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쿄의 스카이 트리 같은 경우는 엄청난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데

코베의 포트타워는 야경이 좋긴 하지만 역시 높이도 그리 높지 않고 관광객도 그리 많이 찾지 않아서 좀 황량합니다.

 

낮에 찾아왔으니 더더욱 그런데, 딱히 주변엔 먹을만한 게 없더군요.

하지만 날씨는 쌀쌀해지고 배는 고프고 해서 근처 호텔의 뷔페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런치 뷔페가 1200엔으로 꽤나 싼 편이었는데, 사실 그걸 더 원했다고 할까요.

아침을 많이 먹어서 굳이 코베 스테이크 같은 고기요리를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뷔페 들어가면 많이 먹긴 하겠지만.

 

 

 

저렴한 뷔페다 보니 음식 종류는 꽤나 적었지만 하나하나가 먹을만해서 다행입니다.

밥하고 어울릴 반찬부터 간단한 닭고기와 돼지고기 요리 등등

작정하고 가게를 박살내러 갈 요량이 아니면 느긋하게 런치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네요.

 

코베까지 와서 이런 국적불명 뷔페나 먹나 싶기도 했지만

엄니께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 바람이 매서워서 좀 쉬고 싶었으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있을 수 있는 뷔페가 적당하다 싶더군요.

런치 영업시간이 3시까지였지만 어차피 2시간이 넘게 남았으니 문제 없습니다.

 

 

 

크게 비싼 요리는 없었지만 다들 음식이 깔끔해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직원분이 소고리를 끌고다니면서 원하는 손님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후 겉만 살짝 익혀 보관한 듯한 녀석이로군요.

 

돼지고기는 이탈리아 등에서 이렇게 햄처럼 숙성시킨 녀석들 많이 먹는다는데

아무래도 단가가 비싼 녀석인지 그냥 놔두지 않고 요렇게 한 사람당 두 조각씩만 나눠줍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뷔페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인을 장식한 녀석은 이 전골이더군요.

일본에서는 이런 1인용 전골 냄비를 많이 사용합니다.

여행사 따라 여행할 때, 손님들에게 바로바로 내 줄 수 있는 장점도 있고 말이죠.

 

이곳은 뷔페다 보니 안에 들어갈 재료와 국물 종류를 자기가 선택해서 담으면 됩니다.

종업원 분들이 돌아다니다가 이걸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밑의 고체연료에 불을 붙여 주죠.

 

 

 

저하고 엄니는 벌써 꽤나 많이 먹은 후라서

한 냄비로 두 명이 나눠먹기로 합니다. 따뜻한 국물과 각종 해산물, 닭고기 등을 넣어서 시원하네요.

 

대구의 이리로 보이는 저 녀석은 볼 때마다 제가 엄니한테 물어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옛날엔 그냥 내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장이 아니더군요.

궁금한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뷔페 음식은 미리 만들어 놓아서 질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이 있지만

이렇게 고체연료가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끓고 있는 냄비를 보면

왠지 그냥 뷔페보다 좀 더 괜찮아 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머리 잘 썼네요.

 

 

 

아이스크림이 6종류가 있는데, 처음엔 그냥 맛만 보자 하고 가져왔지만

먹어보니 이게 빕스나 에슐리 같은 곳의 아이스크림과 레벨이 다른, 상당히 제대로 만든 녀석이라

안 먹고 가는건 아깝다고 모든 종류를 다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엄니께서도 처음엔 영 주저하셨지만 드셔보니 종류별로 맛과 향이 잘 드러나서 결국 조금씩 다 드시더군요.

똥색은 뭐 설명할 것도 없지만 푸른색은 라무네라는 일본식 레모네이드 사이다 맛이고 분홍색은 복숭아 맛입니다.

 

 

 

옅은 색은 요구르트 맛이고 노란 색은 망고, 녹색은 뭐 말할것도 없죠.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에 놀라는 동시에, 한국의 뷔페집 아이스크림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세삼 깨달았습니다.

 

에슐리라던가 빕스라던가, 음식은 이제 그럭저럭 적응하고 맛있게 먹는 편이지만

아이스크림만큼은 그냥 애들 먹으라고 대충 선정한 듯한 그 낮은 수준이 영 적응이 안되고 있죠.

가끔은 아이스크림 값이 비싸니 그냥 맛없는거 놔 둬서 많이 못 먹게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엄니와 저도 꽤 오래 앉아있었지만 재미있게도 원래 앉아있던 모든 손님들이 저희보다 더 늦게 일어나더군요.

아주머니 몇 분이 언제부턴가 식사는 접어두고 줄창 음료수만 뽑아와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1200엔 정도의 런치 뷔페란 일본에서 그냥 간단한 식사 한 끼 하는 정도의 금액이라

아주머니들 역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75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은 혼자 오셔서 천천히 음식 덜어먹고 커피 마시며 신문 읽고 계시네요.

걸음이 조금 불안하게 보일 정도로 몸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분인데, 일본의 혼자 식사 문화에 어지간히 익숙해 진 저로서도

흔치 않은 광경이라 살짝 놀랐습니다. 10년쯤 뒤엔 한국에서도 이렇게 혼자 외식하러 나오는 70대 후반의 노인들이 많아질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가족 중 혼자서 식당에 앉아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기도 하네요.

부모님은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서 외식은 못한다고 고개를 흔드시는데,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긴 합니다.

 

 

 

조금만 먹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는데 음식을 앞에 두면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결국 배가 터질 때까지 뷔페를 즐기다가 아까와는 달리 터질듯한 배를 움켜잡고 다니 돌아다녀 봅니다.

 

한국의 재래시장이 요즘 애를 써서 지붕도 만들고 하며 자구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일본 역시 대형 마트의 난립으로 많이 힘들어졌다고 하지만 워낙 이런 상가가 발달되어 있어서 한국보단 여유가 있는 편이죠.

시대 흐름의 차이라고 할까, 이쪽은 같은 장소에서 몇 대를 이어 장사하던 사람들이 눌러앉은 곳이라서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 덕분인지 망하지 않고 계속 장사할 정도는 되는 듯 합니다.

 

물론 한국처럼 점점 이웃 얼굴도 모르게 되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그 유대감이 끊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어느 가게에서 폐업 세일을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어 엄니가 호기심에 들어가 봤는데

시장판 싸구려가 아니고 원래 50~60만원 하던 것을 15만원에 파는데다가 200만원짜리 가죽 가방을 60만원에 파는 굉장한 세일중입니다.

엄니도 보시고 가방 수준이 장난 아니라고 굉장히 눈여겨 살펴보시는데, 점원이 슬슬 바람을 잡아주더군요.

물론 엄니는 일본어를 모르시니 제가 알아서 커버했습니다.

 

가방의 품질로 본다면 이걸 60만원쯤에 구입하면 굉장히 잘 산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문제는 이 가게 독자적인 브랜드라서 소위 '명품'이라 잘못 불리고 있는 사치품 가방에 비해 희소가치가 떨어지는게 문제인 듯 합니다.

아마 가게 안에서 고민중인 많은 여성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더군요.

엄니는 그냥 실컷 구경하다가 가방은 집에 많이 있다면서 그냥 나오셨습니다. 하나 구입하셔도 된다고 옆구리를 찔러봤지만 별 효과가 있었죠.

 

 

 

코베 관광에 꼭 들어가는 차이나타운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란히 늘어서 있습니다.

일반적인 시장 거리와 바로 한 블럭을 두고 늘어서 있어서 상권 경쟁같은거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파는 물건이나 음식도 그렇고 차별화가 아주 명확해서 크게 다툼은 없을 것 같더군요.

 

능숙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화교도 있고, 그냥 일본인이 장사하는 가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일본 정도로 철처하게 고립된 사회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마을을 이루는 화교의 수완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네요.

 

 

 

한국에서 꽤나 많이 찾아간다는 나가사키의 하우스 텐 보스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도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딱 그겁니다. 왜 일본에서 중국풍 거리를 걷고 있는 걸까.

 

여기는 구경하러 왔다기 보다는 산책하는 길에 맛있는 거나 먹어볼까 싶어서 왔지만

하우스 텐 보스 같은 곳은, 어마어마한 돈을 써가며 일본에서 네덜란드를 구경할 필요가 있을까 항상 궁금할 따름이죠.

버블경제의 절정을 달리던 시기에 지어진 녀석이라 모든 건축자재를 전부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왔다는 점이 놀랍긴 합니다만.

 

각설하고, 저나 엄니나 배는 터질 것 같지만 차이나타운에 와서 먹을거리도 하나 즐기지 않고 돌아가기는 너무 아쉬워

터질 배를 움켜쥐고 조금이라도 신기해 보이는 거 먹어보려 애 씁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검은색도 그냥 검은색이 아닌 암흑의 심연같은 만두가 눈에 띄여서 하나 사 봤습니다.

색깔은 맛에 크게 관련이 없는 듯 해서 아쉬웠지만, 육즙 가득 머금고 살짝 짭쪼름에 달달한 돼지고기 볶음 속이 맛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뷔페집에 간 걸 조금 후회하게 되었죠.

여기서 조금씩 조금씩 맛있는 거 다양하게 먹었어야 되는데 뷔페에서 그렇게 빵빵하게 하고 왔으니.

 

홀로 여행때는 자금을 아끼기 위해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 사먹고 했다면

지금은 배가 너무 부르기 때문에 고심고심해 맛있어 보이는 녀석을 골라야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엄니는 정말로 배가 부른지 아무리 나눠먹자고 말씀드려도 한 입도 드시지 않더군요.

 

일본식 교자도 맛있지만, 교자 하면 역시 원조는 중국이기 때문에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이것저것 먹을 배가 아니라 아쉽지만 좀 더 한국에서 먹기 힘든 녀석을 찾아다녀 보기로 합니다.

 

 

 

중국음식은 일단 기름을 사용하는 것들이 많고

특히 군것질거리는 뭐 말할것도 없이 칼로리 폭탄인 것들이 많아서...

 

확실히 저렇게 먹는게 맛있긴 합니다. 은근히 빡빡해 보이는 일본 군것질거리와 비교해서

한국적인 느낌도 나고 말이죠. 배만 고팠으면 아주 정복을 하고 다녔을 텐데.

 

 

 

진짜 중국 거리와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세계 어디든 차이나타운의 분위기는 아이덴티티가 드러나죠.

강렬한 붉은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거리의 모습은 일본의 거리와는 다른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겨울이고 평일이고 해서 코베 시내 전체는 꽤나 한산한 편이었지만

차이나타운엔 역시 관광객들 많이 오더군요. 차이나타운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았다는 건 좀 신기하지만.

실제로 오사카에 있는 코리아 타운도 그렇고, 제일 많이 활용하는 건 재일한국인이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이곳 코베의 차이나 타운에도 중국사람들이 실생활에 사용할만한 자국 식재료들 같은 거 많이 팔더군요.

 

중간중간 신라면이나 냉동만두 같은 한국어가 적혀진 녀석들도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코베의 소고기가 유명한 대신 차이나타운에서는 돼지고기 요리가 인기를 끕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길게 줄서서 뭔가 사먹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엄니도 함께 있고 해서, 배만 안 불렀다면 줄 좀 서서 뭔가 먹어보기라도 했겠습니다만

시장이 반찬인 것처럼 배부름은 어떤 진수성찬도 길바닥의 개X처럼 보이게 만들죠.

 

 

 

먹는건 포기하고 그냥 재밌는 마스코트 앞에서 사진이나 찍습니다.

차이나타운은 왠지 아무렇게나 마구 사진 찍어도 별 문제없을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죠.

쿄토 같은 곳에서는 기념품 파는 가게에서도 매의 눈으로 살펴보다가

'사진 찍으면 안됩니다!' 같은 소리로 사람 김 빠지게 만드는데, 이곳은 별로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먹는데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서, 못 먹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기서밖에 먹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먹거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엄니는 중국에도 몇 번이나 여행을 다녀오셨고

이런 거리음식과는 다른 진짜 진수성찬도 먹어보고 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별 미련이 없으신 듯 하네요.

간식거리 조금 맛이라도 보라고 말씀드려도 배부르다는 말만 하시고 전혀 손을 대지 않으십니다.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와 산노미야 쪽으로 걸어가면 큰 백화점이 있는데

엄니가 학교 선생님한테 부탁받은 유아용 그림책과 함께

손자가 가지고 놀 만한 그림책이나 장난감 찾아보려고 서점에 들어가 보자고 하십니다.

 

키노쿠니야(紀伊国屋)라는 일본 최대의 서점체인이 마침 백화점에 입점해 있어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놀랍게도 할머니 한 분이 이 강아지 두 마리를 자전거에 남겨놓고 그대로 백화점에 들어가 버리시는군요.

이곳은 아직 강아지 납치 같은거 걱정 안해도 되는 곳인가봅니다?

 

강아지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면서 다가와 웃어줘도

할머니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서 오직 백화점 문 앞만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몇 번 겪어본 일인지 뛰쳐나가지도 않고 가만히 기다리는게 대견하다고 할까 안스럽다고 할까.

 

10미터쯤 떨어진 백화점 앞 네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피켓을 들고 큰 소리로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싶어 들어봤더니 후쿠시마 지진으로 갈 곳을 잃은 강아지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돕자는 호소를 하고 있더군요.

단순히 애완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쿠시마의 남겨진 동물들에 대한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의 다큐에서도 많이 나왔듯, 수만 마리의 소와 말, 개, 닭, 고양이 등이 방사능에 피폭당하는 동시에 굶어죽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죠.

 

젊은 청소년들의 힘은 한계가 있으니 일단 애완견, 애완묘라도 돕자고 홍보를 하고 있는데

엄니께서는 역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냥 피식 웃으시더군요.

사람도 못 돕는데 동물은 뭔 동물이냐고. 하지만 손자가 커서도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을지가 걱정이네요.

사람이 동물도 못 도우면 사람답게 살 수나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서밖에 못 먹어볼 듯한 녀석이라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하나 사 왔습니다.

창업 40년이 넘은 전통있는 가게에서 팔고 있던데, 조금 딱딱한 크로와상 같은 빵 속에 코베 소고기를 넣은 고기호빵 같은 느낌입니다.

만두처럼 부드러운 건 아니고 프랑스식 빵에 고기를 넣은 듯한 묘한 퓨전느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만족했던걸 보면, 춥고 배고픈 겨울날 하나 사먹으면 굉장히 맛있었을 듯 하네요.

무게감이 있고 크기도 작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380엔이나 하는 비싼 군것질거리라 혼자 여행다닐 때 과연 먹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점에서 부탁받은 그림책과 손자용 장난감을 좀 구입한 후 다시 밖으로 나옵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새없이 걸었으니 엄니께서는 굉장히 피곤하실텐데

버스타고 가자고 해도 한 코스밖에 안되는 거 뭐하러 타냐고 하시며 계속 걷는군요.

 

저도 다리가 후들후들할 정도인데, 걱정을 하면서도 일단 코베에 왔으니 건질 건 건지려고 다시 포트타워 쪽으로 이동합니다.

 

 

 

엄니가 오늘 이곳만 세 번이나 왔다면서 웃으시더군요.

사실 제 사진 욕심때문에 괜히 엄니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닌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좀 마음에 걸리는 중이긴 했습니다.

 

포트 타워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엄청 놀라운 야경을 보여줄 정도는 아니죠.

밖에서 보는 모습이 더 재미있긴 합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올라는 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전진 또 전진.

 

 

 

포트 타워 안엔 별하늘 아래를 걷는 듯한 조명이 사방에 깔려있어서

야경사진 담기엔 오히려 좀 귀찮은 구석이 있더군요. 밖에서 보는 것 만큼 조그마한 타워라서 별 감흥은 없었습니다.

하긴 이 타워의 4배가 넘는 높이의 스카이 트리에서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여기라고 별 수 있나요.

세삼스럽긴 하지만 타워 올라가서 구경하는 건 제 성격과 별로 맞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도 볼만한 것들은 많았는데요. 쿄토 산자락의 '大' 자를 본따 만든듯한 항구 표시가 저기 산 위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좀 멀어서 박력이 좀 줄었지만, 어쨌든 한 번쯤 신기하게 쳐다볼 가치는 있겠죠.

 

 

 

해양박물관은 밤이 되니 좀 더 볼만하네요.

포트 타워는 이름답게 바다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야경이 좋습니다.

밤이 되니 한번 더 20년 전의 모습이 상상속에서 일어난 듯한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제가 괜히 엄니를 싸구려 비지니스 호텔에 끌고 갔나 싶은 생각이 항상 남아있어서 그런지

여행중 멋진 호텔만 보이면 '돈만 많았으면 저기 묵을 수 있었는데' 하는 한숨을 쉬곤 했네요.

 

물론 엄니께서도 어차피 저녁에 잠만 잘거 뭐하러 그런 데 돈 쓰냐고 하시긴 합니다만.

저는 아직 호화스러운 여행을 가 본적이 없어서, 한번쯤 경험해 보면 그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상상만 하고 있습니다.

호화스럽다고 해도, 여행사 패키지에 들어있는 4성, 5성급 호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겠죠.

 

여담으로 부모님이 예전 여행갔을 때 여행사에서 착오가 있어 호텔 스위트룸에서 자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투숙할 수 없고, 국빈들에게나 제공하는 스위트룸이었는데 저희 집보다 두세 배쯤 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박 수천만원짜리 그 스위트룸 역시 그냥 하룻밤 자고 일어나 떠나면 끝이었다고 허무해 하셨습니다.

 

 

 

포트 타워 근처는 해양박물관 쇼핑몰, 유원지, 유람선 등 즐길거리가 많지만

엄니나 저나 그런건 별로 안좋아하는 성격에다가, 오늘 이상하게 관광객이 별로 없어서 굉장히 음산한 느낌밖에 안들더군요.

 

포트 타워 야경 구경이라는 항목은 어느 여행 가이드에나 반드시 나와있는 정석 코스인데

막상 와보니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 무리들 말고는 동네 마실 나온 듯이 조용했습니다.

대학생 커플쯤 되는 아해들이 많이 와서 야경의 낭만을 즐기고 있던데

아무래도 저처럼 엄니와 둘이서 여행 온 일행은 없는 것 같아서 더더욱 군중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할까요. 물론 전 그런 거 매우 좋아합니다.

 

 

 

 

산노미야 주변에도 괜찮은 호텔이 좀 있긴 합니다만

이곳 코베 항 주변은 역시 경치 때문인지 척 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호텔이 많습니다.

코베는 지진 탓고 있고, 버블 붕괴 이후로 킨키 지방중 가장 경기가 안 좋은 편에 속하는 도시라서

이렇게 한적한 동네 풍경속에 유난히 빛나는 고급 호텔의 모습을 보면 왠지 안스러운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실제로 차이나 타운 정도 말고는 거의 대구의 본가 근처 동네 산책할 때보다 사람이 더 없었던 하루였네요.

엄니도 우리 뭔가 관광 잘못온거 아니냐고 걱정하실 정도였고.

 

겨울이라 일본 중부지방은 관광 수요가 좀 줄어든 탓도 있습니다만

겨울에 돌아본 도시 중에서도 이 곳은 제 예상보다 좀 황량한 느낌이 드는군요.

 

 

 

타워 야경을 꼭 보라고 꼬드기는 세간의 흐름에 넘어가 억지로라도 올라간 포트 타워입니다만

엄니나 저나 피로가 상당히 많이 누적되어, 이젠 뭐가 어찌되든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그래도 1층에 내려오니 한국의 빼빼로와 비슷한 포키로 만든 타워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옆에는 일본 각지의 타워들을 소개해 놓았는데, 자전거 일주여행을 하다 보니 거진 한번씩은 지나가면서 쳐다본 것들이네요.

엄니는 우메다 공중정원 사진을 보고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곳 코베보다 오사카 우메다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살짝 뜨끔했습니다.

 

예전에도 가 봤지만 높은 곳은 그렇게까지 볼 만한게 별로 없어서.

 

 

 

코베에서 한 번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은 채 걸어다닌 저와 엄니입니다만

이제 지칠대로 지쳤고, 어차피 오사카행 지하철 타려면 산노미야 역에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코베 지하철을 한번 타 봤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역내에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네요.

 

엄니와 저는 둘이서 미나토 모토마치(みなと元町)역의 고요한 승강장에 서서 공포를 만끽했습니다.

인구 150만의 중소도시 치고는 너무나도 한적해, 왠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피와 살과 뼈가 날아다니는 상큼한 영화라서 진짜 긴장하고 있는 엄니한테 말씀드리긴 어렵죠.

코베에 관광와서 이런 한적함도 구경해 보는구나 싶어 사진은 재미있게 담았습니다.

 

일본은 전혀 관광 시즌이 아닌건지, 코베가 그냥 그런건지, 우리가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닌 건지.

이러나 저러나 제가 코베를 관광 목적으로 다시 찾을 일은 거의 없을 듯 해서

느껴진 텅 진 승강장도 나름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어차피 산노미야 역은 붐비겠지만.

 

 

 

산노미야 역에서 난바까지는 40분만에 간단히 도착합니다.

기차 안에서 신나게 졸아댈 정도로 피곤했나 보더군요.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엄니가 가볍게 저녁 먹자고 하십니다. 숙소 안에서는 별로 먹을 게 없으니까요.

 

숙소 바로 옆이 상점가라서 먹을 건 많습니다만, 짜고 기름진 거 싫다고 하셔서 조금 더 발품을 팔아봤습니다.

그래서 10평도 안되는 허름한 가게 문을 무작정 열고 들어갔네요. 여기도 창업 40년은 넘었다고 적혀있습니다.

동네의 조그만 가게들은 대부분 술집도 겸하고 있는 형식이라, 들어가니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맥주 한 잔씩 들이키며 식사 중이로군요.

 

일본에서는 아직 실내 흡연도 인정되고 있어서, 술과 저녁식사와 담배까지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담배냄새가 좀 거북했습니다만, 이것도 동네 구멍가게의 저녁 풍경이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구경했습니다.

 

엄니는 계란과 버섯, 각종 야채를 얹은 덮밥을 주문하셨습니다. 이것도 좀 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담백해서 먹을 만 하다고 하시더군요.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할아버지와 서빙하는 할머니는 아무래도 부부인 듯 합니다.

엄니가 처음엔 자매가 아닌가 생각하셨다고 할 정도로 닮았는데, 역시 오랫동안 함께 하면 얼굴도 닮아가는 걸까요.

 

저는 중화소바를 시켰는데, 강렬한 라멘보다는 훨씬 옅은 국물맛에 숙주나물이 듬뿍 들어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늦은 밤이라서 너무 짜고 진하면 얼굴이 참 귀엽게 부풀어 오를거라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운 맛이라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옆에 후추통으로 보이는 깡통이 있어서 후추 좀 뿌릴까 싶어 집어들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빈 통인갑다 하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놨습니다.

라멘 먹으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노인들이 담뱃재를 그 깡통에 털고 있더군요. 재떨이였습니다.

안에 무게감이 느껴졌다면 아마 그걸 라멘에다가 들이 부었을 텐데

그랬다면 라멘이 아까운 게 문제가 아니고, '라멘 잘먹다가 담뱃재 들어부은 괴인 출연'이라고 뉴스에 나갈 것 같아서 섬뜩하더군요.

 

미친놈 취급 받지 않고 안전하게 끝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숙소에서 목욕 후 2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는데, 내일은 아무래도 여정을 좀 가볍게 해서 일찍 돌아와 쉬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