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주택가를 활보하다가 슬금슬금 방향을 상점가쪽으로 바꾼다.

좀 더 느긋하게 돌아봐도 되겠지만, 날씨도 덥고 점심시간도 지나가고 있으니.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안내 팜플렛에서는 여러가지 맛집이나 기념품점을 한국어로 부담없이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 가면 괜히 사람 많을까봐 오히려 꺼리게 된다.

팜플렛에 적힌 가게들은, 아주 특출나진 않지만 충분히 이름을 올릴 가치가 있는 실력파들이긴 하다.

모든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지역이라서, 창업 40~50년은 넘은 소바집, 까페 등이 포진하고 있고

아무리 텃세가 있다고 해도 맛에 대한 보장없이 수십년을 이어올 만큼 일본의 상업정신은 만만하지 않으니까.

 

관광객으로 붐빈다고 해도, 맛있는 요리 먹기 위해서라면 친절한 가이드북에 의지하면 되지만

원채 다른 관광객하고 섞이는걸 꺼리는 성격이라서, 맛조차도 포기할 수 있다.

 

여행은 다른 세상을 체험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인데, 동류의 이방인들이 가득 모이는 장소는 마치 블랙홀같은 느낌.

 

 

 

상점가로 나오니 많은 간판들이 손님을 유혹한다.

유명 관광지에서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가 이렇게 풍부하게 자리잡은 상점가가 아닐까 생각.

과연 이렇게도 장사가 될까 싶을 정도로, 관광지 주변에 상점가가 많다.

 

일본 관광지의 가게들이 나름 장사가 잘 되는 이유는, 여행 선물이라는게 당연히 지켜야 할 예절의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

어른과 얼굴 맞대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한국의 예절처럼

출장이든, 관광이든 타지에 다녀오는 사람들은 그쪽 지방 특산품을 지인들에게 사오는 것이 예절이다.

 

예절이라고 언급했듯,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욕먹을 정도의 행동이라서

심지어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에게도 부모들이 선물용 용돈을 따로 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관광지의 상가들이 활기를 띄게 되고

일정 크기 이상의 시장이 형성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쟁이 시작되어 품질의 하락을 걱정할 염려도 없다.

 

오미야게(御土産)라고 부르는 이 여행 선물의 특성상, 일정 금액 이상은 지불하기 힘들고, 반대로 싸기만 한 녀석도 인기가 없다.

부피가 큰 녀석은 받는 쪽에서도 집안에 전시하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장 인기있는 선물은 지역 특색을 살린 먹거리, 그 뒤로 인기있는 선물이 열쇠고리같은 작은 기념품이다.

방향과 상한선이 분명히 정해진 덕에 상점들의 경쟁은 가격 논리보다 독특함과 아이디어의 승부가 되고

제로섬 게임으로 흐르는 일 없이, 가족이나 직원 회의에서 괜찮은 아이템에 대해 토론하는 정도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이 블로그 오사카 여행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꼬리흔드는 고양이' 인형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오미야게 아이디어상품 대상을 수상한 그 인형은, 제작비가 비싸지도 않으면서도 로또에 버금가는 대박을 터트려서

이제는 왠만한 여행지에서 다양한 바리에이션 상품이 제작되어 지역 경제 전체에 톡톡히 이바지하고 있다.

이곳 이즈모의 선물가게에서도 그 꼬리흔드는 녀석을 볼 수 있었고.

 

지역특색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지역특색을 만들어가는 이런 모습이 부럽기 그지없다.

한국은, 그 지역 관광지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이란게 뭐가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으니...

것도 홍삼 등의 이름난 녀석들은 너무 비싸서, 지인들에게 돌릴만큼 구매할 수도 없고.

 

 

 

일단 나는 일본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니, 선물을 꼭 준비해가야 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그렇게 여유있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라서 마음은 홀가분한 편이다.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한테 면세점 담배나 한보루 사다드리고, 나머지는 그냥 돌아보다가 괜찮은거 있으면 사고

없다 싶으면 그냥 돌아오면 되는 것. 주위에서 그정도는 이해해 주니까 뭐.

애초에 가족들은 물질적인 뭔가에 관심이 굉장히 희박한 편이다. 필요하다 싶은건 자기가 사버리기 때문에

먹는게 아닌 뭔가를 선물로 사들고 가면, 한두 달만 지나도 선물로 뭘 받았는지조차 기억 못한다.

 

일단 배나 좀 채울까 싶은데, 가이드북에 전시된 이즈모 소바집은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서 패스.

이미 어제 마츠에에서 가장 유명한 소바집에서 식사를 했으니, 이번에는 이름값과 관계없는 곳에 갈 생각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행의 즐거움인 군것질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중.

이곳 이즈모의 유명한 군것질거리는 젠자이(ぜんざい)라고 하는, 한국의 단팥죽과 비슷한 녀석.

죽은 아니고, 밀떡이나 쌀떡을 달콤한 팥국물에 동동 띄워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게 예전 자전거 여행중 아르바이트 하던 소바집에서도 가끔 나오던 요리였는데, 요즘엔 물맑은 지방에서 많이들 만든다.

나가노 지방 사람들이 이거 한국에도 비슷한거 있다고 하니까 상당히 놀라던데

사실 팥국물에 단거 넣어서 떡하고 같이 먹는건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지방 어디든 익숙한 요리.

 

젠자이는 나가노에서 신나게 먹었었고, 굳이 여기서 먹을 필요가 없어서 다른 곳을 물색중이었는데

직접 만든 오야키라고 광고하는 집 앞에서 결국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오야키(お焼き)는 호떡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근래들어 기름 철철 뿌려서 철판에 튀겨버리는 그런 호떡 말고

기름 하나도 쓰지 않고 그냥 철판위에서 구워내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리지날은 고기 따위의 고가품이 아니라 산나물이나 삭힌 야채 등이 들어가는 서민의 음식.

 

원류를 따지고 가자면, 고대 아프리카 시절부터 존재하는 에인션트 푸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나가노 지방의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어디서나 다들 만들지만.

 

나가노 지방은 고지대에다 산세가 험하고 물이 맑아서, 에전부터 쌀농사보다 메밀과 밀농사가 주류를 이뤘고

한랭지의 야채 특성때문에(시래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시길. 일본에도 시래기가 있다) 오야키의 원류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메밀의 본고장인 나가노이다 보니 메밀피로 된 오야키가 유명한데, 쫄깃한 맛은 떨어져도 그게 오히려 야채의 식감과 잘 어울리는게 특징.

 

 

 

야채가 든 녀석과 호박이 든 녀석 두가지를 주문해서 맛만 보기로 한다.

뭐든 넣으면 되는 녀석이라 종류가 수십가지를 넘는데, 제일 인기있어 보이는 카레와 고기속은 이미 품절.

주문후 바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려도 따끈따끈 바삭바삭한 식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홈스테이하던 나가노현의 키소마을 앞에는 '길 안의 역'이라는 뜻의 미치노에키(道の駅)가 있었는데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하지만, 국도에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상당히 활성화가 잘 되어 있다는게 특징인 곳.

지역에 따라서 판매하는게 다르기 때문에, 그냥 운전하다가 이곳에서 선물이나 먹을거리를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본섬 하나만 놓고 봐도 자동차로 끝에서 끝까지 24시간 이상 걸리는 일본이라, 이런 휴게소의 가치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홈스테이하던 집에서 3분만 걸어내려오면 이 미치노에키가 있었는데, 나가노 지방이다보니 역시 오야키도 팔고 있었다.

어느날 아르바이트 후 들러서 잠깐 쉬는 도중, 한번 먹어볼까 싶어서 고기가 든 오야키 하나를 주문했는데

한입 물고나니 고기가 아니라 산나물이 들어있었던 것. 크기가 작은 간식거리에 불과해서 이것도 맛보고 고기 하나 더 먹을까 싶었는데

아주머니는 미안해 죽으려고 하시면서 고기 오야키를 그냥 덤으로 주셨다. 괜찮다고 한사코 말려도 그냥 주시니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그런 추억이 있는 간식이라서 이곳에서 오랜만에 접한 반가움에 먹어보기로.

사실 이쪽도 카레와 고기 오야키를 먹고 싶었지만, 대중들의 휘향이란 비슷한 듯 이미 품절상태였다.

야채 오야키는 쌉싸름하게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매력있고, 호박향기 가득한 오야키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듯.

 

만든 후 바로 먹어야만 최고의 맛을 내는 녀석인데, 굽기 전의 오야키를 냉동해서 선물세트로 파는 모습을 보니

진짜 장사하는 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 싶다. 메밀피 오야키를 불에 직접 구우면 그 포근포근한 향기가 아주 일품.

 

 

 

오야키 두 개로 배가 든든해질 일은 없지만 어쨌든 관광기분좀 내 보고 다시 걸어간다.

역사가 오래된 관광지이다 보니 신기한 자판기도 볼 수 있다.

아마 일본서 본 자판기중 가장 오래된 녀석이 아닐까 싶은데, 건전지를 파는 녀석.

 

아직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건전지를 사용하던 카메라 시절에 제 역할을 하던 녀석이 아닐까 싶다.

온몸으로 어마어마한 연식을 어필하는 녀석이라, 조만간 골동품점에 팔려가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역을 지나서 한적한 길을 계속 내려가면 Ant Works Gallary 가 나온다.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본 팜플렛에서 뭔가 느낌이 팍하고 왔던 곳이라서

꽤나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평범한 시골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는 분위기가 편안한 느낌이 든다.

 

시마네현이 일본에서 꼴찌를 다툴만큼 인구도 적고 개발이 덜 된 지역이지만

예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라프카디오 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아다치 미술관을 위시해, 예술 쪽에서는 상당한 기반을 다진 곳.

그래서 이렇게 개인이 운영하는 공방도 군데군데 암약중이다. 이런 데 관심있는 사람은 유심히 살펴봐야 할 곳.

 

한국사람에게 익숙한 가이드북에는 큼직큼직한 공방밖에 소개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진짜배기를 보려면 현지 조사가 좀 필요할 듯.

 

 

 

개미공방은 좀 있다가 들어가보기로 하고, 일단 좀 더 길거리를 둘러본다.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고, 도로가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녀석.

그러고보니 요즘엔 한국사람들도 우물에 동전 잘 던진다고 하더라.

 

우물과는 달리 이건 손만 뻗으면 바로 가져갈 수 있는 거리인데, 용감도 하다.

사실 대부분 1엔짜리 동전이라서 가져가봤자 음료수 하나도 못뽑아먹긴 하지만.

 

 

 

열성적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이즈모타이샤 앞의 상점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특정 구간만 지나버리면 금새 한산한 시골가로 모습이 변해버린다.

상권의 생성과 성장이라는게 실은 굉장히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정착되는 것이라서

의도적으로 상권을 이동시키거나 범위를 넓히려는 위정자들의 수많은 시도는 번번히 물거품이 될 때가 많다.

 

자전거 여행중이었으면 표지판에 보이는 미치노 에키에서 잠깐 쉰 후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을텐데.

밤중에 도착한다면 이런 시골 미치노 에키는 훌륭한 야영지가 되기도 한다.

붐비는 곳은 눈치보여서 못하지만, 7시만 되면 문을 닫아버리는 시골 휴게소는

넓직한 주차공간과 텅 비어버리는 야외 판매부스, 24시간 가동되는 화장실 덕에 천국과도 같은 곳.

 

드물기는 하지만 지붕이 딸린 무인휴게소를 24시간 개방하는 곳도 있어서, 그런 곳에 도착한다면 운수 좋은 날이다.

 

 

 

적당히 돌아보는것도 점점 채력이 딸리기 시작한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흐리고 가끔 비가 철철 내린다는 예보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물론 화창해서 정말 다행이긴 하다.

 

미치노 에키까지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평범한 관광에 거기까지 갔다가는

또 한번 자전거 여행의 그 추억들이 폭풍같이 밀려와서 괜히 괴로워 질것 같아서 무심히 방향을 돌린다.

 

이즈모타이샤는 한참 뒤지만, 이미 여기서부터 토리이가 서 있다. 상점가의 시작을 알린다고 보면 될 듯.

큰것 좋아하는 이곳답게, 이 토리이도 일본에서 가장 큰 토리이. 그런데 느껴지는 매력은 없다.

물 위에 떠있는 것도 아니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나무향기가 나는것도 아니고, 그냥 큰 돌덩이일 뿐.

 

 

 

토리이를 통과해서 쭉 직진하면 신사가 나오지만

방금 그 상점가를 한번 스윽 둘러봤기 때문에 다시 방향을 왼쪽 골목으로 틀어본다.

역시 일직선 상점가를 빼면 어디나 평범하게 사람들이 하는 풍경.

 

시간도 충분하고 다시 주택가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서 천천히 걸어간다.

마당이 조금 작아서 아쉽지만, 나무들이 아주 건강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집이 인상깊다.

아침마다 이 녀석들한테 물 뿌리면서 얼마나 컸나 한번씩 살펴보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일 듯.

 

 

 

조금 걸어가다보니 수타소바점이 보이길래 이것도 인연이겠지 싶어서 들아가 본다.

관광지에서 좀 떨어진 곳이다 보니, 안에서 한국어가 들릴 일은 없을 것 같고.

 

아마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단련된 유명 소바집보다 맛있지는 않겠지만

일단 수타소바라고 광고를 하고, 맛의 레벨과는 별개로 지역민들이 찾는 식당이라는것도 나름 매력이 있으니

생각없이 걸어가던 내 눈앞에 이렇게 나타난 것만으로도 들어가볼 가치는 충분하다.

 

 

 

카운터를 포함해서 자리가 10개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식당.

원래 카운터에는 잘 앉지 않는 편인데, 뭔가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서 끌려가듯 앉게 된다.

이건 일본식 장기에서 쓰는 말의 모양인데, 카운터에 조각을 한게 아니라 홈을 파고 끼워넣은게 재미있다.

 

주인장이 장기를 좋아하나 싶었는데, 그다지 인상이 친근해 보이지 않는 주인장이라서 물어보진 못했다.

동네 가게라는 이미지에 딱 맞게, 어디서 일하고 온 듯한 아저씨들 서너 명이 모여서 주섬주섬 정치 이야기 중.

무뚝뚝한 주인장은 일단 인사는 잘 하는데, 뭐라고 더 말 걸만한 분위기는 아니다.

 

어쩐지 예상한 것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오히려 미소가 떠오르는 듯.

 

 

 

어제 마츠에에서 먹지 않고 일부러 남겨 둔 와리고 소바(割り子そば)를 주문한다.

도시락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저렇게 나뉘어 진 녀석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식당에서 지역 명물로 소개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한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먹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맛보다는 먹는 느낌이 중시되는 편이랄까. 본인 스타일과는 그닥 맞지 않는 명물이긴 하다.

 

그래도 담궈먹는 방식이 아니라 부어먹는 방식이라 다신 국물이 상당히 진한 맛이라는 건 특징이라 할 만하다.

어제 먹었던 야쿠모안이라는 가게는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양에 비해 좀 비싼 편이었는데

이곳은 일단 양이 많은 편이라서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기분이 든다.

배가 큰 사람들은, 일본에서 특히 맛만큼이나 양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듯. 먹어도 배가 차질 않으니.

 

물론 저렇게 3단계로 나눠서 나온 녀석이라고 해도, 예전 아르바이트하면서 먹은 양의 절반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소스의 향이 달아나지 않게 하려고 목 부분을 종이로 막아놓은 것도 괜찮은 배려.

 

수타소바라는, 고급스럽고 정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단어에 비하면 확 띄는 인상은 없는 편인데

지역이 지역이다보니 이런 허름한 동네 가게도 일정 수준은 넘기는 듯 하다. 중상급 정도라고 하면 되려나.

 

다신 국물에다가 소바를 푸욱 담궈서 후루룩 흡입하는 본인 스타일 상

진하다고는 해도 저기다가 졸졸 부어서 먹는 방식은 약간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맛없지는 않으니 이쪽 명물 맛을 봤다는 쪽으로 만족하고 넘어가면 될 듯.

 

단지, 아르바이트 하면서 점심으로 소바를 마구 퍼먹던게 워낙 뇌리에 남아있어서

손님으로서 돈을 내고 소바를 먹으면 항상 양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손님에게 내 놓는 격식있는 모양새를 갖추지 않고, 그냥 커다란 라면그릇에다가 마구 퍼담아 먹었으니...

그렇게까지 입맛에 집착하지는 않지만, 원래 소바 그릇은 물이 밑으로 빠지도록 되어 있어서

라면그릇처럼 하단부에 면과 물이 닿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면이 정말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지기 때문에.

공기와 함께 흡입해야 향기를 느끼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튼 뭔가 미스터 초밥왕을 생각케 하는 이것저것 미묘한 포인트가 많은게 소바라는 음식이라

사실 어지간히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냥 대충 먹는것하고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요리만화에 익숙해지면 자기가 뭔가 대단한 미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만화는 만화일 뿐.

 

너무 조용해서 소화가 잘 안될듯한 분위기였지만, 혼자 먹는데 익숙한 본인은 그냥 묵묵히 맛을 음미하고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주인장분은 내가 외국인이라는걸 알고 있는지, 그쪽에서도 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는 외국인에게 익숙한 그런 가게가 아니라서, 아마 괴이한 몰골의 외국인 덩치가 들어와서 좀 긴장했겠지.

 

간식도 먹었고 식사도 마쳤고, 이제 먹는것에 대한 미련은 충분히 해소했으니 조금 전 지나친 개미공방에 구경이나 하러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