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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자/近畿'에 해당하는 글들

  1. 2012.05.23  킨키 방황 - 류큐왕국의 눈물 18
  2. 2012.05.22  킨키 방황 - 오사카 길거리 농구 22
  3. 2012.05.21  킨키 방황 - 오사카 미도스지 페스타 18
  4. 2012.05.20  킨키 방황 - 예상못한 축제 16
  5. 2012.05.19  킨키 방황 - 오사카 난바 16

 

 

 

길거리 농구 감상을 마치고 다시 난바역쪽으로 걸어간다.

미도스지 거리는 넓은 도로지만 양쪽에 나 있는 거리는 옛 정취가 남아있는 조금은 난잡한 골목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이미지엔 화려하고 정돈된 거리보다 이런 느낌이 어울리긴 한다.

일요일인 탓도 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 덕분에 오사카의 유동인구는 전부 이쪽으로 몰려드는 듯 하다.

 

 

중간에 간식거리를 파는 코너가 있었지만 줄을 길게 늘어선 행렬 탓에 먹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피곤해서 그런지 입맛도 별로 없고, 더워서 물 생각은 났지만 음식 생각은 그다지.

한국 음식점도 있었는데, 오사카까지 여행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으니까 패스.

음식 코너 앞에는 자연스럽게 어디든 걸터앉아서 음식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분위기가 조성중이다.

귀여운 강아지들이 많아서 허락을 받아서 한번 담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몸이 많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다.

 

다음으로 눈길이 간 곳은 통일된 티셔츠가 인상적인 트래드재즈 공연이었다.

이곳 역시 인파로 사진 찍기가 쉽진 않았지만 슬쩍 구경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 뒤에서 기회를 잡으니 대강 건질만한 거리는 된다.

미도스지 페스타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국구급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을 초정하는게 아닌

아마추어들의 다양한 공연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마음 편하게 축제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큰 돈 들여 연예인 초청하는 축제는, 그냥 먼 발치에서 굵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구경하는 동물원과 같은 느낌.

보행자 천국이라는 취지에는 역시 이렇게 친숙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숨겨진 솜씨에 감탄하는 것이 어울린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분들의 가벼운 스윙을 듣고 있으면, 뷰파인더를 보고 있더라도 가끔 몸이 들썩거려서 셔터찬스를 놓치곤 한다.

물론 이럴 때는 사진따윈 망쳐도 관계없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증거품일 뿐, 이 사람들의 공연은 귀로 즐기는 것이니까.

아마추어라고는 하지만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볼 수 없고, 국내 왠만한 프로밴드와 거의 동일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똥배와 가죽모자가 묘하게 어울리는 플라리넷 연주 할아버지는 중년의 미학을 여지없이 피로해주는듯 하다.

좀 전의 길거리 농구에 비해 조용한 편이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느긋하게 감상하는 모습은, 이 축제가 내부적으로 튼실한 녀석이라는 반증이겠지.

 

 

 

이제 저 너머에 슬슬 난바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사이바시(心斎橋)에서 난바역까지 이어지는 미도스지 거리는 그렇게 길진 않지만

자동차에서 해방된 시민들의 모습엔 평소보다 활기가 넘치는 듯 하다.

 

 

 

지체 부자유자들도 단체로 관광 나왔었는데, 도우미들의 힘을 빌어 관람에 무리가 없에 공간도 잘 만들어 주더군.

눈높이가 거의 같아서 사진이 잘 안나오길래 카메라를 최대한 치켜들고 촛점을 무한대에 맞추서 한장 찍어 봤다.

오른쪽에 보이는 핑크색 부스는 미용 연습생들이 원하는 사람들 상대로 무료 이발, 화장을 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웨딩 컨테스트 비슷하게, 미용사들이 모델들에게 각종 드레스로 치장하는 곳도 있다.

 

모두 나하고는 그닥 인연이 없는 곳이라서 그냥 슬쩍 쳐다만 본 후 발걸음을 옮긴다.

 

피로가 점점 누적되는지 몸이 무거워지는게 느껴진다.

교통비가 비싼 일본이라 난바역에 도착한 후로는 계속 도보로만 걸어다녔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갈 때도 물론 걸어서 갈 생긱이었지만,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게 의외로 타격이 큰 것 같다.

내일 칸사이 스루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이틀간 왠만한 전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걸어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동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것도 오래 걸으니 무리가 간다.

 

 

 

희한하게 생긴 건물 주위에서 사람들이 전부 고개를 들고 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생방송으로 클라이밍 중계 중이었다. 선발된 지원자들이 제한시간내에 정상에 도달하는 이벤트인 듯 하다.

주위에서 들리는 말로는 곧 개봉하는 어떤 산악 영화와 연계되는 이벤트라고 한다.

일본 영화는 한국 영화 못지 않게 억지 신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원래 건물 자체가 상당히 높은데, 그 중앙에 클라이밍 시설을 설치에 놓으니

올라가는 사람들의 체감 높이는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저 위치로 치면 거진 30m 는 될 듯 하다.

망원렌즈로 보지 않으면 옆에 카메라맨이 있다는 사실도 눈치재치 못할 정도니까.

 

지금 도전중인 선수는 외국인인듯 한데, 열심히 올라가고 있지만 제한시간이 아슬아슬한가 보다.

넓은 광장이라 소리가 퍼지는 바람에 잘 들리지는 않지만 방송 관계자인듯한 사람이 마이크로 생중계중이다.

 

 

 

육중한 몸무게를 지닌 나로서는 저런 클라이밍을 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할 때가 많은데

아무리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는 해도 의지할 곳 없는 절벽에 매달려 올라갈 때의 기분은 참 스릴있을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처럼 수백명의 시선과 카메라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상황에서의 압박감은 상상하기 힘들 듯.

 

 

 

진행자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결국 손을 놓치고 만다.

클라이밍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얼핏 봐도 상당한 난이도인 듯 하다.

한동안 대롱대롱 매달리던 선수는 그래도 저~기 밑에서 박수쳐 주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한다.

 

계속 구경하고 있으면 한두 명쯤은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축제 시간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고, 볼거 다 챙겨보기 전에 내 체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이곳은 이 정도로 끝낸다.

 

 

 

음악 중심의 이벤트 공간에는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이 가볍게 몇 곡씩 연주중이었는데

멕시코의 활기차면서도 적당히 힘 뺀듯한 음악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위기 띄우는 법도 잘 아는 아저씨가 가벼운 개그도 선보여 주시고. 일본어가 아니라서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미도스지 페스타는 오후 5시에 모두 끝나지만 도톤보리나 각종 주변 공연장에서는 주말에도 이벤트가 이어진다.

그 중에는 한국 초청팀인 난타 팀도 포함되어 있더라. 뒤의 팜플렛 보면 슬그머니 보인다.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과는 꽤나 잘 맞을 듯 하다.

 

그 외에 검은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맨 60~70대의 신사 할아버지들이 신들린듯한 솜씨를 뽐내던 재즈 공연도 있었는데

일본 재즈 역사와 길을 함께 걸어온 듯한 느낌의 그 밴드의 보컬은 영어도 매우 능숙해서,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본토 발음의 재즈송을 열창했다.

잠깐 들어도 놀라운 실력의 밴드라는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 인지도도 있는 밴드일 듯 하다.

좋은 음악에는 사람이 몰리는게 당연한 듯,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사진은 한 장도 담지 못했지만 귀는 즐거웠다.

 

 

 

난바 역이 거의 보일만한 거리까지 걸어가는데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의 공연 소리가 들려온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밴드의 뒤쪽 통행로에서 사진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감상중이었다.

 

청춘 스트리트2012 라는 제목의 이벤트장이었는데, 오사카 시내 고등학교 동호회가 참가해서 실력을 뽐내는 장소다.

밴드 실력이야 출중하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리듬에 맞춰서 멤버 전원이 발도 구르고 점프도 하고 하면서 흥을 돋구는게 인상적.

 

 

 

활기찬 음악을 들썩들썩하는 율동과 함께 선보이니 꽤나 들을 만 하다.

고등학교 경음부가 축제의 한 부분을 당당하게 맡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요즘 한국 고등학생들은 이런 동아리 활동 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려나? 적어도 내가 고딩때는 그런거 없었다.

 

 

 

곡 하나가 끝나고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그 다음 흘러나오는 곡이 귀에 익다.

혹시나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역시나,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곡 '꽃~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 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느꼈던, 히로시마의 원폭 희생자보다도 기구하고 서글픈 역사를 간직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애환을

가슴 저리는 음악으로 대변하는 대표곡 중 하나인 이 곡을 이곳 오사카의 고교 밴드부에게서 들을 수 있을줄은 몰랐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때 독립하지 못했다면 일어났을 한국의 대체역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150년전 류큐 왕국이 멸망한 이후 식민지로 전락한 오키나와는, 갖은 수탈과 차별을 당하면서도

태평양 전쟁 당시엔 '위대한 황국 신민'으로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자결을 강요당하는 이중적 취급을 받으며

본섬만으로는 제주도의 60%밖에 되지 않는 이 섬에서 20만명의 원주민이 미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의 총알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 후에도 일본 전체에서 학력성취도, 취업률, 평균 수입이 가장 낮은 곳이며, 일본내 0.2%의 토지에 75%의 미군이 주둔중인,

과연 이곳이 본토와 같은 일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소외된 지역.

 

이런 슬픔의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음악은 구슬프기 그지 없으면서도 그 내용만큼은 눈물에 젖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진정한 눈물을 흘려보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는 애잔함이 그 희망적인 가사 속에서 심금을 울린다.

 

 

 

 

강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람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이 닿는 곳에는

꽃으로서 꽃으로서 피워주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눈물은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사랑도 흘러서 어디로 어디로 가나요


그 흐름을 이 가슴에

꽃으로서 꽃으로서 맞이하고 싶네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꽃은 꽃으로서 웃을수도 있죠
사람은 사람으로서 눈물도 흘려요

  
그런게 자연의 노래 인거죠

마음속에 마음속에 꽃을 피워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제까지라도 언제까지라도 꽃을 쥐어요

 

울어 주세요 웃어 주세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꽃을 피워요

 

 

 

 

 

며칠 후인 5월 15일은 오키나와 영유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반환된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참혹한 역사 속에서 류큐인들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총칼 대신 꽃을 드는 것.

 

 

 

 

이 곡이 흐르는 동안 건너편의 관객들 중 눈시울을 붉히는 중년층을 몇몇 볼 수 있었다.

수천km 떨어진 오키나와의 음악을 오사카 거리에 선사해준 젊은 학생들에게 박수를.

 

하프타임중에 이야기를 나누는 심판들.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우연찮게도 심판들이 주로 서 있는 곳이 내가 앉아있는 곳 바로 앞이라서

선수들 잘 따라가다가 갑자기 뷰파인더에 저분 엉덩이가 꽉 차버리는 순간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서 깜짝깜짝 하곤 했다.

그럴때는 카메라 내려놓고 경기 자체를 즐길 수 있으니까 나쁜것만도 아니다.

사진에 너무 신경쓰다가는 축제를 즐길 수 없으니, 그때의 기분을 남기기 위해서 찍는 사진이지 주객이 전도될 수는 없으니까.

 

 

스포츠 사진은 정말로 찍을 일이 없는 나로서는 이번 기회가 꽤나 신선했기에

평소와는 달리 일단 많이많이 찍어보고 훗날 골라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100장 찍어서 10장 건진다는 디지털 시대 찍사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잘못 찍혀서 그자리에서 삭제하는 사진을 제외하고는 거의 버리는 것 없이 블로그에 올리는게 전부인데

좀처럼 없는 기회를 놓치기 아까워 할때는 역시 무식하게 찍고 보는게 정답인가보다.

 

 

 

 

 

 

 

손가락 연사로 찍은 드리블 사진.

내 카메라는 연사기능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그냥 셔터 후다닥 누르는게 더 편하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재치고 파고드는 모습은, 이게 농구하는 맛이구나 하는 느낌이다.

농구 좋아하는 강군도 저렇게 신나게 날뛰고 있었겠지. 지금도 농구 하는걸로 아는데 고질적인 발목 부상은 괜찮은지 모르곘다.

 

 

망원으로 촬영중 자꾸 엉덩이가 확확 들어와서 난감했던 심판.

길거리 농구라고 해도 대충대충 하는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준 분이다.

참 열성적으로 휘슬을 불어대니 진짜 경기장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다.

 

바스켓 카운트시 울려퍼지는 휘슬 소리와 동시에 볼이 링을 쑥 통과할 때, 심판도 짜릿한 기분이 들까.

 

 

 

의도한건 아닌데도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선수가 있다.

틀림없이 주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좁은 코트를 종횡무진하며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선보여 준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기다렸다면 메일 주소 받아서 사진이라도 좀 보내줄까 싶었는데

이 대회를 끝까지 보다가는 다른 이벤트를 전부 놓치는 꼴이 되어버려서 그럴 수 없었다는게 조금 아쉽다.

 

한국어로 된 이 블로그를 저 사람들이 우연히 찾아오는 기적에 가까운 일은 일어날 것인가.

 

 

 

스포츠는 말할것도 없이 역동적인 녀석이기 때문에

빠른 셔터스피트로 담을 땐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찰나의 순간이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이어질때는 자연스럽게 지나가지만, 수천분의 1초를 떼어놓고 보면 뭔가 묘한 사진들.

공간과 함께 시간도 함께 붙잡아놓는, 사진이라는 취미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다.

 

 

 

농구에 대해서 잘 아는건 아니지만 TV에서 보던 프로농구에 비하면

볼을 돌릴 때 외곽 선수들이 노마크가 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빈번한 듯이 느껴진다.

슛 성공률이 낮은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가끔씩 의아하다.

 

현란하게 파고들어 성공시키는 슛이 확실히 멋지긴 한데,

외곽에서 깔끔한 포물선을 그리며 기분좋은 철썩 소리와 함께 빨려들어가는 슛도 관중을 열광시킨다.

 

 

 

가만히 서서 슛해도 잘 안들어가는데 팍팍 부딪쳐가면서 바스켓 카운트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놀랍다.

재미있게도 프리드로우는 의외로 실패를 많이 하더라.

프리드로우를 실패했을 때, 관객들의 아쉬움 반 웃음 반씩 섞인 웅성임과 선수 본인의 멋적은 표정도 나름 재미있다.

 

 

 

해설자는 아니고 지역연고팀의 매니저? 응원단 비슷한 입장에 있는 분인 듯 한데

시원시원한 목청으로 내지르는 응원 코맨트가 인상적이다. 머리 모양도 인상적이고.

선수들보다 더 신나 보이는 모습을 보면 관객들 기분도 업 되는것 같다.

 

 

 

짧은 경기 하나가 끝났지만 토너먼트전이라 곧바로 다음 팀들이 준비를 시작한다.

아무리봐도 우리 엄니보다 나이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열정적으로 관람하는 모습을 보니

응원 강도에서는 한국보다 훨씬 뒤지지만, 젊은 스포츠를 이렇게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기는 모습은 부러울 따름.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된다.

 

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선수라면 당연히 갖고 있는 마음이겠지만

첫 번째 경기 끝나고 나서도 상대 선수들간에 끌어안고 까칠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길거리 농구는 승부 결과만큼이나 그 내용을 즐기는 것도 중요한가 보다.

프로가 아니니까 뭐, 꼭 이기겠다는 비장한 얼굴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표정이다.

 

 

 

심판이 볼을 위로 던질 때의 긴장감은 농구 초반의 볼거리라고 생각.

볼의 소유권이 특정 팀에게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 이후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

동전던지기로 정하는 공방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경기 시작전에 해설자가 하던 말이 있다.

열정적인 응원과 환호성으로 다른 이벤트장의 사람들이 '저기 뭐 하나'라고 발걸음을 옮길 정도로 즐겨보자고.

확실히 다른 이벤트장에 비하면 훨씬 역동적이니까 즐기는 맛이 있다. 해설자들의 고함소리도 맛깔나고.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

그 만화에서 나오던 치열한 리바운드 모습을 한번 담아보고 싶었지만

의외로 골 밑의 싸움이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부상의 위험도 있고 해서일까.

그래도 가끔 훌쩍훌쩍 뛰어올라서 공을 낚아채는 모습을 보고 학생시절 슬램덩크의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농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가장 헷갈리는 것이 디펜스의 허용 범위.

뭘 어떻게 막아야 반칙이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몸싸움이 필연적인 경기인데 말이지.

 

강군도 예전에 뭣도 모르는 녀석들은 대놓고 반칙하면서 디펜스를 한다고 짜증내곤 했는데.

 

 

 

심판의 표정, 코치의 표정, 선수의 표정에 미소가 끊이질 않는 걸 보고

이게 길거리 농구의 최대 장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승패야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스포츠를 다른 조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서 퇴색되어버리기 쉬운 스포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반쪽짜리 코트밖에 사용하지 않는 길거리 농구라서 좀 덜 힘들려나 싶었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쥐어짜는 느낌이다.

순간이동을 하듯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왠지 젊어지는 느낌.

 

 

 

사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지적발달도 뛰어다나는 연구결과는 셀 수도 없이 나온다.

찰나의 순간에 상대를 파고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이런 스포츠 내용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무엇이든 집중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슬슬 일어나서 다른 이벤트장을 찾아가 볼까 싶던 찰나

휴식시간에 소소한 이벤트가 열려서 다시 엉덩이를 붙일 수 밖에 없었다.

 

관객들이 프리드로우를 해서 성공하면 기념 타올을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이벤트.

좀 쭈뼛쭈뼛할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후다닥 달려나갔다. 특히 아이들이.

조금 재미있었던 게, 왼쪽에 보이는, 개그맨 닮은 어른 아저씨도 상품을 노리고 출전한 사람.

하지만 우선권은 아이들에게 먼저 있었기 때문에 저 분은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상품 수에 제한이 있어서 애들이 전부 다 성공해 버리면 아저씨는 던지지도 못하고 끝날 상황.

 

 

농구하고는 인연이 멀어보이는 꼬마 아가씨도 당당하게 출전.

아마 세간의 관심은 분명 나처럼 이 아가씨가 과연 성공시킬 것인가에 모아져 있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초반의 조마조마했던 마음과는 달리 이 녀석들 어디서 좀 굴러봤는지

단 한번의 프리드로우를 착착 잘도 성공시킨다. 지원자 전체로 봤을때는 거의 80% 가까운 확률로 다들 넣더라.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가 점점 불쌍해지고 있었다.

 

 

 

기대를 모았던 아가씨도 단 한번에 성공시켰다. 정말 농구 좀 해본 솜씨인 듯?

유난히 박수소리가 컸던 것도 아마 나만의 착각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다행히도 몇몇 아이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좀 전의 아저씨한테도 기회가 왔다.

타올이 딱 두장 남아서 아슬아슬했는데, 무난히 성공시키고 즐거운 표정으로 타올을 하나 받아간다.

 

 

 

자리를 뜰 찬스를 놓쳐버려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경기 더 보기로 한다.

초반에 비해 경기가 무르익어서 그런지, 예전 팀들보다 좀 더 오바액션하다가 슛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게 길거리 농구의 맛이라고 생각. 흥에 맞춰서 즐기는게 관객도 더 즐겁니다.

 

 

 

오바는 둘째치고, 가끔씩 이렇게 깔끔한 장거리 슛이 들어갈 때의 통쾌함은

묵묵히 셔터만 눌러대는 나도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넣는 본인의 기분은 정말 째지겠지.

 

 

 

중간에 마이크가 작동을 하지 않아서 휴대용 확성기로 중계를 하기도 했던 해설자.

확성기로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니 시장에서 물건 떨이하는 상인의 느낌이 나기도 했다.

길거리 농구쪽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이 아가씨도 관객들의 호응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손에 든걸 빙글빙글 돌리며 응원을 하니 주위에 있는 사람도 웃어준다. 분위기 메이커는 이래서 필요한 건가 보다.

 

 

 

가끔은 아예 심판보다 더 가까이서 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선수들보다 더 눈에 띠는 느낌.

응원 얌전하기로 소문난 일본이지만, 이렇게 막나가기로 치면 한국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긴 있다.

 

 

 

슛 장면을 담으려고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점프를 높게 하는 바람에 윗부분이 짤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런데서 노하우 부족이란게 느껴지는 듯.

 

그래도 상업사진이 아니니까 본인의 추억거리로 삼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은 사진이라 다행이다.

 

 

 

이번 경기는 점수가 잘 나지 않는다. 골 성공률이 낮은 건 역시 오바액션 때문일까.

이 팀중 누군가는 꽤나 인기가 있는지, 골을 잡을 때 환호성이 들리는 순간이 종종 있다.

 

 

 

참 펄쩍펄쩍 잘도 뛴다 싶다.

드리블 중에 갑자기 멈춰서서 그대로 슛하는 순간인데, 그런 과격한 움직임 후에도 이런 포즈가 나오는구나.

 

 

 

표정이 거의 예능인 수준의 선수.

볼을 가지고 있는 상대선수의 웃음보를 공격하는 새로운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어머나스러운 포즈도 사실 이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카메라의 셔터스피드가 만들어낸, 어딘가 현실과는 조금 일그러진 공간의 매력이다.

 

 

 

이번 대회 첫 덩크가 터졌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거리 전체에 울려퍼진다.

아마 다들 은근슬적 이런 시원한 덩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잠시 경기가 중단될 정도로 선수들도 서로서로 웃고 즐기고, 관중들은 간만에 소리를 질러댄다.

 

 

 

그 후로 선수들이 필 좀 받았는지, 3경기 동안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덩크 시도 횟수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런데 덩크란게 그리 쉬운 건 아닌지 의욕 만만으로 몸을 날린 이 덩크는 허무하게 튕겨나가 버렸다.

선수들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민망함이 조금 묻어나지만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었으니 역할은 다 했다고 본다.

 

 

 

이번 덩크도 실패. 역시 아무나 하는 건 아닌가 보다.

물꼬를 튼 건 좋은데 다들 신나게 실패하니까 대회가 점점 묘기대행진으로 바뀌는 느낌.

 

역시 먼저 하는 녀석이 임자인 건가.

 

세 번째 경기가 끝나고 나서 휴식시간을 이용해 슬그머니 일어선다.

난생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담아본 것도 재미있긴 했지만, 일단 다른 이벤트장도 구경은 해 봐야 했기에.

인파는 더더욱 늘어나 있고, 벌써부터 지쳤는지 도로 난간에 걸터앉아서 휴식중인 사람들도 많다.

애완견과 함께 나온 사람들은 신기하게 의기투합했는지 서로서로 모여서 강아지들 귀여워해 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뜨거운 햇살에 피곤에 찌든 몸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지만 축제 분위기 덕인지 아직은 기운이 나는 편이다.

 

 

 

순식간에 미도스지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은, 이제껏 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나 할 정도로 대단하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다양하게 보이는 점에서 이번 페스타가 특정 연령대를 위한 축제는 아니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젊은 사람들은 대게 커플 혹은 강아지를 유모차에 넣고 나오는 경우가 많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특히 남성들은 똑딱이가 아닌 DSLR 을 많이 들고 있다.

할아버지의 경우엔 필름카메라도 많이 들고 있는걸 보니 한국하고는 좀 다른 분위기다.

 

동 나이대의 한국 할아버지의 경우엔 젊을 때 카메라라는 취미를 갖기가 꽤나 힘들었던 탓인지

나이에 관계없이 최신 플래그쉽으로 무장한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분명 삼사십년 전의 모터없는 필름카메라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미도스지 거리를 전부 전세놓은 축제라고는 해도 이 정도 인파를 소화할만한 넓이는 아니다.

일단 마음편하게 이곳에서 반대편 끝인 난바역까지 슬슬 걸어가면서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그것조차도 안이한 생각으로, 제대로 힘줘서 끼어들어가지 않으면 이벤트장엔 아예 접근도 불가능한 상황.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이벤트장은 동물마을이라는 곳이었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이런 인파를 뚫고 구경하기란 너무 힘들다.

특히 아이들이 일찌감치 앞줄에 포진해 있고, 부모들이 목말을 태워서라도 동물을 구경시켜주려고 고생중이라

다른 어른이 앞줄에 끼어들어가서 카메라들고 찰칵찰칵거리기엔 눈에 뜨인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저러나 교통 통제를 시작한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벤트장이 만들어진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혼잡한 축제 컨트롤은 숙달된 인력의 힘이 극대화되는 곳이긴 하다.

미숙한 운영위원이 그냥 시키는 대로 지시봉만 흔들어대는게 아니라

근처 경찰이란 경찰을 다 끌고나와서 확성기로 소리질러가며 컨트롤할때의 능력이란 기계에 비할바가 안된다.

사람들은 사람 말을 듣지 기계 음성을 따라서 움직여주진 않으니까.

 

 

 

인력 감축이 무슨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한국에 비하면 여전히 일본은 경찰관 수만큼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시골로 갈수록 경찰관이 쓸데없이 너무 많아서 빈둥대며 세금 축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은 원래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활동할 수 있어야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한국엔 실컷 줄여도 관계없는 높으신 분들이 천지에 널리고 널렸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같은 중요 인력은 모자란 느낌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미도스지의 대로는 인파로 완전히 막혀버렸지만

중간중간 동서로 나 있는, 자동차 한두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골목길중 몇몇은 차량이 통과할 수 있도록 여유를 둔다.

건널목과 교차로의 의미가 없어진 보행자 천국이지만 여전히 교차로에서는 사람들보고 서 있지 말고 진행하시라고 경찰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 무렵쯤 멀리서 구급차의 급박한 소리가 들리더니, 근처 경찰관들이 모두 모여서 인파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렬이 멈춰서고 구급차는 혼자 전세낸 것 처럼 동서로 난 골목길을 경찰관의 지시를 받으며 순조롭게 통과한다.

이렇게까지 인파로 북적이는 축제 장소 한복판에서 구급차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모습은 축제 그 자체보다도 부럽다.

 

 

 

 

한국에서도 요즘 친환경 녹색성장이라는 영 듣기싫은 구호가 여러곳에서 울려퍼지는데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먼저 '에코'라는 단어가 상품 판매에 없어서는 안될 캐치프라이즈가 되어 있다.

TV 광고를 보다보면, 에코 없이는 자각있는 현대인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고 은연중에 협박당하는 느낌까지 드니까.

 

기업, 정부가 에코 에코 거리는 모습은 솔직히 꼴불견이다.

 

뭐, 이번 이벤트장의 '에코'는 환경단체 주도로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렇게 불평할 필요는 없지만.

마스코트가 왜 사슴인지는 제대로 확인해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왠지 수난 당하고 있다.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선전하는 마스코트도 사슴이었는데, 이는 지데지(地デジ)+사슴을 뜻하는 시카(しか)가 합쳐져서 지데지카(地デジカ)였기 때문.

저 지데지카라는 단어는 '지대지화(化)'라는 뜻과 발음이 똑같기 때문에 나름 머리 잘굴린 마스코트였다고 생각한다.

 

 

 

허구한날 에코를 외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본 기업들이지만

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베터리 원료가 되는 희토류라는 희귀 금속이 전량 중국에서 수입되고

그 이유가 정제시 어마어마한 오염 물질을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사실까지는 광고에 싣지 않는다.

 

한국이야 사대강 사업같은 21세기 최고의 정신나간 환경파괴를 국책사업으로 밀고 들어가는 중이니 말할것도 없고.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환경 단체들의 행동이야 순수하지만

목적이 돈 별러는 기업과 정부에서 에코 에코 거리는 건 가식도 그런 가식이 없다.

 

 

 

 

파나소닉에서 홍보중인 전기자전거.

확실히 근거리를 자동차 대신 이런 녀석으로 움직인다면 환경 보호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하는 셈이 될 듯.

일본에서는 이런 자전거를 전동 어시스트 자전거라고 하는데

100% 전기 동력으로만 움직이는 자전거는 사실상 자전거가 아니라고 하는 법리적 해석때문에 출시되지 않고

페달을 밟을 때 모터가 힘을 더해주는 이런 자전거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 힘의 배분이 점점 우수해지고 있다.

 

자전거 여행당시 언덕을 뻘뻘거리며 오를때 마다 항상 머릿속에 꿈처럼 떠오르던 게

전동 자전거를 타고 평지처럼 시원하게 오르막을 달리는 자신의 해맑은 미소였지.

 

물론 장거리 여행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계 사상을 갖고 있어서 아직 이걸로 장거리 여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시연회때 한번 타 본적이 있는데, 페달 밟는 스쿠터라는 느낌이랄까.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자전거는 시원하게 달려간다.

가격이 무서워서 그렇지 어른의 장난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녀석이다. 물론 운동이 안되니 그닥 의미는 없지만.

 

 

 

 

 

동물 마을과 환경단체 부스를 지나쳐서 계속 난바역으로 걸어가니 아직까지 파고들만한 공간이 있는 이벤트장이 보인다.

인파때문에 뭘 하는 곳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쪽에 자리잡을 여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후 무작정 돌격.

좀 더 진행하면 다른 이벤트장이 많겠지만 이런 곳에서는 공간 보이면 무조건 자리잡아야 하나라도 구경할 수 있으니까.

 

슬금슬금 주위를 돌다가 아직 펜스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뜸하게 서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곳은 전국 각지의 거리농구팀이 토너먼트전을 벌이는 곳.

아직 코트 설치중이라서 사람들 숫자가 적은 것이었다. 나로서는 운이 좋았던 셈.

교통 통제가 시작된지 1시간만에 고무 코트와 간이 골대 등등을 열심히 설치하고 있는 스탭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저 스탭이라는 사람들도 사실 전부 거리농구 선수들. 모두 자기가 좋아서 자원하고 있는 중이다.

 

 

 

 

농구엔 관심이 없지만, 이런 동적인 스포츠를 사진에 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로서는

이 후달리는 성능의 카메라와 경험없는 찍사가 어느 정도의 사진을 담아낼 수 있을까 조금 기대중이다.

얼핏 니콘 D3 라는, 스포츠 사진에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는 아주머니를 본 듯 한데.

한국에서야 훌륭한 뽀대덕에 아빠사진사나 정물, 풍경 등등 사방팔방에 활용되는 녀석이지만

일본에서 이 녀석 들고 다니는 사람 보는것은 참 신선하다. 저건 스포츠 사진엔 확실히 유용하니까 조금 부럽기도 하다.

 

 

 

약 30분간의 설치가 끝나고 대회가 시작된다. 앞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앉아서 뒷사람들을 배려한다.

나 역시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망원렌즈로 집중하다보면 확 돌진하는 선수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으니

카메라가 박살나는 사고를 방지하려면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은 느낌.

농구에 관심이 많은 듯한 초등생, 중등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꽤나 많이 앉아있다.

길거리 농구가 꽤나 활성화된 듯, 팜플렛의 팀 명단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농구 좋아하는 친구 강군이 여기 있었으면 불끈불끈 했을 듯.

 

 

 

 

몸을 푸는 선수들.

 

오사카에 연고를 둔 팀도 있고 다른 지역에서 원정온 팀도 있다.

입장시 받는 박수의 레벨이 다른걸 보니 길거리 농구라도 홈팀의 이점은 있는 것인가 싶다.

 

하지만 경기 전 길거리 농구의 간략한 룰과 특징을 소개해주는 사회자의 말을 빌면

길거리 농구는 퍼포먼스, 즉 쇼맨쉽도 중요하고 일단은 서로 즐기는 친목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멋진 장면이 나오면 신나게 박수쳐주고 호응해주는게 가장 좋다고 한다.

 

 

 

 

선수들이 연습중에 나도 카메라 연습중.

길거리 농구라서 그러지 않아도 선수와 상당히 가까운 편인데 내가 가진 렌즈는 35mm 단렌즈와 70-300mm 망원 뿐이다.

골대 근처도 아니라서 선수들의 움직임이 카메라의 사선 방향으로 많이 진행되다보니 화각 맞추기는 어려운 편.

세로사진을 많이 찍어야 하는데, 동체추적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인 본인의 카메라로는 대강 예측샷을 할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남자간의 뜨거운 우정을 교류하는 듯한 사진도 나오는 듯?

 

 

 

 

골대는 움직이지 않으니까 이쪽에 준비하고 있으면 일단 슛 장면은 조금 건질 수 있을지도.

하지만 역시 농구는 움직임이 빨라서 어지간한 셔터스피드로는 대응하기 힘들다.

대낮이긴 한데 렌즈 조리개값이 상당히 어두운 편이라 큰맘먹고 ISO를 1600까지 올려본다.

 

6400 까지는 장난으로도 사용하는 요즘 DSLR에 비해 이 카메라는 1600까지만 올려도 노이즈가 심각하다.

그나마 소프트웨어가 많이 발달하다보니 그럭저럭 사용할 수준은 되는데,

농구 경기의 역동성을 잡아내는 목적이라면 화질의 손해정도는 감수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1/4000 정도의 셔터스피드가 나오니 이젠 포커스만 제대로 맞추면 사진은 대충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1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시간도 짧은 편이라 정말 순식간에 승부가 날 듯.

제대로 옷을 챙겨입은 심판도 두 명이나 있어서, 장난같지만 제대로 된 경기라는 느낌이 난다.

 

 

 

길거리 농구라서 그런지 자기 어필이 강한 선수들이 꽤 눈에 들어온다.

아님 그냥 원래 스타일인데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미도스지 페스타는 관객도 어마어마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팀들까지 있으니 친목 경기라고 해도 장난으로 할 수준은 아니다.

 

 

 

경기를 주욱 보다보면 팀의 리더격 선수들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데

그 선수가 또 인상에 남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사진 찍는 즐거움이 는다.

이 선수가 팀의 주장인 듯한 느낌인데, 역동적인 움직임도 그렇고 관객들에게 서비스 정신도 투철해서

공의 흐름을 중심으로 찍어도 어느샌가 이 선수에게도 카메라가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길거리 농구는 어떨까 싶은 기분으로 시작한 관람인데

움직임이 크고 시원시원하지, 관객과의 거리도 가까워서 관람하는 맛은 프로농구보다 나은 듯 하다.

사회자도 레슬링 중계하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분위기 업 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선수들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농구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상당한 실력이라는게 느껴진다.

 

 

 

 

장거리 슛이 깨끗하게 들어갈 때도 짜릿한 맛이 있지만 길거리 농구는 역시 골밑의 치열한 공방전에 제맛이 있는 듯.

전체적인 사진은 화각이 맞지 않아서 담을 수 없었지만 틈을 만들기 위해 쉴세없이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습이 꽤나 조직적이다.

이런 골밑에서 슛 찬스를 만들기 위해 이루어지는 연계 플레이는 사진으로 담기가 어려워서 조금 아쉽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리지만, 역시 한국의 파괴적인 호응과는 차원이 다른것도 아쉽고.

선수들의 움직임은 정말 굉장하고 숙련되어 있는데 관객들의 호응은 역시 일본이다 싶을 정도로 차분하다.

그리고 생전 처음 찍어보는 농구경기 사진도 전혀 익숙하질 않아서 선수들 움직임 따라가는데 애를 먹고 있다.

 

 

 

잠은 두시간 정도 자고 새벽 6시에 넷까페를 빠져나온다. 근처의 요시노야에서 규동 한그릇 주문.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한끼 떼우기에 좋은 녀석이고, 사진도 한장 남길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왠걸 막상 규동 나오자 그냥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사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거의 다 비우고 나서야 아차 싶더군.

기회는 아직 많이 있으니 아쉬울 것 없이 밖으로 나와서 인적없는 난바역 거리를 걸어다닌다.

 

예약한 비즈니스 호텔은 오늘 오후 3시부터 들어갈 수 있고, 짐은 훨씬 전부터 맡길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새벽 6시에 찾아가서 짐 맡긴다는 건 뭔가 이상해서 일단은 가볍게 산책이나 할까 싶었다.

 

예전 자전거 여행때는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새벽 5시에 도착해서 일단 직원 불러서 짐부터 맡겨놓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다가 까페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그랬는데, 몇달 지나고 나서는 오전 11시쯤 도착해도

몰골이 영 아니었던지 짐을 맡겨주는게 아니라 청소 다 된 방을 미리 들어갈 수 있게 배려해 주기도 했다.

뭐든 메뉴얼 대로만 움직이는 일본 사회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참으로 신선한 경험.

 

난바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온갖 PC 부품과 게임, 만화, 메이드까페등이 즐비해 있는 덴덴타운이 나온다.

휴일엔 특히나 굉장히 붐비는 곳이지만 새벽 산책의 특권이랄까, 이렇게 한산한 덴덴타운의 모습은 진귀한 경험이다.

 

 

 

 

친구에게 부탁받은 물건이 있어서 언젠가 한번 더 들려야 할 곳이지만 지금은 문 연 곳도 없으니 그냥 패스.

목적지도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시장 옆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에 기분좋게 퍼질러 있던 비둘기를 한번 담아보려고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놀랐는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버린다.

괜히 쉬고 있던 녀석 깨운게 아닌가 싶어서 미안하다.

 

 

 

싸구려 민가가 이어진 좁은 골목길은, 후줄근한 콘크리트 벽과 썩어가는 나무판대기 건물이 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데

몸을 숙여야만 겨우 사람 한 명 들어갈 수 있을 듯한 작디 작은 뒷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생명력 넘치고 아름답게 자라나 있는 녀석들이 꽤나 빡빡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허름한 곳도 이 녀석들의 매력 덕분에 사람 살 만한 곳이라는 인상으로 바뀌니 참 대단하다.

 

재래시장 근처라서 아침이 빠른지 가게 준비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보이고, 특히 생선가게에서는 벌써부터 문 열어놓고 생선 손질중이다.

운동복에 슬리퍼 끌며 걸어오는 노인네나, 제대로 차려입고 산뜻하게 활보하는 아가씨나

이 시간대엔 대부분 개와 함께 산책나오는 경우가 많다. 졸졸 잘만 따라다니는 녀석도 있고 어지간히도 말 안듣고 옆길로 빠지는 녀석도 있고.

 

 

 

난바역 북쪽은 서울의 명동거리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거리지만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너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스낵바나, 노동자들을 위한 3~4평짜리 원룸 주택 등이 포진해 있다.

당연히 욕실이나 베란다 등이 있을리가 없는 그런 원룸 생활자들을 위한 목욕탕이나 코인 세탁기 등이 근처에 꼭 있는것이 특징.

 

익숙함의 차이일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방음도 되지 않는 그런 조그만 곳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항상 의아하긴 하다.

에도시대부터 수백년간 이어진 생활 방식이니 서민들에겐 익숙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구밀도가 대구의 4배 가까운 오사카이니 그런 생활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지독한 불경기는 오사카도 예외가 아니고, 불경기의 여파를 직격으로 받는 것은 역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다.

세계 공통으로 불경기에는 강건 보수파가 인기를 얻고 , 오사카 시민도 41세의 젊은 보수 우파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에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하시모토 시장은, 학교와 관공서에 국가 제창 의무화, 일본의 핵무기 보유 주장 등

과격함으로는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에 못지 않는 우파에 속하지만, 공무원의 철밥통 수당 삭감, 복지정책의 개혁 등 시민들의 불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진보적인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는 일본 정치계의 새로운 물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한국에서는 대외적인 발언이 영 꺼림직한 부분이 많아서 이시하라의 뒤를 잇는 꼴통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데

정작 오사카 시민들에게는 서울의 박원순 시장만큼이나 지지를 받고 있는 묘한 인물이다.

물론 내가 오사카 시민이라도 정책적인 면에서는 그를 지지하고 싶을 만큼 구미가 당기는 개혁안을 불같이 추친하고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지 전까지는 그의 행동이 정치적 퍼포먼스에 불과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단언은 금물.

 

오사카 공무원들에게 비난받는 반면 정통 우파 자민당, 정통 좌파 공산당에게 동시에 지지를 받는 이 독특한 인물이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썩어들어가고 있는 오사카시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궁금하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든 생각.

 

 

 

 

측면에서 보면 이런 식이다. 포장마차처럼 서서 손님을 받는 곳인데, 뒷편엔 살림사는 집과 연결이 되어 있는 방식.

도톤보리나 신사이바시 등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지만 이런 지역민 상대로 하는 외곽의 선술집은 점점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오사카는 특히 한국인의 입지가 강해져 가는 곳 중 하나인데다, 한인타운 츠루하시(鶴橋) 부근은 요즘 한류열풍과 더불어 인기몰이중이라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는 경쟁 재래시장의 눈길이 점점 곱지않게 변해가는 중이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높으신 분들은 흐뭇하게 내려다볼 뿐, 서로 상처내는 것은 가장 아랫쪽의 영세민들이지.

아버지가 천민 야쿠자 출신인 하시모토 시장이 과연 오사카에서 영향력이 강해지는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어떤 방안을 내놓을 것인지 궁금하다.

천박한 극우파의 대표인 이시하라 도쿄지사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한국의 박원순 시장처럼 상생의 길을 택할 것인지...

 

 

 

재래시장가를 빠져나와 츠루하시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예전 자전거 여행때 츠루하시 부근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한인시장에서 6개월만에 닭발과 족발을 사들고 없는 살점 열심히 뜯어먹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한국에서와 똑같이 설사로 시달렸던 것도 이제와서는 그저 추억일 뿐이고.

 

활기를 잃어가는 재래시장가와는 달리 대로변의 대형 할인점은 벌써부터 자전거 타고 장보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국보다 변화에 대해 훨씬 둔감하고 고지식한 일본도 경기 불안에 따른 대형 양판점의 매력을 거슬리진 못하는 듯.

잠시 주춤할 당시에도 재래시장은 지역민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희망과 포부에 찬 회생정책으로 용감히 맞선 전례가 있지만

이제는 지역민들간의 연대, 끈끈한 정 같은 따뜻해 보이는 수식어만으로 대형 양판점의 공세를 이겨내기란 힘들어지고 있는게 현실.

 

지독한 불경기에 거대한 천재지변, 철밥통들의 어리석은 인재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일본은

그네들이 최후의 끈처럼 붙잡고 있는 '모두가 힘을모아 이겨나가는' 조금은 공허한 구호만으로 이 정세를 뒤집을 수 있을런지.

 

츠루하시까지 아무런 목적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갔다가 다시 난바역을 거쳐 비즈니스호텔이 위치한 요츠바시(四つ橋)로 발걸음을 옮긴다.

중간중간 편의점에 들어가 잡지도 좀 읽고 하면서 정말 관광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느긋함을 즐긴다.

사실 오사카에서는 별로 돌아보고픈 곳도 없고, 며칠 후에 있을 출판사와의 미팅 생각에 그닥 유쾌한 기분도 아니다.

내일은 그래도 외국까지 왔으니 제대로 관광 한번 해보자는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코야산(高野山)에 갈 작정을 하고 있지만

오늘은 그러잖아도 칸사이 공항에서 일찍 도착한 탓에 별로 할 일이 없다. 저녁에 서점이나 좀 들러볼 생각 뿐.

 

 

 

거진 5시간동안 그저 걸어다니며 요츠바시쪽으로 향하던 도중

난바역에서 정북쪽으로 나 있는 번화가인 미도스지(御堂筋)거리에서 뭔가 안내방송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뒤에 미도스지 페스타를 위해 차량 통제를 시작하니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탓인지 수십 명이 넘는 경찰관이 물샐 틈없이 직접 교통통제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미도스지 페스타라는 건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꽤나 유서깊은 축제라고 하는데

사전 지식도 전혀 없었고, 오늘이 축제날이라는 사실도 방송 듣고서야 알았기 때문에

어젯밤부터 2시간밖에 자지 못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이건 놓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 가서 카메라장비를 제외한 짐만 맡겨놓고 다시 나오면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고.

 

서점은 축제 끝나고 저녁에 가 봐도 되니까 예정없던 공허한 일요일에 관광다운 일거리가 하나 생겨서 기분이 좋다.

 

미도스지 거리는 오사카 최대의 번화가 도톤보리(道頓堀)와 크로스식으로 교차된 번화가.

난바역에서 북쪽으로 길게 난 미도스지와,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도톤보리가 교차하는 곳은

일요일 오전에도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관광객들이 도톤보리에서 빼놓지 않는 돈키호테와 글리코 전광판이 보인다.

이곳은 밤이 되어서야 본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라 흐릿한 대낮 풍경은 뭔가 어수선하다.

 

미도스지 페스타 때문인지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요츠바시로 향하는 길은 어디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와중에 힘든 숨을 내쉬는 녀석을 발견.

길고양이치고는 나이를 꽤나 먹은 녀석으로,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힘겹게 들쑥거린다.

거의 움직일 기력이 없는 듯 한데, 카메라를 슬쩍 들이대도 조금 움찔거릴 뿐 재빨리 피할 여력은 없는 듯 하다.

더 이상 다가갔다간 무리해서라도 도망갈 듯 하고, 그러면 괜히 고생만 시킬 것 같아서 다가가진 않는다.

 

일본도 대도시 고양이들은 온갖 질병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시골 고양이들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한달 쯤 전에 시골도시 유후인에서 친근하게 나에게 머리를 들이밀던 고양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실은 도시 사람도 마음 속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도스지 거리를 살짝 옆으로 벗어나서 요츠바시쪽으로 걸어가면 아메리카무라(アメリカ村)를 통과한다.

아메리카무라는 이름 그대로 미국향기가 조금은 느껴지는 신세대들의 놀이터. 각종 마이너 샵과 명품점이 얽혀있고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까페와 이국적인 스테이크점, 이탈리안 식당 등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묘하게 굽이친 프레임 디자인이 살짝 바이크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Schwinn 사의 자전거가 멋져보여서 한 장 담는다.

이곳 거리엔 1950년대에 만들어진 빈티지 자전거를 전시해 놓은 샵도 있는데, 실로 기분좋게 자랑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전거로 여행은 무리겠지.

 

 

 

호텔에 도착해 짐을 맡겨놓고 다시 미도스지쪽으로 걸어나온다.

난바역에서 요츠바시역까지는 지하철로 두 코스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사실 난바역이란 게 역 한개의 이름이 아니라 난카이선, 킨테츠선, JR선 등등 수많은 시영 전철, 국철, 사철 등이 얽혀있는 곳이라서

난바역이라는 이름을 가진 구간만 해도 한 바퀴 도는데 20분은 걸리는 곳이다.

 

어제 공항에 도착한 후 넷까페서 새우잠 2시간 정도 잔 것 외에는 15kg 정도의 짐을 짊어지고 줄창 걸어다니기만 했기 때문에

오후 1시쯤 되자 상당히 피곤한 느낌이었지만, 일단 1년에 한번 있는 페스타를 볼 기회가 생겼으니 놓치기는 아쉽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으니 어깨는 조금 홀가분해졌지만 카메라 장비가 여전히 5kg 정도는 되기 때문에 가뿐한 느낌은 아니다.

 

다시 미도스지 거리로 돌아오니 어느새 차량은 통제되고 사람들은 인도쪽에 설치된 펜스 앞에 줄지어 모여있다.

축제 시작시에 뭔가 퍼레이드 같은걸 하기 때문에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는데, 운 좋게도 펜스 바로 앞에 설 수 있었다.

이걸로 그 퍼레이드라는 걸 제대로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피로도 잠시 잊을 수 있는 느낌.

반대편에는 유명한 백화점 건물이 서 있는데, 구불구불한 외관이 꽤 멋져서 축제가 시작되기 전 한 장 담아본다.

 

 

 

이윽고 미도스지 거리 끝부분에서 개최 신호를 알린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서 과연 어떤 퍼레이드일까 기대중.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개회사를 주절거리고 나서 나머지 한쪽 끝인 난바역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페스타가 시작된다.

나야 뭐 오사카 시민도 아니고 이런 사람들 걸어가는 모습엔 관심이 없었지만, 수동렌즈 연습삼아 한장 찍어본다.

 

동쪽 사람들에 비해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질서 안지키기로 유명한 칸사이 지방이라서

요인 경호에 신경쓰느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밀려오는 인파를 막고 통제하느라 경찰들이 진땀을 뺀다.

 

 

 

 

그 뒤로 카메라 여러개를 짊어진 프레스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이제 뭔가 퍼레이드가 시작되겠구나 싶어서 카메라를 단단히 쥐어본다.

헬로키티의 머리에 달려있는 리본같은 녀석을 이끌고 진군하는 스탭들을 시작으로 어떤 행렬이 이어질까 사뭇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사람들 지나가고 나니 경찰들이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하면서 펜스를 치워버리는게 아닌가.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멍하게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제 좀 살것같다는 느낌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순식간에 도로는 인파로 가득 차고, 나는 여전히 멍하니 서서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정리하기 바쁘다.

 

결국 이 미도스지 페스타라는 건 원래 도로를 통제하고 보행자 천국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 각종 이벤트를 벌이는 축제였던 것.

올해가 10주년 기념이라서 그냥 하시모토 시장이 거리 끝에서 끝까지 한번 걸어가는 이벤트가 있었고

그 이벤트를 위해 사람들을 도로 바깥에 붙잡아 놓았던 것이다.

 

펜스 맨 앞에 자리를 잡아서 이제 퍼레이드 사진 좀 찍겠구나 하던 내 생각은 그저 어이없는 망상일 뿐이었다.

되려 곳곳의 이벤트장에는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어지간한 장소에서는 사진 찍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맞닥트린 이벤트란 나름의 두근거림도 있지만, 역시 돌발 상황에는 대처하기가 힘들다는걸 실감했다.

 

뭐가 어찌됐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기분으로 카메라 짊어매고 보행자 천국의 인파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나침반님과 오후 2시에 만나 OM-D 등을 건네드리고, 밥도 한끼 얻어먹고 공항으로 출발.

일본 가기전에 건네드릴 수 있어서 가슴이 후련하다. 내가 일본 가있는 동안 많이 연습해 보시겠지.

 

야간 공항 도착이야 수도 없이 많이 해봤지만 출국을 밤늦게 하는건 처음이라서 나름 신선하다.

피치항공은 출항한지 1달도 안된 새내기 항공이라 인천공항에서 타려면 전철타고 버스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구석탱이에 있다.

저가항공답게 좌적 지정, 수화물 위탁 등등 어떤 옵션에도 추가금액이 붙기 때문에

짐은 모두 갖고 타고 좌적 지정같은것도 없이 최대한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니 세금포함 왕복 13만원.

도착시간이 밤 11시경인 점이 대부분의 여행객들에게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지만

그냥 다음날부터 여행시작이라 생각하고 그날 밤은 대충 알아서 때우면 되기 때문에 나에게는 꽤나 유용한 노선이다.

 

그냥 싼게 아니라 항공기 내부는 이제껏 내가 타본 어떤 것보다 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다.

나보다 더 덩치가 굵은 사람은 아마 무릎을 옆으로 돌리지 않고서는 앉을수도 없을 듯.

그래도 반짝반짝 새 비행기라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

 

물론 음식이나 물까지 유료라서 살짝 아쉽긴 했다. 도시락을 세일중이었지만 어차피 1시간 40분밖에 안걸리는 거리.

이 짧은 시간동안에도 나름 여행의 추억이라고 할 만한 에피소드는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승무원이 나한테 외국인 입국카드를 주지 않고 내국인용 세관신고서만 주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이 첫 에피소드.

 

무심코 펼쳐 본 기내쇼핑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딱 드는 유니버셜 어댑터가 있어서 큰맘먹고 인생 첫 기내 구매를 해보려고 했는데

막상 그 제품은 6개월 후에나 재고가 들어온다는 답변을 받은 것이 두 번째 에피소드.

그 어댑터 정말 마음에 들었다. 디자인도 좋고, 160 개국 사용가능에, 아이패드까지 충전 가능한 USB 포트도 2개 달려있어서.

아직 피치항공 기내구매 외에는 입수할 방법이 없는 제품이라서 더더욱 안타깝다. 6개월 후에는 구매할 수 있으려나.

 

그리고 귀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간신히 한국어 설명을 더듬더듬 이어가던 승무원의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착륙후 마지막으로 'ほんま、おおきに~’ 라고 말하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만 것이 마지막 에피소드.

구수한 칸사이 사투리로, '증말 고맙심더~'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칸사이 국제공항을 나서자 생각보다 훨씬 싸늘한 날씨에 놀랐다. 12도라고 하는데 반팔을 입고 있으면 이빨이 부딪칠 정도로.

반팔 중에서도 시원하기로는 둘째갈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어서 시작부터 극기훈련하는 느낌.

오늘은 그냥 공항 안에서 대충 책이나 보면서 새우잠을 잘 계획이었는데, 운좋게도 아직 오사카로 가는 전철이 남아있었다.

6시간쯤 이득 본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전철타고 40분간 달려서 오사카 난바(難波)역에 도착.

 

전철 안에서 들려오는 정차역 이름은 지난 일본 자전거 여행때 분명 본 기억이 나는 것들이다.

일반적인 여행이라면 결코 들러볼 일이 없는 평범한 주택가 지명들이지만, 나에게는 잊어버리기 힘든 이름들.

자전거로 너댓시간 달려온 거리를 40분만에 질주하는 전철 안에서는, 이제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게 일상이 되어간다.

 

 

 

밤 12시경 도착한 난바역은 오사카 최대의 중심가중 한곳이라서 아직 그럭저럭 활기에 차 있다. 토요일이라서 그렇기도 하고.

물론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노상에 기타들고 앉아서 열심히 노래하는 가수들의 모습이 인상적.

아쉽게도 내가 막 도착했을 때 마지막 곡을 끝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노래하는 모습을 남기지 못했다.

 

한국에서 나침반님에게 밥을 얻어먹어서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어쩐지 뭐라도 입에 넣어보고 싶어서 24시간 영업중인 맥으로 들어간다.

1층엔 좌석이 텅텅 비었는데 날씨가 너무 싸늘해서 지하로 들어갔더니, 다들 생각하는건 비슷한지 그곳은 꽤나 바글바글했다.

 

밤 12시의 맥도날드 지하는 피로에 찌들어 신문을 덮고 누워있는 양복 차림의 회사원, 다음엔 노래방이나 갈까 하면서 정처없이 떠도는 학생들,

경마신문을 펼쳐들고 무언가 고민중인 백발 할아버지 등등, 관광 가이드북에 실리지 않는 도시의 모습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전부 칸사이 사투리로 말을 하고 있으니 이방인인 나로서는 그걸 반찬으로 햄버거를 씹어먹는 맛이 있다.

예순쯤은 가볍게 넘어버리는 백발 할아버지가 새벽 1시에 맥에서 커피와 함께 서류를 읽고 있는 모습, 이 정도면 충분히 이국적이지 않은가?

 

 

 

 

적당히 휴식하며 일기를 쓴 후 밖으로 나오자 '맛사지 안할래요?'라고 젊은 여성들이 엉겨붙는다.

사실 일본의 풍속업은 문제 일으키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자국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한테 말 건 것은 뭔가 착오가 있어서일거라고 생각한다.

 

오사카나 나고야에서 밤거리를 걸을때면 자주 있는 일이라서 이젠 별로 세삼스럽지도 않지만.

새벽 1시를 넘어가자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거리의 활기도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24시간 영업점 근처의 인적 말고는 고요해진다.

조금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근처에 남아도는 넷까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한국의 PC방과는 달리 일본은 개인룸이 주를 이루며,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의자가 아닌 매트리스 룸도 있기 때문에

밤에 잠시 눈 붙이고 쉬기에는 그나마 저렴한 수단으로 유용하다. 음료수와 만화책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점도 좋고.

 

 

 

 

특히 야간 나이트팩은 6시간 10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대신 기본요금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더욱 이득.

맥도날드보다 훨씬 저렴한 규동집도 일본 와서는 빠지지 않고 한끼 즐기곤 하는데

지금은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다음 기회로 미루고 넷까페로 들어간다.

 

6시간 팩키지를 끊었지만, 이곳에서는 단지 잠만 자기에는 왠지 아까워서 항상 음료수 마셔가며 한국에 발매되지 않은 코믹스를 찾아 읽는다.

한글보다는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6권쯤 읽는데 2시간이나 소모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잠도 잘 오질 않는다.

매트리스 룸이라고 해도 호텔방같은 분위기는 아니라서 잠자리는 불편하고 좁다. 이리저리 뒤척여서 간신히 잠 잘만한 자세가 나올 정도.

 

하지만 이것도 신기한 게, 한 시간동안 그렇게 잠이 오질 않아서 뒤치닥거리다가도

어느 순간 머리 끝에서부터 밑으로 쑤욱 내려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달콤한 수면이 엄습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후엔 가끔 깨더라도 금새 편안하게 잠 들수 있고, 잠시 깨어나는 그 순간도 아늑하게 기분이 좋다.

잠이 오기 전의 그 딱딱하고 불편한 매트리스가 그렇게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매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