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없이 대만 가고싶다는 상념 하나로 번갯불에 콩튀겨 먹듯이 결정된 대만여행.
가족 전체가 여행이라면 사족을 못쓰기도 하고, 형수님도 여행을 좋아하는 터라 우릴 말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나온김에 형님부부에 얹혀 예정에 없던 대만에 3박 4일 놀러가게 되었네요.
비행기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 전날 밤 서울로 올라와 하루 묵기로 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서 이미 여행에 찌들어 지친 포즈를 취해주시는 형수님과
벌써부터 카메라 들고 이리저리 찍어대는 형님.


A550이라는 걸쭉한 DSLR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필름카메라에 필 받은 저는 미놀타의 A-7과 필름 한뭉치를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래도 역시 야간사진 찍을 때는 DSLR이 최고죠. 건대입구에서 공항행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며 한 컷.
머피의 법칙인지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심신이 좀 피곤했습니다.
원래 여행은 출발 전이 제일 피곤한 법이죠.


공항검색대에서는 필름카메라를 따로 빼서 수검사를 요청했습니다.
필름이 X-Ray에 노출되면 좋을 게 없으니까요.
필름 한롤 꺼내서 비행기 출국기념 사진 한 장 찍고 잠을 청했습니다. 전날 잠을 못자서 피곤하더군요.


타오위엔 국제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 중앙역으로 이동합니다.
싼 값에 여행을 가려 하니 타이베이에서도 전철로 30분은 넘게 떨어진 신베이토우에 숙소를 잡게 됐네요.
다행히도 타이베이 시내만 줄창 돌아다닐 예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나 별 관계 없긴 했습니다.

대만은 그나마 물가가 좀 싼편이라 교통비를 포함하고라도 저렴한 호텔을 잡는게 이득이네요.


하지만 아쉽긴 한 점이...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신베이토우까지 바로 갈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신베이토우 바로 앞역인 베이토우에서 갈아타서 고작 한 코스를 더 가야 합니다.
뭐, 여행은 무조건 즐기는 주의라 불쌍한 두 발이 피곤할 뿐이죠. 이것도 여행의 매력이라 생각하고 네거티브한 마인드는 패스.

DSLR을 손에 쥔 형님은 연신 여기저기서 셔터를 누릅니다. 저는 필름카메라다 보니 아껴서 한장 한장 찍으려고 노력.


물론 주 피사체는 제가 아니라 와이프겠죠.
A550도 충분히 좋은 카메라이긴 합니다만,
16-35 줌렌즈를 제 필카 주력으로 쓰는 바람에 형님은 75mm 단렌즈가 너무 망원이라고 투덜거립니다.

그런 고로 제가 최대한 형님부부를 잘 찍어야겠죠.


베이토우에서 신베이토우로 가는 단 한 코스의 노선은 색깔도 아기자기한게 관광용 전철같은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신베이토우는 온천이 개발된 이래로 정부에서 공인한 집창촌이 생길 정도로 환락가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이젠 순수한 온천상품으로 더 유명한 곳입니다.


전 한국의 전철이 세계 최고인줄 알았는데 사실 대만의 전철 시스템은 한국의 그것을 능가하더군요.
신베이토우행 전철 안에 이런 안내 데스크가 있다는게 신선하다는 게 아니고 (물론 이것도 신선하긴 하지만)
한국보다 넓직한 탑승공간에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플랫폼, 전철 내부에도 설치된 감시카메라 등등
전철 내에선 음식은 물론이고 껌도 씹을 수 없다는 경고방송이 나올 정도로 청결도 면에선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찌나 줄을 잘 서는지 일본보다 더 칼같이 줄서서 전철에 타고 내리네요. ㅡㅡ;


신베이토우 역에 도착했습니다. 12월 23일인데도 이곳 날씨는 최저 10도, 최고 16도에 달하네요.
저는 거의 반팔이나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돌아다녀도 더운데, 이곳에는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 서울에 오면 얼어죽겠군요.


신베이토우역앞엔 이런 커다란 문 같은게 있어서 알아보기 쉽습니다.
숙소로 정한 아타미 호텔이 어딘지 감이 안잡혀서 근처 경찰서를 찾아갔네요.
영어로 해도 알아먹질 못하는 젊은 경찰관이 지도까지 펼쳐보이며 친절하게 설명해 줬습니다.


위치도 알았겠다 아타미 호텔로 출발.


저렴한 호텔답게 그야말로 TV보고 씻고 잠자는것 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냄새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방 배정을 햇볕이 안드는 쪽으로 해 준 탓에 대낮에도 불 없이는 어두침침하네요.

다행히도 일본 원어방송이 나와서 전 밤에 심심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서둘어 짐 대충 풀어놓고 밖으로 나옵니다.
일단 오늘의 목표는 낮에 타이페이 중앙역 부근을 어슬렁거리다가 밤에 대만의 명물이라는 야시장들을 둘러보기네요.


다시 신페이토우역으로 향합니다.
호텔 주위로 흐르는 물에서 김이 나는걸 보고 진짜 온천은 온천이구나 싶더군요.
호텔 내에서도 온천수가 나온다니 오늘 밤 목욕은 즐겁겠습니다.


제대로 된 목욕탕도 있네요. 형님은 날잡아서 들어가보자고 했는데 결국 바쁜 일정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는 후문이...


호텔에서 신페이토우 역까지 걸어가는 길엔 조그만 시민 공원이나 이런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1900년대 초에 일본이 개발하기 시작한 온천에 대한 역사와, 원주민들의 고달픈 삶을 전시해놓은 온천박물관.


조그만 공원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산책하러 나오기도 하고 운동도 하더군요.


1인 1카메라 시대를 맞이한 일행은 서로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전 찍히는건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형님부부에게 추억을 남겨주는 일에 몰두.


가끔은 외도를 하기도 하죠.
나뭇가지에 희한하게 뻗어나온 줄기인지 뿌리인지 모를 것이 제 눈길을 잡더군요.


여행을 빡빡하게 즐기는데는 도가 튼 형님부부라 그냥 슬쩍 지나갔지만
서울과 맞먹는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탓에 녹지가 극도로 부족하다는 타이베이시 안에도 이런 작은 공원들이 있다는 건 감회가 새롭군요.

일단 저한테는 이곳이 더워서 꽤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움직일 수 밖에 없었네요.
거의 영하에 가까운 서울에서 갑자기 영상 10도가 넘는 곳에 도착하니 가뜩이나 더위를 많이 타는 저로서는...


한국에서 질리게 봤는데도 여기서 또 보게되는 붉은 십자가.
하긴 여행하다보니 한국어로 쓰여진 교회가 이곳에도 있더군요.


같은 관광객인진 모르겠지만 연못에서 무언가를 찍고 있는 분.

대만은 뭔가 중국틱하기도 하면서 어찌보면 일본틱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한국을 닮은 것 같기도 한 독특한 거리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겠는데, 그래도 기본은 중국인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형님 왈 '사람들 머리가 너무 떡졌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엄청난 수의 스쿠터를 들 수 있겠네요.
거의 자동차 반 스쿠터 반이라고 할 만큼 어마무지한 수의 스쿠터가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정차되어 있는 녀석들도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한국도 바이크나 스쿠터가 이만큼 활성화 되었다면 교통난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일단 먹는게 남는거라는 신조를 가진 일행은 역 주변의 조그만 식당에 쳐들어갔습니다.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음식점이 아닌 아주 조그만 건물이었는데, 덕분에 메뉴는 전부 이상한 문자들로 가득...
그냥 고기 육자나 생선 선자정도만 알아먹고 손가락으로 몇가지 시켰죠.

완전 꽝은 아니었던게, 다들 먹을만 한 녀석들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중국집 냉채에 곁들어 나오는 까만 오리알같은 녀석인데, 아마 고기와 고기 기름을 한천과 함께 굳혀서 젤리처럼 만든 것 같더군요.


대만에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향기를 내뿜은 국수도 맛있었습니다.
김치 좋아하는 분이라면 몇번 먹다가 향수병에 걸릴수도 있을 정도로 독특한 향이 있네요.


대만의 대중적 요리라고 하는 국수.
고기나 생선을 완자로 만들어 국수안에 넣어놨습니다. 쫄깃쫄깃하고 맛있더군요.
저 녹색 채소는 중국이나 베트남 요리에서도 많이 쓰이는 시향차이라는 향초입니다.
한국서 베트남 음식 먹어보셨으면 금새 어떤 향기인지 이해하실 듯.

한국사람들은 저 향기를 감당하지 못해 빼달라고 하기도 한다던데,
저희 일행이야 뭐, 어떤 요리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니 빼달라고 할 수 있을리가 없었네요.

매일 매일 이런 걸 먹으면 꽤나 느끼하겠지만 외국에 와서 외국 음식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니.
꽤나 서민적인 식당이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배가 허전하지 않게 먹고도 세 명분 합해서 8천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배를 채운 일행은 이제 전철을 타고 타이베이의 중심인 타이베이 중앙역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