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의 부드러운 음색에 취해 한동안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슬슬 밖으로 나간다.

Y양과 코마츠군은 저녁에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해서 너무 늦기전에 전철을 타야 한다.

내일은 오타루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는데 괜찮으면 함께 가잔다. 나 역시 내일은 오타루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의.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날씨도 더욱 쌀쌀해진다.

삿포로의 날씨가 서울과 비교해서 그리 추운편은 아니라지만 눈이 워낙 많이오기 때문에 밤이 되면 체감적으로 더 추운 느낌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은 눈축제장이라 가능하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회장을 한 바퀴 돌수 있도록 요원들이 지도를 하고 있다.

인파가 역방향으로 엉켜버리면 워낙 난잡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그래서 일단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 타는 곳까지 걸어가며 못 본 전시물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울트라맨. 이것 외에도 고지라 등 50~60년 전의 캐릭터들이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부럽기 그지없다.

 

 

 

곰이 서 있어서 혹시 쿠마모토의 마스코트인 쿠마몬인가 싶었는데

옆에 TV타워로 보이는 건물과 함께 곰 가슴에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쿠마모토와 홋카이도의 합작품인가 싶기도 하다.

홋카이도는 이주 역사가 짧은 만큼 그 반작용으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저 지도는 여러가지로 많이 쓰이곤 하는데, 삿포로 맥주정원의 명물인 무한 징기스칸의 불판도 홋카이도의 지도모양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역시 알아보기 힘든 일본 지역 캐릭터보다 이런 세계적인 캐릭터들이 이해하기 쉽다.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쪽에 눈이 쌓여서 마치 머리카락 자란 푸우처럼 보이는게 재미있다.

 

 

 

호빵맨에 나오는 세균맨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뭔가 얼굴이 심각하게 무서워서 인상적.

호빵맨은 참 순수한 얼굴밖에 나오지 않지만 어른들의 장난으로 여러가지 무서운 바리에이션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터널을 통과하는 하행 신칸센.

현재 홋카이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신칸센 철로를 만드는 공사가 2015년 완공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저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이 녀석이 완공되면 도쿄에서 삿포로까지 4시간에 이동이 가능해진다.

 

옆의 설명 간판에는 사용할 수 있는 IC 카드까지 설명해놓는 살짝 개그스러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것도 뭔가의 마스코트인 듯 한데 알 수가 없다. 코마츠군에게 계속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스키를 신고 있는걸로 봐서 동계올림픽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홋카이도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 당연히 캐릭터의 인지도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스마트기기의 보급과 함께 터진 첫 번째 대박 앵그리버드의 주인공.

인기작이라 그런지 특징 묘사도 꽤나 잘 되어있어서 아는 사람은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제작팀 쪽에서 일부러 넣은건지 군데군데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도 재미있다.

 

 

 

축제에 대한 일본인의 꼼꼼한 준비성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판기 스킨마저도 축제 캐릭터를 집어넣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배워갈 만한 점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이런 걸로 매상의 변동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본인처럼 소소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아닐런지.

 

 

 

회장 중간부분엔 세계 각국의 팀이 출품하는 국제 눈조각 콩쿠르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팀도 분명 출전했을거라 생각해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이 작품이 올해 콩쿠르 우승작이라고 한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설명문을 보니 금새 이해가 간다. 하나되는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

 

 

 

워낙 일본이라는 나라가 공동체의식을 중요시하기도 하고, 세계인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을 앞둔 시기이도 하고

특히 지금 일본은 협동과 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한국팀이 시류를 잘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다른 출품작들에 비해 모던 아트적인 느낌도 들고, 자세히 뜯어보니 우승 먹을만 하겠다는 생각.

 

 

 

조형의 퀄리티는 다른 국가 팀들의 작품도 결코 떨어지지 않지만, 주제 표현이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한국팀이 뛰어나다.

물론 이 눈조각 콩쿠르라는 것이 피말리게 경쟁해서 우승을 거머쥐는 그런 대회가 아니라서.

 

 

 

저녁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Y양 일행은 이제 돌아가는 중이니 그렇다치고 본인은 좀 더 눈축제를 구경하려고 생각중인데.

바로 돌아가기에는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지만 추운 날씨에 무리하는건 앞으로의 여행에 지장을 줄 지도 모르니 신중해야 할 듯.

 

어둑어둑해지니 좀 전까지 새하얀 자태를 자랑하던 퐁키 키즈의 거대한 조각상이 고운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낮에 새햐안 눈색을 만끽하고 저녁에 화려한 조명빨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눈축제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까.

 

 

 

여기저기서 대인기인 후낫시. 확실히 일본에서 인기몰이중인듯, 관광객 중에 '후낫시다~' 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꽤 많다.

코마츠군도 후낫시를 매우 좋아하는지 싱글벙글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보니 코마츠군에게도 뭔가 선물을 줬었어야 하지 않았다 싶다.

Y양은 한국에서 타지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과자라도 하나 사드렸는데, 코마츠군은 토박이라는 생각에 선물 생각을 깜빡 한 듯 하다.

 

 

 

일행 셋이 전부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서, 이동 속도 맞추기가 쉬운 점이 참 마음 편하다.

사진에 관심없는 일행이라면 어쨌든 찍는 입장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모습이 되기 때문에 조금 미안한 기분도 드는데.

 

낮과 밤의 이미지가 이렇게 달라지면 어쩐지 이득보는 기분이 된다.

 

 

 

무려 자위대 삿포로지부 마스코트인 모코가 회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홋카이도 토박이인 코마츠군이 설명해 준다.

자위대는 당연히 모병제이다 보니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홍보에도 열을 올리는 중이다.

군대라고 해서 마스코트를 딱딱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컨셉으로 나온 듯한 느낌.

 

 

 

밤이 되면 밤을 이용한 즐길거리가 등장한다. 단순히 불만 켜 놓는 것 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

저 멀리서 레이저로 바닥에 캐릭터 그림을 비춰주니 아이들이 재밌어하며 달려든다. 이럴 때는 물론 좋은 셔터찬스.

저작권(?) 문제로 가능하면 얼굴이 나오지 않게 소심하게 찍는다. 어디서 아이 부모가 달려와 카메라를 내던지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며.

 

 

 

거대한 전시물들은 오히려 밤이 되니 그 위용을 드러내는 듯 하다. 주위의 어둠과 대비되어 명암도 확실해지고 웅장함이 더해진다.

사람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낮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듯 하다. 역시 축제는 저녁부터가 본편인 것인가.

 

이러나저러나 날씨도 매우 춥고 조명이 9시 정도까지밖에 켜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초저녁 기분밖에 나지 않지만.

Y양이나 코마츠군이 저녁약속 없고 술이나 펍의 분위기를 즐기는 타입이었다면 늦은 밤까지 술안주를 즐겼을 테지만

두 사람 모두 나와는 다른 매우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분위기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말레이시아 가게에서는 현란한 반죽돌리기를 시연하고 있다.

피자 도우 돌리는것과 비슷하긴 한데 좀 더 유연성이 있어서 움직임이 비규칙적이라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겨울 삿포로 축제장에서 말레이시아 사람이 그것도 무려 반팔로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더 놀라웠지만.

음식 만드는 부스 내부는 어디든 춥기보다는 덥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데, 실제로 보면 또 그게 금방 이해되기는 어렵다.

열정을 봐서 하나 사먹어 주고 싶기는 했지만 Y양 일행은 이제 저녁먹으로 가는 중이고

본인 역시 홀로 저녁이지만 괜찮은 녀석 먹고 싶어서 배를 비우는 중이라 군것질은 힘들다.

 

 

 

오오도리 중앙에 도착해 Y양과 코마츠군은 전철을 탄다. 눈축제 기간이라도 삿포로는 돌아가고 있으니 저녁시간대의 인파는 대단하다.

혼잡한 개찰구에서 내일 삿포로역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초면 일행들과의 관광이라서 좀 긴장한 탓인지, 큰일 하나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도 없지 않다.

물론 눈축제 같은 행사는 혼자서 묵묵히 걸어다니며 사진찍어봤자 별로 재미있지 않으니 일행이 생긴 건 나에게 참 좋은 이벤트였긴 하다.

 

6시도 되지않은 시간이라 어둑어둑한 하늘과 달리 이대로 돌아가기엔 많이 아쉽다.

형형색색의 대만측 얼음궁전을 감상하며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본다.

 

 

 

인파가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몰리고 있는데, 주변에서 확성기를 든 사람들이 스키 점프를 위해 이동을 서둘러 달라는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어젯밤 텅 비었던 그 점프대에서 오늘도 이벤트가 일어나는 모양이라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슬금슬금 걸어간다.

 

점프 구경은 아마도 자리를 한번 잡으면 꼼짝도 못하고 있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이 추운 날씨에 Y양 일행과 보려고 했다면 괜히 극기훈련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해 질 수도 있었을 듯.

 

점프 이벤트는 6시에 시작하는데, 다행이 조금 이른 시간이라 무난하게 펜스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10여분 전부터는 뒤로 빠져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진행요원들은 이동하는 사람들 방해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한다.

 

 

나름 괜찮은 장소다 싶었는데 사람이 가득 들어차고 나니 방송이 나온다.

오늘 점프는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한다고. 라인의 상태도 전혀 다른걸 봐서 아무래도 점프도 종목이 따로 있는가보다.

 

왼쪽에 자리를 잡은 탓에 생각한 것보다 시야가 확 트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찍 온 것은 다행.

늦었으면 사진 대부분의 하단부엔 시커먼 뒷통수가 난립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을테니까.

 

 

 

망원으로 갈아끼우고 눈 펑펑 쏟아지는 저녁에 서 있으니 팔은 뻐근하고 다리는 욱신거린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망원을 통해 보는 게 훨씬 잘 보이니 계속 주시중인데, 준비하는 선수들이 굉장히 어려보인다.

저 위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다리에 힘이 쏙 빠질것 같은 높인데다가 거기서 수십 km의 속도로 점프를 하다니.

 

스피드를 즐기는 운동은 별로 하지 않는 본인으로서는 섬뜩하기만 하다. 부디 실패하는 일은 없기를.

 

 

 

타이밍 좋게도 점프가 시작할 즈음부터 내리는 눈이 더욱 거세진다.

이 정도로 눈내리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경험은 처음이라 좋은 연습이 되리라 생각.

 

사실 이번 여행중 눈이 이 정도로 내리기를 바라는 날이 딱 하루 있다.

토카치(十勝) 지방의 독특한 경마인 반에이 경마는 자이언트급의 거대 경주마들이 속도보다 파워를 겨루는 경기인데

원래 겨울경기에 특화된 녀석들이라, 내가 가는 날짜에 눈이 펑펑 내려주면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중이다.

안내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운이 좋으면 이번 폭설이 그 날 촬영의 시험촬영 쯤 될 수 있을테니 나쁘지 않다.

 

 

 

풀프레임 망원렌즈는 베낭여행에 가져가기엔 참 크고 무거운 녀석이라 여간 귀찮은게 아닌데

그래도 다가갈 수 없는 지역의 모습을 찍을 일이 많은 경우엔 항상 믿음직하게 사진을 뽑아주기 때문에 내치고 갈 수가 없다.

 

살짝 억지스럽게 악을 쓰고 있지만, 촬영의 편의를 위해 손가락쪽은 드러난 손목 보온대만 차고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망원렌즈를 물린 풀프레임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극기훈련하는 느낌이 든다.

겨울 홋카이도의 위력이란 걸 실감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이번 여행은 주욱 이 차림으로 갈 생각인데

고작 삿포로 정도에서 고생한다면 앞으로가 험난할거라 생각해 어찌어찌 참아보려고 노력중.

 

 

 

어쨌든 실수하면 생명마저도 위험한 점프이다 보니 안전관리에는 각별히 신경 쓰는 느낌이다.

몇 안되는 인원들이 정말 땀흘리며 열심히 필드를 고르고 있다.

 

왼쪽 점프대는 매끈하게 닦여져 있는데, 오늘 점프하는 오른쪽은 눈이 굉장히 울퉁불퉁하게 쌓여 있어서

아마도 점프의 종류에 따라 지면의 상태도 달라야 하는 것인가 싶다.

 

 

 

30여분간의 기다림 끝에 DJ 같은 사회자의 신명나는 목소리와 함께 이벤트가 시작된다.

한국과 달리 이런 쪽에서는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일본 사람들의 특성상, DJ 가 흥을 띄우려 노력해도 신사적인 박수 외에는 꽤나 조용한 편.

선술집에서는 누가누가 소리 잘 지르나 싶을 정도로 웃고 떠드는 일본 사람이지만 이런 곳에선 왠지 사회적인 분위기에 신경을 쓰나 보다.

 

가볍게 한 사람씩 점프가 시작되는데

조명이 있다고는 해도 이런 캄캄한 밤에 조리개값 어두운 망원렌즈로 질주하는 스키어들을 잡아낸다는 게 보통 힘든일이 아니다.

내 카메라가 동체추적에 특화된 모델도 아니라 일단 평소 습관대로 싱글 AF 에다가 연사만 걸어놓고 타이밍을 노려서 찍어본다.

 

아주 구닥다리 카메라는 아니라서 다행히도 3장 중 1장은 그럭저럭 건질 만한 녀석이 나온다. 감도를 3200 에서 6400 까지 올려야 겨우 셔터스피드가 확보되긴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누가누가 멀리 날아가는가가 아니라 익스트림처럼 멋진 동작을 보여주는 쪽으로 진행되는 듯 하다.

점프대 자체의 높이도 아찔한데 그걸 몸을 꼬면서 날아가는 스키어들의 모습을 보니 거의 서커스 보는 느낌.

 

홋카이도에서는 친숙한 겨울스포츠지만 관객들 사이에서도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선수들의 연령대는 대학생이나 사회인도 있지만 상당수가 지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 놀라울 따름이다.

 

 

 

전부 개성있는 포즈라 점프 위치만 같을 뿐이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어떤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거의 패닝샷에 가깝게 카메라를 움직여가며 촬영할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촛점이 잡히기만 하면 대충 찍을 순 있다.

 

컴팩트 카메라 들고 온 사람들은 거의 동영상 촬영용으로 쓰고 있는 분위기.

맛폰 촬영탓인지 여기저기서 번쩍거리기는 하는데, 이 거리에서 플래시 터져봤자 별 의미가 없다.

휙휙 날아올라서 사뿐하게 착지하는 인간같지 않는 모습에 감탄하면서 눈을 뷰파인더에서 뗐다 붙였다 한다.

사진만 담으면 실제로 보는 재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둘 다 놓치지 않기가 참 피곤하지만, 집중해서 다음 선수들의 점프를 주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