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잠깐 올라간 김에 나침반님과 이태원을 찾았습니다.

 

이태원은 아마 이번이 세 번째인 걸로 기억하는데, 보통은 평소 먹을 수 없는 이국적인 음식을 위해 가는 편이죠.

가격이 좀 센 곳들이 많지만 예전에 찾았던 우즈베키스탄 요리점은 그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뭘 먹을까 싶어서 조사를 해 보니 한국에 딱 하나밖에 없는 불가리아 음식점이 눈에 들어와서 가 봅니다.

일반 메뉴는 하나씩만 시켜도 둘이서 7만원은 거뜬히 나올 듯 하니 역시 저렴하게 접할 음식은 아니네요.

하지만 런치세트가 그럭저럭 싼 편이라 그걸로 그냥 맛만 보기로 했습니다.

 

메인 요리 전에 나오는 샐러드와 수프, 바게뜨입니다.

샐러드는 그냥 맨 것이나 다름없고 수프는 뜨끈하고 구수한 고기맛이 연하게 느껴지더군요.

 

 

 

좀처럼 먹기 힘든 요리라 그런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가게 사진을 찍기가 힘들 정도로 말이죠.

제가 선택한 메인 요리는 양다리 바베큐 입니다. 소스가 전혀 짜지 않은게 굉장히 담백하더군요.

 

얼핏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는 이 곳 음식이 꽤나 짜다는 소문이었는데

메뉴마다 다른건지는 모르겠지만 고기도 소스도 전혀 짜지 않고 부드러운 느낌이었네요.

 

양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사하라 사막과 삿포로 맥주공원의 임팩트가 DNA 속에 각인되어 있어서.

이 곳 양고기는 그 특유의 비린내도 잘 잡아낸 편이고 고기가 부드러워서 먹을만 합니다. 양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다른 메뉴를 시켜야 다양하게 맛을 보니 나침반님은 닭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저도 한조각 떼어 먹어보니 이것도 맛이 연하네요. 불가리아의 고기 음식은 이렇게 부드러운 느낌의 소스를 사용하는건가 싶습니다.

 

양고기 바베큐나 닭고기 스테이크나 이런 맛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여도 괜찮을 법하지만

기왕 이태원에 왔으니 맥주는 다른 곳에서 먹기로 하고 식사만 즐깁니다.

주위의 다른 손님들은 뭔가 큼직큼직한 캠프파이어 장작처럼 세워져 있는 꼬치구이도 시키고 해서

이곳 음식이 꽤나 다양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돈에 구애없이 마구 먹을수도 있지만 그냥 체험하러 왔다는 느낌이라 이 정도면 적당합니다.

 

 

 

그나마 사람이 적게 찍히는 구도로 간신히 한 장 찍어봤습니다.

젤렌이라는 이름의 가게인데, 알고보니 불가리아어로 '녹색'이라는 뜻이라더군요. 과연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으면 사진도 훨씬 화사하게 나왔을텐데, 하필이면 안내받은 곳이 어두운 구석탱이라.

 

뭐 이런 사진은 그냥 소소한 추억 남기기로 담는 것이니 그리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디저트로 나오는 요구르트는 시중 국내산과 비교해서 훨씬 시큼한 맛이 훌륭하더군요.

요구르트의 본고장 맛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저는 단 요구르트보다는 신 요구르트를 좋아해서 입에 잘 맞았습니다.

집에서도 떠먹는 요구르트를 간이식으로 만들어 먹고 있지만 저는 거의 다른 첨가물을 타지 않고 시큼한 맛 그대로 먹거든요.

 

처음엔 이 정도 양 가지고 괜찮을까 싶었는데, 고기는 고기라 배가 한동안 꺼지지 않고 포만감을 유지해 줬습니다.

 

 

 

아직 날이 한창 밝을 때라 사람들이 별로 많지는 않네요.

나침반님 말로는 밤이 되면 인파가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분위기는 밤이 되어야 본론이 시작되는 걸까요.

메르스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조용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이곳은 그 여파가 별로 미치지 않는 듯 합니다.

 

사람 적을때 이태원 구경이나 실컷 하기 위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이태원이 그리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서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내봅니다.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한 곳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되려 관광 명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원래는 미군들 때문에 시작한 상권이고 지금도 온갖 외국인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자연스럽게도 한국인 관광객 역시 많이 찾아서 나름 신선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요즘 굉장한 불경기라고 한탄하시는 분이 많은데, 이 곳은 음식점이 즐비해도 나름 장사가 잘 되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하긴 모든 사람들이 나침반님이나 저처럼 외식을 한다면 이런 가게들 오래는 못 가겠죠.

 

 

 

뒷골목을 걸어가다 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펍이 보입니다. 이건 제가 아는 펍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이 정도면 왠만한 중소기업 굴리는 것보다 자금이 더 많이 들 듯 한데, 과연 어떨까 싶습니다.

 

맥주 한 잔 하긴 하겠지만 아직 이런 곳에 들어가서 자리잡을 만한 시간은 아니라 그냥 구경만 하고 패스합니다.

 

 

 

재미있는 데코레이션도 보입니다. 아마 소주병인 것 같은데 옆으로 주욱 늘어놨더군요.

디자인이라는 건 재료의 종류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시선과 호기심을 끌 수 있어야겠죠.

 

밤에는 저 위의 라이트가 켜질 테니 그때 다시 한 번 구경하러 오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홍대에서도 자주 봤지만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보니 이태원 골목에도 그래피티가 많더군요.

용인하고 있는 것인지 건물주가 포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 예술로 보기에는 단순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밑의 '폐 유 수 거'와 별로 다를바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물론 허름한 뒷골목에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눈을 끄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니

과하지 않은 선에서 즐긴다면 별 문제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이태원은 이런 분위기에 알맞은 곳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구도가 나올 것 같아서 한 장 담아봤습니다.

르 꽁드와의 쉐프는 어쨌든 쓰레기 무단투기 때문에 많이 힘든가 봅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밑에는 쓰레기 봉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만 위의 쓰레기들은 강렬한 색생을 발산해서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군요.

 

그래피티라는 게 원래 반달리즘과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을 먹고 자라난 분야이긴 한데

한국에서는 그냥 재미삼아서 그리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의미를 따지기는 좀 그렇네요.

단정히 배열된 쓰레기와 그래피티, 그리고 엄중한 경고문이 얽혀있는 모습은 왠지 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태원엔 바이크가 많더군요. 도로를 달리는 녀석도 많고 주차되어 있는 녀석도 많습니다.

괜찮다 싶어서 찍어봤는데 왠걸, 나침반님이 제가 인터넷 사진을 보고 영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혼다 CBR125 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녀석들은 정말 영 아니게 생겨서 훌륭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매욕구가 일어나지 않았던 모델인데

막상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네요. 바이크라는 게 사진으로는 매력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녀석들인가 싶었습니다.

 

이 색상은 건담 버전이라고 하시는데 딱 이해가 되었습니다. 레플리카보다 네이키드를 좋아하는 편이라 관심없었는데

직접 보니 이 정도면 듀크125보다도 싸고 성능도 좋은편이니 잠깐 고민을 하게 만들더군요.

 

자금이 널널하다면야 125cc 중에서 과하게 고급인 듀크125 를 구입하고 싶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 녀석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네요.

 

 

 

이태원은 생각만큼 큰 거리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도로 주변의 각종 상점들보다는 양쪽 골목 사이사이에 퍼져있는 다양한 컨텐츠들이 더욱 볼만합니다.

 

나침반님이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터키 아이스크림 돈두르마도 하나씩 먹어봤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모든 터키 아이스크림 점주분들이 실행할거라 예상하는 깜짝 이벤트도 한번 겪어보고.

 

예전에 먹었던 돈두르마보다 쫀득함이 조금 약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만 이런 건 기분으로 먹는 것이니까요.

제가 알고있기로는 돈두르마는 어떤 식물의 뿌리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쫀득쫀득함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식물이 한국에는 없는 녀석이라 과연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끝까지 걸어와 봤으니 다시 돌아서 다른 길을 찾아 구경해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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