964년 발표한 고급형 세단 글로리아 수퍼6 모델.

현재 일본 내에서 토요타와 거의 대등하게 맞상대를 할 수 있는 닛산자동차의 전신이다.

이 당시부터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의 기술력이 점차 상향평준화 되어간다.

 

 

 

당시 일본은 놀랄 정도의 고도성장기였고, 자동차의 수요 역시 폭발적이었다.

넘치는 연구자금과, 끊임없는 해외 자동차의 연구 등을 통하면서 점점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시기가 1960~70년대.

 

사실 당시까지 토요타는 세계 시장에서 별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고, 저렴한 가격에 쓸만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70년을 넘어가며 오일쇼크가 터지자, 작고 연비좋은데다가 잔고장 일으키지 않는 미니멀리즘 공돌이의 자동차가 대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에 토요타의 이름을 각인시키게 된다. 사실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70년대 자동차들이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

 

 

 

1964년 혼다가 개발한 최초의 자동차 S500.

혼다는 이전부터 오토바이 제작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자동차 시장에 뛰어드는건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출시한 이 모델의 엔진은, 연륜넘치는 메이커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굉장히 정교하고 고성능이었다고.

 

아주 작은 자체에 배기량도 그리 높지 않은 소소한 모델이지만, 엔진 기술을 자동차에 접합시키는데는 성공적인 한 걸음이었다.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세계적으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지고 나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기 서양의 자동차 시장처럼 재기넘치는 도전정신보다는, 어디까지나 실용성을 우선으로 한 '튀지 않는' 모델이 많았다.

 

색깔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동양권에서는 어찌됐든 무난한 디자인이 유행했던 듯.

 

 

 

하지만 물론 스포츠카나 레이싱용 모델은 여전히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던 군중들의 심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서, 스포츠카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저연비를 실현한 토요타 스포츠 800 UP15형.

 

일본에서는 아직도 가끔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이 정도로 상태가 좋지는 않고 그냥 빈티지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본인도 솔직히 상태만 좋다면 몰고싶은 자동차 1순위기이도 하다. 일본서 이녀석이 달리는 모습을 봤는데

혼자나 둘이서 타기엔 이만큼 적당한 녀석도 없다는 느낌. 요즘 한국의 한 덩치하는 자동차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점을 전부 해결한 녀석이다.

힘은 요즘 것들에 비해 약해도, 스포츠카 디자인의 극히 몰기 편한 소형차가 연비는 또 죽여주게 좋으니까.

 

 

 

코로나 마크2 모델. 나이 조금 지긋한 일본인들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자동차다.

한국에서는 소나 탄다는 그 모델보다 조금 더 윗급이라고 할까.

 

원래 토요타 브랜드 중에서 코로나가 중급, 크라운이 상급기종이었는데

크라운을 탈 여력은 안되지만 코로나보다는 괜찮은 녀석을 타고 싶다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샌드위치 모델.

이게 소비자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바람에 한달에 2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확실히 비싼 녀석은 겉으로 느껴지는게 다르긴 하다. 이게 인격이나 인생의 성공척도로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태엔 좀 한숨이 나오지만.

토요타에서 작정하고 야심차게 제작한 최초의 프레스티지형 승용차 센츄리 모델이다.

 

프레스티지형이란 제작사의 기함급 모델을 말하지만, 브랜드 중에는 기함급이라도 프레스티지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내노라하는 명차의 대열에 대항할 수 있는 급수를 나타내는 모델이기도 하다.

 

 

 

센츄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평범하게 생각하면 나오는 그 이유가 맞았다.

자동차 회사는 아니었지만, 방직공장 창립자인 토요다 사키치(豊田佐吉)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녀석.

 

이 토요타라는 회사 이름은 사실 미묘한 부분에서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원래 '豊田'라는 한자는 토요다 라고 읽는다. 창립자의 가문인 토요다 가문 역시 그렇게 읽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를 창립할 때는 '토요타'라고 읽었다.

서양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토요타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발음이 서양인들에게 더 익숙하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이 때문에 토요타라는 회사가 원래는 토요다였는데 이름을 바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회사는 처음부터 토요타였다. 한자의 음독과는 다른 독자적인 단어. 실제로 토요타의 사명도 한자가 아니라 'トヨタ'라고 쓴다.

 

더욱 헷갈리는 것은, 원래 회사가 위치했던 코로모(拳母)시가 토요타시로 개명되었는데

이 토요타시는 한자를 "豊田'로 쓰지만 발음은 회사와 같이 토요타로 읽는다. 사람의 성씨가 아니라 회사 이름으로 개명된 경우기 때문에.

일본인들중에도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은데, 아마 이대로 가다간 '豊田'라는 한자의 음독 자체가 토요타로 바뀌어 버리는게 아닐런지.

 

 

보통 본인에게 있어서 자동차 하면 단순한 이동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데

이 녀석만큼은 내 감성을 자극하는 감성적 소재로서 자리잡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체 컷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듯.

 

 

 

이 모델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비현실적인 테일핀. 전투기의 뒷부분을 참고로 해서 만들었다고.

자동차라는 기계의 실용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찌보면 솟아있는 테일핀 만큼 허무한 꿈과 같은 장식이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정체성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이미지가 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가 즐겨 탔다는 이 녀석은, 그야말로 당시 미국 문화의 상징이었고

시대가 바뀌고 난 후엔, 그땐 그랬지라는 조금은 자조섞인 향수에도 더없이 어울리는 녀석.

 

사실 이녀석과 기종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에서도 끔찍할 정도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나오기도 했다.

자동차 한대가 이렇게 문화적 아이덴티티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녀석은 아마 전세계를 통틀어서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름을 말할 것까지 있을까 싶은데, 일단 이녀석은 캐딜락의 엘도라도.

그중에서 테일핀이 가장 높았던 1959년형 비아리츠 모델이다. 엘도라도는 다양한 버전과 다양한 색깔이 나왔었지만

아마 엘도라도 하면 이 핑크를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거라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 한두 번쯤은 접할 기회가 있을 모델인데

워낙 길쭉한 자체를 하고 있어서, 조금이지만 'Blur' Song 2 앨범 자켓을 흉내내서 사진을 담아본다.

좀 더 비슷하게 흉내내려면 16mm 정도의 광각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찍어야 하는데, 여기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고.

 

 

 

앨범 자켓은 워낙 유명하지만, 혹시 궁금한 사람들은 한번 검색해 보시길.

타카키 마사오의 즐거운 한때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포스터가 이 앨범의 자켓과 매우 닮아있기도 하다.

 

 

 

50년이 넘은 아직도 미국에서는 이 핑크색 엘도라도가 변치않는 로망의 일종으로 인식되어있다.

 

아마 이 박물관에 없진 않겠지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깨끗한 보존상태의, 그것도 엘도라도 비아리츠 모델이, 그것도 핑크로 내 눈앞에 나타나자

토요타가 뭘 좀 알긴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거진 15분 동안 엘도라도 주위를 빙글빙글 거리다가 어쨌든 다시 전진한다.

여전히 시리즈가 이어져 내려오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300SL 쿠페 모델.

원래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녀석을 상용화해서, 지금도 스포츠카의 대표주자로 활약중이다.

 

독일인의 특성일런지, 1955년 발매된 이 녀석에게서도 여전히 2013년형 모델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오리지날의 느낌을 해하지 않으며 어떻게든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각 대륙을 대표하는 공돌이 집단 독일과 일본의 닮은꼴이랄까.

 

 

 

이곳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으면

조금씩이나마 그 당시의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던가, 추구하고자 하던 방향을 살짝 느낄 수 있는데

가끔 그 흐름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묘한 녀석들이 중간중간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 전환에 일조하고 있다.

 

 

 

 

터커라는 미국 회사가 만들어 낸 '48 모델. 물론 1948년 제작된 녀석이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운전자 안전 대책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고

미려한 디자인과 뛰어난 성능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모델인데

 

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법적인 트러블에 휘말리다가 결국 단 51대만 생산된 체로 회사가 도산하고 말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아메리카 드림의 단면을 보여주는 비운의 모델. 그런데 그 중 한대가 여기 놓여있다니.

 

 

 

특이한 외모로 치자면 이녀석도 빠지지 않는다.

얼핏 봐도 어디에 쓰이는 자동차인지 살짝 감이 오지 않는가.

 

이제껏 본 빈티지 자동차 중 가장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깃발 꽂혀있는 것도 그렇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알아서 중후함을 표현해 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전용차 팩커드 트웰브 라는 모델. 의전용이다 보니 가격따위 생각않고 때려부었다는 느낌이 곳곳에 묻어난다.

 

 

 

성능이야 말할것도 없이 당대 최고였고, 장갑차를 방불캐하는 자체 강성과 방탄유리는 왠만한 자동소총의 총격에도 꿈쩍하지 않을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이런 자동차에 타고 있어도 꽤나 빈번히 일어났었다.

 

 

 

롤스 로이스의 펜텀 3 모델.

 

1937년에 제작된 녀석으로 항공기 개발의 노하우를 살린 직렬 12기통 엔진의 성능이 대단했다고 한다.

롤스 로이스는 정숙성을 자랑하기 위해 자사의 플래그쉽에 고스트나 팬텀 등의 유령 이름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이녀석도 부티가 줄줄 흐르긴 하지만, 예전 포스팅에 나왔던 실버 고스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상대적으로 그냥 그렇다.

 

 

 

이것 또한 참 어느 별에서 출장온 녀석인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별난 디자인이다.

2013형 자동차라고 한들 어느 누가 촌스럽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인지.

 

물론 1934년 발매 당시에도 '미래의 자동차'라는 별명으로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쓰여진대로 코드라는 회사에서 출시한 프론트 드라이브 812 모델.

코드라는 회사는 원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초기 미국 자동차 메이커인 어번사가

당시 세일즈의 귀재라고 불리던 E.L 코드를 영입하면서 새롭게 출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차는 팔린다'는 모토아래 제작된 코드의 자동차들은 그 혁신성과 미래적인 디자인 덕분에 단숨에 맹위를 떨쳤고

수년 후 독일의 천재 엔지니어 듀센버그 형제가 창립한 회사를 인수하며 최고급 자동차 계열에도 손을 뻗었다. 그 듀센버그 자동차도 좀 있다 나온다.

 

프론트 엔진, 강렬한 라디에이터 그릴, 수납형 헤드램프 등등 정말 미래에서 온 차가 아닐까 싶은 녀석이었는데

불행히도 불경기에 진입하기 시작한 미국 서비층의 경제적 여력에 비해 너무나도 비쌌기 때문에

810, 812 단 두개의 모델만을 출시한 채 코드 자동차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시대의 조류란 너무 앞서나가도 곤란한 듯. 그런 사례는 아마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500K 모델. 블랙과 레드를 강렬하게 조합했다는 의미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1935년 제작되었지만, 당시 레이싱 자동차들마저 부러워할 최고시속 160km 의 고성능과

최고급 내외장재로 떡칠을 해서 상류층을 대표하는 장난감으로 시대를 풍미한 모델.

 

 

 

이곳 박물관에서는 위에 덮개를 씌워놔서 좀 더 고풍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덮개를 내린 상태의 모습은 굉장히 날렵하고 젊은 느낌이다. 당시에도 여성층이 많이 선호했다는 듯.

 

빈티지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모델이라서 아직도 세계 자동차 전시회에서 종종 등장한다.

 

 

 

비록 배색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녀석은 한 눈에 봐도 귀족적인 향기가 물씬 풍긴다.

좀 전에 언급했던 코드 사가 인수했던 메이커, 듀센버그의 모델 J.

 

독일에서 이민온 듀센버그 형제는 뛰어난 제작기술로 여러 레이싱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20대의 젊은 공돌이 형제는 기술개발엔 천재적이었지만 경영쪽에는 문외한이라서,

자금난에 시달리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코드 자동차의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은 코드 덕분에 듀센버그 형제는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쳐, 자동차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1929년 출시된 모델 J 는, 6800CC 265마력, 186km 최고속력을 자랑하는 꿈의 럭셔리 자동차였다.

 

당시엔 현재까지 이름을 날리고 있는 최고급 브랜드들보다 더욱 인기가 있었던 모델로

헐리우스 스타들의 두 가지 꿈이 오스카 상과 듀센버그 J 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렸던 시대였다.

 

당시 2만달러라는, 폭력적일정도의 고가 자동차였지만 발매 후 몇년간은 없어서 못팔 정도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 대공황 속에서 이 정도 자동차를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듀센버그 모델은 총합 1000대를 넘기지 못하고 그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듀센버그 형제는 여러번 재기를 노렸으나 빈번히 실패하고, 제국이라 불리던 코드 자동차도 몰락해버려서

결국 듀센버그는 1930년대 세계 최고의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추억으로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현재 360대 정도가 남아있는데, 미국 미시간 주에 위치한 어번 코드 듀센버그 박물관이 여전히 매니아들을 맞이하고 있다고.

 

 

 

사진으로는 잘 전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곳 박물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몇가지 자동차 중 하나다.

애초에 워낙 환상으로 남은 모델이라, 이 녀석만 대접이 좀 다르다. 옆에 계단이 설치되어 위에서도 구경할 수 있다.

 

 

 

드디어 길고 긴 외국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끝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 3층에 토요타 빈티지 자동차 전시관이 같은 규모로 위치해 있고

신관쪽엔 가보지도 않았으니, 오늘 하루 아주 원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겠구나 싶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지겨워 질 만큼 체력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매번 눈을 놀라게 만드는 자동차들이 즐비해 있어서

무거운 숄더백이 그렇게까지 발목을 잡고 있지 않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발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할 필요는 있을 듯 하다.

 

외국 빈티지 중에서 마지막으로 파인더에 담은 이 녀석은 벨기에의 미네르바라는 메이커에서 1925년 제작한 30CV 타입 AC.

앞서 소개한 듀센버그 모델이 출시되기 전까지 전세계 왕족들과 대부호들이 즐겨 사용한 당대 최고의 럭셔리 모델이다.

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바로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는 것을 의미했다고. 요즘의 한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역시 섬세한 조각의 여신상 마스코트와 미려한 곡선으로 빛나는 라디에이터부.

저 당시에 저런 디자인을 만들려면 대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촛점이 잘 맞지 않을 정도로 셔터를 눌러대고

2층 빈티지들을 점령했다는 묘한 만족감에 한숨을 쉬며 굳었던 어깨를 풀어본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아이들을 위한 조그만 체험 전시관이 있어서 숨도 돌릴 겸 들어가 보기로 한다.

 

 

박물관 내부는 U 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곡선구간에는 자동차 전시 대신 각종 연표와 악세사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토요타 박물관이니 토요타 자동차의 연표가 간단히 나와있는데

출발은 서양보다 늦었지만 무서운 추격으로 현재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회사로 성장한 걸 보면

저 연표가 아직은 조금 더 길어질 여지가 남아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자동차에는 어지간히도 관심이 없어서, 자기가 사고 싶은 자동차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도 없다.

차 살때가 되어서 들뜨고 고민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스펙과 가격을 비교하는 젊은이들에게

토요타는 어느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것일지.

 

 

 

별의 별걸 다 전시해 놓는다. 옛날 자동차들의 스피드 메터기를 떼어다가 전시중이다.

요즘에도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해 저런 모습으로 튜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걸 보면

자동차가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긴 해도 여전히 인간미를 갈구하게 되는 존재인 걸까.

 

 

 

유명 메이커들의 엠블렘을 전시중이다. 이건 주머니에 넣고 가져가기도 쉬운 녀석들이라

한 장의 유리가 관람객 사이에 놓여있다. 덕분에 본인 카메라도 오랜만에 자태를 뽐낼 수 있었다. 사실 한장 위의 사진에도 나와있다.

 

빈티지 엠블렘이다보니 다들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런 녀석들만은 도난 방지를 위해 칸막이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듯.

자동차 매니아를 제외한다면, 이 녀석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초기 엠블렘들이라

동양인들에게는 좀 멀리 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2층 전시관의 나머지 한 쪽이다. 날 찍어달라는 듯한 녀석들이 끝도없이 포진해 있다.

차는 많고 구도 잡을 공간은 협소해서 24mm 광각렌즈를 주로 사용하고는 있지만

왜곡을 즐기다가 조금 싫증날 때도 있고 하니, 가끔씩 50mm 렌즈로 촬영도 한다.

 

50mm 렌즈는 40년 전쯤 생산된 늙은 녀석이라 보이는 대로 결과물을 담아주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카메라를 통해서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주니 나쁘지 않다.

 

 

 

아직 3층에 이만큼의 자동차가 더 전시되어 있고, 이곳 말고 신관건물이 또 하나 더 있는데

이러다가 사진 찍다 내가 먼저 지쳐버리는게 아닐까 싶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말로 자주 오기 힘든 곳이니 덧없는 사명감에 불타서 오늘 베터리 한번 확 죽여보자 하며 이리저리 서성인다.

 

 

 

'프랑스의 포드가 되고싶다'는 모토로 제작된 시트로엥의 1924년작 5CV 타입 C3 모델이다.

여러 부분에서 간소화에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디자인성을 깎아먹지 않은 듯한 느낌.

 

개인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차를 참 마음에 들어한다. 특히 저 노란색.

요즘 자동차들은 노란색 칠하면 뭔가 촌티나는데, 이런 녀석들은 노란색이 정말 잘 어울린다.

 

 

 

꽤나 기품넘치는 이 녀석은 쉐보레 컨페더레이터 시리즈 BA 모델이다.

이름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매우 많겠지만 쉐보레는 미국 회사. 1910년부터 GM 소유였다.

공동 창립자인 루이 쉐보레는 장사 다 망하고 인생 말아먹었다는데, 아직 그 이름을 딴 회사는 남아있으니 아이러니.

 

 

 

여러가지로 원가 절감을 한 나름 대중을 위한 자동차였는데

디자인 여기저기서 캐딜락의 이미지를 가져왔기 때문에 '베이비 캐딜락'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이 모델이 발매된 1932년엔 캐딜락 역시 GM에 인수되어 있었기에, 이런 자회사 카피품도 가능했던 것.

 

 

 

베이비 캐딜락의 바로 옆에 전시된 포드의 1934년작 모델 40.

포드와 GM 은 자동차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100년이 넘은 앙숙이자 라이벌이니

박물관에서 일부러 이렇게 두 모델을 붙여놓은 듯 하다. 쉐보레 모델에 대항해 8기통 엔진을 장착한 녀석.

 

재미있는건, 캐딜락은 원래 1902년 포드에서 갈라져 나온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브랜드였다는 사실.

이걸 1909년 GM이 인수해 버려서, 포드로서는 참 기구한 인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자동차계에서도 막장드라마는 일어난다.

 

 

 

1934년 발매된 쉐보레 마스터 시리즈 DA 모델.

쉐보레 모델중 고급기종으로, 현대형 자동차의 원형이 되는 요소들을 몇군데 가지고 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여기서 살짝 눈치챘을 수도 있겠는데, 사실 이 녀석이 지난 번 포스팅에서 나왔던 토요타 최초의 승용차 AA형의 아버지격인 존재다.

 

다시 지난 포스팅으로 돌아가서 보게 된다면 꽤나 닮아있다는걸 느낄 수도 있을 듯.

물론 토요타로서는 최초로 제작한 자동차이다 보니, 한창 물오른 쉐보레의 기술력과 비교하기는 어려웠고

실상 성능은 이쪽이 훨씬 좋았다고.

 

 

 

달콤한 색깔에 엽기적인 앞모습의 이 녀석은, 미적 기준은 둘째치고 임팩트가 강하다는 것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듯.

1934년 미국의 '데 소토'라는 메이커에서 출시한 에어플로우 시리즈 SE 모델이다. 물론 지금엔 들어볼 수 없는 브랜드.

 

거의 모든 면에서 당시 대중들의 허용인식수준을 뛰어넘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모델이라고 한다.

결국 그닥 인기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이 모델이 가진 특징들은 다른 거대 메이커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고.

역사라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 하다.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몇 사람의 천재가 흘리고 간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형국이니까.

 

 

 

1938년 독일에서 생산된 폭스바겐 38 프로토 타입.

재질이나 디자인에서 서민용 자동차라는 느낌이 들었다면 아마 개발자의 의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히틀러가 고안했던 국민차였으니까. 이 모델은 오리지날이 아니라 레플리카다.

 

 

 

스페인의 이스파노-스이자 브랜드가 개발한 알퐁소 13세라는 모델.

1912년 제작되었고, 세계 최초의 스포츠카로 알려져 있다. 모델명은 국왕 알퐁소 13세에게 왕비가 선물로 줬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듯.

 

 

 

자동차가 전부 1:1 크기라는걸 생각해 보면, 이 박물관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처럼 거대한 DSLR 들고 다니는 사람 외엔 다들 휴대폰 카메라로 잘만 찍으며 나를 앞서간다.

 

덜 쪽팔리게도 나보다 더한 모델과 어마어마한 대구경 렌즈를 사이좋게 나눠 들고다니는 노부부 일행도 있어서

그닥 시선 신경쓰지 않고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 노부부는 캐논의 1D 시리즈와 백통을 들고 있었는데

70은 넘어보이는 분들이 무슨 직종에 종사하는건지, 단순한 취미로 그러는 것인지... 자동차의 역사만큼이나 궁금한 부분이기도 했다.

 

 

 

친구 강군이 좋아하는 정열의 붉은색으로 떡칠되어 있는 멋진 모델, 대인기 브랜드 알파 로메오의 6C 1750 그란 스포르토.

여기까지 오니 문외한인 본인도 조금씩 경험치가 쌓이는 듯, 이 녀석 역시 레이싱용으로 개발된 스포츠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다.

 

서양은 1930년에 이런 녀석들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 1936년에 첫 발을 내딛은 토요타 역시 처음엔 좌절의 연속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거보다 더욱 열악했던 한국도 지금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자동차들을 뽑아내고 있으니, 후발 주자의 노력은 아름다운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횬다이 따위를 좋아할 일은 없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것 또한 참 마초적인 디자인으로 내 눈길을 끈다.  레이싱용으로 개발되었음에 틀림없지만 이런 디자인 마음에 든다.

생긴건 좀 투박해 보여도 이 녀석이 세계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산맥 벤틀리의 4 1/2 모델이다.

 

 

 

현재 롤스 로이스와 함께 최고급 브랜드를 양분하고 있는 벤틀리는, 롤스 로이스의 귀족주의 경영철학과 달리

최고의 성능을 내는 자동차를 우선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스포츠성이 중시되는 브랜드라고 한다.

 

롤스 로이스가 최소 30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만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과 달리

벤틀리의 최고 모델은 현존 차량중 가장 마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지만 지향점은 좀 다르다.

 

 

 

고급차니 뭐니의 문제가 아니고, 이 모델의 디자인에서는 정말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수가 없다.

앞모습을 지긋히 바라보고 있으니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어느 꼬마자동차가 생각난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메이커 오스틴 힐리의 스프라이트라는 모델.

 

 

 

미려한 디자인과 달리 미니멀한 구성에 '오토바이 창고에도 처박아 놓을 수 있는 자동차'라는 모토를 달고 태어난

저가형 스포츠카였지만, 사실 성능면에서는 타 모델에 뒤쳐지지 않는 준수한 모습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배기량 950cc 에 43마력 정도의 아담한 녀석이지만, 지금도 이 녀석이 저가형으로 나온다면

사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되는 자동차로서 기억에 남을 수 있을텐데.

 

여담으로, 영국에서는 이 녀석을 '개구리 눈' 이라고 불렀고, 일본에서는 '게 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 박물관을 구경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빼앗을 수 밖에 없는 최고의 볼거리 몇 가지중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을 법한 디자인에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게 된다.

 

 

 

영화 소품으로 쓰인 녀석을 가지고 온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 녀석은 엄연한 시판 승용차.

1939년 프랑스의 '들라주'라는 메이커에서 출시된 타입 D8-120 이라는 녀석이다.

 

들라주는 1905년 루이 들라주가 시작한 회사로, 처음엔 자체 프레임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지만

자체 엔진도 제작하게 되고, 레이스에서 잇달아 우승하게 되자 점차 고급형 자동차 제작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전시된 모델은 D8-120 중에서도 당시 프랑스 최고의 자체 제작사인 피고니&팔라쉬 사에서 제작한 모델로

이 정도쯤 되면 이미 이건 자동차라기 보단, 엔진을 단 예술품이라 부르는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영롱한 코발트블루가 자체를 감싸고, 유선형의 극치를 달리는 디자인은 시동걸기조차 아까워지게 만드는데

사실 자동차 본연의 용도 역시 외형에 걸맞는 수준이었다. 4750cc 배기량에 115마력의 엔진은 당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이 녀석은 왠지 한참을 빙글빙글 돌아보며 감상하며 셔터를 눌러도 지겨워지지 않았는데

그게 바로 메이커의 명성이나 쌓아올린 지식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디자인의 매력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현대에도 이런 자동차가 실존하길 바라는 것은, 이미 현대 디자인에 익숙해 진 반동으로 인한 산물인 걸까.

 

100년 전의 사람들에게 현대의 럭셔리 자동차와 이 녀석을 나란히 세워놓고 어느 쪽이 더 멋지냐고 물어본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 것인가. 확인할 수 없는 영원한 궁금증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