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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1.28  엄니와 함께 - 오사카 14
  2. 2012.05.20  킨키 방황 - 예상못한 축제 16
  3. 2010.02.02  오사카 여행기 5편 - 라멘과 전망대 18

 

 

엄니가 퇴직하시고 좀 심심해 하셔서 저하고 가볍게 근처 오사카 정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일본쪽으로 가면 가이드 필요없이 저하고 다닐 수 있어서 말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엄니는 2월 초에 부부모임 동창회에서 대만여행 간다는 사실을

제가 오사카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좀 있다 또 나가십니다.

 

더더욱 아이러니하게도 저 역시 작년 10월부터 2월에 홋카이도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눈축제 구경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거기서 취직하신 대학원 졸업생분과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엄니나 저나 전혀 갈 필요가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뭐, 자식하고 둘이서 해외여행 나가는 건 평생 처음이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불행히도 오래 직장을 비울 만한 여력이 없어서, 그냥 2월에 대만 함께 가시는 걸로 결정했네요.

 

대구에서 부산 김해공항으로 당일 버스타고 갈 예정이라 까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니가 커피를 너무 조금 드셔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음료수는 하나만 시켜도 될 뻔 했네요.

 

 

 

직장생활 당시 시간에 쫓기는 출퇴근을 워낙 많이 경험하신 엄니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가서 기다리는게 낫지 늦게 가서 허둥대기는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별로 볼 것 없는 조그만 김해공항에도 탑승 2시간 반이나 전에 도착해서 미리미리 체크인을 해 버렸네요.

 

김해공항은 정말 아담해서 눈이 번쩍번쩍하는 인천공항의 면세점 물건들 구경할 수는 없지만

청사 내부에 재미있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습니다.

엄니는 한참동안 '왜 여행가방이 이렇게 여기저기 세워져 있지'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는군요.

 

 

 

오사카를 기점으로 하는 저가항공인 피치항공을 사용하는 여행입니다.

첫날은 저녁 7시가 넘어야 겨우 오사카 시내에 도착할 것 같지만, 저가항공이니 감내해야 할 듯.

그래도 난바역에서 도보로 이동가능한 숙소인데다 도톤보리라는 밤의 거리까지도 걸어서 갈 수 있으니

피곤한 여행 첫날 저녁은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엄니나 저나 여행 전날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세우는 성격이라

고속버스 -> 비행기 -> 전철 등 하루 5시간 정도를 이동하는데만 소모하는 첫 날 여정은

항상 머리가 지끈거리는 힘든 날입니다만, 그것도 이제는 익숙해 질 만큼 많이도 나가다녔군요.

 

 

 

피치항공은 물조차도 사 먹어야 하는 곳이라 남은 시간동안 점심식사를 합니다.

오사카에서 뭐 먹으러 나가려면 적어도 저녁 8시는 넘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죠.

 

한국의 공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어서 심히 불안했지만

배 속에 뭐라도 넣어놔야 하니 일단 푸드코드에서 적당히 주문했습니다.

엄니는 타이식 볶음국수였나 어쩌구였나 주문하고, 저는 뚝배기 된장국 비슷한거 주문했습니다만...

역시 돈값은 거의 하지 못하는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일 뿐이었네요. 기대하지도 않긴 했지만.

 

식사 후에 도착층 쪽으로 내려가 귀국시 바로 타고 갈 버스표를 예약하고 있는데

그 쪽에는 번햄즈 버거였나 크라제 버거였나 아무튼 좀 비싼 버거집이 있는걸 봤습니다.

차라리 그걸 먹는게 좀 더 만족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했죠.

 

 

 

이륙이 연착되는건 특히 저가항공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사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예정시각보다 20분쯤 지연되었지만,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워낙에 가까운 거리라

비행기 처음 타는 사람이라면 그 첫경험의 황홀함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금새 착륙해 버릴 테죠.

 

오랜만에 딱 해가 질 무렵쯤 하늘 위를 달리는 비행기를 탄 덕에

푸른 하늘과는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은 만족할만 하군요.

 

 

 

기내 쇼핑 팜플렛을 보니, 칸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난바까지 가는 특급열차인 '래피드 a'를

원래 1500엔에서 1000엔으로 판매한다는 좋은 광고가 있어서 그거 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1시간 15분의 짧은 비행시간동안 기류가 불안정한 곳이 많아서

기장 명령으로 승무원들도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게 되었더군요.

이런 경우엔 기내 쇼핑도 자연적으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경험했습니다.

 

두 장만 사도 만원이나 절약할 수 있어서 언제 쇼핑이 시작되려나 매우 조마조마했는데

결국 기류 문제로 인해 쇼핑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오사카에 도착해 버렸네요.

 

 

 

일단 비행기 내리면서 구입할 수 있는지 한번 더 물어보기로 하고, 해지기 전의 창밖이나 담아봅니다.

노파심에서 적지만, 창쪽 좌석은 엄니에게 드렸고 저는 카메라를 쭈욱 뻗어서 한손으로 담은 겁니다.

 

엄니는 오사카도 외국이라고 추우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시는데

오사카나 쿄토 등의 지역은 한국에서도 따듯한 편인 대구와 비교해도 겨울 평균기온이 더 높은 곳이라

그냥 입던대로 입고 가도 된다고 말씀을 드려도 별로 효과가 없네요.

 

어느 가족이나 다들 그렇겠습니다만

제가 한국의 새집증후군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운 겨울이라도 환기 꾸준히 해야 독성물질이 빠져나간다고 한참 설명하면

그냥 듣고 계시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응응거리시다가, 며칠 뒤 TV에서 똑같은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오면

깜짝 놀란 얼굴로 저한테 달려와서 새집증후군이란 게 그런 거라서 우리 환기 열심히 해야겠다고 말씀을 하시곤 하죠.

 

아무튼 금새 착륙하고 내리려는데 옆좌석 밑에 면세점에서 구입한 듯한 담배 두 보루가 떨어져 있습니다.

불쌍하게도 누군가가 잊어버린 모양이네요.

 

저는 팔면 밥값 정도는 나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니는 남의 것 가져가면 밤에 잠이 오겠냐고 하시며 승무원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저야 뭐 담배 두 보루 정도라면 밤에도 잠 잘만 하겠지만 어쨌든 얌전히 승무원에게 인계하고 내렸죠.

 

래피드 a 할인권 좀 구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공항 터미널에서도 할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거긴 1000엔이 아니라 1100엔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땅을 치고 후회할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오는 여행이라 좀 한산할 줄 알았더니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이 많은지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칸사이 공항을 점령중이더군요.

 

일단 앞으로 이용할 칸사이 스루 패스를 구입한 후 래피드 a 에 탑승하러 이동하는데

광장 한편에 세계의 명화가 묘하게 전시되어 있어서 한번 가 봤습니다. 재현도는 상당한데 대체 뭘로 만든건가 싶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건 다 쓰고 회수한 전철 티켓을 모아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회수권의 검정 마그네틱 부분과 앞쪽의 노란 부분을 꾸준히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 보이더군요.

 

이 작품에는 131,516장의 티켓이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 전시회 너무 좋더군요. 화려함보다 친근함이 앞서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 혼자라면야 이런 특급열차 탈 필요 없지만 엄니와 함께니까 최대한 편한 이동을 선택합니다.

사실 이 시간에 혼자 온다면 첫 날은 숙소도 잡지 않고 넷까페 같은데서 새우잠이나 자고 있겠죠.

 

무사히 열차를 탔는데 앞 옆 뒤 거의 대부분이 한국 아니면 중국인 관광객입니다.

대학생쯤 되어보이는 젊은 아기들 서너 명이 즐겁게 한국어로 이야기 중이든데

남정네 여럿이 오사카 와서 뭘 즐겁게 여행하고 갈런지 궁금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전 남하고 여행간 적이 혼자 여행간 적 보다 훨씬 적어서

단체 여행의 매력이란 거 아직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편안하게 난바역에 도착해서 잠깐 걸어 숙소에 짐 풀어놓고

그냥 하루 보내기는 아쉬워 도톤보리(道頓堀)로 이동합니다. 대낮보단 야경이 더 괜찮은 전형적인 도심지죠.

 

인공 하천을 중심으로 조성된 상가임에도 서울의 청계천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 환락의 거리입니다.

저희 집안 사람들의 특징이, 옆에서 혜성이 폭발해도 미간에 주름 하나 변하지 않고 흐음 하는 성격이라

하천 양쪽에 끝없이 늘어선 욕망의 네온사인을 떡하니 보여드려도

지금 엄니가 초상집에 온 건지 여행 즐기러 온 건지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는 보살의 은은한 표정으로 일관하시더군요.

 

제가 즐긴다기 보다는 엄니 가이드 역할로 따라온 터라 이렇게 되면 장소 선택이 잘못된 건가 고심하게 됩니다.

 

저녁이 늦었고 해서 술안주 비슷한 자극적인 먹거리가 많은 도톤보리의 음식점보다

적당히 한끼 때우고 슈퍼에서 간식거리나 사 가자고 하셔서 그냥 요시노야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서민들의 휴식처인 요시노야인데, 어째 주위에 앉아있는 사람이 전부 한국인 관광객이더군요.

더 웃긴건 영어로 어물어물 뭔가 주문하는 한국인과, 그 주문을 어설픈 일본어로 받아드는 중국인 알바의 시트콤이었습니다.

 

매우 심란한 일본어를 어색하게 발음하고 있어서 오히려 영어와 일본어의 혼합 의사소통보다

제가 일본어로 말하고 종업원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그 순간이 더 알아먹기가 어려운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네요.

 

 

 

도톤보리 요시노야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인지

역대 제가 먹어본 백여 군데의 요시노야 지점중 단연 최악의 품질을 보여줬습니다.

규동 소스도 제대로 뿌리지 않아서 밑에 흰 맨밥이 떡하니 늘어붙은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그릇을 점장 머리에 던져주고 싶을 정도더군요.

 

워낙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규동집의 품질마저 개판이 되어버렸습니다.

밝고 해피하고 사교성 좋은 사람들에게는 밤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곳인데

인류의 미래와 진리에의 탐구에 여념이 없는 진중한 저희 모자는 그냥 밝은건 전구고 어두운건 사람이구나 하며 걸을 뿐이었습니다.

 

 

 

도톤보리가 그렇게 일자무식 먹고 마시는 곳만은 아니어서

상당히 오래된 카부키 극장이라던가, 문화 예술적인 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긴 합니다만

외국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곳이고, 엄니께 그걸 추천할 수도 없어서 조금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일본의 상가 거리는 꽤나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볼거리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 상인들이 이곳에 와서 이렇게나 번창하고 있는 개인 상점들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사진 옆의 멍청한 용이 서 있는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매우 유명한 킨류 라멘입니다.

대체 어떤 멍청이들이 오사카 가이드북에 꾸준히 저 가게를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라멘집 중에서도 레벨이 중하 정도로 떨어지는 곳이라 일부러 갈 일이 전혀 없는 곳이라고 생각.

 

얼마나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면 반찬으로 김치도 내준다고 합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부산사람과 닮았다는 말이 도는 이유가 이런 도톤보리의 풍경 때문이기도 하죠.

먹다 죽다(食い倒れ)라는 말이 오사카 사람을 나타내는 표현이듯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먹거리가 다 밀집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정갈한 회 요리, 코스 요리 등과는 달리

욕망에 솔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쓰러지기 위한 식당이 너무도 많습니다.

 

성격이 그렇지 않으니 동료들끼리 어깨동무하고 한 손에 맥주병 들고 웃고 떠들며 고기집 찾아다니는

그런 드라마같은 행동은 해 본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지만

이곳 도톤보리는 그나마 일본에서 그런 모습이 제일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사진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제가 카메라를 들던 말던 자기 갈 길을 가십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중 찍은 엄니 모습의 90%는 뒷통수만 나와 있네요.

 

엄니는 그걸로 아쉬워 할 성격이 아니니 저도 부담감은 없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 저 별다방에 들어가 새벽 1시쯤까지 책이나 읽으며 시간 보내다가

적당히 넷까페 찾아들어가 잠 좀 자고 나오는 그런 여행을 즐겼겠죠.

 

 

 

오사카가 일본의 제 2 도시이긴 하지만, 도톤보리를 걷고 있으면 항상 신기한 기분입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거대한 상권을 소화할 인적 물량이 유입되고 있는지 말이죠.

 

아무래도 20여년의 불경기를 겪은 일본의 입장상, 이 정도의 상권은 외국인 관광객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할 듯 합니다.

오사카에 이 정도의 상권은 도톤보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중국의 부유층은 요즘 그야말로 자기들의 세상이라고 어마어마한 자금으로 일본 관광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죠.

 

도톤보리는 항상 그렇지만, 오늘은 아무리 둘러봐도 한국인+중국인 관광객 수가 일본인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도톤보리에 오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글리코 전광판도 변함없이 한 장 남겨봅니다.

이 다리가 이 다리에 대한 설명은 예전 오사카 여행기에서 언급을 했으니 넘어갑니다만

프릴이 잔뜩 달려 풍성한 미니스커트에 인형같은 차림을 한 여식들이 한 잔 하고 가라고 바람을 불어넣고 있더군요.

 

젊은 남정네들끼리 온 관광객들은 저런 것도 경험이다 하면서 한 잔 걸치러 갈 것인가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허세 만빵이라도 막상 현지인들이 저렇게 덤벼들면 매우 얌전하고 소심해 지는게 지금의 한국 대학생들이 아닐까 싶네요.

 

엄니는 놀랍게도 옷 귀엽게 입었다면서 저보고 사진 같이 찍어보자고 말 걸어보라 하십니다.

저도 만만치 않게 소심한 편이라, 바람잡이들에게 그런 말을 걸 자신은 없죠.

거기다 술 마시러 갈 것도 아니면서 업무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그 제안은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뭔가 신기한 표정을 슬금슬금 걸어가고 있는 엄니입니다만

세상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셨기 때문에 이 정도는 그냥 슬쩍 보고 넘겨버리는 레벨에 도달하신건지

이미 구경은 다 하셨다는 듯 슈퍼에서 먹을거 좀 사가자고 하십니다.

 

물론 도톤보리에는 재미있는 슈퍼인 돈키호테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습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거대 관람차 건물이 돈키호테입니다.

 

 

 

도톤보리 들어가기 전에, 언제 봐도 놀라운 소비의 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담아봅니다.

오사카 사람들이 원래 좀 태평하고 거친 느낌이 있습니다만

묘하게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여기서라면 한번쯤 타락해버려도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소비와 향락의 거리인 이곳의 모습은 조화와 부조화가 묘하게 공존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엄니도 한참동안 조그마한 하천 양쪽으로 뻗은 끝없는 건물들을 바라보시더군요.

이곳 도톤보리는 일본이 현대화 되고 나서부터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400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물자 수송 하천으로 개발되었지만 에도시대부터 이미 환락하고 유명했죠.

강가에 배 띄워놓거나 하천 옆 유곽에서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며 경치를 구경하는 곳이었습니다.

뭐랄까, 이 정도 되면 환락가에서도 역사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단순한 슈퍼는 아니고 상당수 제품의 품질이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일본 관광 루트에도 이 곳에 들어가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을 만큼 독창성으로 넘치는 가게입니다.

 

엄니도 물건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하시더군요. 중간에 아기 장난감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난감했지만.

손자 장난감은 이런 곳에서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한 후에 정상적인 구경이 이어졌습니다.

 

의외로 샤넬이라던가 루이 뷔통 같은 브랜드품 중고도 상태 좋게 전시되어 있고

보석류나 고가 시계도 많은 걸 보면, 역시 이곳은 외국인들이 워낙 많이 보다보니 상당히 특화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네요.

이곳 돈키호테 만큼은 외국인 관광객이 먹여살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맨 위에 주욱 내려오면서 일본어보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눈썰미 좋은 엄니께서도 '저기 저 아해들 우리하고 같은 비행기 탄 애들이다'라고 지적하실 정도로

다들 그 시간에 칸사이 공항에 도착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전부 똑같았습니다.

 

지금 내가 한국에 있는건지 일본에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사방 천지에 한국인들 투성인데

부디 내일부터는 좀 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니와 함께하는 고로, 대충 다들 생각할만한 안정적인 루트를 짜 놓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긴 했죠.

 

돈키호테는 곳곳에 피식 웃을만한 장치를 많이 마련해 놓은 곳인데

매 층마다 멋지게 그려놓은 캐릭터가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저 화풍은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예술 장르(?)인데, 궁금하신 분은 '저연비 소녀 하이디'를 찾아보시길.

 

 

 

동키호테는 공산품 품질이 영 엉망이지만 그걸 감안하고 구매하는 그런 곳이고

어디서나 똑같은 물, 음료수, 술 같은 경우는 편의점에 비해 꽤나 싼 편입니다.

오사카의 호텔에서는 3박을 할 예정이라 물과 음료수 빵 등을 넉넉하게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도톤보리의 화려한 모습은 많이 봤으니 돌아갈 때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돌아가 봅니다.

엄니는 혼자서는 이런 길 못걷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어째 사진 찍고있는 저를 놔두고 혼자서 쑥쑥 전진하시더군요.

 

 

 

난바에서 도톤보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상권은 그야말로 절제되지 않은 소시민의 거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북쪽의 우메다(梅田)는 좀 더 고급스럽고 우아한 소비가 주를 이루고 있는 편이구요.

 

도톤보리 주변의 이런 골목길은 물론 적당한 고급 요리점이나 숨겨진 맛집 등이 존재하는 곳이긴 합니다만

난바역 주변까지는 워낙 풍속업소가 많아서 사실 엄니와 함께 오손도손 걸어가기 좋은 곳은 아니죠.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까, 대부분 엄니가 봐도 풍속업소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게 되어 있어서 별 문제는 없습니다.

 

호텔은 어차피 잠만 자고 나오는 곳이라 비싼 곳 필요없다고 말씀하셔서

시장통 주변의 조그만 비지니스 호텔을 선택했지만, 예전부터 제가 칭찬하던 슈퍼호텔이라서 서비스는 좋습니다.

2명 고객을 위해 2층침대가 구비된 슈퍼 룸을 선택했는데 역시 좁긴 좁네요.

사실 엄니하고 함께 간 것이라 자금도 넉넉하게 준비해 왔는데, 좀 더 좋은 호텔로 할까 여쭤봐도 돈아깝다고 하셔서.

 

전날 잠을 못 주무신 터라 많이 피곤하신듯 했습니다. 씻고나서 금새 주무시더군요.

저는 TV라도 좀 보고싶었지만 엄니 수면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2층 침대로 올라갔습니다.

2층 침대는 1층 침대의 절반 크기밖에 안되는 작은 사이즈라서 저는 발을 쭉 펴기도 힘들었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를 바꿀수는 없고, 오히려 저는 예전 자전거 여행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해서 기분좋게 잘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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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두시간 정도 자고 새벽 6시에 넷까페를 빠져나온다. 근처의 요시노야에서 규동 한그릇 주문.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한끼 떼우기에 좋은 녀석이고, 사진도 한장 남길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왠걸 막상 규동 나오자 그냥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의 다 비우고 나서야 아차 싶더군.

기회는 아직 많이 있으니 아쉬울 것 없이 밖으로 나와서 인적없는 난바역 거리를 걸어다닌다.

 

예약한 비즈니스 호텔은 오늘 오후 3시부터 들어갈 수 있고, 짐은 훨씬 전부터 맡길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새벽 6시에 찾아가서 짐 맡긴다는 건 뭔가 이상해서 일단은 가볍게 산책이나 할까 싶었다.

 

예전 자전거 여행때는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새벽 5시에 도착해서 일단 직원 불러서 짐부터 맡겨놓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다가 까페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그랬는데, 몇달 지나고 나서는 오전 11시쯤 도착해도

몰골이 영 아니었던지 짐을 맡겨주는게 아니라 청소 다 된 방을 미리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 주기도 했다.

뭐든 메뉴얼 대로만 움직이는 일본 사회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참으로 신선한 경험.

 

난바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온갖 PC 부품과 게임, 만화, 메이드까페등이 즐비해 있는 덴덴타운이 나온다.

휴일엔 특히나 굉장히 붐비는 곳이지만 새벽 산책의 특권이랄까, 이렇게 한산한 덴덴타운의 모습은 진귀한 경험이다.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이 있어서 언젠가 한번 더 들려야 할 곳이지만 지금은 문 연 곳도 없으니 그냥 패스.

목적지도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시장 옆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에 기분좋게 퍼질러 있던 비둘기를 한번 담아보려고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놀랐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버린다.

괜히 쉬고 있던 녀석 깨운게 아닌가 싶어서 미안하다.

 

 

 

싸구려 민가가 이어진 좁은 골목길은, 후줄근한 콘크리트 벽과 썩어가는 나무판대기 건물이 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데

몸을 숙여야만 겨우 사람 한 명 들어갈 수 있을 듯한 작디 작은 뒷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생명력 넘치고 아름답게 자라나 있는 녀석들이 꽤나 빡빡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허름한 곳도 이 녀석들의 매력 덕분에 사람 살 만한 곳이라는 인상으로 바뀌니 참 대단하다.

 

재래시장 근처라서 아침이 빠른지 가게 준비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특히 생선가게에서는 벌써부터 문 열어놓고 생선 손질중이다.

운동복에 슬리퍼 끌며 걸어오는 노인네나, 제대로 차려입고 산뜻하게 활보하는 아가씨나

이 시간대엔 대부분 개와 함께 산책나오는 경우가 많다. 졸졸 잘만 따라다니는 녀석도 있고 어지간히도 말 안듣고 옆길로 빠지는 녀석도 있고.

 

 

 

난바역 북쪽은 서울의 명동거리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지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너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스낵바나, 노동자들을 위한 3~4평짜리 원룸 주택 등이 포진해 있다.

당연히 욕실이나 베란다 등이 있을리가 없는 그런 원룸 생활자들을 위한 목욕탕이나 코인 세탁기 등이 근처에 꼭 있는것이 특징.

 

익숙함의 차이일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방음도 되지 않는 그런 조그만 곳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항상 의아하긴 하다.

에도시대부터 수백년간 이어진 생활 방식이니 서민들에겐 익숙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밀도가 대구의 4배 가까운 오사카이니 그런 생활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지독한 불경기는 오사카도 예외가 아니고, 불경기의 여파를 직격으로 받는 것은 역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다.

세계 공통으로 불경기에는 강건 보수파가 인기를 얻고 , 오사카 시민도 41세의 젊은 보수 우파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에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하시모토 시장은, 학교와 관공서에 국가 제창 의무화, 일본의 핵무기 보유 주장 등

과격함으로는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에 못지 않는 우파에 속하지만, 공무원의 철밥통 수당 삭감, 복지정책의 개혁 등 시민들의 불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진보적인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는 일본 정치계의 새로운 물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한국에서는 대외적인 발언이 영 꺼림직한 부분이 많아서 이시하라의 뒤를 잇는 꼴통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데

정작 오사카 시민들에게는 서울의 박원순 시장만큼이나 지지를 받고 있는 묘한 인물이다.

물론 내가 오사카 시민이라도 정책적인 면에서는 그를 지지하고 싶을 만큼 구미가 당기는 개혁안을 불같이 추친하고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지 전까지는 그의 행동이 정치적 퍼포먼스에 불과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단언은 금물.

 

오사카 공무원들에게 비난받는 반면 정통 우파 자민당, 정통 좌파 공산당에게 동시에 지지를 받는 이 독특한 인물이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썩어들어가고 있는 오사카시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궁금하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든 생각.

 

 

 

 

측면에서 보면 이런 식이다. 포장마차처럼 서서 손님을 받는 곳인데, 뒷편엔 살림사는 집과 연결이 되어 있는 방식.

도톤보리나 신사이바시 등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지만 이런 지역민 상대로 하는 외곽의 선술집은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오사카는 특히 한국인의 입지가 강해져 가는 곳 중 하나인데다, 한인타운 츠루하시(鶴橋) 부근은 요즘 한류열풍과 더불어 인기몰이중이라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경쟁 재래시장의 눈길이 점점 곱지않게 변해가는 중이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높으신 분들은 흐뭇하게 내려다볼 뿐, 서로 상처내는 것은 가장 아랫쪽의 영세민들이지.

아버지가 천민 야쿠자 출신인 하시모토 시장이 과연 오사카에서 영향력이 강해지는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어떤 방안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하다.

천박한 극우파의 대표인 이시하라 도쿄지사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한국의 박원순 시장처럼 상생의 길을 택할 것인지...

 

 

 

재래시장가를 빠져나와 츠루하시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전 자전거 여행때 츠루하시 부근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한인시장에서 6개월만에 닭발과 족발을 사들고 없는 살점 열심히 뜯어먹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한국에서와 똑같이 설사로 시달렸던 것도 이제와서는 그저 추억일 뿐이고.

 

활기를 잃어가는 재래시장가와는 달리 대로변의 대형 할인점은 벌써부터 자전거 타고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보다 변화에 대해 훨씬 둔감하고 고지식한 일본도 경기 불안에 따른 대형 양판점의 매력을 거슬리진 못하는 듯.

잠시 주춤할 당시에도 재래시장은 지역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희망과 포부에 찬 회생정책으로 용감히 맞선 전례가 있지만

이제는 지역민들간의 연대, 끈끈한 정 같은 따뜻해 보이는 수식어만으로 대형 양판점의 공세를 이겨내기란 힘들어지고 있는게 현실.

 

지독한 불경기에 거대한 천재지변, 철밥통들의 어리석은 인재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일본은

그네들이 최후의 끈처럼 붙잡고 있는 '모두가 힘을모아 이겨나가는' 조금은 공허한 구호만으로 이 정세를 뒤집을 수 있을런지.

 

츠루하시까지 아무런 목적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가 다시 난바역을 거쳐 비즈니스호텔이 위치한 요츠바시(四つ橋)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 편의점에 들어가 잡지도 좀 읽고 하면서 정말 관광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느긋함을 즐긴다.

사실 오사카에서는 별로 돌아보고픈 곳도 없고, 며칠 후에 있을 출판사와의 미팅 생각에 그닥 유쾌한 기분도 아니다.

내일은 그래도 외국까지 왔으니 제대로 관광 한번 해보자는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코야산(高野山)에 갈 작정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러잖아도 칸사이 공항에서 일찍 도착한 탓에 별로 할 일이 없다. 저녁에 서점이나 좀 들러볼 생각 뿐.

 

 

 

거진 5시간동안 그저 걸어다니며 요츠바시쪽으로 향하던 도중

난바역에서 정북쪽으로 나 있는 번화가인 미도스지(御堂筋)거리에서 뭔가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뒤에 미도스지 페스타를 위해 차량 통제를 시작하니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탓인지 수십 명이 넘는 경찰관이 물샐 틈없이 직접 교통통제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미도스지 페스타라는 건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꽤나 유서깊은 축제라고 하는데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고, 오늘이 축제날이라는 사실도 방송 듣고서야 알았기 때문에

어젯밤부터 2시간밖에 자지 못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이건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 가서 카메라장비를 제외한 짐만 맡겨놓고 다시 나오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고.

 

서점은 축제 끝나고 저녁에 가 봐도 되니까 예정없던 공허한 일요일에 관광다운 일거리가 하나 생겨서 기분이 좋다.

 

미도스지 거리는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 도톤보리(道頓堀)와 크로스식으로 교차된 번화가.

난바역에서 북쪽으로 길게 난 미도스지와,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도톤보리가 교차하는 곳은

일요일 오전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관광객들이 도톤보리에서 빼놓지 않는 돈키호테와 글리코 전광판이 보인다.

이곳은 밤이 되어서야 본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라 흐릿한 대낮 풍경은 뭔가 어수선하다.

 

미도스지 페스타 때문인지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요츠바시로 향하는 길은 어디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와중에 힘든 숨을 내쉬는 녀석을 발견.

길고양이치고는 나이를 꽤나 먹은 녀석으로,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힘겹게 들쑥거린다.

거의 움직일 기력이 없는 듯 한데, 카메라를 슬쩍 들이대도 조금 움찔거릴 뿐 재빨리 피할 여력은 없는 듯 하다.

더 이상 다가갔다간 무리해서라도 도망갈 듯 하고, 그러면 괜히 고생만 시킬 것 같아서 다가가진 않는다.

 

일본도 대도시 고양이들은 온갖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시골 고양이들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한달 쯤 전에 시골도시 유후인에서 친근하게 나에게 머리를 들이밀던 고양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실은 도시 사람도 마음 속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도스지 거리를 살짝 옆으로 벗어나서 요츠바시쪽으로 걸어가면 아메리카무라(アメリカ村)를 통과한다.

아메리카무라는 이름 그대로 미국향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신세대들의 놀이터. 각종 마이너 샵과 명품점이 얽혀있고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까페와 이국적인 스테이크점, 이탈리안 식당 등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묘하게 굽이친 프레임 디자인이 살짝 바이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Schwinn 사의 자전거가 멋져보여서 한 장 담는다.

이곳 거리엔 1950년대에 만들어진 빈티지 자전거를 전시해 놓은 샵도 있는데, 실로 기분좋게 자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전거로 여행은 무리겠지.

 

 

 

호텔에 도착해 짐을 맡겨놓고 다시 미도스지쪽으로 걸어나온다.

난바역에서 요츠바시역까지는 지하철로 두 코스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사실 난바역이란 게 역 한개의 이름이 아니라 난카이선, 킨테츠선, JR선 등등 수많은 시영 전철, 국철, 사철 등이 얽혀있는 곳이라서

난바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구간만 해도 한 바퀴 도는데 20분은 걸리는 곳이다.

 

어제 공항에 도착한 후 넷까페서 새우잠 2시간 정도 잔 것 외에는 15kg 정도의 짐을 짊어지고 줄창 걸어다니기만 했기 때문에

오후 1시쯤 되자 상당히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일단 1년에 한번 있는 페스타를 볼 기회가 생겼으니 놓치기는 아쉽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으니 어깨는 조금 홀가분해졌지만 카메라 장비가 여전히 5kg 정도는 되기 때문에 가뿐한 느낌은 아니다.

 

다시 미도스지 거리로 돌아오니 어느새 차량은 통제되고 사람들은 인도쪽에 설치된 펜스 앞에 줄지어 모여있다.

축제 시작시에 뭔가 퍼레이드 같은걸 하기 때문에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는데, 운 좋게도 펜스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이걸로 그 퍼레이드라는 걸 제대로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피로도 잠시 잊을 수 있는 느낌.

반대편에는 유명한 백화점 건물이 서 있는데, 구불구불한 외관이 꽤 멋져서 축제가 시작되기 전 한 장 담아본다.

 

 

 

이윽고 미도스지 거리 끝부분에서 개최 신호를 알린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서 과연 어떤 퍼레이드일까 기대중.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개회사를 주절거리고 나서 나머지 한쪽 끝인 난바역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페스타가 시작된다.

나야 뭐 오사카 시민도 아니고 이런 사람들 걸어가는 모습엔 관심이 없었지만, 수동렌즈 연습삼아 한장 찍어본다.

 

동쪽 사람들에 비해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질서 안지키기로 유명한 칸사이 지방이라서

요인 경호에 신경쓰느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밀려오는 인파를 막고 통제하느라 경찰들이 진땀을 뺀다.

 

 

 

 

그 뒤로 카메라 여러개를 짊어진 프레스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이제 뭔가 퍼레이드가 시작되겠구나 싶어서 카메라를 단단히 쥐어본다.

헬로키티의 머리에 달려있는 리본같은 녀석을 이끌고 진군하는 스탭들을 시작으로 어떤 행렬이 이어질까 사뭇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사람들 지나가고 나니 경찰들이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하면서 펜스를 치워버리는게 아닌가.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멍하게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제 좀 살것같다는 느낌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순식간에 도로는 인파로 가득 차고, 나는 여전히 멍하니 서서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정리하기 바쁘다.

 

결국 이 미도스지 페스타라는 건 원래 도로를 통제하고 보행자 천국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축제였던 것.

올해가 10주년 기념이라서 그냥 하시모토 시장이 거리 끝에서 끝까지 한번 걸어가는 이벤트가 있었고

그 이벤트를 위해 사람들을 도로 바깥에 붙잡아 놓았던 것이다.

 

펜스 맨 앞에 자리를 잡아서 이제 퍼레이드 사진 좀 찍겠구나 하던 내 생각은 그저 어이없는 망상일 뿐이었다.

되려 곳곳의 이벤트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어지간한 장소에서는 사진 찍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맞닥트린 이벤트란 나름의 두근거림도 있지만, 역시 돌발 상황에는 대처하기가 힘들다는걸 실감했다.

 

뭐가 어찌됐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카메라 짊어매고 보행자 천국의 인파속으로 뛰어들어간다.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로 향하는 내내 일행은 '여기가 아닌거 아녀?'라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유패스 무료쿠폰에도 등록될 만큼 관광지로서는 알려진 곳임에도
정말 사람 흔적이라고는 풀떼기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산했거든요.

마치 3년전 도쿄 오다이바의 황량한 벌판을 세명이서 걸어다닐 때의 기분을 맛보는 듯 했습니다.
뭔가 잘못 찾아온것 같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일단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행히도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요. 티켓을 끊고 승강기를 타고 쑤욱 전망대까지 올라갑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계속 긴장긴장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니 사람 모습이 좀 보여서 안도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바깥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덜덜 떨고있는 고소공포증 친구를 위로해 주기도 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도록 갑자기 어깨를 잡아밀어주니 고양이처럼 튀어오르더군요)

이곳 에스컬레이터도 경사가 꽤 심하고 아주 길게 늘어져 있어 친구는 결코 붙잡은 손을 놓지 않더군요.
원래 전망대엔 크게 관심이 없지만 친구가 이렇게 즐거워해주니 찾아가는 보람이 생기네요.


전망대 내부는 아주 어둡습니다. 조용하고 어슴푸레한 조명 덕분에 야경을 감상하기엔 좋은 환경이네요.
연인들을 위한 칸막이 의자도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어서 커플끼리 실컷 염장질 벌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본 오사카시의 모습은 정말 거대했는데,
이게 대구시 면적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게 뭔가 어색하군요.

ISO400짜리 필름을 장전한 카메라로 삼각대없이 야경을 찍으려고 하니
평평한 장소 잘 물색한 후 지갑 등을 렌즈 앞쪽에 고아넣어 높이를 맞추고
M 모드로 적절한 노출값과 셔터스피드를 준비한 후 5초 타이머 촬영으로 셔터 눌러놓고
약 20초간 필름에 기록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게 됩니다.

귀차니즘때문에 삼각대는 여행에 가져가지 않는 편이라 (고릴라포드는 나중에 하나 사볼까 생각중)
가끔 난감하긴 한데 역시 전망대에는 수평 잡아줄 공간이 있는 편이라 이런 사진도 그나마 건질 수 있네요.


필름카메라는 현상 때까지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보험용으로 DSLR도 같은 방법을 이용해 찍었습니다.

오사카의 명물인 2개의 달을 잘 담아냈군요. (믿습니까?)

오른쪽에 일행이 하루종일 쏘다녔던 베이에이리어 텐포잔이 보입니다. 관람차도 녹색으로 빛을 발하네요.
로또 당첨되었다면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한 번 가봤겠지만...


내려갈 때도 결코 손을 떼지 않는 착실한 친구.
여기서 밀어버리는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그냥 놔뒀습니다.


전 랜드마크 빌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야경사진 몇 장 건진것에 위안을 삼고 빌딩을 빠져나왔습니다.

이곳 코스모타워엔 예식장도 있어서 자금 넉넉하게 가진 사람들은 아찔한 높이에서 화려한 경관을 즐기며
결혼식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네요.


베이에이리어를 빠져나온 일행은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톤보리(道頓堀)로 향합니다.
도톤보리는 야스이 도톤(安井道頓)이라는 사람이 1612년에 만든 물자 수송용 인공 하천이었는데
에도시대 들어 하천의 양쪽 거리가 화류계로 점령되어버린 후 그때부터 쭈~욱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아왔습니다.

에도시대땐 상점들의 입구가 강 반대편으로 나 있었고, 건물 뒷쪽이 하천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창문을 열면 바로 펼쳐지는 하천의 모습을 구경하거나, 하천에 배를 띄우고 술과 벚꽃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죠.
지금은 타유우(太夫 - 최고급 매춘부)들이 있던 곳에 수많은 음식점과 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섰지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의 열기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톤보리는 옛 정취와 소란스러움이 공존하는 서민적인 느낌의 거리입니다.
킨류(金龍) 라멘이나 움직이는 게 간판으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楽)등등 몇몇 거대 체인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좁은 골목 여기저기에 작게 펼쳐진 숨겨진 맛집들이 포진해있는 느낌이죠.
퇴근길에 가볍게 한 잔 마시는 조그만 선술집 등이 도톤보리의 분위기를 설명해 줍니다.

이와는 반대로 도톤보리하천 북쪽에 위치한 거리 신사이바시(心齋橋)는
도쿄의 긴자(銀座) 명품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최신 아케이드의 집합소입니다.
전 세계 최고급 명품 부티크와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최신 패션샵, 악세사리 등으로 가득 차있죠.

조그만 하천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극단적인 모습의 두 거리가 마주보고 있는 느낌은 참 신선합니다
저희 일행은 신사이바시에서 뭔가 살 생각은 없었으니 그냥 도톤보리의 라멘집을 향해 출발.


도톤보리라고 해서 다 옛날 정취만 풍기는 건 아니죠.
이미 일본인들의 생활 깊숙히 파고든 파칭코는 어디든 그 거대함을 자랑합니다.

자전거 여행때도 놀랐지만, 인구 3만도 안될것 같은 조그만 마을에도 거의 백화점급의 파칭코점이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파칭코는 일본인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했네요.


요런 조그만 골목 깊숙히 정말 제대로 된 맛집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죠.
이번엔 도톤보리에서 맛있다는 라멘집을 미리 알아보고 온 터라 정해진 곳을 찾아 바로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멘은 킨류 라멘인데요, 대문 앞 장식도 화려하고
이곳 도톤보리에만 4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라멘계의 큰손입니다만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않습니다.

어떤 여행지든 마찬가지지만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음식점과,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음식점은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반드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이 더 맛있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입맛도 지역별로 많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뭔가 단순히 맛있다는 느낌보다는, 현지의 감각을 좀 더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함이 있는 음식점에서 한끼 해보는게
여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득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기 때문에, 저는 가능하면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챠슈 라멘으로 이 근방에서 유명한 하나마루켄(花丸軒)입니다.
인기에 비해 정말 좁아서, 바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더군요.

후다닥 자리잡고 앉아서 이곳의 추천 메뉴인 행복가득 라멘(しあわせいっぱいラーメン)과 교자를 시켰습니다.


일단 먼저 나온 교자를 한 장 찍어드리구요.
교사는 아삭아삭하고 따뜻한게 나쁘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맛있는 교자가 어디있냐구요? 카스카베시(春日部市)에는 만두 속부터 피까지 전부 수제로 만드는 조그만 개인 교자집이 있습니다.
그곳의 교자를 한번 먹어보면 분명 '교자에도 레벨이 있구나' 하실겁니다.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행복가득 라멘입니다.
저는 라멘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일본 여행땐 거의 하루중 2,3끼를 라멘으로 때워도 불평이 없는 타입인데
이번엔 친구 일행과 함께 움직이니 저 좋은데로만 먹을거리를 선택할 순 없어서
벼르고 벼른 이번 라멘은 기대가 컸습니다.

이곳 라멘은 진한 돈코츠(돼지뼈) 육수에 쇼유(간장)으로 간을 하는 것까지는 평범한 라멘과 다르지 않지만
사진에 보이는 두 종류의 챠슈(돼지고기를 양념해서 썰어놓은 편육)가 이곳을 유명하게 한 별미중 하나입니다.
왼쪽 챠슈는 한국에서도 익히 보는 삼겹살, 오른쪽의 진한 챠슈는 콜라겐이 다량 함유된 등뼈살(とろこつ)입니다.
특제 소스와 함께 압력솥에서 푸욱 쪄낸 더블 챠슈는 굉장히 부드럽고 맛이 진합니다.
챠슈 뿐 아니라 국물도 그야말로 진국이고 라멘 면발도 인스턴트와는 비교불가로, 이름값은 충분히 하는 가게였습니다.

윗쪽의 김에는 랜덤으로 글자가 들어가더군요. 위에 적힌건 '행복기원' 정도로 해석하면 될 듯.

돈코츠 쇼유 라멘은 일본의 라멘 중에서도 맛이 가장 진하고 짠 편이라 여성분들 입맛엔 잘 맞지 않는 경향입니다.
저야 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지만 동생분 입맛엔 어땠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야밤에 라멘 사진을 보니 당장 삿포로로 날아가서 라멘공화국의 라멘들을 전부 섭렵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군요...


라멘으로 배를 채우고 도톤보리를 주욱 둘러본 다음 숙소로 돌아갈 일만 남았네요.
일행들이 전부 다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그저 둘러보며 구경만 할 뿐.


그래도 저기는 한번 들어가보자고 합니다.
만물상 개념인 일본의 유명 체인점 돈키호테입니다.

1980년대 처음 선을 보인 돈키호테는 그 공격적이고 파격적인 영업 방식으로
최단기간에 최고의 급성장을 보인 업체로 손꼽힙니다.

일본 거의 대부분 지역에 점포가 있으며, 대부분 24시간 영업을 통해 심야 고객을 주로 확보하고
일부러 매장 통로를 좁고 어둡게 만들어 심야 고객들의 '탐험적 쇼핑' 욕구를 잘 파악한 마케팅 방법으로 유명하죠.
식료품, 음식, 잡화, 게임, 전자, 화장품, 스포츠 등등 없는것이 없다는게 최대의 특징입니다.
성인용품은 물론이고 코스프레 의상까지 있으니 뭐... ㅡㅡ;

이곳 도톤보리의 돈키호테는 사진의 저 관람차가 유명한 포인트였는데 작년부터 영업을 중지한 상태더군요.
실컷 둘러보고 물건은 사지 않고 나왔습니다.


밤의 도톤보리 하천은 매우 조용합니다.
주유 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이곳을 순회하는 도톤보리 리버 크루즈도 있었는데
시간상 여건이 안맞아서 패스하기로... 배는 산타마리아 호를 타봤으니 괜찮아요.


참 특이하게도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스팟이 되어버린 글리코 전광판 앞입니다.
오사카 도톤보리에 들러서 이곳을 찍어오지 않으면 여행 못한 사람처럼 취급받기도... ㅡㅡ;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제과회사인 글리코사가 1935년에 세운 전광판으로, 75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죠.
지금와서는 조금 촌스러운 쫄쫄이 육상선수 아저씨의 모습이 오히려 매력이 되어
오사카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저 전광판은 글리코 카라멜 선전용이었어요. 글리코 카라멜을 먹으면 힘이 솟아요 라는 느낌으로...

저 곳에서는 저 아저씨를 흉내내서 한쪽 발을 들고 두 손을 치켜든 포즈로 사진을 찍는게 유행입니다.
수줍음 많은 친구 일행은 아무리 협박해도 그 포즈를 취해주지 않네요. ㅡㅡ;

그리고 또 하나, 이곳은 여자 꼬시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이곳 도톤보리는 남부 오사카의 중심지역인 난바(難波)에 속해있는데요.
이 난바라는 단어가 일본어의 헌팅(난파,ナンパ)와 발음이 비슷해서 이곳을 난파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도톤보리를 빠져나오며 보였던 한 공연장에서 카나데혼 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가 상영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예전 일본어과 4학년 마지막 수업때 발표한 것이 이 충신장 이야기라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겐로쿠 15년(1702년)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각색해서 카부키극화한 작품인데,

'아무리 관객이 없어도 츄신구라만 공연하면 관객이 꽉 찬다'는 공연업계의 속담이 있을 정도로
1748년 초연 이래 꾸준히 일본인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아온, 카부키의 원조이자 대표격 작품입니다.

그리고 1748년 그 운명의 초연이 바로 이곳 오사카에서 시작되었죠. ^^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야 셀 수도 없이 영화, 드라마, 소설 등으로 각색된 작품이지만
현재 헐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47 로닌'(The 47 Ronin)으로 영화화되고 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합니다.
욕탕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고 TV 보면서 느긋하게 목욕하다 보니
세 사람 한 바퀴 도는데 거의 1시간 30분이나 걸리더군요.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과연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일단 눈을 감고 누워봅니다.
내일은 주유패스로 입장할 수 있는 시텐노지(四天王寺)와 오사카성,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빌딩(梅田スカイビル)을 둘러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