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안에 들어가기 전에 사루보보를 좀 더 돌아보다가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해서 담아본다.

사루보보 자체가 새끼원숭이라는 뜻인데, 그 품에 한마리 더 안겨있는 모습이 귀엽다.

 

 

 

일본에서도 고추를 저렇게 묶어두는 곳이 있었다는게 신기하다.

여기 걸려있는걸 보니 일단 복을 바라는 행동임에는 틀림없어 보이지만

한국의 고추와 달리 발음상 수컷을 출산하길 바란다는 의미는 없지 않을까 싶다. 발음이 전혀 다르니.

 

어디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 절은 입장이 무료라서 지키고 있는 안내원도 없다.

 

 

 

코쿠분지로 들어가면 보이는 석불.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데,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는듯 하다.

이 코쿠분지(国分寺)라는 이름의 절은 일본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찰로

1300년전 일본이 야마토라는 이름의 나라였을 당시, 처음으로 율령 국가로 변해가고 있었는데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하나씩 건설된 것이 이 코쿠분지이다.

 

코쿠분지의 총본산은 나라(奈良)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 위치한 토다이지(東大寺).

이곳 타카야마는 산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쿄토와 나가노 내부까지 연결되는 도로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전국시대부터 전란이 꽤나 많았던 곳이라, 이 곳의 코쿠분지는 그 터만 간신히 남아있고 과거의 위상은 잃어버린 듯 하다.

 

 

 

나라나 쿄토의 유명 사찰들이 간직한 엄격한 건설 기준도 온데간데 없는것이, 원래의 공간도 거진 다 잃어버리고

간신히 대웅전과 삼중탑만 남아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예 없어져 버린 코쿠분지가 있는걸 감안하면 이렇게라도 남아있는게 다행이라고 할까.

명성은 바랬지만 여전히 타카야마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당히 크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삼중탑. 코쿠분지 사찰이 너무 좁아서 광각렌즈 없이는 전부 담기가 힘들 정도.

 

 

 

일단 관광 가이드에도 실려는 있지만, 이름에 비해 크게 시간을 들여 둘러볼만한 곳은 아니라서

관광객도 한두 명 정도로 소박한 편이다. 날씨가 심히 덥긴 하지만 사찰의 흙내음을 맡으며 숨을 돌리기에 나쁘지 않다.

 

원래 경내 대웅전 바로 앞에 이런 건물이 서 있을리는 없는데, 원래 대문같은 녀석이 절 안에 위치해 있다.

상당히 오래되었고, 실제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할까. 많은 상인들이 영안을 바라는 부적을 기둥 곳곳에 붙여놓았다.

왜 대문을 통과해 절 안에 들어왔는데 또 대문이 덩그러니 놓여있는건가 의아해하며 설명을 찾아보니

원래 사찰의 대문이 아니라, 타카야마성에 있던 녀석을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는 녀석이라고.

 

타카야마성은 처음 세워진 600여년 전부터도 많은 전쟁으로 원형보존이 어려운 상태였는데

300여년전 막부 직할령이 세워지면서 완전히 파괴되고 성터만 남아있다. 그 당시 몇몇 건축물들을 시내 곳곳에 분배했는데

그 중 남아있는게 이 코쿠분지의 종루문이라고 한다. 의외로 사찰만큼이나 역사성이 깊은 건물.

하지만 진짜 타카야마 성에서 가져온 녀석이라는 증거가 없어서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그렇다는 것.

 

 

 

좁디 좁은 코쿠분지에서 볼 만한 녀석은 거의 정해져 있다.

사실 정해지고 뭣이고, 코쿠분지 안에 서 있는 녀석이 딱 4개밖에 없다. 대웅전, 종루문, 삼나무, 삼중탑.

 

그 중에서 가장 임팩트가 클 거라 생각하는 이 삼나무는, 비교적 큰 나무들을 보기 쉬운 일본에서도 상당히 거대한 편이다.

공간이 좁아서 어쩔수 없었겠지만, 현재의 코쿠분지가 디자인적인 면에서 꽝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삼나무가 너무 거대한 나머지 다른 건축물을 완전히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삼나무의 전경을 찍으려면 렌즈를 바꿔 끼우고 꽤나 뒤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가는 본인은 일단 디테일한 부분을 감상하고 나서 나중에 렌즈를 교환하기로 한다.

나무 사이에 놓여있는 석불. 사람이 일부러 놓은 것인지, 푸른 잎 한 장이 석불의 어깨에 살포시 놓여있다.

 

 

 

코쿠분지는, 그냥 대문으로 들어와서 한 눈에 절의 내부가 전부 보일 정도로 자그마한 곳이라

특별히 뭔가 놀라운 것을 기대한다기 보다는, 관광객 별로 없는 조용한 마당을 천천히 걸어다니며 즐기는 곳이다.

 

과거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이 산책하다 들르는 공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다른 마을과 달리 이곳 타카야마에서는 이런 절도 꽤나 분위기가 잘 맞는다. 아이들 손 잡고 저녁에 바람쇠러 나오기에 그만인 느낌.

이게 뭐, 언덕을 오른다던지 마을 외곽으로 나간다던지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문 열고 3분만 걸으면 바로 나타나는 사찰이라서.

 

슈퍼 가는것보다 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는 것도 마을의 자랑거리라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저 삼나무는 추정 연령이 1200년이나 되는 녀석이라, 왠만큼 질리지 않고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오랜 시대를 걸쳐서 많이 좁아지고 이것저것 건물이 들어오게 된 코쿠분지라서

유명 사찰의 기품있는 가람의 배치에서 느껴지는 엄숙한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자연스러움으로 커버하려는 듯한 녀석들이 열심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서

타카야마에서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본인 입장에서는 이 정도가 예상에 딱 들어맞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은 편이다.

 

 

 

대웅전도 크기만큼은 참 소박한 녀석인데, 목재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의외로 고풍스러움이 넘친다.

목재의 상태를 보니 옛 마을거리의 건물보다도 훨씬 오래된 듯한 느낌을 주는데

설명문을 읽어보니 약 500년 정도 된 대웅전이며, 타카야마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500년 전의 사찰이 현대의 최신 주택가와 10m 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 풍경이 괜히 낯설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주민들에게 가까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듯 해서, 크기에 비해 역할은 재대로 수행하는 사찰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진 뒤에 이미 주택이 찍혀버린걸 보면, 코쿠분지의 담 역시 꽤나 낮아서 고립감도 없이 속세에 마음껏 몸을 맡긴 듯 하다.

 

 

 

이곳의 다른 모든 건축물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삼나무의 위용은 대단하다.

어째서 1200년이나 된 녀석이 여기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사람들은, 동양적인 사찰 건축물에 크게 호기심을 가지겠지만 이런 나무에 대해서는 별 감흥이 없을 듯 한데

한국에서는 반대로, 사찰 보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이 정도 크기의 삼나무 보는건 꽤나 신기한 경험에 속한다.

 

1200년의 나이를 감안하면 정말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인상깊다.

나무에게도 당연히 나이란 게 있어서, 500년을 넘어가면 슬슬 기력이 다해가는 나무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삼나무라는게 특히 오래 사는 종이긴 하지만, 1200년 정도에 이렇게 반듯하게 서 있는 녀석은 드문 편이다.

 

 

 

사찰 전체가 너무나도 실생활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지금 동네 공원에 산책하러 온 건지 사찰 보러 온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정말 해질녘까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화 되었을 법도 한데.

 

나름 유명한 곳이고 중요 문화재도 있어서 그러면 안되겠지만

분위기 상으로는 딱 자전거 여행때 슬그머니 들어가서 텐트치고 잠 좀 자전 동네의 이름없는 신사의 기분이 든다.

 

타카야마에 올 때부터, 중간 경유지 역할로 인식을 하는 바람에 여행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고

조금 강박적으로 볼거리를 찾아다니려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이곳에서 한숨 고르니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 지는듯 하다.

 

 

 

삼나무를 마음에 들게 담기가 쉽지 않다.

햇빛 강하고 뒤로 물러날 공간이 없어서, 어떻게 찍으면 크기를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지만

그닥 뾰족한 방법은 없어보인다. 관광객 하나 불러서 옆에 세워놓으면 좀 현실감이 생기겠지만

내가 그렇게 붙임성이 좋다면 그게 이미 이 삼나무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물좋고 공기좋은 곳이라 그런지 1200살 삼나무가 허리도 아프지 않고 잘 뻗어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본인이 한 100살쯤 먹어서 죽기전에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이 녀석은 거의 변한게 없을 듯.

 

 

 

통일감 없는 사찰의 배치가, 오히려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곳.

방금 전의 옛 거리가 놀랄 정도로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했다면 이곳은 상가 거리보다 더 사람냄새가 나는 듯 하다.

 

제대로 된 사찰건물은 마을 어귀쪽에 많기 때문에, 기대의 방향을 잘 판단해서 목적지를 정하는게 좋을거라 생각한다.

본인은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걸어가다보니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사찰이나 신사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곳에 올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힘 좀 쓰면 여러 사찰이 모여있는 산책로를 걸어볼 수도 있지만,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좀 거리가 멀고

피로가 조금 쌓인건지 몸이 좀 늘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단 호텔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 다시 나와보기로 한다.

 

 

 

역 앞에 편의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물과 간식거리라도 사가려고 약간 돌아서 갔는데

마을버스로 보이는 아담한 녀석이 낮익은 애니메이션을 선전하면서 달려간다.

 

소설이 원작인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인데, 갑자기 왜 이런 시골마을에 저 애니메이션 광고가 나오는 건지 의아했다.

나중에서야 알아본 사실이지만 저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되는 곳이 이곳 타카야마였다고.

버스 밑에 보이는 풍경 그림들이 전부 타카야마의 풍경이라고 한다.

 

원작이 소소한 일상소재를 사용한, 피가 난무하지 않는 추리소설이라

애니메이션 역시 요즘 난립하는 말초신경 자극 작품들과는 달리 소설을 잘 각색한 담백한 녀석이다.

볼 때는 몰랐는데, 은근히 타카야마의 풍경과 어울리는 조용한 작품이었다고 세삼스럽게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마을 전체를 대표하는 버스에 저렇게 애니메이션 콜라보를 넣는 용기는 역시 일본이다 싶다.

외국인 관광객이 반을 넘는 마을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나름 마을 광고와 동시에 애니메이션 광고도 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빙과'라는 제목은 원작 소설의 1편 제목인데, 이 1편이 전 시리즈 중 가장 암울한 내용으로 유명하다.

사실 내용 자체가 고등학생들의 소소한 추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로서의 긴장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작품인데

1편만은 잔혹했던 시대상에 휩쓸려 무력한 개인이 쓰러져가는 비극을 담담하게 표현했으며, 추리 트릭 역시 충분히 만족할만한 장치로서 가동한다.

추리 소설에서 내용을 말하는건 아주 악질적인 행동이니 직접 적진 않겠지만...

 

제목이 트릭이다

 

 

 

편의점에서 먹을거리 좀 사서 나오니, 하늘이 이렇게도 푸를수가 없다.

굳이 생각해 내지 않으려 했지만, 자전거 여행때 느꼈던 그 하늘을 오랜만에 재현해 줘서 감회가 새롭다.

자전거로 도시를 벗어나면 이런 하늘은 배가 부를때까지 즐길 수 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체험하러 가는게 여행이라고 하는데

일본 정도되는 가까운 곳에서는, 그냥 이런 하늘만 볼 수 있어도 그리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려나.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호등 옆의 석상이 재미있어서 한장 남긴다.

설명을 제대로 읽진 않았지만, 아마 어린 아이가 풀잎으로 피리를 부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쯤 할머니가 되었을 법한 사람들의 어릴 적 모습인가 싶기도 하다.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아버지 나이대의 사람들은, 등교 한번 하는데 해발 600m 정도 되는 산 하나는 넘어가야 했고

산 넘으면서 이렇게 풀 한조각 뜯어서 피리도 불고, 산수유 열매 같은것도 걸어가다 따먹고 했다고 하셨으니까.

 

추억은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율되기 때문에 어느 삶이 더 행복하고 값진 것이라고 비교할 수는 없어도

그때는 그렇게 사는게 제일 즐거웠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학교가는데 산 하나 넘어가라면 그건 아동학대가 되겠지만.

 

호텔에 돌아오니 4시가 조금 넘어있다. 3시간 정도밖에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상당히 피곤하다.

37도의 날씨 탓도 있지만, 새벽에 잠 늦게 자고 버스를 2시간 반 가까이 타는 바람에 피로가 풀리지 않은 듯 하다.

시원한 호텔서 에어콘 좀 틀면 개운해 지리라 생각했지만, TV 잠깐 보면서 어제 구입한 책을 좀 읽고 있는데

눈꺼풀에서 자력이 흐르는 듯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 이렇게까지 피곤한 줄은 몰랐다.

 

다행히도 해가 늦게 지는 여름날이라, 아직 노을이 지려면 거의 두 시간은 남아있으니 굳이 애써서 깨어있을 필요도 없다.

호텔에 들어왔으니 일기도 좀 정리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눈꺼풀이 용접되는 순간에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행동이 그냥 그대로 자는 것이다.

엎드려 책을 보다가 쪽잠 잘 때는 아무리 오래 자려고 해도 30분에서 1시간이면 저절로 눈이 뜨이니

귀찮게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던가, 옆에서 슬그머니 귀를 간지럽히는 TV 소리를 지울 생각도 없이 그대로 얼굴을 침대에 파묻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