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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4.13  대마도 - 이즈하라 2편 5
  3. 2015.04.06  대마도 - 이즈하라 1편 2
  4. 2012.03.30  후쿠오카 여행 - 바쁜 마무리 8
  5. 2012.03.29  후쿠오카 여행 - 유후인의 먹을거리 18
  6. 2012.03.28  후쿠오카 여행 - 관광지가 아닌 진짜 유후인 16

 

돌아가는 길에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다들 새롭다. 지나칠 만한 일상적인 모습이라도 일본틱한 분위기를 담는 데 부족함이 없다.

뭘 심어놔도 무럭무럭 자라는 곳인지 눈을 두는 곳 어디든 잔잔한 녹색이 인공미와 조화되어 푸근한 인상을 준다.

대마도는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한 곳이라 느긋해 보이는 마을 풍경에 비해 자가용이 많이 보이고, 꽤나 인상적인 녀석들도 있다.

 

아무리 널널한 곳이라도 일본은 자동차 구입시 반드시 주차공간 확보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에 불법주차해 놓은 차를 구경하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절실히 필요한 법령이지만 이미 늦기도 너무 늦었고 시민의식은 아예 시작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니 아쉬울 따름.

 

 

 

민가 바로 뒤편에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뒤편에 언덕이나 산이 위치한 마을에서는 이렇게 방풍림 대용으로 대나무숲이 울창한 곳이 많다.

워낙 잘 자라기도 하고 필요할 때 죽순도 금방금방 캐 먹을 수 있고 꽃도 거의 피지 않는 특성상 키우기가 매우 용이하다.

 

삼나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엔 화분증으로 고생하는 바람이 한국에 비해 훨씬 많은데

대나무는 꽃이 거의 피지도 않고 한번 피더라도 숲의 모든 대나무가 일시에 꽃을 피우고 일시에 져 버리는 특성상

마을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다. 일시에 꽃을 피우는 것은 애초에 대나무 뿌리가 거의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

 

 

 

팻말이 썩어가는 모습이 조금 위태위태하지만 보기는 참 좋다.

물이 오염되어 있으면 잎 색깔도 탁하고 덩쿨 주변에 눈으로 보기 괴로울 정도의 진딧물이 바글바글한데

이곳은 꽤나 깔끔한 편이다. 애초에 오염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곳인데다가 깔끔하기로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보니.

 

관광지는 거의 문을 닫은 6시 즈음이지만 여전히 햇살은 사진을 찍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좀처럼 발걸음이 빨라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 배를 타고 와서 멀미가 심하진 않았지만 항구에서부터 고생을 하다 보니 첫날 컨디션이 그닥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을 주변의 꽃과 나무들을 찍으며 걷다 보니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관광이라면 본인 입장에서 정말 볼 것 없는 곳이지만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조용한 마을 거리를 걸어다니며 이름모를 수줍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

여행 하루차를 즐겁게 마무리하기에 충분하다.

 

 

 

분명 사람이 사는 집이지만 점점 자연에 먹혀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바로 옆이 산이다 보니 얘네들을 죽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늦기전에 끊임없이 정리를 해 줘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할 듯 하다.

온통 녹색 물결로 덮혀 있어도 뭔가를 키우고는 싶은지 계단에는 알록달록한 꽃이 담긴 화분이 줄지어 서 있다.

 

 

 

다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일본에서 본 시골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집 치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콘크리트로 떡칠된 도시보다 애초에 더 아름다운 곳이지만서도 소소한 곳에 공을 들여 꾸미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동안 신세를 졌던 나가노의 산속 깊은 마을 키소에서도 집 앞에 유럽이 기원인 듯한 난쟁이 인형 도자기를 문 옆에 놓아두고 있었고.

지금 나에게나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나 모두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음의 여유가 만들어 내는 풍경이 저 조그마한 장식품 안에 들어있을 듯 하다.

 

 

 

일본의 3대 편의점이 하나도 없는 시골 섬마을이지만 도회지 못지 않게 차량을 꾸미려는 욕구는 강렬한가 보다.

자동차에 스티커 붙이는 건 대도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편인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자동차 전체에 붙이고 다니는 매니아로 발전할 수도 있을 듯.

매니아 문화에 관대한 일본에서도 그런 차들을 보고 있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이타샤(痛車)라 부를 정도인데

설마 이곳 대마도에 그 정도 자동차까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밖에서 보는 산의 지형을 바꿔버릴 정도로 높은 거목들이 즐비하지만 그것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쭉쭉 뻗은 대나무들도 참 장관이다.

 

애초에 대나무는 나무라고 부를수도 없는 것이, 목본성이 아니라 초본성 식물이라서 사실 우리가 보는 기둥 부분은 전부 풀이기 때문.

그럼에도 하루에 십수 센티미터씩 쑥쑥 자라는 엄청난 생명력을 보여 주니 여러가지로 묘한 녀석이다.

 

유치원 가기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한 그림책에서는 대나무의 텅 빈 속을 이용해 물총을 만드는 방법이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게 보여서 한참 동안 그걸 만들어 물놀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곤 했었다.

불행히도 주변에 대나무 따윈 보기도 힘든 도심 한복판에서 자라다 보니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곳이라면 대나무 물총 쯤은 다들 한 번씩 손에 쥐어보는 것일까.

 

 

 

문을 작고 아담하게 만드는 건 어떤 이유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밀집지역 주택은 거의 대부분 이런 일본식 건축 방식을 따라 대문이 매우 작았다.

언덕 위의 부자들 집은 자동차가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검은 철문이 위쪽의 뾰족한 창살과 어울려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줬었고.

 

어릴 적엔 제주도의 미덕을 들먹이며 도둑이 없었기에 대문도 없다는 식의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꼭 그렇다기 보다는 수백년 전 부터의 건축 양식 차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애초에 마당있는 집이라는 개념은 일본에 정착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으니까.

 

 

 

얼마 걷지 않아 다시 이즈하라 시내로 진입한다. 저녁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하며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다지 유명하진 않지만 대마도 특산인 오징어와 톳을 패티에 섞은 '츠시마 버거'라는 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 가게를 찾아봤지만 공교롭게도 오늘은 휴일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일본의 햄버거 하나로 배를 채우기는 무리지만.

 

토박이라면 몰라도 홀로 여행자가 뭔가 특출난 식사를 즐기기엔 힘든 곳이라 그냥 쇼핑몰 티아라 안에서 적당히 골라서 숙소로 가지고 가기로 한다.

시마토쿠 쿠폰을 사용하면 경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배를 채우는 데는 문제 없을 듯.

 

골목 안에서 조그만 놀이터를 보고 여느때처럼 직업병(?)이 도진다.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훌륭한 숙박지가 되었을 텐데.

 

 

 

골목을 구경하고 있다 보니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마토쿠 쿠폰 가맹점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이 조그만 서양식 바는 한국인 사절이라는 단어도 당당하게 문 앞에 걸어놓았다.

내부를 슬쩍 보니 나무로 된 카운터에 아기자기한 깃발과 뱃지들이 벽에 걸려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인데

그래서인지 선전 간판도 영어로 적혀있는 것이 나름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넷이 되기 때문에 일본의 인기 게임인 몬스터 헌터도 플레이 할 수 있다고 적은 것 까지는 센스를 느낄 수 있는데

한국인 사절이라는 팻말을 걸 정도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등산복 입은 중년층 이상 단체 관광객들이 이런 곳에 들어가기나 할까 싶은데.

 

그냥 주인이 혐한론자라서 이유도 없이 사절하는 것인지, 예전에 크게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인지

이 곳의 역사를 알 리 없는 본인으로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기분이 편하지는 않다.

 

 

 

버드나무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개천을 다리 위에서 감상하며 처음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다.

정말 깡촌중의 깡촌이 아닌 이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파칭코 가게도 도시의 그것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벌써부터 문을 닫고 길거리는 점점 한산해진다.

 

한적한 곳이기는 한데 관광객이 한꺼번에 많이 오면 이 곳은 왠지 소화불량에 걸린 것 처럼 어색해 진다.

굳이 같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없는 조용한 곳을 항상 추구하며 여행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인적이 없는 다리 위에서 조용히 서 있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할 수 있을 듯.

 

 

 

다리 위엔 의자도 마련되어 있고 대마도의 특징을 나타내는 그림도 새겨져 있다.

왼쪽의 츠시마 삵은 10만년쯤 전에 이곳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을 당시 건너온 녀석이라고 하는데

섬에 사는 삵이 그렇듯 이쪽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이라 실제로 여행중 야생 삵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지도로 친다면 20만년도 전에 격리되어 완전히 분화된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 섬에 서식하는 삵이 유명한데

이곳도 일단은 종 분화가 일어난 아종 삵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녀석이긴 하다.

 

 

 

 

자국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보다 부산이 더 가까운 곳이다보니 한국인들을 위해 이런 그림도 박아놓았다.

실제로 강점기 시절에는 당일치기 놀러갈 때 후쿠오카보다 부산쪽으로 훨씬 많이 가기도 했다.

멀리 보자면 조선시대 때도 후쿠오카쪽보다는 조선쪽과 무역규모가 컸고.

 

잘사는 나라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일본도 최근 한국과 중국이 성장하기 전까지는 주변국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이었다.

심지어 2010년 일본에서도 나를 보고

'지금 북한하고 휴전중인데 한국 놀러가도 되나?' 라던가 '한국인들 상당수가 일본인 보면 두들겨 팬다고 들었는데' 라는 말을 진지하게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의 일베나 디씨같은 쓰레기 집합장에서 나오는 말과 비슷하게 '한국에 가면 강간당해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소문 정도는 꾸준히 나도니까.

물론 한국이 과하게 안전불감증인 것처럼 일본이 해외 여행에 겁을 좀 먹는 성격이기도 하니 정말 순수하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는 객관적으로 알려줄 뿐이지만.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저녁장을 보기 전에 모스버거로 들어간다.

딱히 버거가 땡겨서는 아니지만 생각해 놓았던 츠시마 버거를 먹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도 했고, 편의점도 없는 이곳에 무려 모스버거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해서.

 

50대 중반 혹은 60대 초반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있어서 조금 놀라긴 했다. 확실히 대마도의 인구는 심각한 고령사회이긴 한데.

모스버거는 주문을 받고 나서 패티를 굽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버거에 비해서는 좀 더 따끈하고 폭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진한 토마토 소스와 싱싱한 양파는 이 코딱지만하면서도 비싼 모스버거를 그래도 완전히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인 재료.

 

특히 요즘 점점 말라 비틀어져가는 타 회사들에 비해 씹는 맛을 느낄 수 있는 두툼한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일본에서는 감자튀김을 선택해도 캐첩이 기본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매번 추가를 해야 하는게 조금 귀찮지만

일회용 비닐주머니에 담겨져 어디 부어서 찍어먹기 참 난감한 한국에 비해 반드시 제대로 된 접시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마음에 확 와닿는 일정이 아니라서 일기를 그렇게까지 길게 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햄버거와 함께 여행의 기록 남기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터라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바로 옆 티아라 식품관으로 향한다.

대마도쯤 되는 곳에 이런 복합쇼핑몰이 들어서 있다는 것 자체가 경제적 편중을 생각할 때 그렇게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관광객 수요를 충족시키는데는 또 이만한 곳이 없으니 계륵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츠시마 삵이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지 158일째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사실 대마도의 분위기라는 게 워낙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158째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하기는 커녕

159일 전에는 삵이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긴 하다.

 

물론 인명사고와 달리 고양이과 동물은 자동차같은 빠른 물체와 조우했을 때 일단 상대를 확인하는 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보다 훨씬 빈번하게 로드킬이 일어나다 보니 저 정도 기록도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시마토쿠 쿠폰은 1천엔 단위로 사용할 수 있으며 1천엔 이하의 물건에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뭐가 어찌됐든 1천엔 이상 먹거리를 사야 한다. 컵라면이나 과자 따위로는 방금 전 모스버거까지 먹었던 본인으로서 조금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적당히 비싸다 싶은 것들을 골라본다. 이미 관광객들이 한바탕 쓸어간 탓인지 왠만한 즉석요리 코너는 텅텅 비어있는 상황.

 

닭꼬치 한 접시와 초밥, 음료수를 구입하니 1500엔 조금 넘게 나온다. 시마토쿠 한 장과 잔돈으로 계산하고 나니 조금 뿌듯하다.

일단 5천엔을 주고 6천엔짜리 쿠폰북을 샀으니 이럴 때 계산하면 이득 본 듯한 느낌.

아무래도 티아라 쇼핑몰은 이즈하라의 경제 규모를 생각할 때 물가가 좀 비싼 편이긴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쿠폰의 묘한 매력 때문에 이것저것 쓸어담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짐에 틀림없을 것이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지만 내 방 PC 모니터의 절반도 안되는 아날로그 TV를 실눈으로 간신히 쳐다보면서 느긋하게 닭꼬치와 초밥을 흡입한다.

대마도는 거리상 후쿠오카와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나가사키현에 소속되어 있어서 TV 방송도 기준 물가도 모두 나가사키를 따라간다.

 

TV가 작아서 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는 방송이 몇개 나왔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시계 장인이 만들어내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 단위의 초정밀 기계시계를 만드는 다큐였는데

본인의 손톱 끝보다도 작은 부품들을 하나하나 조립해가는 광경은 마치 신적인 존재가 우주 하나를 탄생시키는 모습처럼 보인다.

시계엔 관심이 없지만 장인들의 노력과 신기에 가까운 솜씨만큼은 TV를 쳐다보는데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이불과 배게에서 나는 지독한 악취에 기분좋게 잠들기는 참 어려웠지만 어쨌든 여행은 여행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눈을 감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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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느끼고 싶은 일본적인 특색이 무엇일까.

일반적인 한국인과 비교하면 일본과 많이 친숙하다 보니 이제 슬슬 타국 여행에서 바라는 무엇인가가 애매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이라도 쿠라시키 등 일본적인 특징이 확연히 남아있는 곳에 간다면 눈이 즐겁겠지만

이곳 대마도의 이즈하라는 일본이라 느끼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한 곳이다보니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사진을 담으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렇게 작은 바닷마을이 그래도 관광객을 위한 여러가지 소소한 치장을 한 깔끔한 곳이라는 특징 정도가

내가 지금 외국 여행중이구나 하는 마음속 위치를 다잡아주는 요소인 듯 하다.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날벌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석음과 동시에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열망 등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존재라지만

그런 짓을 하는 건 벌레 뿐만이 아닌 듯 하다. 저 높이 다리 위에서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이 기어코 다리 밑으로 가지를 뻗어

결국에는 그 몸을 담궈 죽어버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마을을 가로지르는 이 물은 담수인지 해수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높이를 생각했을 때 소금이 안 섞여있지는 않을 법 하다.

물론 소금물이든 맹물이든 저렇게 물 속까지 가지를 뻗어버린다면 어느 쪽이든 살아남긴 어렵다.

 

마지막 남은 것인지 남들보다 먼저 핀 것인지 멀리서 당겨찍은 사진으로는 분간이 어려운 꽃 한송이가

수면이 올라옴직한 높이 아슬아슬하게 피어 있다. 물 속으로 전진하는 나뭇가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저 물과 만나고 싶다는 원초적인 본능 하나만으로 중력에 순응한 것인지.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삼자가 어리석다고 비웃을 일은 결코 아니다.

 

 

 

골목을 조금 지나면 이곳 이즈하라에서 가장 큰 도로가 나온다. 호텔다운 호텔도 그 부근에 있을까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은 서두르고 있지만 여전히 눈 가는데로 카메라 셔터를 놓지 않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참 태평스럽다.

 

거진 깡촌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낡고 조그만 집들이지만 가끔 꽤나 깔끔하고 덩치가 큰 녀석들도 보인다.

이 정도 되면 그냥 주택은 아니고 어떤 용도를 가진 건축물이지만, 단정한 돌담 사이사이에 아름답게 흔적을 남긴 나뭇가지가 운치를 더해준다.

제주도의 돌담은 장인 수준의 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흉내도 내지 못할 자연 미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데

조금 밋밋한 사각형 바위가 잃어버리기 부드러움을 매꿔주듯 자라난 나뭇가지들이 나름 멋을 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언뜻 보기에 이즈하라에서 가장 좋아보이는 호텔로 들어가 빈 방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만실이란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니 좀 곤혹스럽다. 프론트의 할머니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은 손님들이 정말 많이 왔다고 하신다.

하긴 오늘 하루만 한국에서 2만명이나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지만.

 

부산에서 대마도로는 남쪽의 이즈하라, 북쪽의 히타카츠 두 군데 선착장에 도달하니 반을 뚝 자른다고 해도 이 조그마한 마을에 약 1만명의 관광객이 돌아다니고 있는 셈.

자전거를 들고 단체로 탑승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많이많이 줄인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마을이 감당하기 쉬운 수는 아니다.

 

이제는 괜찮은 호텔도 필요없으니 왔던길을 돌아가서 허름해 보이는 호텔로 무작정 들어간다.

바닷바람과 햇빛에 그을린 아저씨가 프론트에 서 있는 호텔로 들어가 빈 방을 물어본다.

무슨 일인지 한동안 고민하던 아저씨는 내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할 즈음 '딱 하나 남아있긴 하다'고 말해 준다.

뭣 때문에 그렇게 망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텔 경영 방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보니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다.

 

1층 로비가 내 방보다 더 작은 호텔이지만 1박 요금이 6천엔이라고 한다. 도쿄 한가운데서도 6천엔이면 왠만한 비지니스 호텔은 다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앞서 언급한 시마토쿠 쿠폰을 거진 구입하는 편이고 숙박업소는 대부분 쿠폰을 받기 때문에

실제로는 6천엔보다 싸게 묵을 수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요금 자체를 그런 사정에 맞춰서 높게 잡아놓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썩 달갑진 않지만 어쨌든 노숙은 면했으니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일본에서 1년간 자전거 여행을 하며 1주일에 한 번은 호텔로 들어간 본인 입장에서 이 가격에 이런 방은 처음 본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10인치쯤 되는 아날로그 TV에 냉장고 따위는 없이 얼음물이 담긴 보온병 하나.

 

침대에서는 노숙자라도 묵다가 방금 뛰쳐나갔는지 심히 역겨운 노폐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진지하게 이 정도라면 며칠동안 시트를 갈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

더운 날씨다 보니 그래도 에어콘만은 달려있는 게 반갑기는 하다. 에어콘 없는 숙박시설도 많이 가 봤으니 그래도 이 정도라면.

 

 

 

대마도쪽 숙박시설이 좋지 않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물론 단제로 오거나 자금을 넉넉하게 쓴다면야 꽤나 괜찮은 곳을 구할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런 곳은 나같은 도보 여행자가 가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대마도는 관광 자원의 절대 다수가 한국인인지라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한국인 관광객이 딱 끊기자

이곳은 본토와는 관계없는 곳이라고 대마도 시장이 직접 부산을 찾아 여객선의 운항 재개를 요청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관계일수록 민족이 다른 두 나라의 뗄 수 없는 관계에서는 조금씩 갈등이 빚어나오게 마련.

한국 관광객의 추태에 진저리를 치는 주민도 있고, 본토 사람들 레벨까지 대접해 줄 필요는 없다는 인식도 없지는 않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이 많은 날에 오고싶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근래들어 최대 인원이 오는 날이 되다보니 여러가지로 심란하다.

호텔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달리 갈 곳도 없고, 호텔 사장 역시 나 하나쯤 없어봤자 이미 객실 회전율은 그를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자전거 여행중이었다면 사실 저 정도 수준에 머물 필요도 없이 텐트 쳐 놓고 누워 자는게 훨씬 편할 듯.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더 아쉬운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걸로 후회해 봤자 소용없으니 해가 지기전에 마을 구경이나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선다.

일단은 이 곳이 이즈하라의 중심지. 이마트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의 슈퍼 '티아라'가 위치한 곳이다. 대마도의 유일한 현대식 쇼핑센터.

편의점도 없는 곳이지만 이 쇼핑센터에는 무려 모스버거가 입점해 있다.

 

 

 

물가는 확실히 싸고 시마토쿠 쿠폰도 사용할 수 있으니 저녁거리 푸짐하게 싸들고 돌아가기엔 충분한 곳.

1층 외곽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어서 들어가 본다. 내일 니이(仁井)를 거쳐 히타카츠(比田勝)로 갈 예정인데

외국인 여행자는 1천엔에 버스 프리패스를 구입할 수 있으니 반드시 구입해야 한다. 그냥 타면 3천엔이나 하니까 무조건 이득.

 

인포메이션 센터로 들어가 프리패스를 어떻게 구입하느냐고 묻자 40대를 조금 넘어보이는 여성이 친근하게 일어서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센터를 나와서 10m 정도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조그만 버스센터가 있는데 거기까지 함께 걸어가서 안내를 해 줬다.

이건 과잉 친절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나로서는 매우 고마울 따름. 친절한 사람은 역시 친절하구나 싶다.

 

 

 

프리패스를 구입 후 마음은 홀가분해 졌지만 사실 오늘 일정은 완전히 엉망이다.

대마도는 어쨌든 번화한 곳은 아니기 때문에 관광지 중에서도 영업을 일찍 끝내기로 유명한 곳인데

여객선이 예고도 없이 2시간 넘게 지연되는 바람에 히즈하라에 도착하고 나니 여행할 시간이 2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사실 입장료는 내고 들어가 볼 만한 곳은 별로 없어도 이즈하라에 위치한 반쇼인(万松院)이라는 사찰은 한 번쯤 들어가 봄직 한데

개장시간이 6시 까지라 아무래도 재 시간에 도착은 어려울 법 하다. 지금 벌써 5시 반이 넘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하던대로 마을 풍경이나 담으며 산책 겸 반쇼인 쪽으로 걸어가 본다. 어차피 그러려고 온 것이니.

 

 

 

일본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돌로 엮어 만든 지붕'이 있는 가옥이 이곳 대마도에 남아있다는 말을 들어서

걷는 중간에 보인 관광안내센터에 들어가 물어보니 그건 이즈하라에는 없고 자동차로 1시간쯤 가야 하는 어느 마을에 있다고 한다.

단 3일간의 여행이고, 내일은 니이와 히타카츠로 가는 것만 4시간 넘게 소모될 터이니 아무래도 구경은 무리인 듯 하다.

 

대마도는 여행하려면 렌트카가 필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확실히 여행을 즐기려면 꼭 필요할 것 같다.

버스로는 이동성이 너무나 제한되고, 하루에 몇 코스 운행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4~5일간 느긋하게 시간 들일 곳도 아니고.

반쇼인으로 이동중에 뭔가 굉장한 대문이 보인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저곳을 많이 들락날락 거리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곁을 지나가며 '저 안에 덕혜옹주 기념비가 있대'라고 대화하는 것을 듣고 저기가 거긴가 싶었다.

혼란스러웠던 역사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던 덕혜옹주는 이곳의 번주인 소우 타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하며 사실상 유배된 조선의 왕족.

결혼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유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녀는 결국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이 겹쳐 훗날 이혼까지 당하게 된다.

죽기 전 한국으로 돌아와 몽롱한 정신에도 창덕궁에 돌아왔을 때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눈물을 흘렸다고.

 

영화 '마지막 황제'도 그랬지만 부조리한 역사 속에 휘말려 불행한 인생을 보냈음에도 결국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의 진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점 덕분에

그나마 아련하지만 마지막 위안을 얻고 떠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절대로 노리고 심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역사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수국을 보면 힘들었던 근대 한국의 애상이 떠오른다.

오세호 작가가 무려 일본에서 연재했던 만화의 제목이 '수국 아리랑'이어서 그런가.

실제로 아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국이 있긴 한데, 어차피 일본이 원산지이던 꽃을 개량한 것이라 별 의미는 없다.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저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본인은 비석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한국인 관광객용으로 만들어 진 것인데다가 저 안에 있는 비석은 덕혜옹주와 소우 타케유키의 결혼기념비이기 때문에.

 

 

 

길을 쭈욱 걸어가면 끝에 반쇼인이 나온다. 어차피 들어가는 건 포기했으니 천천히 경치 구경이나 하며 걷는다.

관광지이긴 하지만 크게 유명한 곳도 아니라 마을이 깔끔한 것도 아니고 그다지 볼거리도 없는 이즈하라지만

공장같은 거 없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만큼은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곳이라 산책하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날씨가 시원한 편은 아니라 땀이 흐르긴 해도 햇살이 기분나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공기는 신선하다.

자연의 건강상태는 흐르는 물 근처의 식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저분한 하천 주위의 식물이 그렇게 힘겹고 흉하게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조금 충격이었다.

이곳은 이렇게 걷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만큼의 가치가 있다.

 

 

 

이즈하라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대마도라는 섬 자체는 결코 작은 편이 아니다.

제주도의 1/3이나 되는 크기라서 거진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실감나기 힘들기도 하고.

대부분이 산지라서 그런지 마을 주변의 초목들도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기본적으로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이 모두 만족스러울 만큼 싱싱하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오염이 심한 도시에 인위적으로 박아놓은 조경수들과는 다른 느긋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걷다보니 아주 강력해 보이는 거미집을 볼 수 있었다.

보통 거미집 하면 생각나는 그런 모양과는 달리 상당히 빡빡하게 지어놓아서 철옹성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탱글탱글한 거미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데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손으로 잡기에는 좀 무서워 보인다.

 

며칠만에 지은 집인지 궁금하기도 한데, 사람이 한동안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도 충분히 볼거리니까.

 

 

 

자전거 여행 덕분에 매우 익숙해진 일본의 시골 풍경이지만

보통 대도시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일반적인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생활감 넘치는 풍경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법 하다.

대마도가 일본인 쪽에서 봐도 굉장히 시골이라 외국인 입장이라면 도보로 이동 가능한 범위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반쇼인 쪽으로는 이미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끊긴 시간이라 이 주변은 거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침부터 KTX 타랴 항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랴 배멀미로 고생하랴 시끌벅적했던 터라 비로소 조금씩 여행의 위안을 얻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슨 성터라는 곳이 모습을 드러낸다.

뭔가 재건공사 비슷한 것을 하고는 있을 듯 한데, 사실 남아있는 흔적이라곤 이 돌무더기밖에 없다.

이곳 예산이 엄청 풍부하다면야 터를 중심으로 뭔가 세울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힘들 듯.

 

이곳 주민들도 나름 역사의 흔적을 다시 세워서 고장의 지표로 세우려고 노력을 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울릉도보다도 한참 더 외진 곳이니 역사적으로도 크게 내세울 만한 흔적이 부족하긴 하다.

 

 

 

일단은 반쇼인에 도착하긴 했다. 역시 문은 굳게 닫혀있다.

마지막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국인 그룹이 차를 타고 이 곳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쉬움은 없다. 어차피 대마도 여행은 뭔가를 보러 온 여행이 아니다.

 

이 곳만큼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대마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곳이었기에

꾸며진 관광지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저 대문도 1600년대 모모야마 양식으로 지어진 대마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양식이다.

물론 화재로 여러 번 소실되었고 지금은 그냥 그 양식으로 재건해 놓은 것이지만.

 

 

 

대문 너머에는 대나무가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다.

실제로 이곳의 볼거리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가서 번주들의 묘소 쪽에 서 있는 삼나무이지만

어차피 볼 수도 없고, 삼나무라 하면 마음의 고향 중 하나인 키소(木曽)에서 눈이 빠지도록 구경했으니 아쉽지는 않다.

 

초여름이라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폐관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키는 면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곳을 주욱 올라가면 대마도 번주였던 소우 가문의 묘소가 나온다.

돌계단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밤에 올라갈 수 있다면 더욱 분위기가 좋을 법 하다.

여행 첫날이 대게 그렇지만 배멀미에 고생하다 보니 체력도 많이 깎이고 해서

개장시간 내에 도착했더라도 여기를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지경.

 

오히려 이렇게 폐장되고 나니 홀가분하게 사진이나 담고 마음에 남긴 것 없이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다.

 

 

 

저 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사찰이 있고 조선통신사 유물도 전시해 놓았다고는 하는데

더 들어갈 수가 없으니 그냥 정겨운 풍경만 남기고 돌아선다.

 

일단 입장료를 받는 관광 명소인데, 앞에 위치한 건물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주택의 분위기를 풍기기에

혹시 여기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냥 저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돌담 하나는 잘 지어 놓았다는 느낌이다.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일본은 나무의 종류와 형태가 한국과 많이 달라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왼쪽 위에 보이는 삼나무는 일단 한국에 생식하지 않는 녀석이기도 하고, 저런 나무를 신성시한 일본은

한국보다 직선의 미를 살리려는 경향이 있어서 나름의 독특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결국 위로 거슬러 가다보면 미세한 자연 환경의 차이에서 그 민족의 문화 전체가 갈리는 것이니까.

 

반쇼인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푸르던 하늘이 식어가고 있다. 식어간다기 보다는 오히려 홍조를 띄우는 느낌이지만.

어차피 이 시간이면 딱히 더 찾아갈 곳도 없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마을 안을 돌아다니는 건 언제나 훌륭한 여행 코스가 된다.

아마 이런 곳보다 이즈하라 시내의 평범한 민가들에서 셔터를 누를 기회가 더 많으리라 확신하며 왔던 길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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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일본 자전거 여행중 루트상으로도 자금상으로도 가기가 힘든 지역은 역시 섬이었다.

교통비가 들지 않는 자전거 여행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추가요금이 붙는 행동이니.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못 가본 곳 중에서 짧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섬'을 생각하니 대마도밖에 생각이 안 난다.

 

몇몇 가 본 사람 말로는 별로 볼 게 없어서 굳이 갈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성향이 별로 볼 것 없는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라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짧은 연휴기간 어렵지 않게 저렴한 선박을 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부산역에서 항구까지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있으니 심상치 않은 정보가 운전사 아주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오늘 대마도 가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해서 버스도 자주 왔다갔다 해야 한다고. 오늘 하루만 약 2만명 가까이 간다고 한다.

 

그 작은 섬에 한국인 관광객이 2만명이나 간다는 정보에 앞날이 심히 걱정되지만 이미 예약해 놓은 거 어쩔 수 없다.

 

막상 항구에 도착하니 또 무슨 이유인지 말도 해주지 않고 2시간 가량 출항이 연기되었다고 매표소 직원이 선고하듯 안내해 준다.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일언 반구도 없이 묵묵하게 연기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매표소를 보고 출발 전부터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어쨌든 출발 전부터 이렇게 무책임한 상황에 직면하니 오늘 기분 좀 풀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마어마한 승객들 사이에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마치고 고속선에 승차해 후다닥 대마도에 도착.

대구에서 부산 가는 시간보다 더 짧은 뱃길이라 외국에 간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선착장을 나서니 사방엔 온통 한국인 관광객 밖에 없다. 정말 많이도 왔다.

숙박이고 뭐고 아무것도 예약해 놓지 않고 덜렁 왔기 때문에 슬슬 걱정도 된다.

최악의 경우엔 그냥 아무데서나 노숙하면 되지만 어느 곳이든 붐비는 건 질색이다.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가까운 곳이고, 일본에서 굳이 이 곳에 관광올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이곳의 관광 경제는 거의 한국이 책임지다시피 하다 보니 여행도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제껏 대마도에 가기를 꺼려한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외국 여행중에는 한국 사람과 마주치기 싫다.

 

 

 

대부분이 산지라 바다와 맞닿은 풍경은 조화롭지만 그 외에 관광을 목적으로 할 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이쪽에서는 별로 남아있지 않은 몇몇 역사적 유물과 조그마한 동네 신사,

심지어 본토에서는 널리고 널린 모스버거 매장까지 지도에 표시해 놓을 만큼 관광객들을 위한 어필에 열심이긴 하다.

 

대마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이즈하라지만 본토에서는 꽤나 시골마을에 속하는 편.

하지만 본토는 자전거가 쉽게 달릴만한 길이 대부분 해안선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 않는 한 이 정도로 해안과 딱 붙어있는 마을을 볼 일이 별로 없다. 덕분에 조금은 신선한 느낌이다.

 

 

 

썰물처럼 관광객이 빠져나가니 항구 주변은 매우 한산해진다. 이제 좀 숨을 쉴 만 하다.

'1000년의 시공을 넘어서'라는 문구와 함께 통신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간판 하나만 봐도 이곳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섬 자체는 작지 않은 편이지만 워낙 산밖에 없어서 농업이 발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국과의 무역이 오래 전부터 중요했었고

무역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결국 먹고 살기 위해 해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어서 교류와 침략을 번갈아가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

조선 초기부터 이 곳은 일본의 중앙정부보다 조선 조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고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묘한 공생관계가 500년 이상 이어져 왔다.

 

마냥 친근하지는 않았지만 외부 위협에 대한 적절한 완충지 역할을 해 오던 이 곳은

이제 섬의 가장 큰 수입원이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의 지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광객들이 살갑지만은 않다.

인과를 따지자면 한국 잘못은 아니어도 어쨌든 관광 와서 잘난척 하고 쓰레기 짓을 벌이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써 주는 돈과는 별개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곳.

 

 

 

관광지라고 조성해 놓은 곳도 상당수가 한국인들 입맞에 맞는 것들이라 오히려 본인에게는 별 관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일본 전역에서 가장 전쟁이 적었던 곳인 만큼 그만큼 후세에 남겨진 굵은 흔적도 적다고 할 수 있어서

역사적으로 본인의 흥미를 끌 만한 무언가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덕혜옹주가 이 곳의 영주인 소우 타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한 역사가 있어 비문 정도는 세워놓았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의 관광객을 위한 자료라는 느낌이 강할 뿐 굳이 이곳에서 한국의 역사를 찾아야 할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이 정해진 탓에 상당수 한국 관광객의 루트가 거의 비슷비슷하지만

본인은 그저 3일간 조용히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산책이나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여행 정보는 찾아보지 않았다.

 

 

 

나름 이렇게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소박한 그림이나 감상하며 걷는 것이 전부.

조선은 처음엔 해적질 하는 이곳 사람들을 정벌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래서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계를 위한 약탈은 그 지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니.

 

그래서 통신사를 파견하고 대일 무역창구로 이곳을 이용하면서부터 오랜 시간에 걸친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곳의 영주는 조선에서 얻는 무역 이익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기에 양국의 완충제 역할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는 듯.

심지어 임진왜란때도 전쟁을 막으려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발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선봉에 서기도 했다.

역시나 전쟁 중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전후에도 무역이 끊기는 바람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으니, 이 곳만큼 조선과 일본 양 쪽의 관계에 민감한 곳도 없었다.

 

역사라는게 다들 그렇지만 마냥 좋거나 나쁜 쪽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대마도야말로 '애증의 관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섬이 아닌가 싶다.

 

물론 현 한국의 돌아가는 꼴은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예외는 어디든 있지만.

 

 

 

주차된 차량 밑에 냥이 한 마리가 두리번거리고 있어서 담아본다.

카메라를 밑으로 집어넣어 보지 않으면 거의 보이지 않고, 찍고 나서도 완전히 시커먼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RAW 파일 촬영을 하다보니 어렵지 않게 복구 가능했다.

 

이 정도 거리에서 사진 찍는것 까지는 그닥 개의치 않치만 더 이상 다가오려고도 하지 않는 녀석.

생각보다 어린 편인데 환경이 좋아서인지 꽤나 건강해 보인다. 오사카나 히로시마에서 만난 찌든 녀석들과는 대비가 된다.

 

 

 

조금만 걸어가면 숙소가 밀집한 번화가가 나타나니 서두를 것도 없이 관광객이 사라진 공간을 마음껏 즐긴다.

부산에서 여기까지 꽤나 구름이 많아서 찝찝했지만 가끔씩 푸른 하늘이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대마도는 여러 해류가 맞물리는 곳에 위치해 있어 어장이 매우 풍부해 낚시터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한다.

한국인 중에서도 상당수, 일본인 관광객의 절반 이상은 낚시를 위해 이 곳을 찾는다는 말도 있다.

 

어업 중심의 섬마을이라면 그냥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건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요즘에 와서야 상상해 볼 수 있는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고

한 번 삶의 질이 높아진 이상 그걸 다시 되돌리는 건 역사 이래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이 곳은 쌀을 재배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서 간신히 콩 등의 작물만 수확할 수 있었기에

조선과의 무역이 단절되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노략질을 일삼을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무역이 성행하면서 평균 수입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올라 지금에까지 이어졌고

현대 역시 한국인 관광객이 주 수입원이다 보니 그 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풍족함이란 마약과도 같아서 사람은 그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

 

심지어 훨씬 먹고살만 한 오키나와조차 이제와서는 미군 주둔덕에 수입이 많이 생기니 그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젊은층이 생기고 있으니까.

 

 

 

관광때문에 수입과 동시에 골치아픈 일도 많이 떠안았지만

여전히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라 주변에 피어있는 꽃들도 모두 생생한 활기가 넘친다.

도심 한가운데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조경수들은 뭔가 찌들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든데 이런 곳은 알아서 잘 자란다는 느낌이 확 든다.

 

베낭 한개와 카메라 가방 하나를 짊어지고 있어서 이동은 나름 자유로운 편이라

숙소 잡을 생각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사진이나 담고 있지만 이제 슬슬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대마도에는 남쪽의 이즈하라(厳原)와 북쪽의 히타카츠(比田勝)가 항구를 가진 큰 마을인데

부산에서는 이 두 지역 모두에 페리가 왕복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반수로 준다고 해도

2만명이라는 대인원이 이 조그만 마을의 변변치 않은 숙소가 다 커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진짜로 노숙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슬슬 잠자리를 찾아봐야 할 듯.

그 전에 항구로 돌아가 시마토쿠 쿠폰을 구입한다. 대마도 관광에서는 빠지기 힘든 아이템.

관광에 의존하는 이 곳 특성상 소비를 증진시키기 위해 발행하는 이 쿠폰북은 5천엔을 주고 구입할 수 있다.

5천엔 짜리 쿠폰북 안에 1천엔 짜리 쿠폰이 6장 들어있어 사실상 1천엔을 서비스하는 셈.

 

물론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1천엔 이상 소비시에 사용해야 한다.

다행히도 초과 금액은 현금으로 지불 가능하니 이 점만 유의하면 저렴한 관광이 가능하다.

어차피 대마도엔 쇼핑하러 오지 않는 이상 물건 살 게 별로 없지만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비싼 곳이고 어지간한 숙박지에서 이 쿠폰을 사용가능하기 때문에 1만엔을 내고 쿠폰북을 2권 구입한다.

 

단체 관광객의 경우엔 숙박비를 지불한 뒤일테니 1권만 있어도 이 곳을 즐기기엔 충분한 양이다.

 

 

 

바다위에 동동 떠다니는 귤이 많이 불어있다.

주변에 뭔가 날아다니고 있는 걸 보니 저렇게 소금에 찌든 녀석이라도 뭔가 흡수할 게 남아있나 보다.

 

 

 

날씨는 덥지만 하늘이 좋아질 때면 카메라를 들어 주위 풍경을 담으며 걸어간다.

평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라 적지 않은 집이 산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풍경이다.

부산이나 나가사키와 비슷하지만 이 쪽은 그 둘에 비하면 사실상 평지가 없는거나 마찬가지.

 

요즘엔 이쪽 지역 삼나무가 크고 튼튼해서 본토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수백 년 전엔 정말 먹고살기 힘들었겠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수가 없다.

 

 

 

홀로 여행의 즐거움이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동행자의 심기 살필 필요없는 느긋함에 있다고 본다.

이곳은 몇 안되는 관광지도 오후 5시 정도만 되면 거의 문을 닫아버리는 깡촌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재빨리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서둘러 길을 나서기 때문에 이미 이 부근엔 관광객이 한 명도 없다.

 

본인은 처음부터 목적이란 게 없이 거니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이 곳에 왔기 때문에

밤이 되면 미친듯이 불탈 오징어잡이 어선의 전구를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좀 더 대인 친화력이 강한 성격이었다면 아마 새벽 오징어잡이에 함께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만큼은 여전히 힘들어서 그냥 이렇게 소심하게 사진이나 남기며 구경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떨어진 지 오래 된 듯한 자전거가 바다 속에 쳐박혀 있는 것도 신기한 볼거리.

새들 부분은 썩어 없어진 건지 누가 빼 간건지 모르겠지만 사라져 있다.

 

저런 모습만으로도 온갖 추측이 머릿속에서 난무한다. 처리하기 싫어서 버린 건지 우연히 빠졌는데 건지기 싫었던 건지.

고무는 왠만해서 썩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 좋지 않을 듯 한데, 일본에서 이렇게 바다에 빠진 자전거 보는 것은 처음이다.

 

자전거하고는 나름 인연이 깊은 편이라 저렇게 본연의 목적에 벗어나 처박혀 버린 녀석을 보고 있으면 살짝 마음이 찡하다.

1년간 12000km 가까이 120kg 가까운 무게를 짊어지고 달려주었던 본인의 자전거는

펑크 한 번 나지 않고 타이어 교채 한 번도 없이 그렇게 달려주고도 여전히 현관 앞에서 조용히 대기중이다.

 

언젠가 분명 다시 한 번 그 자전거로 긴 여행을 떠날 날이 오겠지만 그건 꽤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일 듯.

그 때 다시 새들에 앉으면 2010년의 그 기억이 세포속에서 슬금슬금 깨어날 것이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이긴 하지만 역시 일본은 일본인지라, 없는 공간에도 소박하게 꾸미는 습관은 여전한가 보다.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주택가를 거닐어도 현관 근처에 인형이다 꽃이다 해서 장식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라

이곳에서도 해풍의 영향을 받아가며 언뜻 난잡해 보이지만 소박하게 꾸며놓은 모습이 정겨운 느낌이다.

 

주택에 살았다면 본인 역시 저렇게 해 보고 싶지만 아파트에서는 식물들이 그렇게까지 생기가 있지 않아서 한계가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별장용으로 쓰고 있는 시골의 초가집 옆에는 각종 야채가 알아서들 신나게 자라고 있어서

틈나면 가서 뜯어와 쌈싸먹고 하는 것이 소소한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이즈하라 시내는 도로와 인도의 구분이 불명확하다.

워낙 좁은 거리다 보니 단차를 만들어 놓으면 되려 공간 활용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일 듯.

 

이런 시골이라도 도로 깔끔한 것은 여전해서 걸어다니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본의 투기 쓰레기 문제는 마을 안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를 잇는 산간도로 사이가 진짜 골치덩이.

장거리 트러커들의 숙식 찌꺼기들이나

재활용품이라며 마을에서 수집한 쓰레기들 중 돈 될 녀석들만 골라내고 나머지를 산간도로 옆에 던져버리는 악덕업자들 때문에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자전거 여행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는 한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그 모습을 보면 일본도 안되는 놈들은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랄까 이곳 대마도는 큰 공장도 없고 트러커들도 없어서 산간 도로 주변이라도 그런 쓰레기는 없으리라 예상해 본다.

 

 

 

규모는 작지만 어쨌든 관광으로 먹고사는 마을이다 보니 마을 정비에도 힘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모든 것이 낡았지만 관리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 이건 한국처럼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꾸면서도 관리는 개판인 것과 정 반대다.

 

작은 마을 둘러보기란 이렇게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떤 정성을 들여서 마을을 가꾸고 있는가를 살짝살짝 엿보는 것에 재미가 있다.

보여주기 위한 모습보다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이 여행의 재미인데, 사실 이 곳은 그 재미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고.

 

 

 

호텔이라고 이름붙이기가 어색할 정도로 낡은 건물들이 몇 군데 보인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누워 쉴 만한 호텔이 어디 있을까 둘러본다.

대마도는 본토에 비해 호텔이 비싸고 시설 낡았기로 유명한 곳이라 만족하기는 좀 힘들겠지만.

 

괜찮다 싶은 리조트형 호텔은 나같은 홀로 여행자들이 도달하기 힘든 언덕배기에 위치해 단체로 손님을 실어나르는 구조라

아무래도 본인과는 인연이 없다. 그냥 대충 이 곳 시내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십여 명쯤으로 구성된, 총천연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관광객 무리가 어딘가의 골목에서 튀어나와 이동중이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람을 따라 어디론가 서둘러 가고 있다. 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숙소에 들어갔다 나오는 중인 듯.

한국 사람들 돌아다니는 수를 보니 잘못하면 농담이 아니라 숙소 못 잡고 노숙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속도를 올려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한다. 호텔이라 붙여놓은 건물 대부분이 도저히 호텔로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지만.

 

 

텐진에 도착하니 해는 벌써 저물어가고 있다. 일단 이곳에서의 계획은 친구한테 부탁받은 게임소프트를 구매하는 것.
어젯밤에 아이패드로 잠시 위치 파악을 해 놨으니 이번엔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찾아간 애니메이트에는 이름 그대로 애니메이션 관련 물품밖에 찾을수가 없네.
원래 게임소프트도 팔지 않았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후쿠오카 애니메이트는 와 본적이 없으니.


걸어가는 도중 나름 하카타의 명물이라는 포장마차도 한장 남겨봤다. 한국과 가까워서 그런지 여느 지역보다 포장마차가 활성화 되어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대부분 맛은 보통이고 가격은 좀 비싼 편이라고 하니...
분위기를 즐기는 의미에서는 한번쯤 경험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일본어가 어느정도는 되야 이야기나 좀 하며 놀 수 있으니
대다수의 한국 관광객들에겐 그냥 둘러보는 정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포장마차라서 좀 아저씨틱한 구수한 음식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어제 봤던 TSUTAYA에 가서 중고품 소프트를 하나 구입했다.
친구도 괜히 비싼 새거 살 필요 없이, 저렴한 중고 있으면 구해오라고 했으니까.
참고로 친구가 사 달라고 한 녀석은, 이 블로그의 피규어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리듬게임.

대략 이런 녀석들이 나오는 게임. 닌텐도 3DS라는 게임기는 3D 안경이 없는 맨눈으로도 입체영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실제로 친구한테 넘겨주기전에 플레이 해보니, 집에 놓여있는 피규어가 그냥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니한테도 한번 보여드리니 쪼그만 것들이 쪼물쪼물~ 이라고 귀여워 하시더군.

이번 여행에서는 유후인 왕복 버스비 이외엔 돈 들어갈 데가 밥먹는것 밖에 없기 때문에
텐진에서 좀 괜찮은 일식집이나 초밥집에 들어가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지만
유후인에서 먹은 것들 덕분에 배가 고프지 않고, 친구 동생분이 부탁한 용품 사려면 다시 하카타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만약 음식점에 들어갔다간 하카타엔 9시는 되어야 도착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자금이 널널한데 시간이 없어서 계획했던 음식을 못 먹고 가는것도 참 희귀한 일일세.
덕분에 스마트폰 에버노트에 빼곡히 적어왔던 텐진과 하카타의 맛집 리스트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100엔버스를 타고 하카타에 도착해서 역 건물에 위치한 잡화용품점 도큐핸즈에 들어간다.
대충 저곳이라면 없는 것 없이 팔고 있으니.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폐장전에 한바퀴도 둘러볼 여유가 없다.
급하게 문구용품 코너에 들어가서 후다닥 찾아보니 일단 심 없는 스테이플러가 있긴 한데, 동생분이 부탁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곳을 전부 둘러봤다면 어쩌면 찾을수도 있었을 테지만, 슬슬 문 닫힐것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그냥 그걸로 구입.
소소한 에피소드로, 직원이 그 스테이플러 가격을 몰라서 다시 전시된 곳에 가서 표시된 가격을 보고 가격을 찍더군.

쇼핑이나 여러가지 구경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텐진은 하루로도 모자라고, 캐널시티도 그런데다, 이곳 하타카역의 쇼핑센터도 어마어마해서
그야말로 즐겁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 느긋하게 시간이 남아돌 때 한번쯤 스윽 둘러볼 기회가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곳.
이 건물 반대편에는 거대 전자기기 체인점인 요도바시 카메라가 있어서, 얼마 안남은 시간동안 최신 카메라나 좀 구경할 겸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기대했던 캐논의 1DX, 니콘의 D4, 올림푸스의 OM-D 등등 최신 제품들은 사진만 달랑 놓여져 있는 대참사가...
결국 소득이랄 것은 후지필름의 최신 카메라 X-PRO1 을 조금 만져본 것 뿐. 렌즈 성능은 훌륭하지만 바디 성능이 필름시절과 변한게 없었다.

실망하며 가게를 빠져나와서 근처에 보이는 라멘집에 들어갔다.
이미 왠만한 일식집은 문닫은 상태이고, 그렇다고 그냥 들어가기엔 뭔가 아쉬워서, 배는 고프지 않아도 여행 기분을 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세트메뉴로 챠슈 돈코츠 라멘과 밥과 만두 5개까지 따라나와도 어제 먹었던 다자이후의 라면 한그릇보다 싸다.
단보 라멘이 조금 비싼 면도 있고, 이곳의 세트메뉴가 30정 한정이라서 좀 저렴한 탓도 있고...
그런데 밤늦게 찾아갔는데도 아직 주문가능하다는데 오히려 좀 불안해지기도 했다.

뭐, 나쁘지 않은 맛이지만 확실히 다자이후의 단보 라멘보다는 국물의 진함이 확연하게 떨어지는게 느껴진다.
챠슈는 훨씬 굵직굵직한데, 맛은 좀 덜 베여있는 편이고. 그냥 역 근처에서 늦은 시간까지 직장인들을 위한 대중 라멘집같은 느낌이니
큐슈 라멘대회 1위라는 집과 맛을 비교하기엔 좀 불공평할 수도 있겠다.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KFC가 아직 문을 열고 있어서 치킨 두조각 사들고 간다. 밤에 TV 좀 볼때 입이 심심할 수도 있으니.
일본 프로그램중에서 제일 재밌게 보는 'ナニコレ 珍百景'(일본 각 지방에서 신기한 것들을 투고받아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방영하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채널 돌려보는데, 재미있는 과학, 역사적 지식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안티키테라의 기계'가 나와서 재미있게 봤다.

학생시절 나의 지적 호기심을 무한히 충족시켜준, 현존하는 가장 미스테리한 기계장치인 안티키테라의 기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 그리스에서 제작된 일종의 컴퓨터이다.
1900년대 안티키테라 섬 앞바다에서 건져올려진 후에도, 수십년동안 용도가 무엇인지 밝혀내질 못하고 단지 시계의 일종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X선 사진으로 촬영해본 결과, 얇은 기계속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톱니바퀴 수십개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제서야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 이 녀석은 태양와 달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천문 컴퓨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순히 움직을 표시해 주는 기계가 아니라, 수많은 태엽과 톱니바퀴의 조합으로 바깥쪽의 크랭크를 돌리는 행동에 의해
날짜에 맞춰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최신 현대장비와 거의 오차없이 계산해주는 컴퓨터의 일종이다.
2천년 전의 물건이지만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에 근거해 만들어졌으며, 윤달로 인해 어긋나는 1년 주기까지 계산할 수 있다.

 

그리스 박물관에는 이 기계를 복원한 장치가 전시되어 있는데
도저히 2천년전의 물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밀함 때문에, 역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로 분류되기도 한다.

참고로, 마야의 수정 해골이라던가 하는 미스테리 물건들은 이미 옛날 옛적에 가짜라는게 밝혀졌다고 TV 프로그램은 소개했는데,
이 안티키테라의 기계는 정말 2천년 전에 만들어진 기계로 공식 인정되어 있다.

오랜만에 이 기계를 접해서 기분이 좋다. 학생 시절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이 세계의 미스테리함에 그저 감동받던 기억이 새록새록.
물론 지금도 세계는 미스테리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미시과학과 천문학에 있어서는 그때보다 더욱 미스테리가 늘어만 가니까.

 

다음날 마지막 조식을 배불리 먹고 하타카 항으로 향한다.
터미널엔 약국이 없어서 한국쪽 카운터에서 하나 받았는데, 직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 멀미약은 무지 강한거라고 한다.
오늘은 파도가 적다고는 하는데, 부산에서 올때 워낙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일단 먹어보기로 한다.

올 때는 코비, 갈 때는 비틀이라는 배를 탔는데, 둘다 원리는 같다. 소속 국가가 다를 뿐.
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해도 코비보다는 비틀의 내부가 깔끔했다. 내가 이런 생각 하지 않도록 해줄수는 없을려나.
의외로 부산으로 가는 이 배에는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일본인이었다. 환율 때문이기도 하고, 후쿠시마 일도 있고하니
부산으로 관광가는 일본인들이 많은 듯. 부산 소개하는 TV 가이드엔 대체로 먹을거리와 센텀시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행 내내 찌부둥한 날씨가 돌아가는 날에는 화창하다 못해 찢어지게 푸르다.
아침엔 정말로 '그냥 배 포기하고 나중에 편도 하나 따로 사서 갈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
하지만 저렴한 배편으로 왔기 때문에, 편도를 다시 구매하려면 20만원에 가까운 요금이 들기 때문에 포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바다는 조용하고 흔들림도 적었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 강한 멀미약을 먹은 탓에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졸다가 부산에 도착.
어찌나 강한 녀석인지 부산에서 KTX 타고 대구로 올라오는 50분간도 거의 눈을 뜨질 못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난리도 아니었고.
평생 멀미약이란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멀미약은 신경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사실상 독약에 가까운 독한 약이라고 한다.
다음엔 중간에 토사물을 꿀떡하는 일이 있어도 멀미약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소중한 경험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연다. 다시 현실세계로.

 

 

코기는 저 멀리 앞으로 걸어가 버리고
어느 길로 가던 유후인 역 쪽으로만 가면 되니까 나도 따라가 본다.
민가인지 상가인지 모르겠지만 멋들어지는 담에 둘러쌓여 있다.
하수구 쪽도 깔끔하고, 어딜가나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관광 명소라는게 부럽기 그지없다.

 

직접 만든 것일까. 시골이니까 가능한 멋진 출입구다.
살짝 삐뚤어져 있는 모습이 더욱 인간미 느껴진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도 센스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겠지.

 

다리를 건너자 친숙한 코기와 함께 한 마리가 더 가세했다.
역시 주위에 주인은 보이지 않아서, 마음대로 산책나온 녀석인 듯.
둘 다 외지인들에게 별로 친근하진 않지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흰둥이 녀석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이는데
코기쪽은 흰둥이가 굉장히 신경쓰이는 듯. 슬그머니 저 녀석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었다.
단순히 좋아서라기보단, 서로 경계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메라가 신경쓰이는지 한번 쳐다도 봐 주고.

 

결국 저렇게 냄새를 맡다가 분위기가 험악해 져서 으르렁거리며 싸움 모드에 들어가고 말았다.
왕실 귀족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코기는 역시 양치기견이라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경계심이 강하다.
이번엔 자기가 먼저 다가가다가 된통 당한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이렇게 마음대로 쏘다니는 녀석들의 제일 큰 일과가 영역표시다 보니
이런 녀석 둘이 만나면 제일 먼저 하는게 기선제압 혹은 싸움이긴 하다.

 

개들이야 신나게 싸우게 놔 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풍경은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일까, 이곳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꽤 많다.
이곳은 트릭아트 박물관. 최근 한국에도 여러 군데 생겨서 친숙한 곳이다.
물론 입장료가 있어서 들어가 보진 않았다. 동행이 있으면 재미있는 포즈도 좀 시켜보겠는데 혼자서 들어가는건...

속을 사람이 있을까 싶은 트롱프 뢰유(속임수 그림)인데, 그냥 한번 웃고 지나치는 정도로 충분.

 

마음가는대로 걷다보니 상가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유후인 역에서 직선으로 뻗어있는 거리는 아니고 한 골목 안으로 들어온 곳인데
어째 사람 붐비는 건 이 골목이 더한 듯 하다. 아님 그새 관광객이 많아졌던가.

온천과 자연 경관을 즐기는 휴양지라고 하면 그래도 나이 지긋한 사람의 비율이 높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10명중 7명 이상은 아마 나하고 비슷하거나 더 젊어보이는 사람들이니
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원동력이 이런 거리에 숨어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많은 곳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활기찬 유후인의 모습 역시 궁금하니까.

한국 돈으로 14000원쯤 하는 우산이다.
퀄리티도 그리 나쁘지 않고, 일단 유후인 특산품이라고 전시해 놨으니 꽤 저렴한 편이다.
일본 왕족이 사용하는 우산은 우산 장인이 손으로 제작하는데, 보통 한개 80~120만원 선.
예전에 국내 최대의 우산회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살짝 눈이 갔다. 물론 살 필욘 없지만.

유후인은 생각보다 고양이가 많은 곳이었구나.
어지간한 녀석들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
도망가거나 경계하는게 아니라 무관심하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
털고르기를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적당히 떨어져 사진만 남겼다.

 

천연효모를 사용해서 만든다는 빵집 마키노야(まきのや)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전시된 장난감들도 인공적으로 꾸민 느낌이 적어서 잘 어울린다.
나름 유명한 빵집이라서 빨리 찾아가지 않으면 금새 품절된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빵 기분이 아니라서 패스.

 

솔직히 말하자면 빵 한번 먹어볼까 아주 조금 망설였는데
골목에서 튀어나온 냥이녀석이 부비부비해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깔끔 쌈빡하게 빵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한참동안 이 녀석 만지작거리며 놀고 말았다.
조금 어린 녀석인데, 주위에서 귀여움 받고 자랐는지 사람 손을 참 좋아하더군.


오토 포커스가 되지 않는 수동 렌즈를 끼우고 있었던 터라 적당히 촛점 맞춰서 뷰파인더도 보지 않고 샷을 날렸는데
다행히도 단 한장의 사진이 그나마 그럭저럭 잘 나온 편이라서 더욱 기분이 좋다.
이 녀석은 3분쯤 나하고 놀다가 다시 골목길로 스윽 걸어간다.

 

잘 꾸며놓은 상가가 많아서, 사지도 않을 거 점원에겐 미안하지만 천천히 꼼꼼히 둘러보며 걷고 있었는데
좀 전에 킨린코에서 봤던 묘한 모양의 꽃이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개화한 꽃잎 색깔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녀석.


다행히도 가게에서 심어놓은 녀석이라 옆에 이름이 적혀있었다.
삼지닥나무(みつまた)라고 하는 중국이 원산지인 녀석. 원래는 나무껍질을 제지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자생하지 않으며, 남쪽 지방이나 제주도에선 임의로 심어놓은 곳이 있다고.
이곳은 제주도와 위도가 같으니 이렇게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제 슬슬 뭐라도 먹어볼까 싶어서 걸어다녀 본다.
금상 코로케라는, 이름만 들어도 대강 이해가 가는 코로케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데
줄 서서 먹긴 귀찮고 해서 좀 더 돌아다니다가 폭탄야키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모양은 타코야키와 같지만 크기가 내 주먹만한 녀석.

예전에 도쿄의 우에노 아메요코 시장에서도 비슷한 녀석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그건 정말 맛이 없어서 땅을치고 후회했던 적이 있다.
이곳은 뭔가 좀 다른것 같기도 하고, 그 때의 후회를 만회하기 위해서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터라 레귤러 하나 주문해서 먹어보기로 한다.

덩치가 너무 커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젓가락 없이는 먹지 못한다.
부드러운 속을 파먹어 보니, 우에노와는 달리 뭔가 여러가지가 튼실하게 많이 들어있다.
문어만 들어있는 타코야키와는 모양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요리다.
타코야키 매니아인 나로서는 이런 이단야키에게 조금 거부감이 있었지만
타코야키는 오사카 가서 실컷 먹기로 하고 새로운 경험을 즐겨본다.

맛 없진 않다. 적어도 우에노의 거대야키보다는 훨씬 낫다.

 

이 폭탄야키의 종이 측면에는 '이안에 들어있는 10가지 재료를 맞춰보세요'라고 적혀있다.
뒷면에는 성분표기와는 반대쪽으로 그 답이 적혀있더군. 재미있는 발상이다.
단지 일본어라는게 좀...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메뉴판은 전부 한글로 적혀있었는데도 말이다.

메추라기 알, 비엔나, 오징어, 바지락, 시메지버섯, 떡, 옥수수, 튀김조각, 양배추, 홍생강절임

먹다보니 정말 다 들어있었던 듯. 배가 작은 여성이라면 한개만 먹어도 절반쯤은 든든할 듯 하다.
드는듯 마는듯 보물찾기하듯이 찾아다닐 필요 없이 먹다보면 소세지든 버섯이든 팍팍 씹힌다.
살짝 신경쓰이는 점이 있는데, 대다수 한국 관광객이 이걸 '폭탄 타코야키'라고 부른다는 것.
이 녀석은 타코야키가 아니다. 문어는 안 들어있다.

 

흡족하게 흡입후 가게를 둘러보면서 걸어다니다가 유후인 버거라는 이름을 보고 다시 군침이 돈다.
유후인 버거는 일본에서도 맛있기로 유명한 명물 버거.
사실 이 녀석은 일본 최고의 햄버거인 사세보 버거에서 파생된 녀석이긴 한데
네임밸류를 제외하면 사세보 버거에 크게 뒤지지는 않는, 꽤 먹을만한 버거다. 미국인들에게도 나름 괜찮다는 평.
폭탄야키를 먹었으니 내 얼굴통만한 디럭스 버거를 먹을 필요는 없고 그냥 레귤러로 하나 주문.


바람이 좀 불어도 일기 좀 쓰기 위해서 바깥에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의 애마인 듯한 멋진 바이크와 어쩐지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곰탱이가 시선을 끈다.

 

주문후 바로 만들기 때문에 따끈할 때 먹는게 최고다.
패티도 빵도 모두 수제품이고, 신선한 양상추와 두툼한 치즈, 베이컨 등등
꼼수 쓸것 없이 질로 승부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녀석. 레귤러인데도 일본 버거 체인점에서 파는 어떤 버거보다 크다.

어지간히 꾹꾹 눌러서 압축하지 않으면 안 입에 넣기가 매우 힘든데
일단 무리해서 모든 재료를 한번에 입 안에 넣고 씹어보니 그야말로 버거 먹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간단히 말하면 이태원 버거와 크게 다르진 않지만, 맛이 좀 얌전하다고 해야 하나... 불량식품이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
바로바로 구워낸 계란과 후추 맛이 가득 느껴지는 패티의 맛을 생각하면 훌륭한 한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한국의 햄버거점은 한끼 식사는 커녕... 입이 심심할 때 오징어다리 대신 씹는다는 느낌일 뿐이니.

재료 자체의 품질로는 상위권에 들어가는 일본의 모스버거도 나쁘진 않지만
일단 덩치가 기본적으로 모스버거 2배는 되는데다가 듬직하고 굵은 재료가 훨씬 느낌이 좋다.

우적우적 씹어먹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그저 행복하다.
출발 시간까지 1시간쯤 남았지만 후다닥 써내려갈 수 있는 타이핑과는 달리
거친 수첩에 손으로 쓰는 일기는 머릿속 생각보다 필기가 느려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1시간쯤 쓰는건 일도 아니니 오늘 돌아본 유휴인의 풍경을, 중간중간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서 정리해 나간다.
바로 몇 시간 전의 인상도 카메라로 확인하지 않으면 그때 그 감상을 되새기기가 힘들 정도니
이걸 그냥 사진만 담아와 한국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데이터 손실이 너무 크다.

저녁에 텐진에 도착해서 부탁받은 물건들을 구입하고 나면 후쿠오카 여행은 종료.
내일은 아침 일찍 배를 타기 때문에 사실상 하루 반 정도의 짧은 여정이다.
교통비와 숙박비를 극단적으로 줄인 여행이라서 이 정도만 즐기자 했지만
역시 짧은 여행은 아쉬움이 많다. 만약 배편 변경이 가능했으면 3일정도는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한국 여행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왔으니 이번엔 이걸로 만족하자고 자신을 달래며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킨린코를 빠져나오는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소박한 가게와 여관 등이 들어선 거리.
또 하나는 관광로에서 거의 벗어나다시피 하는 민가가 이어진 거리.
당연하게도 호기심이 동한 길은 민가가 이어진 거리다.
잘 꾸며진 상가 거리도 좋긴 한데, 유후인의 참맛은 이런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쌓여 수십년을 살아가는 토박이들의 향기니까.

동네 할머니가 어느 집 앞에서 인사하는 동안 지긋히 앉아있던 귀공자. (귀공녀?)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데,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기엔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본의 왠만한 지역에서 목줄 없이 다니는 개는 보기 힘든데, 이곳 유후인에서는 목줄 없는게 훨씬 자연스럽다.

할머니가 길을 나서자 바로 쫄랑쫄랑 따라가서 옆에 착 붙는 녀석.
원래는 개를 안 무서워 하는데, 자전거여행중 개한테 쫓긴 적이 워낙 많아서 요즘 성격이 좀 바뀐듯 하다.
그래도 나한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가는 이 녀석은 그닥 무섭지 않았다. 덩치가 산만하긴 했어도.

작지만 잘 정돈된 텃밭을 보니 엄니의 시골집이 생각난다.
아궁이가 있는 흙집과 텃밭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엄니.
지금은 비록 몸이 너무 고되다고 이런 텃밭 운영은 꿈도 못꾸시긴 하지만
아파트 안에서 몇가지 꽃과 식물들을 기르는 것만 해도 매일 그 녀석들에게 눈을 떼질 못한다.

하물며 이런 텃밭에서 자라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주인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농촌 생활이 지루한 건, 라이프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행동에서 생기는 적응 기간의 일이겠지.
정성을 쏟을 때, 텃밭의 녀석들처럼 정직하게 답해주는 것이 달리 있을까 싶다.

담도 없고 대문도 없는 시골집 앞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스윽 다가오더니
익숙하게 내 손에 얼굴과 몸을 비비고 귀여운 소리 한마디 내 주고
언제 그랬냐는듯 시크하게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사박사박 걸어들어간다.

따로 주인이라는 게 없을 듯 보이는 녀석이지만, 이 부근 집이 전부 자기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양이가 들어간 집의 앞마당 역시 여유가 넘친다.
잡초도 적당히 섞여있는 따뜻한 텃밭의 모습이 이곳 유후인의 솔직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후인의 상점가는 과장됨이 없는 아담하고 깔끔한 모습이 훌륭하지만
내 시선은 항상 그런 상가를 지나쳐 이런 느낌의 민가에 머물게 된다.

담과 정문이 없는 시골 민가는, 자전거 여행하다가 잠깐 들러서 물이나 얻어먹고 이야기나 나눠도 괜찮을 법한
그런 여유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장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 담이 있다고 해도 거의 미적 기능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어째서 걷는 것만으로 만족감을 주는지, 특별한 해답은 없는데 그렇게 느껴진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한두 그룹 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슬쩍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들 비슷하게 느끼는 듯 즐거운 모습이다.

당연히 실제 생활은 도시보다 불편하겠지.
오래된 나무집은 삐걱거리고, 수도는 낡고 자주 막히며, 텃밭은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스스로 판자를 들고 수리할 부분을 찾아다니거나, 지금쯤 폭발적으로 솟아나는 식물들을 하루하루 손질하는
그런 행동들이 사실은 먹고 마시고 싸며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사람이 해야 할 당연한 것들이 아닐까.

슈퍼에서 포장된 음식을 먹고,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평생 흙에 뭔가를 심어볼 일이 없는
그런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지면, 어쩐지 사람도 도시를 돌리는 부품 한조각처럼 딱 끼워진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런 답답함 보다는 불편한게 좋다. 애초에 뱃속에서 튀어나왔을 때 부터 인생은 불편함을 즐기며 사는 것이니까.

이 나무들이 푸른색으로 뒤덮히면
개와 함께 아침 점심 저녁에 마을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이 풍족해질까 궁금하다.
인공미 팍팍 느껴지는 강가 산책로를 사람과 자전거와 동물에 치여가며, 운동과 건강 증진이라는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건
그걸 산책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삭막한 도시에서의 자기 위안이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적당히 벗져긴 콘크리트와 그 위를 박차고 올라오는 생명들은
공무원 입장에서는 연례행사로 솎아내고 다시 덮어야 하는 업무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진행 방향까지 표시된 회색 콘크리트 산책로와 이런 길 중에
전자를 선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산책은 다리로 걷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즐기는 종합적인 유희.
지금에 와서는 이런 유희조차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자신의 생활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모험까지 감행해야 하는가.
아마 이곳에는 나보다 더 못견뎌해서 이곳으로 찾아와 그 즐거움을 찾으려 실천하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주위 풍경에 잘 녹아들어간 듯한 모습일까.
경남 사촌의 시골집 근처엔, 엄니처럼 시골을 동경했음에도 그 추구하는 방향은 다른 것이지
그 깡촌 시골에 으리으리한 벽돌과 최신 3중창, 반듯하게 깔린 잔디로 화려하게 치장한 전원주택이 몇 들어서 있다.
그런 시골까지 와서도 결국 생활은 도시와 다를바가 없는, 익숙함과 편안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껍질같은 느낌의 집.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생활의 기쁨을 포기한 집은 그 환하고 넓은 3중창 속에서도 답답할 듯 한다.

얼핏 보니 무슨 박물관인가 전시관의 주차장 역할을 하는 공터인 듯 한데
전시관까지 들어갈 필요도 없이, 이 모습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다.
가능하다면 이 곳이 계졀별로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러 오고 싶네.

아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쯤은 저 녀석들에게서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사람이 아무리 치장을 하고 관리를 해도 역시 자연의 손놀림만큼 원숙하진 못한 듯.

은근슬쩍 부모님께 유후인에서 온천좀 즐기고 오시라고 몇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세계 곳곳 안가본 곳이 없는 분이라 이런 시골마을이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경험 적은 내 입장에서는 이런 곳을 실컷 산책하고 저녁에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온천에 몸담그는 여행이 고프다.
다음엔 시간적, 자금적으로 좀 여유있게 와서 그런 것도 한번 즐겨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개천과 함께 유후인의 고즈넉한 풍경이 맞이해 준다.
자전거로 지나왔던 이름모를 시골길이 생각나는 풍경.
유후인역 앞에 자전거 대여소도 있으니, 경험하고픈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로 둘러보기도 추천한다.

출입금지가 된 길이 아쉽긴 했지만
아무렇게나 방치된 듯이 서 있는 저 시계가 정확히 가동하고 있다는게 재미있다.
구형 렌즈를 최대 개방으로 찍어보니 꿈 속에 있는 느낌이 드는군.

선명하고 또렷한 신형 렌즈도 좋긴 한데
이곳의 풍경에는 이렇게 성능 떨어지는 렌즈로 흐릿하게 담는 모습 역시 어울리는 듯 하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유후인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이렇게 몽환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푸른 하늘은 아니지만 적당히 햇빛 따뜻한 오후가 되니 개도 졸린 듯 하다.
카메라를 치켜들어도 슬쩍 눈길만 한번 주고 나서 다시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누구를 위해 만든건진 모르겠지만, 벽돌을 받침대로 한 투박한 벤치가 이곳 풍경과 어찌나 어울리는지.
동물들이 여유로운 곳은 사람들에게도 여유로운 곳이다.

자기 밥그릇 앞에서 고양이도 목상처럼 느긋하게 앉아서 낮잠중.
이 녀석 역시 눈만 살짝 뜬 후에 다시 꿈나라로 직행이다.
그릇에는 고양이밥이 담겨 있었지만 이 녀석은 길고양이로, 중성화 후 방생된 녀석이다.
오른쪽 귀 끝이 삼각형으로 잘려있는 것이 중성화의 흔적.

이러한 길고양이 TNR (Trap-Neuter-Return) 정책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보다는 사람의 편의를 위한 이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미움받고 위협당하는 고양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필요악이라는 것은 대부분 동의한다.
본래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아무리 쫓아내거나 잡아들여도 빈 영역을 다른 고양이가 침범해 들어오기 때문에
이렇게 중성화한 고양이가 영역을 만들면, 죽기 전까지 번식하는 일 없이 그 영역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챙겨주면 고양이는 일부러 쓰레기봉투를 뜯거나 가축을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중성화한 고양이들에게는 적극적으로 먹이를 주고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장려하는 편이다.

자손 번식이라는 생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박탈당한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덕분에 얼마든지 사람에게 먹이 얻어먹고 쫓겨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미약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이 녀석은 나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다리를 건너 유후인 역 쪽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도중 훌륭한 모습의 웰시코기를 발견.
목걸이도 걸려 있고, 이런 귀하신 몸이 유기견일리는 없는데, 어디서도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나를 보려고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냄새 맡고 오줌 한방 싸고 다닌다.
유동인구가 꽤 많은 지역이라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인지, 완전 자기집 앞마당처럼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녀석.
일본을 1년동안 돌아다녔지만 목줄에 걸려있지 않은 개를 가장 많이 본 곳이 이곳 유후인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