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기나 통증이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악을 쓰며 걷고 있는데

굉장히 아기자기한 모습의 미니 사당이 보수공사터 주변에서 눈에 들어온다.

이끼로 지붕을 만든 듯한 고픙있는 모습이 멋지구나 싶었지만

만든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 않은 듯 함에도, 부식 상태를 보니 역시 목조 사당은 이곳에서 버티기 힘든 듯 하다.

 

얼핏 보면 비슷비슷한 한국과 일본의 자연 환경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점이 보이는데

일본은 기본적으로 여름에 훨씬 고온 다습한 곳이고, 그 때문에 산발성 호우가 자주 내리며

특히 계곡이나 산에서는 그 탓에 안개가 끼는 곳이 많다 보니

이렇게 산이나 계곡 전체가 이끼로 뒤덮힌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목조 건축은 순식간에 이끼로 뒤덮혀 부식되어 버리곤 한다.

 

코야산 정도라면 아마 이 목조 사당은 길어봐야 20년을 버티기 힘들 듯.

다음에 찾아갈 때 까지 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줬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본 기억이 별로 없는 길고 흐물흐물한 치마를 입은 관광객이 눈길을 끈다.

깍지 끼고 걸어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구만. 사실 이 사진을 도촬할 당시엔 그것보다는

내 다리가 저 정도만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더 절실하긴 했다.

 

걸어가는 도중, 아까 고뵤 앞에서 봤던 단체 관광객들이 혹여 내 발걸음을 따라잡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아마도 나와는 반대 루트로 이동한 듯. 그 사람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내가 들어온 입구 쪽에 대형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출구를 그쪽으로 잡았을지도.

 

 

 

이렇게 가문 대대로 이곳에 묘석을 세우는 사람도 있는 듯 한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 이 정도 규모의 묘터를 마련했다는 건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불교의 중심지인 코야산이지만 이곳에도 토리이(鳥居)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의 종류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하다.

대문 역할을 하는 토리이 뒷면에 불교를 상징하는 오륜탑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도 나름 퓨전적이다.

 

 

 

언덕 위쪽에 묘하게 한국식 느낌이 나는 건물이 보여서 조금 망설이다가 다가가 보기로 결정.

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아무런 정비도 되지 않은 흙길에다가, 흐르는 물 때문에 진흙으로 된 부분도 있어서

그 때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제껏 봐온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멀리서 볼 때는 색상 탓인지 조선 건축물인가 싶었는데 조금 다가가고 보니 그건 아닌듯 하다.

지붕이나 처마의 형태는 전혀 다른데, 색상이 왠지 조선시대 건축물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혹시 그 당시 유명한 조선시대 인물의 사당인가 싶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사당이라서 약간 맥이 빠졌다.

 

사실 맥이 빠질일도 없는게, 착각은 했지만 이 우에스기 켄신이란 인물은 일본 전국시대 최고의 영웅호걸로 유명한 인물이니

우연이 겹쳐졌다고는 해도 한번 구경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수확이라고 생각.

 

전란의 시기였던 1500년대, 전국시대라고 불리는 당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의 무장들이 전국 통일을 목표로 전쟁을 벌이던 시기.

결국 일본을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도 두려워했던 호걸 중의 호걸이 이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무장이다.

당시 최고의 무공과 뛰어난 용병술을 자랑하는 무장이라고 하면

누구나 우에스기 켄신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타게다 신겐(武田信玄) 두 명을 꼽을 정도로 뛰어난 무장.

평지에서 그의 군대와 부닥치면 전투도 하기 전에 후퇴하는 장수들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런 인물임에도 불교에 심취해서 사생활이 깨끗하기로 유명했으며, 당시 불교의 뜻에 따라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인의와 예의를 지키는 무장으로 이름나, 적이었던 수많은 장수들의 문헌에도 켄신의 덕을 칭송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 검소함의 함정이랄까, 대주가였던 그가 고기는 일절 입에 대지 않고 술안주로 짜고 신맛의 매실절임(梅干)을 즐겨 먹었던 탓에

49세때 뇌일혈로 사망하고 만 사실은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전통 시 와카(和歌)의 대가이기도 한 것을 보면,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틀린것도 아닌 듯. 비유가 좀 이상한듯 하다만.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임에도 보존 상태는 꽤나 양호하다.

1700년대 건축물로 추청되는 이 사당은, 1960년대 대대적인 보수를 거치기 전에는 상부 지붕도 거의 날아간 상태였지만,

현재는 원래의 모습을 복원, 오쿠노인의 묘지 중에서도 꽤나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 있다.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와서 걸어가는 도중, 위에서 언급한 또 한명의 무장 타게다 신겐의 묘석이 눈에 들어온다.

묘석보다는 이 묘비가 훨씬 대단해 보인다.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서 있었는지, 외모에서 역사가 느껴질 정도.

사실 지금껏 걸어오면서 이 외에도 유명한 인물들의 묘를 많이 지나쳤음에 틀림없지만

이 정도로 눈길을 끄는 녀석이 아니면 하나하나 살펴볼 여력이 없을 때라서.

 

유명하다고 해도 일본인한테나 그런 것이고, 그것보다는 오쿠노인 참배길 전체가 갖고있는 풍경을 즐기는게 훨씬 낫긴 하다.

 

 

 

이런 건 이끼라고 부르기는 좀 이상한데, 수백 년이 지나면 이 녀석도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사진에 나온 거대 삼나무들은 보통 수명이 500년쯤 된 녀석들인데

야쿠시마에 있는 5천년 된 삼나무도 시작은 이런 조그마한 녀석이었다고 생각하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매력이란 사람의 인지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듯 하다.

 

 

 

단체 석불상도 나름 신기한 모습.

거대한 삼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석불 앞에는 이끼와 새싹들이 돋아나 있는 풍경이 훌륭하다.

석불이라는 것도 동일한 모습이 없이 각자 개성이 있으니, 허투로 볼 곳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

 

 

 

묘석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듯 피어있는 이 꽃은, 이름은 알 수 없지만 꽤나 묘하게 생긴 모습이다.

중앙의 노란색 반점 위엔 수술로 보이는 미세한 돌기가 나 있는데 잎사귀의 모양이 비대칭인 것이 신기할세.

구글 같은 데서, 그림만으로 꽃 이름을 찾아주는 서비스 같은 건 없는지 모르겠다.

 

음악같은건 마이크에 대고 재생하면 곡명을 알려주는 스마트한 서비스도 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컷 하나만으로 무슨 동영상인지도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개발중이고. 이 녀석은 의도가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내가 못 찾고 있는건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원래는 무엇에 쓰이던 녀석일까.

살짝 옆으로 기울어진 모습이 오히려 주변 모습과 어울린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꽃들도 저 녀석 따라서 살짝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지 않나?

딱딱한 사각형 모양의 조각도 이러고 있으니 왠지 푸근한 인상을 준다.

 

 

 

이제 길다면 길었던 오쿠노인 참배길의 끝이 보인다.

3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볍게 산책할 만한 코스인데도

나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끝낸 것 같은 성취감과 비장함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릴듯한 느낌.

 

사실 오사카에서 출발해서 하루 코스로 돌아본다면 아무리 뼈빠지게 돌아봐도 코야산의 전부를 감상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왕복 4시간이나 걸리고, 코야산 내부 숙박시설은 상당히 비싼 편이라서, 와카야마시에서 출발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새벽 6시쯤 출발하려 한 오늘 일정은 뜻하지 않은 염좌때문에 8시에나 출발하게 되었으니, 애시당초 포기하긴 했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볼거리는 한정된 몇몇 부분으로 계획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오쿠노인을 완주(?)했다는 점에서

나름 고생해서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 물론 아쉬운 점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오쿠노인을 빠져나가기 전 늠름하게 홀로 서 있는 오륜탑 한장 남긴다.

 

 

 

다행히도 출구 바로 앞에 벤치가 있어서 주저앉았는데

그동안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발목이, 모 막장 방송국처럼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광을 시작한다.

꽉꽉 눌려있던 통증 인자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오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심장 고동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만큼

두근 두근하는 신호에 맞춰 발목이 욱신거리는 것이, 아 이것이 인체의 신비로구나 하는 생각이 패닉 상태의 뇌속을 스친다.

 

오쿠노인에서 길가로 빠져나오자, 조금 전까지 시야를 가득 채우던 삼나무 숲과 몽환적인 묘석들이 일순에 사라지고

잘 정돈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스팔트 도로와 전기 가로등이 줄을 잇는 현대적인 거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내가 어느 시대, 어느 곳에 있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지는 순간.

 

며칠동안 용궁에서 놀다가 육지로 돌아오니 이미 300년이 지나있었다는 우라시마 타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

 

앉아 있어도 별로 편해지지 않는 느낌이라서 한숨 한번 내쉬고 길 건너의 관광안내소로 향한다.

다이몬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와 위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코야산은 내부 순환 버스도 한 시간에 두대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기도 한다.

물론 일반인이라면, 오늘 하루 7~8km 쯤 걷는다고 생각하면 버스없이도 거의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다이몬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더라도 그 후의 구경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안좋다.

 

약 20분 후에 저기 언덕 위의 정류장에 버스가 한대 온다고 하니 다시 절룩거리며 이동을 시작한다.

 

 

 

정류장엔 다행히도 벤치가 있어서 그곳에 장비를 내려놓고 앉아서 최대한 체력을 회복한다.

어젯밤에 구입해 놓은 이온음료를 조금씩 마시면서, 비록 움직이진 못하지만 코야산의 일상적인 모습을 좀 담아보려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뛰어들기 주의라고 적힌 표지판. 세계 어느 곳이나 애들이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건 무서운 일이니까.

 

아이들이 직접 그린 듯한 마스코트가 그려진 표지판은 나름 인상적인데, 문제는 흰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는 시안성이 좋지 않다는 점.

카메라로 찍고도 한참 확인한 후에야 무슨 글씨가 쓰여져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훌륭한 시안성의 표본이 바로 위에 설치되어 있으니 아이들은 저걸 보고 배울 수 있으려나.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는 벤치를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다.

만약 저곳에서 기다려야 했다면 20분동안 고생 꽤나 했을 듯.

2차선 도로이긴 하지만, 양쪽에서 버스 정도의 덩치가 달려온다면 한 쪽이 정차를 해야 지나갈 수 있을만큼 좁은 길이어서

인도 역시 이쪽에서 이어지다가 갑자기 끊어지고 반대편에 나타나는 등, 거의 한쪽으로만 만들어져 있다.

 

문화재로 뒤덮히다시피 한 코야산도 사실 일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어엿한 마을로

일단 중학교까지 교육시설도 갖춰져 있긴 한데, 아이들이 즐길만한 패스트푸드, 게임센터 등은 아예 없으니

번화가로 놀러가려면 버스와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최소 1시간은 가야 하는걸 생각하면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예전처럼 산골에서 친구들끼리 노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거나

놀고싶은건 많은데 놀게 없어서 불만이 쌓이는 시골 아이들이거나

어려서부터 불법에 눈을 떠서 가부좌로 수행하는 아이들이거나 할 듯. 마지막 경우는 아닐거라고 보지만.

 

 

 

근대적인 모습이라고는 자동차밖에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 마을은

관광객들이 번성하는 기간이 아닌 이상 인기척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한적하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

 

도시에서는 집이 나이를 먹으면 가끔씩 탈피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확 신축되어버리기도 하는데

이런 곳의 주택은 사람과 함께 느긋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옛날 주택은 물빠짐도 좋지 않고 여러가지로 생활에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단점들은 전부 커버하고도 남는,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는 산내음과 맑은 물에 한없이 둘러쌓여 있으니까.

 

아이들에겐 좀 단조로울수도 있지만, 휴일에 드라이브겸 도심지로 데려가서 놀게 할수만 있다면

이 곳에서 애들 교육시키는것도 멋질거라는 생각이 든다.

널려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재를 일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감성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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