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D3'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10.05  성묘 2
  2. 2009.10.03  추석의 즐길거리 6
  3. 2009.10.02  히로시마 여행기 6편 - 고양이, 여행의 동반자 8
  4. 2009.10.01  히로시마 여행기 5편 - 쿠레, 강철의 고래와 밀실공포증 4
  5. 2009.10.01  히로시마 여행기 4편 - 쿠레, 먹을만한게 없어 6
  6. 2009.10.01  히로시마 여행기 3편 - 쿠레, 관광이 아닌 여행 6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서로 떨어진 공동묘지에 잠들어 계십니다.
한쪽이 너무 일찍 떠나셔서요.


일본에서는 8월 15일날이 오봉'お盆'이라는 명절로,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날이라 여겨 집앞에 등불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등의 의식을 지냅니다.
가까운 가족이 세상을 떠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공양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일본 최대의 연휴, 축제기간으로 인식되기도 하죠.

저는 가족 4인 말고는(형수님 들어오셨으니 5인인가) 다른 일가친척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어서
명절때 지내는 차례라던가, 성묘라던가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쪽 어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시게 되니 예전과 같은 기분으로 성묘를 가진 못하겠더군요.
외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아주아주 한참 전에 돌아가셨으니 얼굴도 모르고.


서로 떨어진 곳에 잠들어 계시는 분들을 시간 간격으로 찾아뵙는 행사는 가는 길에서나, 묘 앞에서나, 오늘 길에서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마음은 진지하지만 그냥 그렇게 마시고 싶어하시는 술이나 잔뜩 따라서 뿌려드리고 사진이나 찍고 있죠.


사람은 누구나 나이들면 떠나가게 되어 있다지만,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겨우 괜찮은 척 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은 사람이겠죠.


본인의 문제라면야 근심 한 점 없이 떠나도 관계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게 인생이라는 것.


공동묘지 한 쪽에는 '관리비 미납묘' 경고판이 서 있는 곳도 많습니다.
묘석에는 '희망원 재소자'라고 적혀 있더군요. 살아온 날도 5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으면 편안히 누워있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쓴웃음으로 말하지만, 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죠.


전 묘를 남길 생각은 전혀 없고, 실험 재료로 쓰던 태워서 바다에 뿌리던 관심 없지만
추천하는 영화, 책, 음악등을 리스트로 만들어 놓고 혹여 기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것들이나 한번 감상해보라고 해 주고 싶네요.


생의 마지막 날을 구태여 잊으려 하거나, 미리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저 먼저 가시는 분들에겐 '지금까지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테니 걱정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이상의 어떤 좋은 말도 생각이 안나요.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란이 뜨거웠나봅니다  (7) 2009.10.07
팬더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4) 2009.10.06
추석의 즐길거리  (6) 2009.10.03
어느 멋진 공연  (4) 2009.09.28
히로시마 여행의 전리품  (4) 2009.09.24
성묘 :: 2009. 10. 5. 18:07 Photo Diary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흥겨운 만큼 즐겁지만은 않은 일들이 많은 추석명절입니다.
그래도 요즘엔 온 가족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빼앗는 녀석이 생겨서 사진찍는 맛도 나고 예전보다는 정겨운 느낌이네요.


바로 일찍 결혼한 사촌의 애기, 즉 저한테는 조카가 되는건가요?
올해초와 비교해서 참 괄목할만큼 성장한 느낌... 이어야 되는데 다른 사진이 올라갔네요. ㅡㅡ;


형님이 밤을 까시다가 발견한 튼실한 애벌레. 꼬물꼬물하게 움직이는게 한번 키워볼까 싶기도 하지만 기나긴 여정이 될 것 같아서 극락왕생 시켜줬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2살이 조금 덜되었다고 기억을 하고 있는 조카입니다. TAG 에서 설날을 검색하면 이친구의 2009년 2월 모습이 나오죠.
근 8개월만에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보이다니 참 사람이나 동물이나 애기 성장속도는 놀라울 따름이네요.


뭐가 불만인지 똥글똥글한 눈물을 흘려가면서 통곡을 합니다.
아마 익숙치 않은 환경에서 우락부락한 남정네들이 썩소를 날리며 접근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울던 똥싸던 아무튼 이 때가 제일 귀여울 땔겁니다.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겁니다. ㅡㅡ;


조금 안정을 찾으니 언제 그랬냐는듯 이리저리 집안 탐색도 하고 요구하는 애교도 떨어주고 합니다.
고양이 새끼를 몇번 키워보니 느끼는게, 정말 새끼때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는 행동이 아주 흡사하더군요.


V자도 그려주고, 말도 잘 알아듣는걸 보니 사람 두뇌의 폭발적인 발달과정은 참 신비합니다.
시키는대로 다 해주면서도 정작 눈빛은 무심한듯 시크한게 아이들의 재미있는 점이기도 하죠.


내년에 만날때는 이제 말도 더 잘하고 좀 더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겠죠.


숙모님 댁으로 가니 익숙했던 곳이라 그런지 금새 표정도 풀어지고 장난도 잘 칩니다.
음악을 들으면 살랑살랑 춤을 추는게, 앞으로 뜰지도 모르겠네요.


역시 우는 표정보다는 웃는 표정이 좋죠.


직접 음식을 들고 방으로 나르기도 합니다.


예민한 성격에도 잘 웃고 잘 춤추는걸 보니 참 여자애는 여자애다 싶네요. 2월달에 봤을땐 솔직히 성별 구별이 불가능했는데...



이랬거든요,


눈은 안 웃지만 애교를 부탁하면 저런 포즈도 지어줍니다.
뭔가 훈련받은 새끼 동물 같은 느낌이라 쓴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내년엔 훨씬 더 표정이 풍부해져 있겠죠.


부탁받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애교포즈를 지어줍니다. ^^


먹는것도 안가리도 잘 먹어요. 하긴 설날에도 죽죽 찢은 김치를 잘 먹더군요.


언니들한테 먹여주기도 하고


지난 번 벌초때 한번 봤다고 좀 더 친하게 굴어주는 형님한테도 한조각.


공손한 인사까지. ㅡㅡ;


뜯기 힘든 곶감같은것도 잘 뜯어먹더군요.


어떻게보면 추석 사진보다 이 녀석 사진이 훨씬 많아져버렸습니다.
가문의 귀염둥이를 독차지했던 삼촌네 애기들은 이제 초딩, 중딩이 되어벼렸는데 말이죠.
다음 타자는 누가 될지 기대됩니다.


뭐, 당분간은 이 녀석의 아성을 무너뜨릴 상대가 나타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가문이 모르는 심각한 속도위반을 한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워낙 마르고 동안이라 언니 동생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이미 30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촌동생과도 한컷.


물론 우는 사진이나, 타이밍이 이상해서 해괴한 사진도 많이 나왔지만 자라나는 조카의 미래를 위해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내낸엔 무슨 애교를 부릴지 기대됩니다. 언젠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 때가 오거든요.
(그 중간에 돈으로 매수하면 애교부려주는 시기도 있습니다. ㅡㅡ;)


언제나같은 일상이지만 일 끝나면 집에서 보이차 한 잔. 얕은 심도가 형님의 프라이버시를 살렸습니다? 그래도 보일건 다 보이나...

'Photo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팬더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4) 2009.10.06
성묘  (2) 2009.10.05
어느 멋진 공연  (4) 2009.09.28
히로시마 여행의 전리품  (4) 2009.09.24
서울역 앞의 공연  (13) 2009.09.19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골든위크라 빈 방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아주 쉽게 저렴한 구석탱이 비지니스 호텔 하나를 잡았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면 보험용으로 예약해놓은 호텔도 필요없었는데.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다른 손님은 방이 없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나보다.
새벽3시에 기상 -> 버스1시간 타고 공항 -> 비행기1시간30분 -> JR 40분 + 30분 + 30분
걸어다니는 것보다 뭔가를 타고 가는게 묘하게 더 피곤하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최대한 숄더백을 가볍게 한 후 침대에 누워 TV 를 봤다.
확실히 철저한 개인공간은 가장 신속하게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나보다.

시간은 이미 유명한 장소를 둘러볼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일본에 오면 항상 들르는 서점과 전자상가에서 눈요기나 해 볼까 생각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히로시마시의 특징이라면 역시 노면전차 히로덴(広電)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고, JR 전철보다 느긋하게 도시를 둘러보며 움직인다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1일 패스나 2일 패스를 끊으면 든든하게 돈값을 하니 교통료 줄이는데도 일조를 하는 녀석.
이 길다란 노면전차가 어떻게 복잡한 도로를 따라 움직이나 싶었는데, 전차 연결부분이 저렇게 이동방향에 따라 스르륵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저곳에 발을 얹어놓으면 회전에 따라 슬금슬금 움직이는게 참 재미있다.

맞은편 의자에서 백인 여성이 똑같이 재미있는듯 저곳에 발을 얹어놓고 웃는다.
나만 어린애틱하게 노는게 아니었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원래 슬쩍 둘러보는 상점가나 유흥가로는 거대 체인 파세라 백화점이나 혼도리(本通) 상점가가 있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전자기기와 애니메이션 관련상품에 관심이 많은 고로 전자상가 데오데오가 있는 카미야쵸(紙屋町)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자상점가와 애니메이션 관련 상가는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경향이 강하다.
애니메이션 오타쿠와 전자기기 오타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이건가?

이곳의 애니메이트는 아주 작은 규모라 거의 볼건 없었다. 여긴 애니 오타쿠들에겐 시골 촌구석이다.
데오데오에서 신형 PS3 구경도 좀 하고, 홈시어터와 아이팟 구경도 좀 하고, 국내 발매되지 않은 DVD도 좀 구경하고.
옆의 서점에서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聽け)'를 한권 사고 이리저리 책들을 둘러봤다.

저 책은 대학교때 읽던 원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통에, 이번이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구입한 것.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인가 저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터라 직원아가씨한테 위치를 묻기가 애매해서
'하루키의 데뷔작 말인데요,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어버렸더니 이 아가씨가 하루키 데뷔작이 뭔지 모른다. ㅡㅡ;
일단 하루키 작품이 모여있는 구간에 데려다줘서 어렵지않게 찾았지만 아가씨가 조금 쑥쓰러워하는 것 같아서 괜히 이쪽이 미안해졌다. 도서관 사서도 아니고 서점에서 일한다고 다 문학매니아는 아니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싸구려 규동으로 살짝 배를 채우고, 호텔에 돌아가서 먹을 KFC 치킨 한봉지 손에 들고 히로덴을 기다린다.
이런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밖에서 배부를 정도로 먹지 말고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따로 장만하는게 좀 더 이득보는 기분이다.
어차피 호텔에서 TV 보면서 한참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입이 심심하지 않게 먹어주면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는데 좀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더라.

히로덴의 분위기를 찍으려 셔터를 눌렀는데 콧구멍에 손을 가져가는 학생이 파인더에 들어와 버렸다. T_T 결코 일부러 찍은건 아니니 이해해주길.
불행중 다행이라고 조리개를 엄청 개방해서 찍었더니 약간의 아웃포커싱 효과는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정된 모든 일정을 지친 몸으로 소화하고
적당한 먹을거리를 손에 든 채
천국과도 같은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기다릴 때의 뿌듯함.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히로덴은 굉장히 신형 전차와 오래된 구형 전차가 혼재되어있다.
들어갈 때는 그냥 아무 입구로나 들어가면 되지만
나갈때는 승무원이 있는 맨 앞쪽과 뒷쪽 출구로만 나가야 한다.

승무원이 검사는 하겠지만 사실 중간 입구쪽으로 내려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정도는 된다.
인력적으로나 승차요금 환수 능력으로 보나 꽤나 비효율적인 운행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돈 많은 선진국임을 은근히 내세우는 듯한 느낌이라 조금 부럽기까지 하다.

예전에 엄니께서 서울 지하철의 바뀐 발권 시스템에 아주 분노하시며 역무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대구 지하철처럼 회수용 토큰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었음에도
보증금을 더 내고 구입해서 다시 카드를 반납하며 돈을 돌려받는다는, 어이없을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을
뒤늦게 도입했다는 사실을 보면, 조금 구식이고 인건비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 나름의 좋은점이 있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애초에 서울 지하철의 개떡같은 발권 시스템은 거대한 커미션 따먹기의 농간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앞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들고 오는데 보도 옆 수풀에서 뭔가를 와득와득 뜯어먹는 길고양이를 발견.
내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어딜 가나 이 녀석들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앵앵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새끼 고양이.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은 길고양이의 대량 서식처인 듯 하다. 어림잡아도 6~7마리가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사실 치킨같은거 주는건 좋은 일이 아닌데, 비교적 대접을 잘 받는 일본의 길고양이 중에서도 대도시 역 주변에 서식하는 애들은 꽤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터라
이런거라도 없는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살점을 조금 떼어줬다.

사진을 잘 보면 보이겠지만 이녀석도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반가운 이 녀석들은
마치 내가 가려는 길을 앞서서 도착한 후 나를 반겨주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준다.
크게 말다툼이나 의견차이를 보일 일도 없이 적당히 냉정한 개인주의를 즐겨주는 시크한 친구같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말 애처롭게 울던 새끼고양이가 아쉬운듯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미안한데 나도 꽤 가난해서,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하거든. T_T

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치킨을 좀 뜯고 뜨거운 욕조에서 몸을 푹 고은 후 침대에 누워 TV를 틀었는데
내 머릿속보다 내 육체가 더 힘들었는지 30분도 보지 못하고 자동으로 눈이 감겨버렸다.

원래 일본에서 심야 TV 보는것도 여행의 낙중 하나였는데, 피곤하니 어쩔 수 없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 해상자위대 박물관 '강철의 고래관(てつのくじら館)'

놀랍게도 이 해상자위대 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볼거리는 야마토 박물관 못지않게 많은데 입장료가 없다!
헝그리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여, 이곳을 놓치지 마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늙으막한 노인장 한분이 입구에서부터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부분의 전시장이 매우 어둡고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사진찍을때는 고생 좀 한다.

전시관의 대부분은 일본 해역을 위협하고 있는 기뢰의 위험성과 제거방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잠수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일본 자위대의 잠수함 건조능력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폭의 악몽만큼이나 일본을 오랫동안 속썩인 것이 일본 근해에 무수히 뿌려진 수중 기뢰들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 후, 일본 열도의 거의 전 해역에 무자비할정도로 배치된 기뢰들 덕에 일본은 해상 통로가 거의 봉쇄되다시피 했고
무기보급뿐 아니라 통상무역조차도 불가능하게 된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사실 그 때쯤 이미 전쟁은 결판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쥔 미국이 그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해져버린 결과를 제공하고 말았던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탈리아제 기뢰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러시아제 기뢰도

일본 근해엔 온갖 나라들이 '세계 기뢰박람회'를 연일 개최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종전 후에도 30년이 넘도록 기뢰에 의한 피해는 계속되었고, 덕분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력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30여척의 기뢰제거함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뢰는 그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제거법도 다양한데
무인 또는 유인 잠수정으로 기뢰의 위치를 파악한 후 부표를 띄우는 등의 방식으로 기뢰의 위치를 고정시키는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물론 소리에 반응해 폭발하는 음파기뢰처럼 엔진을 사용하는 잠수정으로 다가갈 수 없는 경우에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러한 이동식 간이부표 역할을 하는 녀석들을 기뢰제거선 뒤에 쌍으로 달아놓고 바다를 훑는 방법을 이용해 위치를 식별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치가 발견된 기뢰는 잠수원이 직접 뇌관을 해체하기도 하고, 멀리서 이런 개틀링으로 폭파시키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계 곳곳에서 지뢰라는 악독한 전쟁무기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처럼
수중기뢰 역시 전쟁과 상관없는 일반인을 휘말려 들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무자비한 무기인 만큼
위치가 파악된 기뢰를 인정사정없이 박살낼때의 성취감은 해상자위대 안에서도 특별한 것이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지형적 특성상 지뢰보다도 작업위험도가 높은 기뢰제거다 보니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갑옷에 가까운 안전장비를 갖추고 들어가도 기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기뢰 제거에 혁혁한 전과를 세운 이 쌍끌이 부표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운 나쁘면 이렇게 개발살이 나버리기도 한다. 하물며 사람이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 역사상 최대규모의 기뢰제거작업작전이 실시되던 도중 기록보관용으로 사용되었던 니콘의 F3 HP (High Eye Point) 모델.
애초에 이 모델의 수중용 뷰파인더는 이를 위해 개발된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의외로 일반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호평이었다고 한다.
일촉즉발의 바다 아래에서 3만 9천장이 넘는 컷수에도 꿋꿋히 제 역할을 다 하는 니콘 카메라의 바디 신뢰성은 정말 온갖 칭찬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디지탈로 넘어오면서 결과물 못뽑아주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니... ㅡㅡ;
이번 히로시마여행에 D3 를 갖고 갔는데, 이미지 퀄리티에서 만족하진 못하겠다.

아~ 필름 쓰고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뢰제거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다음으로 나타나는게 잠수함의 구조와 역사.
특전 유 보트나 크림슨 타이드나 K-19, U-571 등의 잠수함 영화를 참 좋아하는게
장님들의 싸움이라 일컬어지는 잠수함이라는 전쟁 무기는, 옆에서 구경하기에도 살떨릴만큼 폐쇄적 공포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에.

물론 실제로 들어가서 싸워보라고 하면 죽기 바로 다음으로 하기 싫은 일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간을 아껴야 하는 잠수함에선 이렇게 식탁 의자속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등의 자잘한 아이디어가 절실히 필요했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워있어도 이마가 윗 침대에 닿을 만큼 아슬아슬한 높이를 유지했던 것도 결국 공간의 효율적 활용때문에.
유람선이 아닌 이상 잠수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투함은 통로든 뭐든 좁게 만들어져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표현 못하는게 전함과 잠수함 내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건 내 사진찍는 능력이 허접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능력이 허접하다는 주장에 반박하려는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이렇게 찍은 사진이란 의미.
찍으면서도 '화벨 보정해서 잘 나오게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그럼 이런 구경거리를 만들어놓은 의미가 없으니.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느냐 하면. 잠수함 내부에는 낮과 밤을 자각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므로, 밤엔 저렇게 붉은 등을 켜서 승무원들의 바이오리듬을 유지하도록 한 것.

어느 센스넘치는 사람께서 이러한 야간등 아래서 먹는 야식 메뉴를 정성스럽게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말 감탄 감탄.
원래 사람에게 어떤 상황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위해선 일단 음식과 결부시키는게 효과가 제일 좋기 때문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짜관람인데도 상당히 볼만한 구경거리로 넘치는 곳이라 기분좋게 나가려고 하는데 드디어 이 박물관 비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건물 밖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던 잠수한 아키시오(あきしお)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이 잠수함은 5년 전까지 실제로 취항중이던 진짜 잠수함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교용 화장실도, 수백 명의 밥을 책임지는 주방도 조그맣기 그지없다.
실제 잠수함의 통로는 왠만한 남성 둘이 마주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디 좁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육지에 올라와 있는 녀석이라도 그 안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이녀석이 물 속에 들어있을때를 생각하면 참 잠수함이란 무기는 꽤나 비인간적으로 설계된 녀석인듯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 잠수함이라서 이녀석은 입장료가 필요한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무료다.
그도 그럴것이 내부의 모든 장비가 실제 사용하던 것이다 보니 일반 관람객이 구경할 수 있는건 선두 중앙부분의 통로 조금과 잠망경이 있는 조타실 일부밖에 없는 것.

특히 조타실쪽은 실제 군인이 직접 경비까지 서 가며 '사진촬영엄금'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만큼 보안에 신경쓰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잠망경을 실제로 써 볼 수는 있었는데, 엄청난 밝기와 선명함을 가지고도 정말 멀리 있는 쿠레 조선소 내부에 정박해 있는 배가 한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렌즈를 만져보신 분이라면 이런 고배율에 이런 밝기가 가능이나 한가 싶을 정도로 고성능이었다. 군용이니 당연하겠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정에 없었던 공짜 구경까지 실컷 하고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이건 정신적 욕구의 충족을 가리키는 고도의 은유법이라고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을듯) 히로시마시로 돌아가는 JR 전철을 기다린다.

날씨가 28도 정도로 꽤나 더웠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 한끼 못먹고 지금까지 돌아다니고 있으니 꽤나 채력이 달린다.

이놈의 카메라와 렌즈 무게만 3kg 인데, 전자책, 여권 등의 필수서류를 우겨넣은 숄더백은 내 체력을 소모시키는 큰 원인으로 급부상중이다.

원래 오늘은 그냥 공원 벤치 아무데서나 자거나, 만화까페 같은 데서 싸게 때울 예정이었지만 지금 히로시마로 돌아가면 4시쯤.

지금부터 엎어질 수는 없는 노릇인데, 짐 정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구경거리를 찾아서 나가려면
그 전에 체력도 좀 회복하고 싶고, 뜨끈한 물에 목욕도 즐겨야 이 피곤함이 가실 것 같다.
적당히 싼 비지니스 호텔이라도 찾아볼까 싶네. 하루 이틀 해 본것도 아니니 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고(思考)를 강요하는듯한 전시관을 힘겨운 걸음으로 빠져나간 후의 마지막 코스는
수고했으니 한숨 돌리세요라고 맞이하는 듯한 느낌의 과학관이었다.

쿠레는 예전부터 조선소로 유명했던 곳이니 자신들이 만들어온 놀라운 업적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조선능력으로 보자면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거의 없는데
내가 무지해서인지 한국에서는 2009년 5월에 거제에 준공된 조선 테마파크 하나를 빼고는 도통 관련 상품을 찾을 수 없다.

관광상품이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희귀한걸 겨우 발견해서 개발하는게 아니라
사실 별것 아니고 흔해빠진것 처럼 보여도 그걸 잘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라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사의식 고취라는 분야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실은 중국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족성은 세계 최고일까나) 비슷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거제 조선 테마파크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수백년전 우리 민족의 조선 역사 인형들과 달리 이곳 쿠레 야마토 박물관은
대부분이 현대적 조선기술에 대한 가벼운 설명과, 아이들을 위한 체험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퍼즐맞추기과 비슷하게 배를 하나 조립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었는데,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해 지원사격에 나선 부모도 꽤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에 일본 TV 에서도, 정보소개 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파도를 만드는 기계'가 열심히 파도를 만들어 보인다.
이걸 신기해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도 해 봤는데,
고민 도중 '이런걸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나이먹었다는 증거'라는 결론에 봉착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람의 힘으로 공을 위쪽의 골에 넣는 재미있는 실험기구였는데
사진을 찍다보니 뭔가 형이상학적인 그림이 나와버렸다.
마치 올라가는 공의 궤적이 연기로 보이는 듯한 모양이지만 잘 보면 사실 뒤쪽의 모형 배가 빛에 반사된 모습.

찍고나서 10초 정도 내 찍사로서의 능력이 드디어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류까지 담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나 싶었다.
정말 그랬다면 당장 진기명기에 달려가서 돈 좀 벌어볼 수 있었을텐데.

당첨될것 같은 로또가 날 속인 기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쨍쨍한 햇빛때문인지 라운지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이곳 박물관에서 가장 한산한 곳.
음식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고, 담배도 피우지 말라고 했으니 더더욱 사람들이 오지 않았겠지.
라운지에서 볼 건 저 건너편 쿠레 조선소에서 작업중인 거대한 선박의 모습과
박물관 전력의 상당부분을 보충해주고 있다는 태양열 발전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시간 반 남짓한 야마토 박물관 구경은 다 끝났다. 시간은 오후 1시.
예상보다 쿠레에서의 일정이 조금 일찍 끝난것 같은데, 아직 히로시마로 돌아가기엔 JR 전철비가 아깝다.

점심시간이고, 새벽부터 거의 못먹은 터라 뭐라도 좀 집어넣고 싶은 기분이긴 했는데
마음에 들만큼 적절한 가격에 먹을만한 게 없다.
여행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이처럼 재정문제와 배고픔이 현실적으로 결합할 때.

역시 저 건너편에 보이는 잠수함이 신경쓰이니 한번 가보기나 해야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야마토 박물관에 있는 어떤 전시물보다 더 큰 잠수함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마토 박물관과 저 잠수함과는 1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 엎어지면 지나쳐버릴 거리였는데
그 길 사이에도 야마토 박물관의 전시물이 놓여 있었다.
아마 건물 안에는 도저히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으니 밖에 전시해 놓은거겠지.

이 과도하게 거대한 기둥은 2차대전당시 띵띵거리며 놀고먹기만 했던 전함 무츠(陸奧)의 16.1인치 주포를 그대로 옮겨온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함 무츠는 전함 나가토(長門) -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서는 나가몬으로 나오기도 하는 캐릭터명이라 친숙하다 - 와 자매함으로, 개조후 만재배수량 4만 3천톤급의 중대형 전함.

밸런스 잘 잡힌 적절한 성능이었는데, 당시 일본 군부의 얼빠진 상황판단능력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전투에 투입되지도 못하고 항구에 정박만 하다가
1943년 원인모를 폭발로 항구에서 그대로 바닷속 구경하러 잠수해 버렸다.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고로 계속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 바닷속이 더 편안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그랑 블루를 상상해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츠의 후미 스크류. 위쪽을 자세히 보니 뭔가 문자가 적혀있다.
판독할만한 거리도, 능력도 안되는고로 그냥 신기해서 찍어봤다.
'요즘애들 참 버릇없어'라는 느낌의 글은 아닐려나. 기원전 그리스에서부터 내려오던 인류 보편의 의식이 이곳에서도 발휘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가는걸로 봐서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는 장식물은 아닌것 같다.
가까이 갈수록 그 크기에 놀라는데, 이건 아무래도 축소 스케일이 아니라 1:1 스케일의 잠수인듯 하다.
바로 옆에 야마토 박물관이 있는데, 뭔가 경쟁사의 노골적인 프로모션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앞까지 와보고서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일본 해상자위대 박물관.

야마토 박물관보다 좀 더 매니악한 요소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에 조금 흥미가 동했다.
출발 전부터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히로시마는 '여행'이 가지는 새로운 것과의 조우에 따른 기쁨을 주는 것은 여느 지역과 동일하지만
그저 감탄하고 즐겁게 웃어 넘길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는 그런 류의 여행은 되지 못했다.
좀 더 깊게 생각하고, 좀 더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니 딱히 문제될 건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야마토 박물관이라는 곳은 그런 껄끄러운 감정을 증폭시키는덴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태평양전쟁때 쓰였던 일본군의 무기들이 1:1 스케일로 전시되어 있으니.
크기문제로 야마토만은 1/10 스케일로 축소되었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1:1 스케일이라 그 현실감이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3미터가 넘는 폭약덩어리가 그 거대한 전함이라는 구조물을 바다로 가라앉혀 버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그나마 실감이라도 덜 나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우 사람 한둘이 들어갈 정도의 좁고 기다란, 어뢰를 닮은 이 잠수정은
사실 어뢰가 맞긴 맞다. 단지 그 속에 폭약과 함께 사람이 들어간다는 사실만 빼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자살 어뢰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지급했다는 자결용 단도.
과거 일본의 무사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에 대한 고결한 동경심이란 감정을 그럭저럭 이해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역으로 태평양전쟁이라는 무가치한 탐욕과 광기만으로 이루어진 어리석은 행위에서도 그 고결함이 악용되었다는 사실이
명분없는 힘에 힘없이 끌려다니며 자신을 숭고한 희생자라고 착각하던 당시의 수많은 일본인들을 애처롭게 만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애초에 태평양전쟁당시 일본의 무기 대부분이 탑승자의 안전보다 전투능력의 효율성을 우선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조종석에 방탄판조차 달지 않은 가녀린 종이쪼가리 전투기 제로기가 하늘의 맹수로 활약했던 전쟁 초기 6개월이란 시간은
에이스 파일럿들의 생명을 깎아가며 이루어낸, 미래가 보이지 않는 승리의 시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체가 너무 가벼워 선회능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무리한 가속시 기체가 부서져 버릴 정도의 약골이었던 제로기는
결국 탄탄한 장갑을 바탕으로 고속 급강하 일격후 탈출식 전술을 구사하는 후기 연합군 전투기들의 안전한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아마 에이스 파일럿들이 죽어가서 계기판 하나 제대로 볼 줄 모르는 14~16세의 학도병을 자살폭격용 제로기에 태울 때도
파일럿의 생명보다는 응용 가능한 전술력이 줄어든다는 사실에 군부의 괴물들은 안타까워하지 않았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긴 전쟁에 인간 중심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리는 없고,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 일본이나 연합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는 세계평화라는 허황된 미사여구로 수식된 연합군과 달리 대놓고 국민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한 마리의 거대한 야수였다.
제로센의 엔진은 기름이 아니라 일본인의 피를 원료로 사용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마토의 위용은 꽤나 흐뭇하게 관람하는 일본인들이 많았지만
이곳 전시관에서 그들의 표정에는 예전과 같은 미소와 여유가 없다.
그들은 안타까워 하는 것인가 부끄러워 하는 것인가.

연합군이나 일본군이나 전쟁에 참가한 족속들은 전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땅속 전범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자신과 함께 비난당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면 결국 자신의 타락을 인정하는 패배한 쓰레기가 될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그 와중에도 미소와 함께 V자를 그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젊은 연인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쿨하다. 내가 동경하는 삶의 방식일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그 정도로 병신이 되고 싶진 않네.
똑똑한 아나키스트라면 술자리의 안주거리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치가 닫히고 물 속으로 들어간 자살 잠수정 안의 승무원들의 심정보다
지금 이 곳에서 그들의 옛 모습을 응시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더 궁금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마 나라면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를 저기 태운 괴물들에 대한 분노로 불타오르겠지.

그런데 실상 나는 쥐새끼도, 28만원짜리 살인마도 처리하지 못하고 그저 울분만 터트릴 뿐.
아마 당시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처럼 그저 떠밀려 흘러다니는 무능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관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여행도 나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