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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10.07  히로시마 여행기 10편 - 미야지마, 줄서기는 쥐약 8
  2.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9편 - 미야지마, 플라나와 함께 미센으로 4
  3. 2009.10.06  히로시마 여행기 8편 - 미야지마, 사망금지 4
  4. 2009.10.05  히로시마 여행기 7편 - 미야지마, 신들의 섬 6
  5. 2009.10.02  히로시마 여행기 6편 - 고양이, 여행의 동반자 8
  6. 2009.10.01  히로시마 여행기 5편 - 쿠레, 강철의 고래와 밀실공포증 4

음식점 앞의 조그만 정원에서 사람만 보면 밥달라고 달려드는 잉어(붕어?)들을 감상하다가 로프웨이를 타려고 올라간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높은 산 미센(彌山)은 해발 535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로프웨이 타지 않아도 올라갈 수 있지만
나는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어깨 부러질 것 같은 카메라를 짊어지고 등산 한번 하면
주위 사람들이 어디 아픈거 아니냐 할 정도로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되기 때문에 얌전히 로프웨이를 탄다.

어차피 2일 프리패스 끊는게 여러모로 이득인 터라 일부러 로프웨이를 안탈 이유도 없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세워져 있었던 듯한 돌맹이들.
산에서 돌맹이를 쌓아 소원을 빈다는 풍습은 세계 각지에 많이 퍼져있나 보다. 중국이나 몽골도 그랬던 것 같은데.


로프웨이는 얼마 기다리지 않고 쉽게 탔다.
사실은 4인이 앉아야 적당할 크기의 쥐꼬리만한 케이블카에 6명을 우겨넣었다. 에어콘도 없다. 찔것 같았다.
아이가 끼어 있었다거나, 6명 모두가 일행이었다면 올라가는 동안 즐겁게 대화라도 하겠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혀놓으니 원래 이럴때 더 소심해지는 일본인들이라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다.
숨소리마저 조용히 내려고 노력하는 듯한 정적이 10분간 계속되었다. 535m 밖에 안되는 높인데도 꽤나 오래 걸린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아뿔싸. 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인파가 줄을 서 있다.
미센 정상까지는 로프웨이를 한 번 갈아타야 했던 것. ㅡㅡ;
이게 또 방금 전처럼 6인승 케이블카가 수십 대씩 다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큰 20인승 단 두대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손님을 실어나르고 있어서
10분에 한번씩 20명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것. 그래서 이 두번째 탑승장은 엄청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난 여행가서 맛있는 음식 먹는걸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로 여길만큼 먹는걸 좋아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당연한듯이 서 있는 음식점 앞의 긴 행렬에는 끼고 싶지 않다.
30분, 1시간동안 줄서서 겨우 먹을수 있는 음식이 정말 기똥차게 맛있다고 해도
무언가에 쫓겨서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음식은 어디에서나 마음 느긋하게 먹는게 내 신조라서, 설사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10분 이상 기다려 먹진 않는다.
한마디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줄서서 기다리지 않는게 내 성격인데...
이번엔 어쩔 수 없는 경우다.
이미 여기까지 올라와 버렸고, 프리패스에 왕복요금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이걸 타지 않고 걸어간다는게 너무 아까워서.

1시간이라는 끔찍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내가 탈 차례가 다가왔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정말 케이블카가 2대밖에 없다.
정확하게 왕복 교차이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케이블카가 도착하는 순간 정상 쪽에서도 케이블카가 도착한다는 뜻.

정말 일본인들 줄서서 기다리는 것 하나는 놀랍다. ㅡㅡ;


총 2시간에 가까운 기다림끝에 드디어 미센 정상에 도착했다. 사실 걸어 올라가는거나 거의 비슷한 시간이다. ㅡㅡ;
로프웨이 출구와 이어진 휴게소에는 '작은 물건이나 먹을 것등은 무료 락커에 넣어놓고 나가세요' 라고 주의문이 적혀있다.
원숭이들이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에.

미야지마를 기대했던 이유 그 두 번째. 철장에 갖혀있지 않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를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정말로 바위 위에 무심하게 원숭이가 앉아 있다.
사람에겐 아예 관심도 없는 듯. 오랜 경험으로 이제 사람이 먹을걸 들고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섬 밑의 사슴들은 사람이 다가가서 만지거나 하면 조금씩 몸을 빼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곳 원숭이는 전혀 미동도 없다.
사슴과 달리 원숭이는 정말로 만지면 안되기 때문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철저하게 주의를 따르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동물이라면 사람 빼고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는 원숭이가 제일 마음에 안든다.
사람하고 너무 닮아서일까. 성격 괴팍하고 욕심많고 생존 경쟁만큼이나 동족 안에서의 혈투가 치열한 점 등등.

이곳의 원숭이는 워낙 편안한 생활을 즐겨서 그런지 그래도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 거 같다.


미센 정상에서 보는 절경은 한 눈에 들어오는 세토 내해(瀬戸内海).
아쉽게도 쨍쨍하다고 할 만큼 하늘이 맑은 편은 아니라 약간 흐릿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볼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세토 내해는 지도상으론 얼핏 보기에 호수처럼 보이는 좁은 바다로, 그 안에 약 3000여개의 작은 섬들이 몰려있서 수려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저 바다 어디엔가는 양아치 행세를 하며 신기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박살낸다는 인어아가씨도 있는 모양.


바다와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의 경치는 나쁜 곳이 별로 없을 거다.
로프웨이 기다리느라 고생 좀 했지만 올라오고 나서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열심히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다가와서 카메라 셔터 좀 눌러 달라고 하신다.
'난 일본어 모태요' 라고 둘러댈수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착각당하는 경우가 원채 많다 보니 이젠 그냥 익숙해졌다.
아마 내가 산더미같은 DSLR을 들고 있어서 부탁하기 쉬웠나보다.

카메라는 소니 A200 모델에 18-70 구번들 렌즈. 렌즈 성능이 좀 안습이라 내가 만약 A900 쓰고 있었다면 내 렌즈를 마운트해서 찍어드렸을 텐데.
오토모드에 맞춰진 상태라서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된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사실은 A 모드로 좀 조절해서 찍어드릴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나도 장비만 화려하지 생초보에 불과하니 아는 척 으스대는 느낌이 날까 해서 그냥 시키는대로 구도만 맞추고 찍어드렸다.

'2장씩 찍어주세요' 라고 웃으며 말씀하셔서 약간 화각을 달리해서 한 장 더 찍어드렸다. 뭔가 아는 할아버지로군.
병맛 포커스를 자랑하는 캐논의 예전 보급기들은 어떤 사진을 찍던지 2~3장 셔터 누르는건 기본이었다.


이 미센이라는 산은 정상부분이 완만한 길로 연결되어 있어 여기저기에 많은 볼거리들이 놓여있다.
대부분이 불교 관련 사찰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은 806년에 코우보우(弘法) 스님이 켜놓은 이래 1200년동안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그런데 시간상으로도 거기를 왕복해서 갔다오면 이츠쿠시마 신사의 썰물 광경을 놓쳐버릴 가능성도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

이 '꺼지지 않는 불'은 히로시마 원폭 공원 앞의 '평화의 등불'에도 쓰이고 있다. 미센에 있는 이 불에 끓인 물이 만병통치라는 소문도.
미야지마는 히로시마시 전체보다 더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세밀한 곳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려면 여기서 1박 하는게 나을 듯 하다. 괜찮은 숙소 가격이 꽤나 후덜덜하지만.

그래서 거기까지 가진 못하고 전망대 바로 옆에 있는 사자바위(獅子岩)나 찍고 놀았다. 이게 왜 사자바위라 불리는지까지는 찾지 못했다.


전망대에는 동전을 넣어 작동하는 제대로 된 망원경도 있었지만 이렇게 생긴 것들도 있다.
몇개씩 세워져 있는 이 물건을 들여다보면 특정 지역이나 섬이 보인다나보다. 시코쿠(四国)나 츄코쿠(中国) 관련해서는 지식도 별로 없고 아는곳도 없어서


저기를 통해 보이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
뭐, 그런거 알고 가면 좀 더 우쭐하거나 여행 후기 풀어낼 때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모르고 가는 여행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니까.
맨날 '아는만큼 보인다'며 여행 전 무슨 수능이라도 공부하듯이 책을 붙잡고 씨름하는 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가이드역할을 맡아가며 하는 여행으로 충분하다.


미센 정상의 풍경은 일본인들이 자랑할만큼 풍요롭고 차분한 멋진 광경이다.
사실 보기싫은 현대식 건물들이 밑에 주르륵 보이지만 않는다면
바다와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미륵봉에서 내려다보는 한국의 한려수도도 이곳 못지 않은 절경을 연출할 텐데.

그런 미세한 조건들이 합쳐진 탓에 이 곳이 그렇게 인기있는 거겠지.

이츠쿠시마 신사 뒷쪽에 마련된 미니 신사(?)
내 머리통만한 크기인데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공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란. 삶겨져 있는 싱싱한 놈이라면 불쌍한 중생의 배를 보전하기 위해 몇개 까먹었을텐데.


손을 좀 씻을까 싶기도 했지만, 신종플루 예방 차원에서 휴대용 알콜 핸드워셔도 갖고 왔고, 카메라에 물 묻히기 싫어서 패스.
아까 단풍만쥬를 먹으면서 렌즈를 칼 짜이스 ZF 플라나 50.4으로 바꿔끼웠다.
여행중에 렌즈 갈아끼우는 것도 꽤나 귀찮은 일이라 보통은 같은 장소를 두 번 돌아볼 생각하고 왕복점에서 렌즈를 갈아끼우곤 하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적 여유도, 체력적 여유도 없으므로 그냥 마음 내키는 장소에서 바꿔봤다.


카메라 렌즈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어서 이젠 고성능이라 말하기도 뭣한 칼 짜이스지만
세계 3대 광학 메이커에서 항상 이름을 올려놓는 응축된 기술력은 어디 가는거 아니다.
웃기게도 AF 가 안되는 녀석이라 수동으로 조리개와 초점거리를 설정해야 하지만
요즘같은 광속 AF 시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녀석이 하나 있어야 초점 링 돌리는 손맛을 계속 느낄 수 있다.


ZF 플라나 50.4의 특징이라면 깊은 색감과 회오리 빛망울.
색감은 확실히 깊긴 한데 대부분 RAW 로 촬영해서 보정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렌즈보다 센서의 수광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라...

회오리 빛망울은 보이그랜더나 칼짜이스 예전 렌즈들의 특징 중 하나인데, 조리개를 개방할수록 빛망울이 회오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지금 히로시마 여행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나? ㅡㅡ;


예전에 쿄토에서는 건물 밖에서 찍으려는 사진도 제지당해서 기분이 팍 상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왠지 우물쭈물하며 슬그머니 카메라를 들어 밖에서 살짝 촬영했다.
그냥 찍어도 되냐고 시원하게 물어보지 못하는 소심쟁이. ㅡㅡ;

사실 별로 관심갈만한 상품은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니 사슴 관련 인형이나 그런것들은 조금 구미가 당기긴 했다.


사슴들은 어디 갔다놔도 그림이 되는구나.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자 슬금슬금 다가온다. 아마 먹을거 없나 보러 오는거겠지.
이 ZF 50.4 렌즈는 수동이면서 초점 링이 움직이는 범위가 아주 넓어서 굉장히 스무스하고 세밀한 포커스 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로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한 신속한 포커싱이 어려워진다는 뜻도 된다.

어지간한 MF 렌즈는 거의 AF 쓰듯이 추적하면서 찍을 수 있지만 이 녀석은 그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노력해서 안 될게 뭐가 있으랴. 슬금슬금 움직이는 사슴 따위는 나의 초점링돌리는 신묘한 손가락에 한방이다.
겨우 D3 정도 되는 뷰파인더가 있어야 그나마 찍지. 135 판형 필름바디 대비 크롭바디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MF 로 초점 잡는건 괴롭다.

A900 의 눈동자 굴려야 할 만큼 광활하고 밝은 뷰파인더가 그립다. ㅡㅡ;


시간도 어지간히 되었겠다 로프웨이를 타고 미센(彌山)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른다.
중간중간에 일반 가정집도 많이 있는데, 신식 주택집에도 은근히 옛 정취가 풍기는 느낌의 건물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산 위의 사슴들은 밑의 녀석들보다 좀 더 순수한 눈을 하고 있나 싶은 경건한 마음이 들었는데
먹이를 주지 않자 묘한 목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신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면 의연함을 기르라고 해 주고 싶네.


날씨가 더웠지만 그늘이 시원해서 그럭저럭 산을 올라간다.
로프웨이를 타면 떡하니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았는데, 로프웨이 자체가 이츠쿠시마 신사에서 산 위로 좀 올라가야 있다.
사슴도 있고 풍경도 좋으니 느긋하게 셔터 눌러가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차피 썰물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미센 위에서 시간보내고 와도 충분하다.


앞서 말한 칼 짜이스 플라나 렌즈의 특이한 회오리 빛망울.
보통 이 렌즈를 구입하면 처음에 이 빛망울에 현혹되어 이런 심도낮은 사진을 마구 찍어다가, 어느순간 회오리가 실증나서 평범하게 찍는다는 소문이...


빛망울이 아니더라도 수동렌즈의 손맛을 느끼기에 최적화된 녀석이라 갖고 다니며 링을 돌리는 것만 해도 재미있다.
색감도 과연 칼 짜이스라고 깊고 진득하게 잘 나오는 편이고.


로프웨이까지 가는 길은 겨우 수백미터밖에 안되지만 11월쯤에 오면 여기서부터 화려한 단풍잎이 관광객들의 혼을 빼 놓는다.
이츠쿠시마 신사를 둘러싼 단풍도 절경이지만 미센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토 내해와 어우러진 원시림의 단풍은 금강산의 그것에 비견될만한 매력이 있다.


일단 렌즈를 바꿔끼고 출발하면 어디서 쉴 만한 장소가 안 나오는 한 계속 그 렌즈로 촬영한다. 귀찮아서.
오히려 좁은 사물을 포커싱할때는 측거점 위치 신경쓸 필요없는 수동렌즈가 더 나을 경우도 많다. 뷰파인더가 넓고 밝다는 전제 하에서만.


오중탑 뒤쪽을 통과해서 계속 걸어오면 이곳에서 만나도록 되어 있나보다.
조그마한 토리이와 그 위에 올려진 돌맹이들이 앙증맞다. 아마 소원을 바라면서 올려놓은 거겠지.
크고 단단한 토리이(뭔가 어감이... ㅡㅡ;)도 좋긴 한데, 산속 산책길 안에서 만나는 이런 조그만 토리이도 엄청 마음에 든다.


신사하고는 꽤 떨어져 있지만 이곳에서도 누가 오미쿠지(おみくじ)를 나무에 묶어놨다.
원래는 나쁜 점이 나왔을 때 액땜한다는 의미에서 나무에 묶지만 요즘엔 그런거 없이 좋던 나쁘던 기념으로 마구 묶더라.
뜯어서 뭔 내용일까 보려고 생각도 해 봤지만 그럼 묶어놨던 사람에게 미안한 듯 해서 얌전히 사진만 찍었다.


아마 저 돌은 사람이 일부러 올려놓은 것이겠지.
시끌벅적한 이츠쿠시마 신사와는 달리 새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가지 소리만 들리는 산 속에서
이런 살짝 인위적인 듯한 풍경을 만나면 기분이 아늑해진다.
뭔가 거창하게 소원을 비는 것 보다 이렇게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뭔가를 바라며 행하는 소박한 느낌이 좋다.


로프웨이로 가는 도중 물이 별로 남지 않은 계곡 위를 다리로 건넜는데 이곳이 관광 명소중에 하나인 단풍계곡 모미지타니(紅葉谷)라고 적혀있다.
11월에는 아마 다리 위가 구경하고 사진찍는 관광객들로 꽉꽉 차 있겠지.


로프웨이 타는 곳까지 올라가니 지금부터 50분은 기다려야 한단다... ㅡㅡ;
일단 티켓 순서대로 올라가기 때문에 지금 티켓 받아놓고 밑에서 놀다 와도 된다니 일단 티켓부터 받았다.
로프웨이 바로 밑에는 음식점이 있어서 우동이나 맥주 등을 팔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산 속 음식점이 비싸기로 유명한것은 다를 바 없다보다.
혹여 굴 덮밥 같은거라도 있다면 한끼 먹어볼까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어서 그냥 앉아서 물이나 마셨다.


산 속에서라면야 50분 정도 시간 때우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카메라가 있다면 더욱 그렇고.
가방 속에는 E-Book 도 있으니 읽다 남긴 소설을 펼쳐들어도 금방인데
기왕 왔으니 그냥 사진만 좀 찍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걸터앉아 즐기기로 했다.

여행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것도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평범한 휴식이 귀중한 명상의 시간이 되고, 훗날 추억을 되돌리는 연료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새 40분이 지나갔다.
이제 슬슬 로프웨이로 올라가서 줄을 서 봐야겠다. 거기는 다시 사람들이 만든 줄로 가득가득하겠지.


사슴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에게서는 멀어지지만, 적당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가진 아이는 삥뜯기 좋은 표적.
그래도 다행히 아이들 역시 먹을거 주지는 않더라.


이츠쿠시마 신사가 가까워지자 길게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그들의 시선이 앞서있는 곳엔 이 조각배가 놓여있는걸로 봐서 아마 관광객을 태우는 유람선인가 보다.
공짜로 태워줄리가 절대로 없으니 무리.
사실 미야지마는 로프웨이 말고는 돈 내고 움직일 이유가 별로 없는 곳이다. 섬 전체가 볼거리 많은 곳이니까.
내 자금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이런 유람선보다 굴 구이나 몇조각 더 먹겠다.


좀 더 큰 배도 있다. 아마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오오토리이(大鳥居)는 썰물 때가 아니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에 배로 주변을 둘러보는 듯?
물위에 둥둥 떠서 오오토리이를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썰물의 힘을 믿는다.


아마 이츠쿠신사의 진짜 입구는 이곳에서부터 시작인가보다.
여기 오기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츠쿠신사 경내는 입장료도 300엔으로 꽤 비싸고, 엄청난 인파때문에 쓸려다니는게 고작이고, 중요부분은 보존을 위해 공개하지 않으므로
거기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신사 구경하러 온게 아니라서. 진짜 구경하고 싶은 것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꼭대기로 가야 있다.


어느 신사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정문의 이 토리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첫 번째 관문인 만큼, 지역별로 나름 특색이 있다.
돌덩이로 만들어진 토리이 치고는 꽤 큰편으로, 명물인 수중 오오토리이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게 또 돌맹이의 거친 감촉과 어울려서 나름 듬직하고 우직한 느낌을 주는게 마음에 든다.


여기라고 사슴이 없을리가.
훔친건지 받은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종이는 몸에 별로 좋지 않을텐데...
굶고 살진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하는 행동은 굶어죽기 일보 직전처럼 먹을걸 갈구한다.
늘어진 모습이 어울리긴 하네.


이곳에 왜 그리 사슴이 많은가 하면, 원래 일본에서 사슴은 가장 신에 가까운 동물이자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로 신성시 되어왔기 때문.
일본에서도 신성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야지마라서 사슴이 많은가 보다.

이곳 미야지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신비한 이츠쿠시마 신사의 박력과 고립된 섬이 가지는 독립성으로 인해
수백 년 전부터 나무의 벌목이 금지되어 있고, 섬 안에서의 출산, 장례도 금지되어왔다.
그래서 이 곳엔 묘지가 없다.

덤으로 강아지 등의 동물도 살 수 없었다지만 그건 주민들의 경우일 뿐, 아주 많은 관광객이 이제는 개들을 끌거나 안고 들어온다.


신성함과 출산, 사망을 반대급부로 묶은 사상이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다.
사실은 출산, 사망만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신성이라는 개념이 사람만의 전유물이라면 아마도 이곳은 생물학적 행위를 비신성함으로 여겨왔을 터.

신성함을 드러내는 방법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간다움, 혹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자연의 순환고리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방법과
철저한 군림자로서의 신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비인간적인 엄숙함을 고취시키는 방법.

미야지마가 선택한 방법은 아마 두번째겠지. 지금은 그걸로 돈 벌어먹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쓰레기.
저녁에 이곳으로 다시 오게되는데 쓰레기보다 더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좀 많고 흐린 편이라 아쉬웠는데, 쨍한 날씨의 미야지마는 정말 멋진 풍경을 자랑할 것이라 상상했다.
특히 산 위에 올라가면 세토 내해(瀬戸内海)의 절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더더욱.


이츠쿠시마 신사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있었다.
공짜로도 저런 곳에서 줄 따라가며 구경하고 싶지 않은데, 입장료까지 받으니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다.
쿄토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저런데 돈 내고 들어가서 얻는건 아쉬움밖에 없었으니 깔끔하게 포기.

굳이 안보여줄곳은 어차피 안보여주는 신사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 주변의 풍경은 감탄할 만 하니 문제될 것 없다.
지금은 밀물때라 신사 전체가 바다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것이 바로 신성함의 근원 중 하나겠지.


이츠쿠시마 신사는 59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현재 신사는 120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바로 옆의 히로시마가 원폭으로 개발살이 났음에도 무사했던 미야지마라서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장소일 거다.
그 신사와 함께 저기 보이는 오중탑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귀찮아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저 오중탑은 사실 미완공된 채로 남아있다고 한다.
당나라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자세히 보면 꽤나 묘한 느낌을 주는데, 1407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는 절경은 절경이다.
사람이 없이 조용했다면 정말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그런 낭만을 즐기기엔 너무 유명해져 버린 것 같다.

유명 관광지에 서 있을 때 항상 아쉬운 점.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는 문화 유산은 뭔가가 빠져나간 듯 힘이 꺾인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아마 내가 사람 북적이는걸 싫어해서 그렇겠지.


신사 주변에도 노닐거리는 많다. 수많은 가게들과 사슴들.
오모테산도를 비롯한 상가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생겨났다기 보다는,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오는 전통있는 가게들.
일본인과 상업정신을 따로 떼어낸다는 것은 일본 역사의 중요한 고리를 빼먹는거나 마찬가지.

그나마 관광 천국 일본에서 그 장사꾼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유다. 그네들은 이미 천 년전부터 장사꾼이었으니.


정오가 지나고 태양이 달아오르자 살짝 지쳤다. 아침도 안 먹었으니.
드디어 즉석해서 미야지마의 명물 과자인 단풍잎 만쥬를 만들고 있는 곳을 발견했다.
주머니에 돈은 간당간당하지만, 그리고 별로 감흥을 불러일으킬만한 맛이 아니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관광객 흉내나 한 번 내볼까 싶어서 예전부터 계획해 왔으니 이번엔 큰맘먹고 먹어보기로 했다.
속에 넣는 앙금은 한국에서도 익히 먹을 수 있는 갈아만든 앙금과, 통짜 팥이 든 앙금이 있었는데
주문이 밀리다 보니 바로 먹을 수 있는건 갈아만든 앙금 밖에 없었다.


갓 만들어서 따끈따끈한건 참 마음에 들었다.
단품으로 3개 사서 가게 옆 마루에 걸터앉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선물용으로 15개, 20개씩 포장된 만쥬를 여러 개 사고 있었다.
이게 아마 한개 70엔 정도 했을거다. 3개 210엔. 비행기타고 일본까지 간 녀석이 쪼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걸 많이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차라리 돈 좀 모아서 굴 요리를 먹지. 굴 요리는 이거보다는 훨씬 비싸다.
그리고 원서 사려고 생각했던 게 좀 있어서 어쨌든 책값을 위해 돈을 아껴야 했다.

관광지 기분 한 번 내보려고 샀는데, 방금 만든 녀석이라 그런지 달콤한게 휴식을 취하며 먹기엔 딱 좋은 느낌.
왜 이런 단풍잎 만쥬가 유명하냐. 이곳 미야지마의 단풍은 정말 눈돌아갈 정도로 멋지기 그지없기 때문에.
불행히도 이곳은 단풍이 좀 늦게 들어서 11월이나 되야 붉게 물든 이츠쿠시마 신사와 미센 산(彌山)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

그런데 단풍이 들 때의 미야지마는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꽉꽉 차버리기 때문에, 보고는 싶어도 용기가 안난다.


신사 뒷쪽까지 빙 둘러서 걸어갔다. 출구쪽에는 들어오지 마시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는데
얼굴에 철판 깔면 들어갈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물리칠 정도의 얼굴 두께가 아니라서 포기했다.

신사 뒷쪽의 무료지역에도 볼거리는 많이 있는데, 바다위 오오토리이를 만들 때 사용했다는 원목이 전시되어 있었다.
1875년에 세워진 오오토리이는 워낙 거대해서 바다 속에 파묻은게 아니라 그냥 세워놓기만 했다. 토리이 자체의 무게로 서 있는 것.


상당히 거대한 원목이었는데, 오오토리이의 기둥 둘레가 10m 라고 하니 납득갈만한 크기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나무가 참 마음에 든다. 수백, 수천년 있다보면 이건 돌처럼 변하겠지.


사진으로 이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무단으로 관광객을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현지인들이 많이 와 있어서 (골든위크라 다들 여행가느라 정신없다) 내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게 다행일까.

머리에 버프를 둘러쓰고 고글을 끼고 있어도, 이런 유명 여행지에서는 눈길을 끌지 않아서 좋다.
가끔 눈길을 끌게 되면 대부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말을 걸어온다는게 항상 의아스럽긴 하지만. ㅡㅡ;

무리를 해서있지 아침 8시가 될때까지 눈 한번 안뜨고 잘 잤다.
잘 잤다고 하기보단, 일어나니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좀 어지러운게, 피로의 조각들이 몸 여기저기에 널려있긴 했다.
덕분에 심야 프로그램들을 못봐서 좀 아쉽긴 하다. 여행와서 보는 TV는 또 각별한 맛이 있는데.

싸구려 호텔이라 공짜 조식도 없으니 9시 반이 될때까지 뒹굴뒹굴하다가 짐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오늘은 한국에서 예약해놓은 호텔이 있으니 미리 짐 맡겨놓고 나올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오늘은 히로시마 여행의 백미인 미야지마(宮島)로 갈 예정.
미야지마는 아마노 하시타테(天橋立), 마츠시마(松島)와 더불어 일본 3대 절경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
이 곳에 있는 이츠쿠시마 신사(嚴島神社)와 오중탑(五重塔)는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것들 보러 가는게 아니지만.

어제는 JR 전철을 탈 일이 많아서 프리패스 끊는게 오히려 손해였지만 오늘부터는 모든 교통수단을 히로덴 프리패스에 의존한다.

2일짜리 프리패스는 이틀간 히로덴과 미야지마행 마츠마에 기선(松前汽船), 그리고 미야지마 로프웨이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고 가격은 2000엔.
히로덴은 한번 타는데 150엔, 마츠마에 기선은 편도 170엔, 로프웨이는 왕복 1800엔이니 이것들을 이용할 생각이면 무조건 프리패스를 추천.


그러한 프리패스에도 단점은 있으니, 이 미야지마라는 곳은 히로시마역에서 JR 전철로는 2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히로덴으로는 50분에서 1시간 가까이 걸린다.
가격을 생각하면 프리패스를 끊은 시점에서 무조건 히로덴을 타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조금 아쉽긴 하다.
JR 프리패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이러나 저러나 미야지마에서 로프웨이를 타려면 프리패스가 유리한것이 사실.
다른 자동차와 똑같이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했다가, 느긋하게 내리는 손님에게 돈을 받고 천천히 출발하는 히로덴을 타고 미야지마구치(宮島口)역에 내린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이 곳에서 내리고, 사실 이곳은 히로덴 종점이라서 요금도 전철 내리면서가 아닌 개찰구 앞에서 정산한다.

내리자마자 미야지마행 배를 타러 간다.
이곳에서 미야지마까지는 배로 10분밖에 안떨어져 있지만 이권탓인지 JR에서 운영하는 JR 페리와  마츠마에 기선이 바로 옆에서 따로 운행되고 있다.
프리패스를 가진 사람은 마츠마에 기선 역시 맘대로 탈 수 있으므로 생각할 것도 없이 그쪽으로.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인지 미야지마행 기선은 10분에 한번씩 쉴새없이 왔다갔다하고, 걸리는 시간도 10분밖에 안되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면 사실 게임 셋.
일부러 일요일을 피해서 온 미야지마였지만 지금이 일본의 골든위크라서 의미없는 몸부림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현기증이 생길 정도.


선착장 옆에서는 무슨 수상 경기장 같은게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뭔가가 트랙을 돌고 있다.


출발하자마자, 사실은 출발하기전에도 잘 보이는 미야지마.
특이하게도 좌석 앞에 미야지마 소개 영상을 틀어주는 TV도 있다. 그거 볼 시간이나 있을까.


기선들은 정말 쉴새없이 왔다갔다한다. 확대해보고 알았지만 기선들끼리 스쳐지나갈때는 서로서로 사진 찍는 장면이 많이 잡혔다.


드디어 일반 관광객다운 관광이 기다리고 있는 미야지마에 도착.
평범한 여행도 이쯤 되니 제법 마음이 들뜬다. 그런데 날씨가 꽤나 더워서 시작부터 조금 사기 저하.
선착장 앞에는 관광객을 마중나온 여관 차량도 있고, 지도와 가이드북을 뒤적이는 외국인들도 많다.


내가 미야지마에 온 이유 첫번째.
길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이 사슴들을 보기 위해.

미야지마에 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고, 가장 먼저 익숙해지는 장면이다.
교토 근처의 나라(奈良)와 이곳의 사슴은 아무런 제약없이 돌아다니고 손님들을 갈취해 뜯어먹는 유명한 터줏대감들이다.
나라에서 먹이를 돈으로 주고 사도록 하는 바람에 관광객들에게 이골이 난 사슴들이 사람들을 덥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지만
이곳은 먹이 주는것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라 사슴들보다는 조금 순한 편이다.

먹이주는걸 금지해서인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안내서까지 뺏어먹긴 하지만.


나라의 사슴들을 겪어봤다면 충분히 공감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사슴들은 꽤 무섭다. 순해보여도 힘도 세고 떼거지로 얼굴 들이밀면 힘약한 노약자나 여자는 나자빠질 정도.
이곳에서도 가끔씩 방심하고있는 사람들에게 서든 어택을 가하는 녀석들이 있어서 사진찍을 맛이 난다.
하지만 손안에 먹을게 없다는걸 알아차리는 순간 바로 무심하게 떠나버리므로 크게 걱정하진 말자.

손안에 먹을걸 들고 이런 벤치에 앉아있다면 당신 머리위에는 사조성이 빛나고 있으리라.


미야지마는 그리 큰 섬이 아니라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거의 없다.
세계문화유산인 이츠쿠시마 신사까지는 거의 일직선으로 길이 나 있어서 그냥 길따라 가기만 하면 만사 OK.


물론 중간엔 관광객을 쉽게 보내지 않으려는듯 오모테산도(表參道) 상점가가 포진하고 있다.
오모테산도라는 이름은 도쿄 하라쥬쿠(原宿)에도 있는데, 특정 지명은 아닌듯? 둘다 유명 상점가를 지칭하고 있다.


온갖 공예품과 특산품이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도 여행지의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는게
유명하고 발길이 많고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의 상점가일수록 공예품의 질이 떨어지고 얄팍한 상술이 드러나 보인다는 점.

차라리 홋카이도 후라노의 라벤더 특산품이 더 나았다는 느낌이다.
경주에서 토산품 살게 제일 없듯이 쿄토나 미야지마에서는 선물 살 생각 않는게 좋을 듯.

이러나 저러나 이곳 미야지마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굴과 단풍잎 만쥬(もみじまんじゅう). 특산품은 못사도 먹을건 먹어야지 작정중이다.
여기서 한끼 먹으면 어지간히 하루치 식비를 다 써버리는 결과라서 조금 겁을 먹고 있긴 하다.
진을 뺄 정도로 둘러보고 피로와 허기짐에 쓰러질 듯 선착장으로 향할 그 순간에 굴을 먹어볼까 싶다.


말을 안 해서 그런데, 선착장에서 800m 정도 떨어진 이츠쿠시마 신사까지 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렸다.
세상 천지에 사슴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찍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
쿄토에서도 느낀 거지만 난 일본에 대한 전체적인 관심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일본의 전통 문화엔 딱히 흥미가 없는 듯 하다.
절이나 신사같은거 봐도 별로 느껴지는 것 없고, 과대포장된 문화재나 2중 3중으로 입장료를 받아챙기려는 장삿속에도 실망했기 때문일까.

애초에 한국에서도 절이나 문화유산엔 거의 관심이 없었으니.
내 관심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 나와의 심리적 차이에 쏠려있고 그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무생물적인 관점에서라면, 사람이 만든 유산보다는 지역별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미묘한 차이를 구경하는게 더 좋고.


슬금슬금 이츠쿠시마 신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바닷속 토리이(鳥居)도 어렴풋이 보인다.
물론 바다와 바로 맞닿은 거리에서 파도를 넘나보며 걷는 분위기도 꽤나 마음에 든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데도 정말로 사슴한테 먹이를 주는 사람도 없고 (나뭇잎을 주려는 애들은 몇 있었다)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보기 힘든 것이 나를 즐겁게 한다.
쓰레기에 관련된 일본인들의 소심함과 결벽주의에 대해 냉소하는 이들도 많지만,
난 아무래도 더러운것보다는 깨끗한게 낫다. 특히 사람이 더럽힌 것에 대해서라면.


묘하게도 바다를 따라 늘어선 담 사이사이에 이렇게 출구가 있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보안이 허술한데...
바닷물은 금방이라도 밀고 들어올 것 처럼 바로 앞에서 출렁인다.


물론 중간중간에 사슴들의 애교를 찍는것도 잊지 않았다. 내 앞에서 친히 털까지 골라주시는 사슴님.
소심한 나는 카메라에 때 묻을까 싶어 만지진 않았지만.
변명 좀 더하자면 가이드에는 먹이주는것 외에 만지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사슴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게 좋으니까. 그리고 혹시 병원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써놓긴 했는데 이미 이 사슴들은 자연 그대로고 뭐시고도 없다. ㅡㅡ;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희한하게도 먹이는 안주면서 만지기는 잘 만지고 있었다.


접사로 마구 들이대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별로 겁먹는 기색도 없다.
단지 손에 먹을것이 안 들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관심이 없어져 버리는 것만 빼면.
사진 잘 보면 눈동자에 내 모습도 비춰지고 있지만 명암을 높여서 잘 안보일듯.


원래같으면 이곳 명물인 굴 튀김이나 굴 구이, 오징어 구이, 닭꼬치, 구운 옥수수와 생맥주 한잔 들고 이런 벤치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며
극락 기분을 만끽해야 정상이지만 이번 여행은 좀 과도하게 헝그리한지라 그럴 여유가 없다.
사실은 이곳에서 먹기로 계획했던 단풍잎 만쥬도 2~3개 정도만 사서 맛만 볼 정도의 자금적 여유밖에... T_T

자전거여행 할때는 가난과 배고픔이 친근한 친구처럼 다가오는터라 딱히 감정상할것도 없는데
정상적인 관광객 행새를 하며 유명 관광지에 서 있으니, 왠지 무일푼이라는 사실이 괜스래 서글퍼지는 느낌이네.
나도 먹으려면 카드 긁어가면서 먹을 수 있지만 그러려고 온게 아니라서.
그리고 이 은근히 만성적인듯한 피로감과, 나를 적당히 소심하게 만들어주는 초라함이 오히려 솔직한 나다워서 그게 낫다.

수백만원짜리 DSLR 매쳐들고 다니며 배곯는 헝그리 여행자라. 나름 매력있지 않나.


애고 귀여워라.
고양이가 제일 좋긴 하지만 이녀석들의 태평스러움을 보고 있어도 기분이 맑아진다.

잡아먹을 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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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위크라 빈 방이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아주 쉽게 저렴한 구석탱이 비지니스 호텔 하나를 잡았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면 보험용으로 예약해놓은 호텔도 필요없었는데.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다른 손님은 방이 없어서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나보다.
새벽3시에 기상 -> 버스1시간 타고 공항 -> 비행기1시간30분 -> JR 40분 + 30분 + 30분
걸어다니는 것보다 뭔가를 타고 가는게 묘하게 더 피곤하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최대한 숄더백을 가볍게 한 후 침대에 누워 TV 를 봤다.
확실히 철저한 개인공간은 가장 신속하게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나보다.

시간은 이미 유명한 장소를 둘러볼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일본에 오면 항상 들르는 서점과 전자상가에서 눈요기나 해 볼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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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시의 특징이라면 역시 노면전차 히로덴(広電)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보기 힘든 모습이기도 하고, JR 전철보다 느긋하게 도시를 둘러보며 움직인다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1일 패스나 2일 패스를 끊으면 든든하게 돈값을 하니 교통료 줄이는데도 일조를 하는 녀석.
이 길다란 노면전차가 어떻게 복잡한 도로를 따라 움직이나 싶었는데, 전차 연결부분이 저렇게 이동방향에 따라 스르륵 움직이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저곳에 발을 얹어놓으면 회전에 따라 슬금슬금 움직이는게 참 재미있다.

맞은편 의자에서 백인 여성이 똑같이 재미있는듯 저곳에 발을 얹어놓고 웃는다.
나만 어린애틱하게 노는게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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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슬쩍 둘러보는 상점가나 유흥가로는 거대 체인 파세라 백화점이나 혼도리(本通) 상점가가 있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전자기기와 애니메이션 관련상품에 관심이 많은 고로 전자상가 데오데오가 있는 카미야쵸(紙屋町)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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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자상점가와 애니메이션 관련 상가는 상당히 근접해 있는 경향이 강하다.
애니메이션 오타쿠와 전자기기 오타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이건가?

이곳의 애니메이트는 아주 작은 규모라 거의 볼건 없었다. 여긴 애니 오타쿠들에겐 시골 촌구석이다.
데오데오에서 신형 PS3 구경도 좀 하고, 홈시어터와 아이팟 구경도 좀 하고, 국내 발매되지 않은 DVD도 좀 구경하고.
옆의 서점에서는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聽け)'를 한권 사고 이리저리 책들을 둘러봤다.

저 책은 대학교때 읽던 원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통에, 이번이 기회라 생각하고 다시 구입한 것.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인가 저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는 터라 직원아가씨한테 위치를 묻기가 애매해서
'하루키의 데뷔작 말인데요,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어버렸더니 이 아가씨가 하루키 데뷔작이 뭔지 모른다. ㅡㅡ;
일단 하루키 작품이 모여있는 구간에 데려다줘서 어렵지않게 찾았지만 아가씨가 조금 쑥쓰러워하는 것 같아서 괜히 이쪽이 미안해졌다. 도서관 사서도 아니고 서점에서 일한다고 다 문학매니아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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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규동으로 살짝 배를 채우고, 호텔에 돌아가서 먹을 KFC 치킨 한봉지 손에 들고 히로덴을 기다린다.
이런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밖에서 배부를 정도로 먹지 말고 숙소에서 먹을 음식을 따로 장만하는게 좀 더 이득보는 기분이다.
어차피 호텔에서 TV 보면서 한참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 입이 심심하지 않게 먹어주면 여행의 하루를 마감하는데 좀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더라.

히로덴의 분위기를 찍으려 셔터를 눌렀는데 콧구멍에 손을 가져가는 학생이 파인더에 들어와 버렸다. T_T 결코 일부러 찍은건 아니니 이해해주길.
불행중 다행이라고 조리개를 엄청 개방해서 찍었더니 약간의 아웃포커싱 효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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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모든 일정을 지친 몸으로 소화하고
적당한 먹을거리를 손에 든 채
천국과도 같은 숙소로 가는 교통편을 기다릴 때의 뿌듯함.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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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덴은 굉장히 신형 전차와 오래된 구형 전차가 혼재되어있다.
들어갈 때는 그냥 아무 입구로나 들어가면 되지만
나갈때는 승무원이 있는 맨 앞쪽과 뒷쪽 출구로만 나가야 한다.

승무원이 검사는 하겠지만 사실 중간 입구쪽으로 내려도 눈치채지 못하게 할 정도는 된다.
인력적으로나 승차요금 환수 능력으로 보나 꽤나 비효율적인 운행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돈 많은 선진국임을 은근히 내세우는 듯한 느낌이라 조금 부럽기까지 하다.

예전에 엄니께서 서울 지하철의 바뀐 발권 시스템에 아주 분노하시며 역무원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대구 지하철처럼 회수용 토큰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있었음에도
보증금을 더 내고 구입해서 다시 카드를 반납하며 돈을 돌려받는다는, 어이없을 정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을
뒤늦게 도입했다는 사실을 보면, 조금 구식이고 인건비가 들어간다고 해도 그 나름의 좋은점이 있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애초에 서울 지하철의 개떡같은 발권 시스템은 거대한 커미션 따먹기의 농간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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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앞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들고 오는데 보도 옆 수풀에서 뭔가를 와득와득 뜯어먹는 길고양이를 발견.
내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
어딜 가나 이 녀석들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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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앵앵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새끼 고양이.
처음엔 몰랐는데 이곳은 길고양이의 대량 서식처인 듯 하다. 어림잡아도 6~7마리가 주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사실 치킨같은거 주는건 좋은 일이 아닌데, 비교적 대접을 잘 받는 일본의 길고양이 중에서도 대도시 역 주변에 서식하는 애들은 꽤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터라
이런거라도 없는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에 살점을 조금 떼어줬다.

사진을 잘 보면 보이겠지만 이녀석도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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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반가운 이 녀석들은
마치 내가 가려는 길을 앞서서 도착한 후 나를 반겨주는 오래된 친구와 같은 느낌을 준다.
크게 말다툼이나 의견차이를 보일 일도 없이 적당히 냉정한 개인주의를 즐겨주는 시크한 친구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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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처롭게 울던 새끼고양이가 아쉬운듯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미안한데 나도 꽤 가난해서,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야 하거든. T_T

별로 맛있지는 않았지만 치킨을 좀 뜯고 뜨거운 욕조에서 몸을 푹 고은 후 침대에 누워 TV를 틀었는데
내 머릿속보다 내 육체가 더 힘들었는지 30분도 보지 못하고 자동으로 눈이 감겨버렸다.

원래 일본에서 심야 TV 보는것도 여행의 낙중 하나였는데, 피곤하니 어쩔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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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박물관 '강철의 고래관(てつのくじら館)'

놀랍게도 이 해상자위대 박물관은 입장료가 없다!
볼거리는 야마토 박물관 못지않게 많은데 입장료가 없다!
헝그리한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여, 이곳을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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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막한 노인장 한분이 입구에서부터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곳은 대부분의 전시장이 매우 어둡고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사진찍을때는 고생 좀 한다.

전시관의 대부분은 일본 해역을 위협하고 있는 기뢰의 위험성과 제거방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잠수함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일본 자위대의 잠수함 건조능력에 대한 자화자찬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원폭의 악몽만큼이나 일본을 오랫동안 속썩인 것이 일본 근해에 무수히 뿌려진 수중 기뢰들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 후, 일본 열도의 거의 전 해역에 무자비할정도로 배치된 기뢰들 덕에 일본은 해상 통로가 거의 봉쇄되다시피 했고
무기보급뿐 아니라 통상무역조차도 불가능하게 된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사실 그 때쯤 이미 전쟁은 결판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쥔 미국이 그 손을 휘두르는 바람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해져버린 결과를 제공하고 말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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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제 기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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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제 기뢰도

일본 근해엔 온갖 나라들이 '세계 기뢰박람회'를 연일 개최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종전 후에도 30년이 넘도록 기뢰에 의한 피해는 계속되었고, 덕분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전력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30여척의 기뢰제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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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뢰는 그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제거법도 다양한데
무인 또는 유인 잠수정으로 기뢰의 위치를 파악한 후 부표를 띄우는 등의 방식으로 기뢰의 위치를 고정시키는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물론 소리에 반응해 폭발하는 음파기뢰처럼 엔진을 사용하는 잠수정으로 다가갈 수 없는 경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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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동식 간이부표 역할을 하는 녀석들을 기뢰제거선 뒤에 쌍으로 달아놓고 바다를 훑는 방법을 이용해 위치를 식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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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가 발견된 기뢰는 잠수원이 직접 뇌관을 해체하기도 하고, 멀리서 이런 개틀링으로 폭파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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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지뢰라는 악독한 전쟁무기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처럼
수중기뢰 역시 전쟁과 상관없는 일반인을 휘말려 들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무자비한 무기인 만큼
위치가 파악된 기뢰를 인정사정없이 박살낼때의 성취감은 해상자위대 안에서도 특별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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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형적 특성상 지뢰보다도 작업위험도가 높은 기뢰제거다 보니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갑옷에 가까운 안전장비를 갖추고 들어가도 기뢰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기뢰 제거에 혁혁한 전과를 세운 이 쌍끌이 부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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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나쁘면 이렇게 개발살이 나버리기도 한다. 하물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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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상 최대규모의 기뢰제거작업작전이 실시되던 도중 기록보관용으로 사용되었던 니콘의 F3 HP (High Eye Point) 모델.
애초에 이 모델의 수중용 뷰파인더는 이를 위해 개발된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의외로 일반 사용자들에게 엄청난 호평이었다고 한다.
일촉즉발의 바다 아래에서 3만 9천장이 넘는 컷수에도 꿋꿋히 제 역할을 다 하는 니콘 카메라의 바디 신뢰성은 정말 온갖 칭찬이 아깝지 않다.

그런데 디지탈로 넘어오면서 결과물 못뽑아주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니... ㅡㅡ;
이번 히로시마여행에 D3 를 갖고 갔는데, 이미지 퀄리티에서 만족하진 못하겠다.

아~ 필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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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뢰제거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다음으로 나타나는게 잠수함의 구조와 역사.
특전 유 보트나 크림슨 타이드나 K-19, U-571 등의 잠수함 영화를 참 좋아하는게
장님들의 싸움이라 일컬어지는 잠수함이라는 전쟁 무기는, 옆에서 구경하기에도 살떨릴만큼 폐쇄적 공포로 가득 찬 곳이기 때문에.

물론 실제로 들어가서 싸워보라고 하면 죽기 바로 다음으로 하기 싫은 일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간을 아껴야 하는 잠수함에선 이렇게 식탁 의자속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등의 자잘한 아이디어가 절실히 필요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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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있어도 이마가 윗 침대에 닿을 만큼 아슬아슬한 높이를 유지했던 것도 결국 공간의 효율적 활용때문에.
유람선이 아닌 이상 잠수함을 포함한 대부분의 전투함은 통로든 뭐든 좁게 만들어져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제일 표현 못하는게 전함과 잠수함 내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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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사진찍는 능력이 허접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능력이 허접하다는 주장에 반박하려는게 아니고 의도적으로 이렇게 찍은 사진이란 의미.
찍으면서도 '화벨 보정해서 잘 나오게 만들어볼까' 싶었지만 그럼 이런 구경거리를 만들어놓은 의미가 없으니.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느냐 하면. 잠수함 내부에는 낮과 밤을 자각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므로, 밤엔 저렇게 붉은 등을 켜서 승무원들의 바이오리듬을 유지하도록 한 것.

어느 센스넘치는 사람께서 이러한 야간등 아래서 먹는 야식 메뉴를 정성스럽게 구경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말 감탄 감탄.
원래 사람에게 어떤 상황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기 위해선 일단 음식과 결부시키는게 효과가 제일 좋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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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관람인데도 상당히 볼만한 구경거리로 넘치는 곳이라 기분좋게 나가려고 하는데 드디어 이 박물관 비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건물 밖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던 잠수한 아키시오(あきしお)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이 잠수함은 5년 전까지 실제로 취항중이던 진짜 잠수함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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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용 화장실도, 수백 명의 밥을 책임지는 주방도 조그맣기 그지없다.
실제 잠수함의 통로는 왠만한 남성 둘이 마주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디 좁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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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올라와 있는 녀석이라도 그 안은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이녀석이 물 속에 들어있을때를 생각하면 참 잠수함이란 무기는 꽤나 비인간적으로 설계된 녀석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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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잠수함이라서 이녀석은 입장료가 필요한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무료다.
그도 그럴것이 내부의 모든 장비가 실제 사용하던 것이다 보니 일반 관람객이 구경할 수 있는건 선두 중앙부분의 통로 조금과 잠망경이 있는 조타실 일부밖에 없는 것.

특히 조타실쪽은 실제 군인이 직접 경비까지 서 가며 '사진촬영엄금'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만큼 보안에 신경쓰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잠망경을 실제로 써 볼 수는 있었는데, 엄청난 밝기와 선명함을 가지고도 정말 멀리 있는 쿠레 조선소 내부에 정박해 있는 배가 한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렌즈를 만져보신 분이라면 이런 고배율에 이런 밝기가 가능이나 한가 싶을 정도로 고성능이었다. 군용이니 당연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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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없었던 공짜 구경까지 실컷 하고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이건 정신적 욕구의 충족을 가리키는 고도의 은유법이라고 설명까지 할 필요는 없을듯) 히로시마시로 돌아가는 JR 전철을 기다린다.

날씨가 28도 정도로 꽤나 더웠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 한끼 못먹고 지금까지 돌아다니고 있으니 꽤나 채력이 달린다.

이놈의 카메라와 렌즈 무게만 3kg 인데, 전자책, 여권 등의 필수서류를 우겨넣은 숄더백은 내 체력을 소모시키는 큰 원인으로 급부상중이다.

원래 오늘은 그냥 공원 벤치 아무데서나 자거나, 만화까페 같은 데서 싸게 때울 예정이었지만 지금 히로시마로 돌아가면 4시쯤.

지금부터 엎어질 수는 없는 노릇인데, 짐 정리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구경거리를 찾아서 나가려면
그 전에 체력도 좀 회복하고 싶고, 뜨끈한 물에 목욕도 즐겨야 이 피곤함이 가실 것 같다.
적당히 싼 비지니스 호텔이라도 찾아볼까 싶네. 하루 이틀 해 본것도 아니니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