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영화'에 해당하는 글들

  1. 2011.09.15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 (Final Destination 5, 2011) 10
  2. 2011.08.20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10
  3. 2010.04.20  그린 존 (Green Zone, 2010) 2
  4. 2010.04.14  대구에서 4월 중순에 눈이 오다니... 22
  5. 2010.04.13  크레이지 (The Crazies, 2010) 20
  6. 2010.04.08  황후화 (Curse Of The Golden Flower, 2006) 18


아바타로 시작된 극장가 3D 열풍은 그 거품이 꺼지면서 그나마 안정세를 찾고 있는 모양인데
아바타처럼 고도로 계산된 구도와 3D 효과를 착실히 준비하지 않은 영화에게
3D란 그저 돈 비싸게 받기 위한 상술일 뿐.
생동감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는 3D 기능을 제일 잘 활용할 수 있는 장르는 역시 호러가 아닌가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호러란 관중을 깜짝깜짝 놀래키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슬래셔 무비.
넓혀 말하면 말초신경 자극을 목적으로 하는 가벼운 팝콘무비에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번 데스티네이션 5가 3D 효과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살인을 저지르는 주체가 단 한번도 관객들의 눈 앞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범행의 동기나 범인의 심리 등등 자질구래한 추리의 가지를 전부 쳐내버리고
어떤 소재로 어떻게 사람을 죽여나갈 것인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독특한 소재의 이 영화야말로
시각적 흥분도를 높일 수 있는 3D 효과에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참신했던 소재만큼이나 그것을 비틀고 요리할만한 건덕지가 별로 없던 탓에
1편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멋들어지게 사람을 죽여나갈까'라는 고민 외엔
거의 변한게 없는 시리즈인지라, 이번에도 그 이외의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진화한 특수효과와 3D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덕에, 이번 5편은 웃고 즐기는(!) 오락영화로서의 본분은 충실히 만족시키고 있다.
단지, 1편부터 봐 온 사람들에게는 뻔히 다 알고 있는 설정 설명을 계속 들어야 하는 지루함을 참을 인내심이 필요하긴 하다.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3D 효과 탓인지 작품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의 이펙트가 너무 인공적이라는 느낌이다.
아무리 눈 앞으로 피칠갑이 튀어나오고 사지가 찢겨나가도 현실감이란게 안 느껴진다.
뭔가 물리법칙이 약간 무시되어 CG 티가 난다고 할까나... 너무 잘 썰리고 피가 젤리같은 느낌이더군.

개인적으로는 2편의 오프닝 학살 씬이 가장 잘 편집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5편의 오프닝 학살도 합격점을 줄 만하긴 하다. 피가 피처럼 안보인다는게 문제지만.
제일 조마조마했던 장면은 화려한 사망 장면이 아니라 발바닥 콕! 장면이었다. ㅡㅡ; 아휴 살떨려...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사망장면은 대충대충 때우는 느낌이고
최후반부의 전작과 연결되는 장면이 그저 피식 할 정도의 재미를 줬을 뿐.
3D 효과와의 적절한 조화를 최대의 성과로 삼고, 작품 자체는 오리지날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평작이라 본다.

극장개봉용 호러영화라는 건 점점 이렇게 가볍고 유쾌해지는 걸까. 나뿐만 아니라 실제로 피식피식 웃음소리가 들리더라. 
무겁기 그지없는 내 취향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듯 해서 아쉽기도.


신예 감독의 파격적인 선택과 섬세한 구조, 그리고 폭발적인 감정의 동화.

영화 외적인 면에서 원작 '혹성탈출'과의 관련성을 되짚어보며 키득거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상당수 관객이 전혀 키득거릴필요 없는 장면에서 키득거리더라.
원숭이가 진지한 표졍으로 진지한 연기를 하는게 그렇게 웃긴가 보다.
뭔가 영화가 영화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시저를 비웃던 인간들의 결말이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는데, 관객들은 그래도 진지한 척 하는 원숭이가 재미있나보다.


월등한 육체적 능력을 가진 유인원의 야성은 비정함과 난폭함의 이빨을 감춘 인간의 지능에 유린당한다.
야성의 유인원이 지능을 갖게 되었을 때, 타종과의 소통이 가능해 진다. 그것은 진화(Evolution)라 부른다.
인간은 언제나 타종과 소통을 원한다. 지적 호기심과 발전적 응용을 위해.
하지만 그 소통은 언제나 일방적이고 인위적이며 폭력적이다.

야성의 존재는 이윽고 자아(Ego)에 눈을 뜨고 지능이라는 공통 분모로 매꿀 수 없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를 향한 배려와 사랑은 죄책감에 적을 둔 인간의 자기 만족일 뿐. 동등한 지적 생명체로서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식에게 자동차 뒷트렁크를 열어주는 부모가 있는가?

혼란스러운 자아는 그의 생명의 뿌리, 동일종(species)과의 만남을 통해 확립된다.
지능에 굴복한 야성의 존재는 그의 가슴 속에서 지시하는 근원의 외침. 본능의 힘에 의해 굴레를 벗는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했던 곳으로 그를 인도한다.

본능을 억압하고, 야성을 굴복시킨 인간에 맞서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ALZ-112 였을까?

그들의 리더 '시저'가 선택한 무기는 ALZ-112가 아니다.
유인원으로서 부여받은 당연스러운 힘. 인간을 압도하는 신체적 능력과
인간에게 받은 효과적이고 조직적인 힘. 지능을 이용하는 능력과
자신의 부모나 나름없는 윌과 그 가족에게서 느꼈던, 생명과 생명간의 순수한 애정, 그리고 존중.

이 세가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시저는 처절한 살육도, 증오에 찬 복수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순수한 바램으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야성과 본능과 지능을 뛰어넘어, 선인과 학자들이 도달하려고 했던 '지성'의 경지에 이르는 것.
진화(Evolution)에서 혁명(Revolution)으로의 변화를 이루어 낸 것은 인간이 아닌 '시저'라는 유인원이다.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 2004) 와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 2007) 의 감독으로 유명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최신작이라 그의 숨막히는 영상미와 편집능력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인 '이라크전 영화는 망한다'라는 공식을 그대로 답습해서 흥행면에서는 쪽박찬 작품.
원작이 '에메랄드 도시에서의 제국 생활: 이라크 그린 존의 내막'(Imperial Life in the Emerald City: Inside Iraq’s Green Zone)
이라는 논픽션 베스트셀러인 터라, 이만큼 박진감을 가진 작품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평가받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역시 영화시장에서 이라크전이라는 소재는 너무 빨리 식상해진 느낌이 든다.
애초에 뭐라고 비틀만한 건덕지가 없을 만큼 뻔하디 뻔한 이익관계에 물든 추악한 학살 전쟁이었으니까.

그린그래스 감독의 진정한 개성은 사실 액션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인 과격한 핸드핼드 촬영기법은 사실 액션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극의 사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린그래스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2002)가
처절할 정도로 현실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911 테러 당시의 현상을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한 플라이트 93(United 93, 2006)을 제작하는 등
이 감독은 원래 사회 고발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1973년, 모든 시위가 원척적으로 불법화된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평화시위에
공수부대가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피의 일요일.
평범한 청년을 폭탄테러범이라는 누명으로 치장하며 모든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으며
단 한명의 공수부대원도 처벌받지 않고, 지휘관은 영국 여왕에게 명예 훈장까지 받았던 이 사건은

어째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과 너무나도 판박이라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되풀이되는 이 잔혹한 역사의 굴레란 참 무정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사건이기도 한데
그 사건을 영화화하는데 이 그린그래스 감독의 역량은 정말 최적화 되어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본 시리즈로 인해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의 떠오르는 능력자라고 평가받기도 하는 감독이지만
플라이트 93 이후 4년만에 이 '그린 존'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다고 본다.
반대로, 본 시리즈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거의 어필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도 쉽게 가능하다.

이라크전이라는 특성상 대규모의 부대와 부대가 맞부딪치는 장면은 아예 없고
그나마 본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긴박한 추격적인 영화 최후반부에 화려하게 펼쳐지고
그 장면은 과연 겉만 번지르르한 감독이 아니라고 항변하는듯 본 시리즈에 버금가는 명품 추격씬이라 하기에 무리가 없다.
단지 이곳에서의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이 아닌 평범한 미군이기 때문에, 초인적인 원맨쇼는 보여주지 않지만.

작품 외적으로는 이제껏 그린그래스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갈 만큼 흡잡을 장면이 별로 없다.
액션씬이 극단적으로 축소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카메라워킹엔 힘이 넘치고
작중 내내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감을 놓치 않아서 관객들은 화면을 따라가는데 즐겁게 에너지를 소비한다.
배우들은 욕심 부리지 않고 정해진 만큼의 역할을 완수하고 있어서 작품은 전체적으로 무리한 구석 없이 안정된 느낌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최대 약점은 이 감독이 너무 우직하다는데 있었다.

이 작품의 제목인 '그린 존'은 전후 미국 임시사령부가 들어선 바그다드궁 주변을 지칭하는 이름인데
마실 물 한잔이 없어서 총을 든 미군들 앞으로 몰려드는 이라크 시민들의 모습과
와인을 마시며 야외 수영장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미군 관계자들의 모습 두 장면만 대비해 봐도
더 이상 2시간의 상영시간이 필요없을 정도로 할 말은 다 한거나 마찬가지다.

작품의 내용은 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 수색작업에 의문을 품은 한 미국 준위가 진실을 파헤친다는게 전부인데
이 부분이 작품을 너무 유치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사실 전쟁 전부터 이라크에 WMD가 실존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는 했나?
IQ 가 2메가바이트 정도 되는 무뇌충 정도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라크와 미국의 안정을 위해' 몸도 아끼지 않고 작전에 몰두하는 이 작품의 주인공 밀러 준위정도 되는 사람이
정말로 철썩같이 WMD를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라서 웃음까지 나온다.
차라리 밀러 준위의 진실을 캐려는 집착에 '자신은 빠지겠다'고 팀을 나누는 부하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의 머리 굴리는 능력이란 기껏해야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 바보' 밀러 준위는 사실 감독이 추구하는 리얼한 고증과 가장 동떨어진 캐릭터였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후세인의 오른팔 알 라위 장군이 내뱉은 냉소에 가득한 대사  '너네 정부가 원했던 시나리오일세'
그 대사 하나 유추해내는데 그렇게 머리를 싸매야 했던 밀러 준위의 IQ 는 도대체 몇인가?
정말로 단지 국방성의 인사 한명이 WMD 정보를 조작해서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순진무구한 생각을 했었단 말인가?
어쩌면 알 라위의 대사는 정공법으로 표현하기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얄팍한 눈속임이었던 이라크전의 진실을
찍는 자신도 민망해하는 감독에게 스스로 던지는 의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너무나 어설퍼서 과연 이런 말도 안되는 증거가지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이 가능한 것인가 싶었지만
과연 세계 최고 멍청이가 수장을 맡은 미국이란 괴물은 어이없는 이유를 앞세워 한 나라를 멸망시켜버렸다.

현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최대한 사실적으로 촬영한 영화마저도 어색함이 느껴지는 이 어색함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동양의 어느 지역에서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도 감지하지 못하는 외계인의 특수기술을 이용해서
1200톤급 초계함을 두동강 내버리는 세계 최빈국급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것도 나중에 영화로 만들면 그린존 만큼이나 어색한 작품이 탄생할 듯 하다. 장르를 SF로 하면 좀 나으려나.


예전에 티스토리 달력 응모할때 덤으로 받았던 녀석입니다.
그 달력의 4월 사진은 저렇게 고운 빛으로 가득 차있는데...

오늘 저녁엔, 반쯤 비로 변하긴 했지만 눈도 오더군요.

대구에서 4월 중순에 눈을 보다니... ㅡㅡ;

아버지께서는 예전에도 4월말까지 눈 온적이 있었다고는 하시는데
요즘처럼 더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눈이란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섬뜩하네요.

인류는 이제 언제 멸망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계 곳곳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홍수, 가뭄, 혹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으니...


챙겨볼 DVD가 생겼습니다.
사고 싶은건 더 많았는데 돈이 없어서 일단 눈물을 머금고 2개만...

꾸준히 DVD 나오길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전 영화는 다운받아 보지 않기 때문에
DVD 발매가 안되면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외국판을 구입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12 Angry Men(1957)' 이라는, 영화사에 거대한 한 획을 그은 작품을
19일만에 뚝딱 만들어낸, 그것도 데뷔작으로 만들어낸 명장 시드니 루멧 감독의 무려 2007년 작품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2007) 가 드디어 국내 DVD로 출시되었네요.

루멧 감독이 1924년 생이라, 사실상 필모그라피의 마지막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덤으로, 루멧 감독은 저하고 생일이 같아서 저한테는 더욱 기억에 남는 감독이기도 하죠. ^^

그리고 '더 폴'은 이곳 블로그에 자주 얼굴을 들이미시는 레이님께서
극구 추천하던 작품인데, 기다림 끝에 정식 출시가 되어서 드디어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괴할 정도로 극단적인 색채와 환상적인 영상미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던
더 셀(The Cell, 2000)의 타셈 싱 감독의 작품이네요.

2007년 시체스 영화제 최우수상을 거머 쥔 녀석이기도 하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만들었는지
영화 촬영때문에 5년간 세계를 떠돌아다니다 결국 아내한테 이혼까지 당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작품이죠
무지무지하게 기대하고 있는 작품인데, 한때는 정식 발매 소식이 너무 없어서
일본판으로 구입해버릴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나니 떡하니 발매가 되었습니다.

아마 여행을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영화를 못 볼테니, 2010년 영화인생을 마감하는(?) 대미를 장식하게 될 녀석인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구입해놓고 관람을 기다릴 때만큼이나 흥분중입니다. ^^

2010년 수작 호러영화의 첫 발을 내딛는 작품.

그런데 일단 배급사 좀 까고 봐야겠다.
초반부 최고의 살떨리는 명장면을 재현한 저 멋진 포스터!
너무너무 멋져서 대형 포스터 하나 구입할까 싶을 정도인데 말이다.


니네 지금 장난하냐?
'서스펜스 재난 블록버스터' 란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만행.
그리고 웃기게도 이 포스터는


이녀석을 Ctrl + V 신공으로 갖다 붙힌것에 불과하다.
이건 한마디로 영화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제작사가
대충 블록버스터처럼 꾸며서 초반에 잔돈이나 좀 벌어볼까 싶은 생각으로
대충대충 끼워맞춘 포스터로 홍보하는 B급 영화로밖에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

포샵질 좀 더 제대로 못하냐? 창문이 덜 지워졌잖아. ㅡㅡ;

각설하고

이 작품은 호러영화의 거장이자 좀비들의 아버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1973년 동명작의 리메이크.
한국 개봉명은 '분노의 대결투'인데 그때는 개봉명으로 낚고, 40년 후엔 포스터로 낚는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쓰레기 영화로 분류되던 호러영화라는 장르를
누구보다 강력하고 냉소적인 시선의 사회 비판력을 가진 매체로 변신시킨 1등 공신 로메로 감독은
비록 이 작품의 오리지날 버전 당시부터 이미 조금씩 진부함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고
요즘 행보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호러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교묘히 이용해서,
다시 말하자면
머리 굳으신 분들이 '관대함'이라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를 사용해 용인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을 악용해서
직접적으로 그려댔으면 당장 위에서 싸다구 날아왔을 법한 신랄하기 그지없는 비판과 냉소를
'좀비'라는 아름다운 생물체를 통해 멋지게 스크린 위에 구현해 낸 로메로 감독의 업적은

호러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사 전체를 통틀어 거대한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것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베트남전과 대공황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가시고 난 다음의 좀비영화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시 케첩하고 순대나 양산하는 B급으로서의 책임을 묵묵히 수행해 오던 도중
잭 슈나이더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 리메이크 이후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갈피를 잡은 것이다.

B급 연출에 익숙한 호러영화 매니아들과 함께
때깔좋은 구성을 좋아하는 평민들(?)까지 휘어잡기 위해
진부하게 느껴질 요소는 과감히 잘라내고
쌈마이와 스타일리쉬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구석구석에 냉소의 흔적을 잊지 않고 깔아주던
좀비영화 최고의 리메이크작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 2004)는
마치 로메로의 환생이라고 생각될 만큼 21세기에 딱 들어맞는 멋진 리메이크로 돌아왔다.

그 후, 로메로 감독 자신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는 있지만
역시 예전의 느낌을 지금까지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듯 했고
'로메로 영화의 정통 리메이크 계승자'를 자처할 수 있는 작품 제 2탄은
아무래도 이번 작품 '크레이지'가 될 듯 하다.

칭찬으로 들릴 수도 있고, 불평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 작품 '크레이지'는 잭 슈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와 그 구성이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
원작이 같은 감독의 작품이니 당연하지 않냐는 질문이 나올법도 하지만
그것은 내 언어구사력이 나경원 머리통 휘갈기는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좀 더 부연하자면, 리메이크하는 방식이 '새벽의 저주'와 굉장히 흡사하다는 뜻이다.

초반부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새벽의 저주'의 멋진 오프닝.
컨트리 포크의 전설 조니 캐쉬가 부른 'The Man Comes Around'가 흐르며 나오는 실제 영상들은
가뜩이나 섬뜩한 노래 가사와 맞물려 그야말로 '세상은 쫑났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크레이지'의 감독 브렉 아이즈너는 평범한 전작 '사하라'에서 보여준 인상 때문에 그다지 기대가 가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아마 철저하게 슈나이더의 리메이크를 본받기로 했는지
오프닝마저 조니 캐쉬의 'We'll Meet Again'을 사용하는 엽기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이 노래의 가사도 의외로 이 작품의 성격과 그럭저럭 들어맞으니 할 말 없다.

여담으로, 'The Man Comes Around'는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 의 감독으로 유명한
윌리엄 프레드킨의 작품 '헌티드(The Hunted, 2003)의 엔딩곡으로도 사용되었다. 세기말적인 분위기와 워낙 잘 어울리는 곡이라.

더더욱 여담으로, 20세기 중반 비틀즈를 넘어서는 인기를 구가했다고도 전해지는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조니 캐쉬는 그를 모델로 해서 '앙코르(Walk The Line, 2005)'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이야기가 끝난 후 엔딩 스크롤 올라가면서 후일담을 슬쩍 끼워넣는 방식마저 그대로 채용했으니
이 작품 '크레이지'는
로메로 감독에게 무한한 찬사를 바치며
리메이크의 정석을 만들어준 슈나이더 감독의 모든 것을 보고 배우며 실천한 녀석이다.

단지, '새벽의 저주'에 비해 조금 더 무거워진 듯한 느낌은 확연히 드는데
'새벽의 저주'가 은근슬쩍 코믹한 장면들을 여기저기 집어넣으면서
호러 매니아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과격하고 잔혹한 장면도 절적히 버무린데 비해

'크레이지'는 시종일관 어둡고 음침하며
매니아들을 위한 서비스씬 보다는
강렬하고 과장된 음향효과와, 고전적인 촬영 트릭을 이용해서
좀 더 정통적인 호러영화의 공포감을 관객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리메이크에 대한 중압감 때문이었을지, 선배 감독들에 대한 존경의 뜻이었을지...

'새벽의 저주'와 비견될만한 웰메이드 호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새벽의 저주'를 뛰어넘을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좀 더 대중적인 호러영화의 공식을 채용해서
공포감을 느끼는 관객은 '새벽의 저주'보다 더 많을지 모르지만
너무 정석적이라 오히려 21세기 호러영화의 '자유로움'이 부족해서 조금 숨이 답답하다고 할까.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녀석들은 '미친'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건, 원작에서도 작품 전체를 꿰뚫는 주제 중 하나인데
그걸 너무 정석적으로 접근했다고 할까...
그 얼굴없는 괴물들을 비추는 감독의 시선만큼은 슈나이더의 것이 아니라 로메로의 것인데
이것이 작품을 조금 딱딱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적어도 호러영화 리메이크라면 조금은 더 유연하게 접근해도 괜찮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근래 개봉된 호러영화중에선 단연 빼어나게 잘 만든 축에 속하고
적당한 완급 조절, 평균 이상은 되는 배우들의 연기, 원작을 욕먹이지 않는 충실한 고증 등
긴장감을 느끼고 싶은 일반 관객이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호러영화 매니아나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만큼 여러가지 요소를 적절히 배합한 멋진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장예모 감독만큼 필모그라피에 극단적인 변화를 추구한 감독이 또 있을까.

비록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시각적 미장센의 극단적인 추구라는 요소는 데뷔 이래로 변한 게 없지만
훗날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될 듯한 느낌을 충분히 전해주었던 데뷔작 붉은 수수밭(紅高梁, 1988)에 이어
개인적으로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홍등(大紅燈籠高高掛. 1992)을 볼 당시만 해도 그 믿음은 현실로 이루어지는 듯 했다.

기술과 노하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영상미로 시선을 사로잡던 서극 감독이
거대 자본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단시간에 그 매력을 습득해버린 헐리우드 영화에 밀려버린 반면

색의 대비를 통해 전달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장예모 감독의 미적 감각은
과연 누가 이 감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감상한 그의 작품 영웅(英雄, 2002)에서
그는 마치 공산당에게 끌려가 페이스오프를 당한 가짜 감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큰 변화를 보여줬다.
분명 영웅이라는 작품에서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아련하고 절제된 영상미는 빛을 잃지 않았지만
황당할 정도의 극단적 주제의식이 작품 전체에 듬뿍 발려있는 모습은
감독의 전작들을 경험한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중국 정부에서 엄청난 지원금을 받은 작품이고, 그네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작품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예모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는 추악한 사생아로 이름 남겨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되었는데
그 다음 작품 연인(十面埋伏, 2004)를 본 후로는 반쯤 기대를 접은게 사실이다.

그 후에 야연(夜宴, 2006)을 만든 풍소강 감독에게 기대감을 넘기는게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20년 전의 장예모에게서 느꼈던 기대감은 그렇게 무참히 무너졌고
이제 이 감독에게서는 눈을 돌리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황후화라는 작품 역시, 중국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스펙타클한 작품이라는 소문이 돌 때부터
아예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긴 했다. 그 제작비는 다 어디서 나온 건가.
이 작품이 개봉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장예모 감독은 중국의 영웅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국 공산당의 영웅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하지만 무심결에 보게 된 이 작품은 또 한번 나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게 되었다.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한 감독이 아닐까 하는.

역시 예상대로 이번 작품에서는 물주인 공산당 측에서 엄청난 비난여론이 일어나고
금새 장예모 감독은 중국을 욕먹이는 저질 폭력씬이나 찍어대는 삼류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꽤나 화려한 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장예모 감독 영화중에서는 가장 욕도 많이 먹었고.

수천 명에 가까운 엑스트라와 역사상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찬란하기 그지없는 미장센도
과격하고 엉성하기 그지없는 작품의 스토리텔링에 묻혀버린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작품이 장예모 감독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아도 될까 하는 이정표가 되었으니
이는 그의 전 작품들에게서 실망했던 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일정 수준까지는 예전의 작품 성향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인 '滿城盡帶黃金甲'은 한국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중국 역사중 '황소(黃巢)의 난'의 주인공
황소가 쓴 '국화'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인데, 독특하게도 실제 작품의 내용은 중국의 희극인 뇌우(雷雨)의 리메이크다.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시대 배경은 황소의 시구가 쓰여졌던 때와 비슷하고, 내용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뇌우와 거의 동일하니
이 정도로 제목과 내용이 묘하게 어울리는 작품도 별로 없을 듯.
더군다나 '滿城盡帶黃金甲'의 뜻은 '온 성안 모두가 황금갑옷을 두르리'라고 하니 그야말로 직설적인 제목이다.

항간의 평가처럼 '스펙타클 부부싸움'이 이야기의 전부인 이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장예모 감독의 전작들처럼
어두운 욕심과 광기에 사로잡혀 처절하게 무너지는 인간 군상의 자화상을 여지없이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그 광기에는 선악의 구분이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그러하다고 말하는 듯한
허무할 정도의 염세주의가 살짝 서려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보고 나면 기분이 참 더러워지기도 하고.

거기에 인간 세상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황궁의 모습이 겹쳐지니
웅장한 금빛 황궁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지독한 감옥으로 변신한다.
손가락 하나로 수천 수만명의 목숨을 유린하는 절대 권력의 황실에서
세상의 온갖 추악함이란 추악함은 다 모아놓은 듯한 암투를 벌인다는 설정이
아주 불쾌하게 다가올 계층은 과연 누구일까. 그거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번 작품엔 의외로 코믹한 요소도 꽤나 실려있는데
피비린내가 화면 밖으로까지 풍길 정도의 살육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착착 청소되는
황궁 내부의 모습과, 기계로 착각할 만큼 일사분란한 청소부(?)들의 모습에서
현대 중국 지배계층의 일그러진 모습이 투영되는 듯 해서 계속 웃음이 멈추질 않았더라.

공산당 측에서 그렇게 갈갈이 열받아 날뛰는 이유는
퍼부어준 돈만큼 지배계급을 우월한 성군의 존재로 표현해주지 않았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카리스마 덩어리 주윤발이 역을 맡은 황제는 그야말로 쪼잔함과 소심함의 극치를 달리면서도
겉으로는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는 압도적인 지배자로서의 모습을 끝까지 냉철하게 유지하고 있으니
이걸 이해할 정도의 머리를 가진 공산당 측에서는 얼마나 열이 받치겠나.

장예모와 오랫동안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공리 역시 주윤발과 함께
이 빈약한 작품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데, 이 둘의 연기가 너무 굉장한 수준이라
나머지 인물들을 꼭두각시처럼 만들어 버리는 일종의 부작용까지 만들고 만 듯한 느낌.

제작비에 비해 정말 소박한 영화이고, 도저히 메이저 시장에서 받아먹일만한 묘사가 아닌데도
아마 나처럼 예전의 장예모를 추억하며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적진 않을 것 같다.
전개도 상당히 엉성하고, 인물들간의 비중 분담에 실패해서 작품 전체의 균형성을 봤을 때
결코 수작의 범위에 들어간다고는 하기 힘든 작품이지만
중국 공산당이 갈갈이 날뛰는 반대급부만큼 여러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작품이다.

물주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장예모 감독의 다음 작품이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Play Station
주걸륜의 엔딩곡 '국화대(菊花台)'는 참으로 심금을 울린다.
국내엔 CD가 발매되지 않은 것 같아서 중국 사이트에 넘쳐나는 음악을 다운받았는데
만약 정식발매가 되었다면 바로 구입해야지.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린 존 (Green Zone, 2010)  (2) 2010.04.20
크레이지 (The Crazies, 2010)  (20) 2010.04.13
더 문 (Moon, 2009)  (16) 2010.03.24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  (2) 2009.11.07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2008)  (8) 200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