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니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던 관광객들이 스물스물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원폭 돔은 두 바퀴나 돌아가며 잘 감상했으니 이젠 바로 옆의 평화공원으로 직행.
그 전에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사진 정리했다.

PEACE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들어간 관련 상품을 팔고 있더라. 티셔츠 같은 것. 별로 보고싶지 않은 광경이다.
내 지론상 자본주의와 PEACE만큼 안어울리는 단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폭 돔과 평화공원, 평화 기념 자료관 등등
히로시마의 정신적 상징인 원폭 관련 볼거리는 전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하기 편하다.
히로시마성 같은 그닥 가치없는 성도 원폭 돔에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히로시마는 짧고 굵게 구경하지 참 좋은 곳.

가보고 싶었던 히로시마 미술관은 입장료가 내 하루치 식비인 1,000엔이나 하는 터라 (지금 수중엔 700엔 정도 T_T) 눈물을 머금고 포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참배중인 이 곳은 '원폭 어린이 상'
저 어린이는 2살때 피폭 후 12세가 되던 해 백혈병에 걸린 사다코라는 아이로
여러가지 염원을 담아 병상에서 1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려 했으나 도중에 사망해 버렸다.

그 일이 알려지고 나서 각지에서 수십만 마리의 종이학이 쇄도했고, 사람들의 기금으로 평화공원내 어린이 상이 건축되었다.


가까이 다다가서 사진을 찍기엔 참배객들에게나 사다코씨에게나 폐를 끼치는 마음이라 멀리서 찍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웃으면서 '쟤가 종이학 접다 죽은 사다코래~' 하면서 여친과 함께 웃으며 커플사진찍는 사람들이 있다.

부디 나중에 백혈병 걸려서 죽을때도 당신들 옆에서 즐겁게 사진찍으며 노는 사람들이 있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ㅡㅡ;


이 원폭 어린이 상과 평화의 불꽃, 희생자 위령비, 그리고 맨 뒤에 보이는 평화 기념 자료관은 거의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다.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가 이 라인이 아닌,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다는게 한국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못마땅한가 보더라.



평화의 불꽃.

앞서 미야지마의 미센 정상에 있다고 설명한 '꺼지지 않는 불'에서 가져온 불씨다. 목적은 당연히 세계 평화와 핵무기 금지 기타등등.
피폭 희생자들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은 여느 일본인 못지 않지만, 솔직히 계속 평화 평화 하니 좀 짜증나는것도 사실.

평화는 이런 상징물에 서식하는 이끼같은게 아니거든.


희생자 위령비.
이곳 앞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편히 잠드소서.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이 문구가 참으로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되어 왔는데
잘못을 한 주체가 적혀있지 않고
잘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

한창 여러 해석이 갈리고 갈리던 끝에 지금은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전 세계인의 공통된 발언'으로 일단락 되었다.

여기서 이런 문구를 보고 화를 낼건지 공감을 할건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결정.

내 입장은
'그냥 지구상에서 인간이 싹 사라져 버리면 정말좋겠네~' 정도?


비가 온 터라 벤치에서 쉬기도 어렵고, 이제 남은 건 저 앞의 평화 기념 자료관이다.
세계 각지에서 성금도 많이 보내오고 히로시마 시의 지원도 상당한 편이라 꽤나 유지비가 들 듯한 이곳은 입장료 50엔 밖에 받지 않는다.

300엔을 내면 라디오로 다국어 안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난 4년간 수백만원 들여가며 일본어 공부한 끝에 300엔의 이익을 얻었다!


자료관 안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여지껏 히로시마에서 둘러본 관광지 중 서양인 관광객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10명중 1명은 서양인일 정도.
웅성웅성거리긴 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대다수의 관광객이 목소리를 죽이고, 인상을 죽이고 숙연한 자세로 자료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따라가면 전쟁 전후의 히로시마 사정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생활상의 변화 등을 세밀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히로시마의 일반 시민들과 군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구별하려고 노력한 듯 했다.
전쟁에 휘말린 시민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함께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글도 조금조금씩 눈에 보인다.

다행이랄까, 한국에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애환과 상처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쓰여 있긴 헀다.

그리고 이 기념관에서 가장 유명한 손목시계.

원폭 투하시간인 8시 15분이라는 과거의 공간에 영원히 갖혀버린 비극의 상징이다.
아무리 영상과 사진과 자료를 접해도 결코 실감하기 어려운 원폭이라는 무기의 무서움을
이 멈춰버린 시계 하나가 그 어떤 것 보다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원폭 투하 후의 히로시마시.
당시 군수공장이 밀집해 있었던 인구 35만의 거대 도시는 14만명의 사망자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폭이 투하되기 전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의 히로시마.

원폭 돔에서부터 걸어왔던 현재의 발걸음이 과거와 겹쳐지는 느낌에 소름이 끼친다.
이곳엔 그 외에도 피폭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피폭자들의 상태를 찍은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지만
상당히 잔혹한 장면들이 많아서 일부러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어리숙한 사진 실력으로 구경거리를 만들기엔 이 자료들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원폭 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18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사진.
당시 저 솟아오른 버섯 구름의 위용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신의 진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부식되어버린 어린이용 자전거.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어린이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고열로 변형되어버린 유리병.
이곳에 전시된 자료들은 모두 인간에게 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지만
저 기묘한 붉은색 반점을 보고 있으면 섬뜩해 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도 고온으로 녹아버렸다.
이 자료 근처에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재가 늘어붙어있는 벽면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사진으로 담아내기에는 그 감정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라 생각해서 촬영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 후 히로시마 전역에 내린 '검은 비'
방사능 낙진과 섞여서 쏟아내리던 검은 비를 바라보던 당시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의 마음은 과연 어디까지 처참했을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이렇게 평화 평화 외쳐도 실제로 그게 오지 않을거라는 건 너무나 뻔한 사실.

그래도 불가능한 일 역시 끊임없이 바라고 또 바라는게 인간이 가진 사고의 장점 아니겠나.
자료관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는 이 종이학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종이학처럼 몇 그램밖에 안되는 하찮은 무게만큼이라도 세상은 '평화스러워'지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