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동생분(?)이 차박람회 가서 보이차를 한판 사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주워들은 보이차 상태나, 동생분 사진에 찍힌 차 색깔등을 봤을때부터 솔직히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만

오늘 만난 동생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걱정이 더더욱 확신으로 변해갔고,

다행히도 동생분이 그 보이차를 조금 가져왔기 때문에 집에서 바로 우려봤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잠깐 보이차 이야기를 하려고 쓰려던 여행기를 미루게 됐네요. 혹시 기다리신 분이 있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립니다. ㅡㅡ;

 

동생분의 보이차는 분명 작년에 만든 녀석이라고 했는데, 색깔이 너무 진해서 의아했습니다만

한번 우려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군요. 이건 숙성시킨게 아니고 썩힌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왼쪽이 동생분이 가져온 보이차고, 오른쪽은 제가 마시는 15년된 보이차입니다.

 

 

 

당연하게도 숙성차인 보이차는 숙성 년수가 오래될수록 잎과 찻물의 색이 짙어지죠.

그런데 작년에 만들었다는 보이차 색깔이 이게 뭔가요.

 

작년에 만든 보이차를 이런 색깔로 만드는 방법은 쉽습니다.

수증기를 쫙쫙 쪼이고 습기 많은 곳에서 보관해서 단기 숙성 시키는 것이지요.

숙성 속도가 빠를수록 당연하게도 보이차 본연의 맛과 향은 우러나질 않습니다. 보이차의 맛은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악퇴라고 하는 미생물 발효를 이용한 제작방식이란게 있긴 있어요.

보통 숙차라고 부르는 이런 보이차가 현재 유통되는 보이차의 99%를 차지합니다.

건조된 상태에서 자연숙성시키는 청차에 비해 숙성 기간이 2배 이상 짧아서 상품화되기 쉬우니까요.

 

그런데 제대로 된 숙차라면 1년만에 이렇게 변하진 않습니다. 이건 아주 사우나실에 넣고 숙성시킨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 녀석은 일단 맛은 둘째치고 몸에 나쁘지만 않으면 다행입니다.

애초에 판매를 위해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녀석이 제대로 된 깨끗한 환경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드니 말이죠.

 

거기다가 이 녀석은 줄기만 있고 잎이 없어요. 동생분이 심혈을 기울여 줄기부분만 떼어내서 저한테 준거라면 몰라도

잎이라는건 보이지도 않고 줄기 쭉정이만 이렇게 남아있는 녀석을 차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당연하게도 맛은 '없습니다' 향을 맡으면 미새하게나마 나긴 합니다만, 입 안에 넣으면 그냥 맹물입니다.

 

나름 보이차 공부를 하고, 보이차 마신지 15년이 넘어가는 저로서는

이건 차가 아니라 그냥 보이차 색깔 나는 맹물이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허구헌날 우려마시는 저희 집 보이차입니다. 15년 된 녀석이구요.

사실 이것도 15년 치고는 많이 숙성된 편입니다. 요즘 숙차 제조 방식으로 만들면 이 정도 색은 10년이면 나옵니다.

3만원짜리 병차라는 말에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차 맛은 나게 만들어야 되는거 아닌지.

 

그나마 이 보이차는 오늘이 마지막 남은 찌끄러기 모아서 우려낸 녀석입니다.

적당한 크기로 조각낸 것도 아닌, 그냥 단지 밑에 남아있던 가루같은 애들 모아서 우려냈죠.

 

차 박람회라는 녀석은 몇번 가보고 나서 발길을 끊었습니다만, 동생분이 설마 보이차를 구입할줄은 몰랐기 때문에

별 생각 하지 않고 아픈 다리탓에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불운이 겹쳤다고밖에 할 수가 없네요.

 

 

 

동생분한테 그냥 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 보이차(?)는 미련없이 버리라고 해야겠네요.

'크게 비싸지 않은 녀석으로 최소한 마실만은 한 녀석'을 한판 구해주기로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 숙성중인 보이차들을 줄 수는 있지만, 가격대가 도저히 맞을 수 없는 녀석들이라서...

참고로 '크게 비싸지 않은 녀석으로 최소한 마실만은 한 녀석'의 가격이 20~30만원쯤 이라고 해 두죠.

 

저 항아리들은 그냥 엄니께서 취미로 구입하신 보관함이고, 실제로는 쌀통이나 옹기 같은데 보관하셔도 됩니다.

습기가 과하게 들지 않는 곳에 놔 두면 무난하죠.

 

 

 

마침 병차 하나를 다 깨먹은 날이라서 새로 하나 꺼내려는 겸 해서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보이차 가격이 좀 무서운 편이라, 괜히 브르주아틱하게 이런 거 사진 찍을 생각은 없었는데

동생분 일도 있고 해서... 보이차는 마시려면 괜찮은 녀석 마시고 아님 그냥 마시지 않는게 좋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 정도면 아마 저희 가족은 별 탈없이 오랫동안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양이라고 할 수 있네요.

한판씩 꺼내 쓸때 말고는 뚜겅을 여는 일이 없어서 느긋하게 숙성이 잘 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 생차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항아리속에 보관중이기 때문에

저 녀석들은 요즘 보기힘든 오리지날 청차라서 애지중지 하고 있죠.

 

사실 숙차 제작방식이 점점 과학적으로 진보하고 있어서

제대로 만든 고급 숙차 20년짜리는 청차 40년짜리와 비교해도 맛과 향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청자라고 다 좋은 것만도 아닌데, 일단 저희 가족은 안전하게 직접 숙성시키고 있으니 그냥 품질 걱정없이 마실 수 있다는 점이 좋죠.

 

 

 

한 번도 이 녀석들을 카메라에 담아준 적이 없으니, 기록이라도 남긴다고 생각하고 찍어봅니다.

보이차 처음 마시던 당시에는 그래도 인맥을 잘 통해서 40~50년된 고급 청차를 접할 기회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씨가 말랐다고 보는게...

 

인간적으로 신뢰 가능한 극소수의 차 전문가 몇분이 소장중인 녀석들을 제외하면

현재 구매가능한 40~50년 된 청차는 아예 없다고 생각하는게 제일 정확합니다.

가격은 뭐... 칠자병차 한묶음이면 중형차 한대 사고도 좀 남아요.

 

 

 

폼 같은거 신경 안쓰고 그냥 적당히 우겨넣은 녀석들이라서 사진빨은 안 받습니다만

찍어놓고 보니 적어도 꽤 오랫동안 걱정없이 차 마실 수 있겠구나 싶어서 기분은 좋군요.

 

 

 

개인적으로 구매한 녀석 중에 제일 아끼고 있는 녀석입니다.

2003년도에 제작된 병차인데, 그 해 시중에 풀린 보이차 중에서는 탑클래스에 들어간다고 보면 될 듯.

 

 

 

제가 호기심이 많아서, 생차였던 2003년도부터 1~2년 간격으로 매번 조금씩 뜯어서 맛을 보고 있습니다.

상품적 가치를 생각하면 이렇게 떼어 먹는게 큰 손실이지만 어차피 팔 것도 아니니까요.

 

햇차 마셨을 때의 그 강렬한 내음과 비교해서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름 제대로 된 청차의 맛으로 숙성중이라는 느낌이 납니다.

이건 청차라서 제 마음에 들게 숙성되려면 20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과연 그때까지 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엄니가 소중하게 보관중인 녀석도 간만에 꺼내서 찍어봅니다.

이건 한판한판 누른 병차가 아니고 그냥 보이차 기둥이죠. 무게가 어마어마해서 엄니는 들지도 못하십니다.

햇차 그대로를 구입해서 대나무 껍질로 싼 녀석을 집에서 10년 넘게 숙성중입니다.

 

 

 

엄니께서 '이거 먹으려면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나' 라고 물어보실 정도로, 완전 돌덩어리네요.

망치하고 정으로 조금씩 깎아내서 먹어야 할 듯 한데, 왠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뜯어서 먹기가 아까운 느낌이 듭니다.

정말로 맛을 본 적이 없어서 이 녀석 품질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잘 모르니, 기대는 금물이기도 하고.

 

과연 이 녀석을 마실 날이 오긴 오는건지...

 

팔아버리면 가계에 큰 보탬이 되긴 하는데, 가족 성격상 이 녀석을 팔아야 할 정도면 이미 집안이 없어진거나 마찬가지일 듯.

 

 

 

뜯어놓은 보이차가 없기 때문에 한판 꺼내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저 보이차 뜯는 칼은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살짝 휘어졌군요.

 

이것도 15년 된 녀석으로, 최상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에 이 정도 보이차면 그리 만만하게 보이진 않을 정도는 됩니다.

 

 

 

예전엔 틀에 넣고 뚜껑을 닫아 손으로 꽉 눌러서 압착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했는데

요즘엔 대부분 기계로 압착해서 병차가 돌덩이처럼 단단한 녀석들도 있죠.

힘을 적당히 주면 공기가 좀 더 통해서 숙성이 조금 빠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번 건 크게 단단한 녀석이 아니라서 무리없이 뜯어낼 수 있군요.

 

 

 

적당히 마실 여유가 있을 때는 병차 한판 마시는데 두 달정도 걸립니다만

바쁘고 하면 뭐 5개월이고 6개월이고 버틸 수 있기도 하죠.

이렇게 박살을 내고 나서는 이틀 정도 보관해두고 먹는게 좀 더 맛이 균일하고 부드러워집니다.

 

수십 년 먹은 보이차든 수백 년 먹은 보이차든, 차는 차일 뿐이고

절대로 만병통치약 같은 게 아니니까, 차의 맛과 향 자체에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 아니면

그냥 적당한 녀석을 맛있게 즐기는게 제일 좋습니다.

왠지 굉장히 숙성이 오래 된 듯한 녀석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마시길.

 

일단 동생분한테는 저 보이차를 조금 떼어내서 맛을 보여주고

마실 만하다 싶으면 조금 저렴한 녀석이라도 한번 찾아봐 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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