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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4.05  칼 짜이스 예나 판콜라 50.8 8
  2.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9편 - 미야지마, 플라나와 함께 미센으로 4

1950년대 제조된 렌즈입니다.
그땐 동독과 서독이 분단되어 있었던 시기라 렌즈 제조사 이름도 다양했었죠.

당연히 오토 포커스 기능은 없는 녀석이라 수동으로 촛점을 맞춰주긴 하지만
요즘 나오는 어떤 단렌즈와 비교해도 화질면에서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 녀석입니다.

문제는 이 당시엔 방사능의 위험에 대해서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터라
화질을 위해서 렌즈알 제조때 방사능 물질인 토륨을 섞어서 만들던 모델들이 몇 있습니다. ㅡㅡ;
이 녀석도 그런 부류죠.

물론 이미 반감기가 지난 녀석들이고, 토륨이란 녀석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은 종이 한 장도 못뚫는 고로
하루 10시간 이상 렌즈알에 눈을 갖다대고 10년 이상 버티지 않는 이상
이녀석의 방사능이 인체에 해를 끼칠 일은 전무하긴 합니다.

그 토륨 성분때문에 지금 렌즈알이 노랗게 변색되어 버렸는데요. (실제 사진상 결과물하고는 관계없습니다)
이렇게 햇빛을 쬐여주면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자외선을 쬐여주면) 노란색이 사라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자외선 램프가 없는 저는 그냥 양지바른 곳에 주구장창 놔두고 있습니다.

저렴하게 수동 렌즈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점과, 현재 생산되는 렌즈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화질 덕에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렌즈죠.

덤으로 수동렌즈의 촛점링 돌리는 매력도... 링 돌리는 자신이 사진 좀 찍는구나 싶은 착각도 들게 합니다. ^^;


요녀석이 판콜라 50.8로 찍은 사진.
10만원대의 렌즈가 (예전엔 한자리 수 가격이었는데 수요가 늘어나니..)
요즘 40~50만원대 단렌즈의 화질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광학기술이란 건 전자계통과 달리, 특수한 물질이 채용되지 않는 이상 그 한계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요즘엔 절대로 쓰이지 않는 토륨이 사용된 덕은 톡톡히 보는걸지도... 쓸때마다 기분상 껄끄럽긴 하지만.

이츠쿠시마 신사 뒷쪽에 마련된 미니 신사(?)
내 머리통만한 크기인데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공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삶겨져 있는 싱싱한 놈이라면 불쌍한 중생의 배를 보전하기 위해 몇개 까먹었을텐데.


손을 좀 씻을까 싶기도 했지만, 신종플루 예방 차원에서 휴대용 알콜 핸드워셔도 갖고 왔고, 카메라에 물 묻히기 싫어서 패스.
아까 단풍만쥬를 먹으면서 렌즈를 칼 짜이스 ZF 플라나 50.4으로 바꿔끼웠다.
여행중에 렌즈 갈아끼우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라 보통은 같은 장소를 두 번 돌아볼 생각하고 왕복점에서 렌즈를 갈아끼우곤 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체력적 여유도 없으므로 그냥 마음 내키는 장소에서 바꿔봤다.


카메라 렌즈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어서 이젠 고성능이라 말하기도 뭣한 칼 짜이스지만
세계 3대 광학 메이커에서 항상 이름을 올려놓는 응축된 기술력은 어디 가는거 아니다.
웃기게도 AF 가 안되는 녀석이라 수동으로 조리개와 초점거리를 설정해야 하지만
요즘같은 광속 AF 시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녀석이 하나 있어야 초점 링 돌리는 손맛을 계속 느낄 수 있다.


ZF 플라나 50.4의 특징이라면 깊은 색감과 회오리 빛망울.
색감은 확실히 깊긴 한데 대부분 RAW 로 촬영해서 보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렌즈보다 센서의 수광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

회오리 빛망울은 보이그랜더나 칼짜이스 예전 렌즈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조리개를 개방할수록 빛망울이 회오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지금 히로시마 여행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나? ㅡㅡ;


예전에 쿄토에서는 건물 밖에서 찍으려는 사진도 제지당해서 기분이 팍 상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왠지 우물쭈물하며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어 밖에서 살짝 촬영했다.
그냥 찍어도 되냐고 시원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소심쟁이. ㅡㅡ;

사실 별로 관심갈만한 상품은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니 사슴 관련 인형이나 그런것들은 조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사슴들은 어디 갔다놔도 그림이 되는구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슬금슬금 다가온다. 아마 먹을거 없나 보러 오는거겠지.
이 ZF 50.4 렌즈는 수동이면서 초점 링이 움직이는 범위가 아주 넓어서 굉장히 스무스하고 세밀한 포커스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한 신속한 포커싱이 어려워진다는 뜻도 된다.

어지간한 MF 렌즈는 거의 AF 쓰듯이 추적하면서 찍을 수 있지만 이 녀석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서 안 될게 뭐가 있으랴. 슬금슬금 움직이는 사슴 따위는 나의 초점링돌리는 신묘한 손가락에 한방이다.
겨우 D3 정도 되는 뷰파인더가 있어야 그나마 찍지. 135 판형 필름바디 대비 크롭바디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MF 로 초점 잡는건 괴롭다.

A900 의 눈동자 굴려야 할 만큼 광활하고 밝은 뷰파인더가 그립다. ㅡㅡ;


시간도 어지간히 되었겠다 로프웨이를 타고 미센(彌山)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른다.
중간중간에 일반 가정집도 많이 있는데, 신식 주택집에도 은근히 옛 정취가 풍기는 느낌의 건물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산 위의 사슴들은 밑의 녀석들보다 좀 더 순수한 눈을 하고 있나 싶은 경건한 마음이 들었는데
먹이를 주지 않자 묘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신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면 의연함을 기르라고 해 주고 싶네.


날씨가 더웠지만 그늘이 시원해서 그럭저럭 산을 올라간다.
로프웨이를 타면 떡하니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는데, 로프웨이 자체가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산 위로 좀 올라가야 있다.
사슴도 있고 풍경도 좋으니 느긋하게 셔터 눌러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썰물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미센 위에서 시간보내고 와도 충분하다.


앞서 말한 칼 짜이스 플라나 렌즈의 특이한 회오리 빛망울.
보통 이 렌즈를 구입하면 처음에 이 빛망울에 현혹되어 이런 심도낮은 사진을 마구 찍어다가, 어느순간 회오리가 실증나서 평범하게 찍는다는 소문이...


빛망울이 아니더라도 수동렌즈의 손맛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녀석이라 갖고 다니며 링을 돌리는 것만 해도 재미있다.
색감도 과연 칼 짜이스라고 깊고 진득하게 잘 나오는 편이고.


로프웨이까지 가는 길은 겨우 수백미터밖에 안되지만 11월쯤에 오면 여기서부터 화려한 단풍잎이 관광객들의 혼을 빼 놓는다.
이츠쿠시마 신사를 둘러싼 단풍도 절경이지만 미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와 어우러진 원시림의 단풍은 금강산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매력이 있다.


일단 렌즈를 바꿔끼고 출발하면 어디서 쉴 만한 장소가 안 나오는 한 계속 그 렌즈로 촬영한다. 귀찮아서.
오히려 좁은 사물을 포커싱할때는 측거점 위치 신경쓸 필요없는 수동렌즈가 더 나을 경우도 많다. 뷰파인더가 넓고 밝다는 전제 하에서만.


오중탑 뒤쪽을 통과해서 계속 걸어오면 이곳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나보다.
조그마한 토리이와 그 위에 올려진 돌맹이들이 앙증맞다. 아마 소원을 바라면서 올려놓은 거겠지.
크고 단단한 토리이(뭔가 어감이... ㅡㅡ;)도 좋긴 한데, 산속 산책길 안에서 만나는 이런 조그만 토리이도 엄청 마음에 든다.


신사하고는 꽤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도 누가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나무에 묶어놨다.
원래는 나쁜 점이 나왔을 때 액땜한다는 의미에서 나무에 묶지만 요즘엔 그런거 없이 좋던 나쁘던 기념으로 마구 묶더라.
뜯어서 뭔 내용일까 보려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 묶어놨던 사람에게 미안한 듯 해서 얌전히 사진만 찍었다.


아마 저 돌은 사람이 일부러 올려놓은 것이겠지.
시끌벅적한 이츠쿠시마 신사와는 달리 새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소리만 들리는 산 속에서
이런 살짝 인위적인 듯한 풍경을 만나면 기분이 아늑해진다.
뭔가 거창하게 소원을 비는 것 보다 이렇게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뭔가를 바라며 행하는 소박한 느낌이 좋다.


로프웨이로 가는 도중 물이 별로 남지 않은 계곡 위를 다리로 건넜는데 이곳이 관광 명소중에 하나인 단풍계곡 모미지타니(紅葉谷)라고 적혀있다.
11월에는 아마 다리 위가 구경하고 사진찍는 관광객들로 꽉꽉 차 있겠지.


로프웨이 타는 곳까지 올라가니 지금부터 50분은 기다려야 한단다... ㅡㅡ;
일단 티켓 순서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금 티켓 받아놓고 밑에서 놀다 와도 된다니 일단 티켓부터 받았다.
로프웨이 바로 밑에는 음식점이 있어서 우동이나 맥주 등을 팔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산 속 음식점이 비싸기로 유명한것은 다를 바 없다보다.
혹여 굴 덮밥 같은거라도 있다면 한끼 먹어볼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앉아서 물이나 마셨다.


산 속에서라면야 50분 정도 시간 때우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카메라가 있다면 더욱 그렇고.
가방 속에는 E-Book 도 있으니 읽다 남긴 소설을 펼쳐들어도 금방인데
기왕 왔으니 그냥 사진만 좀 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즐기기로 했다.

여행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평범한 휴식이 귀중한 명상의 시간이 되고, 훗날 추억을 되돌리는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새 40분이 지나갔다.
이제 슬슬 로프웨이로 올라가서 줄을 서 봐야겠다. 거기는 다시 사람들이 만든 줄로 가득가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