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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5  후쿠오카 여행 - 다자이후 텐만구의 매화 13
  2. 2012.03.24  후쿠오카 여행 - 다자이후 텐만구로 향하는 길 6

원숭이 묘기를 감상한 후 천천히 텐만구 본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들어가기 전에도 매화나무는 여기저기서 보이니 서두를 것 없다.
이 때쯤 되니 정신이 더욱 몽롱해 지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왜 찍었는가 가물가물한 사진들도 가끔 보이더라.


본전으로 통하는 입구가 이 정도로 화려한 텐만구는 별로 없다.
텐만구 주위를 살짝 감싸는 나즈막한 산의 푸른색과 매화의 흰색, 무거운 붉은색의 입구의 조화는 실로 아름답다.
여기에 푸르른 하늘만 더해졌으면 좀 더 넓은 사진을 담았을 테지만... 우중충한 회색 하늘은 살짝 빼버리는게 나은 느낌.


매화나무 아래에 앉아 있어서 그런가, 조금 전의 황소보다는 좀 더 여유가 느껴지는 듯 하다.
뒤에는 봉납된 일본 전통주들이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보통 신사들은 저 봉납주들을 좌르륵 배치함으로써 '나 이런 신사야'라는 듯한 위엄을 자랑하는데
이곳 텐만구는 어쩐 일인지 그다지 시선을 끌지 않는 곳에 소복히 배치해 놓은 점이 특이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성하고 위압적인 느낌보다는 운치있고 친근한 느낌이라서 그럴까.
아마 이곳을 대표하는 매화의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암약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만개하진 않았어도 매화는 매화. 꽃은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다울 뿐이다.
곤충으로 치면 탈피, 인간으로 치면 출산이나 마찬가지인, 응축한 생명력을 목숨걸고 일시에 폭발시키는 행위인데
어떤 종이든 그것은 역시 숭고하고 아름다운 듯.


본전 쪽으로는 좀처럼 발길이 가지 않는다. 주위에 담고싶은 풍경들이 자꾸자꾸 나타나서.
바다 건너서 관광지까지 왔으니 뭔가 본전을 찾아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사라지고
그냥 발걸음과 시선이 이끄는 대로 터벅터벅 걸어다니며 풍경을 즐기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텐만구 바로 옆 골목길에는 조그마한 노점상들이 타코야키나 옥수수구이 등을 팔고 있다.
가끔 아이스크림이나 타코야기 들고다니며 먹는 젊은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다자이후 텐만구 안에는 쓰레기가 단 한조각도 없었다.
입구 바깥에서 담배피던 개념없는 한국인 관광객 무리를 제외하면.
이게 그렇게 어려울 일일까 항상 궁금하긴 했다. 나도 태어나서 한 번도 공원내에서 쓰레기 버린적이 없는데.

이런데서 쓰레기 한번 버려주지 않으면 금연이나 금주중인 사람처럼 초조하고 안절부절한 걸까?


160종이 넘는 매화라고 하니 정말 신기한 녀석들이 간간히 보인다.
매실 따먹으려고 매년 봄에 전지하던 매실밭 녀석들도 가만 놔두면 이렇게 되는 건가?
풍류를 즐기려면 전지를 포기하고 1년 정도는 이렇게 매화가 만발하도록 놔두는 것도 괜찮긴 하겠는데.
물론 그 다음해 전지에서 지옥을 맛보게 될테니 그냥 우리 밭의 매실나무는 매실만 튼실하게 자라나주길 바랄 수 밖에.


조그마한 연못엔 거북이가 부족한 일광욕중이다. 바닥의 상태를 보니 올라와서 한참 지난 듯 하다.
상당히 멀리 있던 녀석인데, 사진으로 확인해보니 뒷다리를 집어넣고 한껏 느긋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주변에 드문드문 떨어진 매화잎사귀를 보니 이녀석도 풍류를 즐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꽃을 볼때면 아무 생각도 말도 불필요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냥 보고 즐기면 그걸로 행복하다.


매화는 아직 봄을 알리기엔 조금 이른 듯 하지만
대지와 가까운 곳에서는 분명히 봄이 느껴진다.
다들 매화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뺏기고 있지만 이 녀석들은 묵묵히 제 할일을 하는 중.


본가 매실밭에서 꽃잎이 몽글몽글할때 새순들을 전지해 버린 기억이 있어서
이게 매화인지 벚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활짝 피려고 준비중인 녀석들이 반갑다.
매화는 눈이 호강하고, 매실은 배를 채워주니 어느 쪽으로든 좋은 녀석들이다.


한참동안 꽃구경하며 돌아다녔더니 아직 본전쪽으로는 이동하지도 못한 상태.
잠 하루 안자고, 배멀미에 시달리고 나면 체력이 이렇게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중이다.
저녁엔 친구한테 부탁받은 것들을 둘러보러 번화가인 텐진(天神)으로 가 봐야 하기 때문에
꽃구경도 좋지만 이제 슬슬 진도를 나가볼까 한다.


오랜 방황끝에 본전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좀 번들번들해 보이던 입구와는 달리 본전쪽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중후한 느낌이 든다.
오른쪽의 매화나무가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사후 하룻밤만에 쿄토에서 이곳까지 날아왔다는 그 매화나무.
그래서 이름도 토비우메(飛梅)라고 한다. 거 참 빠르기도 하지.


토비우메보다는 이 녀석이 주변 환경과 참 잘어울려서 한 컷 담아봤다.
본전의 왼쪽에 분홍 매화, 오른쪽에 흰 매화라. 참 운치있는 광경이다.


본전 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이것.
점점 커가는 매화나무를 위해 울타리 부분을 뚫어낸 마음가짐이 훌륭하다.
소소한 배려지만, 그 덕분에 하나의 조각상과 같은 조화로움이 눈길을 끌게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의 깊은 역사와 훌륭한 경관은 이런 세심함이 있었기에 더욱 빛이 나는게 아닐까.


일본 신사에 들어가서 이 에마(絵馬)를 카메라에 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원래는 진짜 말을 봉납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겐 꿈도 꾸지 못할 헌물이었고 신사 측에서도 말의 관리에 힘들어했기 때문에
나무나 종이에 말을 그려서 대신 봉납하던 관습이 지금의 에마 시스템을 만들게 되었다. 신사의 주요 관광 수입원중 하나.

신사에 들르면 여기서 재미있는 소원이 적힌 에마를 찾아보는게 빼먹을 수 없는 즐거움인데
텐만구의 총본산인 이곳은 그야말로 거의 대부분의 소원이 성적에 관련된 것들이라서 별로 재미가 없다.
한글로 써진 에마도 상당수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높은 확률로 커플의 염장질이 낳은 산물일 가능성이 있다.


신에게 비는 소원이란 개인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브루스 올마이티를 보시길.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이 정도 내용이라면 이곳의 신도 납득하지 않을까 싶다.
'이 에마를 본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이라는 내용이다.
이 녀석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조금은 행복해 진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소원은 이루어 졌겠지.


글씨를 보니 어린아이가 적은 에마인 듯 한데...
아마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씨도 대체 이 녀석이 뭘 빌었을지 궁금해 했을 듯.
뭘 어쩌라고?


본전 주변은 조형적으로도 그렇지만 색상의 조화가 훌륭하다.
일본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이세 신궁을 비롯해 상당수의 신사들 중
이렇게 알록달록한 신사는 손에 꼽을 정도니까.

영험한 색으로 여겨지는 붉은 색의 건물과, 그 주위를 매꾸는 푸른 숲이 일본 신사의 기본 배치인데
수많은 매화꽃이 더해지니 좀 더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일본의 신사는 이 정도로 어깨의 힘을 빼는게 좋다.


만족스럽게 구경후 왔던 길을 되돌아 텐만구를 빠져나가는 중.
같은 길이지만 방향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전혀 달라진다.
이건 신사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라는 것을 자전거 여행중 깨달았다.
도쿄와 나고야를 왕복하던 도중, 급하니까 이건 돌아올 때 찍어야지 하고 지나갔던 것들은
돌아오면서 보니 그 때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달라서 '이 곳이 정말 그때 그 곳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센다이 주변의 인심좋은 모텔 아주머니가 인생의 교훈으로 삼던 '一期一会'라는 말과 일맥상통 할 듯.


가던길에 담았던 중요문화재 지하사의 모습도 한번 더 담아본다.
보수야 수도 없이 거쳤겠지만 600년 전의 목조 건축물이 이 정도 수준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은 감탄할 만 하다.

건축 당시에는 이 앞에 불단과 금으로 만든 제구들을 놓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지구상의 금속 중 가장 안정화된, 자연적으로는 결코 부식되지 않는 불멸의 상징인 황금은
아마도 인간의 욕심때문에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고 쉽게 상하는 나무재질의 사당만은 600년동안 살아남아 전해지고 있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닐까.


이끼와 풀로 덮힌 나무의 모습은 언제 봐도 마음에 든다.
일부러 찾아다니진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본 기억이 없는 모습.
나쁘게 보면 나무에게 기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살짝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리얼한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어서 좋다.


이 정도 되면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 미술 작품이 되는구나.
나이테는 나무를 잘라내야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저절로 나이가 연상되는 듯 하다.

시각은 5시 쯤이라 여유가 있는 편인데, 체력적인 여유가 많이 부족해서 슬금슬금 텐만구를 빠져나온다.
사실 다자이후에 온 이유가 이곳 텐만구 이외에도 하나 더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널널한 것도 아니다.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은 오늘 중으로 구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일단 가게 위치와 판매 여부 확인차라도 7시 반 정도까지는 텐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텐진까지는 30분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살짝 조급만 마음과 파들어가는 안구를 진정시키며 텐만구를 나선다.

텐만구로 향하는 길엔 어디나 그렇듯 기념품점과 특산품점이 늘어서 있다.
이런 거리를 걸을 때면 항상 인사동 거리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시각적인 면에서 인사동과 이런 거리를 비교하는 것은 각각의 필터를 따로 사용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텐만구(天満宮)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신사를 일컫는 총칭이다.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의 실존하는 유명한 학자였으며 관직에서 좌천된 후 사망했는데, 그 후 황족들의 돌연사가 이어지자
원인으로 지목된 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신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신으로 추대받는 사람치고는 좀 째째한 그릇인가.

예나 지금이나 학문의 성취는 출세의 길로 들어서는 1관문이었으니, 이 사람을 모시는 텐만구가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중에서도 이 다자이후 텐만구는 일본 텐만구의 총본산이기 때문에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원래 텐만구는 다른 유명 신사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그리 크지 않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텐만구인 호후 텐만구(防府天満宮)와 함께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텐만구로 유명하다.

이런 텐만구 앞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일까.
집단성이 강해서 문제 일으키면 마을에서 살아가기 힘들었던 일본인들의 의식과 결부되어
다자이후 텐만구의 얼굴 역할을 맡은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과, 그 명성을 더럽혀서는 안된다는 강박 관념이
지금의 정갈하고 수준높은 상가 거리를 만들었다고 개인적으로 추론해 본다.

이걸 단순히 '전통적'이라는 너무나 포괄적인 범주에 함께 놓고 생각해서 인사동 거리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
물론 개인적으로 인사동 거리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그 문제점을 지적할 때 이쪽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애초에 인사동 거리에는 다자이후처럼 집단 최면에 가까운 신비성과 경건함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3.1운동 시발점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지금의 인사동은 어두운 60년대를 힘겹게 보내던 사람들의 추억이 여기저기 모인 자연집합체와 같은 느낌.
각종 약재상, 허름한 잡동사니 가게들, 통금후 갈곳 없는 시민들의 배를 채워주던 막걸리 가게가 그 시발점인 것이다.
시작부터가 경건함을 무기로 한 텐만구 앞의 상점 거리와는 전혀 다른 거리였으니,
훨씬 난잡하고 국적불명의 싸구려 짝퉁들이 판치며, 아무렇게나 비집고 들어오는 자동차들로 혼잡한 인사동의 거리는
원래부터가 그런 시장바닥의 구수함을 느끼며 성장해온 곳이기 때문에 그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이 거리가 외국인 관광명소로 어찌어찌 알려지다 보니, 괜히 마음에도 없던 전통의 향기를 온 몸에 뿌리려 한다는 점이지.
인사동 거리는 애초에 조선시대 이전의 향기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걸 이제와서 있어보이는 찻집과 미술관 등으로 치장하려 하니
근본 깊숙히 내제되어 있는 무질서의 매력과 충돌하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난잡한 거리로 전락해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신토와 같은 종교도 없었으며, 처절한 근대사의 흔적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는 한국에서 이런 식의 상점 거리는 존재하기 힘들다.
인사동같은 경우엔 차라리 도쿄 우에노의 아메요코 시장같은 분위기를 지향하는 편이 본래의 취지에 걸맞는고 생각한다.
아메요코 시장이 텐만구의 상점 거리보다 레벨이 낮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곳 다자이후 텐만구는 6000그루의 매화나무가 유명하다.
신화에서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숨을 거둘 때 쿄토에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꽃을 피웠다고 한다.
물론 벚꽃도 많이 있어서 2월 말에서 3월 초엔 매화, 3월 중하순에는 벚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원래는 지금쯤 만개했을 벚꽃을 노리고 이곳에 왔지만,
이상기온으로 인해 매화는 대충 저물어가고 벚꽃은 아직 피지 않은 묘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녹색과 분홍, 흰색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었으니 이걸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로 한다.


하지만 정말로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악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침에 코비호에서 담배피던 망할 아저씨 일당들이 여기도 찾아왔다.
흡연가능구역이 아닌 곳에서 자기들끼리 담배 피워대며 사투리로 뭐라뭐라 지껄이고 있다.
하필이면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제때가 아닌 벚꽃보다 이 인간들 얼굴때문에 기분이 팍 내려앉는다.
나는 부디 나이 처먹어도 저런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 인간들이 담배피던 곳을 한장 담아본다.


꽃을 보는건 좋아하지만 매화와 벚꽃은 역시 구별이 잘 안된다.
구별을 위해 사람이 붙였을 뿐인 명칭이니, 어렸을때부터 이름엔 신경을 안 썼다.
그냥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


텐만구 정문 앞에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신사 앞에 이런 녀석이 서 있으면 그 효과가 톡톡하겠지만, 오래된 녀석이라 그런지 받침대와 보강재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좀 애처롭다.
전체적은 모습은 아직 건장한듯 한데, 가지의 무게가 너무 나가는 바람에 받침대가 없이는 아마 사람 손이 닿을 정도로 내려올 것이다.


잘 죽지 않는 녀석이니 적절하게 보살펴만 주면 텐만구가 없어질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 본다.
전체적으로 위로 쑥쑥 뻗는 나무들이 많은 일본은, 그것도 나름대로 기개가 있어 보여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데
그리 굵고 곧지 않아도 부드럽게 휘어 있는 한국의 소나무도 평생 질리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
일본에 와서는 일본 나무를 즐기고, 한국에선 한국 나무를 즐기면 되는 것이겠지.


한국, 중국의 단체 관람객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후쿠오카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날 확률은 만나지 않을 확률보다 월등히 높으니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다.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이지만 날짜 탓인지 관광객의 대다수는 꽤나 나이가 드신 사람들이다.
지금 일본은 졸업시즌이라서, 딱히 이곳에서 소원을 빌 시기는 아니니까.


텐만구라면 꼭 놓여져 있는 황소상. 이 녀석을 만지면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서 항상 맨들맨들하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사망 후,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황소가 이 자리에서 결코 움직이려 하지 않아서
이곳에다가 신사를 짓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황소의 기원은 바로 그것.

내가 학문의 신이라면, 여기서 황소를 만지며 시험 붙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중생들이 꽤나 답답해 보일텐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지만, 학생들이 하고 있는건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텐만구 정문을 들어서면 연못을 가로지르는 세 개의 다리가 나타난다.
세 개의 다리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며, 신사에 들어갈 때 현세와의 경계점 역할을 한다.
사실 여느 텐만구에는 이런 연못과 다리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의 독특함을 더해준다.
그런 설정놀음은 둘째치고, 나무 표면에 가득이 솟아난 풀이 참 인상적.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신사 주변 나무들은 대체로 저렇게 풀을 옷처럼 입고 있다.


일본의 전통 공원이나 정원처럼 굉장히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진 않지만
이 곳의 연못도 잘 둘러보면 미적 배치에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광각 단렌즈, 표준 단렌즈, 망원 줌렌즈를 가지고 온 여행이라서
눈에 들어오는 대로 사진을 담으려니 정신없이 렌즈를 바꿔 끼워야 하는 어수룩한 풍경이 연출된다.

똑딱이로 시원시원 잘 찍는 다른 관광객들에겐 사진 좀 찍을 줄 아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 정도 되는 초짜가 그런 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저 부끄러운 일.
똑딱이도 써봤는데 그냥 만족을 못해서 덩치 큰 카메라를 쓸 뿐이고,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자기만족.


아무래도 자연물로는 보이지 않는 배 모양의 돌.
900년대 세워진 신사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현존 건물은 1919년에 개축된 후 조금씩 증축하고 있다.
저 바위는 언제쯤 이곳에 놓인 것일지 궁금했지만, 거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리를 건너며 본전으로 향하는 도중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사당이 있다.
지하사(志賀社)라는 이름의 이 사당은 해상안전을 책임지는 바다의 신을 모시는 곳.
다자이후 텐만구 안에서 가장 오래된, 1458년 지어진 사당이며 이는 큐슈 전체에서도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조그마한 사당의 처마는, 세월의 흐름만이 나타낼 수 있는 부드러운 색과 함께 단정한 배열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 화려한 본전의 양식보다 이런 쪽을 훨씬 좋아해서, 일단 사진은 뒤로 하고 한참 감상만 한 후 돌아갈 때 다시 찍어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제일 좋아하는 목조 건축물이 부석사니까, 대강 취향은 밝혀졌으려나.


마음 심자를 닮았다 해서 '心字池'라는 이름이 붙은 이 연못은 주변 경관이 훌륭하다.
엄숙하고 정갈한 정원의 연못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자연적인 배치가 괜한 긴장을 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매화 철은 놓쳤지만 그래도 조금씩 남아있는 분홍의 흔적이 여전히 맛깔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물론 완전히 만개한 건 아니지만 이런 풍경도 충분히 보기 좋지.
이곳의 매화나무는 100종류가 넘어서 피는 시기가 제각각이라고 한다. 한순간에 미어터지는 벚꽃구경보다는 여유가 있다고 할까.
다자이후 텐만구는 내가 가 본 다른 텐만구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부담없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공원 같은 느낌?
이번엔 휴장중이었지만 이곳에는 큐슈 박물관과 함께 산책로를 겸비한 공원 부지도 있어서, 굳이 신성함을 찾을 필요가 없다.
텐만구의 총본산이라는 역사가 서려 있으면서도 목에 힘을 주지 않은 느낌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자 넓은 광장과 함께 본전 앞을 장식하는 토리이가 보인다.

일단 본전 안에 들어가기 전에 광장이나 한바퀴 둘러볼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본다.
본전 앞은 돈 던지고 소원 비는 사람들이 많아서 약간 흥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일본의 정취를 느끼기 쉬워서 신사나 성, 정원 등을 자주 찾곤 하는데
막상 거기서 제일 즐겁게 보고 즐기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주변의 나무 경관이다.
가끔씩 너무 웅장하게 폼 잡고 있는 본전이 오버스럽긴 하지만
신사나 정원 등의 차분한 분위기에는 잘 정비된 주변 자연 환경과의 조화가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건물만으로는 그닥 매력이 없다. 이런 관광지에서 숨은 주역은 이 녀석들이라고 생각.


광장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모여있길래 가 봤더니 이런 공연중이다.
만담가처럼 구수하고 어눌한 말투로 원숭이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할아버지.
'매일매일이 지옥입니다'라는 붉은색 셔츠와 함께 펼치는 애교스러운 공연이라. 뭔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다.


원숭이를 이용한 공연은 대강 분위기가 비슷하다.
처음에 몇번 말 안듣고 딴청피우는 듯 하다가 한방 터트려주는 그런 식.
일본의 만담에는 보케와 츳코미라고 하는 바보짓과 태클거는 방식의 개그가 있는데
굳이 사람끼리가 아니라도 충분히 만담이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놀라울 것 하나 없는 굉장히 수수한 묘기 한두가지 보여주는 공연이었는데
망원렌즈로 신나게 담고 있으니 끝까지 성의껏 봐 줘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생긴다.


원숭이가 저런 곳에 올라가는 걸 보고 우와~ 해야 하나?
열 살쯤 되는 어린 시절이었다면 이것도 충분히 재미있고 진심으로 박수를 칠 수 있었을지도.
얼마나 오래 공연을 해 왔을지, 키타노 타케시만큼이나 갈라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되려 서글픈 기분이 든다.


마지막 묘기로 장대타기를 그저 흉내만 슬쩍 내 보는 원숭이.
사실 이렇게 관람하면서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건 딱 두가지였다.
사진빨 좀 잘 받으려나 하는 것과, 이 콤비는 대체 언제부터, 무엇때문에 이런 공연을 해 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

무심한 얼굴로 명령받은 행동을 척척 해내는 원숭이와 나이든 할아버지의 만담.
일본의 만담이란 대게 화자가 자신을 능청스럽고 바보같이 묘사함으로써 웃음을 주는 방식이다.
'매일매일이 지옥입니다'라는 티셔츠를 입고 바보 행새를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나로서는 어디서 즐거움을 느껴야 할지 난감함이 느껴진다.



동물을 이용한 묘기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 지는 것일수도.
어쩌면 저 원숭이는 할아버지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녀석일 수도 있다. 오랜시간 함께 해왔다면 정은 붙었겠지.
이 두 콤비가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계속하길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