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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九州'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3.22  후쿠오카 여행 - 프롤로그 19
  2. 2009.10.16  히로시마 여행기 16편 - 마지막 4
  3. 2009.10.14  히로시마 여행기 15편 - 평화공원, 호러영화 뺨치는 8
  4. 2009.10.12  히로시마 여행기 14편 - 원폭 돔, 우산 감사 6
  5. 2009.10.12  히로시마 여행기 13편 - 식사다운 식사, 마지막 밤 10
  6. 2009.10.09  히로시마 여행기 12편 - 미야지마, 굴은 돈주고 먹어라 10

부산에 가 본게 대체 몇년만인지 기억이 안 난다.
십여년 전 부모님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예전 신혼여행 코스를 돌아보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때 살짝 지나친 적은 있지만 차에서 내린 건 국밥 한그릇 먹을 때 뿐이었으니 그건 횟수에 넣기 힘들고.
기억에 남아있는 부산은 약 20여년 전 해운대와 그 앞의 붉은 색 호텔 뿐이다.

뭘 타고 갔는지도 기억에 없고, 단지 호텔에서 해운대로 걸어나가는 동안 노점상에서 사먹었던
밑에 구멍뚫린 다슬기같은 녀석이 그나마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번에 본 부산역의 전경은 나름 신선하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겉모습만큼이나 내부도 넓직한게 듬직한 느낌.
그런데 부산역을 나오자마자 왠 짝퉁 일본인처럼 생긴 녀석이 가이드북에 '도와주세요'라고 적힌 한국어를 가리키며 돈달라고 조른다.
그냥 경찰서에 갖다 쳐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행 전엔 마음을 평온하게 먹어야지.
일본어로 '돈은 없지만 열심해 해보쇼'라고 웃으며 한마디 던져줬다.


항구도시는 대체 활기차고 시원시원한 느낌과 더불어
신,구의 융합이 조화롭다기 보다는 조금 어지럽게 뒤섞인 혼란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개인적인 정의를 내리는데
부산의 경우엔 번쩍번쩍한 부산역과 산정상을 향해 돌진하는 듯한 마을, 적당히 예전 풍취를 느끼게 하는 재래시장 등에서
그런 정의에 부합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요즘들어 무섭게 발전중이라고 하니.

좀 덥긴 해도 이 정도 날씨만 유지해 주면 이번 여행은 참 행복할 것 같다.
숙박자 대부분이 일본사람이라는 토요코 인에 들어가 보니 정말 일본쪽과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구조다.
한국 대다수의 호텔, 모텔에 비해 턱없이 조그마한 객실이지만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나름 정겹다.

자전거 여행, 특히 대지진 당시 근 2주일 가까이 토요코인 야마구치점에 처박혀서 여행을 접을까 계속할까를 고민했던 추억이 있다.
그 외에도 야마구치점의 서비스 정신이 좋은건지, 원래 제공되는 조식외에 석식으로 무제한 카레가 제공되던 점도 틀어박힌 원인.

주 서식지인 서울과 대구에서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산자락 마을이 여기저기 보이는 모습이 인상깊다.
아마 피난시절에 생긴 달동네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이것도 부산의 지형적 특성인지 그런 곳이 참 많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나에게 있어서 부산이란 도시는 외국의 이름모를 도시와 다를바가 없는 듯.
KTX 타고 50분이면 가는 옆동네를 20년간 가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짧은 시간동안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다가 현 부산의 발전상을 느낄 수 있다는 센텀시티쪽을 선택했다.
성격대로라면 자갈치 시장같은 곳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20년간 미지의 영역이었던 부산의 최신 모습을 한번쯤 봐 두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그리고 센텀시티는 광안리와 가까우니 그 놀랍다는 야경도 구경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한 몫 했다.


머나먼 센텀시티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몸으로 느낀 부산의 모습은
도시의 캐치프라이즈 '다이내믹 부산'이 딱 어울리는 느낌이다. 한 번도 각 도시의 캐치프라이즈에 동의한 적이 없었는데.
아, 주 서식지인 '컬러풀 대구' 캐치프라이즈도 어떤 의미로서 참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다.
실컷 두드려 맞고 알록달록해진 괴팍한 노장 복서의 얼굴을 떠올렸으니까.

세계 최대의 백화점이라는 센텀시티 신세계 백화점은
뭔가 있어보이는 수식어와는 정 반대의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
그 크고 거대한 건물 안은, 다른 수많은 백화점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우동과 짜장면이나 파는 그저 그런 푸드코트 안에서도 앉을 자리가 없어 바둥대는 사람들로 꽉꽉 채워진 곳이었다.

세계 최대라고 해 봤자 결국 개미같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점령당해 버리는 놀이터.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사람들이 그 공간을 더 차지할 뿐. 다른 백화점들과 차별화 된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센텀 시티에서 더 볼만한 광경은
이런 초거대 백화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을 뚫으며 위엄을 과시하는 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었다.
이런 녀석들이 포진해 있으면, 센텀시티의 두 백화점은 단지 동네 슈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과연 이것이 현재진행형 부산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현재진행형 부산이란 녀석은
여기저기서 껍데기만 뒤집어 쓴 서울의 냄새가 흠씬 풍기는 어색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지금 삼성역이나 강남역 주변을 찍고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으니.
부산의 최고급 아파트들 소유주가 어디 사람들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고.

신호등에 멈춰 선 젊은 커플이 이 추운 바람 속에서 팔짱을 꽉 끼고 즐거운 잡담중이다.
재미있게도 여자 쪽이 '돈 X니 많이 벌어서 여~ 살게 해주께' 라고 구수한 사투리로 말하고 있다.
한국처럼 좁고 밀집된 곳에서 그나마 지역색이라는 걸 유지해 주는 것이 사투리인 듯.

센텀시티를 슬쩍 구경후 아무데나 들어가서 소고기 국밥 한그릇 먹고, 옆의 까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
바람이 너무 강하고 구름도 가득해서 광안리의 야경이 조금 걱정되긴 한다.
삼각대도 없고 노이즈도 형편없는 카메라를 쓰다 보니 멋들어지게 담는 건 애초에 포기하긴 했지만.
약간은 기대했었던 센텀 시티는 사실 부산의 모습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20여년간 외국이나 다름없었던 부산의 압축된 시간을 일거에 폭발시켜줄 임펙트를
광안리에서 기대하고 있다. 일단 한국 어느 지역에도 광안리같은 풍경은 없다고 하니까.


역에서 내렸을 때는 한적한 골목길이 이어졌지만
바다쪽으로 가면 갈수록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더니
이곳으로 나오자 일순 세상이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골목을 빠져나오자 그곳은 광안리였다'

끝없이 늘어선 건물들의 압도적인 광채에, 소문의 광안대교조차 초라하게 느껴진다.
마치 바다가 도시에 삼켜진 듯한 모양새에, 그 바다를 최후까지 가둬버리는 광안대교라는 창살까지.



광안대교보다 찬란한 거리의 불빛이 더욱 눈길을 끈다.
그 대단하다는 홍콩의 야경도 이런 느낌일까.
모래사장에 나와 걸었던 처음 40분간 바다보다 길거리쪽에 훨씬 더 시선을 많이 두게 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적인 절경이라 함에 부족함이 없다.

광안리는 파도마저 형형색색이구나.


한국에서 가장 긴 현수교인 광안대교.
부모님 말씀으로는, 20년 전의 광안리는 내가 자주 가던 포항의 조그마하고 한적한 해수욕장과 전혀 다를게 없는 곳이었단다.
광안대교와 함께 폭발적으로 상가와 주택가가 만들어져서 지금은 사람의 흔적이 자연의 흔적을 덮어버릴 정도의 별천지가 되었다.

분명 비수기일 지금도 사람들이 꽤나 붐빈다.
상가들은 밝기 경쟁이라도 하듯 화려한 불빛으로 시선을 빼앗는다.


인공물이라는 녀석은 조금만 선을 잘못 타면 흉물이 되어 버리곤 하는데
바다 위에 떡하니 서서 가끔 분수나 뿌려대는 저 녀석이 바로 그렇게 느껴진다.
빛의 향연으로 가득찬 이곳 광안리에서 저 이질적이고 초라한 녀석은 대체 뭔가.

이미 전통적인 유래나 역사가 담긴 무언가를 기대하기엔 너무 발전한 곳이라서
이 몽환적인 야경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텐데, 저 녀석만큼은 영 꼴불견이다.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들은 왠만한 서울 부촌보다 더 가격이 높다고 하더라.
특히 광안대교가 잘 보이는 아파트는 다른 것보다 몇억원씩 더 비싸다고.
저기 살며 365일 끊이지 않는 인공 조명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는 것이 수억원의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

부산의 힘이랄까.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할 의지가 느껴지는 광안리는
여지껏 한국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처음엔 가슴이 쿵 하더군.
두 시간 반동안 거닐며 바다와 네온 불빛을 번갈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딱 하나 마음에 남는 것이라면
이곳은 마틴과 루디가 보고 싶었던 바다는 아닐 것이라는 점.



평화 기념관을 둘러보고 다시 히로시마역으로 돌아왔다.
간간히 내리던 비는 후련하게 그쳤는데, 이제 돌아보기로 계획했던 곳은 다 돌아봤다.
시간은 2시 반. 이제 여기저기 어슬렁 거리다가 5시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면 된다.
원래대로라면 히로시마 공항까지 50분 정도 걸리는데
요즘 골든위크라 도로가 막힐 가능성이 있어서 조금 느긋하게 가기로 생각중.

아침 10시 30분쯤 티켓 미리 끊어놓으려고 왔을 때 안내원이
'현재 공항까지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 이라고, 가려는 분들은 일찍 출발하는게 좋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히로덴을 타기도 귀찮아서 (수중에 남은 돈은 2700엔. 이걸로는 윈도우 쇼핑도 서글프다) 그냥 역 주변을 슬쩍 둘러봤다.

원래 시간때우기 좋은 곳은 수만 권의 만화와 인터넷, 무제한의 팝콘과 음료수가 제공되는 인터넷 까페인데
거기 들어갔다간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를 팝콘과 음료수로 때워야 되는 사태에 직면하기 때문에
히로시마역에서 바로 이어진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역시 백화점이란 곳은 나하고 별로 맞지 않는 곳이다.
일본에서 내가 백화점을 들어가는 이유는 간단한 식사 때우기나, 서점, 애완동물 용품점에 들어가기 위해.
옷이나 기타 상품들은 애초에 한국에서도 관심이 없었으니.

불행히도 히로시마역과 이어진 백화점에는 애완동물 용품점에 애완동물이 거의 없었다. ㅡㅡ;
도쿄 오다이바(お台場)의 유명한 상점가인 비너스포트에는 눈을 정화시키는 귀여운 동물들을 잔뜩 구경할 수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 좋은데, 이곳엔 그냥 관련용품밖에 없더라.

그래서 결국 서점에서 2시간 가까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다행히 이곳 서점은 일본 최대의 서점 체인인 쥰쿠도(ジュンク堂)라서 백화점내 서점 치고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2시간 보내는 건 식은 죽먹기.

2700엔중 2000엔은 책 사려고 남겨둔 돈이기 때문에 신중히 고르고 고르다가 아즈망가대왕 신장판을 골랐다.
일본 4컷만화의 전설이자, 19금 성인만화작가였던 아즈마 키요히코씨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명작중의 명작.
처음 연재시엔 할당 페이지도 제대로 받지 못한 땜빵용 4컷 만화였는데, 놀라운 호평속에 당시 최고의 인기작으로 급부상.
현재 일본 만화계의 수많은 4컷만화 전문 잡지들은 이 작품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 것.

원래 4권이었던 작품을 학년별로 3권씩 묶었고, 각종 새로운 일러스트, 새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한 푸짐한 구성이다.
특히 현재 키요히코씨의 그림체와 많은 이질감을 보이는 1학년 초반 에피소드를 상당부분 새로 그린 탓에
같은 내용이라도 신선한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돋보이는 신장판.

가끔 '전부 새로 그려줬으면 좋았을걸' 하는 독자도 있지만
'요츠바랑!'을 연재중인 작가가 틈틈이 이만큼이라도 새로 그려줬다는 건 감지덕지할 일이다.
원래 대부분의 신장판 도서가 표지 일러스트 한두 장 새로 그리는걸로 때우는 데 비하면 굉장한 정성이 들어간 것.
'요츠바랑!'에서 확연히 들어나는 점인데, 키요히코씨는 단행본 작업시 배경 디테일 등을 거의 뜯어고칠 정도로 신경쓰는 사람이라
이런 멋진 신장판이 나올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게임한다고 발로 연재하는 토가시같은 작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이건 히로시마 여행 첫 날 구매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대학교때 읽던 책을 잃어버려서 생각난 김에 다시 구입했다. 그러고보니 번역본도 없는데 또 사야하나... ㅡㅡ;

쇼핑을 마치고 푸드코트에서 라멘+교자만두 세트를 670엔에 사먹으니 이제 손안에 든건 30엔 남짓.
확실히 히로시마는 오코노미야키가 주력인지 라멘이 별로 맛이 없었다.
도쿄 위쪽부터 홋카이도 끝까지 모든 지방의 라면은 다 먹어본 터라 입맛이 까다로워졌나?
암튼 인스턴트 라멘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 그냥 배만 채웠다.
교자만두는 금방 튀긴 만두를 접시에 담고 옅게 희석한 간장을 밑에 살짝 깔아서 주는데 이건 라멘보단 괜찮았다.

5시에 리무진 버스를 타니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45분만에 도착해 버렸다.
2시간을 공항에서 버텨야 하는데 히로시마공항은 작디 작은 시골공항같은 느낌이라 별로 볼거리는 없다.
애초에 인천공항같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공항은 세계에 몇 없으니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만.

그놈의 오코노미야키 한번 못 먹어본게 한이 되어서 공항 라운지의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명색이 국제선까지 있는 공항 음식점에 신용카드를 안받는단다. T_T
아무리 카드사용률이 높지 않다고 해도 그 정도 편의는 봐주면 안되겠니?
환전소도 오후 3시까지밖에 하지 않는터라 그야말로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떠는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양 꼴이 되어버렸다.

인천공항의 24시간 환전소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한게 잘못이었나벼.

의자에 앉아서 E-Book 이라도 볼까 싶어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낮선 여성분이 말을 건다.
여행 첫날 공항에서 결행된 버스 사건 때, 나한테 도움을 받은 분이라고 하신다.
난 전혀 얼굴 기억을 못하는데 (시선기피증이 있어서 원래 거의 눈을 안마주치기도 하지만) 어떻게 단번에 기억을 하셨냐고 물어보니

'너무 인상이 강한 분이라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울고싶다. T_T

고등학교때도 튀지 않으려고 정말 얌전히 생활했는데, 막상 그때 친구들 만나보면 반에서 제일 기억하기 쉬운 애였다고 하니
세상만사 모두 의도대로 돌아가진 않는가 보다.

그분과 여행 후기를 주절주절하며 후다닥 시간을 보내버리고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
공항 리무진을 타고 서울 시내로 가는 순간은 항상 아쉬움과 그리움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보통은 여행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는건지 모르겠다.

난 돌아오는 순간 그저 다시 떠나고 싶은 생각뿐인데.

여행 도중에 생기는 아쉬움이 아닌, 여행 끝나는 순간 생기는 아쉬움 때문에
나는 또 어디론가 떠나려고 애태우는 중이다.

피곤하고 뻐근하고 배고파도
모든 인간의 부정적 감정이 용서되는
인간이 가장 선해질 수 있는 순간이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가 그치니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던 관광객들이 스물스물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원폭 돔은 두 바퀴나 돌아가며 잘 감상했으니 이젠 바로 옆의 평화공원으로 직행.
그 전에 휴게소에서 좀 쉬면서 사진 정리했다.

PEACE 단어가 유난히 많이 들어간 관련 상품을 팔고 있더라. 티셔츠 같은 것. 별로 보고싶지 않은 광경이다.
내 지론상 자본주의와 PEACE만큼 안어울리는 단어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폭 돔과 평화공원, 평화 기념 자료관 등등
히로시마의 정신적 상징인 원폭 관련 볼거리는 전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하기 편하다.
히로시마성 같은 그닥 가치없는 성도 원폭 돔에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 히로시마는 짧고 굵게 구경하지 참 좋은 곳.

가보고 싶었던 히로시마 미술관은 입장료가 내 하루치 식비인 1,000엔이나 하는 터라 (지금 수중엔 700엔 정도 T_T) 눈물을 머금고 포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참배중인 이 곳은 '원폭 어린이 상'
저 어린이는 2살때 피폭 후 12세가 되던 해 백혈병에 걸린 사다코라는 아이로
여러가지 염원을 담아 병상에서 1천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려 했으나 도중에 사망해 버렸다.

그 일이 알려지고 나서 각지에서 수십만 마리의 종이학이 쇄도했고, 사람들의 기금으로 평화공원내 어린이 상이 건축되었다.


가까이 다다가서 사진을 찍기엔 참배객들에게나 사다코씨에게나 폐를 끼치는 마음이라 멀리서 찍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웃으면서 '쟤가 종이학 접다 죽은 사다코래~' 하면서 여친과 함께 웃으며 커플사진찍는 사람들이 있다.

부디 나중에 백혈병 걸려서 죽을때도 당신들 옆에서 즐겁게 사진찍으며 노는 사람들이 있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ㅡㅡ;


이 원폭 어린이 상과 평화의 불꽃, 희생자 위령비, 그리고 맨 뒤에 보이는 평화 기념 자료관은 거의 일직선상에 세워져 있다.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가 이 라인이 아닌,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다는게 한국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못마땅한가 보더라.



평화의 불꽃.

앞서 미야지마의 미센 정상에 있다고 설명한 '꺼지지 않는 불'에서 가져온 불씨다. 목적은 당연히 세계 평화와 핵무기 금지 기타등등.
피폭 희생자들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은 여느 일본인 못지 않지만, 솔직히 계속 평화 평화 하니 좀 짜증나는것도 사실.

평화는 이런 상징물에 서식하는 이끼같은게 아니거든.


희생자 위령비.
이곳 앞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편히 잠드소서.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이 문구가 참으로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논란이 되어 왔는데
잘못을 한 주체가 적혀있지 않고
잘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

한창 여러 해석이 갈리고 갈리던 끝에 지금은 '전쟁이라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전 세계인의 공통된 발언'으로 일단락 되었다.

여기서 이런 문구를 보고 화를 낼건지 공감을 할건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결정.

내 입장은
'그냥 지구상에서 인간이 싹 사라져 버리면 정말좋겠네~' 정도?


비가 온 터라 벤치에서 쉬기도 어렵고, 이제 남은 건 저 앞의 평화 기념 자료관이다.
세계 각지에서 성금도 많이 보내오고 히로시마 시의 지원도 상당한 편이라 꽤나 유지비가 들 듯한 이곳은 입장료 50엔 밖에 받지 않는다.

300엔을 내면 라디오로 다국어 안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난 4년간 수백만원 들여가며 일본어 공부한 끝에 300엔의 이익을 얻었다!


자료관 안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여지껏 히로시마에서 둘러본 관광지 중 서양인 관광객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10명중 1명은 서양인일 정도.
웅성웅성거리긴 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대다수의 관광객이 목소리를 죽이고, 인상을 죽이고 숙연한 자세로 자료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따라가면 전쟁 전후의 히로시마 사정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생활상의 변화 등을 세밀하게 설명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히로시마의 일반 시민들과 군부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구별하려고 노력한 듯 했다.
전쟁에 휘말린 시민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과 함께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자조적인 글도 조금조금씩 눈에 보인다.

다행이랄까, 한국에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의 애환과 상처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쓰여 있긴 헀다.

그리고 이 기념관에서 가장 유명한 손목시계.

원폭 투하시간인 8시 15분이라는 과거의 공간에 영원히 갖혀버린 비극의 상징이다.
아무리 영상과 사진과 자료를 접해도 결코 실감하기 어려운 원폭이라는 무기의 무서움을
이 멈춰버린 시계 하나가 그 어떤 것 보다 잔인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원폭 투하 후의 히로시마시.
당시 군수공장이 밀집해 있었던 인구 35만의 거대 도시는 14만명의 사망자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원폭이 투하되기 전의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의 히로시마.

원폭 돔에서부터 걸어왔던 현재의 발걸음이 과거와 겹쳐지는 느낌에 소름이 끼친다.
이곳엔 그 외에도 피폭 어린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과, 피폭자들의 상태를 찍은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지만
상당히 잔혹한 장면들이 많아서 일부러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어리숙한 사진 실력으로 구경거리를 만들기엔 이 자료들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 무겁기 때문에.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원폭 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18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사진.
당시 저 솟아오른 버섯 구름의 위용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신의 진노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부식되어버린 어린이용 자전거.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어린이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고열로 변형되어버린 유리병.
이곳에 전시된 자료들은 모두 인간에게 무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지만
저 기묘한 붉은색 반점을 보고 있으면 섬뜩해 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도 고온으로 녹아버렸다.
이 자료 근처에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재가 늘어붙어있는 벽면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사진으로 담아내기에는 그 감정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라 생각해서 촬영하지 않았다.


원폭 투하 후 히로시마 전역에 내린 '검은 비'
방사능 낙진과 섞여서 쏟아내리던 검은 비를 바라보던 당시 히로시마의 생존자들의 마음은 과연 어디까지 처참했을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아무리 이렇게 평화 평화 외쳐도 실제로 그게 오지 않을거라는 건 너무나 뻔한 사실.

그래도 불가능한 일 역시 끊임없이 바라고 또 바라는게 인간이 가진 사고의 장점 아니겠나.
자료관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는 이 종이학들을 보고 조금이라도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종이학처럼 몇 그램밖에 안되는 하찮은 무게만큼이라도 세상은 '평화스러워'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니 내릴듯 말듯 흩뿌리는 빗방울이 걱정된다.
오늘 호텔은 뷔페가 아니긴 하지만 무려 조식까지 포함되어있어 느긋하게 즐기다 나갈 예정.

오늘은 짐을 로비에 맡겨두고 오후까지 열심히 돌아다닌 후 5시쯤에 히로시마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면 종료.
히로시마 시내엔 원폭 관련 자료 말고는 그닥 볼게 없는 터라 사실 시간은 많이 남을 것 같다.

물론 지갑이 두둑하다면 쇼핑을 해도 되고 오코노미거리에 가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도 되고 하는데, 난 거지다. ㅡㅡ;


프리패스를 이용해 히로덴을 타고 원폭 돔 앞(原爆ドム前)역에서 내리는데
아뿔싸,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비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 것.

카메라가 없다면야 비 쫄딱 맞고 돌아다니는건 아무렇지도 않은데...
일단 원폭 돔 옆의 화장실 처마에 들어가서 비가 약해지길 기다린다. 오전 11시가 되기 전이고, 평일이라 사람은 별로 없다.

비는 30분이 넘게 쏟아부었다. 남아도는게 시간이라 별로 초조해 하진 않았다.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없거든. ㅡㅡ;
남자화장실과 여자화장실 사이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에는 청소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주머니라기 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운 나이의 두 분은 특이하게도 한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한 사람이 관서사투리로 대답하고 있다?
것도 대화가 전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본어 전공한 나를 훨씬 뛰어넘는 실시간 번역채팅인가.
빗소리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자식 이야기라던가 일 이야기라던가 소소한 잡담같은 내용이 얼핏얼핏 귀에 들어왔다.
나도 경상도 사투리로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소심덩어리라서 먼저 말을 걸진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듣고만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던 경비원 아저씨가 몇 번인가 내 모습을 보더니 어디론가 가서 낡은 비닐우산 하나를 건네준다.
오랫동안 화장실에 갖혀있는 모습이 안스러웠나 보다. 고맙다고 말한 후 다 쓰고 어디 가져다 주면 되겠냐고 하니 그냥 가지라고 하신다.
확실히 60m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거 우산업계 용어다. 모르는 분은 패스) 크기에 부분부분 녹이 슨 것이 어디 처박혀 있는거 가져다 주신거겠지만
그래도 여행중에 이런 호의는 정말 고맙기 그지없다. 여러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드디어 화장실을 벗어났다.

기념사진도 찍고, 원폭 돔 관리사무소에 그 사진과 감사의 인사를 담은 편지라도 보냈을걸 하는 생각이 비 그치고 나니까 들더라. ㅡㅡ;
감사의 인사 역시 기회를 놓치면 마음을 표현하기 힘들다. 감사할 수 있을 때 많이많이 감사하자.

비가 쏟아져서 사진 찍는데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원폭 돔이란 곳은 확실히 우중충한 날씨가 어울린다.
위령비 앞에서는 경건한 얼굴로 참배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간단히 목례만 하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한국이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을 겪고 있듯이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 여행 후 울 엄니께서는 '히로시마에 이제 사람은 살고 있나?' 라고 물어보셨으니... (그럼 자식이 도대체 어디 갔다온걸로 생각하신걸까)
세계 최초로 원폭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히로시마의 트라우마가 사라지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걸릴 것.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이름은 '리틀 보이'
이 녀석은 사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의 절반밖에 안되는 위력이었지만, 사망자는 히로시마쪽이 2배 가까이 많았다.
리틀 보이는 정확히 히로시마 시내 중심을 직격했고, 팻 맨은 산 쪽으로 비켜가는 바람에 후폭풍의 영향을 덜 받은 탓.


세계 최초의 원폭은 히로시마시 인구 35만명중 14만명을 수십 초만에 태워버리고 20만명을 죽음의 질병에 노출시켰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피폭 당시 건물인 이 원폭 돔은
폭심지에서 아주 가까운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196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에도 여러가지 논란에 휩싸인 이곳은
일본 내부에서도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보존하는데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을 뿐더러
투하 당사자인 미국에서도 원폭 돔의 세게문화유산 등재를 극렬 반대해 왔었다.

하지만 과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고... 블라블라 해서 어쨌든 보존으로 가닥이 잡혔는데
미국의 고집스러운 반대로 결국 '세게 최초로' 라는 단어는 세계문화유산 기록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이거 해체해 버렸으면 어쩔 뻔 했나... 히로시마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엄청난 재원으로 맹활약중인데.
원폭 돔은 펜스가 꽤나 넓게 둘러져 있고 곳곳에 '담을 넘어가면 경보가 울린다'고 엄중히 주의를 주고 있다.
(그래도 히로시마 홍보 행사엔 연예인들이 그 담을 넘어서 잘만 찍더만)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한 곳인데,
상큼발랄한 일본의 젊은 관광객 커플들은 입가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원폭 돔을 배경으로 서로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나이 지긋하게 든 일본인 할아버지가 잔뜩 침울한 얼굴로 그들의 즐거운 한때를 바라보고 있는 걸 제 3자인 내가 보니 뭐라 할 말이 없더군.
마치 서해교전 참전용사 위령비 앞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기념사진 찍어대는 사람을 봤을 때의 기분이랄까.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반대쪽과 통해 있는 곳.
글로 표현하기 힘든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이 교차하는 기분이다.


젓가락처럼 휘어버린 철골과


고열에 유리처럼 결정화 되어버린 콘크리트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게 해 준다.


원형 구조물의 창틀을 잘 보면 새가 한 마리 앉아있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지나간 곳이라, 저런 녀석이 앉아있는 모습만 봐도 감상에 젖는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디자인을 맡은 유명 건축가의 위령비.
일본인들이 여기서 추모하는 모습이나
미국인들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모하는 모습이나

나에겐 동정심과 뻔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심경.


그렇게도 비가 쏟아지더니 금새 멎었다. 그래도 우산에 대한 감사함은 그대로.
하지만 비행기안에 가지고 돌아가려니 왠지 아까워서 호텔 로비에 맡겨두고 필요한 사람 쓰라고 건네주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그치고 적당한 시간이 되니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거의 혼자서 비를 맞으며 원폭 돔을 둘러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느낌.
이곳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혼자 저 앞에 서서 본인이 느끼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현실 객체보다
그 객체가 간직한 관념적 가치가
보는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의미를 가진 건축물'이라고 생각.

이제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고, 오늘 하루종일 먹은건 단풍잎 만쥬 3개 뿐.
정말로 배를 한 번 채워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모테산도 거리를 돌아본다.
걸어다니다보니 안내소의 열린 창문에서 풍기는 A4 용지의 향긋한 내음을 참지 못한 사슴들이 머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나라의 사슴과 비교하면 참 얌전한 것이, 관리인이 용지에 손을 대고 있는것만으로 절대 억지로 뜯어먹으려 하지 않네.
그냥 애처로운 눈빛으로 코만 가져다 댈 뿐이다. 하지만 이미 세상의 풍파를 겪은 관리인께서 그들의 애교작전에 넘어갈 리가 없음.


무정하게 닫혀버린 창문을 보는 사슴의 눈망울에
내공이 약한 나는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지고 싶었다.

역시 사슴은 강하구나. 예쁜 것보다 귀여운게 더 강하다는 모 만능소녀의 명언이 떠오른다.


오전에 오면서 봤던 곳은 이렇게 황량한 벌판이 되어버렸다. 이래서 여기저기 출구를 만들어 놓은거구나.
누군진 몰라도 이런 갯벌에 신사를 지어놓을 생각을 하다니 좋은 아이디어다. 관광지가 될거라고는 예상 못했을지 몰라도.


사슴들이 너무 진하게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길래 찍은 사진.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사진찍는데 방해될까봐 (아님 그냥 무서워서일지도) 슬금 뒤로 물러났는데
내가 카메라에서 눈을 떼자 다시 애정행각중인 사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오모테산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가격대 성능비가 괜찮은 굴요리를 찾아다닌 결과
요 굴덮밥이 내 지갑사정에 제일 적당한 녀석으로 판명되었다.

음식점은 2층에 있었는데, 1층에 전시된 음식 모형들을 지그시 감상하고 있으니
갑자기 '어서오십시오~'라고 녹음된 목소리가 전시판 위에서 튀어나와 깜딱 놀랐다. 나중에 정신 차려보니 다들 한번씩 놀라고 가더라. ㅡㅡ;
그거 없으면 좀 더 손님을 많이 끌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800엔이나 하는 굴덮밥(かい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목도 말랐고 몸은 피곤에 찌들었던 터라 제대로 된 음식을 보니 얼굴에 환희의 빛이 감도는 듯 했다.
보통 저렴한 체인점인 요시노야(吉野家)나 마츠야(松屋)의 규동(牛丼)이 450엔 언저리쯤 되는것에 비해 비싸긴 하지만
풀어놓은 계란이나, 쌀밥의 탄력이나, 튼실해서 터질것 같은 굴의 위용을 생각하면 + 관광지라는걸 생각하면 감내할만한 가격이다.

굴은 한국서 그리 비싼 음식이 아니지만, 이곳 미야지마는 굴요리가 일본 전체에서도 유명한 곳이라 가격이 세다.
물론 가격대비 만족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먹은 굴 중에선 크기나 싱싱함이나 최상급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먹다보니 배가 많이 아쉽다.
아침 댓바람부터 돌아다니다가 먹는 첫 식사라 이대로 넘어가기는 아쉬웠던걸까.
돈 계산을 좀 해보고 주인아저씨에게 물어본다. '혹시 여기 카드 받나요?'
다행히도 '받습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제 이번 식사는 다음달에 한국에서 값으면 되니 열심히 먹어보자.

그래서 굴 크림 고로케 추가로 시켰다. 갓 만든 타코야키의 속만큼이나 뜨거운 녀석을 조금씩 이빨로 잘라 먹는 느낌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 속에 살짝 짭쪼름한 굴의 조합은 뭐라 말하기 힘든 즐거움을 준다.
캐첩에 찍어 먹어도 별미. 2개 400엔이라 먹으면서 손이 떨렸지만 이럴 때 먹지 않으면 언제 먹으리오.

그런데 신나게 먹고 계산하려니 '카드는 2000엔 이상부터 가능합니다' 라고 미안하다며 말하는 것. ㅡㅡ;
아니 이 사람들이... 그럼 현금 없었으면 경찰에 신고했을려나?
좀 황당하긴 했지만 여기서 깽판 부리고 히로시마 여행 날짜를 하루 줄이긴 싫어서 피같은 현금 털어 지불했다.
이제 현금은 코딱지만큼 남아있지만 사실 내일은 돈 들어갈 일이 아예 없는거나 마찬가지라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이 정도 금액은 현금지불도 가능했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해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조금 남겨두고 싶었던 것.


꽤나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이곳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있다.
이츠쿠시마 신사의 야간 풍경은 꽤나 멋지다는 소문. 하지만 그것까지 다 보고 돌아가기는 힘들다.
JR 페리는 11시까지 운행하지만 내가 프리패스를 이용할 수 있는 마츠마에 기선은 8시까지밖에 운행하지 않기 때문.

밥을 먹으니 포만감과 함께 은근히 쌓여있던 피로도 함께 몰려오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나른함이 기분 좋은 것 역시 여행의 장점.


순식간에 섬을 나와서 막 출발하려는 히로덴 하나를 그냥 보냈다.
사람이 꽉 차있어서 앉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

이곳에서 목적지인 히로시마 역앞은 종점에서 종점이기 때문에 일단 여기서 앉으면 끝까지 앉아갈 수 있다.
지친 대퇴부를 이끌고 1시간 가까이 서 있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일부러 다음 히로덴을 기다린다.

이 시간에 이런 관광지에서 전차를 타는 사람은 다들 나만큼이나 지쳐있기 때문에 빈 자리에 눈을 번뜩인다.
염치불구하고 줄 잘서 있다가 문 열리자마자 뛰어들어가서 한 자리 맡을 수 밖에.

다행히도 15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무난히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영광을 만끽할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항상 여행의 마지막 밤은 감회가 남다른 법. 히로시마 역안의 맥도날드에서 달맞이버거(月見バーガー) 세트를 사들고 호텔로 들어간다.
어제 그 편의점 앞에는 여전히 고양이들이 배회하고 있었는데, 어제 보지 못했던 이 녀석은 삶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이다.

한쪽 눈은 보이지 않는 듯 하고, 오른쪽 앞다리가 반쯤 잘려나가서 세 다리로만 걷고 있었다. 다른 녀석과는 달리 일부러 내 쪽으로 다가오려 하지도 않는다.
먹을걸 주고싶었지만 이 녀석은 그냥 무심한 듯 시크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슬쩍 자리를 피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내가 주려던 음식은 앵앵거리며 달려드는 새끼들에게로 넘어갔다.
내가 이 녀석들과 놀고 있으니 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와서 주절주절거리신다.
이 녀석들 오래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새끼 낳아가며 살고 있다거나,
나처럼 길가던 사람들이 적당적당히 잘 도와주고 있다거나,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거 아닌가, 사람한테 너무 길들여지면 곤란할텐데 라는 둥의.

확실히 내가 이곳에서 본 10여마리의 고양이들은 전부 중성화수술이 되어 있지 않은 도둑고양이다.
중성화 후 방사된 고양이는 귀 끝이 삼각형으로 잘려 있기 때문에 금새 구분이 가고, 그런 고양이들에게는 먹이를 주도록 장려하고 있다.

도쿄에서는 꽤나 활발히 이루어지는 작업인데, 이곳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나 보다.


숙소에 돌아와서 달맞이버거를 놓고 한 장.
배가 든든한 상태였는데도 이녀석을 가져 온 건, 작년 2달간의 자전거 여행때 이녀석과 얽힌 사연이 많기 때문.

제대로 휴식할 곳도 없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맥도날드라는 자유스러운 휴식공간과, 고칼로리 햄버거는 신의 선물이나 마찬가지.
오래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든든한 화장실과 세면대, 빵빵한 에어콘까지 완비한 그곳은 헝그리 여행자의 간이 호텔.

자전거 여행을 위해 일본에 도착했던 첫날 밤. 불안에 가득 찬 채로 터벅터벅 걷다가 들어간 맥도날드에서
한국에 없는 메뉴를 보고 그 재미있는 작명 센스에 기분이 좀 풀려서 먹어봤던 달맞이 버거 세트는
여기저기서 내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래서 일본에 올 때면 꼭 이녀석을 챙겨 먹는다. 예전만큼 맛있어서 눈이 돌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짧은 여행이라 마지막 밤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어느 여행이나 마찬가지. 2달짜리 여행이든 3년짜리 여행이든 여행의 마지막 밤은 항상 아련하다.

오늘따라 TV 프로그램도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서 새벽까지 징하게 기다려서 심야 애니메이션이나 한 편 보고 잤다.


2시간이나 기다려서 간신히 올라왔던 때와 달리 일단 여기서 30분 기다리고 나면 그 다음은 기다릴것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미센으로 올라가는 로프웨이중 밀리는 곳은 여기라서.
다른 한개는 6인승 케이블카가 수시로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아무리봐도 4인승이 적당할 것 같은 미니 케이블카. 나처럼 면적넓은 사람은 이거 타면 옆사람에게 좀 미안하다.
내 옆에 한 명만 앉았는데 직원이 '한 줄에 3명씩 앉아주세요'라며 한 명을 더 밀어넣는 바람에 더더욱. T_T
내려오는 10분동안 숨도 안쉬고 고목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몸 큰게 죄는 아닌데 으흐흑...


미야지마에서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 신사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버리기 때문에, 이걸 놓치고 가면 미야지마의 반밖에 보지 못한 것.

미센을 올라가지 전에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보면 금새 차이를 알 수 있을 듯.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했던 이츠쿠시마 신사가 땅위에 서 있다.


낮엔 배로밖에 가지 못했던 오오토리이가 드디어 관광객을 맨발로 맞아들이기 시작했다.
썰물때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이곳을 보러 오기 때문에 상당한 인파가 몰린다.


낮과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차 있던 물과 쓰레기 패트병 하나는 어디가고 처자 한 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혹시 음료수캔이 사람으로 변한다는 모 애니메이션이 현실에 재림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관련 발언을 은근슬쩍 흘리면 오타쿠라고 오해받는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
대부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번 여행기 중에 애니메이션 관련 발언이 속속 숨어있다.


가까이 다다가니 과연 명불허전이라, 내가 일본에서 본 토리이중에서도 손가락에 들 정도로 거대한 녀석이 대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도쿄의 메이지신궁 토리이, 쿄토의 헤이안신궁 토리이와 비슷한 급이 아닐까 싶다. 실제 크기는 앞의 두녀석이 더 크지만.
밀물 때는 바다 위에 떠 있어서 접근을 할 수 없었는지라 얼마나 큰지 현실적으로 감이 오지 않았지만 직접 다가가 보니 그 박력이 장난 아니다.


저 위에 동전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지나보다. 외국인들까지 동전 던지기에 여념이 없다.
낮에 배타고 토리이 앞에서 뭔가 작업하던 인부들, 혹시 이 동전을 쓸어담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던질 동전이 있으면 불쌍한 여행자한테 밥 한끼라도 사주...


빌어서 이루고 싶은 소원이 그렇게 많은지 토리이 기둥에 틈만 있으면 거기다 동전을 구겨넣는다.
그래도 현실감각은 있는지 대부분 1엔이나 5엔짜리다. ㅡㅡ;


이런거 계속 끼워넣다간 기둥이 상하지 않나 싶었지만
바다위에 세워진 토리이니까 그 정도의 관리는 하고 있겠지.


정말로 손이 가게 만들뻔한 동전뭉치...
저거 다 긁어모으면 식사 한끼는 거든할것 같은데.
보는 눈이 많아서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바닷속에 잠겨 있던 기둥부분이 드러났다. 조금 혐오사진일 수도 있을 듯.
갯벌이 다 그렇듯 썰물 때의 이츠쿠시마 신사 앞바다는 온갖 동식물의 보고다.
처음에 토리이의 위용에 이끌려 온 사람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갯벌에 앉아서 조그만 녀석들 구경하는데 정신을 뺏긴다.


이런 녀석이나


이런 녀석들.
그런데 주변 여기저기에 '굴'만은 잡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표지가 많이 서 있다.
굳이 그런 글을 쓸 만큼 굴이 널려있진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자기네들이 캐서 먹고 살아야 하나보다.


바다위에 떠 있는 거대한 토리이를 보고 옛 일본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고취되었을지 상상이 간다.
근대화가 빨리 이루어진 일본이지만, 태평양전쟁 당시에도 온갖 미신이란 미신은 다 믿을 정도로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혼재된 사회였으니.


기둥이나 표지판에 붙어있는 것들 중엔 거의 화석화되어버린 녀석도 있었다.
살아있는건가 싶어서 건드려봤지만 돌덩이였다.


썰물때의 또 한가지 재미.
센스있게도 밀물때는 잠겨 보이지 않는곳에 돌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썰물이라도 이츠쿠시마 신사로부터 바다까지 조그만 개천 비슷한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만들어 놓은 애교있는 돌다리.
사실은 없어도 얼마든지 넘어다닐 수 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표지판에도 적당히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 녀석들.
음식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
계단 여기저기에 굴이 붙어있던 흔적도 있지만 알맹이는 흔적도 없다.


신나게 찍고 갯벌 사이사이에 돌아다니는 애들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점점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몸이 상당히 피곤하지만 그래도 미야지마는 충분히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서 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자국 여행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버가 심한 일본이긴 한데, 일본 3대 절경이라는 곳은 가도 후회없는 곳임에 틀림없다.
(유럽 등의 정말 볼거리 가득한 곳에 비하면 일본 여행지들의 광고는 좀 과장이 심하다, 그렇게 있는 척 해서 관광객 끌어들이는 기술은 감탄할만 하고, 결코 나쁜 일도 아니지만)

실물을 직접 보지 않으면 감이 쉽게 안오지만, 붉은 주황색으로 치장한 거대한 오오토리이는 꽤나 멋지다.


지는 해를 뒤로하고 짧았던 미야지마를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썰물때만 나타나는 표지판에는 '오오토리이 안쪽으로는는 경내지역이니 조개캐기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오역 수정 -> 나 그냥 나가죽어야 할듯. T_T)
날씨 탓에 이츠쿠시마 신사의 밀물 썰물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관광객도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어지간히 볼 만한 건 다 즐기고 돌아올 수 있어서 뿌듯했다. 카메라를 맨 어깨는 뻐근했지만.

이제 여기까지 온 기념으로 아껴두었던 여비를 투자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야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