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 그림같은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소나무 분재는 이미 소나무가 아니라 예술작품으로 빛을 발하고 있더군요.

 

분재가 식물의 자연적인 성장을 배제하고 인위적으로 사육하는 형태라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좀 있지만

특이하게도 식물은 분재처럼 인위적으로 성장을 조절하면 사실상 늙어죽지 않는다고 하네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 분재는 손바닥 두 개만한 화분 속에서 500년 가까이 멀쩡히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랄 건, 이곳 리츠린 공원의 분재 소나무들은 극단적으로 크기 조절을 하지는 않고 그냥 가지를 쳐 주는 정도라서

있을 수 없는 조그만 크기로 유지되거나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위안이 되는 듯 하네요.

 

 

 

인공적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조그만 폭포도 있습니다.

조그만 폭포가 있는 정원도 일본 곳곳에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건 척 봐도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올려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이쪽 폭포는 정말로 산이 위치한 곳에서 떨어지고 있어서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공원 규모에 비하면 아주 작은 폭포라서 그냥 재미삼아 구경할 만 하더군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좋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예술적인 감각을 고려해 만든 정원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갈 지 상상이 되질 않네요.

 

나무를 관리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인데, 거의 자식을 기르는 기분으로 관리하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식 정원에 넓은 공간이 더해지면 이런 느낌이 나온다는 것을 이 곳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엄니도 공원 풍경이 마음에 드시는지 안 찍던 사진도 한 번 찍어보라 하시네요.

우연이지만 빨간 꽃이 장식된 옷과 푸른 공원이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와서 사람도 별로 없는 터라 느긋하게 사진도 찍고 산책할 수 있었죠.

아무리 넓어도 관광객과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가능하면 아침 일찍 오는 게 좋습니다.

 

 

 

 

넓은 공원이라도 한 바퀴 산책할 동안 다양한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지겹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 다리 건널때 빠지지 않을까 조심하는 기색을 많이 보이더군요. 그럼 여유있는 어른들은 또 한 번 웃어주고.

 

미적 감각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엿보입니다.

인공적인 직선이 조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대각선 형식으로 이어붙여 만든 다리는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립니다.

완전히 구불구불한 진짜 나무다리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인공미가 남아있는 공원의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할까요.

 

 

 

 

예전에 이 공원을 혼자 소유하고 있던 영주들은 참 호사스럽게도 놀았다 싶습니다.

뭐, 실제로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기 일쑤라서 이런 데서 스트레스 푸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오카야마의 코라쿠엔(後楽園)이라는 정원은 영주가 혼자서 정원에서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해서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즐길 수 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군요.

때때로 일반인도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시도였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즐기는 한국의 정자와 달리 자기 거점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이쪽 사람들의 심리를 나타내는 곳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연못을 끼고 돌아가는 길은 어느 정원에서나 가장 아름다운 코스로 꼽힙니다.

정갈하게 세워진 대나무 펜스가 운치를 더하는군요.

 

보통 이런 길은 중간에 조그만 언덕을 끼고 살짝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울창한 나무 아래를 걷다가 서서히 밝아지며 넓은 연못의 풍경과 다시 마주하는 그 구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름난 정원일수록 미적 만족감을 위해 정말 온갖 정성을 쏟았다는 느낌이 확연히 드는데

그러나 보니 정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동선을 따라가며 감상하는 아름다움은 오카야마의 코라쿠엔이 놀랄 정도로 훌륭합니다만

이곳은 크기를 충분히 살려서인지 느긋한 기분으로 음미하며 산책하기에 좋은 느낌이 듭니다.

 

 

 

단풍과는 거리가 먼 계절이었지만 우연인지 아주 살짝이라도 단풍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리츠린 공원의 가을 모습이 매우 기대가 되는군요.

 

타카마츠는 가볍게 여러 번 가도 느낌이 바래지 않는 여행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면 가을에도 한 번 찾아가고 싶습니다.

 

 

 

회유식 정원은 걸어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장면들이 치밀하게 계산된 그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선을 만들때나 언덕을 올라가는 길을 만들 때도 그 장소에서 보이는 풍경을 고려하고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걸어가다 보면 '이 곳은 노리고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딱 들게 만드는 곳이 나타납니다.

규모가 큰 공원이다 보니 왠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지는 풍경이 이곳저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군요.

 

 

 

성수기때는 온갖 관광객들이 저 다리 위에서 포즈를 잡느라 이런 느긋한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죠.

여름은 살짝 비수기이기도 하고 아침에 온 덕분에 그림같은 풍경을 이물질 없이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봄이나 가을, 혹은 눈이 쌓인 겨울의 모습을 이렇게 찍으면 황홀하겠지만 기회 잡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아침부터 30도가 넘어가는 폭염이라 조그만 언덕 하나 넘어오니 온통 땀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절묘하게도 언덕 넘어오면 조그만 매점이 영업중이죠. 빙수 하나 사먹으며 잠깐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할까, 오카사나 쿄토 같은 찜통과 달리 이곳 타카마츠는 지형상 습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기 때문에

햇살은 강하지만 그늘에서 쉬고 있으면 그나마 서늘한 편이죠. 시골에 속하는 곳이라 도시의 지열도 별로 높지 않고.

 

 

 

연못으로 흐르는 조그만 개천에는 굉장한 색대비를 보여주는 이끼가 보송보송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모두 계산해서 주기적으로 다듬어 주고 있죠. 이런 정성을 놀라울 따름이죠.

 

물 속에 색을 입히는 느낌이 듭니다. 한여름이지만 소나무보다 더욱 강렬히 생명력을 발산하는 듯 하네요.

 

 

 

그늘에서 쉬는 건 좋은데 일본 정원의 최대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워낙 수풀이 우거진 곳이라 봄에서 가을까지 그늘에서 잠깐 멈춰서기만 하면 전투모기들이 달려들죠.

 

일반 모기가 아닌 군화 뚫는다는 그 줄무늬 모기입니다. 이 녀석들 특징은 손으로 저어도 쉽게 도망가지 않고 장렬하게 달려든다는 점이죠.

엄니도 잠깐 쉬다가 결국 몇 초만에 몇 군데 물리고 말았습니다.

 

리츠린 공원은 개방적인 곳이 많은 편이라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나는 편이고

수풀 아래 산책길이 많은 작은 정원들은 지옥과 같은 가려움을 극복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 거리는 저같은 사람들은 멈춰설 때가 많기 때문에 보통 한 바퀴 돌면 대여섯 방은 물리고 시작하죠.

 

 

 

지금 엄니와 저는 공원 내의 7개 연못 중 남쪽 연못에 서 있는데

이 남쪽 연못에서는 유일하게 연못을 한 바퀴 도는 조그만 관광선이 영업중입니다.

한 사람 600엔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지만 엄니한테 물어보니 그런 덴 관심이 없다고 하는군요.

 

걸어서 다 둘러보긴 했으니 별 의미 없다는 것이겠지만, 그게 또 물과 맞닿은 상태로 구경하는 건 나름 매력이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날씨가 너무 덥고 배 안에서는 양산을 펼 수 없으니 이 햇살을 견디는 게 쉽지 않으니 타지 않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원 내에는 말차와 화과자를 즐길 수 있는 정자가 몇 군데 있습니다.

날씨 탓에 꽤나 지쳤으니 엄니와 함께 저기 들어가서 좀 쉬기로 했습니다.

 

예약을 미리 하면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지만 외국인이 예약해서 식사하는 걸 본 적은 없네요.

굉장히 단아한 장소였는데, 입구로 들어가니 점원 분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오늘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기 때문에 안내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말이죠.

대신 결혼식 전에 내부를 둘러보는 건 괜찮다고 합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안으로 들어갑니다.

 

엄니는 결혼식 사진도 좀 찍어보라고 바람을 넣으셨지만, 일본은 결혼식 날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들어가는 회원제(?) 형식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죠. 특히 카메라 들고다니는 외국인이 마음대로 참가하면 제 소심한 성격이 버티질 못할 겁니다.

 

 

 

정자의 마당은 나름 일본의 방식인 카레이산스이(枯山水)이긴 하지만 약간 엉성합니다.

문화재가 아니라 공원 내 상업 정자 속에서 이 이상의 수준을 바랄 수는 없겠죠.

 

더위 때문인지 비둘기도 소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서 움직이질 않네요.

 

 

 

정자 안에서 둘러보는 풍경 역시 어디 하나 모자란 부분이 없네요.

에어콘은 커녕 선풍기도 없는 정자라서 시원하진 않지만 오늘같은 날은 그나마 그늘에 앉아있으면 숨은 쉴 만 합니다.

활동성을 가진 마당이 아니라 눈으로 음미하는 이런 분위기는 서양인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될 것 같네요.

 

 

 

조금 있으면 결혼식이 열릴 연회장입니다. 벽 부분의 이렇게 살짝 올라간 부분은 토코노마(床の間)와 비슷하지만 엄밀하게는 조금 다르네요.

토코노마는 족자나 장식품을 놔 두는 공간입니다만 원래는 창문가가 아니라 벽 한쪽에 만들어야 하죠.

이 연회장은 사방이 트인 형식이라 벽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만든 것 같습니다.

 

토코노마에 등을 지고 앉는 이 자리가 연회에서는 상석을 차지합니다. 손님이 토코노마를 보게 앉으면 주인이 토코노마를 자랑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결혼식에는 아마 신혼부부 한 쌍이 저 푸른색 자리에 앉게 되겠죠.

 

 

 

한국의 거대 예식장에 비하면 꽤나 조촐한 편이지만 사실 이 곳에서 결혼식 여는 게 그리 싼 편은 아니죠.

리츠린 공원은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통 정원에서 국보급 위치를 의미합니다.

그런 공원 내에서 정자 하나를 빌려 결혼식을 연다는 게 그렇게 저렴하진 않을 테니까요.

 

가장 비싼 결혼식은 유명한 이세 진구 같은 특급 신사에서 열리는 결혼식입니다만, 전 그렇게 엄숙한 종교의식 분위기보단 이런 곳이 더 마음에 드네요.

 

 

 

한국으로 치면 폐백에 쓰이는 음식과 술 등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죠.

 

엄니는 이런 거 꽤나 보고싶어 하셨습니다만, 일본의 결혼식은 그렇게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3개월동안 홈스페이를 하며 매우 친해진 분의 따님 결혼식 때도, 청첩장을 다 보내 버렸기 때문에 그걸 받지 못한 저는 참석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멀리서 사진 찍으면 되지 않겠냐고 엄니가 말씀하셨지만 아무래도 신성한 결혼식에 그렇게 도촬까지 해서는...

 

 

 

일본식 정원은 이런 카레이산스이 구조와 굉장히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바위나 자갈 등의 자연물을 이용해 그 상징성으로 자연의 풍경을 묘사하는 형태죠.

자갈의 폭은 바다의 파도로, 바위나 조경수는 육지로, 그리고 자갈로 그 육지에 부딪히는 파문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물을 이용해 자연을 축소한다는 발상은 추상화와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인공미가 남겨진 것 역시 일본식 정원과 궤를 같이 하고 있네요.

 

 

 

전망좋은 마루에 앉아서 기다리니 말차와 화과자가 나옵니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 시원한 얼음말차로 부탁을 드렸죠.

 

이런 정원에서 판매하는 말차는 기본 레벨을 충분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마실 만 합니다.

특히 함께 나오는 화과자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귀여운 녀석들이라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들죠.

 

 

 

저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화과자 자체는 그냥저냥입니다만

워낙 앙증맞게 만들어 놔서 보고 있으면 왠지 고양이가 자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까요.

 

일부러 살짝 잘라서 속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봅니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이렇게 세심하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것이 참 허무한 듯 합니다만

운치를 즐기는 데는 이렇게 알맞은 것도 없겠죠.

 

말차를 마신 후에 과자를 먹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과자를 먼저 먹고 말차를 마시는 게 올바른 순서입니다.

과자를 먹고 나면 말차의 쓴맛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이죠. 뭐, 일본 사람도 굳이 그 순서를 지키지는 않습니다만.

 

 

 

마루에 앉아서 풍경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땀을 식힙니다.

중간중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주니 더위에 찌든 몸도 슬슬 풀려가는군요.

 

말차 한 잔과 화과자 한 조각을 앞에 놓고 극도로 조경한 공원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신선놀음인 듯 합니다.

결혼식까지는 시간도 좀 남아서 서둘러 떠나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엄니와 함께 한동안 앉아서 뒹굴거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