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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6.28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Terminator Salvation, 2009) 6
  2. 2009.06.17  호러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길 4
  3. 2009.05.21  그 때의 꿈 8
  4. 2009.05.09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2007) 8
  5. 2009.04.25  이스턴 프라미스(Eastern Promises, 2007) 10
  6. 2009.01.20  콜래트럴(Collateral, 200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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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학 동아리에서 영화토론을 1년 가까이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말했던 적이 있다. 'SAS씨는 영화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시네요. 비평보다는 칭찬이 많아요' 라고.

이 자리를 빌어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
애초에 마음에 안 든 영화는 이렇게 칼로리 소비해가면서 글 쓸 필요성도 못느끼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남들에게 말하거나 하는 영화는 대부분 나에게 그럭저럭 좋은 인상을 준 작품들 밖에 없다.

실제로 T3 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래도 이정도면 뭐 카메룬이 빠진 것 치고는 괜찮은 팝콘무비 아닌가'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도로 추격씬은 그 정도면 극장서 보기 좋은 퀄리티였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이렇게 보면서 내내 멍때린 작품에 대한 글도 쓴다. T_T
왜냐고? 날려버린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한탄이라도 하려고.

몸이 불편한 예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쉬 시켜주고 밥 만들어주고 8시 30분 조조할인받아
총인원 7명인 극장서 편안하게 감상했으니 시트에 앉을 때까진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 T4는 (아니, 4 라고 붙이지 말자. 이건 모독이다) 감독, 배우, 관객 그 누구도
Salvation 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작품이라고 본인은 굳게 믿고 있다.

감독이 MCG 라는데서 사실상 거의 포기상태였지만, 정말 미녀삼총사 이후로 이렇게 눈꼽만큼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은 놀랍긴 했다.
캐릭터도 멍때리고 T-600 도 멍때리고 어이없는 자막도 멍때렸다.
머리가 짧아서 그런게 아니고 캐릭터들의 색깔이 전혀 없다. ㅡㅡ;
카메라의 흑백은 감성을 자극하지만 영화에서 캐릭터들이 이렇게 모노톤이 되어버리면
아무 배우가 갖다 때려박아도 완벽하게 똑같은 캐릭터로 대체 가능하다. 이건 배우에 대한 모독이지.

굳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문제삼지 않고 독립적인 액션영화로 판단한다고 해도
이 작품의 플롯은 너무나 엉성하고 헛점이 많아서 마치 D-WAR 보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도 안되는 어거지 전개가 주욱 이어지고,
그 헛점을 커버해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액션씬도 맥아리없기는 마찬가지.

터미네이터 아저씨 요즘 투포환에 재미들였수? 왜 그 파워 갖고 계속 던지고 놀기만 해?


아놀드 형님 닮은 T-800 나올때 비로소 이 작품은 자아를 찾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는 코메디였어'
플래시 링크거는 법을 몰라서 그냥 링크로 떼우렵니다.

이곳

꼭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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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에 걸려있는 1M가 넘는 그랑 블루 포스터.
중학생때 이 영화를 보고 고등학교때 이 포스터를 산 후 꾸준히 저희 집에서 서식중입니다.

영화에 대해선 뭐 그닥 할 말 없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바다 속 심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참 인상깊었네요.
수 많은 명장면들이 포진한 작품이지만 여전히 기억속에 남는 건 수중 대작씬과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전 지금도 물이 무서워서 쉽게 못들어가지만. ^^;
자신만의 따스한 안식처를 찾아서 떠나가는 자크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서인지
저도 항상 아직 가 보지 못한 바깥 어딘가를 동경하며 꿈꾸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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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꿈 :: 2009. 5. 21. 22:57 Photo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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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가 꽤나 오래 전에 추천해 주었던 영화인데
국내 개봉은 커녕 DVD 도 발매가 되지 않아서 참 안타까워 하다가
간신히 발매가 된 덕에 한참만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소개해주셔서 감사. ^^


감상 후
정말 징하게 호불호가 갈리겠다는 느낌이 든 영화.

기본적으로 숀 펜이 감독을 맡고 펄 젬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에디 베더가 음악을 맡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구성상 크게 허점으로 다가올 구석이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을 크게 4부류로 분류하자면
1. 유랑 여행을 좋아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
2. 유랑 여행을 좋아하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3. 유랑 여행에 관심이 없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는 사람.
4. 유랑 여행에 관심이 없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진실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
정도로 나눌수 있을 듯.

아마 이 작품을 가장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3번일 것이고
이 작품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은 2번일 것이다.

난 1번과 2번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보는 내내 절친한 동료를 만난 가슴 뿌듯한 느낌과 함께
눈에 띠게 작위적으로 구성된 주인공 알렉스 띄워주기에 여러번 씁슬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현대 사회의 합리적 구조 속에 그럭저럭 안착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렉스의 오만하고 자만심 가득 찬 허영에 가까운 무모함에 진저리를 칠 것이다. 왜 저리 멍청하냐고.
아마 '내가 저렇게 했다면 훨씬 더 잘 할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지.

하지만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는 부시맨들을 동물원 속 호랑이 관람하듯 돈을 주고 만나야 할 만큼
충분히 인간적으로, 내가 가진 인상으로는 충분히 추악하게
이익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관리되는 요즘 세상에 그나마 시원하게 한숨 한 번 쉴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어리석고 비효율적이라는 걸 알면서 가는 '무지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태풍이 지나간 후, 발정난 고양이만큼이나 히스테릭한 날씨 변화덕에 미친듯이 고생하면서
해가 막 저물 무렵 간신히 버려진 마굿간 하나를 발견해서 서둘러 자전거를 세워놓고
얼마 남지 않은 물을 탈탈 털어 밥 지어 먹은 후 건초 냄새를 맡으며 저려오는 두 다리를 눕히고
텐트를 찢어발기듯이 때려오는 매서운 바람때문에 한 숨도 못 자고
아침에 일어난 모습을 누가 봤으면 지명수배자로 착각하고 경찰을 부르러 달려갔을 만한 표정을 지었어도
자전거에 내 두 다리의 힘을 의지해 1500km를 달려온 후의 묘한 성취감은 그 비합리성을 뛰어넘는다.

바람을 등에 업고 브레이크를 잡고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길 가로 불쑥 튀어나온
북방여우 30cm 앞에서 간신히 충돌을 면한 순간.
약 20초 남짓 서로 놀란 가슴을 벌렁거리며 진정시키는 동안 가만히 상대의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때의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뛰어넘은 원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여행 말고 없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냥 여행하다가 픽 쓰러져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기 때문에
내가 이 녀석을 여느 영화평론가처럼 되도록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것 처럼 행세하며 판단하긴 어렵다.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느꼈던 것 처럼 나 역시 알렉스의 무모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막무가내 여행과
오만하고 꽉 막힌 자의식에 술술 넘어가 주는 주위 인물들의 비현실성에 진저리를 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원작 소설이나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나도 한 번 쯤은 해보고 싶다 라는 막연한 동경의 끈을 슬쩍슬쩍 잡아당기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는,
하지만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 인정하는 자연의 순리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그런 가식적인 세상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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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난 그렇다.
화려한 관광지나, 고대의 문화 유산이나 그런 것들보다
그저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평범한 시골길을 달리는게
나한테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는지, 아마 그 멍청한 알렉스라면 조금은 동감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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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크로넨버그 감독의 행보를  아쉬워하는 호러영화 매니아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과 '킹콩'을 보면서 '데드 얼라이브'때의 피터 잭슨을 아쉬움 반, 대견함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처럼.
그나마 자기 위안을 하자면, 호러영화 감독들의 본성은
그들이 아무리 장르를 갈아치워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특히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 2005)에서 시작한 크로넨버그의 새로운 행보에는 더더욱 그것이 느껴진다.

인간의 신체를 조물락거리며 그 피부속에 감춰져 있던 본성을
신기한 장난감을 만지며 즐거워하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무자비하게 드러내던 그도 이젠 머리가 좀 굵어진 건지
이제부터는 가죽 껍데기를 직접 벗겨서 보여주지 않고도 속의 내용물을 잘 묘사하는 능력을 구사한다.
호러영화 감독 시절의 크로넨버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라도 폭력의 역사에서 시작한 그의 삐딱선에 무작정 불편한 시선을 던질 필요는 없을 듯.
좀 더 대중적이고 얌전해 졌을 뿐, 여전히 그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인간의 본성이니까 말이다.

여러가지로 전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형제격 작품인 '이스턴 프라미스'는 초반 인트로부터 쌍둥이나 마찬가지.
'설마 그럴까' 라는 관객들의 의구심을 오프닝 10분만에 증명시켜 버리는 이유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따라오라'는 감독의 친절하면서 명쾌한 가이드라인이다.

전작 '폭력의 역사'가 굉장히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파해졌다면 이번 작품은 거기에 극사실적인 지역적 특색을 첨가해서 훨씬 더 명암대비가 분명해진 동시에
그 반대급부로 전작보다 작품에 대해 좀 더 세밀한 관찰과 배경 지식이 없이는 쉽게 그 맛을 음미하기가 어려워졌다.

대학생 때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에 대해 잠시나마 공부해 본 적이 있는데
러시아와 그 주변국들의 관계는 정말로 거칠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거기에 속한 부류들의 심적 상태는 그들 자신이 아니면 정말로 체감하기 힘들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본인이 중앙아시아를 좀 더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 작품의 탄탄한 현실적 기반에 훨씬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
그걸 제대로 즐기지 못한 탓에 '폭력의 역사'와 거의 동급으로 평가하고 싶지만, 어쨌든 전작보다 더욱 리얼해진건 사실이다.
'런던이 아들을 망쳤어'라는 대사 하나가 이 영화의 모든 배경을 관객이 납득시키도록 만들어 버리는 힘도 거기서 나온다.

'스캐너스'와 '비디오 드롬'이 인간의 피부를 벗겨가며 그 본질을 탐구했고
'폭력의 역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그 한 발짝 밖에 존재하는 세계의 괴리감을 통해 그것을 탐구했다면
'이스턴 프라미스'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간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묘사함으로서 그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며, 그 본성에 폭력이 내재하고 있다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번 작품은 직접 벗기는 껍질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좀 더 심층적인 본질을 까발려주는데 성공했다는 발언에 반대할 사람 없을 듯 하다.

크로넨버그가 비고 몰텐슨을 주력 배우로 삼은 건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전작에서 유약한 가장과 비정한 살인자의 이면을 한 얼굴로 표현해 낸 그의 능력에 감독이 반하지 않을 리가 없었을 터.
이번엔 훨씬 더 깊은 이면을 선보여야 했던 그는, 표정 하나하나에 관객들마저 혼란을 느낄 정도로 신들린 연기력을 과시한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결코 악과 대립하는 선의 역할을 맡은 캐릭터가 아니다.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죽일수는 없지 않냐며 키릴을 설득하는 장면.
이것이 바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인 것이다. 그 말을 할 때의 비고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을 끌어낸다.
FSB 요원이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는 그가 가장 휴머니즘적인 태도로 키릴을 설득하는 장면.
이것은 휴머니즘에 기반한 설득이 아니라 자신의 이면을 감추기 위해 그 인류애마저 포장지로 사용하는 전율적인 장면이다.
그나마 감독은 나오미 와츠가 맡은 캐릭터를 통해 비고의 위치를 좀 더 중립적인 인물로 당겨놓긴 했지만
아마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인간의 본질은 그 중립적인 인물에서야말로 극단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EVERY SIN LEAVES A MARK' 라는 포스터의 표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고의 몸에 새겨진 '죄'의 문신은 지워지지 않지만, 그것은 속죄를 바라는 표식이 될 수도 없다.
죄를 짓는 행위를 악이라 생각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아이를 살리려는 비고의 행동은 인류애적인 본성이었을까. 자신이 올라가기 위한 발판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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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감독의 작품은 사회성의 고찰보다 미장센을 통한 교감에 중점을 둔 경향이 강하다.

이 감독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
LA, 밤, 총기.

'히트'가 전설적인 두 배우의 만남때문에 큰 입소문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배우에서 입소문을 탈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탐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라는 배우의 자질은 '히트'의 두 배우에 떨어질 것이 없다고 보지만 현실은 현실.

이 작품이 그의 필모그라피 중에서 가장 내외적으로 즐길거리가 가득한 웰메이드 영화기 때문에.
남성적 이미지를 풀풀 풍기는 감독의 성격상 아무리 뛰어난 두 배우에게서라도 수박 겉핥기식의 담론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즐길거리도 풍부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똥폼만 가득 든 염세주의자 빈센트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맥스의 얼빠진 대화도
관객들에게 충분히 작품에 빠져들 수 있을 만한 당위성을 부과하는 것은 바로 감독이 사랑하는 LA의 밤거리다.
이 영화에 주연배우가 둘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

이 영화는 'LA 의 어둠' 단독 주연으로
'택시'가 조연.
'빈센트'와 '맥스'가 찬조출연하는 작품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담아낸 LA의 거칠고 쓸쓸한 야경은 마이클 만 감독이 이에 집착하는 이유를 깨닿게 해 줄 정도로 매력적이다.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텅 빈 도로 사이를 지나가는 늑대 씬이 묘하게 납득가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LA 이기 때문.
작품 전체를 짓누르는 야경의 무게는 고스란히 캐릭터들에게 녹아들어 그 힘을 발휘한다.
별별 손님들에게 시달리며 조용히 파라다이스의 꿈을 꾸는 택시기사의 심리도.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정작 희망따윈 없는 염세주의 킬러의 공허한 눈빛도.
그 LA의 야경이 없었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장면이 되었을 것인가.

물론 이런 거대한 문명의 산물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감독으로서의 체면도 살지 않을테니
우리의 총기오타쿠 마이클 만 감독께서는 커맨터리를 즐기는 미장센 매니아들의 기대를 져버리기 않기 위해
눈돌아갈 정도의 현실성이 녹아있는 액션씬을 선보여 준다.
'히트'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고, 감독 스스로 '히트'가 이 '콜래트럴'의 연습작이었다고 공언한 만큼
얼핏 보면 단순한 듯한 액션 씬 하나하나가 정말 리얼리티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빈센트가 거리의 시인들을 손봐줄 때의 그 움직임!
아마 어떤 전문가를 가져다 놔도 그 이상 훌륭한 대응을 보여줄 순 없을 것이다.
탐 크루즈가 이 씬을 찍으면서 감독에게 얼마나 볶였을지를 상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이미 정평이 난 총기 고증과 사용 자세, 리얼하다못해 환상적인 격발음 등은 말하면 입만 아픈 지경.

지하철에서의 마지막 씬은
아마 빈센트의 총기 사용 능력을 간파하고 있는 경험자라면 금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지만
나같은 일반인들은 영화를 한두 번 정도 더 봐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관객을 위한 설명조차 최소한으로 제한해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현실성이야 말로 감독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마이클 만 감독은 이 작품 이후로 '마이애미 바이스 극장판'을 통해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와버린 듯 하지만
(인사이더와 콜래트럴 외의 작품은 주제보다 소품이 부각되는 감독의 고질적인 특징이자 약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LA의 야경과 총기류에 목매다는 그의 지극히 매니아틱한 취향은 여전히 작품을 재미있게 여러번 즐길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