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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6.05  엄니와 함께 - 귀국 12
  2. 2014.05.31  엄니와 함께 - 쿄토 키요미즈데라 10
  3. 2014.05.21  엄니와 함께 - 쿄토 금각사 / 은각사 16
  4. 2014.05.17  엄니와 함께 -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2/2) 8
  5. 2014.03.31  엄니와 함께 -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 (1/2) 14
  6. 2013.08.28  과거로의 여행 - 리틀 쿄토 7

 

엄니와 함께 한 여행 마지막 날입니다.

오사카 옆의 칸사이 국제공항을 통해 돌아가야 하는데 엄니와 저는 쿄토에 있네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버스 타고 바로 공항으로 갈 수 있어서 문제는 없습니다.

 

날씨도 춥고 마지막 날이고 해서 택시 하나 잡아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나이 지긋한 기사분이 한국 택시처럼 갑자기 저한테 말을 걸더군요.

쿄토가 문화제 지정 때문에 도로를 제대로 확충하질 못했다는 시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아무래도 외국 관광객으로는 보이지 않았나 보네요. 다짜고짜 말을 거는 것을 보면.

 

버스 정류장 앞은 왠지 좀 낡은 느낌인데, 앞의 호텔 역시 꽤나 예전에 지어진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예약도 다 되고 해서 근처 까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시키고 시간을 기다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웠던 탓에 밖에서 기다리기엔 엄니가 힘들어하실 것 같더군요.

 

 

 

버스는 굉장히 얌전하게 달려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엄니께서는 버스가 소음없고 차분하게 달리는게 참 인상적이라고 하시네요.

한국 대학원에 강의하러 오신 일본인 교수님하고 이야기 할 때도

한국 버스 처음 타보고 문화컬처(?)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아주 크게 맞장구를 치시더군요.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할 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한국의 특징중 하나로 버스를 들 수 있습니다.

거의 88열차를 타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고 미리 경고를 합니다.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 넓은 칸사이 공항을 즐기기는 힘듭니다.

이미 항공사 노선이 빡빡한 공항이라서, 후발주자인 저가항공사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제 2 터미널을 이용해야 하거든요.

 

 

 

그래도 나가기 전에 칸사이 공항 이곳저곳 찍어보고 갑니다.

제 2 터미널은 정말 조그마한 곳이라 딱히 즐길 게 없습니다.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그래도 어쨌든 늦는 것보다는 빠른 게 낫다는 신념 아래 일찌감치 제 2 터미널로 향합니다.

 

 

 

칸사이 공항은 인공 섬 위에 조성한 녀석이라서 넓직넓직한 구조가 인상적이더군요.

물론 인천공항에 비하면 많이 작은 느낌이지만 의외로 구경할 거리는 많습니다.

 

 

 

혹시 벼락부자라도 된다면 인천공항 VIP 라운지도 이용해 보고, 공항 호텔에서 미리 1박 하거나 하는 사치도 누려볼지 모르겠네요.

여행 첫날과 마지막 날은 항상 공항 들락날락 하는게 지쳐서 왠지 손해보는 느낌이 드니까 말입니다.

 

일본은 몇몇 공항이 꽤나 볼만한 것들이 많은 편이라 제대로 시간 잡고 돌아봐도 괜찮습니다.

 

 

 

제 2 터미널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걷는것만 20분은 넘게 걸리고, 버스를 타고 가도 약 10분은 걸리는 편이니

혹시 공항끼리 연결이라고 쉽게 생각하며 시간을 너무 지채하는 경우는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니 엄니도 왜 이렇게 머냐고 한탄하시더군요. 저가항공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십여만원 더 내고 가까운 터미널을 이용해 봤자 돈만 아까울 뿐이니.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나 그렇지, 먼 곳을 가려면 저가항공보다 제대로 된 항공이 훨씬 낫습니다.

좌석 편의성이나 음식 나오는 것 등등 저가항공 비행기 안에서 4~5시간 이상 보내면 몸이 이상해 질 정도니까 말이죠.

 

 

 

제 2 터미널에 도착하니 거진 대부분이 한국인 관광객들이더군요. 피치항공이 오사카와 한국을 왕복하다 보니.

 

아주 자그마한 면세점 비스무리한 곳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매우 황량한 곳이라 별로 볼 건 없습니다.

그냥 앉아서 시간이나 보낼 겸 유일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음식은 꽤나 평범하지만 조명이 의외로 멋있어서 엄니와 함께 담아봤습니다.

 

 

 

마지막 식사이긴 해도 별로 먹을 만 한건 없고, 배도 전혀 고프지 않아서 대충 분식 먹는 기분으로 주문해 봅니다.

타코야키는 칸사이 지방의 소울 푸드이다 보니 한번 시켜 봤지만 역시나 유명 가게들과 비교하기는 미안한 수준이네요.

그나마 인스턴트이긴 해도 바로 튀겨서 따끈따끈한 치킨 휠레는 먹을 만 했습니다. 레몬까지 한 조각 제공해 주더군요.

 

 

 

물론 저것들은 그냥 반찬 수준이고, 제대로 된 식사는 우동과 카레입니다.

그냥 깔끔한 것이 장점이라고 할 정도, 맛이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수준이네요.

 

그래도 카레만큼은 한국의 분식집 카레보다 훨씬 향미가 살아있으니 그걸 위안으로 천천히 먹습니다.

1시간 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잡담도 하며 매우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죠.

 

엄니는 겨울 여행을 거의 남반구로 가셨기 때문에, 이렇게 추운 한겨울 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중간에 몸이 좋지 않으셔서 완벽하게 즐기지 못한 게 매우 안타깝고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만

홀가분하게 잘 놀고 왔다고 말씀해 주시니 그나마 저도 위안이 되더군요.

 

저는 첫 번째 포스팅에 언급한 대로, 이 여행 끝나고 2주일쯤 뒤 또다시 바로 홋카이도로 날아가게 됩니다.

 

다음 여행기 포스팅은 어마어마하게 긴 분량이니 과연 올해 중으로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은각사를 버스 관광으로 오면 아쉽게도 그냥 지나쳐야 하는 곳이 이 앞에서 시작하는 철학의 길입니다.

 

혼자서 오면 거닐기 참 좋아하는 곳이 이 철학의 길인데, 쿄토의 유명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가 산책하던 곳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죠.

봄이나 가을에 오면 정말 철학하기 좋은(?) 풍경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사실 특별한 볼거리가 아니라 산책 자체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라, 버스 투어에서는 좀처럼 포함시키지 않는 길이죠.

 

 

 

버스 출발까지는 항상 5분 남기고 도착하도록 시간을 짜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와 엄니가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시간 관념이 철저한 건 좋지만 대체 언제부터 여기 도착해 있었던 걸까요.

 

엄니는 은각사에서 내려오면서 도토리 하나를 주워 귀엽다고 보여주십니다.

그러고보니 아이들 세계에서는 도토리가 화폐의 역할을 할 때도 있었는데.

 

 

 

버스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 키요미즈데라(清水寺)에 도착했습니다.

각종 가게들의 할인 쿠폰을 나누어 주며 점심 식사 후 올라간다고 가이드 아가씨가 설명해 주는군요.

 

쿄토가 좀 그런 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곳 키요미즈데라는 워낙 관광객이 많이 오다보니

전체적으로 식사 품질은 좀 떨어지는 편입니다. 물론 정말 제대로 하는 곳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곳은 버스 투어 중간에 들릴만한 곳이 아니죠.

 

그래서 그냥 정류장 근처 쿠폰 사용할 수 있는 아무 집이나 들어가 적당히 배만 채우고 나오기로 합니다.

제가 일본 음식이 워낙 잘 받는 면도 있고, 엄니는 지금 몸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극적인 걸 빼고 키츠네 소바 정식을 주문합니다. 톳 무침을 참 좋아하는데 그건 그럭저럭 괜찮더군요.

 

 

 

전 카츠동을 주문합니다. 엄니께서 저 정식을 전부 싹 비우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으니

전 국물 없는 녀석을 시켜서 엄니의 남는 키츠네 소바를 다 처리해야 하거든요.

 

남기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전 교육을 그렇게 받아서 그러는지 먹는 건 절대 안남깁니다.

 

카츠동은 아주 지극히 평범한 레벨인데,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가격은 꽤 비싼 편이더군요.

할인 쿠폰을 쓸 수 있지만 어차피 투어 가격에 다 포함되어 있고, 이곳 가게들도 다 그런거 감안해서 가격 산정하는 거라.

 

 

 

키요미즈데라는 저한테 이미 관광지로서의 의미가 거의 없는 곳일 정도로 자주 왔습니다만

요즘 들어 눈에 띄게 많이 달라진 점이라면 역시 중국인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밀려온다는 것일까요.

 

2000년 초반에 처음 왔을 당시엔 동양인 관광객의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더 많이 보입니다. 처음에 일본인으로 알고 있었던 저 키모노 입은 커플 역시 중국인이더군요.

 

한국 관광객과는 달리 젊은 중국인 관광객은 이런 곳에서 키모노도 대여해 입어보는 등 적극적으로 즐기는 모습입니다.

저쪽도 일본한테 만만치 않게 당해 온 역사가 있는데, 젊은 층에서는 이제 별로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인지.

 

 

 

식사 후 다시 집합해서 키요미즈데라 쪽으로 향합니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곳이라 정해진 시간안에 둘러보려면 절 앞까지 안내를 해야 할 듯.

여기서 바로 해산 후 알아서 보세요 하면 아마 절까지 접근도 못하고 관광 끝내는 분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녹차로 유명한 쿄토이다 보니 음료수 자판기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그 위에는 말차 아이스크림 모형이 떡하니 올라가 있군요.

 

 

 

일단 키요미즈데라는, 오전 10시 이후엔 1년 내내 사람이 없는 모습을 보기가 힘든 곳입니다.

수학여행, 단체 관광만 해도 쉴새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쿄토에서 바라는 이미지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듭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쿄토에 와서 키요미즈데라를 가보지 않는 것도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

 

 

 

특이 요즘의 키요미즈데라는 이곳 삼중탑을 포함해 여기저기 공사중이라서 더더욱 주위가 산만합니다.

국보 히메지 성 같은 경우는 공사 기간중엔 아예 입장료를 깎아주기도 하는데

이곳은 이러나 저러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딱히 할인받는게 없군요.

 

공사 할때도 철근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모습을 보니, 이곳 사람들에게 키요미즈데라가 가지는 중요성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무사시보 벤케이(武蔵坊弁慶)라는 유명한 거구의 무장이 사용했다는 석장이 소소한 볼거리입니다.

실존인물일 가능성이 낮아서 실제로 저걸 들고 휘두르진 않았으리라 봅니다만.

 

큰 석장은 무게가 90kg에 육박하기 때문에 팔힘만으로 들기는 어렵습니다.

 

 

 

시간대로도 관광객이 제일 많이 몰릴 때라서 사진 찍기도 쉽지 않네요.

키요미즈데라에서 가장 유명한 무대(舞台) 지지대입니다. 높이가 16m 정도 됩니다.

여기서 떨어져서 살아남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죽더라도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예전부터 여기서 몸을 던지는 사람이 매우 많았죠.

 

놀랍게도 생존률이 80%를 넘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흉내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곳저곳 공사중이라서 지금의 키요미즈데라는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로군요.

 

밑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키요미즈의 청수는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하는데

세 줄기의 물을 한꺼번에 마시면 불행해 진다는, 욕심부리지 마라는 교훈을 주는 곳입니다.

엄니나 저나 저기서 줄 서서 물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냥 사진만 담아봤습니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별로 오래 있고 싶지 않더군요.

은각사에서는 사람이 많아도 정원의 경치가 워낙 좋아서 한참 거닐고 싶었는데

키요미즈데라는 이만큼 사람이 많으면, 그냥 적당히 구경하고 남는 시간에 아래쪽의 상가 구경하는게 더 재미있습니다.

 

 

 

사찰 안에 위치한 인연맺기 신사입니다. 여기 대해서는 제 블로그의 오사카 포스팅에 자세하게 나와있으니 패스.

제가 엄니하고 같이 올라갈 일도 없고, 독신주의다 보니 딱히 인연을 바랄 일도 없네요.

젊은 사람들에겐 항상 인기 넘치는 곳입니다만.

 

 

 

봄과 가을의 키요미즈데라는 이 곳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절경입니다.

겨울은 역시 좀 황량한 기분이 드는군요. 

 

키요미즈데라 사찰의 지붕은 편백나무 껍질을 얇게 썰어서 붙인 히와타부키(檜皮葺)라는 공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중국와 한국에서 전래되어 발전한 일본 전통 건축양식중 가장 독특한 공법으로, 일본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구성이 약하지만 기와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곡선 표현에 강점을 가지고 있죠.

 

쿄토는 저기 멀리 보이는 쿄토 타워를 제외하면 도시 미관상 엄격한 높이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키요미즈데라 등에서 바라보는 쿄토 시내의 모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난잡하지 않고 정취를 풍길 수 있게 되어 있죠.

 

 

 

쿄토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청결도 역시 최고를 자랑합니다.

 

요즘 중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이 오는 바람에 혹시 좀 더러워지지 않았나 싶었지만

나름 일본에 오는 관광객은 적어도 저와 엄니 일행보다 수십 배 부자들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쓰레기 버리지 않고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네요.

 

호텔에서 중국인 가족이 저와 엄니를 위해 닫히던 엘리베리터를 열어주고, 나갈 때 '바이바이~'하고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중국인에 대한 깊은 편견이 살짝 사라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이곳은 왔던 길을 돌아갈 필요 없이 한바퀴를 주욱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편리합니다.

시간을 좀 더 들이면 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산책도 가능합니다만

엄니의 체력도 그렇고, 버스 집합시간을 생각하면 거기까지는 무리더군요.

 

물론 이곳이 버스 투어의 마지막 코스라서, 실제로 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여기서 헤어지는 팀도 있긴 합니다만.

엄니와 저는 어차피 쿄토 역에 돌아가는게 더 편하기 때문에 집합시간을 맞춰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토와노타키(音羽の滝)는 그냥 구경한 하고 갑니다. 줄 서서 물을 마시고 싶을 정도는 아니니까 말이죠.

예전에 한번 마셔 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물이 맑고 맛있긴 합니다.

키요미즈데라라는 이름 자체가 청수사,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이니까 말이죠.

 

 

 

쿄토를 포함한 킨키 지방은 젠자이(ぜんざい)와 아메유(あめ湯)가 유명합니다.

 

젠자이는 단팥죽, 아메유는 따뜻한 감주라고 보시면 되는데

비슷하달 뿐이지 맛은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특히 아메유의 경우엔 살짝 시큼한 맛이 매우 독특하죠.

추운 날이라 아메유 한 잔이면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엄니께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패스.

 

 

 

어디든 그렇지만 일본식 정원은 특히 봄과 가을에 와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홋카이도처럼 여름과 겨울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그런 곳이 아니면, 역시 헐벗은 나무들 모습은 좀 그렇죠.

 

여전히 쿄토엔 사람이 관광객이 어마어마한데, 봄가을 즈음의 이곳은 좀 무서울 듯 하네요.

 

 

 

이 앞에서는 여전히 카메라 가진 사람이 단체 사진 찍어주면서 필요하면 사 가라고 합니다.

일단 저와 엄니도 버스 단체 투어를 따라온 사람이기 때문에 모여서 한 장 찍긴 했네요. 물론 찾진 않았습니다.

 

단체 투어를 가지 않는 저로서는 매우 희귀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버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쪽은 여전히 기념품과 먹을거리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옛스런 멋이 남아있는 이곳 거리에 저렇게 가끔 깨는 듯한 디자인의 마스코트가 놓여있으면 재미있는 셔터 찬스가 되죠.

 

그 도넛군이 서 있는 박스는 아주 오래된 나무처럼 보인다는 점이 또 독특합니다.

 

날씨는 춥지만 키요미즈데라에 오면 녹차 관련 군것질은 한번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법칙에 따라

말차맛 소프트크림 하나 먹고, 엄니하고 함께 먹을 야츠하시(八つ橋)를 구입했습니다.

야츠하시는 쌀가루로 만든 얇은 만두피 속에 팥이나 설탕 시나몬 등을 넣어 삼각형 형태로 만든 납작만두 같은 녀석입니다.

원래 삶거나 찌지 않고 날것 그대로 먹는 녀석이라 나름 독특한 식감이 있는 녀석이죠.

 

 

엄니께서는 어느 특산품점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다기 그릇들에 눈을 뻇겨서 버스 도착 시간 아슬아슬할 때까지 보고 계셨습니다.

맘에 드는 다기가 한국돈으로 30만원쯤 하는데, 한국에서 사는 것과 비교해서 그리 비싸지도 않는 편이라 구입해 갈까 말까 많이 고민하시더군요.

 

다기는 가격 뿐만이 아니라 구입 시기를 놓치면 돈이 있어도 구입하기 어려운 것이 많아서

저는 온김에 하나 사 드리겠다고 했지만 엄니는 고민 좀 하시다가 '집에 많이 있으니' 그만두겠다고 하십니다.

 

쇼핑도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만, 엄니는 대신 오늘 저녁에 요도바시 카메라에 가서 손자 줄 장난감을 사기로 합니다.

 

버스타고 쿄토역으로 돌아가는 도중 엄니가 절 보고 저것 좀 보라고 하시길래 뭔가 싶었는데

거대한 트럭 운전석 좌석 밑에 저런 인형이 놓여있네요. 뭔가 센스가 있는 운전사인 듯 합니다.

 

 

 

손자 줄 장난감을 좀 사고나서 여행 마지막 밤의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

손자가 역시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동차를 환장하도록 좋아하는 터라

각종 스포츠카와 함께 소리나는 버스도 하나 구입했네요.  재미있게도 스포츠카 보다 버스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알았는데, 타요라는 버스 캐릭터가 그 당시 대인기였다고 하더군요.

 

쿄토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이제껏 그리 비싼 식사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가격대 성능비로는 별로 훌륭하지 않은 쿄토 요리 정식, 쿄 요리(京料理)를 먹어봅니다.

 

 

 

쿄 요리하고는 별개로 술안주로 개별 주문이 가능한 카마보코(かまぼこ)를 먼저 먹습니다. 술은 안마셨지만.

 

카마보코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어묵의 단어적 의미에 가장 잘 들어맞는 녀석입니다.

생선살과 조미료를 갈아서 한번 튀겨낸 녀석이죠.

일본에서는 오뎅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묵 하면 오뎅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서 좀 헷갈립니다.

 

 

 

따로 주문한 술안주 두 번째로, 제가 일본식 선술집에서 아주 좋아하는 겨자오징어입니다.

짭쪼롬하고 톡 쏘는 맛이 오독오독 씹히는 오징어와 매우 잘 어울리죠.

엄니께서는 술을 안 드시기 때문에 이건 처음 먹어본다고 하시는데 굉장히 맛있다고 하십니다.

단지 상당히 짠 편이라 그냥 이것만 먹기엔 좀 힘들긴 합니다.

 

 

 

쿄토는 천 년간 일본의 수도였고, 그 당시 일본 불교가 찬란하게 꽃 핀 경향도 있어서

쿄 요리라 하면 전통감 넘치는 고급 요리를 뜻합니다만

반대로 고위 승려들이 즐기던, 고기를 넣지 않고 두부만으로 만들어 내는 코스 정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몸이 좋지 않은 엄니도 부담없이 드실 수 있게 두부를 중심으로 하는 쿄 요리를 주문하기로 했죠.

두부는 중국이 원조이지만 한국과 일본, 중국이 이제와서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각 나라별로 맛이 상당히 다른 음식에 속합니다. 일본의 두부는 식감과 맛 모두 한국과는 다른 편입니다.

 

 

 

쿄 요리를 먹어보면 두부도 이렇게 종류와 맛이 다르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어묵처럼 쫄깃쫄깃한 두부에서부터 구수한 검은콩 두부까지

한 사람당 나오는 양이 적어서 뭔가 좀 간질간질한 느낌이지만, 다양한 맛의 두부를 즐기기엔 좋은 코스입니다.

 

 

 

쿄 요리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다른 대중적인 요리와 달리 심심한 맛을 특징으로 내세웁니다.

원래 사찰 음식이었던 탓도 있어서, 일본의 짠 음식에 부담을 가진 사람이라면 쿄 요리가 알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단지 쿄 요리는 기본적으로 좀 비싼 편이라, 여행 와서까지 이 가격에 두부만 줄창 먹는게 좀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만.

 

 

 

톳 무침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반찬입니다만, 이곳은 평소 먹던 간장졸임 톳무침이 아니라

양념을 하지 않은 톳에 두부를 갈아넣어 버무린 녀석이군요. 심심한 맛이 괜찮습니다.

 

 

 

이것도 물론 두부튀김입니다. 아주 부드럽고 물렁물렁한 흰두부를 튀겨낸 녀석이라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느낌이 재미있더군요.

 

 

 

차왕무시(茶碗蒸し)라고 하는 계란찜입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계란찜과는 달리 조그마한 그릇에 다시마 육수로 풀어낸 계란을 넣고 중탕으로 찌듯히 삶아내기 때문에

푸딩같은 말랑말랑한 식감이 매력적인 녀석이죠. 안에는 새우 등의 해산물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각종 튀김요리도 나옵니다. 완전한 두부 코스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이것도 넣었죠.

숙소 근처 마을의 조그마한 가게라 거의 토박이 손님만 오는 곳이기도 하고

노부부 둘이서 요리하고 서빙하고 다 맡아 바쁘게 움직이는 곳이어서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드는 튀김이었습니다.

 

 

 

코스의 마지막은 역시 밥인데요, 식기가 재미있어서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엄니는 밥만 덩그러니 나오는 모습을 보고, 뭐하고 같이 먹냐고 의아해 하셨습니다만.

 

 

 

뚜껑을 열면 이렇게 되어 있죠. 정갈하다면 정갈하고, 이 돈 주고 이렇게 나오냐고 한탄할 수도 있는 그런 녀석입니다.

엄니께서는 '쌀은 좋네'라고 하시며 조금씩 천천히 드시더군요.

 

제 덩치를 생각하면 확실히 양이 좀 부족했습니다만, 엄니는 다행히도 드시고 속이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후식은 물렁물렁한 꿀떡 같은 녀석과 양갱이 나오는군요.

후식 자체보다도 찍어먹으라고 준 저 나무작대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적인 면도 중요시 하는데

포크나 이쑤시개가 나오는 것보다는 확실히 운치가 있네요.

 

 

 

숙소에 돌아와서 쉬고 있다가, 여행 마지막 밤을 이렇게 보내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니 쉬는 동안 밖에 나가서 서점에서 책도 좀 사고 편의점에서 오뎅도 좀 사서 돌아왔습니다.

한국 오뎅과는 여러가지로 다른 재료가 많이 들어간 녀석이라, 일본에 가면 한 번씩 사 먹고는 하는 편이죠.

 

 

 

엄니는 이것까지 먹었다가는 속이 안좋아 질거라 하셔서 안 드셨습니다. 안타깝긴 하지만 역시 여행은 건강이 중요한 겁니다.

국물 맛이 진득하게 배여있는 실곤약과 계란은 제가 좋아하는 메뉴죠.

 

특히 곤약은 식감이 아주 마음에 들어 꼭 빠지지 않고 먹는 편인데, 편의점에서 파는 곤약도 저렇게 디자인을 중시하는 걸 보니

어차피 입 안으로 없어질 녀석이지만 참 꼼꼼하게 해 놓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TV를 보면서 밤을 보냅니다.

엄니께서는 일본어 모르시는데도 방송을 어느 정도는 알아들으시더군요. 궁금한 거 물어보시면 제가 답하고 하는 식으로 TV를 봤습니다.

 

조식을 먹는데 중고등 학생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이 주르륵 늘어서서 밥을 담는 중이더군요.

전부 체육복 입고 있는 걸로 봐서 뭔가 체전 같은데 출전하거나, 단순히 수학여행 온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비지니스 호텔은 거의 싱글 룸 아니면 많아봤자 두 사람 겨우 머물 수 있는 곳인데

학생들이 여기서 묵었다는 건 왠지 굉장해 보였습니다.

제가 수학여행 갔을 때는 그냥 넓직한 방구석에 한 반 전체를 몰아넣은 닭장같은 곳에서 자곤 했으니...

 

아침에 교토역 버스터미널에 가니 관광 버스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만 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커플이 몇몇 있더군요.

중국인 관광객도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오사카, 코베, 쿄토 등 당시엔 중국인 관광객이 안 보이는 곳이 없었죠.

 

버스가 천천히 출발하고 나면 가이드가 가는 도중까지 코스에서 보이는 이곳저곳을 설명해 줍니다.

외국인에게는 번역된 라디오 기기를 대여해 줍니다만 엄니는 그렇게 듣고 싶진 않고 그냥 저한테 설명해 달라고 하시네요.

쿄토는 그냥 버스타고 아무 길이나 달려도 설명할 꺼리가 넘쳐나는 그런 곳이라서 가이드 분의 설명이 그칠 시간이 없군요.

 

첫 번째로 간 곳은 키요미즈데라와 함께 쿄토에서 가장 유명한 금각사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서식할 때 근처에 있었던 서울숲 보다도 더 많이 가 본듯한 기분이 드는 금각사로군요.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입니다만, 저 금박이 워낙 유명해서 다들 금각사라고 부르죠.

참 볼때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합니다.

 

겨울이라서 전체적으로 색이 죽어있는 게 아쉬웠습니다. 봄, 여름, 가을엔 정말 별천지가 이런 곳이로구나 싶은데 말이죠.

원래 금각사 사진은 잔잔한 물에서 반영을 멋들어지게 잡는 게 최고라고 하는데

겨울이라 연못이 얼어있어서 반영은 무리였습니다.

 

엄니께서는 중국도 자주 가보셨기 때문에 화려함에서 감탄하실 만한 요소는 별로 없을 듯 하네요.

물론 일본의 사찰은 축소형 자연계라는 관점에서 매우 훌륭한 미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이쪽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즐거운 볼거리인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저에게 금각사는 금박 건축물 자체보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쪽이 더욱 인상깊습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인데

그 책을 파고들다 보면, 어째서 한 미친 승려가 금각사를 태워 버린 것인지 슬그머니 이해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실제로 금각사는 1950년 방화로 소실된 후 1955년 재건한 녀석이죠.

 

 

 

금각사는 사실 그렇게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닙니다.

봄이라면 한두 시간 정도 느긋하게 주변을 산책하는 재미가 있지만

추운 겨울인데다가 단체 투어 최대의 단점인 제한 시간이란 녀석이 있어서 사진 찍는데도 시간이 빠듯하네요.

 

사실 제가 단체 투어 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제한 시간이죠.

전 한곳에서 시간 느긋히 두고 감상하는 걸 좋아해서, 여행 가면 여기저기 많은 곳을 가지 않는 편입니다.

오늘 버스 투어 볼거리도, 홀로 여행이라면 약 3일에 걸쳐 가 볼만한 곳들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엄니 체력도 생각해야 하니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야 하겠죠.

 

일본의 공원이나 정원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공 연못이 있고

그 연못 안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섬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만

역시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꼭 저런 녀석들이 유유자적 하고 있더군요.

 

 

 

저녀석은 카리스마 대빵큰오리라고 하는데,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지 한 발로 서 있습니다.

다리 부분은 털이 덮혀있지 않아서 체온을 뺏기기 쉽다고 하네요.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실제 이름은 왜가리입니다.

 

 

 

겨울이라 초목 색깔은 좀 우울합니다만 날씨는 좋아서 다행입니다.

실제로 이 정도 금을 본 적이 없어서 참 신기한 색깔이다 싶긴 하네요.

 

총 20kg 정도의 금을 사용해서 금박을 입혔습니다만

옛날엔 정말로 저 위에 올라가서 경치를 즐기고 했던 걸까요.

금을 발로 밟고 지나다닌다는 경험은 뭔가 새디스틱한 느낌이 듭니다.

 

 

 

산책로 자체가 금각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나 있기 때문에 모든 시선이 금각사 쪽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죠.

은각사와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이기도 한데, 정원으로서의 미적 완정도는 은각사 쪽이 월등한 편입니다.

 

이곳은 주변에 괜찮은 환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금칠을 한 사찰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것 외에는 집중하기가 힘든 편이네요.

 

 

 

일본의 사찰이나 정원에 혼자 올 때면 저는 보통 같은 길을 두 번 걷습니다.

카메라 렌즈를 갈아끼우고 첫 번째와 다른 시선으로 둘러보기 위한 경향도 있고.

한 번만으로 전부 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좀처럼 없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단체 투어는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습니다.

엄니는 사진을 안찍으시니 저를 추월해 거침없이 전진하시고

저는 안 굴리던 머리와 눈을 굴려가며 순간순간 들어오는 장면만 후다닥 담아내고 있네요.

 

금각사를 이렇게 헐레벌떡 둘러본 적은 처음이네요.

 

 

 

금각사 구경을 후다닥 마치고 은각사로 향합니다.

은각사는 쿄토 시내를 중심으로 반대편 산언저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버스가 천천히 지나가면서 가이드 아가씨가 여러가지 설명할 거리가 많죠.

 

재밌다 싶은 것만 골라서 엄니한테 설명해 드리며 은각사로 향합니다.

 

제가 한창 쿄토에 자주 가던 때, 공교롭게도 은각사가 보수기간에 들어간 터라

금각사를 6~7번쯤 갔다면 은각사는 2번 정도밖에 가지 못했었죠. 그래서 저 역시 오랜만에 기대됩니다.

 

 

 

면적 자체는 금각사가 훨씬 크고, 쿄토에서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주차장도 광활합니다.

반대로 그 덕분에 은각사는 관광객이 조밀조밀해 보이는 면도 있더군요.

 

 

 

은각사 누각에는 은박지가 없습니다. 단아한 느낌이 드는 소박한 누각 하나만 놓여 있죠.

 

눈이 좀 더 많이 내렸더라면 겨울에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엄니께서 이보다 더 추워지면 움직이기 힘들어 지실테니 이 정도로도 만족합니다.

 

 

 

은각사는 원래 지쇼지(慈照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대칭되는 금각사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곳도 은각사라는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네요.

 

휘황찬란한 금각사의 느낌과 비교하면 좀 수수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수수함과 더불어 정원의 미적 구성양식은 이 쪽이 훨씬 아름다운 느낌이 듭니다.

 

 

 

쿄토는 대구와 같은 분지 형태임에도 겨울에 날씨가 꽤 추운 편입니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정원이라 그런지 꽃도 살짝 움츠러 든 듯한 기분이군요.

 

 

 

금각사가 금으로 유명하다면 은각사는 이 모래 정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모래로 물과 산을 표현하는 이런 방식을 카레산스이(枯山水)라고 하는데

이곳의 완성도는 정말 굉장합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은 대체 어떻게 유지를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군요.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이 곳을 찾는 어른들이라면 카레산스이 쪽엔 발을 들이지 않도록 조심하겠죠.

뭔가 분위기를 망치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모습입니다.

 

규모가 작은 사찰이지만 완벽하게 사람의 손길로 재현된 자연의 축소판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엄숙함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습니다.

 

 

 

금각사야 땅도 넓고 금도 반짝반짝해서 관광객들의 셔터소리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는데

이곳은 가능하면 사람이 적은 상태에서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단체 버스로 오면 아무래도 그럴 기회가 적어져서 아쉽긴 하죠.

카레산스이 정원 멀리 보이는 볼록 솟은 녀석은 후지산은 형상화 한 것입니다.

때마침 눈이 살짝 쌓여있는 모습 덕분에 더욱 보기가 좋았네요.

 

 

 

눈이 내려도 비가 와도 말끔히 단장된 모래 정원의 모습을 보면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녀석들을 관리하는 것인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손질일텐데, 적어도 제가 가 본 모래 정원 중에서 모습이 흐트러 진 녀석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은각사의 전체적인 모습은 속세를 잊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데

 

쿄토라는 도시 전체가 관광객이 끊일 일이 없는 곳인데다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경으로 유명한 곳이 이 은각사라서

좀처럼 홀로 유유히 산책을 즐길 만한 기회가 오지 않는군요.

 

더구나 봄이 되면 더욱 유려한 풍경으로 변모하는데, 그 때는 줄서서 이동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붐비니...

 

 

 

권력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까요.

금각사는 일본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 義満)가 만든 별장이었습니다.

 

이 은각사는 100년쯤 뒤에 그의 후손에 의해 세워졌는데, 자신의 고고조 할아버지 뻘 되는 일본 최고의 권력가가 세운 금각사를 생각하면

차마 그것보다 더 화려하게 지을 수는 없어서 '은'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은각사가 세워질 당시엔 예산 부족으로 은칠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는 말도 있고.

 

금각사나 은각사 둘 다 원래 사원이 아니라 쇼군의 별장으로 세워진 녀석이라

당대 건축양식의 정수를 그대로 담고 있으니, 이 별장을 혼자 소유하고 거닐던 당시 권력자들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와서야 소원 이뤄주는 연못에 동전이나 던지는 일반 시민들이 찾는 곳이지만

수직적 권력의 정점을 이루었던 당시 일본 지배층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하늘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거늬할배한테 적선하는 거지들을 보는 기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설하고, 은각사는 정말 은칠을 했다면 금각사보다도 영 볼품없는 곳이 될 뻔 했습니다.

직접 가 보시면 알겠지만 은각사는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잘 정돈된 초목근피와 인공미의 극치를 달리는 카레산스이, 누각 앞에 살짝 솟아있는 산책용 언덕까지

미니멀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될 만큼 일본 문화의 중요한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명소입니다.

 

 

 

언덕 쪽은 또 이끼가 자욱하게 덮여있어서 그 모습 또한 볼거리 중 하나죠.

 

엄니께서도 금각사는 그냥 금삐까 보는 재미로 보셨다면

이곳에서는 천천히 거닐며 이곳저곳 둘러보시고 있습니다. 이런 곳 참 좋아하시니 마음에 드셨으리라 생각.

 

 

 

은각사는 면적이 금각사의 절반도 되지 않지만 산책로는 이리저리 꼬아놓은 모습이기 때문에

실제로 산책에 소모되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거나,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금각사에서는 금삐까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속도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은 발걸음을 서두를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죠. 거의 모든 코스 코스가 아름다운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시간이 살짝 촉박하지만 언덕 위를 둘러보지 않고 은각사를 떠난다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기에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시는 엄니를 뒤에서 찍어대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곳은 봄이나 가을에 오면 정말 별세계가 어떤 곳인가 느낄 수 있죠.

특히나, 입구가 아주 높은 나무들로 꽉 막혀 한번 꺾인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오고 나면 현세와 분리된 듯한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은지 500년이 넘어가는 곳이라 정말로 나이들어 보이는 비석들도 군데군데 존재합니다.

일본식 정원은 보는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여기저기 들어가 보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네요.

 

 

 

쿄토가 지금 보면 그리 큰 도시가 아닌 듯 하지만 천 년 가까이 일본의 수도로 남아있다 보니

예전 기준으로 보면 정말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원래부터가 중국의 장안을 본따 만든 도시이기도 하고.

 

그래서 버스로 30분쯤 걸리는 금각사의 키타야마(北山) 와

은각사가 위치한 히가시야마(東山)는 생활 양식 자체가 전혀 다른 개별적인 공간이었습니다.

 

키타야마가 화려하고 귀족적인 문화의 중심지였다면

히가시야마는 세속을 벗어나 적막한 곳에서의 평안함을 추구하는 편이었죠.

금각사와 은각사는 그 대치점에서도 유독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곳이니

이 두 곳은 꼭 페어로 묶어서 구경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눈사람에 코까지 만들어 놓는 센스가 재미있어서 찍어봤습니다.

이 당시엔 겨울왕국이 일본에 개봉하기 전이어서 당근이 사용되지 않았던 듯.

 

 

 

비단 일본식 정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원은 꼼꼼해야 합니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보니 사소한 것도 단점으로 눈에 들어오기가 쉽거든요.

 

그런 면에서 일본은 정원 만드는데는 도가 튼 민족이라 할 수 있겠죠.

 

 

 

제가 은각사를 처음 봤던 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일본의 정원 정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거진 3시간 가까이 묵묵히 길을 거닐기만 하던 게 생각납니다.

 

외국까지 와서 입장료 내고 둘러본다면 기본적으로 신기하거나 웅장한 것들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곳이 어떤 느낌을 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입니다.

 

 

 

쿄토엔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 겨울엔 매력이 좀 떨어집니다만

눈으로 뒤덮힌 은각사는 정말 절경이라고 하더군요.

 

조금씩밖에 쌓여있지 않아서 아쉽습니다.

 

 

 

넓은 대지와 넓은 연못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찬란한 금각사와는 달리

이곳은 언덕을 올라가면 은각과 함께 쿄토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자랑합니다.

 

엄니는 금각사 은각사 둘 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러지 않아도 보수공사 때문에 한참 보질 못했던 데다가

원래 은각사를 훨씬 더 좋아해서, 짧은 관람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었네요.

 

 

 

그래서 은각사에 비해 금각사 사진이 압도적으로 수가 적습니다만 그냥 찍사의 취향이라고 생각하시는게 좋을 듯.

 

돌다 보면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너무 좁은 듯한 느낌이 들어 가끔 답답하기도 했는데

조사해 보니 사실 원래 은각사는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금각사처럼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서 이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하네요.

 

이것도 물론 전쟁 때 폭격을 받지 않은 쿄토라는 도시의 축복 덕분이기도 합니다만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제가 쿄토 가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원의 완성도는 이런 소소한 곳에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자연의 미를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복잡미묘한 장소가 일본의 정원이기 때문에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금속 재료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까지 자연의 형식을 유지하려 합니다.

 

여기에 금속으로 된 맨홀 뚜껑이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면 제 고취된 기분도 확 내려앉았겠죠.

 

 

 

교토 버스 투어는 당연히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은 군것질거리 정도 밖에 없습니다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하룻만에 이런 곳들을 다 돌아다니려다 보니

실제로 한 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40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런 곳에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야

20분만에 다 둘러보고 밖에 나와 담배까지 필 시간이 되겠지만

저로서는 내려가는 언덕길이 참 짧게 느껴지는군요.

 

 

 

처음에 연리지인가 싶어서 유심히 바라본 나무입니다.

뿌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꼬인 녀석이로군요.

 

 

 

처음엔 왜 은이 없냐고 아쉬워 할 수도 있지만

산책을 한번 마치고 나서 다시 보는 은각은 '은박이 없길 잘했다'라는 느낌이 드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카레산스이 구조가 확립되기 이전의 일본 정원은

반드시 연못이 존재해야 했었기 때문에 건설 난이도도 상당히 높았는데

 

이곳은 그 당시 왕이나 다름없었던 쇼군의 별장이었기도 하고,

히가시야마라는 걸출한 산에 딱 붙어있는 위치라 물흐름을 당겨오기 어렵지 않았을 듯 합니다.

 

 

 

이번 여행은 엄니 가이드 형식으로 따라간 것이라 대부분 저한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오랜만에 은각사를 와서 셔터를 누르다 보니 왠지 엄니와 제가 그냥 따로 구경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살짝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만, 은각사 40분 만큼은 제 나름대로 즐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센본 토리이를 지나서 도착한 곳에는 뭔가 영물 취급을 받고 있는 돌이 놓여 있습니다.

금줄 앞에 작은 토리이가 무수히 놓여있는 것을 보니 없던 위엄도 만들어 지는 듯 하네요.

 

 

 

일본의 신사에서 참배객이나 관광객들이 주로 봉납하는 에마와 마찬가지로

이런 조그만 토리이는 신사 안에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훨씬 비싸지만.

 

외국 관광객의 경우엔 이걸 그냥 여기다 두고 가기가 참 아깝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등장한 여우 얼굴모양 에마 앞에서 엄니가 한 장 남깁니다.

얼굴에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표정을 만들 수 있죠.

참 아이디어 좋다는 생각입니다.

 

엄니는 여우모양 에마보다, 일반적인 에마 뒤에 그려진 말 그림에 흥미를 보이십니다.

에마 뒤쪽 그림은 신사의 경제력을 나타낸다고 해도 될 만큼 빈부의 차가 심한 편이고

후시미 이나리 쪽은 일본에서 가장 봉납액이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그림도 굉장한 수준이죠.

 

 

영어는 아닌 듯한 언어가 봉납용 토리이에 적혀 있습니다. 뭐라고 써 놓은 걸까요.

그 옆에 살짝 찍힌 여우 얼굴이 살짝 기분나쁜 표정입니다만, 저런 녀석들이 좀 있어야 신사도 어깨 힘을 좀 뺄 수 있겠죠.

 

 

실제로 이곳은 정해진 코스를 다 돌아보려면 3시간 넘게 산을 한바퀴 돌아야 해서

지치고 바쁜 여행객인 저희 일행은 여기까지만 보고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엄니에게는 유명한 센본 토리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니 더 무리할 필요는 없겠죠.

 

 

 

 

자주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센본 토리이 안에서 사람이 파인더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 극히 짧은 관계로

뭔가 기회만 생기면 후다닥 찍어버리려는 습관이 생겨버립니다.

 

이런 구조는 광각과 망원의 효과가 매우 극명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어서

어두운 망원렌즈로 찍으려면 대낮임에도 감도를 매우 높여야 하는 난점이 있네요.

ISO를 3200 까지 올려서 간신히 찍고 있습니다.

 

 

 

 

망원사진이 제일 안정적이고 유명한 곳이긴 해도 광각 역시 재미있습니다.

후시미까지 온 기념으로 엄니 사진도 남겨드려야죠. 뒷모습이긴 하지만.

 

 

이곳은 24시간 개방하기 때문에 홀로 여행이었다면 아마도 새벽이나 밤중에 산을 한바퀴 둘러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여행의 목적 중에 평소 보기 힘든 그곳만의 독특함을 즐기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의 센본 토리이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각인시켜 줄 수 있는 강력한 볼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입구쪽으로 내려오자 청명한 하늘 사이로 눈발이 날리더군요.

무슨 사고 회로의 발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맑은 하늘에 비나 눈이 내리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역시 성격의 차이일까요.

 

암튼 이런 날씨인 탓에, 몸을 추스려야 하는 엄니를 위해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내기로 합니다.

빨리 숙소에 돌아가서 푹 쉬어야 내일도 또 여행을 즐길 수 있겠죠.

 

 

 

 

쿄토가 대부분 그렇습니다만, 워낙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신사 앞 골목거리는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가게에 들어가 진득히 앉아 먹기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해 봅니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많이 보입니다만, 일본에서 처음 봤을 땐 팥소 외에도 다른 걸 넣을 수 있구나 하고 신기해 하던 기억이 있네요.

카스타드 크림을 넣어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의 붕어빵입니다. 사실 슈크림을 생각해 보면 이런 크림 붕어빵은 조금 이단이죠.

 

 

 

이 녀석을 보고 매우 그리운 마음에 덮썩 먹어봤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시골 장터 같은곳에서나 간간히 보이는 메추리 구이입니다.

 

일본어로 메추리를 뭐라 부르는지 몰랐습니다만, 저 고기 형태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메추리가 우즈라(

 

 

 

 

 

 

 

 

 

 

 

 

 

 

 

 

 

 

 

 

 

 

 

 

밖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던 아주머니께서는 구경중인 사람들에게 이 가마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고 계십니다.

원래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녀석인데, 아무래도 근래 들어 실물 그림이 그려진 자료가 발견된 것 같네요.

 

잊혀진 옛 가마를 다시 복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굉장히 기쁘게 설명중이라 살짝 부럽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코야산에 다녀온 게 1월 17일입니다.

18일 아침에 일어나니 엄니께서 밤새도록 혈뇨가 나오셨다고 합니다.

소변이 거의 핑크색으로 나올 정도로 정도가 심해서, 오늘은 움직이는 거 무리라고 하셨죠.

 

엄니의 혈뇨는 40여년동안 산발적으로 계속된 것이라 급성은 아니지만

대체로 몸이 피곤해 생기는 일이라, 관광은 꿈도 못꿉니다.

 

원래 체크아웃 후 나라까지 이동할 예정이었던 탓에, 당장 프론트에 내려가 1박 추가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다행히도 방 바꿀 필요없이 그대로 투숙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원래는 3박 후에 청소를 위해 오전 중에 방을 비워줘야 하지만, 엄니가 몸이 아프시다고 설명을 해서 청소는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엄니는 준비성이 좋은 분이라, 일단 혈뇨 시 먹는 약도 가지고 온 덕분에 응급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배의 통증은 쉽게 가라안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조식 먹으러 내려가는 일도 포기하고 하루종일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기로 합니다.

 

저는 일단 밖으로 나가 빵집과 슈퍼에서 요기할 만한 것들과 과일 등등을 사왔습니다.

여행 중간중간 여러번 피곤하지 않냐고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길래

괜찮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결국 가이드 역할인 제가 컨트롤 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역시 여행이라고 해서 무리하지 말고 느긋하게 돌아봐야 했습니다.

그것도 제 기준에서 무리가 아니라 엄니 기준에서 무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니는 저보고 오사카 돌아다니고 오라고 하셨지만 그럴수는 없죠.

밥하고 과일하고 보이차 등등을 섭취하며 TV 보다가 자다가 하며

여행과는 전혀 관계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엔 그래도 몸이 좀 좋아지셨는지 식사를 밖에서 하자고 하시길래, 5분만 걸으면 갈 수 있는 지유켄(自由軒) 본점으로 갔습니다.

제 블로그 오카사 여행기를 보면 잠깐 등장하는 '명물 카레'를 만든 본점이 난바에 있죠.

창업 103년째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카레점이고 나이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부드럽고 부담없는 카레로 유명합니다.

 

여행을 즐긴다기 보다는 많이 먹고 많이 쉬어서 체력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강했기에

엄니는 그냥 묵묵히 드시고 별 말은 없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만드는 카레가 더 맛있다고는 하시더군요.

 

나라에서의 1박은 완전히 없었던 일로 되었기 때문에 1월 19일 아침엔 바로 전철 타고 쿄토로 떠납니다.

엄니 몸을 생각해서 우메다 역까지 택시를 타고 갔는데요, 택시 기사가 먼저 말을 걸어오길래 잠깐 잡담을 나눴습니다.

코야산은 오사카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한 번쯤은 가 보는 곳이라고 하네요.

 

일본에서는 택시 기사가 승객에게 먼저 잡담 거는 일은 별로 없는데, 역시 오사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의 여행은 엄니의 몸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일정을 대폭 축소하기로 합니다.

저야 몇 번이고 와 본 곳이니 아쉬울 것 없지만, 엄니는 이런 여행으로 괜찮겠느냐고 여쭤봤는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인데 이번에 좀 덜본다고 뭐가 아쉽겠냐고 하십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엄니 여행다닌 곳을 생각해 보면, 비행시간이 1시간 20분 밖에 되지 않는 이런 곳은 그냥 동네 마실나가는 수준에 불과하긴 합니다.

 

쿄토 역은 오사카 만큼이나 사람이 넘쳐나더군요. 겨울에 수학여행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교복입은 학생들이 서성이고 있습니다.

날씨는 추워도 모처럼 하늘이 푸른 날이라 사진 찍기는 좋더군요.

 

 

 

날씨 좋을때는 실제 쿄토 타워보다 역의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이 더 깔끔하게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일단 쿄토에서 칸사이 공항으로 가는 교통편을 예약해 놓고 호텔에 짐을 푼 후, 후시미(伏見) 이나리 타이샤만 둘러보기로 합니다.

 

내일은 원래 엄니와 둘이서 다닐 생각이었지만, 엄니 몸을 생각해서 쿄토 관광버스 반나절 코스를 끊어서 편하게 돌아다녀 볼 예정입니다.

조금 수박 겉핥기가 되겠지만 역시 몸을 생각하면 바로바로 관광지로 실어다 주는 관광버스가 편하겠죠.

 

 

 

엄니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저는 어제부터 죄책감으로 기분이 매우 다운된 상태였죠.

그래도 쿄토 역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엄니를 보니 그나마 좀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쿄토 역은 단순히 크기뿐만이 아니라, 전통 문화와 현대 기술의 타협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라는 의의가 있죠.

이 곳 역시 예전 여행기 포스팅에서 다룬 적이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넘어가기로 합니다.

 

 

 

화장실 다녀오는 엄니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막상 지금이 되어서야 아차 싶더군요.

몸이 멀쩡하다는 걸 가정하고 1달 전에 예약해 놓은 호텔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은 가야 하는 곳이라

어제 바로 예약 취소한 후 쿄토 역에 붙어있는 수많은 다른 호텔을 신속하게 예약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는데 말입니다.

 

어제는 단순히 나라쪽 호텔 취소하는 것 밖에 머리에 들어있지 않아서 깔끔하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가져온 현금은 별로 없지만 그냥 카드 결제라도 해서 쿄토 역 구조물에 포함되어 있는 고급 호텔인 그랑비아에 투숙했다면

엄니도 훨씬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가격은 1박에 20만원이 넘긴 하지만.

 

홀로 여행의 습관이 뼛속까지 박혀 있다보니 동행인의 사정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런 실책은 참 괴롭습니다.

 

 

 

일단 내일 관광버스 예약하고, 칸사이 공항 행 고속버스 티켓을 알아보러 이동합니다.

거대 역이 의례 그렇듯 번화가가 이어지는 카라스마구치(烏丸口)와, 점점 한적해지고 있는 하치죠구치(八條口)로 나뉘는데

공항행 버스는 하치죠구치 쪽으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엄니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스무스하게 이동을 시작합니다.

 

중간중간 엄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일부러 천천히 걸으면서 최대한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혈뇨가 완전히 그친 게 아니고, 통증이 많이 완화된 정도일 뿐이라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되겠죠.

20년 전쯤에 병원에 한번 가 봤을 때 의사가 죽을 병은 아니고 고칠 수도 없으니 그냥 사세요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20년이라면 의학 기술적으로 천지가 뒤집어질 정도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니,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돌아가면 꼭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종용했습니다.

 

하치죠구치로 향하는 도중 우지(宇治) 녹차를 넣은 슈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호기심에 한번 먹어봅니다.

쿄토역에 입점한 가게들은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최소 수십 년 전부터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가게들이라

군것질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허벌나게 비싸다는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녹차향기 가득한 슈크림이 아주 꽉꽉 들어차 있어서 심각하게 맛있었는데 저 녀석이 무려 300 엔이나 합니다.

엄니도 참 맛있다며 드시다가, 하나에 한국돈으로 3천원이라고 말씀드리니 얼굴이 어두워 지시더군요.

슈크림이란 게 정직한 방법으로 맛있게 만드려면 돈이 많이 드는 녀석이긴 하지만.

 

 

 

슈크림 하나로 배가 찰 리는 없고, 맛있는 거 먹기보다는 대강 배만 채우고 숙소로 향하기 위해서

걸어가다 보이던 나카우(なか卯)에 들어갑니다.

 

나카우는 한국의 김밥천국과 같은 곳이라 보면 되는데, 그렇다 보니 음식의 질보다는 저렴함으로 승부하는 곳이죠.

아무리 그래도 규동 한그릇 만으로는 좀 모자랄까 싶어서 세트메뉴를 이것저것 시켰는데

맛은 둘째치고 역시 엄니에게는 좀 과하게 짠 느낌이 들어서 선택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깔끔하긴 깔끔한데, 주위 손님들이 대부분 교복입은 학생들인 것을 보면 역시 엄니와 함께 먹을만한 레벨은 아닌 듯 하네요.

제 입장에서야 이 정도면 가격대 성능비가 좋아서 감지덕지입니다만.

 

 

 

여행중에 하늘이 맑고 쨍쨍하다는 건 매우 큰 축복입니다.

기온은 낮은 편이지만 햇살이 비춰주니 그나마 움직일 만 하네요.

코베나 코야산과 달리 쿄토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서 조금 덜 춥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죠.

 

 

 

숙소에 짐 풀어놓고 바로 후시미로 향합니다.

쿄토는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 달리 전철로 이동하는데 제약이 많아서 대부분의 관광지 이동은 버스로 움직이게 됩니다.

 

유명한 관광지로 향하는 버스는 다들 와르르 내리고 하니 길 잃어버릴 염려는 적은 편이죠.

일본인 관광객도 많았지만, 몇년 전과 비교해 월등히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이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 하네요.

자전거 여행중인 2010년만 해도 이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후시미까지는 20분 정도 걸려서 가볍게 도착했지만, 문제는 돌아가는 버스가 30분에 한 대씩 밖에 없기 때문에

구경 시간과 버스 타는 시간을 잘 계산해가며 움직여야 했죠.

엄니의 몸 상태를 생각해서 약 2시간 정도만 구경하고 바로 버스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쿄토에서도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은 꽤나 많은 편입니다. 군것질 거리도 많아서 이 정도면 나카우에서 먹을 필요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돈 많은 신사다 보니 시원시원하게 넓고 건물도 큼직큼직합니다.

이나리 신사에 대한 이야기는 제 블로그의 산인(参院) 여행기에 적어놨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생략합니다.

 

개인적인 호불호에 의해 전 조용하고 아담한 이나리 신사를 좋아하지만, 후시미도 워낙 볼거리가 많아서 훌륭한 관광지임에 틀림없죠.

 

 

 

신사 들어가기 전에 엄니가 잠깐 앉아서 물 마시고 쉬는 동안 꽃사진이나 담아봅니다.

후시미 타이샤는 코스를 전부 돌게 되는 경우 거의 산을 한바퀴 오르내리게 되기 때문에

엄니와 함께 그렇게 돌아보기엔 부담이 되고 해서, 신사 뒤편의 센본 토리이(千本鳥居)만 통과하는 걸로 마치려 합니다.

 

 

 

엄니가 자주 가시던 단체 관광 여행은 중간에 군것질할 시간이 별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가방속에 물과 간식거리를 들고 움직이는게 습관이 되신 것 같네요.

 

제 경우엔 홀로 여행 때 즐거움이 이것저것 군것질 해 보는 것이라

굳이 먹을 거 넣어와서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는 게 차이점이라 할까요.

 

 

 

쿄토는 어느 문화제든 시내에서 버스 타고 30분을 넘기지 않는 거리에 위치할 만큼

도시 전체가 문화제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입니다.

 

유명 관광지는 어마어마한 관광객과 함께, 스폰서 형식으로 기업들이 제공하는 봉납금으로 유지가 될 정도로 규모가 크죠.

이곳은 서기 700년경 외부 씨족인 하타(秦)씨쪽을 기리는 신사로 세워졌는데, 하타 씨는 현재 신라 혹은 백제의 후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실제 신사는 화재로 소실된 후 1499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하네요.

 

 

 

신사 입구 앞에서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안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그 중 매우 독특한 패션을 자랑하는 여성 두 분이 서 있어서, 죄송하지만 망원으로 스윽 당겨 뒷모습만 찍어 봤습니다.

 

앞모습까지 찍으려면 역시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전 새가슴이라 그런 시도를 하기가 힘드네요.

저런 걸 무슨 패션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예식 행사가 있을 때 악기를 연주하거나 안무를 피로하는 무대입니다.

후시미 타이샤는 관리 상태가 최상급이라 경건하고 깔금해 보이긴 하지만 시간의 흔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점이 조금.

 

기분탓인지 모르겠는데, 엄니 복장이 다른 동년배 관광객들에 비해서 좀 눈에 띄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목도리로 포인트를 준 것이 패션 센스란 것일까요.

 

 

 

이나리 신사가 원래 농사의 신을 모시던 곳이라

예전부터 사업 번창과 안녕을 위해 기업들의 기부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

천년 수도 쿄토에서도 이름난 후시미 지역이다 보니, 관광객들 역시 줄서서 세전함에 돈 넣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등산객들이 돌맹이 하나씩 모아올려 만드는 탑과 비슷한 느낌과 비슷한데

작긴 하지만 돈과 함께 기도를 올린다는 게 어찌보면 일본인의 실리적 성격이 표현된 것 아닌가 싶더군요.

 

 

 

후시미 이나리 신사는 몇몇 특정한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좀 아시는 분들은 그걸 기대하고 계시겠지만, 저와 엄니는 일단 그거 보기전에 주위를 좀 둘러봅니다.

 

사람이란 게 바라는 건 또 얼마나 많은지, 끝도 없이 늘어선 에마와 종이학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네요.

신사는 그냥 빌고 싶은거 빌면 되니까 딱히 학문과는 관계 없는 이곳에서 합격하게 해 달라는 소원 쓰는 것도 잘못된 건 아니지만

쿄토에는 학문의 신이 살고 있다는 텐만구도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곳에서 소원 비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뭔가 둘러보면 볼수록 부유한 신사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게, 신들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는 듯 합니다.

 

 

 

에마는 둘째치고, 이 종이학은 정말 정성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자세히 보니 한 줄로 꿰인 종이학을 모아서 한 묶음으로 걸어놓은 듯 한데

아마 친구들과 함께 한 줄씩 만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 현실주의라자 그런지 이런 거 정성으로 만들어서 소원 비는 일을 해 본적이 없군요.

 

 

 

그래도 그 작은 소원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렇게 저한테 좋은 셔터찬스를 남겨주게 되었으니

어찌보면 개인적인 소원이라도 결국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니는 애마를 보시더니 적어서 걸지 말고 기념품으로 사 가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역시 리얼리스트.

 

 

본당 주변을 구경하고 난 뒤 드디어 후시미 이나리 탸이샤의 진짜 볼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 전에 이곳의 주인격이나 마찬가지인 여우상도 한 번 찍어주고.

 

농사의 신인 이나리노카미의 사자 역할을 하는 여우이기 때문에 입에 벼이삭을 물고 있습니다.

여우는 원래 신이 아니지만 워낙 유명해지나 보니 이나리 신사가 여우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죠.

 

 

 

후시미 타이샤는 제 입장에서 참 복잡한 상념이 떠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의 입구에서부터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만들어 진 신사이다 보니 풍경도 좋고 자연에 둘러싸여 산책하는 재미가 있는 곳인데

원래 붐비는 쿄토 안에서도 관광객이 끊일 날이 없는 곳이라서, 혼자 느긋하게 거닐어 본 적이 없네요.

 

제가 이곳을 매우매우 좋아했다면 새벽에 와서 환상적인 사진을 담아보겠지만

앞서 말했듯 센본 토리이 하나 빼고는 너무 호화스러운 느낌이 나는 신사라서 그렇게까지 힘을 쏟고 싶지도 않고 말입니다.

 

사진만을 위해서 간다면 새벽부터 해질 녘까지 하루종일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곳이긴 합니다.

 

 

 

쿄토, 혹은 일본 관광 가이드에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이 모습.

후시미 이나리 타이샤를 유명하게 만든 센본 토리이(千本鳥居) 입니다.

번영을 바라는 상인들이 하나씩 하나씩 봉납한 토리이가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이 풍경은

맑은 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햇살이 비칠 때가 가장 환상적이라고 하더군요.

 

혼자서 조용히 이 길을 걸으면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된다고 하는데

사실 이 사진도 관광객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단 몇 초 사이에 간신히 담은 녀석이죠.

 

태양 각도가 적당히 떨어질 때 삼각대 가져다 놓고 조용히 찍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유명한 사진가가 아닌 이상 그런 사치를 누리긴 힘들겠죠.

 

 

 

토리이 터널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굵고 큰 토이리와 작고 촘촘한 토리이 등 여러가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을 한바퀴 도는 길 사이사이에 계속 토리이가 늘어서 있기 때문에

이 신사를 한바퀴 돌려면 거의 2시간 가까운 낮은 산행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엄니 체력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패스.

 

보통 버스 관광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센본 토리이의 입구 부분만 통과해서 보이는 이 곳 사당까지만 보고 돌아가는게 일반적이죠.

 

센본 토리이를 통과하면 조그만 사당이 나오는데, 거기 걸려있는 애마는 본전 쪽의 애마와는 사뭇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우 얼굴 모양을 한 애마에는 귀와 눈썹만 그려져 있는데, 자기가 그리고 싶은 나머지 표정을 그리면 됩니다.

별의 별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런 다양한 표정 자체가 여우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보면 좋은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토리이는 기업들이 설치하는 커다란 녀석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역시 상술은 굉장하다고 해야 할까요. 경내 판매점에서 개인 관광객들을 위한 미니 토리이도 판매중입니다.

이렇게 기둥에다가 자기 이름 쓰고 헌납하는 것이죠. 애마에 비해서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닐 것 같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이라면 여기다 써 놓고 돌아오기보다는 아마 사서 갖고 갈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엄니는 여우 얼굴 애마를 보면서 재밌어 하십니다.

이 일대는 본전 쪽과 달리 길도 좁고 센본 토리이 촬영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좀 북적이고 있었죠.

엄니 체력을 생각해서 이 부근까지만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합니다.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부분이 보인다. 아마 이곳을 찾으려면 지도 없어도 행렬만 따라가면 될 듯.

오랜만에 보는 일본의 '옛 마을거리' 모습이다. 교토에 가봤다면 비슷한 건물이나 짧은 마을거리는 볼 수 있었겠지만

규모와 완성도면에선 이 정도 거리를 찾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곳은 국가 중요 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니까.

 

옛날 일본의 마을이 전부 이런 모습은 아니고, 원래 이런 형태는 쇼군의 성이나 도시의 주요 시설 등에서 직선으로 뻗어나온

숙박 시설과 상가가 밀집한 지역의 모습이다. 바닥이 콘크리트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약 300여년 전의 모습을 잘 간직한 편.

 

물론 부유한 도시야 이 정도로 잘 가꾸어졌지만 사실 이 거리의 건물들은 보수를 너부 잘해놔서 깔끔하기 그지없다.

나무에 옻칠을 열심히 해서 벌레를 방지하긴 했지만, 예전의 건물이 이 정도로 깔끔하진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아주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정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해놨다간

어디 제대로 들어가 식사 한끼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발생될 수도 있고, 이곳 주민들의 거주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슬쩍 현대식 증축이 이루어지고는 있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에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심히 하긴 했다.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래도 타카야마에서는 좀 도움이 될지도'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 사진들의 결과물에 트러난다.

이런 옛 마을거리는, 원래부터 오래된 목재를 사용하는데다가 거기다 옻칠을 몇 번이고 더해서 상당히 시커먼 모습이다.

상점가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될만큼 처마나 지붕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그림자도 매우 잘 생기고.

그러다보니 날씨 쨍한날에 가서 사진 찍으면, 카메라의 관용도를 훨씬 능가해 버리는 강한 명암대비가 생겨나 버린다.

 

푸른 하늘을 살리자면 건물이 전부 시커멓게 변하고, 건물의 색을 살리자면 하늘은 순백색이 되어버린다.

특히, 해의 방향이 일정한 쪽을 가리키고 있으면 한쪽 거리는 화사하게 잘 보이고 나머지 한쪽은 어둠속에 잠겨버리기도 하고.

이번 카메라의 관용도는 필름을 능가할 정도로 넓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JPG 파일만으로 암부와 명부를 살리기엔 벅차서

RAW 촬영후 좀 어색할 정도로 보정을 가해서 양쪽을 모두 살려봤다. 위의 두 장이 보정을 강하게 한 녀석과 적당히 한 녀석.

 

이런 식으로 보정하면 HDR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데, 본인은 HDR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그렇게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다.

 

 

 

비교를 위해서 '진짜 옛 마을거리'의 비오던 날 사진을 올려본다. 화창한 날씨보다 안개낀 날씨가 더 어울리는 마을.

철도도 없이 자동차로만 갈 수 있는 나가노현 깊숙한 오지의 옛 마을거리 츠마고쥬쿠(妻籠宿)라는 곳이다.

 

옛날 수도였던 쿄토와 도쿄를 잇는 길은, 해안선을 따르는 토카이도(東海道)와 중앙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서 나 있는 나카센도(中仙道)가 있었는데

나카센도는 현재 자동차로 지나가기에도 굉장히 험한 산세를 자랑하는 협곡 사이에 난 길이었기에

그 긴 거리를 가는 동안 중간중간 산골 마을에 역참과 같은 장소를 지어서, 숙박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형성이 되었다.

나가노현의 이런 마을거리는 바로 그런 중간경유지의 역할을 했던 장소.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옛날엔 대체 어떻게 이런 산길을 지나서 쿄토와 도쿄를 왕복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단순한 여행 목적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상인들이나 영주의 명을 받들어 출발하는 고관직들이 십수 명의 하인들과 함께 지나다녔는데

내가 신세졌던 작은 마을에는 1년에 한 번씩 그 관료들의 출정식을 재현하는 축제를 열기도 한다.

무사계급이 걸어서 갔을리는 없고, 말을 타고 나카센도를 넘나들었는데, 짐을 매고 따라가는 하인들의 수고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카센도의 길은 그 절경만큼이나 험하기로 유명했다.

 

이곳과 그 앞의 역참마을 마고메쥬쿠(馬籠宿)간의 거리는 8km 정도인데, 아직까지 그 두곳을 걸어서 이동해 볼수 있다.

등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한 때를 보낼수 있을만한 절경중의 절경이고, 실제로 나카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통한다.

마고메쥬쿠라는 단어는, 말조차 통과할 수 없어서 그곳 역참에다가 놔두고 간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만.

 

햇살 쨍쨍한 타카야마의 거리가 내 마음을 소문만큼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으려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타카야마의 거리로 시선을 넘긴다.

이곳은 역참마을이 아니라 성 주변으로 세워진 상가거리였고, 특히 양조장이 유명한 곳이었다.

 

타카야마가 비록 산 속의 오지이긴 해도, 사실상 면적만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게 깜짝 포인트인데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산이 포함되는 이곳 타카야마시의 면적은 서울의 3배가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산이고 인구는 10만명도 안된다는 점 역시 재미있다.

 

천해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어서, 자연환경 역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요즘엔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손길이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거리의 풍경인데,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수백년간 이어온 생활의 일부분이라

손님맞이와 접대에 있어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게 장점이라고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이 물이 풍부하고 깨끗한 곳이라 거리 사이엔 항상 물이 흐른다.

거리쪽이 젖어있는게 보이는데, 이건 더운 날씨탓에 가게 주인들이 틈 날 때마다 바가지로 이곳 물을 퍼서 거리를 식히기 때문.

 

그러고보니 일본을 왔다갔다 하는게 워낙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내게 큰 인상을 주었던 것이, 이렇게 마을 안을 흐르는 깨끗한 수로의 풍경이었다는게 생각난다.

지금은 충분히 더러워져 버린 경북 보현산 자락의 작은 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인데

80년대 중후반 까지만 해도 그곳 산기슭에서 내려오는 개울가에서는, 바위만 들쳐도 가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한 시간 정도만 힘좀 써도 그날 저녁엔 짭쪼름한 민물가재찜을 한솥 가득 뜯어먹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간이 흘렀지만 왜 보현산 자락의 개울가는 악취나는 똥물로 바뀌었고, 이곳 타카야마는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인가.

이곳 타카야마가 도시 규모도 월등히 크고, 인구도 많다. 보현산 자락은 예전부터 손꼽히는 청정지역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시커먼 도시 먼지에 뒤덮혀 살았던 나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을 한국에서는 죄다 잃어버리고

일본의 산골 마을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자연 경관이나 사람들의 친절함이나 모두 다 말이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며 찾아가곤 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신의 뿌리에 괴리감을 느끼고 씁쓸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도쿄같은 대도시에도 남아있으니, 이런 곳에 인력거꾼이 있다고 이상할 거 하나도 없지만

이번에는 타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두 가지 의문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째로, 이곳 옛 마을 거리는 그렇게 길이가 길지 않다. 느긋하게 걸어서도 5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간다.

거기를 인력거에 타고 움직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인력거꾼은 이곳 토박이라서 아주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니까 좋긴 하지만.

둘째로, 아무리 돈을 지불한다지만 3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사람이 끄는 인력거에 탄다는 것은

미안해서 바늘방석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두 명이서 타는 관광객들은 과연 편안하게 앉아는 있을까 싶다.

 

쉬고있는 인력거꾼을 보면 정말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는데, 60즈음 되어보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50대 초반의 아주머니 인력거꾼도 있다.

얼핏얼핏 지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물 사이사이에 붙여있는 문양에 대한 설명까지 아주 세세하게 잘 설명을 하고 계신다.

이런 더위에 긴 거리를 달리기도 좀 그렇고, 이곳의 인력거란 재미있는 탈것이 아니라 실력좋은 가이드 역할이 주가 되는 듯 하다.

 

흥미가 동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확실히 비싼 편이고, 본인의 덩치를 생각하면 미안해서 도저히 앉아있을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아파트에서도 여건만 된다면 이렇게 식물 블라인드를 만들고 싶다.

전통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2008년 경부터 일본에서는 도시의 주택이나 빌라같은 곳에서도 이런 식물 블라인드가 유행했다.

자연과 가까워진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있었고, 실제로 실내온도가 꽤나 내려가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고풍스러운 거리의 덩쿨은, 한낮의 더위 아래에서도 뿌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시에서 자란 본인이 이런 모습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되려 도시에서 태어나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여관, 식당 외에도 향토박물관 고미술관 등의 볼거리 역시 곳곳에 숨어있다.

물론 입장료도 나가고 대부분이 철저하게 사진촬영 금지라서 나에게는 조금 멀게 느껴진다.

 

시간도 남고 날씨도 덥고 돈도 널널한 현 상황이라면 찻집에라도 들어가 여유를 만끽하는게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이겠지만

벌써부터 관광객이 상당히 많이 몰리고, 몇몇 가게 앞에서는 대기열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라서

고질적인 대인기피증이 또 발을 잡아끈다. 옛 정취 풍기는 찻집에서 사람에 치여가며 차를 즐기는 본인의 모습은 상상이 안된다.

 

 

 

30년동안 봐 왔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한자로 보이지가 않는 녀석이다.

한국어 발음도 한동안 기억을 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일본 가서도 이거 발음 어떻게 하는가 싶어서 고심하던 글자.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 이곳 타카야마인데, 아무래도 저 한자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한번 들어가볼까 싶었는데, 사진촬영 금지라고 딱 붙여와서 흥미가 식는다.

설사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기념품점에 저런게 붙어있으면 그냥 애정이 사라지는 기분.

어차피 기념품 살 생각도 전혀 없기 때문에, 재미있는 간판만 한 장 찍고 길을 나선다. 설마 간판은 찍어도 되겠지.

 

혹시나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데코보코'라고 읽는다.

 

 

 

나고야에서 유명한 먹거리라면 지역 토종닭인 코친이 있다고 예전에 적은적이 있는데

이곳 히다 고원 지역에서는 소가 유명하다. 히다 고원의 기후와 맑은 물이 방목에 적합하다고.

일본 3대 소고기라고 하면 보통 코베(神戸), 마츠자카(松坂), 히다(飛騨) 소고기를 꼽는다.

 

이곳의 특산품인 히다규(牛)는 한국의 한우와 비슷하게 마블링이 예술이며, 특히 지방층이 사슴의 모습처럼 새겨져 있는 녀석을 최고로 친다.

스테이크와는 안 맞다는 마블링 소의 편견을 깨고, 절묘하게 숙성된 두꺼운 고기를 세심한 타이밍으로 구워 만드는 히다규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소고기 이야기는 그만 하고, 이곳 히다 고원은 물이 깨끗하기로는 일본에서 알아주는 곳이라

당연히 양조장도 발달해 있다. 좋은 술은 좋은 물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산속 마을이다보니 여전히 전통주쪽에 강세를 보이는데, 위의 거대한 덩어리가 양조장임을 표시하는 간판이 된다.

 

스기타마(杉玉)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삼나무 잎을 뭉쳐서 만드는데

올해의 술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처음엔 삼나무의 푸른색을 띄지만 시간의 경과와 함께 저렇게 색이 바랜다.

당연히 술의 숙성시간도 예측할 수 있기에, 양조업자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 거리에도 300년이 넘은 양조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무료 시음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술맛을 잘 모르니 패스.

이름만은 들어본 '귀신죽이기'(鬼殺し)라는 술도 있다. 귀신도 죽일만큼 독하고 매운 술이라고 한다.

맥주만으로도 충분한 내가 그런거 시음한다고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홀로 여행이란게 여러가지로 홀가분한 점이 있지만, 이런 점에서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조금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온다면, 저런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고 마셔보는 사람 옆에서 대리체험도 느껴볼 수 있을테니까.

 

 

 

기념품점, 음식점, 찻집, 여관 등으로 가득한 거리라서

자꾸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들어가서 구경해봐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조바심 비슷한 감정도 들지만

미관을 해치지 않는 소박한 장식들이 워낙 잘 배열되어 있어, 그것만 구경해도 눈이 즐거울 정도다.

 

대도시 한가운데니 비교하기에는 급이 맞지 않지만, 인사동의 미관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유명해져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이런 거리의 분위기가 그저 부러워질 따름이다.

 

 

 

옛날 거리를 빠져나오니 주인 잃은 인력거가 덩그러니 구석에 놓여있다.

힘든 가이드를 마치고 잠깐 쉬러 간 걸까. 뒤에 걸린 모자가 그 고단함과 함께 휴식의 감미로움을 동시에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애초에 이 거리는 저런 인력거가 등장하기도 전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묘하게 어색하긴 하다.

인력거가 흥행했던 건 100여년 전 메이지 시대였는데, 이곳의 풍경은 넉넉잡아 300여년 전의 모습이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통과할만한 거리라서 약간 허탈한 느낌도 든다.

상기했던 것처럼 맑고 쨍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도 아니긴 하고.

그래서 안개낀 날이나 눈이 쌓인 겨울에 더욱 인기가 많아지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런 풍경을 즐기면서도 배가 덜 부른 불평이나 하는 자신을 살짝 힐난하면서, 방금 지나왔던 옛 거리의 뒷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상하좌우 전부다, 그것도 내부까지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사실 앞서 지나온 옛 거리도 뒷부분은 평범한 근대식 주택의 모양을 하고 있다.

 

되려 타카야마 정도의 도시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할까.

정말 산골짜기에 위치한 츠마고쥬쿠 같은 역참마을은 겉과 속 할것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이지만

타카야마에서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바로 옆의 현대식 마을과 불협화음을 이루는게 아닐까 싶기 때문에.

 

 

 

일부러 가꾸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잘 큰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풍경.

물이 깨끗하지 않은 곳 주변의 나무나 잡초들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람과 맞닿아 있는 자연의 건강 척도는 자정 작용의 범위를 넘어서는가 마는가가 중요한 경계선이 된다.

관리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썩어버리는 물. 그걸 자연이라고 개천이라고 할 수 있나?

 

별로 동하지 않는 기분으로 여행을 왔어도, 이런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일단 보람은 충분히 느낀다.

이런 곳에서는 너무 많이 자란 수풀을 가을즈음에 확 잘라내 버리는데, 그것조차 기분좋게 머리 깎는 수준으로 느껴지니

당연히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렸어야 할 이런 풍경은 이제 관광지와 같은 희소성을 지니게 된 것일까. 즐거운 일은 아니다.

 

 

 

타카야마에는 이런 옛 거리가 세 군데 존재한다. 전부 가까워서 둘러보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데

지금은 돌아가면서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사찰만 구경하고, 저녁노을이 멋들어질 무렵에 다시 거기를 걸어볼까 한다.

 

여행중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는 성격이라서 그냥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역시 쇼핑이나 구경에 관심있는 일행이 함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듯 하다.

본인은 엄니가 백화점서 옷 구경하는 것도 그리 지루해하지 않는 타입이라.

 

 

 

아담하고 조그만 가게도 많은 반면 100평은 가볍게 넘어보이는 큰 건물에, 기념품과 식당 등을 모두 차려놓은 가게도 있다.

 

관광객들이 보고 돌아가는 타카야마는 사실 마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쿄토같은 본토 사람들도 무지하게 많이 찾아서 좀 어지러운 곳보다, 외국인 응대가 뛰어난 이런 산골마을에 외국인들이 많이 모여들다보니

2007년 일본 최초로 미슐랭 여행 가이드 별 3개를 획득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좀 많다 싶을 정도의 가게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미슐랭 가이드란게, 가보면 황홀해서 두 다리로 서있기도 힘든 임팩트를 주는 그런 척도가 아닌 터라

동양인이 너무 기대하고 갔다가는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후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주위에 온천 풍부하고 공기좋고 건물 깔끔하고 음식 맛있고 사람들 인심 좋은 곳이라

하루이틀 볼거리만 찾아다니며 관광을 즐겨서는 완전히 느끼지 못할 느긋함이라는게 존재하는 곳이다.

여행경비 생각에 자꾸만 초초해지는 마음도 이해가 되는데, 이런 곳에서는 구경이라는 행위보다 감상이라는 행위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카메라 전원도 끄고, 왔던길 주변을 한참 서성이면서 멍하니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흑백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전통 가옥 너머로 보이는, 파괴적일 정도로 쑥쑥 자라나는 초목들의 조합은

그 밀도만큼은 도시의 빌딩숲과 사이사이 달리는 전철이 가지는 빡빡함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단지 향기가 다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