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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위치가 참 절묘하기 때문에 풍경은 매우 훌륭하다.

바다와 산 모두가 사람 손을 많이 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목조 신사 역시 그 속에 부드럽게 녹아가는 느낌.

예산 문제인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과하게 깨끗하지 않은 느낌도 조화를 이루는 듯 하다.

 

 

 

잠시 산책하고 있으니 카약을 타고 토리이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저 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올법도 하다. 사실 썰물 때라면 저기까지 걸어갈 수 있으니 큰 의미는 없겠지만.

 

대마도가 지형적 특성상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해도 관광 자원이 그렇게 많은 곳은 아닌데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놓은 모습은 나름 공부가 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댐으로 인해 수몰된 경계선처럼 보이기도 하는 지형이다.

바다와 이렇게까지 근접한 곳이 빡빡한 수풀로 덮혀 있는 모습은 꽤나 볼만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쪽은 대마도의 정중앙 쯤 빡빡한 섬들 사이에 위치한 곳이라

한국에서 밀려오는 쓰레기로 해안가가 오염되어 있지는 않았다.

 

북한보다 위도가 높은 홋카이도 최북단 근처의 바닷가에서

대구 들안길 음식골목의 한 숯불갈비집 마크가 찍한 라이터를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을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 옆에 지붕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어서 거기 앉아 점심용으로 보존해 놓았던 카레빵을 뜯어먹는다.

배가 슬슬 고팠던 탓고 있고 해서 강한 카레향기를 감싼 부드러운 빵의 식감이 더욱 훌륭해 보인다.

관광객을 태운 버스는 내가 걸어왔던 길 반대쪽 오르막을 힘차게 달려간다. 아마도 전망대 쪽인 듯.

 

풍경이 좋아서 전망대 구경을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다. 지금 전망대까지 걸어갔다면 버스를 약 5시간 뒤에나 탈 수 있어서 힘들다.

아쉬움은 빨리 잊어버리기로 하고 짐을 챙겨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미야지마의 추억을 되살려 보며 바다 위의 토리이도 한 장 담아보고.

 

 

 

땀 흘리며 올라가고 있으니 한국인 자전거 투어러들이 지나쳐 올라간다.

저 정도 짐과 자전거라면 확실히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듯 하다.

 

물론 예전에 내가 타던 자전거는 본체 무게도 장난 아니게 무겁고 튼튼했으며

펑크 방지를 위해 1kg가 넘는 두터운 타이어를 사용했고

바퀴에 다는 사이드백 4개에 50L 짜리 베낭을 뒷좌석에 얹은 걸어다니는 집이었으니

이런 경사라 해도 쏟아지는 땀을 감내하며 걸어가는 것 보다 쥐꼬리만큼 빠른 속도로 기어가는 것이 고작이다.

 

시작을 그렇게 하다 보니 저런 복장으로 2~3일 가벼운 투어링을 즐기는 것은 왠지 성미에 맞지 않다.

산책 수준의 짧은 자전거 여행도 1주일이 넘었으니까.

 

 

 

울릉도를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왠지 궁금해진다.

크기로 치면야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이 섬이 울릉도 면적의 10배는 되지만

거기도 자연환경을 꽤나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아 무질서하게 보이는 수풀이 오히려 친근해 보인다.

도로 주변엔 꼽등이처럼 보이는 커다란 곤충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날씨와 짐 때문에 땀이 많이 나는 것을 제외하면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물론 버스 도착 시간을 맞춰야 해서 조급해지는 마음이 편안한 감상을 조금씩 방해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긴 힘든 게 카메라를 가진 사람의 숙명인 듯.

말라버린 덩굴이 살짝 징그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고 저런 일을 모두 거쳐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녀석들이라.

 

 

 

귀뚜라미인지 곱등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크고 건강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곤충들 중에서는 방아깨비가 가장 귀엽다. 산소에서 자주 갖고 놀아서 그런 듯.

얘네들은 색깔도 그렇고 좀 더 강해보여서 왠지 만지고 놀려니 무서운 느낌이 든다.

 

이런 색깔을 가진 곤충들 중에서라면 매미를 꽤나 귀여워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여름 야간자습 시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교실로 가끔 들어오곤 했는데

울지 않으면 쫒아낼 이유도 없어서 잡아서 머리 위나 팔목에 올려놓고, 공부하다가 지치면 가끔 바라보며 마음을 치유하곤 했다.

물론 가끔씩 내 팔뚝을 나뭇가지인줄 착각하고 빨때를 꽂으려는 녀석들이 있어서 놀라긴 했지만.

 

 

 

신사 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는 정확한 거리를 알 수 없어서 조금 서두르는 바람에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지만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갈 때는 길과 시간을 모두 알고 있으니 여유를 부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릴 수 있다.

이름모를 꽃도 찍어가며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산이 울창해서인지 바다 비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바다 하나 건너 섬에서는 꽤나 많은 수의 새가 무리를 이루어 빙글빙글 도는 중이다.

이쪽으로도 좀 와 주면 안될까 싶었지만 바다를 건너오지 않는다.

 

일상 생활에서는 망원렌즈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그 덩치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여행갈 때는 반드시 가지고 간다.

조금이라도 찍을 수 있는 피사체가 늘어나기 때문에 없으면 아쉬운 순간이 생긴다. 지금처럼.

 

보통은 여행용 렌즈라면 표준줌이나 광각 렌즈를 많이 추천하는데

이상하게 블로그에 올리는 여행사진들 중 호평을 받는 것들은 상당수가 망원렌즈로 찍은 것들.

 

 

 

갈 때는 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선명히 드러나는 건물이 있다.

상당히 거대한 녀석인데 무슨 종교 시설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한적한 곳에 혼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궁금하긴 하지만 저기까지 가는 것은 시간적으로 조금 위험하다.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개글이 있는 것도 아니라 저 건물에 대해서는 결국 여행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참새가 다리 사이를 비집고 생명력을 과시하는 풀잎 근처에서 뭔가를 먹고 있다.

다행히도 망원렌즈를 계속 마운트한 상태가 지체없이 촬영이 가능했다.

더 다가가고는 싶었지만 참새가 워낙 경계심이 많은 녀석이라.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볼일을 다 마쳤는지 금새 날아가 버렸는데, 덕분에 멀리서라도 한 장 남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지만 시골에는 정말 사람이 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집이 꽤 많다.

이제는 그런 집을 찍을 때도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예전 자전거 여행할 때 분명 빈 집이라고 생각하고 그 집 공터에 자리잡고 앉아

버너에 밥까지 지어먹는 느긋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밥 먹는 도중에 그 집에서 할머니가 한 분 나오시는 걸 보고 기겁한 경험이 있기 때문.

허둥대며 사과를 했지만 할머니는 흔쾌히 웃으면서 한동안 말상대를 해 주셨다.

 

콘크리트가 여기저기 부서진 마당과 번호판도 없이 방치된 낡은 자동차와 헌 가구 사이로 고양이가 열 마리 정도 느긋하게 앉아있던 집이라

아무리 봐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구나 싶어서 벌인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여행 중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긴 했다.

 

 

 

물론 이 정도 집이라면 절대로 그런 짓 하지 않았을 텐데.

한적한 주택에 사는 매력중 빠질 수 없는 매력이 이런 우체통이다. 집 주인의 특징마저 드러내는 개성의 산물.

 

엄니가 밭일하고 차 마시는 용도로 사용했던 경남 사천의 조그만 시골집 앞에도 나무도 만든 귀여운 우체통이 있었는데

한동안 쓰지 않고 방치했더니 우체통 안에 새가 둥지를 짓고 새끼까지 길렀던 추억이 생각난다. 물론 덕분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든 것 처럼 보이는 이 우체통도 매력덩어리다. 

스스로 꾸미고 가꿔서 자신의 색깔을 덧칠할 수 있는 점은, 비록 불편하긴 해도 주택만의 떨치기 힘든 매력이다.

 

 

 

대마도는 매가 매우 많다. 사람 사는 마을 주변에서도 그 수려한 날개를 펼치고 주위를 천천히 돌며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다.

자전거 여행때는 까마귀한테 쫒긴 적이 있어서, 덩치 큰 새가 머리 위로 날아들 때의 공포를 잘 알고 있는데

이 녀석 정도 되는 덩치가 머리 위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조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을 덮치는 건 까마귀가 훨씬 많아서 매는 걱정할 필요가 없긴 하다.

 

날고있는 조류 사진은 거의 찍어본 적이 없어서 대충 담아봤는데

저 매력에 빠진 사진가들은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포인트를 찾느라 바쁠 듯.

 

 

 

시골 생활이란 게 이렇게 사진에 담기엔 아름답고 정겹지만 도시인들에게는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란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깡촌중의 깡촌이 아니고서는 생활 편의시설이 나름 한국보다는 잘 갖추어진 곳이 일본이라

도시 생활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약간의 육체적 피곤함으로 치환할 각오만 있다면 그렇게 겁 먹을 일까지는 아니다.

 

시골의 정의를 어디까지 하는 것인가가 중요하기도 한데, 일본에서는 전철, 버스가 하루에 4번 정도 다니는 마을에서도

조그만 편의점 몇 개와 미니 그마트 같은 중형 슈퍼 정도는 영업을 하고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아예 그런것도 없는 깡촌이라면 생활 난이도가 만만치 않겠지만 그런 곳은 정말 특수한 환경이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듯.

 

대마도는 섬 크기에 비해 인구가 많이 적은 곳이라 이렇게 조금이라도 관광객이 돌아다닐 만한 노선 근처엔

풍경과 편의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편이라 왠지 머릿속에 연상되는 시골이라는 느낌이 조금 덜한 편이다.

고행을 하러 귀농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 밸런스가 적당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사람 흔적 하나 없는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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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나서 한동안은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갈 수 있었지만

이 섬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도시를 잇는 버스라 그런지 매 정류장 마다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탄다.

특히 도심을 벗어나서도 그 한적한 시골길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타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란다.

 

관광용 버스가 아니라 전형적인 시골 버스인데, 결국 자리가 완전히 꽉 차게 되자 뒤쪽 좌석의 통로 부분에 장착된 접이식 의자까지 펼치게 된다.

뒤쪽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리려면 접이식 의자를 접어올려 사람들이 다 비켜서야만 내릴 수 있다.

한국이라면 좀 긴장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의 버스는 정류소에 버스가 정차한 후에 자리에 일어나도 전혀 상관없이 끝까지 기다려 주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등산복 입은 한국 관광객 아주머니들이 꽤나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조금 난감했지만

이 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인 듯 신경쓰지 않는다.

 

수려한 풍경을 지나치며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리니 목적지인 니이 부근에 도착한다.

주변에 나름 유명한 관광지가 있기 때문인지 낡았지만 지붕까지 달린 정류소가 인상적이다.

적지 않은 한국 관광객도 함께 내렸는데, 다들 목표로 하는 와타즈미 신사가 어느 쪽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한다.

제대로 된 표지판이 없어서 조금 난감할 듯도 싶다.

 

정류소 안의 할아버지한테 신사 가는 길을 물어보니 꽤나 걸어야 한다고 하신다.

다음 버스 도착시 까지 괜찮겠냐고 물어봤는데, 그 정도까지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와타즈미 신사에서 더 걸어야 갈 수 있는 전망대 쪽은 아무래도 도보로는 힘들거라 하신다.

 

 

 

사실 전망대 쪽은 대마도에서 풍경이 가장 좋긴 하지만

관광용 버스나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있어야 갔다 올 만한 거리라 처음부터 힘드리라 생각은 했다.

관광지 구경에 의의를 둔 여행이 아니라 그냥 가볍게 와타즈미 신사 근처까지만 가 보기로 한다.

 

점심때쯤이라 한국인 관광객들은 밥 먼저 먹으러 가 버리고, 카레빵 하나에 의지한 본인은 그냥 하염없이 신사쪽으로 걷는다.

신사까지는 한참 걸어야 하고 그 주변까지는 그저 자연 내음 가득한 일반 주택가밖에 없기 때문에

발걸음에 힘을 빼고 살짝 위험한 사진들을 찍으며 느긋하게 걸어본다.

 

 

 

주택 옆에 토리이가 있길래 설마 여기가 와타즈미 신사인가 싶었는데 그럴 리는 없다.

아마 관광객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마을 사람들만의 조그만 신사일 듯.

 

이 정도로 토속 신앙이 활기를 띄는 고도화 국가도 참 드물 듯 하다.

물론 국가적 이념이 세균처럼 스며들어서 본래의 취지를 더럽히기도 쉬운 곳이긴 한데

조그만 마을 주변의 신사들은 그나마 그런 오염에서 안전한 편이라 가볍게 구경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인데 한동안 걸어오면서도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고기라도 잡으러 간 건지 밭에라도 간 건지, 간간히 들리는 새 소리 말고는 마을 전체가 정적으로 감싸여 있다.

 

좋은 모습이다 싶어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런 개인 주택을 맘대로 찍어도 되는 건가 두근두근하다.

이럴 때는 머릿속에서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시나리오마저 짜 놓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집주인과 얼굴이 마주쳤을 때는 웃으면서 친근하게 인사하며 집이 참 아름답고 깨끗해서 찍게 되었다고 사정을 설명한다.

그나마 일본어로 말이 통하는 것을 그런 상황에서나 좋게 활용해야 하지 않겠나.

 

한국 자전거 여행때는 그런 식으로 웃으면서 시도해 봤지만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경계의 눈빛으로 날 노려보던 할머니 때문에

두 번 다시 그렇게 사진을 찍진 않았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 방법으로 좋게좋게 인사하고 지나간 경험이 있으니 문제없다.

 

 

 

걸어도 걸어도 신사같은 것 꽁무니도 보이지 않아 잠깐 멍하니 서 있는데

뒤에서 걸어오던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놀랍게도 나한테 먼저 인사를 걸어준다.

 

일본 시골에서는 아직도 어른을 보면 먼저 인사하자는 캠페인이 활발이 일어나고 있어서

나처럼 쉽게 말 걸기 힘든 풍채를 가진 사람에게도 시원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다.

 

인사를 해 주고 혹시 와타즈미 신사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니까 앞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으면 된다고 알려준다.

관광객 티를 풀풀 내는 본인에게도 용감히 말을 걸어 준 아이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그 애들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풍경과 동화될 즈음 뒷모습을 담아본다.

 

훗날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대마도를 찾는 관광객은 거의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도 이곳 아이들은 인사 잘 하도록 교육을 받는 모양이다.

인사는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산 속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토리이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직도 와타즈미 신사까지는 한동안 더 걸어가야 한다.

일단 길을 틀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했지만 확실히 돌아갈 시간까지 생각하면 전망대까지는 무리다.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앞을 지나쳐가는 사람들도 봤는데, 그들이라면 신사를 보고 바로 전망대까지 가서 대마도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겠지.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만큼 저렴하게 홀로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다음 버스를 넘기고 저녁에 출발하는 마지막 버스를 탈 수도 있지만 목적지인 하타카츠에는 숙소 예약도 잡지 않은 상태라

최대한 일찍 가서 짐을 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시도하기엔 조금 용기가 필요하다.

 

 

 

깡촌 중에서도 상깡촌인 이곳에도 걸출한 운동장이 산 속에 자리잡은 걸 보니 감탄이 나온다.

아마 학교나 주민센터 같은 곳일텐데, 야구를 하기에도 문제가 없는 잔디 구장과 야간용 라이트까지 설치되어 있다는 건 놀랍다.

 

세금은 이런데 쓰여야 조금이라도 덜 분노할 수 있을 텐데.

 

 

 

하늘은 흐리지만 목덜미는 땀으로 젖을 정도로 꽤나 더운 날씨다.

조금 높은 곳까지 올라가자 대마도라는 섬의 자연적 특징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풍경이 드러난다.

 

한려수도를 압축해 놓은 듯한 바다와 산의 집합체인데, 이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그 모습이 전부 보여서 상당한 장관이다.

날씨가 좋으면 부산까지 보인다고 하니 이 곳이 얼마나 한국과 가까운 곳인지 세삼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대마도는 본인 서식지에서 잠깐 산책가는 수준으로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곳이라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보려는 시도를 하고싶진 않으니 그냥 이 정도 풍경만으로도 만족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산허리를 한 바퀴 감아돌아 내리막에 들어서니 점점 바다와 가까워진다.

겉모습만으로는 이게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지경이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들 왔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주요 거점인 히타카츠와 이즈하라 중간에 위치한 곳이라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다. 이곳까지 와서 드디어 한적한 대마도의 모습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바다와 맞닿은 움푹한 곳에 와타즈미 신사가 위치해 있다.

산을 등에 지고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라 고즈넉한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유명 신사처럼 화려한 색깔로 치장하지도 않은 조그만 곳이지만 자연적 위치가 매우 좋아서

바다와 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자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신사가 위치해 있었다는 건 확실하다.

약 1000년 전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일본 각지의 주요 신사 목록에도 이 곳이 기재되어 있으니까.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휘황찬란한 미야지마의 이츠쿠시마 신사 등과는 비교할 수준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곳 와타즈미(和多都美)신사는 이곳 대마도 주민들뿐만 아니라 본토 사람들에게도 나름 유서깊은 곳인데

산과 바다가 정확히 마주한 이 곳의 지형상, 일본의 건국 신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신사가 모시는 용궁의 공주 토요타마히메노미코토(豊玉姫命)는 일본의 첫 번째 천황이라는 진무천황의 할머니가 된다.

물론 저 진무천황이라는 존재는 역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군과 비슷한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 신사는 일본 건국신화의 주축이 되는 설화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며 동시에 삼한을 정벌한 진무 황후라는 여성을 모시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보기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애초에 이 신사는 국토를 풍요롭게 하고 외세를 물리치는 표리일체, 혹은 대칭성의 상징이니까.

산과 바다의 경계에 걸쳐 있는 이 곳의 지리가 자연스럽게 그러한 대칭성을 자연스럽게 키워낸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대마도와 한국의 관계는 지형적 특성상 옛날부터 밀접한 교류관계와 약탈 침략의 역사였으니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신화에서는 신적 존재가 보지 말라고 한 광경을 보다가 화를 당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일본은 주요 국보나 신화에 관련된 유적들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경향도 강하다.

 

용궁의 공주인 토요히메는 남편에게 출산장면을 결코 보면 안된다고 당부를 했지만

궁금을 이기지 못한 남편이 엿보게 되자 화를 내며 아이를 놔 두고 바다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신화시대와의 단절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설화는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산을 등에 지고 잔잔한 바다를 눈 앞에 둔 이 신사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과연 이 곳에 어울리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땅과 바다를 잇는 경계 역할을 하는 토리이.

섬나라인 일본은 이렇게 경계를 잇는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인 미야지마의 이츠쿠시마 신사 역시 어마어마한 토리이가 바다에 놓여 있는데

밀물때는 바다속에 우뚝 서 있고 썰물때는 땅과 이어져 직접 걸어갈 수 있는 그 모습 역시 이곳과 동일한 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규모면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이 곳의 토리이는 자연의 조화를 깨트리지 않는 단아한 모습이라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미야지마처럼 하루종일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며 밀물과 썰물의 풍경을 모두 감상하는 재미가 있겠지만

이 곳은 그러질 못하니 그냥 이 모습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밀물이 심할 때는 산 아래 신사까지 물이 찬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모습도 장관일텐데.

 

 

 

말라버린 갯벌 중앙에 신성한 시메나와와로 둘러쌓인 곳이 있다.

내용을 읽어보니 위에서 언급한 토요히메가 아이를 버리고 용궁으로 돌아갈 때 생긴 구멍이라고 한다.

지렁이 똥처럼 나와 있는 부분은 그 때 흘린 비늘이라고.

 

신화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꼼꼼함은 시각에 따라 재미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러다보니 현실적 역사의식이 좀 꼬인거 아닌가 라고 볼 수도 있을 듯.

 

 

 

역사적 가치는 둘째치고 한국 관광객이 별로 없을 때의 신사는 참 한적하고 풍경이 훌륭하다.

느긋하게 거닐고 있으니 어디선가 한국인 관광객이 버스를 타고 몰려오는데

아마 잠깐만 거닐고 전망대로 갈 거라 생각해 그냥 주변을 조용히 맴돌았다.

 

자전거로 달려오는 4~5명 정도의 일행도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입국대에 자전거를 줄줄이 늘어놓은 사람들 기억이 난다.

짐을 많이 싣고 달렸던 기억때문에 산악 자전거 투어링은 질색하는 성격이지만

짐도 없이 가벼운 자전거라면 이곳을 달리는 재미도 솔솔할거라는 느낌이다.

 

 

 

지금은 좀 줄어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반일감정이 심하던 당시엔 대마도 곳곳의 신사 에마에다가 '일본 침몰'등의 욕설을 적는 한국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마를 돈 주고 사는 것도 아니라 저렇게 쓰여져 있는 에마 위에다 매직펜으로 마구 휘갈기는 반달리즘에 가까운 짓거리들이었다고.

 

내 입장에서 보면 참 구차하고 좀스러운 화풀이다. 애초에 그렇게 애국하고 싶으면 외화 낭비하며 일본 여행 따위는 왜 오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다 보니 에마도 그렇게 많이 걸린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 만한 내용이 있어서 사진에 담아본다. 아마 파코라고 하는 동물이 아팠던 모양. 파코의 병이 나아 건강해 지기를 비는 에마다.

다행히도 그 후 다시 찾아와서 자기가 쓴 에마 오른쪽에다가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어놓은 걸 보니 보는 쪽에서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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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청결도가 어쨌든 간에 피곤해서인지 잠은 잘 잤다.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일정이 바쁜 단체 관광객은 벌써 다 떠나고 없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달기엔 심하게 낡은 곳이라, 기본 식단이 차려진 식탁에 앉아서 밥과 국만 직접 솥에서 떠 오면 되는 시스템.

 

그런데 식단이 차려진 테이블이 한 군데밖에 없고 맞은편에도 하나 차려져 있어서인지 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이 어물쩡거리다가 내 앞에 앉는다. 불편하다면 그냥 상을 들고 다른 테이블에 가면 될 일인데.

 

본인은 그런 거 신경쓰지 않으니 그냥 식사를 시작한다. 매우 전형적인 일본식 식단이라 아침에 먹기에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식자제는 충분히 신선한 지역이고 쌀은 역시나 맛있는 편이라 조금씩 음미하며 식사를 즐긴다.

 

하지만 대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맞은편 남성은 이런 식단이 심히 난감한지 보는 사람 감질나게 깨작거리면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대강대강 먹다가 결국 저 달걀이 삶지 않은 날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그냥 두고 가 버린다.

저 많지 않은 반찬도 조금씩만 맛보고 거의 남기는 수준이었는데 이러면 역시 그냥 두기 아깝다.

달걀은 삶은 것인지 확인한다고 조금 깨져 있는 상태라 다른 사람에게 다시 내 놓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니 스스럼없이 내 달걀을 밥 위에 얹어 간장을 부어 후다닥 흡입한 후, 한 그릇을 더 담아 맞은편 계란도 밥 위에 끼얹어 버렸다.

 

일본 자전거 여행 중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홈스테이 하던 소야노 아주머니가 휠체어 생활인 탓에

굳이 나를 위해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시는게 매우 미안했었다.

그래서 밥만 예약으로 지어놓고 나머지는 날계란에 간장 뿌려서 먹겠다는 제안을 했고 아주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실 필요가 없게 되었다.

뽀송뽀송한 흰 쌀밥에 달계란과 간장을 비벼먹으면 그 맛은 천하 일품. 일본 계란은 충분히 날 것으로 먹는 상황을 상정하고 기르기 때문에 위생문제도 없다.

 

 

 

별 것 없는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히타카츠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 정도 오는데 아직 1시간 30분 정도 남아있다.

바로 히타카츠까지 간다면 아무거나 타도 되겠지만, 중간에 니이(仁位)라는 곳에 내려서 구경을 좀 하고 다시 버스를 탈 예정이다.

버스간 간격이 2시간 조금 넘으니 시간을 잘 체크해야 엉뚱한 곳에서 노숙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듯.

 

걸어서 쉽게 구경할 만한 게 없을까 생각하며 무작정 걸어가다 보니 재미있는 쓰레기 수거함이 보인다.

일본은 보통 까마귀나 고양이 등이 쓰레기 봉투를 습격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저런 수거함을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냥 쓰레기통인가 싶어 수거봉투에 들지 않은 그냥 쓰레기를 막 버렸나 보다.

 

주민들로서는 꽤나 짜증나는 일이었는지 '천벌이 당장에 내림'이라는 무당집에서나 볼 법한 문구와 함께 멋진 번개그림까지 그려놓았다.

외국에서 이상한 한글 표지를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시내라 할 것도 없는 조그만 상업지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꽤나 넓은 주차장 너머로 신사 같은 녀석이 보인다.

자동차를 렌트한 한국인 가족이나 단체 관광 버스도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 곳에서는 나름 이름있는 신사인 듯.

 

신사는 산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조그마한 언덕 사이에 위치한 아담한 모습이지만

주차장이 생각보다 넓어서 관광객 용으로 꽤나 인기를 끄는 곳인가 생각해 본다.

해풍이 강하고 유지보수가 쉽지 않은 조그만 섬에서는 이렇게 돌로 만든 토리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

바다 가운데 용감하게도 나무로 된 토리이를 세운 히로시마의 이츠쿠시마(厳島)신사는 어마어마한 수입이 있기에 가능하다.

 

 

 

아침부터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의 대부분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실제로는 섬사람들이 틈나면 간간히 찾아오는 그들의 생활속 신사이겠지만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이곳 대마도에서는 그냥 지나칠만한 평범한 신사도 일단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는 듯 하다.

 

주차장 앞의 간판을 읽어보니 이곳은 하치만구(八幡宮) 신사라고 하는데, 원래 하치만은 전쟁의 신으로 이런 곳에서 모시는 신은

대부분 외세로부터 마을을 보호했거나 어딘가를 점령한 실존 혹은 가상 인물인 경우가 많다. 대마도라는 위치상 뭔가 꺼림직한 부분.

 

주차장에서 보니 토리이가 두 개 서 있다. 이것은 신사가 두 개 있다는 증거. 아무래도 하치만구 외에도 뭔가가 하나 더 있는 듯.

본인은 한국의 절처럼 신사 그 자체보다는 지리적으로 자연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풍경을 즐기러 가다보니

굳이 어떤 일을 한 신을 모시고 있는가에 별 관심은 없지만, 아무래도 대마도에서 한국과의 역사적 관계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하치만구 쪽으로 가 보니 문 양쪽에 코마이누(狛犬)가 서 있다. 보통 입을 다물고 있는 쪽이 암컷.

개와 사자를 섞어놓은 듯한 이 녀석은 보통 고려시대에 전파된 한국 토종개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원류를 따지고 가자면 이런 수호신은 대부분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신사는 그럭저럭 오래 된 녀석인지 옆에 서 있는 비석이 꽤나 오래된 느낌을 준다.

그냥 돌기둥이라면 별 매력이 없겠지만 공기좋은 산 속에 수국 등의 아름다운 꽃과 함께 있으니 묘한 조화를 이룬다.

사람의 손을 탄 것들이라도 역시 자연의 백업이 없으면 빛을 발하기 어렵다.

 

 

 

하치만구의 설명을 보니 예전 삼한시대 한국에 임나일본부를 세운 가상의 인물을 모시는 곳이라고 되어 있다.

하치만구라는 이름을 들을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있지도 않은 이야기의 주인공에 마음대로 생명력을 불어넣은 곳이다.

 

학계에서도 처절히 매장당한 학설이라 더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도 한 때 잘나갔지'하고 자위라도 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그냥 코웃음 한 번 치고 사진이나 담으면 될려나.

한국 관광객도 이런 신사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두는게 멍청한 짓 하지 않기 위한 요건이 아닐까 싶다.

 

 

 

대포 탄약처럼 보이는 것들이 줄줄이 서 있어서 신기하다.

하치만구 설명을 보고 나서는 그냥 주변 풍경이나 둘러보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 녀석들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과도 관계가 없는 지역이다 보니 아리송하긴 하지만. 어쩌면 포탄이 아니라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사는 둘째치고 주위를 둘러싼 거목들 모습은 참 훌륭하다.

기후상 한국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 녀석들이라 이국적인 느낌을 받게 하는 몇 안되는 자연물 중 하나.

삼나무가 많은 일본의 산과 숲은 그래서인지 한국보다 무서운 이미지를 갖고 있는 편. 빡빡한 곳은 낮에 들어가도 꽤나 음산하다.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조그만 신사는 이마미야(今宮) 신사라고 하는데, 코니시 유키나가(小西 行長)의 딸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사정에 능통한 이곳 대마도 번주 소우 요시토시(宗 義智)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장수였던 코니시의 딸과 그를 결혼시키게 했는데, 코니시는 히데요시 사후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적대하게 되어 사망한다.

소우 요시토시는 자신에게 불길이 옮기는 것을 두려워 해 코니시의 딸인 자기 아내를 나가사키로 귀향보내 평생 마주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대마도 사람들은 그 아내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 신사를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신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족의 혼을 달래기 위한 신사를 많이 모신다.

신사라는 것이 숭배의 대상과 함께 원귀의 넋을 달래어 진정시키는 대조적인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토속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살아있는 사람이 잘 살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라면 둘 다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으니

신사는 의외로 상당히 현실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혜로운 신에게 빌어 축복을 받는 것이나, 원한을 가져서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귀신을 달래는 것이나 결론적으로는 같은 행위니까.

 

 

 

거목 중에는 뿌리 부분에 동굴처럼 구멍이 생겨 그것을 시멘트로 발라버린 모습도 볼 수 있다.

나무가 문제라기보다는 저기 들어가려는 사람이 문제가 되어서 설치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 한명 정도는 쉽게 들어갈만한 공간이라, 괜히 문제생기면 곤란해 질 수도 있을테니까.

 

나름 나무 색깔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역시 실감이 전혀 다르다 보니 어울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사 구경을 가볍게 마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이제는 그냥 버스 시간까지 마을 풍경이나 감상하려 한다.

바다와 맞닿은 곳이라 평소 내륙지역에서 서식중인 본인으로서는 신기해 보이는 모습이 꽤나 많이 보인다.

밀물과 썰물간 풍경이 심히 다를 것이라 예상되는 지역의 모습. 자기 집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느낌은 어떤 것일런지.

 

 

 

대문앞을 꾸미는 건 일본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해도 될려나.

분명 이제는 사용하지 않을 조그만 자전거도 꽃바구니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풍경에 녹아들어가 있다.

 

한국 아파트 정원에서는 대나무를 심으니 죽순을 캐 가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일도 있었는데

마당이 있든 없든 일본의 주택가에는 화단과 정원이 이렇게 늘어서 있어도 그런 일은 별로 없는 듯 하다.

 

 

 

자동차도 작은 녀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트럭조차도 심히 앙증맞다. 한국에서 저런 녀석을 본 기억은 없다.

짐을 얼마나 실을 수 있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리는 모습이 꽤나 귀여울 듯 하다.

 

 

 

하천 제방쪽 구멍에 비둘기 꽁무니가 보이길래 한동안 관찰해 본다.

그냥 휴식을 취하는 모습으로는 보기 힘들고 구멍 안쪽으로 뭔가가 있는 것처럼 들락날락 하고 있다.

아무래도 저 안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는 듯. 배수구가 아닌가 해서 놀랐지만 물 흐른 흔적을 보니 실제로 배수는 옆쪽 구멍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보인다.

 

저 녀석이 날아가고 나서 줌을 당겨 확인해 보니 역시 새끼들 몇 마리가 오손도손 앉아 있다.

조금만 더 크면 혼자 날아갈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다. 주택가나 아파트 단지쪽에서 사람 괴롭히는 것 보다는 이런 곳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그렇고 그런 구멍이 몇 개 있는걸 보니 비둘기들에게는 꽤나 인기있는 서식지인가 보다.

바로 밑 구멍에서도 한 마리가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카메라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동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새끼를 확인할 수 없는 각도라 내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 꽤나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걸 보니 뭔가 있기는 한 듯.

 

다행히 본인으로서는 아무런 악의가 없으니 말똥말똥한 녀석의 얼굴이나 찍어주고 자리를 피해준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점차 사라져 가는 골목 풍경이지만 아마 대마도는 꽤나 오랫동안 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개인주의를 좋아하는 나라이면서도 집만큼은 저렇게 담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여 놓은건지.

 

시골 사람들끼리는 비밀도 없다지만 특히 일본은 시골로 갈수록 공동체 의식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어서 도시사람들 입장에서는 좀 번거롭기까지 하다.

젊은 세대가 남아있는 시골에서는 마을 소방단까지 조직해서 수시로 화재 점검을 하고 있으니까.

여행객 입장에서는 이런 풍경들이 옛 정취 풍기는 그림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것도 그런 점에서 연유할지도 모르겠다.

보기는 좋지만 만질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까. 물론 드문 확률로 저 공동체에 잠깐이나마 소속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도 있긴 하지만.

 

 

 

버스 정류장 앞의 티아라 쇼핑몰 1층의 빵집에서 따끈따끈한 카레빵을 하나 구입한다.

히타카츠에 도착하면야 먹거리는 충분히 살 수 있겠지만 중간에 내려서 구경할 니이에서는 그럴 시간이 없다.

원래 니이쪽은 자동차나 최소 자전거 정도는 있어야 원할하게 구경이 가능한데

그런게 없이 버스로 이동하는 입장에서는 다음 버스가 도착할 시간까지 열심히 걸어도 관광지를 왕복하기가 빠듯하다.

 

티아라몰 중앙 에스컬레이터 쪽에는 이쪽 학생들이 만든 큰 장식이 걸려있다.

한일 화합과 교류를 위해 만든 녀석인 듯 한데, 저게 일본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심히 헷갈린다.

서로의 특징을 완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형이상학적으로 만들어서는.

뺨에 연지로 보이는 화장 정도가 한국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까.

 

어제 구입해 둔 버스 1일권을 쥐고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각각 절반쯤 되려나.

단체관광객은 따로 버스를 타고 갔을 텐데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이 서 있다는 점이 조금 불안하다.

날씨도 덥고 해서 가능하면 좌석에 앉아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다행히도 아주 뒤쪽에 줄을 선 것은 아니라 그리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줄였다고는 해도 백팩과 카메라용 사이드백이라는 짐을 갖고 있는 본인이라 옆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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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에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다들 새롭다. 지나칠 만한 일상적인 모습이라도 일본틱한 분위기를 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뭘 심어놔도 무럭무럭 자라는 곳인지 눈을 두는 곳 어디든 잔잔한 녹색이 인공미와 조화되어 푸근한 인상을 준다.

대마도는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라 느긋해 보이는 마을 풍경에 비해 자가용이 많이 보이고, 꽤나 인상적인 녀석들도 있다.

 

아무리 널널한 곳이라도 일본은 자동차 구입시 반드시 주차공간 확보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불법주차해 놓은 차를 구경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법령이지만 이미 늦기도 너무 늦었고 시민의식은 아예 시작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니 아쉬울 따름.

 

 

 

민가 바로 뒤편에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뒤편에 언덕이나 산이 위치한 마을에서는 이렇게 방풍림 대용으로 대나무숲이 울창한 곳이 많다.

워낙 잘 자라기도 하고 필요할 때 죽순도 금방금방 캐 먹을 수 있고 꽃도 거의 피지 않는 특성상 키우기가 매우 용이하다.

 

삼나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엔 화분증으로 고생하는 바람이 한국에 비해 훨씬 많은데

대나무는 꽃이 거의 피지도 않고 한번 피더라도 숲의 모든 대나무가 일시에 꽃을 피우고 일시에 져 버리는 특성상

마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다. 일시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애초에 대나무 뿌리가 거의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

 

 

 

팻말이 썩어가는 모습이 조금 위태위태하지만 보기는 참 좋다.

물이 오염되어 있으면 잎 색깔도 탁하고 덩쿨 주변에 눈으로 보기 괴로울 정도의 진딧물이 바글바글한데

이곳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애초에 오염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곳인데다가 깔끔하기로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관광지는 거의 문을 닫은 6시 즈음이지만 여전히 햇살은 사진을 찍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좀처럼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 배를 타고 와서 멀미가 심하진 않았지만 항구에서부터 고생을 하다 보니 첫날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을 주변의 꽃과 나무들을 찍으며 걷다 보니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관광이라면 본인 입장에서 정말 볼 것 없는 곳이지만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조용한 마을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름모를 수줍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 하루차를 즐겁게 마무리하기에 충분하다.

 

 

 

분명 사람이 사는 집이지만 점점 자연에 먹혀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바로 옆이 산이다 보니 얘네들을 죽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늦기전에 끊임없이 정리를 해 줘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할 듯 하다.

온통 녹색 물결로 덮혀 있어도 뭔가를 키우고는 싶은지 계단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담긴 화분이 줄지어 서 있다.

 

 

 

다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본에서 본 시골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집 치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콘크리트로 떡칠된 도시보다 애초에 더 아름다운 곳이지만서도 소소한 곳에 공을 들여 꾸미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동안 신세를 졌던 나가노의 산속 깊은 마을 키소에서도 집 앞에 유럽이 기원인 듯한 난쟁이 인형 도자기를 문 옆에 놓아두고 있었고.

지금 나에게나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나 모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 저 조그마한 장식품 안에 들어있을 듯 하다.

 

 

 

일본의 3대 편의점이 하나도 없는 시골 섬마을이지만 도회지 못지 않게 차량을 꾸미려는 욕구는 강렬한가 보다.

자동차에 스티커 붙이는 건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편인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자동차 전체에 붙이고 다니는 매니아로 발전할 수도 있을 듯.

매니아 문화에 관대한 일본에서도 그런 차들을 보고 있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이타샤(痛車)라 부를 정도인데

설마 이곳 대마도에 그 정도 자동차까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밖에서 보는 산의 지형을 바꿔버릴 정도로 높은 거목들이 즐비하지만 그것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쭉쭉 뻗은 대나무들도 참 장관이다.

 

애초에 대나무는 나무라고 부를수도 없는 것이, 목본성이 아니라 초본성 식물이라서 사실 우리가 보는 기둥 부분은 전부 풀이기 때문.

그럼에도 하루에 십수 센티미터씩 쑥쑥 자라는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 주니 여러가지로 묘한 녀석이다.

 

유치원 가기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한 그림책에서는 대나무의 텅 빈 속을 이용해 물총을 만드는 방법이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여서 한참 동안 그걸 만들어 물놀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곤 했었다.

불행히도 주변에 대나무 따윈 보기도 힘든 도심 한복판에서 자라다 보니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곳이라면 대나무 물총 쯤은 다들 한 번씩 손에 쥐어보는 것일까.

 

 

 

문을 작고 아담하게 만드는 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밀집지역 주택은 거의 대부분 이런 일본식 건축 방식을 따라 대문이 매우 작았다.

언덕 위의 부자들 집은 자동차가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검은 철문이 위쪽의 뾰족한 창살과 어울려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줬었고.

 

어릴 적엔 제주도의 미덕을 들먹이며 도둑이 없었기에 대문도 없다는 식의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꼭 그렇다기 보다는 수백년 전 부터의 건축 양식 차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애초에 마당있는 집이라는 개념은 일본에 정착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으니까.

 

 

 

얼마 걷지 않아 다시 이즈하라 시내로 진입한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하며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다지 유명하진 않지만 대마도 특산인 오징어와 톳을 패티에 섞은 '츠시마 버거'라는 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 가게를 찾아봤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의 햄버거 하나로 배를 채우기는 무리지만.

 

토박이라면 몰라도 홀로 여행자가 뭔가 특출난 식사를 즐기기엔 힘든 곳이라 그냥 쇼핑몰 티아라 안에서 적당히 골라서 숙소로 가지고 가기로 한다.

시마토쿠 쿠폰을 사용하면 경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배를 채우는 데는 문제 없을 듯.

 

골목 안에서 조그만 놀이터를 보고 여느때처럼 직업병(?)이 도진다.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훌륭한 숙박지가 되었을 텐데.

 

 

 

골목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마토쿠 쿠폰 가맹점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이 조그만 서양식 바는 한국인 사절이라는 단어도 당당하게 문 앞에 걸어놓았다.

내부를 슬쩍 보니 나무로 된 카운터에 아기자기한 깃발과 뱃지들이 벽에 걸려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인데

그래서인지 선전 간판도 영어로 적혀있는 것이 나름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일본의 인기 게임인 몬스터 헌터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적은 것 까지는 센스를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인 사절이라는 팻말을 걸 정도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등산복 입은 중년층 이상 단체 관광객들이 이런 곳에 들어가기나 할까 싶은데.

 

그냥 주인이 혐한론자라서 이유도 없이 사절하는 것인지, 예전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인지

이 곳의 역사를 알 리 없는 본인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기분이 편하지는 않다.

 

 

 

버드나무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개천을 다리 위에서 감상하며 처음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다.

정말 깡촌중의 깡촌이 아닌 이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파칭코 가게도 도시의 그것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벌써부터 문을 닫고 길거리는 점점 한산해진다.

 

한적한 곳이기는 한데 관광객이 한꺼번에 많이 오면 이 곳은 왠지 소화불량에 걸린 것 처럼 어색해 진다.

굳이 같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없는 조용한 곳을 항상 추구하며 여행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적이 없는 다리 위에서 조용히 서 있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을 듯.

 

 

 

다리 위엔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대마도의 특징을 나타내는 그림도 새겨져 있다.

왼쪽의 츠시마 삵은 10만년쯤 전에 이곳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을 당시 건너온 녀석이라고 하는데

섬에 사는 삵이 그렇듯 이쪽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라 실제로 여행중 야생 삵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지도로 친다면 20만년도 전에 격리되어 완전히 분화된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 섬에 서식하는 삵이 유명한데

이곳도 일단은 종 분화가 일어난 아종 삵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녀석이긴 하다.

 

 

 

 

자국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보다 부산이 더 가까운 곳이다보니 한국인들을 위해 이런 그림도 박아놓았다.

실제로 강점기 시절에는 당일치기 놀러갈 때 후쿠오카보다 부산쪽으로 훨씬 많이 가기도 했다.

멀리 보자면 조선시대 때도 후쿠오카쪽보다는 조선쪽과 무역규모가 컸고.

 

잘사는 나라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일본도 최근 한국과 중국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주변국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이었다.

심지어 2010년 일본에서도 나를 보고

'지금 북한하고 휴전중인데 한국 놀러가도 되나?' 라던가 '한국인들 상당수가 일본인 보면 두들겨 팬다고 들었는데' 라는 말을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의 일베나 디씨같은 쓰레기 집합장에서 나오는 말과 비슷하게 '한국에 가면 강간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소문 정도는 꾸준히 나도니까.

물론 한국이 과하게 안전불감증인 것처럼 일본이 해외 여행에 겁을 좀 먹는 성격이기도 하니 정말 순수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알려줄 뿐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저녁장을 보기 전에 모스버거로 들어간다.

딱히 버거가 땡겨서는 아니지만 생각해 놓았던 츠시마 버거를 먹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도 했고, 편의점도 없는 이곳에 무려 모스버거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해서.

 

50대 중반 혹은 6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어서 조금 놀라긴 했다. 확실히 대마도의 인구는 심각한 고령사회이긴 한데.

모스버거는 주문을 받고 나서 패티를 굽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버거에 비해서는 좀 더 따끈하고 폭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진한 토마토 소스와 싱싱한 양파는 이 코딱지만하면서도 비싼 모스버거를 그래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재료.

 

특히 요즘 점점 말라 비틀어져가는 타 회사들에 비해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두툼한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일본에서는 감자튀김을 선택해도 캐첩이 기본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매번 추가를 해야 하는게 조금 귀찮지만

일회용 비닐주머니에 담겨져 어디 부어서 찍어먹기 참 난감한 한국에 비해 반드시 제대로 된 접시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마음에 확 와닿는 일정이 아니라서 일기를 그렇게까지 길게 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햄버거와 함께 여행의 기록 남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터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바로 옆 티아라 식품관으로 향한다.

대마도쯤 되는 곳에 이런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편중을 생각할 때 그렇게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관광객 수요를 충족시키는데는 또 이만한 곳이 없으니 계륵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츠시마 삵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지 158일째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실 대마도의 분위기라는 게 워낙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158째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하기는 커녕

159일 전에는 삵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긴 하다.

 

물론 인명사고와 달리 고양이과 동물은 자동차같은 빠른 물체와 조우했을 때 일단 상대를 확인하는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보다 훨씬 빈번하게 로드킬이 일어나다 보니 저 정도 기록도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시마토쿠 쿠폰은 1천엔 단위로 사용할 수 있으며 1천엔 이하의 물건에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뭐가 어찌됐든 1천엔 이상 먹거리를 사야 한다. 컵라면이나 과자 따위로는 방금 전 모스버거까지 먹었던 본인으로서 조금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당히 비싸다 싶은 것들을 골라본다. 이미 관광객들이 한바탕 쓸어간 탓인지 왠만한 즉석요리 코너는 텅텅 비어있는 상황.

 

닭꼬치 한 접시와 초밥, 음료수를 구입하니 1500엔 조금 넘게 나온다. 시마토쿠 한 장과 잔돈으로 계산하고 나니 조금 뿌듯하다.

일단 5천엔을 주고 6천엔짜리 쿠폰북을 샀으니 이럴 때 계산하면 이득 본 듯한 느낌.

아무래도 티아라 쇼핑몰은 이즈하라의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물가가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쿠폰의 묘한 매력 때문에 이것저것 쓸어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짐에 틀림없을 것이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지만 내 방 PC 모니터의 절반도 안되는 아날로그 TV를 실눈으로 간신히 쳐다보면서 느긋하게 닭꼬치와 초밥을 흡입한다.

대마도는 거리상 후쿠오카와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나가사키현에 소속되어 있어서 TV 방송도 기준 물가도 모두 나가사키를 따라간다.

 

TV가 작아서 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는 방송이 몇개 나왔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시계 장인이 만들어내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의 초정밀 기계시계를 만드는 다큐였는데

본인의 손톱 끝보다도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조립해가는 광경은 마치 신적인 존재가 우주 하나를 탄생시키는 모습처럼 보인다.

시계엔 관심이 없지만 장인들의 노력과 신기에 가까운 솜씨만큼은 TV를 쳐다보는데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이불과 배게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에 기분좋게 잠들기는 참 어려웠지만 어쨌든 여행은 여행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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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느끼고 싶은 일본적인 특색이 무엇일까.

일반적인 한국인과 비교하면 일본과 많이 친숙하다 보니 이제 슬슬 타국 여행에서 바라는 무엇인가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이라도 쿠라시키 등 일본적인 특징이 확연히 남아있는 곳에 간다면 눈이 즐겁겠지만

이곳 대마도의 이즈하라는 일본이라 느끼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한 곳이다보니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사진을 담으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렇게 작은 바닷마을이 그래도 관광객을 위한 여러가지 소소한 치장을 한 깔끔한 곳이라는 특징 정도가

내가 지금 외국 여행중이구나 하는 마음속 위치를 다잡아주는 요소인 듯 하다.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열망 등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존재라지만

그런 짓을 하는 건 벌레 뿐만이 아닌 듯 하다. 저 높이 다리 위에서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이 기어코 다리 밑으로 가지를 뻗어

결국에는 그 몸을 담궈 죽어버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마을을 가로지르는 이 물은 담수인지 해수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높이를 생각했을 때 소금이 안 섞여있지는 않을 법 하다.

물론 소금물이든 맹물이든 저렇게 물 속까지 가지를 뻗어버린다면 어느 쪽이든 살아남긴 어렵다.

 

마지막 남은 것인지 남들보다 먼저 핀 것인지 멀리서 당겨찍은 사진으로는 분간이 어려운 꽃 한송이가

수면이 올라옴직한 높이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다. 물 속으로 전진하는 나뭇가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저 물과 만나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 하나만으로 중력에 순응한 것인지.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삼자가 어리석다고 비웃을 일은 결코 아니다.

 

 

 

골목을 조금 지나면 이곳 이즈하라에서 가장 큰 도로가 나온다. 호텔다운 호텔도 그 부근에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은 서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눈 가는데로 카메라 셔터를 놓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참 태평스럽다.

 

거진 깡촌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낡고 조그만 집들이지만 가끔 꽤나 깔끔하고 덩치가 큰 녀석들도 보인다.

이 정도 되면 그냥 주택은 아니고 어떤 용도를 가진 건축물이지만, 단정한 돌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흔적을 남긴 나뭇가지가 운치를 더해준다.

제주도의 돌담은 장인 수준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흉내도 내지 못할 자연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데

조금 밋밋한 사각형 바위가 잃어버리기 부드러움을 매꿔주듯 자라난 나뭇가지들이 나름 멋을 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언뜻 보기에 이즈하라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호텔로 들어가 빈 방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만실이란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좀 곤혹스럽다. 프론트의 할머니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손님들이 정말 많이 왔다고 하신다.

하긴 오늘 하루만 한국에서 2만명이나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부산에서 대마도로는 남쪽의 이즈하라, 북쪽의 히타카츠 두 군데 선착장에 도달하니 반을 뚝 자른다고 해도 이 조그마한 마을에 약 1만명의 관광객이 돌아다니고 있는 셈.

자전거를 들고 단체로 탑승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많이많이 줄인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 감당하기 쉬운 수는 아니다.

 

이제는 괜찮은 호텔도 필요없으니 왔던길을 돌아가서 허름해 보이는 호텔로 무작정 들어간다.

바닷바람과 햇빛에 그을린 아저씨가 프론트에 서 있는 호텔로 들어가 빈 방을 물어본다.

무슨 일인지 한동안 고민하던 아저씨는 내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할 즈음 '딱 하나 남아있긴 하다'고 말해 준다.

뭣 때문에 그렇게 망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텔 경영 방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다.

 

1층 로비가 내 방보다 더 작은 호텔이지만 1박 요금이 6천엔이라고 한다. 도쿄 한가운데서도 6천엔이면 왠만한 비지니스 호텔은 다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앞서 언급한 시마토쿠 쿠폰을 거진 구입하는 편이고 숙박업소는 대부분 쿠폰을 받기 때문에

실제로는 6천엔보다 싸게 묵을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요금 자체를 그런 사정에 맞춰서 높게 잡아놓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썩 달갑진 않지만 어쨌든 노숙은 면했으니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일본에서 1년간 자전거 여행을 하며 1주일에 한 번은 호텔로 들어간 본인 입장에서 이 가격에 이런 방은 처음 본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10인치쯤 되는 아날로그 TV에 냉장고 따위는 없이 얼음물이 담긴 보온병 하나.

 

침대에서는 노숙자라도 묵다가 방금 뛰쳐나갔는지 심히 역겨운 노폐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진지하게 이 정도라면 며칠동안 시트를 갈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

더운 날씨다 보니 그래도 에어콘만은 달려있는 게 반갑기는 하다. 에어콘 없는 숙박시설도 많이 가 봤으니 그래도 이 정도라면.

 

 

 

대마도쪽 숙박시설이 좋지 않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물론 단제로 오거나 자금을 넉넉하게 쓴다면야 꽤나 괜찮은 곳을 구할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런 곳은 나같은 도보 여행자가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대마도는 관광 자원의 절대 다수가 한국인인지라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한국인 관광객이 딱 끊기자

이곳은 본토와는 관계없는 곳이라고 대마도 시장이 직접 부산을 찾아 여객선의 운항 재개를 요청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관계일수록 민족이 다른 두 나라의 뗄 수 없는 관계에서는 조금씩 갈등이 빚어나오게 마련.

한국 관광객의 추태에 진저리를 치는 주민도 있고, 본토 사람들 레벨까지 대접해 줄 필요는 없다는 인식도 없지는 않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이 많은 날에 오고싶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근래들어 최대 인원이 오는 날이 되다보니 여러가지로 심란하다.

호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달리 갈 곳도 없고, 호텔 사장 역시 나 하나쯤 없어봤자 이미 객실 회전율은 그를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사실 저 정도 수준에 머물 필요도 없이 텐트 쳐 놓고 누워 자는게 훨씬 편할 듯.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 아쉬운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걸로 후회해 봤자 소용없으니 해가 지기전에 마을 구경이나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선다.

일단은 이 곳이 이즈하라의 중심지. 이마트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의 슈퍼 '티아라'가 위치한 곳이다. 대마도의 유일한 현대식 쇼핑센터.

편의점도 없는 곳이지만 이 쇼핑센터에는 무려 모스버거가 입점해 있다.

 

 

 

물가는 확실히 싸고 시마토쿠 쿠폰도 사용할 수 있으니 저녁거리 푸짐하게 싸들고 돌아가기엔 충분한 곳.

1층 외곽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서 들어가 본다. 내일 니이(仁井)를 거쳐 히타카츠(比田勝)로 갈 예정인데

외국인 여행자는 1천엔에 버스 프리패스를 구입할 수 있으니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그냥 타면 3천엔이나 하니까 무조건 이득.

 

인포메이션 센터로 들어가 프리패스를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묻자 40대를 조금 넘어보이는 여성이 친근하게 일어서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센터를 나와서 10m 정도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조그만 버스센터가 있는데 거기까지 함께 걸어가서 안내를 해 줬다.

이건 과잉 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나로서는 매우 고마울 따름. 친절한 사람은 역시 친절하구나 싶다.

 

 

 

프리패스를 구입 후 마음은 홀가분해 졌지만 사실 오늘 일정은 완전히 엉망이다.

대마도는 어쨌든 번화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관광지 중에서도 영업을 일찍 끝내기로 유명한 곳인데

여객선이 예고도 없이 2시간 넘게 지연되는 바람에 히즈하라에 도착하고 나니 여행할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입장료는 내고 들어가 볼 만한 곳은 별로 없어도 이즈하라에 위치한 반쇼인(万松院)이라는 사찰은 한 번쯤 들어가 봄직 한데

개장시간이 6시 까지라 아무래도 재 시간에 도착은 어려울 법 하다. 지금 벌써 5시 반이 넘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하던대로 마을 풍경이나 담으며 산책 겸 반쇼인 쪽으로 걸어가 본다. 어차피 그러려고 온 것이니.

 

 

 

일본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돌로 엮어 만든 지붕'이 있는 가옥이 이곳 대마도에 남아있다는 말을 들어서

걷는 중간에 보인 관광안내센터에 들어가 물어보니 그건 이즈하라에는 없고 자동차로 1시간쯤 가야 하는 어느 마을에 있다고 한다.

단 3일간의 여행이고, 내일은 니이와 히타카츠로 가는 것만 4시간 넘게 소모될 터이니 아무래도 구경은 무리인 듯 하다.

 

대마도는 여행하려면 렌트카가 필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확실히 여행을 즐기려면 꼭 필요할 것 같다.

버스로는 이동성이 너무나 제한되고, 하루에 몇 코스 운행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4~5일간 느긋하게 시간 들일 곳도 아니고.

반쇼인으로 이동중에 뭔가 굉장한 대문이 보인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저곳을 많이 들락날락 거리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곁을 지나가며 '저 안에 덕혜옹주 기념비가 있대'라고 대화하는 것을 듣고 저기가 거긴가 싶었다.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던 덕혜옹주는 이곳의 번주인 소우 타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하며 사실상 유배된 조선의 왕족.

결혼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유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녀는 결국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이 겹쳐 훗날 이혼까지 당하게 된다.

죽기 전 한국으로 돌아와 몽롱한 정신에도 창덕궁에 돌아왔을 때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눈물을 흘렸다고.

 

영화 '마지막 황제'도 그랬지만 부조리한 역사 속에 휘말려 불행한 인생을 보냈음에도 결국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의 진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점 덕분에

그나마 아련하지만 마지막 위안을 얻고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절대로 노리고 심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역사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수국을 보면 힘들었던 근대 한국의 애상이 떠오른다.

오세호 작가가 무려 일본에서 연재했던 만화의 제목이 '수국 아리랑'이어서 그런가.

실제로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국이 있긴 한데, 어차피 일본이 원산지이던 꽃을 개량한 것이라 별 의미는 없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저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본인은 비석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한국인 관광객용으로 만들어 진 것인데다가 저 안에 있는 비석은 덕혜옹주와 소우 타케유키의 결혼기념비이기 때문에.

 

 

 

길을 쭈욱 걸어가면 끝에 반쇼인이 나온다. 어차피 들어가는 건 포기했으니 천천히 경치 구경이나 하며 걷는다.

관광지이긴 하지만 크게 유명한 곳도 아니라 마을이 깔끔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볼거리도 없는 이즈하라지만

공장같은 거 없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만큼은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라 산책하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날씨가 시원한 편은 아니라 땀이 흐르긴 해도 햇살이 기분나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공기는 신선하다.

자연의 건강상태는 흐르는 물 근처의 식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저분한 하천 주위의 식물이 그렇게 힘겹고 흉하게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이곳은 이렇게 걷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만큼의 가치가 있다.

 

 

 

이즈하라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대마도라는 섬 자체는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제주도의 1/3이나 되는 크기라서 거진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실감나기 힘들기도 하고.

대부분이 산지라서 그런지 마을 주변의 초목들도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기본적으로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이 모두 만족스러울 만큼 싱싱하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오염이 심한 도시에 인위적으로 박아놓은 조경수들과는 다른 느긋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걷다보니 아주 강력해 보이는 거미집을 볼 수 있었다.

보통 거미집 하면 생각나는 그런 모양과는 달리 상당히 빡빡하게 지어놓아서 철옹성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탱글탱글한 거미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데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손으로 잡기에는 좀 무서워 보인다.

 

며칠만에 지은 집인지 궁금하기도 한데, 사람이 한동안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도 충분히 볼거리니까.

 

 

 

자전거 여행 덕분에 매우 익숙해진 일본의 시골 풍경이지만

보통 대도시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일반적인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생활감 넘치는 풍경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법 하다.

대마도가 일본인 쪽에서 봐도 굉장히 시골이라 외국인 입장이라면 도보로 이동 가능한 범위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반쇼인 쪽으로는 이미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끊긴 시간이라 이 주변은 거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침부터 KTX 타랴 항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랴 배멀미로 고생하랴 시끌벅적했던 터라 비로소 조금씩 여행의 위안을 얻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슨 성터라는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 재건공사 비슷한 것을 하고는 있을 듯 한데, 사실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이 돌무더기밖에 없다.

이곳 예산이 엄청 풍부하다면야 터를 중심으로 뭔가 세울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듯.

 

이곳 주민들도 나름 역사의 흔적을 다시 세워서 고장의 지표로 세우려고 노력을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울릉도보다도 한참 더 외진 곳이니 역사적으로도 크게 내세울 만한 흔적이 부족하긴 하다.

 

 

 

일단은 반쇼인에 도착하긴 했다. 역시 문은 굳게 닫혀있다.

마지막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국인 그룹이 차를 타고 이 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대마도 여행은 뭔가를 보러 온 여행이 아니다.

 

이 곳만큼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대마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곳이었기에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저 대문도 1600년대 모모야마 양식으로 지어진 대마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양식이다.

물론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되었고 지금은 그냥 그 양식으로 재건해 놓은 것이지만.

 

 

 

대문 너머에는 대나무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다.

실제로 이곳의 볼거리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번주들의 묘소 쪽에 서 있는 삼나무이지만

어차피 볼 수도 없고, 삼나무라 하면 마음의 고향 중 하나인 키소(木曽)에서 눈이 빠지도록 구경했으니 아쉽지는 않다.

 

초여름이라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폐관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면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곳을 주욱 올라가면 대마도 번주였던 소우 가문의 묘소가 나온다.

돌계단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밤에 올라갈 수 있다면 더욱 분위기가 좋을 법 하다.

여행 첫날이 대게 그렇지만 배멀미에 고생하다 보니 체력도 많이 깎이고 해서

개장시간 내에 도착했더라도 여기를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지경.

 

오히려 이렇게 폐장되고 나니 홀가분하게 사진이나 담고 마음에 남긴 것 없이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저 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사찰이 있고 조선통신사 유물도 전시해 놓았다고는 하는데

더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냥 정겨운 풍경만 남기고 돌아선다.

 

일단 입장료를 받는 관광 명소인데, 앞에 위치한 건물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주택의 분위기를 풍기기에

혹시 여기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냥 저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돌담 하나는 잘 지어 놓았다는 느낌이다.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일본은 나무의 종류와 형태가 한국과 많이 달라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왼쪽 위에 보이는 삼나무는 일단 한국에 생식하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고, 저런 나무를 신성시한 일본은

한국보다 직선의 미를 살리려는 경향이 있어서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결국 위로 거슬러 가다보면 미세한 자연 환경의 차이에서 그 민족의 문화 전체가 갈리는 것이니까.

 

반쇼인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푸르던 하늘이 식어가고 있다. 식어간다기 보다는 오히려 홍조를 띄우는 느낌이지만.

어차피 이 시간이면 딱히 더 찾아갈 곳도 없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건 언제나 훌륭한 여행 코스가 된다.

아마 이런 곳보다 이즈하라 시내의 평범한 민가들에서 셔터를 누를 기회가 더 많으리라 확신하며 왔던 길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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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중 루트상으로도 자금상으로도 가기가 힘든 지역은 역시 섬이었다.

교통비가 들지 않는 자전거 여행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가요금이 붙는 행동이니.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못 가본 곳 중에서 짧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섬'을 생각하니 대마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몇몇 가 본 사람 말로는 별로 볼 게 없어서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성향이 별로 볼 것 없는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짧은 연휴기간 어렵지 않게 저렴한 선박을 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부산역에서 항구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있으니 심상치 않은 정보가 운전사 아주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오늘 대마도 가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해서 버스도 자주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오늘 하루만 약 2만명 가까이 간다고 한다.

 

그 작은 섬에 한국인 관광객이 2만명이나 간다는 정보에 앞날이 심히 걱정되지만 이미 예약해 놓은 거 어쩔 수 없다.

 

막상 항구에 도착하니 또 무슨 이유인지 말도 해주지 않고 2시간 가량 출항이 연기되었다고 매표소 직원이 선고하듯 안내해 준다.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일언 반구도 없이 묵묵하게 연기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매표소를 보고 출발 전부터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어쨌든 출발 전부터 이렇게 무책임한 상황에 직면하니 오늘 기분 좀 풀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마어마한 승객들 사이에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마치고 고속선에 승차해 후다닥 대마도에 도착.

대구에서 부산 가는 시간보다 더 짧은 뱃길이라 외국에 간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선착장을 나서니 사방엔 온통 한국인 관광객 밖에 없다. 정말 많이도 왔다.

숙박이고 뭐고 아무것도 예약해 놓지 않고 덜렁 왔기 때문에 슬슬 걱정도 된다.

최악의 경우엔 그냥 아무데서나 노숙하면 되지만 어느 곳이든 붐비는 건 질색이다.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가까운 곳이고, 일본에서 굳이 이 곳에 관광올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곳의 관광 경제는 거의 한국이 책임지다시피 하다 보니 여행도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제껏 대마도에 가기를 꺼려한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외국 여행중에는 한국 사람과 마주치기 싫다.

 

 

 

대부분이 산지라 바다와 맞닿은 풍경은 조화롭지만 그 외에 관광을 목적으로 할 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이쪽에서는 별로 남아있지 않은 몇몇 역사적 유물과 조그마한 동네 신사,

심지어 본토에서는 널리고 널린 모스버거 매장까지 지도에 표시해 놓을 만큼 관광객들을 위한 어필에 열심이긴 하다.

 

대마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이즈하라지만 본토에서는 꽤나 시골마을에 속하는 편.

하지만 본토는 자전거가 쉽게 달릴만한 길이 대부분 해안선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 않는 한 이 정도로 해안과 딱 붙어있는 마을을 볼 일이 별로 없다. 덕분에 조금은 신선한 느낌이다.

 

 

 

썰물처럼 관광객이 빠져나가니 항구 주변은 매우 한산해진다. 이제 좀 숨을 쉴 만 하다.

'1000년의 시공을 넘어서'라는 문구와 함께 통신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간판 하나만 봐도 이곳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섬 자체는 작지 않은 편이지만 워낙 산밖에 없어서 농업이 발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국과의 무역이 오래 전부터 중요했었고

무역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해 해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어서 교류와 침략을 번갈아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

조선 초기부터 이 곳은 일본의 중앙정부보다 조선 조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고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묘한 공생관계가 5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마냥 친근하지는 않았지만 외부 위협에 대한 적절한 완충지 역할을 해 오던 이 곳은

이제 섬의 가장 큰 수입원이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지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광객들이 살갑지만은 않다.

인과를 따지자면 한국 잘못은 아니어도 어쨌든 관광 와서 잘난척 하고 쓰레기 짓을 벌이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써 주는 돈과는 별개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곳.

 

 

 

관광지라고 조성해 놓은 곳도 상당수가 한국인들 입맞에 맞는 것들이라 오히려 본인에게는 별 관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일본 전역에서 가장 전쟁이 적었던 곳인 만큼 그만큼 후세에 남겨진 굵은 흔적도 적다고 할 수 있어서

역사적으로 본인의 흥미를 끌 만한 무언가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덕혜옹주가 이 곳의 영주인 소우 타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한 역사가 있어 비문 정도는 세워놓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의 관광객을 위한 자료라는 느낌이 강할 뿐 굳이 이곳에서 한국의 역사를 찾아야 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이 정해진 탓에 상당수 한국 관광객의 루트가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본인은 그저 3일간 조용히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이나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여행 정보는 찾아보지 않았다.

 

 

 

나름 이렇게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소박한 그림이나 감상하며 걷는 것이 전부.

조선은 처음엔 해적질 하는 이곳 사람들을 정벌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래서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계를 위한 약탈은 그 지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니.

 

그래서 통신사를 파견하고 대일 무역창구로 이곳을 이용하면서부터 오랜 시간에 걸친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곳의 영주는 조선에서 얻는 무역 이익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에 양국의 완충제 역할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는 듯.

심지어 임진왜란때도 전쟁을 막으려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발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선봉에 서기도 했다.

역시나 전쟁 중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후에도 무역이 끊기는 바람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으니, 이 곳만큼 조선과 일본 양 쪽의 관계에 민감한 곳도 없었다.

 

역사라는게 다들 그렇지만 마냥 좋거나 나쁜 쪽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대마도야말로 '애증의 관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섬이 아닌가 싶다.

 

물론 현 한국의 돌아가는 꼴은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예외는 어디든 있지만.

 

 

 

주차된 차량 밑에 냥이 한 마리가 두리번거리고 있어서 담아본다.

카메라를 밑으로 집어넣어 보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고, 찍고 나서도 완전히 시커먼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RAW 파일 촬영을 하다보니 어렵지 않게 복구 가능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사진 찍는것 까지는 그닥 개의치 않치만 더 이상 다가오려고도 하지 않는 녀석.

생각보다 어린 편인데 환경이 좋아서인지 꽤나 건강해 보인다. 오사카나 히로시마에서 만난 찌든 녀석들과는 대비가 된다.

 

 

 

조금만 걸어가면 숙소가 밀집한 번화가가 나타나니 서두를 것도 없이 관광객이 사라진 공간을 마음껏 즐긴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꽤나 구름이 많아서 찝찝했지만 가끔씩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대마도는 여러 해류가 맞물리는 곳에 위치해 있어 어장이 매우 풍부해 낚시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인 중에서도 상당수, 일본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은 낚시를 위해 이 곳을 찾는다는 말도 있다.

 

어업 중심의 섬마을이라면 그냥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건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요즘에 와서야 상상해 볼 수 있는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고

한 번 삶의 질이 높아진 이상 그걸 다시 되돌리는 건 역사 이래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이 곳은 쌀을 재배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서 간신히 콩 등의 작물만 수확할 수 있었기에

조선과의 무역이 단절되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노략질을 일삼을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무역이 성행하면서 평균 수입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올라 지금에까지 이어졌고

현대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그 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풍족함이란 마약과도 같아서 사람은 그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

 

심지어 훨씬 먹고살만 한 오키나와조차 이제와서는 미군 주둔덕에 수입이 많이 생기니 그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젊은층이 생기고 있으니까.

 

 

 

관광때문에 수입과 동시에 골치아픈 일도 많이 떠안았지만

여전히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라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도 모두 생생한 활기가 넘친다.

도심 한가운데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조경수들은 뭔가 찌들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든데 이런 곳은 알아서 잘 자란다는 느낌이 확 든다.

 

베낭 한개와 카메라 가방 하나를 짊어지고 있어서 이동은 나름 자유로운 편이라

숙소 잡을 생각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사진이나 담고 있지만 이제 슬슬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대마도에는 남쪽의 이즈하라(厳原)와 북쪽의 히타카츠(比田勝)가 항구를 가진 큰 마을인데

부산에서는 이 두 지역 모두에 페리가 왕복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반수로 준다고 해도

2만명이라는 대인원이 이 조그만 마을의 변변치 않은 숙소가 다 커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진짜로 노숙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슬슬 잠자리를 찾아봐야 할 듯.

그 전에 항구로 돌아가 시마토쿠 쿠폰을 구입한다. 대마도 관광에서는 빠지기 힘든 아이템.

관광에 의존하는 이 곳 특성상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해 발행하는 이 쿠폰북은 5천엔을 주고 구입할 수 있다.

5천엔 짜리 쿠폰북 안에 1천엔 짜리 쿠폰이 6장 들어있어 사실상 1천엔을 서비스하는 셈.

 

물론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1천엔 이상 소비시에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도 초과 금액은 현금으로 지불 가능하니 이 점만 유의하면 저렴한 관광이 가능하다.

어차피 대마도엔 쇼핑하러 오지 않는 이상 물건 살 게 별로 없지만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비싼 곳이고 어지간한 숙박지에서 이 쿠폰을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1만엔을 내고 쿠폰북을 2권 구입한다.

 

단체 관광객의 경우엔 숙박비를 지불한 뒤일테니 1권만 있어도 이 곳을 즐기기엔 충분한 양이다.

 

 

 

바다위에 동동 떠다니는 귤이 많이 불어있다.

주변에 뭔가 날아다니고 있는 걸 보니 저렇게 소금에 찌든 녀석이라도 뭔가 흡수할 게 남아있나 보다.

 

 

 

날씨는 덥지만 하늘이 좋아질 때면 카메라를 들어 주위 풍경을 담으며 걸어간다.

평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라 적지 않은 집이 산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풍경이다.

부산이나 나가사키와 비슷하지만 이 쪽은 그 둘에 비하면 사실상 평지가 없는거나 마찬가지.

 

요즘엔 이쪽 지역 삼나무가 크고 튼튼해서 본토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수백 년 전엔 정말 먹고살기 힘들었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홀로 여행의 즐거움이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행자의 심기 살필 필요없는 느긋함에 있다고 본다.

이곳은 몇 안되는 관광지도 오후 5시 정도만 되면 거의 문을 닫아버리는 깡촌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재빨리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서둘러 길을 나서기 때문에 이미 이 부근엔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

 

본인은 처음부터 목적이란 게 없이 거니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이 곳에 왔기 때문에

밤이 되면 미친듯이 불탈 오징어잡이 어선의 전구를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좀 더 대인 친화력이 강한 성격이었다면 아마 새벽 오징어잡이에 함께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만큼은 여전히 힘들어서 그냥 이렇게 소심하게 사진이나 남기며 구경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떨어진 지 오래 된 듯한 자전거가 바다 속에 쳐박혀 있는 것도 신기한 볼거리.

새들 부분은 썩어 없어진 건지 누가 빼 간건지 모르겠지만 사라져 있다.

 

저런 모습만으로도 온갖 추측이 머릿속에서 난무한다. 처리하기 싫어서 버린 건지 우연히 빠졌는데 건지기 싫었던 건지.

고무는 왠만해서 썩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좋지 않을 듯 한데, 일본에서 이렇게 바다에 빠진 자전거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자전거하고는 나름 인연이 깊은 편이라 저렇게 본연의 목적에 벗어나 처박혀 버린 녀석을 보고 있으면 살짝 마음이 찡하다.

1년간 12000km 가까이 120kg 가까운 무게를 짊어지고 달려주었던 본인의 자전거는

펑크 한 번 나지 않고 타이어 교채 한 번도 없이 그렇게 달려주고도 여전히 현관 앞에서 조용히 대기중이다.

 

언젠가 분명 다시 한 번 그 자전거로 긴 여행을 떠날 날이 오겠지만 그건 꽤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일 듯.

그 때 다시 새들에 앉으면 2010년의 그 기억이 세포속에서 슬금슬금 깨어날 것이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긴 하지만 역시 일본은 일본인지라, 없는 공간에도 소박하게 꾸미는 습관은 여전한가 보다.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주택가를 거닐어도 현관 근처에 인형이다 꽃이다 해서 장식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라

이곳에서도 해풍의 영향을 받아가며 언뜻 난잡해 보이지만 소박하게 꾸며놓은 모습이 정겨운 느낌이다.

 

주택에 살았다면 본인 역시 저렇게 해 보고 싶지만 아파트에서는 식물들이 그렇게까지 생기가 있지 않아서 한계가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별장용으로 쓰고 있는 시골의 초가집 옆에는 각종 야채가 알아서들 신나게 자라고 있어서

틈나면 가서 뜯어와 쌈싸먹고 하는 것이 소소한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이즈하라 시내는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워낙 좁은 거리다 보니 단차를 만들어 놓으면 되려 공간 활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일 듯.

 

이런 시골이라도 도로 깔끔한 것은 여전해서 걸어다니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본의 투기 쓰레기 문제는 마을 안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산간도로 사이가 진짜 골치덩이.

장거리 트러커들의 숙식 찌꺼기들이나

재활용품이라며 마을에서 수집한 쓰레기들 중 돈 될 녀석들만 골라내고 나머지를 산간도로 옆에 던져버리는 악덕업자들 때문에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자전거 여행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 한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그 모습을 보면 일본도 안되는 놈들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랄까 이곳 대마도는 큰 공장도 없고 트러커들도 없어서 산간 도로 주변이라도 그런 쓰레기는 없으리라 예상해 본다.

 

 

 

규모는 작지만 어쨌든 관광으로 먹고사는 마을이다 보니 마을 정비에도 힘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모든 것이 낡았지만 관리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 이건 한국처럼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꾸면서도 관리는 개판인 것과 정 반대다.

 

작은 마을 둘러보기란 이렇게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정성을 들여서 마을을 가꾸고 있는가를 살짝살짝 엿보는 것에 재미가 있다.

보여주기 위한 모습보다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 여행의 재미인데, 사실 이 곳은 그 재미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고.

 

 

 

호텔이라고 이름붙이기가 어색할 정도로 낡은 건물들이 몇 군데 보인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누워 쉴 만한 호텔이 어디 있을까 둘러본다.

대마도는 본토에 비해 호텔이 비싸고 시설 낡았기로 유명한 곳이라 만족하기는 좀 힘들겠지만.

 

괜찮다 싶은 리조트형 호텔은 나같은 홀로 여행자들이 도달하기 힘든 언덕배기에 위치해 단체로 손님을 실어나르는 구조라

아무래도 본인과는 인연이 없다. 그냥 대충 이 곳 시내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십여 명쯤으로 구성된, 총천연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관광객 무리가 어딘가의 골목에서 튀어나와 이동중이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을 따라 어디론가 서둘러 가고 있다. 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숙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인 듯.

한국 사람들 돌아다니는 수를 보니 잘못하면 농담이 아니라 숙소 못 잡고 노숙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속도를 올려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호텔이라 붙여놓은 건물 대부분이 도저히 호텔로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