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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9.12  엄니와 여행 - 나오시마 2편 6
  3. 2015.09.08  엄니와 여행 - 야시마 2편
  4. 2015.09.06  엄니와 여행 - 야시마 1편 4
  5. 2015.09.04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3편 6
  6. 2015.08.27  엄니와 여행 - 시코쿠무라 2편 4

 

 

베넷세 하우스는 선착장과 지중미술관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탓에

얼마 안되는 셔틀 버스도 지중미술관행과 선착장행이 따로 있어서 조금 귀찮습니다.

번듯한 정류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땡볕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이런 날씨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네요.

 

앞에서 올라오는 스쿠터가 참 부럽더군요. 저도 엄니 태우고 스쿠터 몰 자신은 없지만.

 

 

 

선착장으로 직행하지는 않고 중간에 내려서 선착장행 버스를 또 기다립니다.

엄니는 더워서 못 움직이겠다고 하시고, 저는 버스가 오기 전에 주변 풍경을 보며 잠깐 산책 나갔습니다.

 

베넷세 미술관에서 슬쩍 보이던 해변가입니다. 저 쪽엔 베넷세 하우스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인 '비치'가 있죠.

호텔이라고 하기엔 그냥 방갈로 같은 분위기죠. 분위기를 즐기기엔 좋습니다만 미술관 안쪽 숙소와 달리 편의시설쪽이 불편합니다.

 

해변가에 은근히 보이는 노란색과 검은색 물체도 미술 작품입니다.

직접 가 보면 자세히 볼 수 있겠지만 저기까지는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냥 그리 멀지 않은 쿠사마 야요이 작품이나 보러 갑니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아서 물놀이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는군요.

나오시마 역시 일반인들이 평범하게 거주하는 섬이기 때문에 딱히 특이한 일도 아닙니다.

 

조그만 섬이다 보니 역시 터를 잡고 살기에 그리 편리한 편은 아니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라면 올 때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충분한 곳입니다. 애매하네요.

 

 

 

다행히도 작품 주위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네요.

멀리서 보는 모습도 충분히 좋은 느낌이라서 일단 한 번 찍어봤습니다.

워낙 눈에 띄는 색을 하고 있으니 사진이 잘 살아나는 느낌이네요.

 

나오시마의 외부에 노출된 전시작들은 대부분이 접근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만

이번 여행중에 외부인이 만져서 부서지거나 작품에 낙서 등이 그려져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네요.

부디 오래도록 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쿠사마 야요이 작가는 구글로 검색만 해 봐도 본인 사진이 나오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 모습만 봐도 딱 이런 작품 만들만 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녀가 태어난 당시는 정신분열증이 병이라기보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주위 시선도 그렇고 아버지에게도 학대를 당하면서 참 힘든 시절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쿠사마 야요이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이런 기하학적인 물방울과 함께 남근의 재구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쪽 작품도 쉽게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한 번 감상해 보셔도 될 듯.

 

 

 

 

돌아올 때의 페리는 아침과 달리 굉장히 크고 널널하네요.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료수를 뽑아마십니다.

 

그리 오랫동안 돌아다닌 건 아니지만 휴식을 취할 만한 시간이 식사때 말고는 없었기에

다리가 꽤나 저리고 아프더군요. 엄니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피곤하실거라 봅니다.

 

신발도 벗어놓고 천천히 흘러가는 바다 풍경을 감상했지만

그 신발을 벗고 쉬고 있으니 금새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어서 또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봤죠.

 

 

 

아주 짧은 나오시마 여행이었지만 여러가지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일단 맛을 봤으니 언젠가는 베넷세 하우스에서 하루 묵으며 섬 구석구석을 더 파고들 날을 기약해야겠죠.

 

타카마츠의 위도를 생각했을 때 짐작을 했어야 하지만, 이 곳은 어쨌든 여름에 상당히 더운 곳이라서

다음에는 조금 더 서늘해진 후에 도전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배를 타고 있는 동안엔 바닷바람 덕분에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자전거여행 당시의 추억이 떠오르곤 하네요.

 

그 무지막지한 짐덩어리와 무지막지한 몸덩어리를 자전거에 싣고 저기 보이는 저런 곳을 1년동안 달렸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저도 젊었을 때 나름 막나가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굳이 나오시마가 아니더라도 타카마츠는 원래 일본 내에서도 문화의 도시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런 희한한 녀석까지 항구에 서 있는 것은 아무래도 나오시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도 당연히 나오시마만 예정에 넣어놨기 때문에 딱히 서둘러 가야 할 곳은 없습니다.

항구에 왔으니 그 옆에 서 있는 거대한 선포트 타워에도 한 번 들어가 봐야겠죠.

 

 

 

이 주변엔 선포트 타워 말고도 타카마츠 역 등도 위치해 있어서 중심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도시라고 하기엔 꽤나 한적한 풍경이 펼쳐지긴 합니다만.

 

방금 전까지 나오시마의 자연과 거장들의 작품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런 거대한 구조물 사이사이에서 드러나는 인공미가 살짝 낯설게도 느껴지네요.

 

 

 

물론 이 타워도 꽤나 정갈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나름의 매력이 있긴 합니다.

중간층 쯤에는 여러가지 먹거리도 있습니다만 엄니와 저는 조금 전에 나오시마에서 멋들어진 식사를 마친 참이죠.

 

배도 고프지 않다고 하셔서 그냥 전망대 쪽에나 한 번 올라가 보려고 합니다.

원래 전망대를 위해 만들어진 타워가 아니라, 제대로 풍경 감상하려면 최상층 식당에 앉아야만 하지만

다행히도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무료로 바깥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는군요.

 

 

 

10명도 서 있지 못할 정도의, 식당 들어가는 입구 한 켠에 마련된 조그만 공간입니다만

그렇게라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면 올라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겠죠.

 

이번 여행은 이상할 정도로 다른 관광객과 마주치질 않아서 도시를 엄니와 저만 휘젓고 다니는 느낌이 듭니다.

엄니는 풍경을 보시더니 시골인 줄 알았는데 큰 도시네 하고 신선해 하십니다.

 

대구에서 60년을 넘게 사셨지만 우방타워에도 올라간 적이 없는 엄니라서

실제 우방타워에서 대구 시내를 내려다 보면 대구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세삼 놀라워 하실 것 같네요.

 

 

 

바다와 맞닿은 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풍경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저 멀리서는 요트 대회가 열리고 있군요. 정해진 코스를 따라 촘촘히 달려가는 요트 모습이 왠지 정겹습니다.

 

섬나라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상 레포츠 쪽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는 듯.

같이 자전거 여행 하던 17세 소년은 바다가 없는 내륙쪽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를 보면 수영하러 가고, 낚시하러 하고 하면서 즐거워하던 기억이 나네요.

저 역시 내륙쪽인 대구에 살고 있었지만 낚시하러 간다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타워를 내려와서 지하의 기념품점에 들러 봤습니다.

저는 기념품에 별 관심이 없지만, 지인들한테 선물해주면 딱 좋겠다 싶은 녀석들이 꽤 많더군요.

악세사리 등을 사고싶다는 느낌이 만들게 파는 능력은 참 여러번 봐도 대단하다 싶네요.

 

우동현이다 보니 우동에 관련된 상품도 많고, 손가락보다 조금 큰 크기의 우동 마그넷 등이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만

엄니가 아무것도 사지 않는데 제가 지인들 주려고 뭔가 사는 것도 좀 그렇더군요.

 

일단 여행 자체가 엄니에게 구경 시켜드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건 일단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앉아서 좀 쉬는 겸 딸기 빙수 하나 시켜봅니다. 딸기향 소스가 아니라 진짜 얼린 딸기와 우유가 들어있는 녀석이네요.

 

아삭아삭한 딸기와 우유 빙수가 나름 잘 어울립니다. 인공 소스보다 훨씬 덜 달아서 갈증 풀기에 좋을 듯.

일본에 도착한 이후로 연일 최고기온이 37~38도를 넘나들고 있어서 강행군은 무리였습니다.

내일은 우동투어 후 기차를 타고 지역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른 시간이지만 간식거리 잔뜩 들고 숙소로 돌아가 푹 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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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미술관의 입구는 매우 작습니다. 실제로 입구만 보면 미술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정도죠.

그도 그럴것이 지중미술관이라는 이름답게 실제 미술관은 대부분 지하에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적인 구조물을 자연과 조화시키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 미학과 맞물려 바깥에서는 기하학적인 문양 몇 개가 보일 뿐이지만

내부에는 별도의 인공 조명이 별로 설치되어 있지 않고 전시품의 대부분이 자연채광을 통해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죠.

 

 

 

코베의 잡지 코베코의 2013년 4월 기사 사진입니다.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미술관 자체가 예술 작품으로서 설계되어 있고

전시된 작품들 역시 자연 채광으로 인해 시간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 곳의 작품과 지중미술관은 떨어질 수가 없는 일체화된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그 탓에 월터 드 마리아, 클로드 모네, 제임스 터렐의 세 작가의 작품만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설치미술이 다들 그렇지만 설계부터 미술관과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과 떨어진 독립공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미술관 자체가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작품들을 보기 위해 통로를 걷는 게 아니고

걸어다니는 행위 자체가 작품을 감상하는 수단이 되죠.

 

엄니와 저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안도 타다오 특유의 향을 느껴봅니다.

자연과의 조화에는 시간의 흐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몇 시간이고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시시각각 변하는 건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듯.

 

 

 

안도 타다오의 작품들은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없는 무채색의 날카로운 직선 블록들로 인해 조용하고 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콘크리트에서 조금 시야를 넓혀 하늘과 주변 풍경을 함께 보게 되면 그 인공미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신기한 인상을 받게 되죠.

 

미술 작품은 글로 설명하기에 제 필력이 워낙 부족하기에 설명하기 힘드네요.

어차피 감상하려면 직접 보는 수 밖에 없기도 하고, 이 사람의 건축물은 사전 지식이 필요한 편도 아니라서

여행 목표로 잡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관 내부와 전시품들은 촬영 금지입니다만 이런 통로는 찍어도 관계없어서

슬금슬금 이동을 하며 빛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미술관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했습니다.

 

굉장한 정밀도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블럭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그것 역시 인공미를 머금고 있죠.

황량하다 싶을 정도로 통일된 회색 건물이 차갑고 날카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 작가의 능력 탓일까요.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는 통로를 아무렇게나 찍어보면

모던 아트틱한 선의 흐름이 단편적으로나마 느껴집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계산된 블록의 구멍까지 기계적인 정교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죠.

시선에 따라서 철저하게 인공적이기도, 조화될 수 없을 듯한 자연과의 조화로움도 느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작품의 수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놀라운 체험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촬영은 금지라서 소개해 드릴수는 없고, 마찬가지로 코베코에 실린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인용해 봅니다.

지중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인 'Time, Timeless, No Time' 입니다.

 

큐브릭 감독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모노리스를 연상케 하는 완벽한 인공미로 압축된 공간이죠.

소리가 없이 자연광에 의한 시간의 변화만을 이용하여 그 시간의 흐름조차 엄숙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실제로 보면 굉장히 압도적인 느낌을 받는데요.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영원'과 '완벽'한 공간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와닿는군요.

 

날씨가 맑았던 게 여기서는 참 이득이 되었네요. 완벽한 채광을 통해서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공간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품이 적긴 해도 시간을 들여 꼼곰히 둘러볼 가치가 충분했기에 감상은 대만족입니다.

한 작품당 입장 인원과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용히 차례를 기다려 감상하다 보니 방해가 되는 요소도 없었죠.

 

작품에서 놀라움을 얻기도 하지만 관람객 모두가 미술관의 분위기를 잘 따라서 차분하게 관람을 하니

뭔가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사바세계의 고통을 잊고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것 역시 즐거움의 하나였습니다.

 

지중미술관을 나와서 매표소로 돌아가면 베넷세 하우스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자금과 시간이 널널했다면 베넷세 하우스에서 하룻밤 묵으며 이 조용한 일탈감을 조금 더 오래 만끽할 수 있겠지만.

 

멀리 보이는 해변가에도 설치작품이 몇 개 놓여있습니다. 이동수단 없이 가기는 좀 힘들고

베넷세 하우스에서 묵는다면 저기까지 산책갈 만한 여유가 생기긴 하죠.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베넷세 하우스에도 저 쪽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한 매우 특이한 장소인 베넷세 하우스입니다.

안에 들어가면 에어콘 덕분에 시원해지니 이 끝장나는 폭염도 잠시 잊을 수 있겠네요.

 

호텔에 숙박까지는 못하겠고, 기품넘치는 식당에서 조촐하게나마 식사 한끼를 떼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지중미술관과 별개로 입장료를 받긴 합니다만 미술관의 분위기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요즘 정말 폭발적으로 중국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다행히도 이 당시엔 이곳까지 중국인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네요.

거기다 날씨가 야외활동이 위험하다고 경고 나올 정도로 무더웠기 때문에 사람이 꽤나 적은 편이었습니다.

 

미술관 내부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당연히 이 곳도 블로그에 남길만한 흔적은 별로 없네요.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카메라를 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여행의 목적 달성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꽤 큰 홀에 전시되어 있는 수다떠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은

사람 모습을 한 로봇 세 대가 이상한 잡담과 때때로 엄숙한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요.

그 중 한 녀석이 고장난 상황이라 그 점만은 참 아쉬웠군요. 엄니와 함께 '너무 떠들다 보니 고장났나보다'라고 속삭이며 지나갔습니다.

 

 

 

품격이 넘치는 식당에서 우아하게 한 끼 먹어보려고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사 마칠 때까지 손님이 엄니와 저밖에 없어서 편안하게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사람이 없어서 혹시 맛 없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지만 말이죠.

 

 

 

베넷세 하우스 역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작품이라 식당 안도 예술적인 느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들고 온 짐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도록 테이블 아래마다 바구니가 놓여있는 모습도 깔끔하네요.

 

맛있는 거라면 뭐든 좋아하시지만 역시 여행와서 가끔은 이렇게 멋있는 곳에서 분위기를 즐기는 것도 좋아하시는 엄니라

지금까지는 합격점이었고, 부디 식사만 맛있게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엄니가 입고 온 옷에는 커다란 꽃이 하나 그려져 있어서 왠지 엄니 역시 이 곳의 작품 한 점이 된 것 같은 느낌이군요.

 

 

식사는 도시락처럼 찬합 형태로 나왔습니다. 평범한 찬합이 아니라 여기도 예술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네요.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해 여기서 한을 풀어보자고 마구 찍어대고 있습니다만

사실 찍기 전에 미리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고 흔쾌히 승락을 받은 이후였습니다.

 

식당 자체도 미술관처럼 꾸며놓았기 때문에 먼저 허락 받지 않고서는 찍어도 되는지 조마조마할 지경이다보니 말입니다.

 

 

소소한 데서 꼼꼼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도시락 위에는 싱그러운 단풍잎과 함께 물까지 뿌려놓았더군요.

 

음식의 맛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데코레이션입니다만 역시 손님을 만족스럽게 해 주기 위한 배려에는 즐거워 질 수밖에 없죠.

 

 

 

엄니와 저는 각각 다른 도시락을 주문해서 서로서로 반찬을 바꿔 먹어봤습니다.

3~4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양에 비하면 확실히 비싼 편이긴 합니다만

미술관의 분위기 속에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는 대가로는 납득할 만 하더군요.

 

나오시마가 위치한 세토 내해가 좁은 해협이다 보니 해산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재료들은 부족함 없이 신선하고, 한 조각 한 조각 먹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곤 했습니다.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의 식사를 즐기기에 딱 적합한 느낌이네요.

 

 

 

제가 일본의 계란찜인 차왕무시(茶碗蒸し)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일식을 주문할 때는 가능한 한 이 녀석이 포함된 메뉴를 선택합니다.

새우나 가리비 등의 각종 해산물이 저 고운 계란찜 속에 잠자고 있죠.

예전에 소바집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단체 손님들을 위한 세트 메뉴에는 이 차왕무시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정리를 하면 가끔씩 손도 대지 않은 차왕무시가 남아있곤 했는데

이 녀석은 재활용을 하지 않고 그냥 버리기 때문에 혼자서 치우고 있을 때는 가끔 남은 녀석을 꿀떡꿀떡 삼키곤 했었죠.

 

 

 

유자즙을 이용한 살짝 달콤한 소스에 새우를 전분과 함께 갈아서 만든 경단을 넣은 요리도 참 깔끔하고 맛있더군요.

살짝 아쉬움이 들 정도의 양이지만 먹고 나면 맛있었다 하는 여운이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엄니나 저나 식사가 많이 나와도 절대로 남기지 않는 자연보호정신이 투철한 사람인데요.

이렇게 구별되는 맛을 가진 요리가 조금조금씩 나오는 메뉴는 조금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긴 해도 즐겁게 먹을 수 있었네요.

 

 

 

디저트로는 유자잼을 살짝 얼린 젤리가 나왔습니다.

입가심용으로 만들기엔 손도 많이 가는 녀석이지만 이런 걸 먹을 때면 이 식당이 그래도 정성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죠.

상당히 비싼 요리점을 가도 마지막에 나오는 게 인스턴트 디저트이거나 별 것 아닌 매실주스 한 잔일 때면 좀 평가가 박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평소보다 조금 더 귀족적인 분위기를 즐기며 몸을 충분히 식혔습니다.

나오시마에는 이 두 미술관 외에도 마을 여기저기 위치한 볼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쪽은 대부분이 떙볕 아래를 이동해가며 구경해야 하는 것들이라 엄니에게 무리가 간다고 판단해서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엄니도 이 정도 구경했으면 충분하다고 하시니 무리하지 말고 일찍 돌아가야겠죠.

친절하게 인사하는 베넷세 하우스의 스탭들을 뒤로 하고 다시 버스를 타러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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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를 구경하고 상점가를 빠져나오는데 아이 모자가 걸려있네요.

일부러 놓고 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아깝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적어서 상점가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인데, 한 할머니가 기념품 사라고 아주 적극적으로 저를 붙잡더군요.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제가 일본에서 겪어본 것 중 가장 강력한 호객행위였습니다.

적당히 괜찮다고 하고 가려고 해도 끈질기게 말을 걸고 사라고 하는 것 보니 왠지 야시마에 남은 경건한 느낌이 사라지는 듯 하네요.

 

 

 

참 이상하게 생긴 나무도 찍어가면서 왔던 길을 돌아갑니다.

두 나무가 합쳐진 것인지 위쪽만 모종의 이유로 고사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야시마 산은 절 이외에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책로가 있어서 한 바퀴 돌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립니다만

오전에 이미 시코쿠무라를 다녀오는 바람에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라 더 이상 엄니를 혹사시킬 수가 없습니다.

 

 

 

전망대를 가려면 절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갈 때도 다시 절을 한 번 마주할 수 있습니다.

엄니가 사진 찍는 걸 전혀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뒷모습이라도 몇 장 담을 수 밖에 없네요.

 

훗날 엄니가 한국에 돌아와서 저보고 '사진 찍는다고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말고 잘 따라다녀라'라는 말을 하신 걸 보면

엄니는 사진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가 봅니다. 보통은 여행가면 기념사진 찍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할 텐데 말이죠.

 

 

 

본당 옆의 너구리 두 마리도 한번 더 찍어줍니다.

 

이런 데 세워져 있는 조각상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남자는 수컷의 거시기, 여자는 암컷의 젖탱이를 만지면 가정평화(?)와 안산을 얻는다는 말이 있어서

잘 보면 그 두 부위만 맨질맨질합니다. 사람 피부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아침부터 30도가 넘었고 최고 기온이 37도에 다다를 만큼 기록적인 폭염이었기에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이후의 관광을 더 계획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제 욕심으로 엄니를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시켜 드리다가 엄니가 체력 문제로 뻗어버린 경험이 있기에

아무리 관광이라 해도 무조건 체력 우선으로 돌아다니려고 작정을 하고 왔으니까요.

 

정류소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잠깐 본 우물입니다. 지금은 온통 녹색으로 가득차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피투성이 우물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산 정상에 이 정도 우물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예전 겐페이 합전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서 우물 전체가 시뻘겋게 변했다는 설화가 남아있죠.

 

현재 보이는 녹색을 전부 붉은색으로 바꾸면 예전의 그 모습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어콘을 빵빵하게 켜 놨지만 직사광선 때문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의 버스를 타고 역으로 내려왔습니다.

나름 타카마츠에서는 유명한 관광지이긴 한데 역은 정말 아담하네요.

 

그래도 꽤나 귀여운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한 장 담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잘 보면 엄니도 보이네요.

 

 

 

어제 슈퍼에서 산 간식거리와 생수 등을 섭취하면서 땀을 식힙니다.

이 정도 더위에서는 괜히 식욕까지 사라져 버리니 곤란하지만, 엄니와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으니 괜찮습니다.

 

역이 참 아담하다 싶었는데 전철이 들어올 때 울리는 벨마저도 요즘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공공시설 관리의 차이점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은 낡았다 싶으면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은 낡은 것은 그대로 놔 두고 깨끗하게 유지시키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죠.

 

그래서 일본의 역들은 한국보다 낡았다 싶어도 더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야시마에서 돌아오는 전철은 숙소 앞까지 가지는 않아서 조금 걸어야 합니다.

갈아탄다고 해도 숙소 바로 앞까지 오는 것은 아니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꽤나 걸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그럴 바엔 그냥 산책하는 겸 조금 걷자고 생각하고 지붕 있는 상점가 밑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조금 길을 잘못들어서 15분 정도 딴 길로 샜었는데, 엄니가 우리들 이국 땅에서 미아 만들기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하시네요.

 

 

 

역 앞에 백화점이 있어서 들어가 볼까 물어봤지만 엄니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보통 일본에 오면 쇼핑도 좀 할 법한테 도통 관심이 없네요. 그거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나중에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서 편안히 여행을 시켜드릴 정도가 되면 좀 더 팍팍 사드리고 싶긴 한데

엄니 성격이 어중간한 거 살 바엔 최고로 좋은 거 사자는 주의라서

옷도 우연히 마음에 드는 거 찾으면 가격표에 붙은 자리수가 우주의 나이만큼 치솟을 때도 있거든요. 조금 과장이지만.

 

 

 

이틀 뒤에 우동투어를 예약해 놨기 때문에 지금 딱히 우동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뭘 먹어볼까 고민하는데 엄니가 밥은 그냥 가볍게 떼우고 호텔 돌아가서 차 마시면서 간식 좀 먹자고 하시네요.

 

그래서 서민들의 간편식인 요시노야 들어가서 가볍게 한 그릇 합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해서 저는 일본 가면 별미로 한 그릇 정도는 먹고 옵니다만

한국의 밥상에 익숙한 엄니는 이런 걸 식사라고 할 수 있나 하는 느낌이시겠죠.

 

 

 

그래서 엄니께는 원기 보충을 위해 장어덮밥 세트를 주문해 드렸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 기운을 차리시라고 주문해 드렸는데, 역시 저렴한 요시노야 답게 올라간 장터 상태가 그닥이네요.

제대로 된 장어를 먹으면 낫긴 하지만 여기서 과식하기 보다는 호텔서 차 마시는게 더 좋을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참아야겠죠.

 

장어 자체는 그럭저럭 맛있는데 이것만으로 밥 먹기엔 좀 양이 적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미소된장과 반찬도 함께 주문해 드렸네요.

 

 

 

돌아가는 길의 아케이드는 그나마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지붕 때문에 살 만 했습니다.

중간중간 괜찮은 옷이 보이는 가게에도 들어가 보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갔죠.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습니다만 오늘 예정은 이걸로 끝입니다.

 

내일은 꽤나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니 오늘 푹 쉬어주는것도 좋을 법 해서.

 

아케이드의 지붕엔 중간중간 이렇게 도시의 명소들을 그려놓았네요. 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지난 포스팅을 보셨다면 사진에서 아주 조그마하게 구경할 수 있었을 리츠린 공원의 붉은 다리네요.

 

 

 

여기 그려놓은 것들은 엄니와 제가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네요.

오른쪽의 선포트 타카마츠는 내일 예술의 섬 나오시마로 가기 위해 들러야 할 항구입니다만

오른쪽의 타마모 성은 방문 계획이 없는 곳입니다.

 

타마모 성은 일본에서도 드물게 바닷가에 세워진 성인데 메이지 시대에 완전히 박살나 버리고 지금은 성터만 남아있죠.

현재는 타마모 공원이라고 아주 일부분만 재현해 놓은 상태입니다. 산책하긴 좋지만 리츠린 공원을 보고 나서 저기 가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현재 천수각을 재현하기 위해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제대로 완성이 되면 바닷가의 성이라는 특징상 꽤나 관광객이 많이 찾을 것 같네요.

 

전 가능하면 오리지날의 향기를 간직한 곳이 좋아서 크게 관심은 없습니다.

 

 

 

오늘 방문했던 야시마 그림도 찾을 수 있네요.

앞서 언급했던 헤이케 가문과 미나모토 가문의 전투가 벌어진 야시마에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전투에서 불리하던 헤이케 가문이 바다에 배를 띄우고 봉 위에 부채를 꽂아서 미나모토군을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명사수가 많은 미나모토군이라지만 이렇게 바다 위의 부채를 맞출 수는 없다'는 의미로 새워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이치 무네타카(与一宗高)라는 말단 장군이 실제로 바다에 말을 타고 뛰어들어가 배 위의 부채를 맞춰버렸기 때문에

헤이케 병사들의 사기는 크게 꺾이고 다음 전투에서 대패하였다는 에피소드죠.

 

헤이케와 미나모토의 싸움은 일본에서 전국시대 다음으로 인기있는 역사물이기도 하고

드라마화도 여러번 이루어져서 한국에서도 나름 팬이 있는 편이지만

이런 역사는 뭐, 저처럼 일본쪽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기억하고 있을 필요까지는 없겠죠. 그냥 여행의 재미삼아 떠올려 봤습니다.

 

호텔에 들어가니 5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폭염에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는지

엄니는 샤워 후 차를 좀 마시고 손가락도 꼼짝하기 싫다고 침대에 누워버리셨네요.

밤에 입이 좀 심심할 것 같아서 제가 다시 아케이드쪽 큰 슈퍼로 다가서 도시락과 간식거리를 사 왔습니다.

일본쪽 도시락은 그래도 먹을 만 하다며 잘 드시더군요. 저녁까지 편안하게 TV 보면서 엄니에게 화면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KBS 뉴스도 나오는 탓에 중간에 제 해설이 필요없어지긴 했네요.

 

 

 

한 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야시마 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길이 상당히 좁은 편이라 커브를 돌 때는 하반신이 조금 쫄깃해 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창가로 보이는 카가와현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자전거 여행 중 참 인상깊었던 곳 중 하나죠.

 

카가와현이 속한 시코쿠(四国)라는 섬은 본토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산지인데다가 작은 섬들이 많아서 한 번에 지나가지는 못하고 이 섬 저 섬을 건너서 들어가야 합니다.

본토와 시코쿠 사이의 조그만 해협은 세토 내해(瀬戸内海)라고 하는데, 해류가 강해서 소용돌이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죠.

 

 

 

지형상 다리가 상당히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자전거로 올라가기가 참 힘들었던 곳이죠.

하지만 워낙 주변 풍경이 좋아서 중간중간 멈춰서 휴식도 취하고 사진도 찍고 하며 즐겁게 돌았던 곳입니다.

 

본토와 시코쿠를 잇는 세토 대교라는 걸출한 녀석이 있긴 한데

그쪽은 제 루트와는 맞지 않아서 그 전의 조그만 섬들을 거쳐서 시코쿠로 들어갔습니다. 이 곳이 제가 건넜던 가장 큰 다리네요.

이 날은 세토 내해치고는 많이 잔잔했던 편인데, 그래도 해류의 음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러 개 섬을 억지로 잇는 다리다 보니 코스가 참 귀찮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길이 좁아서 자동차가 옆을 지나갈 때는 좀 긴장도 했지만 워낙 천천히 운전하는 사람들 덕분에 무난히 올라갈 수 있었죠.

하루종일 날씨도 좋고 시골이라 사람들 인심도 좋아서, 가게 할머니한테 귤도 한봉지 얻고 하며 즐겁게 달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저기 도로에서 길에 떨어진 SD 메모리카드를 주워들고 '혹시 기밀 문서라도 들어있는 녀석 아닌가' 하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8G 짜리인 줄 알고 일단 가져왔는데, 훗날 한국에 돌아와서 자세히 보니 무려 8M 짜리더군요. 이 녀석이 길거리에 떨어진 지 얼마나 오래 지난 걸까요.

안에는 손상된 파일 몇 개와 사진 파일 몇 개가 들어있었습니다. 지금도 의문에 가득 찬 메모리카드죠.

 

 

 

그렇게 옛 추억에 잠겨있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이 어마어마하게 넒더군요.

버스와 승용차 합쳐서 100대는 쉽게 주차할 만한 공간이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야시마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겠죠.

 

원래는 전철역에서 바로 정상까지 올라가는 로프웨이가 있었습니다만 그건 폐쇄되고 이제 버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거장에서 바로 보이는 거대한 그림은 일본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겐페이 합전(源平合戦)의 그림이군요.

 

헤이안 후기 권력을 쥐고 있던 헤이케 가문과 그에 맞선 미나모토 가문이 벌인 전쟁으로, 전국시대 후 일본이 통일되기 이전 가장 큰 전투였습니다.

이 야시마가 헤이케 가문의 본거지였는데, 세토 내해를 끼고 강력한 수군을 가지고 있던 헤이케 가문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그 거센 세토 내해를 단박에 건너온 미나모토군이 승리를 거둔 전투가 야시마 전투입니다.

 

이후 가장 유명한 단노우라 해전에서 헤이케군이 전멸하고 어린 천황도 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함으로서 헤이안 시대는 막을 고하고 가마쿠라 시대로 넘어가게 되죠.

기록상으로는 천황에게 계승된다는 3종의 신기도 단노우라 해전에서 바다에 잠겼지만, 그 중 하나인 검만은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물론 애초에 실존여부 자체가 불확실한 녀석이라 그냥 떠도는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갖긴 힘듭니다만.

 

 

 

엄니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드리긴 하는데 원래 일본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게 정상입니다.

일단 엄니는 산 정상에 이렇게 훌륭한 사찰이 서 있다는 것 자체를 놀라워 하시네요.

 

이 야시마 절은 88개소 순례길 중에서 84번째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 정도면 1400km의 기나긴 순례길의 막바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 세토 내해를 바라보는 순례자들의 기분이 어땠을런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니와 함께 갔던 이 당시도 낡은 옷과 삿갓, 짚신과 지팡이 하나를 짚고 올라온 순례자를 볼 수 있었죠.

오직 도보로만 이동하는 이 순례자들은 최소 한 달이상 걸어와서 이 곳에 도착한 것일 테니 상당히 감동적일 듯 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절이나 신사에 봉납하는 걸 참 좋아하는 민족이다 싶습니다.

사실 야시마 산 거의 대부분이 야시마 절의 소유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절인데 말이죠.

 

순례자가 이 곳에서 절을 하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웃으며 다가와 인사해 줍니다.

저도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아마 동료를 발견한 기분으로 인사를 했을 것 같네요.

 

요즘엔 프로 순례자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순례자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그들을 위한 지도와 안내서도 현 단위에서 적극적으로 배포하고 있기에

목숨을 건다고 할 만큼 위험했던 예전보다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입니다만 그래도 1400km의 산지를 도보로 걸어다닌다는게 결코 쉽지는 않죠.

 

자전거 세계일주를 준비중인 나침반님 정도라면 그냥 잠깐 바람쉬러 다녀오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만

이런 편안한(?) 순례길로는 만족하시기 힘든지 훨씬 더 위험하고 어려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야시마가 원래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워낙 깔끔하게 정리를 해 놔서

여기가 진짜 산 정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정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이 없진 않아도 순례자나 불교 신자 등 좀 더 경건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꽤나 조용합니다.

마음을 정화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싶었지만 역시나 37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는 그 정신도 오래 가질 않더군요.

 

 

 

무슨 언어인지는 모르겠는데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온다는 사실만큼은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걸려있는 에마의 수가 적은 편이기도 하네요. 유명 관광지에 비하면 접근도 어렵고 많이 찾는 곳도 아니긴 합니다만.

 

 

 

본당 옆에는 조그만 토리이 옆으로 너구리 두 마리가 서 있습니다.

이곳 야시마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너구리는 일부일처제의 상징으로, 가정평화와 다산을 기원한다고 하는군요.

 

그래서인지 수컷과 암컷의 모습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입니다. 암컷은 젖이 있고 수컷은 그... 보시면 알겠죠.

엄니는 수컷을 보더니 '얘는 X은 작은데 X랄이 왜 이리 크지?'라고 순수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이곳의 너구리는 영물이라서 오랜 세월 살아가면 X랄이 점점 커지고

나중엔 그 X랄을 뒤집어쓰고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암컷의 경우엔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을 잘 표현했더군요.

엄니는 저를 낳을 당시 가정 형편이 안좋았던데다가 몸이 많이 허약해서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분유를 먹이고 한 번도 젖을 제대로 물려준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기억은 안나지만 서글픈 추억이네요.

 

 

 

경건한 절 기둥에 화석화된 시체가 박혀있습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나름 포인트는 되는데, 아마도 지금쯤 가 보면 청소해 버렸겠죠.

 

 

 

본당은 1618년에 건립된 녀석으로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한 사찰과는 달리 좀 더 엄선된(?) 사람들이 찾다 보니 분위기가 상당히 엄숙하네요.

주위에 시끄러운 요소가 전혀 없는 곳이기 때문에 엄니와 저도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하게 살펴보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보물을 모아놓은 곳인데 굳이 엄니는 돈 내고 들어가서 구경하고 싶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저도 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합니다.

보물관 안에는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고 추측되는 목조천수관음좌상이 가장 볼만하다고 하는데, 제가 불교에 심취해 있지 않아서.

 

 

 

요즘엔 일반적인 신발로도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진짜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신발도 이런 짚신을 신습니다. 저 같으면 평지만 걸어도 발바닥이 큰일나겠는데 말이죠.

 

물론 순례길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엄숙해야 할 필요도 없고, 오직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걷는 것이니

남들과 비교해가며 우위를 따지는 건 이런 순례와 가장 거리가 먼 행동이겠죠.

 

전 발 상태가 안좋은 편이기 때문에 저런 짚신까지는 무리지만, 언젠가 걸어서 88개소 순례길을 완주할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절을 통과하고나면 야시마 전망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관광객들에겐 절보다 이 전망대가 더 유명하죠. 날씨 좋을 때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다카마츠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합니다.

 

전망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산책 겸 풍경 즐기기에 참 좋더군요.

물론 그것도 이렇게 덥지 않을 때 한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저 멀리 세토 내해가 보이는군요. 풍경 하나는 장관입니다.

조금 당겨서 보면 한려수도와도 비슷한 풍경을 보여줄 듯 하네요.

 

날씨가 좋긴 한데 한여름이라 대기에 수증기가 많아서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지는 않습니다.

가끔 바람이 불어오면 땀으로 범벅이 된 등줄기가 시원해 지는 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엄니가 도시쪽을 보더니 거기가 이렇게 컸었나 하고 놀라십니다.

그렇게 높은 빌딩이 없어서 인구밀도는 낮습니다만 어쨌든 시코쿠에서 가장 큰 도시니까요.

 

실제로 시코쿠에서 이만한 평야지대에 위치한 도시가 별로 없어서

저도 자전거 여행중 한동안 고생 좀 하다가 간신히 타카마츠에 도착했을 때에는 뭔가 낙원에 도달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대도시처럼 번잡하지도 않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어서 리츠린 공원 등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으니.

이 정도 규모의 도시에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고 대기오염도도 낮은 곳을 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본 내에서 매년 살기좋은 도시 상위권에 꼽히는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예술성이 느껴지는 돌다리를 건너가 보지만 밑에 물이 없네요.

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아래쪽에 길이 있습니다.

 

원래같으면 이 다리 위에서 사진 찍는 여행객도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오늘은 이곳 전체를 엄니와 제가 전세낸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산합니다.

 

 

 

다리 아래쪽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밑에 아주 조금이지만 물이 고여있군요.

우동으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원래 주 생산품은 광석 계열이었기 때문에

시코쿠무라는 전반적으로 돌을 이용해서 주변을 꾸며 놓았습니다.

 

산책에 적합한 곳이지만 한여름엔 나무그늘마저도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더워서

아무래도 날짜를 잘 정해야 즐거운 관광이 될 것 같네요.

 

 

 

예전에 간장을 담던 옹기들을 이용해 벽을 만들어 놨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구멍을 막아놓은 녀석들도 보이네요.

 

한국의 간장은 메주만을 이용해 만들었지만 일본은 거기에 찐 보리나 밀 등을 넣어 발효균을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염도가 낮고 제작 기간이 비교적 짧아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특징이 있습니다.

일조량이 많고 산지가 많은 지역이라서 간장 만들기에는 딱 좋은 기후였는데, 상당히 큰 규모의 간장공장이 예전부터 성행했다는군요.

 

 

 

간장을 만들던 건물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약간이지만 코를 자극하는 간장 냄새가 남아있더군요.

실제로는 간장만 만들던 곳은 아니고 발효주를 만들기도 했는데

간장이나 술이나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런 건문들은 창문이 상당히 작게 만들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덥기는 또 무지하게 더워서 엄니는 잠깐만 둘러보시고 바로 나가시네요.

 

 

 

내부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2m가 넘는 거대한 목욕탕 같은 나무통이 몇 개씩 늘어서 있죠.

 

숙련된 장인이 저 위에 올라가서 잘 저어줘야 간장이든 술이든 만들어 지는데

술도 마찬가지지만 간장도 저 정도 양을 숙성시킬때는 냄새가 엄청나기 때문에 사고가 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무서운 이야기에는 가스에 중독되어 술통에 빠져 죽은 사람을 모른 채 술을 담아 마셨다는 내용이 나오죠.

 

 

 

상당히 낡은 고기잡이배가 앞에 서 있는 구 가옥이 인상적이네요.

 

설명을 읽어보니 토쿠시마의 해안가 절벽 밑 마을에서 생활하던 요시노라는 사람의 집과 배라고 합니다.

토쿠시마 근처의 태평양쪽 연안은 지형이 복잡해서 풍랑이 심한 곳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저렇게 지붕이 있는 고기잡이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볼거리는 참 풍부했지만 그만큼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 시코쿠무라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제 다음 코스는 버스를 타고 야시마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서둘다가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엄니와 함께 시코쿠무라 주차장 앞에 서 있는 산뜻한 집으로 들어갑니다.

 

꽤나 멋들어진 의자도 관심을 끌었지만 여기 앉는다고 소모된 체력이 회복하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는 더위네요.

 

 

 

척 봐도 메이지 시대 이후에 불어닥친 서양풍 저택이로군요.

설명을 읽어보니 당시 서양인들이 많이 들어왔던 코베에 서 있던 건물이라 합니다 통째로 옮겨왔군요.

 

시코쿠무라와의 역사적 관련성은 없습니다만, 민속촌 내부에는 더운 날 편히 쉴 만한 곳이 없는 관계로

역사를 보여주는 민속촌의 분위기와 맞춰서 이런 100전의 저택을 배치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휴식처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주차장 반대편에 유명한 우동집이 있어서 문제가 없죠.

우동현 카가와의 안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와라야(わら家)가 이 곳에 있습니다.

평가가 좋은 우동집이고 분위기도 시코쿠무라와 참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곳인데

지금 밥을 먹을 만한 시간도 아니고, 엄니는 그런 것보다 조금 더 시원한 장소와 음료수를 원하시기 때문에 패스합니다.

 

 

 

산으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씩 오기 때문에 아직 시간은 널널합니다.

부디 에어콘이 작동하고 있기를 바라며 들어가 봅니다.

 

빙수를 팔고 있다는 표시가 걸려 있기 때문에 적당히 만끽할 수 있겠네요.

안으로 들어가니 일본 기준으로도 상당히 우아하고 절제된 움직임으로 아주머니께서 인사를 해 줍니다.

빠르지 않은 적당한 말투와 화사한 미소로 맞이해 주시는데, 이런 외국 저택에 걸맞는 접대 예절을 보여주시는군요.

 

 

 

이 곳의 가구들은 모두 이탈리아제로 약 150년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그런 곳에 땀범벅인 채로 앉아서 살짝 스릴이 느껴집니다.

 

엄니도 분위기는 마음에 드시는지 느긋하게 쉬면서 버스를 기다리자고 합니다.

추울 정도는 아니지만 에어콘이 작동하고 있어서 바깥과 비교하면 천국이네요.

 

음료수나 한 잔 마실까 싶었지만 모처럼 온 곳이니 가볍게 배를 채울 거리도 주문해 보라고 하십니다.

일단 더위를 이기기 위한 빙수 하나와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에그 토스트를 주문합니다.

 

배가 고프진 않아도 어차피 야시마 산 정상에서 식사까지 마칠 생각은 아니라서 지금 먹어두는 것도 좋겠네요.

 

 

 

아름다운 식기에 비해 빙수는 평범합니다. 사진 찍기에는 참 좋은 딸기색입니다만.

 

일반적으로 일본쪽 빙수는 그냥 얼음을 먹는다는 느낌이 강하고 토핑이 그렇게 충실하지 않죠.

가격도 저렴하고 연유 등이 들어가지 않아서 덥고 목 마를 때 먹으면 팥빙수보다는 좀 더 상쾌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어릴 때 시장 근처 포장마차에서 장 보고 돌아올 때 떡볶이나 오뎅 등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여름엔 빙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녀석처럼 식용 색소하고 미숫가루만 살짝 뿌렸었죠.

엄니가 그런 건 먹으면 안된다면서 잘 사주지 않았기에 좀처럼 먹을 수 없는 특식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신 떡볶이와 오뎅은 미친듯이 먹었지만.

 

 

 

장소가 장소다보니 가격대가 좀 높은 편이긴 한데 맛은 무난하게 맛있었습니다.

치즈와 함께 반숙 스크램블 에그가 충분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햄과 캐첩의 자극적인 맛을 중화시켜 주더군요.

 

카가와현은 우동이 심히 맛있기도 하고 가격조차도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트보다 더 저렴해서

헝그리 여행자라면 꽤나 즐겁게 거닐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래도 영양적으로는 불균형이 좀 심한 편입니다.

특산품이라고 엄니에게 계속 우동만 드릴 수는 없으니 이런 것도 먹어가면서 우아한 느낌을 내 보는 것도 괜찮겠죠.

 

 

 

버스가 오기 10분 전쯤 저택을 나와서 화장실을 해결합니다.

우동집 와라야의 뒷모습도 살짝 담아봤습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우동집 풍경이 참 아늑하네요.

 

가을에 오면 시코쿠무라를 포함해 이 주변 전체가 참으로 아름다운 색을 자랑할 것 같습니다.

자전거 여행 중에도 꽤나 인상이 깊었던 곳이라, 엄니와의 여행 장소로 적당하다 싶어서 다시 오게 되었죠.

 

우동을 좋아는 하셔도 역시 여행중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요리를 먹고 싶은 법이니 이 우동집은 다음을 기약하고 버스를 타러 갑니다.

시코쿠무라에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의외로 야시마 산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사람이 꽤 앉아있군요.

 

 

날씨가 덥다보니 하늘 하나는 끝내줍니다.

타카마츠가 시코쿠 최대의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환경 오염이 될 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하늘 구경만 제대로 해도 여행 온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성격이라 마음이 치유되는군요.

 

지중해쪽 하늘이 그렇게 좋다는데 언제 한 번 가 봐야겠네요.

 

 

 

캉캉석(カンカン石)라는 희한한 이름이 붙어있는 돌덩이입니다.

옆에 나뭇가지도 하나 걸려있어서 엄니한테 한번 쳐 보라고 말씀드렸죠.

정식 명칭은 사누키암(巖)이라고 해서 마그마로 인해 생성된 안산암의 일종입니다.

 

나뭇가지로 이 녀석을 두드려 보면 유리처럼 맑고 높은 소리가 납니다.

 

 

 

이곳 시코쿠무라는 가을 정도로 날씨가 선선할 때 오면 매우 훌륭한 산책 코스가 될 것 같네요.

최대한 인공미를 줄이고 자연을 그대로 살려 놓은 코스는 걷는 것만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줍니다.

 

물론 저처럼 37도쯤 되는 한여름에 찾아오면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함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나름 추억에 남을 경험이긴 하죠.

 

 

 

산 속에 위치한 민속촌이고 과도한 가공을 거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기분 좋게 산책이 가능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대나무숲 사이 흙길을 걸어갈 때가 제일 시원한 느낌이 드네요.

규모가 큰 편이긴 해도 거의 일직선으로 돌게 되어 있어서 코스만 지켜 걸으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이 한바퀴 완주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쿠노시마 등대 부근까지는 이 더위에 아무래도 무리라 판단해서 지나쳐 갔습니다.

사실 산 속에 지어진 민속촌에 등대가 있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죠.

 

 

 

얼핏 방앗간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사실은 종이를 만드는 곳입니다.

한국의 전통 한지와 같은 닥나무를 원료로 사용하지만 만드는 방식은 살짝 다른 듯 하네요.

이렇게 삶은 닥나무를 으깨는 장치가 있는 것으로 봐서 중국식 종이 만드는 방법과 비슷한 듯 합니다.

 

한국은 불린 닥나무를 두들겨서 결이 상하지 않은 상태로 떠 내기 때문에 강도가 좋았다고 하네요.

일본 종이 역시 고급 방식으로 한국과 똑같이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만 이 곳은 중국식으로 맷돌로 갈아 만드는 방식이었나 봅니다.

 

 

 

정성들여 손질한 수국 화분이 마당 앞에 놓여있는 모습만으로 관광객의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군요.

 

이 곳에 서 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이 문화재인데다 그 중 8채는 국가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엄격하게 막아놓은 것도 아니라 부담없이 사진을 담을 정도로 관객과 가깝습니다.

 

 

 

앞서 사진에 나왔던 칸칸석도 그렇고 카가와현은 화강암이 풍부해서 돌을 이용한 공예품이나 시설이 꽤나 발달한 편입니다.

특히 화강암 중에서는 세계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아지석(庵治石)의 산출지이기도 하죠.

그래서 시코쿠무라에는 돌을 이용한 폭포인 소메가타키 폭포라는 볼거리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기묘한 모양의 우물도 소메가타키 폭포 상층부에 위치하는 녀석이죠.

 

일본의 조각가 나가레 마사유키(流政之)씨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가레 씨는 비극적 역사를 간직한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심볼인 '눈의 성채'를 만든 작가로 유명하죠.

 

 

 

순로 표시도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세삼한 곳에 지역 특색을 세겨넣는 것이 관광 산업의 중요 요소죠.

나무와 바위로 만들어 진 시코쿠무라는 과도한 상업적 냄새가 나지 않는 점만으로도 민속촌 중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니는 이런 곳에서는 건물 하나하나의 특징 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중시하는 성격인데

이 곳을 거닐면서 여러 번 '참 잘 만들었다'고 말씀하시는 걸 봐서 마음에 드신 모양입니다.

 

평탄한 지형이 거의 없는 특성상 굉장히 이곳저곳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선 배정과 함께 단순한 이동 통로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세심히 만들어 놓았다는 느낌이 오는군요.

볼거리를 찾아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그런 민속촌은 레벨이 좀 떨어진다고 볼 수 있죠.

이 마을은 그냥 걷고만 있어도 입장료 값을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곳의 민가 건물들은 대부분 농촌이나 산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녀석들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부유층의 그것과는 다른 순박함이 풍겨나옵니다만, 이 곳처럼 나름 정갈한 느낌을 주는 집도 있네요.

 

집의 벽면 한 쪽 통채를 단순한 장식만으로 할당한다는 일본 가옥의 구조는 어찌보면 아이러니 합니다.

뭐 당시는 집의 크기나 땅값 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이죠. 어째 요즘 도시형 주택보다 훨씬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보존 상태는 놀라울 만 하지만 이 녀석들이 실제로 이런 지형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

원주민들의 실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를 생각해 보기는 조금 힘드네요. 대다수 민속촌의 문제점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타카야마나 나가노 근처의 옛 거리들 등, 여전히 주민들이 살아가며 예전 가옥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어서

정말로 예전의 생활상을 느껴보려면 그 쪽으로 가야 합니다만 거긴 또 주택 보존 상태가 여기만큼 좋지는 않죠.

정말 300년 전의 생활상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이런 민속촌을 둘러보다 보면 묘하게 아쉬운 점이 느껴집니다.

 

 

 

밑에서 바라보는 소메가타키 폭로의 모습입니다. 그나마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네요.

너무 더워서인지 신기하게도 이런 산 속을 한 시간 가까이 걸어다니고 있어도 모기에게 물리지 않습니다.

37도쯤 되면 아마 모기도 탈진하는 것일까요.

 

유명 조각가인 나가레 마사유키 씨가 만든 폭포라고는 하지만 어떤 예술성이 드러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돌폭포 자체보다는 마을과의 앙상블에 촛점을 맞춰 전체 조경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니가 집에서도 하나 만들어 놓고 싶다고 하셨던 대나무 화분입니다.

고즈넉한 풍경에 과하지 않은 임팩트를 주도록 참 절묘하게 만들어 놓았군요.

 

나오시마도 가깝고, 리츠린 공원도 있어서 문화와 예술의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타카마츠라서 그런지

민속촌 안에 미술관도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이런 세심한 부분부분에서도 미적 감각을 잘 살려 놓았습니다.

 

지금은 각종 현대식 재료와 기술을 이용해, 그것도 본인이 직접 짓는 일이 거의 없어진 거주지라는 개념이지만

이런 걸 짓고 평생에 걸쳐 수리와 보수를 하며 살아갔던 예전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이란 어떤 존재일런지.

아마도 자기 집에 대한 애착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감탄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가 주택생활을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고, 엄니가 시골집에서 차를 마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제 정말 시골집에서 차 한잔 마시려고 하는 것도 풀 뽑고 집 청소하고 보수하는 거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시코쿠무라의 장점은 역시 안내서에 적힌 볼거리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순로 전체가 아름다운 산책로화 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네요.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관광지는 커녕 극히 평범한 마을 어귀의 좁은 길이라도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구나 하는 신선함에 한동안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는데

이 곳에서도 굳이 건물 구경하려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이 그저 걷는 것만으로 감상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네요.

 

 

 

에도시대 후기의 건물인데 아마 곡물 창고로 사용하던 녀석입니다.

지금은 자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엄니는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달해 있어서 이 곳에 들어가 봤자 눈에 들어올 게 별로 없을 듯 하네요.

그냥 특이한 형태만 바깥에서 구경하고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습니다.

 

 

 

출구 근처까지 다다르면 굉장한 옹기들이 줄줄이 서 있는데요. 처음엔 술독인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간장 담는 옹기였습니다.

한국과는 묘하게 모습이 다른 것도 나름 볼거리더군요.

 

옹기도 옹기지만 펜스 역시 센스가 넘칩니다. 대나무를 줄줄이 이어 만들었는데 굵은 밑둥 끝에 다시 작은 줄기부분을 끼워넣어서 이어놨군요.

글자로 표현하자면

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화장실에 간 엄니를 기다리며 풍경 사진을 찍어봅니다.

소박한 삶의 여유라고 할까요. 시골집 툇마루에 누워 있을 때 풍경 소리가 살짝 울리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지금은 뭐 워낙 더워서 그런 여유를 느끼기도 힘들긴 하지만 말이죠.

 

이제 시코쿠무라 구경도 거의 끝나가니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야시마 산 정상으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