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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5  킨키 방황 - 코야산 단상가람 18
  2. 2012.05.25  킨키 방황 - 코야산으로 가는 길 12

 

2백미터의 짧은 거리를 간신히 기어서 단상가람에 도착했다.

가람에 들어가기 전에, 가람 주위를 둘러싼 숲속 풍경이 멋들어져서 셔터를 누른다.

울창하긴 울창한데도 이렇게 조경이 멋진 숲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보통 이런 산속 깊은 곳은 어딘가 살짝 어둡고 두려운 느낌이 드는데.

 

도착하자마자 정면에 거대한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와서, 혹시 내부 보수중이라 못 보는건가 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는데

앞쪽 표지판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2015년 개창 1200년을 맞아 1843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중문(中門)을 건설중일 뿐

나머지 사찰들은 멀쩡하게 공개중이다. 여기까지 와서 단상가람 구경을 못했다면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듯.

 

진언종의 현재 총본산은 콘고부지(金剛峰寺)이지만, 원래 홍법대사가 수행하던 본당은 이곳 단상가람이었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를 가진 불당은 이곳에 거의 집결해 있다. 국보급 보물들도 굉장히 많았지만 현재는 영보관에 보관중.

 

 

 

가람은 산스크리트어 상가-아라마(sanghārāma)의 한음표기인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줄임말.

승려들이 거주하며 수행하는 거주지를 뜻한다. 한국에서도 쓰이는 말이라서 포스팅에서 일본어 표기가 아닌 가람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공사중인 중문을 통과하면 눈앞에 보이는 금당(金堂)의 모습. 단상가람의 본당에 해당하며,

현재 건물은 수많은 화재 끝에 1932년 재건된 녀석이다.

워낙 중요한 가치를 가진 건물이라 가까이서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세심하게 복원되어 있다.

 

 

 

코야산의 모든 사찰이 그렇듯 이곳도 실제 진언종의 승려들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곳인데

그 덕분에 더더욱 삶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할까. 일본에서 접할 수 있는 대다수의 문화재급 사찰에 비해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처음 창건되었을 당시인 819년의 건축양식과는 사실 차이점이 많이 보이지만

살짝 굽이친 서까래와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처마의 구조는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려시대 건축된 사찰인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중국, 일본을 모두 포함해서도 으뜸간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적어도 일본에서 이 정도로 미려한 모습을 한 사찰은

나라에 남아있는 극소수의 사찰과 닛코의 사찰, 그리고 이곳 뿐이라고 평가해 본다.

심심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 현재의 일본 사찰 양식과는 레벨이 다르다.

 

  

 

금당 내부는 금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외부와 달리 상당히 화려하다.

건축 당시, 당대 일본 최고의 예술가가 그려넣은 약사여래 불화가 굉장하다고 하는데, 원본은 영보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래 가람 내부에 있던 수많은 국보들이 관리와 보존을 위해 대부분 영보관으로 이전되는 바람에 조금 아쉽지만

돈 주고 보물 관람하는데 조금 인색한 편인 나로서도, 몸 상태만 괜찮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가람의 사찰들 대부분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니 딱히 보여줄 것도 없긴 하지만.

 

 

 

 

금당 왼편엔 넓은 마당과 함께 조그마한 벤치 몇개가 놓여있다.

문화재 덩어리인 단상가람안에 의아하게도 흡연 가능한 장소가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흡연문화에 꽤나 관대해서, 대부분 흡연금지인 명승지 입구 앞에 흡연소가 설치되어 있는 일본에도

이렇게 가람 내부에 흡연소를 만들어 놓은 것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 혹시 승려들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걸까.

 

어쨌든 벤치에 앉아서 아마도 마지막이 될 휴식을 취하며 가람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오쿠노인에서 숱하게 봤던 거대한 삼나무들은 역시 이곳에서도 잘 어울린다.

날짜를 잘 잡아서 그런지 관광객의 모습이 정말로 드물어, 몸은 아파도 날짜 하나는 참 잘 선택했다고 자화자찬 해 본다.

 

땀을 식히고 욱씬거리는 왼쪽 발목을 진정시키며 이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에게 신성함과 경건함을 일으키는 근원은 종교가 아니라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속과 떨어져 묵묵히 수행하는 모습이 일반인들의 불교에 대한 이미지라고 한다지만

만약 그 세속이라는 곳에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면 아마도 이곳과 세속의 경계는 사라져 버리지 않았을까.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적 신비함도 결국엔 나무와 흙과 하늘이 만들어내는 풍경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인간은 사고의 발달로 인해 언어라는 수단을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동시에 언어로 인해 인간의 사상과 개념 자체에 한계를 가지게 되는 것 처럼

 

종교가 가지는 경건함과 신비함 역시 원래부터 자연이 가진 요소였음에도, 단지 사람의 머릿속 필터를 거쳐

종교라는 관념으로 구체화 된 결과물일 뿐이라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상상해 본다.

 

한마디로, 인류의 모든 위대한 사상과 개념은 그 모태를 자연 그 자체에 두고 있다고 말이지.

먼 길을 돌아와서 진리를 갈구하지만, 결국 태초부터 누구에게나 내재된 본능의 산물이었을 따름.

 

 

 

일반적인 불교 가람과는 달리 이곳 단상가람에는 신사도 들어서 있다.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토리이(鳥居)가 이곳에서는 왠지 낮선 느낌.

물론 홍법대사와 관련이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고, 후대에 일부러 세워둔 신사는 아니다.

 

 

 

이곳의 신사는 따로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냥 니우묘진(丹生明神)이라는 토지신을 기리는 어사(御社)라고 불리는데

일본에서는 훈음과는 맞지 않게 미야시로(みやしろ)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우묘진이라는 신은 홍법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건립할 때 그를 수호해 준 토지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교 사찰을 짓는 승려도 축복해 주는 토지신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 신토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일본의 전통 종교인 신토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교든 카톨릭이든 힌두교든 자신들의 신과 다를바 없는 한 명의 신일 뿐이며

신토를 믿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날 성당에 간다던가, 사찰을 찾아 절을 올린다던가 하는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코야산 한국 가이드북에는 이러한 설명 싹 빼버리고 그냥 '묘신사'라는 이름 하나만 달랑 쓰여있어서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나머지 중요문화재 설명하기에도 페이지가 모자라니 어쩔 수 없지만.

 

사진의 건물은 미야시로가 아니라 그 앞에 건립된 산노인(山王院)이라는 배전.

이 곳은 규모가 큰 신사에서 쓰이는 양식처럼 본전과 배전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 배전은 또 불교 사찰건물의 양식을 상당부분 빼다박은 건축물이라서 굉장히 묘한 느낌이다.

 

이렇게 신사와 사찰이 한 곳에 세워져 있는 광경은 일본에서도 극히 드문 편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일본에서 이곳밖에 없다.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지만.

 

 

 

정작 미야시로 신사는 그 강렬한 주황색이 워낙 두드러지는 바람에

이곳과는 전혀 조화되지 않는 어색함 탓인지 한 장도 담아오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구경했는데

산노인은 신사 양식과 불교 양식이 훌륭히 조합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구도를 잡고 뷰파인더를 바라보는데, 문득 '코야산의 시린 산속에서 해가 막 떠오늘 무렵'의 산노인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 해서

색온도를 조절해서 그때 느꼈던 이미지를 재현해 보려고 노력해 봤다.

보정 프로그램 쓰는것도 쥐약이라서 마음먹은 것처럼 뚝딱뚝딱 고치진 못하지만, 대강 이런 느낌.

이곳에서 아침을 맞이해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신사 앞이라면 에마(絵馬)가 빠질 수 없지.

그런데 그냥 신사가 아니라는걸 증명이라도 하듯 에마 역시 불교식과 신토식이 따로 걸려 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진언종식 에마라는 느낌. 쓰여 있는 소원도 읽기힘든 한자로 쓰여 있는 점이 특징.

참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일본인들의 에마 사랑은 이곳에서도 멈추지 않는구나.

 

 

 

이곳은 전형적인 신사의 에마를 걸어두는 곳.

역시 진언종의 총본산인 만큼 이런 에마보다는 불교식으로 소원을 비는 곳이 훨씬 빡빡하다.

 

대체로 신사의 에마들을 잘 살펴보다 보면, 소원 빈다기 보다는 반쯤 우스갯소리를 적어놓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장난스러운 에마가 보이지 않는다. 세삼 이곳을 바라보는 일본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거기다가 옛 향기 가득한 이곳 단상가람에 걸맞게도, 오랜 시간이 지나 매직으로 쓴 글씨가 지워져 버린 에마마저 찾을 수 있다.

이제껏 꽤나 유명하다는 신사는 다 찾아가본 나로서도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에마마저 이렇게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광경은 소소하지만 확실히 각인되는 여행의 추억이다.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굉장한 사찰들이 꽉꽉 모여있는, 보물상자같은 단상가람이지만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 지고 있다. 한시간에 두 번 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타려면

지금부터라도 이동속도를 높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평소 발걸음 대로라면 이곳 단상가람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는,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혹사에 혹사를 거듭한 왼쪽 발목은 원래 이동속도를 1/10 이하로 줄여버린데다

덕분에 계속 부담을 준 오른쪽 다리는 근육이 터질듯 단단해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일 때를 생각해서 구경하다보면 자칫 버스를 놓칠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었다.

 

단상가람의 입구까지 최소한 버스 도착 15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심리적으로 안정될 것 같아서

하나라도 더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서두르게 된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 혼자 쇼를 벌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다.

 

 

 

단상가람은 17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저 녀석들이 전기로 빛을 밝히는지, 여전히 초롱불을 사용하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다.

어둠 속에 잠긴 단상가람 사이사이에서 조그맣게 빛나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지.

조용한 산골짜기 사찰 아래 울려퍼지는 우렁찬 셔터소리에 그나마 기운이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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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일어나 무료 조식을 먹으러 가는데 왼쪽 발목이 심상치 않다.

뜨거운 물에 푹 담궜으니 피로가 좀 빠졌을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마라톤 풀코스 완주후에 느끼는 통증과 흡사하다.

그냥 근육통과는 다른 욱신욱신함이, 십중팔구 인대에 염증이 생긴 감각이다. 몇 번 느껴봐서 익숙하긴 한데.

 

몸이 아프니 밥맛도 없지만 일단 주먹밥과 소세지를 입에 우겨넣고 다시 올라와서 짐을 챙긴다.

어째선지 왼쪽 발목만 심하게 아픈데, 카메라 장비 때문에 균형이 어긋나서 그런건가 싶다.

그래도 일단 코야산에 가는데 장비를 줄일수도 없고, 오늘 좀 고생하겠구나 생각하면서 호텔을 나선다.

 

오늘은 칸사이 스루 패스를 사용하니까 난바역까지 걸어갈 필요가 없다.

칸사이 스루 패스는 분명 영어로 'Thru Pass' 인데 이상하게 일본에서는 '스롯토'라고 발음한다.

이틀간 이용권이 3800엔인데, 그 동안 국영 JR 전철이나 각종 버스를 제외하고는 오사카, 코베, 나라, 쿄토, 히메지, 와카야마, 코야산 등등

칸사이 모든 지역을 잇는 전철과 각 도시 내의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가능한 티켓이다.

 

오사카 내부에서만 관광할 목적이라면 별로 의미가 없지만, 칸사이 지역을 여기저기 돌아보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티켓.

이제부터 편하게 전철 타주마 라고 생각하며 요츠바시역에서 전철을 탔지만,

요츠바시역을 달리는 요츠바시선과, 코야산으로 향하는 난카이(南海) 전철간에는 이름이 같은 난바역이라도 한참 떨어져 있어서

난바역에 내려 15분간 줄기차게 걸어가야 하는 통에, 별로 이득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게 아쉬울 따름.

 

오사카에서 코야산으로 가는 전철은 한 시간에 두세 편밖에 없어서 쉽지 않다.

그것도 코야산역(高野山駅)까지 가는 전철은 없고, 하시모토(橋本)역까지 가서 코쿠라쿠바시(極楽橋)행 열차로 갈아타고

다시 거기서 케이블 전철로 갈아타고 코야산 역으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거기까지는 약 2시간 거리.

거기서 한술 더 떠서, 코야산역은 그냥 역일 뿐이고, 진짜 코야산 구경은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코야산에 가는 승객들을 위해 왠만하면 대기시간없이 바로바로 이어지는 열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던 도중 수명이 간당간당하던 이어폰이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2시간 가까운 열차 여행동안 음악을 들을수가 없어서 처음엔 조금 심심했지만

도심지를 벗어나서 코야산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느긋한 전원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해서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열차 속에서 그 풍경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 좋은 기분이다.

 

코야산까지 가는 길이 워낙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기 때문에, 하시모토역에서는 500엔 추가로 내면 특별 관광열차를 탈 수도 있다.

그건 보통 열차처럼 창문을 등지고 앉는게 아니라 창가를 보고 앉아서 경치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된 녀석으로

거기서 흘러가는 차창 밖 풍경은 코야산 정상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하더라. 조금 고민했지만 일단 이번에는 그 녀석 안타기로 결정.

살아있는 동안 분명 이곳을 한번쯤은 더 찾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코쿠라쿠바시에 도착하면 바로 케이블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왼쪽 발목이 점점 찌릿해와서 발걸음이 상당히 느려진 탓에 일반인들 발걸음 따라가기 바쁘다.

'극락다리' 라는 이름의 코쿠라쿠바시 역은 정말로 이 케이블 열차를 타는 순간 사바세계의 경계를 넘어갈듯한 분위기.

도쿄 근처의 하코네에도 비슷한 녀석이 있긴 하지만 여기는 그곳보다 훨씬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서

이런 깊은 산중에 열차역이 존재한다는 풍경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난 자전거 여행중 코야산에 흥미가 있었음에도 찾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저렇게 어마어마한 경사의 열차를 타고 정상 부근까지 올라가야 하는 코야산을 자전거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열차 내부 역시 계단형식으로 되어 있다.

 

 

 

맨 앞쪽으로 이동했는데, 경사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알프스 근처라면 이런 열차 보는게 어렵진 않겠지만, 이 정도면 그냥 로프웨이를 설치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주변에 열차 관련 시설 말고는 온통 푸른색 뿐이라서 정말 분위기가 확 바뀌는게 코야산의 명성 답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올 때라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고생 좀 할듯한 높이.

 

 

 

이 정도 경사는 전철 자체의 힘으로 올라갈 수 없어서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저게 툭 끊어지기라도 하면 대형참사가 일어나겠지만, 저 굵기를 보니 어지간하면 걱정 안해도 될 듯.

하코네의 전철은 지그재그로 스위칭을 해 가며 산길을 오른느데, 여기는 그럴만한 공간도 없어서 그냥 직선으로 쫙 올라간다.

 

덜컹거리며 전철이 움직이니까 왠지 긴장된다. 약 5분간 이 절벽에 가까운 경사를 오르는데 이런 철덩어리 속에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인기척이라고는 느낄 수도 없는 깊은 산속을 올라가는 도중 갈래길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두 대의 전철은 항상 이곳에서 만나서 서로 엇갈리게 되어 있다.

오늘은 평일 오전이라서 관광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성수기에는 이 전철도 지옥철로 변할 거라는 예상이 된다.

 

이러한 지옥철은 예전 히로시마의 미야지마(宮島)에 있는 미센 산의 로프웨이에서도 경험한 바가 있어서, 그림처럼 예측 가능.

승객이 별로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여러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코야산은 일본 불교의 총본산인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지역이라서

성수기때의 참배객과 관광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 한적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 발목이 많이 아프지만.

 

 

 

5분간 케이블 전철을 타고 코야산역에 도착. 해발 1000m 가량의 산지에 둘러쌓인 곳이다.

높이만으로라면 자전거로도 못갈 위치는 아니지만, 코야산이 위치한 키이(紀伊) 반도가 워낙 험한 산세에다가

해변가와 달리 중앙부 산맥에는 맷돼지나 곰등 야생동물이 많아서, 자전거로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좀 위험한 곳이다.

 

여기까지 오는 전철비, 케이블비, 그리고 이 오쿠노인(奥の院)행 버스 등등 모든 교통비가 칸사이 스루패스로 이용가능하니

코야산을 가려면 스루패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틀 이용권을 구입해도 코야산 왕복 한번에 구입금액 이상을 사용가능.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상태 보존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라도 이 코야산은 명성에 비해 주민들이 더없이 소박하고 조용하게 생활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은 일본 불교의 중심인 진언종의 창시자 홍법대사 쿠카이(空海)가 수행을 닦고 진언종을 설립한 곳으로

일본 불교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일 뿐 아니라, 일본 역사 전반을 통틀어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인물의 성지이기 때문에.

 

홍법대사의 발자취는 일본 전역에 남아있는데, 천년간 이어져 온 시코쿠(四国) 88개소 1200km 순례길은 그가 다녀간 발자취이고

미야지마의 미센 정상에 불타고 있는 정화의 불도 그가 피워놓은 후 수백년간 꺼지지 않고 있으며

그 불씨를 가져와서 평화의 상징으로 불타고 있는 히로시마의 원폭 박물관 앞의 횃불 등등

불교와는 관계없는 일반 일본인이라도 코보 다이시(弘法大師) 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위인이다.

 

높게 솟은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이곳은 마치 연꽃 모양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수백년간 성지로 추앙받았는데

그래서인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도 마을의 모습은 크게 변한 것 없이

이 좁은 분지에 세워진 백여 개의 사찰과 함께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다.

 

일본 전통문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닛코(日光) - 눈, 귀, 입을 가린 원숭이상으로 유명한 그곳 -

와 함께 이 코야산을 빼놓고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명승지중의 명승지이다. 국보의 2%가 이곳에 모여있기도 하고.

그런데 재미있게도 실제 코야산이라는 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행정명일 뿐, 그런 이름의 산은 없다.

 

 

 

코야산역에서 실제 관광지까지 가는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걸어서 갈 수 없지만

일단 구역 안으로 들어오면, 걸어서 1시간 반 정도에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조그마한 분지가 나온다.

그런 조그만 곳에 사찰만 해도 백 개가 넘으니,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문화제나 마찬가지인데

일단은 코야산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오쿠노인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린다.

 

이곳에서 좀 더 진행하면 거기서부터는 나의 자전거 여행 루트와 만나게 된다.

익숙한 이름의 표지판을 보니,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듯 하다. 1년간의 여행중 거의 막바지에 통과한 곳.

 

아주 화창한 건 아니지만 산책하기엔 더없이 맑은 날씨라 기분도 좋은데

문제는 왼쪽 발목. 도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절뚝거리지 않으면 걸을수도 없을 정도.

무슨일이 있어도 코야산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서 악을 써서 이곳까지 왔지만, 이제부터는 2km 남짓한 산길을 걸어야 한다.

어제 미도스지 페스타가 전혀 예정에 없던 이벤트라서 꽤나 무리해 버린 게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은.

예정대로 오후 3시에 호텔에 들어가서 편하게 쉬었다면 오늘은 아마 생생했겠지.

 

후회해봤자 소용없고, 어제 재미있게 즐겼으니 어쩔 수 없다. 그냥 버티는 수 밖에.

 

 

 

불교 기반의 문화적 특성이 비슷한 한국 사람이라면 그냥 그렇네 라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서양쪽 관광객은 이런 곳이 제일 볼만한지, 영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도 신성시되던 곳이라 입구에서부터 그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다.

나름 일본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도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일 정도로.

 

20m는 족히 넘어서, 뷰파인더에 한꺼번에 담기지도 않을 정도의 삼나무들이 무수히 줄지어 있는 입구의 모습은

이 안에 정말로 뭔가가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위압감이 감돌고 있다.

 

 

 

 

오쿠노인은 홍법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그의 영령을 기리는 사당인 고뵤(御廟)를 중심으로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와 역사상의 인물들, 그 외 수많은 일반인들의 묘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묘지.

약 천년간 셀 수도 없는 묘가 들어서고 사라지고를 반복해, 현재 남아있는 묘는 추정 20만개를 넘는다.

코야산에서도 가장 신성한 곳으로, 사람에 의해 세워진 단순한 역사를 넘어 코야산의 정기 가득한 자연의 품에

일본의 역사 자체가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타임머신과도 같은 곳이다.

 

과연 발목이 버텨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배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년간 일본을 돌아봤지만 이 정도로 기대감을 고취시키는 입구도 드문 편.

천년 간 이어진 공간이란 계획적으로 조성된 인공미와는 다른, 글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느낌이 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이 공간을 단순히 구경거리 많은 문화 유산으로 인식할수밖에 없지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옛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 이 시기에도 여전히 이곳에 가족과 지인들의 묘를 만들어 혼을 위로하는 현실적인 공간일 테니

과연 그들의 눈으로 보는 이곳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참배길 초반에는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묘석이 대부분이다.

사실 이런 풍경만 해도 한국의 그것과는 꽤나 차이가 있는 편이라 신선함은 느낄 수 있다.

물론 역사를 간직한 문화 유산으로서의 감각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씁쓸한 현실이긴 한데, 500년전 전국시대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이나 이 오쿠노인에 묘석을 세우려면 상당한 자금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하다.

돈이 없는 서민들은 나무조각에 글씨를 세겨 눈에 띄지 않는 나무둥치 사이에 살그머니 끼워넣거나 했다.

홍법대사의 가르침과는 뭔가 동떨어진 현실에, 그래서 세상이 지옥이라는 말이 통용되는건가 싶다.

 

 

 

일본인이라면 그리 신기한 광경도 아닌것이,

왠만한 마을 어귀는 물론, 심지어는 대도시의 조그만 공원 사이사이에도 이런 묘석은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

일본 장례 풍습은 대체로 화장 후 유골함을 집 안에 신주와 함께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공동묘지에 이렇게 묘석을 세우긴 하지만 실제로 저 밑에 유골을 안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한국처럼 가문의 묘터 같은 개념도 없고, 기일이 되면 공원 산책나가듯이 공동묘지에 가서 꽃을 바치고 합장하는 정도.

같은 동양권 문화지만, 셀 수도 없이 늘어져 있는 이곳 오쿠노인의 묘석들은 한국인에게도 새로운 체험일거라 생각한다.

 

 

 

전통과 역사를 가진 참배로인데, 역시 어깨의 힘을 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엄숙하기만 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참배로 초반에는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묘석도 세워져 있다.

재단법인 일본 흰개미 구제협회에서 마련한 묘석으로, '흰개미 편안히 잠들라' 라고 쓰여져 있다.

 

여기 들어와서 발걸음을 옮길 때 조금은 긴장된 느낌이었는데 이 비석을 보고 그냥 웃음이 나온다.

묘지라고 해서 똥 씹은 표정으로 침묵해야만 할 필요는 없곘지.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 주택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 시간에도 박멸당하는 중인 흰개미들에게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