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코인 호텔은 일본에서 체인점 수가 가장 많은 비즈니스 호텔이고

회원 카드를 만들어 놓으면 가격 할인, 10번 숙박에 1번 공짜 등의 혜택이 있어서 자주 사용합니다.

하지만 조식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는 게 아쉬운 점이죠. 엄니는 그냥 배만 살짝 채운다는 느낌으로 식사를 하시네요.

 

저야 뭐 자전거 여행 도중 한번 들어가게 되면 이런 조식이라도 감지덕지라 미친듯이 배를 채우곤 했습니다만

이번 여행은 느긋하게 여러가지를 즐길 수 있으니 조식에 크게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 번째 관광지인 리츠린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조금 넘게 걸립니다.

아침이지만 햇살이 꽤나 따가웠네요. 여행 내내 날씨가 나쁜 날은 없어서 좋았지만 매일 35도 가까이 올라가는 날씨는 꽤 버겁습니다.

 

겨울 오사카 여행때 엄니께서 피로 누적으로 몸이 안좋아진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속도를 좀 늦출 예정이죠.

리츠린 공원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호텔을 잡은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걸어가다 보니 미키 부지키(三木武吉)의 동상이 서 있습니다.

메이지 시대의 타카야마 출신 정치인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인 '보수합당'의 공로자이기도 합니다.

정작 본인은 보수합당 후 양당 정치인들에게 버림받긴 했지만 말이죠. 합당한 자유민주당은 현재 당수가 아베 신조이니 뭐 그럴만도 하다는 느낌입니다.

 

 

 

정오쯤엔 너무 더워질 것 같아서 일부러 오전 8시에 일찍 출발했습니다만 아침부터 장난이 아닙니다.

엄니는 양산이라도 쓰고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지만 땀이 줄줄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정오가 되기 전에 공원을 둘러보고 간단히 점심 한끼 한 후에 호텔에 돌아가 에어콘 바람을 좀 쐬어야 겠네요.

 

 

 

자전거 여행 중 들른 여러 공원 중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인상깊었던 리츠린 공원에 도착했습니다.

타카마츠에 와서 이 공원을 둘러보지 않는다면 큰 손해라는 느낌이죠. 시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1600년대 지어진 이 회유식 정원은 현존하는 회유식 정원중에서 가장 큰 공원입니다.

타카마츠를 비롯한 카가와현이 일본 내에서도 맑은 날이 많은 조용한 지역이라는 이명이 붙어있는데

그런 곳이라서 이렇게 산책을 즐기는 공원이 발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75 헥타르, 즉 75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공원으로 도쿄 돔 16개 크기입니다.

 

 

 

오사카나 도쿄 등 관광객이 접하기 쉬운 곳에 위치한 회유식 정원은 생각보다 나무가 빡빡하고 길이 좁은 느낌이지만

리츠린 공원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굉장히 널널한 느낌이 듭니다. 여타 공원과는 조금 분위기가 다르죠.

 

그 크기 때문에 상주 관리인원만 100명이 넘고, 사무실 등 기타 관리직까지 합하면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원입니다.

날씨가 덥지만 않았다면 3시간 넘게 느긋하게 산책할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더워서.

 

특히 봄의 리츠린 공원은 흩날리는 벚꽃 덕분에 굉장한 풍경을 자랑합니다.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좋은 휴식처이죠.

카가와현 전체 인구가 100만명인데 그 중 이 타카마츠시에만 64만명이 거주중입니다.

대구의 인구가 250만명인데 이렇게 금새 이름을 댈 만한 공원이 뭐가 있을런지. 기껏해야 수성못이나 두류공원쯤 될까요.

 

 

 

일본의 회유식 정원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분이라면 금새 느끼시겠지만

리츠린 공원은 내부에 산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그 풍경이 다른 정원과 사뭇 다릅니다.

 

저도 자전거 여행중엔 거의 사전정보가 없어서 이 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요.

타카마츠에서 배를 타고 본토로 넘어갈 예정이었고, 당시 어마어마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하룻밤 묵고 가려고 숙소를 잡았는데

프론트의 아가씨가 리츠린 공원은 꼭 보고 가시라고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벚꽃이 살짝 남아있었던 시기라 그 아름다움은 굉장한 인상을 남겼죠.

편안히 산책하는 사람들과 고등학생들의 브라스밴드 공연 등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츠린(栗林)이라는 말은 한자 뜻대로 밤나무 숲이라는 의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리츠린 공원은 설립 당시부터 밤나무가 거의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소나무를 주력으로 심었는데 어째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까지는 모르겠네요.

 

리츠린 공원에는 약 1400그루의 소나무가 있습니다만 놀라운 것은 이 중 1000여그루의 소나무가 장인의 손길을 거친 분재 소나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 전국의 분재 소나무중 8할이 카가와현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이 곳의 분재 소나무들은 모두 국가급 장인들이 매일매일 관리하고 있죠.

 

분재라는 행위 자체가 호불호 갈리는 것이라 싫어할 사람도 있을 듯 합니다.

일본의 회유식 정원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공의 미를 가미하기 때문에 이런 분재 소나무가 예술품처럼 장식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그 덕분인지 전체적인 공원의 분위기는 매우 단아하고 정갈합니다. 자연 그대로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매우 기묘합니다.

 

 

 

공원 안에는 6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수면만 보이는 연못도 있고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도 있고 이렇게 연꽃이 핀 곳도 있죠.

 

워낙 더운 날씨인데다가 직장인 학생들이 출근하는 평일 아침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좋습니다.

저는 몰라도 엄니가 너무 더워하셔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죠.

 

 

 

회유식 정원은 산책하면서 음미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길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리츠린 공원은 산과 언덕, 연못까지 널널하게 포함된 크기 덕분에 그야말로 산책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죠.

 

정갈하게 흐르는 하천 주위를 거닐면 여행은 이렇게 느긋해야지 하는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저 나무들이 단풍으로 물들면 그 모습도 절경중의 절경이죠.

사실 일본의 정원은 여름이 제일 애매합니다. 온통 푸른색 뿐이라 통일감은 있는데 화려함이 좀 부족하니까요.

 

 

 

정자에 올라가진 못하지만 멀리서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본 최고의 공원이라 하면 오카야마의 코라쿠엔(後楽園), 카나자와의 켄로쿠엔(兼六園) 등을 꼽습니다.

저는 켄로쿠엔을 빼면 왠만큼 이름난 정원을 많이 가봤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곳 리츠린 공원 역시 코라쿠엔과 맞먹는 레벨이라고 생각하네요.

 

재미있게도 미국에서 선정한 일본 정원 1위는 직접 들어갈 수 없고 바라만 볼 수 있는 시마네현의 아다치 미술관(足立美術館)이었죠.

그 랭킹에서 3위를 차지한 게 이곳 리츠린 공원입니다. 코라쿠엔과 켄로쿠엔은 TOP3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거리입니다.

 

 

 

엄니가 도시관광을 싫어하는 면도 있고 저도 복잡한 곳을 싫어하는 관계로

사실 일본 여행으로 추천하고픈 곳이 이곳 타카야마 부근입니다. 딱히 이쪽으로부터 광고비를 받은 건 아니지만.

 

이 근처엔 우동도 맛있고 리츠린 공원도 있고 건축가 안도 타다오로 유명한 지중미술관도 있고

한두 시간만 전철 타면 분위기 좋은 쿠라시키 미관지구도 갈 수 있고, 적당한 번화가인 오카야마에도 갈 수 있으니까요.

 

쇼핑과 맛집, 남들 다 가는 유명 관광지를 즐긴다면야 오사카가 제일 좋겠지만 이 곳에서는 여유가 느껴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저렇게 나무 그늘아래 앉아서 편안히 휴식중인 엄니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엄니 사진 찍고나서 그늘로 들어갑니다.

아직 시간은 차고 넘칠정도로 남아있고, 오후엔 특별히 갈 곳도 정하지 않고 느긋하게 마을 상점가 주변을 돌아볼 예정이라서.

 

오사카 여행 당시의 참사를 기억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하루에 한 곳 아니면 두 곳 정도만 목표를 정해놓고 지극히 여유롭게 돌아다니려고 합니다.

볼 것을 못 보고 돌아온다는 초조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 여행이라서 말이죠. 엄니도 그런 게 좋다고 하셨고.

어차피 일본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호주처럼 압박감을 느낄 정도의 거대한 풍경 같은게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무리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봐야 할 필요 없이 좋다 싶은 곳만 선택해서 느긋하게 즐기는 게 더 낫다고 봅니다.

 

 

 

천 그루가 넘는 분재 소나무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장인급이고

75만 평방미터 어디에서도 쓰레기 한 점 없는 통일성을 갖춘 이 공원은 얼마나 많은 인원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상상이 안됩니다.

인구 64만명의 작은 도시지만 외국인인 저만 해도 볼거리를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이 곳이 참 부럽게 느껴지네요.

 

새삼스럽지만 엄니하고 이렇게 5박 6일 정도 머물면서 구경할 수 있는 한국의 도시란 게 대체 어디인지 떠오르질 않습니다.

여행하고는 관계없이 올해 8월에 다녀온 전주의 한옥마을은 '이걸 관광지라고 선전중인가'싶을 정도였으니.

 

 

 

연못에 잉어과 거북이 풀어놓는 것은 오랜 전통인지 모르겠네요.

이런 정원들은 대부분 영주들의 놀이터였으니 혼자 느긋하게 즐기면서 이녀석들에게 먹이나 던져주고 했겠죠.

 

요즘도 거북이와 잉어들이 사람 그림자만 보이면 몰려들어서 고개를 쳐듭니다만 일반인은 이녀석들에게 먹이 주는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마 관리인들이 밥 주는데 익숙해서 그런 것이겠죠.

 

 

 

실제로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올라가지 못하는 언덕과 정자도 있고 저렇게 하천 건너편에서 구경만 할 수 있는 곳도 있죠.

그래도 워낙 정비를 잘 해놔서 어딜 가나 셔터가 눌립니다. 어느 곳 하나 허투로 만들질 않았네요.

 

 

 

예전엔 실제로 저기서 유람선을 띄우고 유유자적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요즘엔 그런 거 없습니다.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연못 중앙의 정자 역시 지금은 멀리서 사진이나 찍을 수 밖에 없죠.

덕분에 그런 곳은 왜가리들이 마음편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야 왜가리 사진도 찍을 수 있으니 나쁠 거 없습니다.

 

 

 

엄니가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해서 셔터 누르는 저를 무시하고 막 전진을 하기 때문에

엄니와 함께 한 여행이지만 엄니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거 별로 아쉬워 하는 분도 아니라.

 

보통은 엄니가 미아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땀흘리며 쫓아가지만 리츠린 공원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네요.

덕분에 걷다가 좋은 풍경이 보이면 사진도 찍고 하면서 걸어가도 어차피 앞에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가옥이라도 소중하게 손질해 놓은 것은 변함없기 때문에 사진찍기 참 좋습니다.

저런 소나무는 분재임에 틀림없겠죠. 그냥 놔두면 절대로 저렇게 자라지 않습니다. 하긴 1400그루중 1000그루가 분재라고 하니.

 

동양인으로서야 그냥 아름답다 할 정도지만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원의 분위기가 매우 신선할 겁니다.

자신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공원과는 전혀 다른, 걸어가면서 미를 음미하는 회유식 정원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이 많겠죠.

실제로 이날 아침엔 일본인 관광객들보다 서양 관광객들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일본인도 많이 들어왔지만.

 

도시 어디서든 버스타고 10~30분만 이동하면 이런 정원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는 게 대구 사는 저로서는 참 부럽기 그지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