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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해당하는 글들

  1. 2010.03.24  더 문 (Moon, 2009) 16
  2. 2010.03.03  진짜 오해란 이런 것 31
  3. 2009.11.07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 2
  4. 2009.07.24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2008) 8
  5. 2009.07.04  작전명 발키리(Valkyrie, 2008) 8
  6. 2009.07.04  클로버필드 (Cloverfield, 2008) 4

한국 영화 제작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500만 달러 초저예산 영화이자
2009년 시체스 영화 최우수상을 수상한 작품.

보통 아카데미가 보수적이라는 관념의 대명사로 표현되듯 중소 규모의 인지도있는 영화제에서 이름을 날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좀 철학적이고 덜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한 듯 한데, 전자는 그럭저럭 들어맞는다 쳐도 후자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 이번 42회 시체스 최우수상을 거머쥔 이 작품은 내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우주 프롤레타리아(?) 영화라서
부푼 마음을 안고 극장에 갔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사 독립영화만세~ 관객이 단 한명도 없었다.

새벽 1시 반쯤 마지막 상영이라, 올라가는데 프런트 직원이 불러세우더라.
'손님 어디 가십니까?' -> '영화보러 가죠' -> '1시 반 마지막 영화 말씀하시나요?' -> '네'
도대체 그 건물 전체에서 그 시간에 문 연곳은 극장밖에 없는데도 그걸 꼬박꼬박 물어보는 직원의 의도가 심히 의아했지만
극장 전체를 통째로 전세냈다는 즐거움 덕에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영화 끝나고 나갈때도 이미 극장 복도엔 직원외엔 단 한명도 없는 정적 그 자체였으니 좋은 경험했다.

이 작품을 SF라고 부르기 껄끄러운 이유는, SF의 사실적 고증에는 완전히 눈감은 듯한 설정을 보여주는데다
소재만 근미래를 채용했을 뿐이지 실상은 40년전 광산업에 종사하던 Blue Collar들의 자화상과 전혀 다른 점이 없기 때문.
거기다가 충분히 관객들의 다양하고 즐거운 고민거리를 충족시켜주는,
심리적 고뇌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소소한 장치들 역시 요소요소에 적절히 삽입되어 있어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저예산 영화치고는 때깔도 상당히 좋은 느낌이다.

스포일러때문에 직접 언급하진 않겠지만
이 작품에서의 샘 락웰은 감독이 원하는, 작품에 필요한 딱 그만큼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사실상의 원맨쇼나 다름없는 이 작품에 굉장한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샘 락웰의 어색함과 두려움, 진실에 대한 갈망이 담긴 눈동자가 마치 물리적인 호소력에 의해
가슴에 압박을 느낄 정도의 상태를 체험하게 되는 사실에 그저 관람 내내 즐겁고 즐거울 뿐이다.

목소리와 화상 통신에까지 나오는 모든 인물을 다 합해도 총 등장인원 10명이 되지 않는
이 극단적인 단절의 작품은, 그 10명에게서 60억 인류의 모든 자화상을 다 그려내려고 노력했고
결과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밖에 칭찬할 말이 없다.

영화가 끝나도 계속 머리싸매는 고민을 즐길 수 있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프레스티지(The Prestige, 2006)의 설정처럼
이 작품도 샘 록웰의 (어느 쪽이든) 심리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납득, 혹은 부정적인 견해를 파고드는데
영화 러닝 타임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프레스티지의 장면을 생각해 보자.
순간이동 장치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나'라는 존재는 이 우주에 단 하나 뿐.
하지만 이동이 끝나는 순간부터 완벽히 하나였던 자아는 합쳐질 수 없는 두 개로 나눠지고
분명 1초 전까지 나였던 '상대방'은 이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는 타인이 된다.
그리고 순간이동 장치의 한 쪽에밖에 놓여있지 않은 한 자루의 총.

매번 장치를 통과하면서
'자신의 자아는 과연 총을 맞고 죽어가는 쪽이 될 것인가 총을 쏘아 방금 전까지 자신이었던 타인을 죽이는 쪽이 될 것인가'
라는 두려움에 떠는 그 느낌은 아무리 거머쥐려 해도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같은 애절함과 비슷한 감정이다.

이 'Moon'이란 작품은 이런 정체성의 정의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10명도 안되는 등장인물을 통해.

타인의 정체성 따윈 안중에도 없이 이익을 위해 악마와 손을 잡는 'SARANG'스러운 인물.
조작되고 통제된 감옥속에서, 자신이 감옥에 갖혀있다는 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노예 계급.
진실을 알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생명도 버릴 수 있는, 좀 더 인간다운 인물.
그리고 인간 본성이 다다라야 할 선의 정점인, 냉정한 공정함을 갖춘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 '거티'

이 모든 사회 구조적인 계층과 인물상을 이렇게까지 우겨넣을 수 있는 작품은 그리 흔치 않다.
너무나 진부한 소재,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어 온 불평등과 윤리성에 대한 질문, 최소한의 안전 장치조차 밥말아먹은 SF 요소의 오류투성이.
찰랑거리는 액체수소만큼이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공식들을 다 머무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초저예산 영화는 그저 조용할 뿐이다.
헬륨 3를 채취하는 달표면처럼 조용할 뿐이다.
하지만 헬륨 3를 채취하는 거대한 굴착 기계의 괴물같은 역동성 역시 갖고 있다.
매우 힘있고 단단하며, 감독의 의지를 과장없이 드러내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무언의 파괴력을 가진 작품이야말로
저예산, 혹은 독립영화들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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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2009) :: 2010. 3. 24. 00:29 Movie


2004년 쯤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으로 가던 도중이었는데요.
몸이 안좋아서는 아니고, 예전에 평범한 검사 하나 예약해놓은거 받으러 가는 중이었죠.

라디오에서 제가 한국 영화의 명작중 하나로 꼽는 '지구를 지켜라'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까지 그 영화를 보지 않았거든요. 봐야지 봐야지 하는데도 계속 미루고 있었던 터라.

그 놈의 라디오에서 '이제 볼 분들은 다 보셨으니 이야기 하는건데요...'
라면서 영화의 중요 내용을 까발리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화 까발리기 등에는 굉장히 민감해서, 일부러 저한테 안 본 영화내용을 까발리는 친구하고는 절교도 할 정도입니다.
당황한 저는 머리를 숙이고 귀를 막고 입을 껌뻑껌뻑하면서 그 라디오 소리를 안 들으려고 고생했죠.
택시 기사분께 '라디오 좀 끄세요!'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그러다가 다 들어버릴 것 같은 타이밍이라서... ㅡㅡ;

한 몇분 그러고나서 슬그머니 귀를 풀고 고개를 드니 다행히도 영화 이야기는 넘어가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대니까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 근심어린 얼굴로 한 마디 하시더군요.

'저기, 응급실로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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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속빈 강정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더라.
덕분에 이런 영화가 '이건 SF의 탈을 쓴 풍자영화다'라는 표현까지 얻어먹고 있다.
SF영화의 특성상 시청각적 자극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고, 그 부작용으로 어중이떠중이 영화나 철저한 상업용 블록버스터 영화가 워낙 많이 나와서
그 반동으로 이걸 SF라고 부르기 아쉬워하는 사람이 생기는가 보다.

SF영화를 무시하지 말라.
SF영화가 겉멋만 든 저급 영화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순간 당신의 영화에 대한 무지함을 자뻑하는 결과가 된다.

영화 역사상 SF라는 장르는 수많은 B급 혹은 말초신경 자극적 작품의 홍수 속에서도
어떤 장르보다 지독하게 현실을 파고드는 특징을 잃어버리지 않고 이어져 왔다.
뭔 말이다냐 싶으면 두말하지 말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를 감상하시길.

동 감독의 짧은 독립영화 'Alive in Joberg'를 장편용으로 다시 제작한 이 작품은
나의 우상 피터 잭슨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전폭적으로 지지해 줄 만큼 그와 나의 취향에 딱 맞다.
구역질과 혐오에서 웃음을 찾으면서도 순수한 아름다움의 추구에 대한 열정이 공존하는 기괴한 피터 잭슨의 영화관에 비추어 보면
닐 블롬캠프의 6분 남짓한 단편영화는 잭슨의 욕망을 순식간에 충족시키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잭슨 감독이 적극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던 거대한 담론에 대해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탓에
최고의 풍미와 함께 눈까지 즐겁게 만드는 일품 요리와 같은 두 가지 성과를 잡아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가슴을 아프게 하는 묘사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에 기분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외계인의 태아를 즐겁게 태워죽이는 모습, 예전 잭슨 감독의 작품이라면 크게 웃으며 즐길수 있겠지만 여기선 그러지 못한다)
한없이 진지해지기만 해서는 잭슨의 후계자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을 터.
모든 현실적, 정치적 감정을 배제하고도 후반부의 액션씬은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에서 토악질을 느껴야 할 장면은 인간의 몸이 풍선처럼 빵빵 터지는 곳이 아니라
사위를 산 체로 해부하는데 무덤덤하게 동의하며 딸에게 태연히 거짓말 하는 장인의 얼굴이다.

메뚜기와 바퀴벌레를 닮은 추악하고 멍청한 외계인의 모습.
강제 퇴거를 위해 살인 말고는 무엇이든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인간의 모습.
이건 감독의 창작물이 아니라 1970년대의 남아공 District 를 그대로 가져온 다큐멘터리나 마찬가지.
그리고 그런 일은 지금도 세계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어떤 나라에서는 퇴거하지 않는다고 정말로 불에 태워 죽이기도 하더라.

이렇게 영화 속에서 노골적으로 까발려주는 비참한 현실에 몸부림치다가도 감독은 우리에게 따스한 손길을 잊지 않는다.
나의 열받은 머리속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후반부의 신나는 학살 씬에서 나는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껏 열받은 거 신나게 뒤풀이나 해보자는 느낌의 후반 전투 장면은 2천만불의 저예산 영화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박력 만점이다.
올해 나의 불쾌지수를 하염없이 올려주었던 MCG의 로봇 뿅뿅물이 이거 10분의 1만 따라갔어도 내 수명이 그렇게 줄어들진 않았을 거다.
특히 주인공 비커스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성격이 큰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감정의 이동도 무난하게 소화해 낸 덕에
그의 절규와 그의 배신과 그의 마지막 대사가 이 작품을 단순한 쾌감충족식 SF 액션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함정에서 구해낸다.

조금 진부하지만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어색함이 없는 잔잔한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비로소 웃으며 일어날 수 있다.
로드 오브 워(Lord Of War, 2005)의 결말이 행복하다면 되려 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이런 희망적인 결말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관용이 스며있다.
이것이 SF라는 장르가 가지는 최고의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SF는 미래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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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배경은 1982년의 스웨덴.
전 세계의 수많은 관객들도 그랬고, 감독 자신도 밝혔듯이 이 작품은 시대상을 부각시킨 배경을 활용하진 않았다.
'판의 미로(Pan's Labyrinth, 2006)'처럼 알고 있다면 감상에 큰 플러스 요소가 되는 작품과 달리
1980년대 스웨덴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감상엔 아무 지장이 없다.

이 작품이 '굉장히 스웨덴틱한 영화'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시간적이 아닌 공간적 배경을 기막히게 잘 살렸기 때문이니까.
잘 만든 영화는 어디서든 통한다는 말이 과연 틀리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듯
이 작품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너무 잘 만들어서'라고밖에 할 수 없겠다.
북유럽의 끔찍할 만큼 아름답고 황량한 자연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고독의 본능을 심어주었고
사람이 만든 영화 역시 (원작 소설도 마찬가지)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태어났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배경, 인물에서 느껴지는 고독.
함께 모여 수다를 떨 때도 어딘가 지쳐 보이는 사람들.
학생들이 가득 차 있을 때도 여전히 삭막해 보이는 교실은
혼자 남은 오스칼이 교실의 불을 끌 때, 사방에서 숨을 죽이던 암흑같은 고독으로 일순간 덮혀버린다.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뱀파이어는 훈남 호스트로도, 근육질 액션스타로도, 백마탄 왕자님으로도 나타나는데
북유럽의 근원적 고독을 등에 안고 태어난 12살의 뱀파이어 이엘리는 내가 본 최고의 뱀파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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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의 외모, 수백 년의 인생, 중성적 존재이자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야수.
그리고 왕따당하며 내면에 폭력과 증오를 키워가는 진짜 12세의 인간 오스칼의 내면적 대변자.

이 수많은 요소를 한 몸으로 표현해낸 이엘리 역의 리나 레안데르손은 영화를 찍을 당시 11세였다.
그야말로 감탄을 금할 길이 없는데, 감독이 가장 중요한 이 배역을 찾는데 꼬박 1년을 보냈다는 인터뷰를 보고 '과연!'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나이프를 나무에 꽂으며 억눌린 분노를 표출하는 오스칼과
단지 살기 위해서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빠는 이엘리.

마음 속으로 수십 번을 살인하는 오스칼이 그 나이 또래가 겪는 혼란을 나름대로 소화해 내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살인과 흡혈행위에 아무런 분노와 폭력성을 내제하지 않은, 수백 년을 성숙한 개체인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치며 그를 성장시키는 전지자에 가깝다.

장르적으로 명백히 성장드라마에 속하는 이 작품이지만 그 성장의 주인공은 12세의 오스칼이지 이엘리가 아니다.

그녀는 오스칼에게 첫사랑의 섬세함과 애매함을 가르쳐 주고
내면에서 끓고 있는 폭력성의 표출을 도와주며
자신이 갖고 있는 수백 년간의 고통을 체험시켜주며
오스칼에게 선택의 기회를 던져준다.
가끔 다정하지만 의지할 수 없는 어른인 오스칼의 부모 역할을 톡톡히 대신해 주고 있는 것.

특히 마지막 수영장 씬의 고요한 학살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답기까지 한 폭력의 대리 표출이었다.
역대 호러영화의 전당에 들어가도 될 만큼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 장면은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에서 한니발 렉터가 경비원들을 살해한 후 즐기는
평온한 음악과도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최고의 명장면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감독은 '자기 생각으론' 분명한 해피 엔딩이었다고 하지만
결국 오스칼의 미래는 영화의 첫 장면과 완벽하게 오버랩된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에
진정으로 씁쓸한 소년의 성장 이야기는 더욱 아름다우면서도, 예정된 슬픈 비극을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환선을 그린다.

자기와 사귀자는 말을 들은 이엘리가
한동안 망설이다가
'지금과 변하는 것이 없다'는 오스칼의 말에
'그럼 사귀자'고 대답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영생의 존재로서의 동반자의 역할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것이 성장기를 거치는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무성애적 사랑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가치는 더욱 극대화 된다.

오스칼은 이엘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가 맞이할 미래는 이엘리가 몇 번이고 반복해 온 허무함으로 끝남을 알고 있으니까.

고전적인 뱀파이어물은 신물이 났다며 온갖 변종 꽃미남, 미녀들을 생산하는 영화계지만
2008년에 이런 우직할 정도의 정통 뱀파이어물이 눈 돌아갈 정도의 영상미를 과시하며 등장한 것은
결국 인류 역사와 함께 할 영원의 생명을 가진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아무리 식상하다고 해도 그 근원에 인간 본성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는 이상
그 수명을 다할리는 없다는 사실을 기분좋게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 마지막 장면의 모스 부호는 스웨덴어 'PUSS'
영화를 다 본 후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시길.

* 왜 이엘리가 '자신이 XX가 아니라도 괜찮아?' 라고 묻는가에 대한 대답은
영화 중간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장면에 나와있지만
원작 소설에 비해 굉장히 압축된 영화상에서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장면을 넣은 것은
애초에 이엘리가 오스칼의 이성적 상대가 아닌 내면의 동일체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에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감독의 의도에 잘 들어맞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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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독일과 현 대한민국의 상황이 심히 비슷한 고로 감상이 자꾸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긴 했지만
이 작품은 굳이 애써 영화를 영화로만 즐기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류의 감정이입이 감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작용한다.

유럽에서, 특히 독일에서는 2차대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만 갖고 있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실화지만
한국에서는 이 실화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 좀 더 적절한 긴장감 조성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히틀러가 2차대전 말미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일부러 이 영화에서 반전을 기대하는 우를 범하진 말길 바란다.

결말이 만천하에 다 까발려진 내용을 영화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감독과 배우의 역량이 관객의 나머지 기대치를 뒤덮을 정도로 뛰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인데
슈퍼맨 리턴즈(Superman Returns, 2006)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둔 브라이언 싱어가 선택한 이 작품은
다행히도 그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진 작품이었다.
(슈퍼맨 리턴즈는 영화 자체가 아니라, 감독이 작품 선택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촬영이 실제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이루어진 사실 등
철저한 리얼리티를 추구한 결과 미장센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깔끔한 화면과 박력있는 사운드가 50년 전의 미장센과 만나는 묘한 이질감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

작품의 특징은 초중반의 잔잔한 진행 가운데서도 항상 불안한 긴장감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
적절한 구성과 상황에 맞는 대사만으로 자칫 획일화되기 쉬운 인물들의 특징을 정확히 묘사하는 능력을 보면 역시 브라이언 싱어로구나 싶었다.
유독 안티팬이 많은 탐 크루즈라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 역시 안티로 비춰질까 해서 약간 움찔하지만
이 작품의 주연으로서 합당한 연기를 보여주었나 한다면, 상당히 미묘한 해석의 갈등이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분명 전시 독일 장교라는 신분을 생각한다면 적당히 딱딱하고 1950년대틱한 훌륭한 연기임에 틀림없지만
조연들의 열연이 거의 하극상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한 편이라 작품 전체를 휘어잡을 인상을 주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암살작전이 실행되는 후반부부터는 결말이 어떨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에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작품 전체를 가득 채운다.
어떤 화면을 봐도 '어차피 실팬데 뭐' 라고 매번 자신을 굳세게 세뇌하며 영화 감상하는 무뇌아들이라면 심심할지도.
내가 바랬던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는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느낌에 온 몸의 세포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다른 관객들에게 적극 추천하느냐? 그건 아니다.
감독이나 배우, 역사적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부류가 아니면 이 작품은 분명 어딘가 지루하다.
히틀러 암살이라는 사건이, 그리고 발키리라는 작전이 가지는 거대함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엔 아무래도 화면에 뿌려지는 규모가 너무 소박한 점이 있어서일까.
짧은 시간에 최대한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풀어내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워낙 역사적으로 얽히고 섥힌 배경이 많은 혼란의 시기여서 이 역시 충분하다고는 못하겠다.
영화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장면이 현실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독의 재량을 넘어서는 극적 긴장감을 만드는것은 태생부터 무리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혹자는 '저 작전이 실패하면 피해를 입을 주위 사람들 생각해 봤나'며 클라우스 대령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러니 인류 역사 이래 지구는 이모냥 이꼴로 돌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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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히도 함께 구매한 영화가 쿼란틴(Quarantine,2008) 이었는데
이 작품 역시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인데다가, 클로버필드보다 딱 2배정도 더 흔들리기 때문에

15년간 FPS 게임으로 다져진 나로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끝까지 본 터라
그 다음날 감상한 클로버필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느긋하게 감상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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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해 따로 감상평을 쓰지 않는것은 제대로 된 영화 감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지러웠기 때문.
호평받은 스페인영화 'REC'의 리메이크작인데, 호러영화 매니아로서는 그냥저냥인 작품. 고어씬도 생각보다 적어서 아쉬웠다.

각설하고, 클로버필드는 떡밥의 대명사 J.J 에이브람스가 제작을 하고 그의 절친한 친구인 매튜 리브스가 감독을 맡았던 탓에
개봉 전부터 무수한 추측과 기대감을 갖게 한 유명한 작품인데, 적어도 이름값에 걸맞을 만큼의 성과는 이뤘다고 본다.

신선함으로 본다면 이미 10년전에 나온 '블레어 윗치(The Blair Witch Project, 1999)' 에 미치지 못하고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2005)' 초반부의 압도적인 스펙타클과 비교해도 큰 임팩트를 주진 못하지만
적어도 감독의 의도를 관객들에게 어필하는데는 충분히 성공했다.

거의 모든 핸드헬드기법 모큐멘터리식 영화의 장점이자 한계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고
딱히 여기서 말을 꺼내야 할 스토리도 전혀 없는 작품이다.
그냥 앉아서 편안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진정한 팝콘무비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그 질이 떨어지는건 아니다.

감상내내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단 한가지.

이 작품은 극장이 아니면 관람할 가치가 70%는 사라져 버린다.
21세기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박력있는 사운드를 들려준 작품중 하나였다는 평이었으니까. ㅡㅡ;
이 작품의 박력은 핸드헬드 촬영에서 오는게 아니라 관객을 짓눌러 버릴 정도의 강력한 사운드에서 나온다.
대형 TV들이 많이 보급된 지금이라도 한국서 스피커 볼륨을 꽝꽝거리게 할 수 있는 집은 거의 없을 터.

솔직하게, 집이 떠나갈 정도의 소음에도 주위의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방음설비가 완비된 집이 아니라면
집에서 클로버필드를 보는건 김빠지고 미지근한 맥주를 마시는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DVD 나 블루레이는 솔직히 비추.
사운드가 너무나 압도적인 작품이라 사실상 최대의 재미를 느낄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