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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 해당하는 글들

  1. 2014.07.17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와 비틀즈 12
  2. 2014.07.15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 이모저모 8
  3. 2014.07.13  2월 10일 삿포로 - 눈축제 with 일행 8
  4. 2014.07.10  2월 9일 삿포로 - 스스키노 눈축제 4
  5. 2014.07.02  2월 9일 홋카이도 - 신 치토세 공항의 미쿠 4
  6. 2010.03.31  찍어도 될까요? 24

 

무엇에 대한 마스코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일 종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원래는 매끈하게 다듬어 완성한 녀석인 듯 한데, 축제 도중에도 계속 눈이 오고 그게 그대로 굳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표면이 되어버렸다. 나름 아침마다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겨울 삿포로의 눈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여름엔 맥주 축제로 가득한 광장이지만 이번엔 뭣 때문인지 텅 비워 놓았다.

광장 안쪽엔 보통 거대 조형물들을 전시하는데, 전혀 그런 흔적이 없는 걸 봐서 그냥 놀리고 있거나 뭔가 이벤트가 있거나 했을 듯.

 

 

 

그다지 섬세한 디테일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건물을 표현한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딘가의 랜드마크인 듯 한데, 어쩐지 다른 조형들보다 좀 더 험해진 분위기.

 

 

 

삿포로 시계탑 상층부를 재현한 것 같은데, 완성도는 둘째치고 시계 표현이 절묘해서 웃음이 나왔다.

의도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삼각형 귀 같은 것이 살짝 삐져나와 있는 걸로 봐서 고양이일려나.

 

첫 인상은 시계탑 같았지만 사실 구조가 너무 달라서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는 영원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참 힘들었던 조각상. 가슴에 끼운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Y 양과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유방암 등으로 한쪽 가슴을 절개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의 뜻을 담고 있는 조각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얼굴은 그닥 닮지 않았지만 레게머리와 기타, 이 두 가지만 만들어 놓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문득 이 추운 삿포로의 겨울 속에서도 No Woman, No Cry 의 선율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영원한 우상 도라에몽도 이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동용 캐릭터들을 생산해내는 일본에서도 꾸준히 도라에몽에게만 열광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대중성을 갖춘 몇 안되는 캐릭터이기 때문일 듯.

 

가끔 어른이 되어서도 뭐든 튀어나오는 4차원 주머니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갖고싶어 할 것이다.

 

 

 

다른 캐릭터는 몰라도 이것만은 보는 즉시 정체를 이해할 수 있다.

친절하게도 이마에다가 자기 주장까지 하고 있으니 모를래야 모를수가 없다.

 

눈과 쌀 모두 흰색이니 소재 선정이 참 적절하게 느껴진다. 흰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저 푹 파인 부분까지.

집에서는 현미를 먹은지 30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저렇게 씨눈이 깎여나간 모습을 보는 게 힘들긴 하지만.

한국은 건강열풍으로 현미 잡곡밥을 먹는 집에 매우 늘어난 것을 느끼지만

일본은 아직 그렇게까지 현미에 익숙하지 않은지, 일본서 현미를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게 삿포로 도착해서부터 보이는 그 하츠네 미쿠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테고

더욱 더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이제껏 보던 미쿠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뭔가 우락부락한 느낌이 드는 이 녀석의 이름은 '미쿠다요'(ミクダヨー) 인데, 사실 이름이랄 것도 없다.

미쿠 리듬게임이 나오던 당시 게임회사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한 사람크기용 인형탈이 그 원조였는데

실제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이는 탓에 그 거대하고 육중한 몸매, 왠지 불룩해진 볼살, 썩은 동태눈 같은 눈동자 처리가 묘한 시너지를 일으켜서

순식간에 공포의 대상으로 격상되고 만 기묘한 사연을 갖고 있다.

 

 

 

설명해도 실물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드니 무서운 미쿠다요의 모습을 공개해 본다.

 

 

 

지나가던 행인을 무참히 벽쪽으로 몰아넣고 위협을 가하는 모습.

 

 

 

아침방송에 나와서 난동을 부리는 모습. 참고로 얻어맞고 날아가는 캐릭터는 지난 포스팅에 출현했던 후낫시.

 

 

 

그러니까 홍보용 인형탈을 만든 게임 회사는 과연 이게 귀엽고 깜찍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덕분에 오리지날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인기를 얻게 된 이 녀석은 피규어까지 발매되는 기염을 토하곤 했다.

물론 피규어가 저 정도 크기는 아니다.

 

 

 

눈축제라고 기합 잔뜩 넣을 필요는 없다 보니 가끔 기묘한 조각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서양쪽 관광객들이 보면 이게 뭐라고 생각할런지. 그런데 용캐도 저런 구조로 서 있다.

 

사실 눈은 눈이지만 만져보면 거의 얼음과 동일한 수준의 돌덩이다 보니 이런 포즈로도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가 보다.

 

 

 

올해 출품작들은 유난히 유루캐러가 많은 느낌이 든다. 일본은 매년마다 이상할 정도로 확 하고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여행하던 2010년도에는 '먹는 라유'라고 하는 녀석이 대유행을 타고 있었는데, 라유(ラー油)란 중국집에서 흔히 보이는 고추기름을 말한다.

이걸 일본에서 각종 양념을 추가해 밥 위에 뿌려먹는 양념간장 같은 느낌으로 개발했는데 그게 대히트를 치면서 너도나도 밥 위에 뿌려먹었던 것.

 

한국에서 어린이들 간식으로 가끔 사용하는 뿌려먹는 가루가 일본에서는 후리카케라는 이름으로 매우 대중적인 반찬이라

이런 식의 먹는 라유라는 상품도 히트를 친 것이겠지만, 막상 한국인 입장에서는 먹어보니 굳이 이렇게 먹는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유루캐러는 일정 이상의 엽기성(?)과 친근함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지역사회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떻게 해서든 지역 홍보에 힘을 쓰고 있는 지방으로서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기도 하다.

 

 

 

오오도리 공원은 TV 타워에서 시작해서 이 삿포로 자료관에서 끝난다.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쌀쌀한 날씨 속을 계속 걸어다니니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데

자료관까지 왔으니 여기 들어가서 몸이나 녹이자는 의견에 합의를 본다.

 

1926년 완공 당시에는 고등법원으로 사용되던 건물인데, 지금은 삿포로 시의 향토 자료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나니 안내판에는 매주 월요일 휴무라고 적혀있어서 잠깐 맥이 빠진다.

 

하지만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그냥 그런 안내판 하나로 다시 내몰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고맙게도 축제 기간도중에는 2층에서 턴테이블로 LP 를 감상할 수 있다고 적어 놓았다.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한 LP 전문점에서 출장나와서 음악을 들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

 

눈으로 뒤덮힌 1920년대 건물 안에서 LP 음악을 듣는 체험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체험이다.

더군다나 자발적으로 턴테이블과 LP 를 가지고 와 재생해 주는 배려심에도 마음이 따듯해 진다. 이런 것을 오모테나시라고 부를 수 있을려나.

 

 

 

눈축제에 와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란 거대한 건축물의 모습보다 이런 따뜻한 마음씀씀이임에 틀림없다.

오히려 월요일날 눈축제를 찾은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자료관 구경보다 훨씬 더 큰 추억이 생기게 된다.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아서 기분좋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우리 엄니보다 연세가 더 많아보이는 두 분이 고풍스러운 턴테이블 앞에 앉아서 인사를 건넨다.

 

듣고싶은 LP 를 선택하면 틀어준다고 한다. 한 쪽에는 일본과 외국의 다양한 LP 들이, 한 쪽에는 비틀즈 특집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코마츠군은 비틀즈를 굉장히 좋아한다. 서슴없이 선택한 신청곡은 옐로 서브마린.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선택한 곡이라서 살짝 놀랍다.

 

 

 

코마츠군의 아버지가 비틀즈의 광팬이라서 어릴적부터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자식이 이어서 좋아하게 되는 이 모습은 참 훈훈하고 부러울 뿐이다.

 

본인은 과장 좀 해서 조선시대 선비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 전반에서 공유할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가요를 들으면 클래식의 위대함을 읊어대고, 만화를 보면 시간낭비라고 하고, 영화를 보면 맨날 터지고 싸우고 하는것 밖에 없다고 했으니.

거기에 대한 반감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름 문화 컨텐츠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은 쪽으로 자라긴 했지만.

 

 

 

비틀즈의 모든 앨범을 LP 로 만나는 건 처음 경험하는 황홀한 순간이다.

경쾌하게 울려퍼지는 옐로 서브마린과 함께 LP 커버를 감상하며, 창 밖의 눈 덮힌 오오도리 공원과 함께하는 순간은

오늘 눈축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감동하는 부분이 조금 엇나간 것 같기는 하지만.

 

5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룸에 들어오다가 들리는 음악에 맞춰서 어깨를 들썩이며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 을 열창한다.

음악이 시대를 이어주는 이 모습은 일본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나에게는 언제 봐도 부럽기만 하다.

 

고지식하다면 고지식할 수도 있지만, 일본은 70년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오프닝도 아직까지 사용하는 등

현재 할아버지들의 문화 역시 젊은층이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60세가 다 되어가는 가수의 콘서트에 20대가 열광하는 등

대중문화의 연속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공감대 형성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요즘들어 한국도 예전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진 덕에 그나마 조금 형편이 나아지고 있는 듯 한데.

 

 

 

좀 전에 오오도리 공원에서 밥 말리의 흉상을 본 기억때문인지, 혹시 LP 가 있나 싶어서 문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그쪽 LP 까지는 가지고 오지 못하신 듯 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LP 문화에 익숙한 계층대에게 레게라는 장르는 조금 어색한 것일까.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비틀즈로 가자고 생각하고  Across the universe 를 부탁드렸는데

할머니께서 어느 앨범에 들었는지 알아야 틀어줄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고보니 비틀즈 노래는 그냥 듣고싶은거 마구 듣다보니 원래 앨범이 무엇인지 기억을 거의 못하고 있다.

 

본인 맛폰은 데이터 로밍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Y 양의 어른폰으로 검색을 해 본다. Y 양의 폰은 사진을 열심히 찍느라

베터리가 간당간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미안할 따름이었다. 데이터나 베터리 이관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내 것을 마구마구 퍼줬을 텐데.

 

원래 이 곡은 비틀즈의 정식 앨범이 아니라 동물보호기금 마련을 위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정식 수록된 앨범을 기억하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막상 찾고보니 그 유명한 마지막 앨범인 'Let It Be'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

LP 로 이 음악을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첫 경험의 즐거움을 만끽해 본다.

 

 

 

 

거대 조형물과 비교하면 작은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다들 사람 덩치의 몇 배는 되는 크기다.

이것도 무슨 캐릭터인가 싶어서 물어보면, 코마츠군이 거의 다 알고 있어서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본토 사람의 조력 덕분에 모르던 내용도 많이 알게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아마 이 캐릭터는 삿포로 지역방송국의 마스코트라고 한 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친숙하다고 한다.

특정 분야에 최소한의 지식 정도는 있어야 구분이 가능한 캐릭터들이 군데군데 꽤나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이 많이 오는 이곳에서 저 녀석들을 전부 이해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런거 다 이해하지 않아도 그냥 보고 즐기는게 눈축제란 녀석이니까.

 

 

 

홋카이도는 메이지 유신 즈음에서야 본토 일본인들의 거주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곳이라

일본의 주요 도시에 꼭 세워져 있던 이런 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홋카이도에 있는 성을 표현한 녀석은 아닌 듯 하다.

 

하코다테 주변에 다테 성이라는 방어용 성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건 흔적도 없이 박살나버려서.

 

 

 

Y 양과 코마츠군은 기본적으로 사진을 참 많이 찍는 편이라 굳이 내가 나설 일은 없지만

셀카로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도 있으니 가끔씩은 기꺼이 셔터를 눌러준다. 그런데 아직도 두 사람한테 이 사진들을 건네주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어디까지 알려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꽤나 친숙한 리락쿠마가 거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아이들이라면 저 품을 향해서 달려가고 싶겠지만, 혹은 어른들이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실 SD 캐릭터들을 이렇게 눈으로 만들어 놓으면 머리가 너무 무거워져서 위험하다.

 

실제로 예전 눈축제때 그 하츠네 미쿠의 눈사람이 무너져서 사람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으니까.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이번 눈축제에선 기본적으로 조형물에 너무 가까이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리락쿠마의 캐릭터성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살신성인의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한 곰.

홋카이도 하면 불곰, 사슴, 연어 등이 연상되니 지역색으로 따진다면 이 쪽이 더욱 홋카이도답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루팡 3세의 캐릭터들.

알고 있는 캐릭터가 전시되어 있으면 조금 더 흥미를 가지게 된다. 주인공인 루팡 3세가 없다는 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총잡이인 지겐이라는 캐릭터는 항상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는데, 저 눈사람의 모자 밑에는 눈이 재현되어 있을지가 매우 궁금했다.

대체적으로 개성넘치고 따라하기 힘든 얼굴 표정까지는 묘사하기 힘들었겠지만 미네 후지코의 가슴만큼은 원작을 매우 잘 존중하고 있는 느낌.

 

 

 

Y 양이나 나나 아예 일본 문화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 정도는 아니니, 이 정도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복숭아 고기를 먹으면 힘이 솟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형상화. 일본에서 가장 친숙한 전래동화다.

 

 

 

복숭아 속에서 태어난 모모타로는 힘이 장사라서 도깨비들도 쩔쩔 맨다.

 

오리지날은 모모타로와 동물 동료들이 도깨비들을 퇴치하고 보물을 갖고 돌아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지만

재미있게도 유명한 소설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의 동명 작품인 '모모타로' 에서는

모모타로를 탐욕적이고 속물적인 깡패로 묘사해서 도깨비들을 박살내고 노예로 삼아버리는 캐릭터로 해석하기도 한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아쿠타가와의 시니컬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대학에서 일본 문학 공부하다 보면 한 번쯤은 접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냥 모모타로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어쩐지 모모타로에게 질질 끌려가는 도깨비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아쿠타가와가 생각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리라 본다.

 

 

 

결정적으로 모모타로가 너무 악당처럼 생겼다.

 

 

 

머리가 너무 크니까 웃는 모습이 오히려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 흉상은 간판에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라고 적혀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서 코마츠군에게 물어보니 '최선을 다해 성심성의껏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 이라고 한다.

 

물론 그 뜻을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고, 왜 이 캐릭터하고 오모테나시가 관련되어 있는 것인가가 궁금했는데

놀랍게도 이 흉상은 남자가 아니라 타키가와 크리스텔이라는 프랑스계 혼혈 여성 아나운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금도 그냥 사진만 봐서는 아무리 봐도 남자처럼 보이는데, 실제 사진을 보니 굉장히 여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튼 이 사람이 도쿄 올림픽 유치경쟁 당시 프랑스어와 영어로 일본을 소개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그 때 사용한 유일한 일본어가 오모테나시라는 단어 하나였다고. 상당한 명연설이었고 2013년 일본인이 뽑은 그 해의 단어로 뽑히기도 했다.

 

 

 

65년 동안이나 계속된 축제다 보니 관록이라고 해야 할까, 축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요소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출장형 우체국이 축제장 안에 귀여운 데코레이션과 함께 절찬 영업중이다.

 

워낙 전자기기의 보급속도가 빠른 한국이라서 선뜻 와 닿지 않을수도 있지만

여행 중 즉석해서 보내는 종이 엽서에서는 맛폰이 결코 재현할 수 없는 실체감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여행 다녀와서는 꼭 지인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 관습이 존재하는 일본이라서

바쁜 여행일정 중 바로바로 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체국도 단순한 업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축제 전시물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일본 우체국의 마스코트인 포스쿠마와 함께 자신을 우체통에 넣어버릴 수 있는 체험행사도 진행중이다.

소소한 부분에서도 상업적 흥미를 불러일으키도록 신경쓰는 일본의 경제관념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한국에서 우체국 마스코트 관련상품을 구입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애초에 한국 우체국의 마스코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나 있나?

 

일본 우체국에서는 이 포스쿠마 열쇠고리, 스티커, 스카치 테이프, 수첩 등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중이다.

 

 

 

 

본인은 아무래도 찍는 걸 좋아하지 이렇게 찍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서 머리를 들이밀진 않았다.

사실 만약 한번 찍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내 얼굴이 저기 들어가지 않아서 매우 좌절했을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여행의 일행이 이렇게 사진찍기 좋아했던 적인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긴장감이 느껴지는 만남이었지만 왠지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사진 찍히지 않고 묵묵하게 셔터만 눌러대고 있으니, Y 양 일행은 좀 부담스러웠을려나.

 

각자의 카메라로도 정말 많이 찍었기 때문에 어쩌면 본인 모습이 찍힌 사진이 그들 손아귀에 놓여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마츠군이 이 녀석 보자마자 '후낫시~' 라고 소리치길래 뭔가 굉장한 캐릭터인가 싶었다.

정체를 알고보니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유루캐러(ゆるキャラ)중 급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녀석이라고.

 

유루캐러란 '느슨하다' 라는 단어와 'Character' 가 합쳐져서 만들어 진 명사로

기존 마스코트보다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 하면서 모자란 느낌이지만 그만큼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녀석들을 말한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유루캐러는 쿠마모토의 마스코트인 쿠마몬. 한국에서도 문구점에 가면 의외로 많이 보이는 검은 곰이다.

이름이 쿠마몬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지역 이름에 곰(쿠마)가 들어가기 때문.

 

하지만 이 후낫시라는 캐릭터는 한술 더 뜨는 느슨함을 자랑하는데, 치바현 후나바시시의 마스코트라고 우기며

개인이 맘대로 창작한 비공식 마스코트였던 것. 엉성하고 느슨함이 온 몸에 스며들어 있는데다 저 기묘하게 치켜뜬 눈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포인트를 준다.

요즘엔 엽기캐릭로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확실히 현지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 하다.

 

 

 

폭포를 나타낸 녀석같은데, 눈으로 만들어 놓으니 어쩐지 얼어버린 폭포처럼 보인다.

물줄기가 세 개로 갈라지는 건 쿄토의 키요미즈데라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표현이 좀 다른 느낌이다.

 

 

 

아주 약간의 특징적인 면을 제외하면 한순간 한국 모자인가 생각이 들었던 조각상.

나만 그랬던 건 아닌지 Y 양도 처음엔 한복 아닌가 생각했다고 하신다.

디테일을 제외하고 나면 역시 모자간의 모습은 공통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일까.

 

 

 

공짜로 내리는 눈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눈을 써야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덩치 큰 조형물이 많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 캐릭터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조형물은 후지테레비에서 방영하는 '폰키 키즈'의 캐릭터들.

 

이름을 한번 바꾸긴 했지만 벌써 40주년이라니, 코마츠군의 말로는 이걸 보지 않고 자란 일본인은 없다고 할 정도란다.

일본에서 살다보면 저 졸린눈의 공룡 캐릭터를 한 번쯤은 보게 되기도 하고.

 

한국의 뽀뽀뽀나 미국의 세사미 스트리트 정도 되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적당할 듯 하다.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할 필요가 없는 녀석들이라 오히려 재현도는 굉장히 높다.

특히 눈까지 내려서 적당히 설탕가루 뿌린 듯이 묘한 질감도 표현되는 바람에 입체감이 살아난다.

 

내가 어릴때 한국에서는 이렇게 기억에 남는 캐릭터 뭐가 있었을까 잠깐 생각해 봤는데

뇌리에 박혀있는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명탐정 바베크와 검은별이다. 매일 그거 챙겨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입에 착착 감기는 오프닝 송은 아직도 대부분 기억날 정도니.

 

하지만 사실은 중학생 될 때까지 명탐정 바베크를 '명탐정 바베큐'라고 알고 있었던 슬픈 과거가 있다.

더더욱 놀란것은 이게 원작 소설이 있었다는 점. 더더구나 놀란 점은 그 원작 소설 작가가 쾌걸 조로의 작가였다는 사실.

 

 

 

이제 검은별 검은별~ 하는 노래는 본인 나이대 사람들 외에는 점점 잊혀져가는 노래가 되었지만

40년이 된 폰키 키즈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코마츠군 말로는 자기도 어릴 때 무지 좋아했으며 지금도 대인기라고.

 

자본과 기술이 흉내낼 수 없는 강력한 문화적 무기는 단연 천천히 쌓인 시간의 흔적이다.

해외 여행이란 그 지역 사람들, 혹은 그 지역의 자연이 오랜 시간을 들여 이루어 낸 흔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닌가.

한국은 그 흔적이 한번 싸그리 지워지는 지독한 경험을 겪은 탓에 다시 첫 발부터 내딛어야 하는 힘겨운 상황이지만

최소한 그런 마음이라도 굳게 가지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으니 조금 서글퍼진다.

 

 

 

물소 경주인 듯 한데, 설명문을 보려고 해도 인파가 많고 혼자 다니는 여행이 아니다 보니 읽을 여유가 부족하다.

홀로 여행일 때는 대충 설명문을 전부 스냅으로 찍어온 다음 숙소에서 확대해 읽어보곤 했지만

일행과 함께 하는 여행에 긴장한 탓인지 그런 생각도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뭐든 익숙해지고 봐야 하는데, 함께 여행은 익숙해질만한 여건이 별로 없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데포르메적인 느낌을 주는 조형물.

몇몇 메인 조형물들은 대형 회사와 자위대가 합심해서 30일 정도의 제작시간을 갖고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중소 업체나 지역별 단체 등이 모여서 만들다 보니 퀄리티의 차이가 좀 눈에 들어오는 편이다.

 

물론 완성도와 관계없이 세계인의 축제 속에서 자신들의 완성품을 자랑할 수 있다는 기쁨은 동일할 것이다.

 

 

 

축제라고 해서 그저 즐겁고 귀여운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 설명문에 정확히 나와 있을 테지만, 굳이 설명문 보지 않아도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는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순백의 재료인 눈으로 빚어놓은 철조망은 현실의 비극과 함께 언젠가는 인간이 더 높은 이상으로 발돋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해 준다.

 

 

 

 

어른들도 즐길 수 있을만한 체험장도 있다.

걷는 스키를 타고 가볍게 20~30m 정도 돌아보는 곳이었는데, 평소대로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테지만

일행히 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참가해보기로 한다. 만약 일반적인 스키를 타고 그냥 슬라이딩해서 내려오는 녀석이었다면 타지 않았을 테지만.

 

어릴 적에 스키장에서 한번 타 보고 확실히 느꼈다. 심한 평편족인 탓에 양 무릎이 바깥으로 완전히 휘어있어서 스키를 탈 수가 없다고.

걷는 스키는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능도 수행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설원 트래킹이나 크로스컨트리에 사용하는 용도라

그냥 걷는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가방을 맡기고 카메라를 어깨에 맨다.

 

특별할 건 없고 뒷꿈치 쪽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끄러지듯 무게이동이 가능한 스키.

진짜로 걸어다닐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은 테니스 라켓 같은 펑퍼짐한 그물로 된 스노우 슈즈라는 것이 있다.

 

스키는 스키라서 상당히 미끄러운데, 넘어지는 사람도 몇 있어서 반드시 1:1로 안전요원 할아버지들이 동행한다.

전환점에서 유일하게 앞사람과 마주칠 수 있었기에 Y 양 사진을 한 장 남겨본다. 제일 먼저 출발한 코마츠군은 홋카이도 출신이라 무난하게 질주중.

 

적당히 미끄러지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전에 타 본적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발만 걸쳐본지 20년 가까이 된 터라 적당히 얼버무렸다.

 

 

 

살짝 돌아만 봐도 적당히 땀이 날 정도다. 역시 스키는 꽤나 운동량이 많은 스포츠인가 보다.

다시 신발을 갈아신고 오오도리 공원을 걷는데 유키미쿠의 포스터가 보인다. 눈축제의 마스코트가 된 것은 이번이 5번째인가 보다.

이제는 국민적으로도 꽤나 알려진 캐릭터라 코마츠군도 당연히 알고 있다. 코마츠군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런 방면에 꽤나 관심이 많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미쿠 역시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꽤나 잘 만들었는데 역시 대두라서 위험하긴 한가 보다.

예전에 저 머리통이 무너지며 관객을 덥친 적이 있어서인지 이번엔 그냥 세련된 끈으로 바리케이트를 쳐 놨다.

 

 

 

정식 출품작인지는 모르겠는데 상태가 별로 안 좋은 세균맨의 모습이 보인다.

호빵맨보다 더 정감가는 캐릭터인데, 눈축제가 깨끗해서 그런지 뭔가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

 

 

 

그에 비해 호빵맨은 저 정도 덩치가 되니 미소가 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고보니 이런 축제장에서 따뜻한 호빵이라도 팔면 이 앞에서 먹으며 사진 한 장 남기면 재미있을 듯 하다.

음식 코너는 벌써 저 뒤에서 지나쳐 버렸기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아서 살짝 아쉬웠다.

 

간단한 캐릭터인데 어째서 머리통만 놓여 있을까 의아했는데, 이 캐릭터 역시 과도하게 대두라서 그런가 싶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라멘과 햄버거, 도시락 등등 여행 첫날의 들뜬 기분에 폭풍 흡입한 음식들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원래 부어있는 얼굴이라 별 문제는 없지만 오늘 정오쯤 합류하는 Y 양 일행이 놀라서 도망가지만 않으면 좋을텐데.

 

Y 양은 홋카이도 북동부에 위치한 키타미(北見)에서 한국어 교습소에 근무하고 있는데

눈축제 기간에 휴가를 받아 이곳으로 온다고 해서 함께 구경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

대학원에서 잠깐 인사를 하긴 했지만 생면부지의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홀로 여행에 익숙한 본인에게는 나름 결심이 필요한 일.

 

키타미라면 자전거 여행때 지나쳤던 적이 있는데, 과연 그 외진 곳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신선한 사실이다.

Y 양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본인도 한번 일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홋카이도를 좋아하기도 하고, 키타미는 삿포로까지 버스로 5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라 한적한 생활을 좋아하는 나에게 매력적이기도 하다.

더구나 조금만 더 가면 홋카이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비경 시레토코가 위치하고 있어, 반쯤은 다른 의도가 있기도 했지만.

 

7시 반쯤 버스를 탔다는 연락이 와서 느긋하게 조식 챙겨먹고 뒹굴거리며 TV나 본다.

삿포로 출신 청년 한명이 합류하고 있어서 일행은 세 명으로 늘었다. 두 명보다는 덜 부담되니 좋다.

 

호텔을 떠나면 와이파이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시간을 맞춰 삿포로 역으로 나간다.

어젯밤의 매서운 눈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강렬한 푸른색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어 시작이 좋다는 느낌.

 

역 앞의 눈사람은 어제 시계탑의 녀석들과 비교해 세파에 찌든 기색이 역력하다.

일단 거의 쓰레기로 분류될만한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어 놨는데, 위치상 절대로 눈축제 관련해서 세워진 녀석은 아니다.

역시 거대 집단에서 아무리 힘을 써도 개인의 자유분방함을 넘을 수 없는 한계라는게 있는 듯 하다.

 

 

 

눈이 오는것도 좋지만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서 눈축제를 즐긴다는 건 멋진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 운이 좋구나 생각하며 Y 양 일행을 찾아본다. 살짝 해매는 느낌이 있었지만 어렵지 않게 조우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지만 여행중 파트너라는 게 그나마 금새 친숙해지기 좋은 장르니까 다행.

함께 온 코마츠 군은 파릇파릇한 20대 초반으로 참 선해보이는 표정에 나름 개그센스도 갖추고 있는 편한 타입이다.

하긴 파릇파릇하지 않은 건 일행 중 본인 하나밖에 없으니, 짐이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

 

 

 

일단 다들 일본어는 할 줄 알고, 코마츠군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니 기본적인 대화는 일본어로 한다.

물론 Y 양과 세심한 대화가 힘들 때에는 한국어를 쓰긴 하지만 너무 둘이서 이야기하다간 코마츠군에게 실례가 될 테니 자중하는 중.

 

점심시간이고 하니 가볍게 식사 후 구경을 시작하려 한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이곳 토박이인 코마츠군.

삿포로 하면 미소라멘이니 지역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기있는 지하상가의 한 라멘집으로 일행은 이끌어 준다.

어제 미소라멘 먹었지만 라멘 매니아인 나로서는 1일 1라멘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거절할 일이 없다.

 

좌석이 10개 조금 넘을듯한 조그만 가게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다. 역시 맛있는 곳은 입소문이 나는 것일까.

어제 먹었던 고급스러워 보이던 라멘과 비교해 가격도 싸도 내용도 단순한 편이지만 중요한 면발과 미소 국물의 맛은 진하고 시원하다.

예전에도 가끔 느꼈던 점인데, 라멘이란 건 일부러 이것저것 넣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편이 가장 무난한 듯 하다.

 

멘마는 오돌오돌한게 참 맛있었지만 차슈쪽은 어제 라멘과 살짝 비교가 되는 편. 하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히 맛있다.

사실 삿포로에서 미소 라멘으로 맛없는 집 찾기가 힘들 정도이긴 하지만.

 

Y 양은 일본에서 취업해 생활하는 사람으로서는 좀 놀랍게도 라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긴 일본을 좋아해도 식습관과 상성이 맞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키타미에서는 한국에서 보내온 김치나 된장 등으로 직접 밥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처럼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현지 음식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 이상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라멘으로 몸 속을 한껏 따뜻하게 만들어 놓은 후 오오도리 눈축제 구경을 위해 밖으로 나섰는데

왠걸 방금 전까지 그 쨍하디 못해 날카롭던 푸른 하늘은 어디로 가버린건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한 우중충한 색으로 변해 있다.

바람도 날씨만큼이나 매서워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겠다 싶었던 30분 전의 안도감은 싸그리 사라져 버린다.

하긴 겨울 홋카이도의 날씨란 원래 이런 것이란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어제 혼자 거닐었던 시계탑과 반대 방향에서 오오도리 공원을 향해 걸어 올라간다.

이곳엔 유명 관광 스팟인 도 청사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데

여름의 고즈넉한 고딕풍 붉은 벽돌 건물을 중심으로 한 가로수길 중간에 거대한 눈사람이 떡하니 들어서 있다.

원래 이 위치 정도에서 청사 건물을 담으면 참 단정하고 기품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겨울엔 이런 눈사람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이제까지의 장난감들에 비해 월등히 크고 단단하다. 거의 돌맹이 수준.

뒤쪽엔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어서 눈사람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홀로 여행중의 본인이라면 절대로 찍을 일이 없지만 이번엔 사진 찍히기 좋아하는 일행이 함께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만끽해 본다.

 

Y 양은 아이폰으로 찍고 코마츠군은 캐논의 G 시리즈로 찍고 나는 거대한 DSLR 로 찍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사진 찍는건 좋아해도 찍히기는 싫어하는 나와 달리 Y 양 일행은 모두 사진 찍히는데 거부감이 없다는 점.

이제껏 상당수의 주변인이 내가 카메라 들이대는 걸 그리 반갑게 맞이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찍어달라고 말을 해 줄 정도의 적극성을 보여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눈사람과 함께 사진 찍으려 계단을 올라가고 나니 사람들 시선보다 훨씬 높아지는 덕에

청사 사진을 부담없이 담아낼 수 있다. 청사의 경우엔 붉은 벽돌이 아무래도 푸른 수목과 푸른 하늘과 좀 더 어울리는 느낌이다.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며 오오도리 공원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코마츠군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라 타국인들끼리 대화에도 부담감이 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Y 양에게는 현지 생활에 한국어 교습소의 상황 등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그런 걸 전부 일본어로 말하기엔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특히 가끔씩 코마츠군에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을 법한 내용도 있으니 당히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키타미는 홋카이도에서도 꽤나 외진 곳에 위치한 마을인데, 그런 곳에 한국어 교습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수강 인원이 70명에 달한다는 것과, 그 수업을 2명의 교사가 맡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놀라웠다.

대학 수준의 한국어 실력을 보유한 사람도 있는 반면 상당수가 나이 드신 어른들이라고.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따뜻해서 좋다는 말을 하는데, 본인 역시 키소 마을에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

 

단지 돈을 저축해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는 그다지 유리한 곳이 아니라 한다.

나처럼 아예 말뚝을 박아버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역시 그 먼곳에서 홀로 생활한다는 게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리라 생각.

특히 키타미는 지금 삿포로 날씨가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겨울엔 험하기로 유명하다.

 

오오도리 눈축제는 거의 끝물이던 어제 저녁과는 달리 굉장한 인파가 모여있다.

중앙의 거대 전시물을 기점으로 양 쪽에 길이 있는데, 인파 조절을 위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관람을 권유하도록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다간 정말 복잡해 질 만한 상황이니 납득이 간다.

 

낮에는 역시 수많은 노점상들이 성황중인데, 보기만 해도 든든한 게다리와 게 된장국, 더워도 마시고 추워도 마시는 맥주 등등

미소라멘을 먹지 않고 왔어도 배가 고프지는 않을 상황인 듯 하다. 물론 사람이 워낙 많아서 먹는데 좀 초초해 질 것 같지만.

 

 

 

배는 고프지 않고, 특히 군것질을 좋아하기는 해도 여행중엔 거의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예전 여름에 방문한 삿포로는 한창 이곳 오오도리 공원에서 얼음조각 대신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어서

그 때는 먹고 죽자는 일념으로 온갖 군것질거리를 마구 씹어먹으며 다녔는데, 포만감과 더부룩한 배 때문에

여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맛있는 거 먹고 싶은 마음이야 한결같지만, 많이 걷는 여행에서는 가능한 한 배를 가볍게 해 두는 편이 좋다는 게 지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 열심히 생활중인 Y 양에게는 매장에서 팔고 있는 맛있어 보이는 과자 선물세트를 하나 드렸다.

역시 경험 부족이란 말이 절실히 느껴졌던 것이, 사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굳이 지금 저런 짐을 늘릴 필요는 없었단 사실이다.

운 좋게도 등 뒤의 가방에 넣을 수 있어 문제는 없었지만, 덜컥 선물만 사 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정에 맞는 배려도 중요하다.

 

그걸 이 사진 찍으면서야 깨닫게 되어서, 역시 사회 부적응자의 면모는 착실히 갖췄구나 싶다.

 

 

 

나보다는 당연히 감수성도 풍부하고 구경하는 재미를 즐기는 일행들일테니

인파로 인해 이동 속도가 상당히 느리지만 천천히 사진 찍어가며 여유를 가진다.

코마츠군이 상당수 조형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큰 도움이 된다. 이 녀석들은 지역 방송국의 마스코트라고 하는 듯.

 

본인은 살고 있는 지역의 마스코트 같은 건 전혀 모르는데 홋카이도 사람들은 이런 데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이것도 애향심의 차이인가 싶고, 실제로 본인은 애향심 따윈 눈꼽만큼도 없으니.

 

 

 

어제는 라이트가 꺼지는 바람에 이곳까지 둘러보지는 않았기에, 완전히 새로운 기분으로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축제에 아이들이 빠질 순 없으니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눈의 놀이터.

 

얼음 미끄럼틀은 꽤나 재미있어서 어른들이 타도 관계는 없다. 아이들 관련 놀이기구는 다들 줄이 좀 길다는게 문제겠지만.

 

 

 

그러고보니 이런 여행에선 셀카도 중요한 요소라는 소문을 들었다.

본인은 1년동안 자전거 여행 하면서도 셀카는 한두 장 정도밖에 찍지 않는 편이라

재미있게 담을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셀카를 찍는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주는 것 정도.

 

 

 

철저하게 밀봉된 부스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길래 뭔가 싶었다.

알고보니 파나소닉 에어콘 전시장인데, 저 안은 하와이처럼 따뜻한 기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대형 스크린을 밖에 배치해 놓아서 그냥 구경도 할 수 있지만, 기왕 왔으니 일행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본다.

 

 

 

파나소닉의 에어콘 성능에 대한 평가보다는

눈이 수십cm 씩 내리는 겨울 삿포로 눈축제 한복판에서 훌라 댄스를 추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 상태가 매우 묘한 기분이 든다.

 

일본은 온돌과 같은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에 에에콘의 히터 기능도 중요한 선택 요소중 하나.

이 겨울바닥에 신나게 틀고 있는 히터의 전기세 걱정에 살짝 과소비가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기업 홍보용으로 이목을 집중하는데 그다지 큰 비용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히터가 따뜻하다고 생각한다면 옆의 버튼을 눌러달라고 한다. 위에 카운터가 있어서 자꾸 늘어난다.

어쩌면 파나소닉 CM 에 우리 일행이 버튼 눌러재끼는 모습이 나올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 얼굴은 팔려도 될거라 생각하며 버튼을 눌러 줬다.

 

 

 

그 다음에 나타난 거대한 건물의 위용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삿포로 눈축제는 매년 다양한 나라들과 협의를 맺어 지원을 받아 그 국가의 랜드마크를 건설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어제 본 대만의 고궁박물관, 101타워와 함께 이번에 협력하게 된 건물이 아닌가 싶다.

 

깃발을 보니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건축물인 듯 한데 가 본적이 없으니. 첫인상은 영국 건축물로 보인다.

눈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엔 과도하게 거대한 덩치와 세심하게 조각된 기둥, 무늬, 시계탑 등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상상하기 어렵다는게 아니라 싫은 것은, 삿포로 눈축제의 메인 조형물들은 전부 자위대가 만들기 때문에.

물론 축제니까 기분좋게 임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눈과 군대는 상극 중의 상극이 아닌가.

 

훗날 찾아보니 이 건물은 말레이시아의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으로, 1897년 영국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벽돌식 건물이다.

영국식 시계탑과 이슬람 모스크 양식의 절묘한 조화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찍는 여행사진에 다른 사람 얼굴이 이렇게 뚜렷하게 나오는 일은, 가족을 제외하면 정말 정말 드문 경우다.

인물 사진은 영 찍질 못해서 Y 양과 코마츠군에게 좀 미안한 기분도 든다. 나 때문에 소중한 휴가 망치지 않기를 여행 도중에도 몇 번이고 기원하고 기원한다.

 

 

 

축제는 신기하고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광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능력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의 축제가 많이 놓치는 것이기도 하고.

 

이쪽은 일단 여기서만 먹을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는 신선한 재료를 잘 이용한 군것질거리와

수많은 이벤트 관련 상품, 선물용 세트 등 상업적인 면에서부터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는데 굉장한 능력을 보이기에

딱히 참여형 이벤트가 없어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는 잘 만들어져 있다.

 

얼음으로 된 미끄럼틀은 얼마나 미끄럽고 재미있을지.

당시 일본은 겨울왕국이 아직 개봉하기 전이었지만, 이렇게까지 대흥행을 할 줄 알았다면

삿포로 눈축제보다 더 일찍 개봉한 후 최대한 콜라보를 진행했다면 대박 터트렸을거라는 데 의심이 없다.

 

 

 

이건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타지마할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그런 부류였던 것으로 기억.

일단 환호성과 함께 사진 좀 찍고나서 세밀하게 살펴보는데, 분명 인도의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옆에 건축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한국어로도 쓰여 있어서 알아보기 쉬웠는데

역시 베이비 타즈, 즉 작은 타지마할이라 불리는 뉴델리의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였다.

1600년대 무굴 제국 시대에 건설되었고, 타지마할보다 13년 일찍 건설되었기 때문에 타지마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실제 건축물은 본 적이 없지만 예전 사진에서 본 기억에 따르면 이 조형물은 정말 놀랄 정도의 재현도를 자랑한다.

 

 

 

물론 실제로는 벽면 빼곡히 경이로운 기하학적 무늬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만

여기서 그것까지 전부 재현했다가는 도저히 축제 후에 철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까운 미술품이 되었을 법 하다.

 

높이 12미터의 이 조형물은 2250 톤의 눈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5톤 트럭 450대 분량의 눈이라고 하니

내가 평생 태어나서 본 눈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은게 아닌가 싶은 기분마저 든다.

아이스블록 공법이라는 독자적인 기술을 사용해 약 100개의 블록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만든 녀석이라고.

 

아, 물론 지금 이 설명은 포즈 잡고 있는 Y 양에 대한 설명은 아니다.

 

 

 

평생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로 생각하고 있는 곳이 인도, 몽골, 마추픽추, 프랑스, 우유니 정도인데

여기서 이 정도 퀄리티의 눈 모형을 보게 되니 그 마음이 사그라드는게 아니라 더욱 더 가고 싶어진다.

물론 많이 꼽아서 저 정도고, 사실은 전 세계 안 가보고 싶은 곳이 없긴 하다.

 

이곳 눈축제의 테마는 매년 다양하게 바뀌고 있으니, 삿포로 눈축제를 매년 방문한다면

내가 모르고 있던 곳의 아름다움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자꾸 늘어만 갈 테지만.

 

스스키노쪽의 얼음 조형물들은 대부분 업체들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규모의 눈축제를 여는데 지역 상권의 협력이 없이는 예산 편성하기가 쉽지 않을테니.

 

대구에 사는 본인으로서는 대구의 유명한 지역업체가 무엇인지 기억나는게 거의 없다시피 한데

PR도 이런 임팩트를 가질 수 있도록 머리쓰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것도 없을 듯.

 

 

 

스스키노 눈축제 쪽은 사진 찍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오오도리 공원이 워낙 넓고 커서 비교되는 점도 있지만

원래 유흥가 골목이기 때문에 주변의 화려한 간판과 네온사인이 얼음 조각상의 감상을 방해하는 면이 있다.

거기다 조각상 라인이 두 줄로 붙어서 설치되어 있어서 잘못 찍으면 뒤쪽 조각상과 겹쳐서 형태를 파악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덧붙여서 오오도리 공원의 라이트가 꺼지는 바람에 관광객이 전부 이쪽으로 몰려든 이유도 있고.

 

 

 

오랜만의 홀로 여행이고, 카메라를 자주 만지지 않은 상태라 첫 날 야간의 얼음 조각상 촬영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능한 한 조각상만의 디테일을 담고 싶지만, 조각상 덩치는 크고 사람은 많고 길은 좁아서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촬영하면서도 훗날 집에 돌아가면 결과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은 보정이라는 양념을 좀 더 팍팍 치는 수 밖에 없다.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는 보정이라서 6개월만에 보는 결과물은 역시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조형물의 미적 완성도는, 낮다고 할 수준은 결코 아니더라도 시끌벅적한 축제에 노출된 야외다 보니 엄청난 디테일은 아니다.

그래도 여러 가게와 회사들이 손발걷고 참여한 눈축제라서 자존심 같은 게 걸려있다는 느낌일까.

조형물의 완성도로 승부를 보려는 곳도 있고, 신선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도 있다.

 

홋카이도 하면 불곰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곳이니 이런 곰 조형물이 자주 눈에 띄는것도 이상하지 않다.

특히 이 녀석은 아기곰과 엄마곰이 마주보는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다.

 

 

 

이 정도 크기와 디테일한 작품을 만들려면 역시 제작자의 규모도 커져야 하는 법인가 보다.

전시회에 사용된 얼음 조각상은 대부분 얼음 블록을 여러 개 붙여서 만들었는데

기본적으로 순도가 꽤 높은 얼음이라서, 투명한 부분과 불투명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기에 수월하다.

 

 

 

홋카이도 서식종은 아니지만 겨울 눈축제다 보니 등장한 듯한 눈표범 조각은 꽤나 생동감있게 만들어졌다.

무늬가 하트모양인 것은 그냥 관광객에 대한 애교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저렇게 경계선이 생길 수밖에 없는 블록 얼음으로 만들기보다

통짜 얼음으로 조각했다면 크리스탈처럼 청명한 작품이 만들어 졌을텐데 싶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순도를 가지는 얼음덩어리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고

의외로 통짜 얼음보다 이런 블록 형식으로 만든 조각상의 강도가 더 강하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자꾸 뒷편의 맥주 선전 여배우 얼굴이 신경을 자극하지만 비네팅 팍팍 넣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정해 본다.

회사들이 제공한 조각상들이다 보니 어쨌든간에 자사 홍보는 빠뜨리지 않고 넣어놨다.

여의주 속에 뭔가가 들어있는데, 속에 내용물이 있다면 바싹 얼어있을 것 같다.

 

얼음속에 저런 게 들어있으면 왠지 꺼내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다행히도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는 않은 듯 하다.

 

 

 

일본 TV를 시청중이면 지겹도록 볼 수 있는 삿포로 맥주 '보리와 홉'이 먹음직스럽게 얼음 속에 박혀있다.

조각상으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낮아보이지만 임팩트를 주는덴 그럭저럭 성공한 듯 싶다.

 

저 맥주는 다른 것보다도 지역에 맞춰 CM 내용이 다르다는 점이 특징.

해안가 지방에는 방금 잡아올린 생선을 구워먹으며 맥주를 마신다던가

홋카이도에서는 소울 푸드라 불리는 징기스칸이나 소시지 등을 구워먹으며 맥주를 마신다던가.

어쨌든 맥주는 들어가지만 CM 의 방향은 꽤나 재미있게 잡아서, 보고 있으면 문득 한 잔 마시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끌릴 수 밖에 없는 건, 저 조각상의 디테일보다 싱싱하게 박혀있는 생선들 때문일 듯.

나름 컨셉은 잘 잡은 듯 하다. 용궁을 표현하는데 이거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 테니까.

생선이 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싱싱할 때 넣었다면 축제 끝나고 나서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스스키노는 삿포로 최대의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아직 여기서 놀아본 적이 없다.

혼자서 먹고 마시고 하는데 이골이 난 몸인데도 불구하고, 여긴 너무 화려하고 직설적인 유흥가라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들어가는데 저항이 생긴다.

 

주위에 술 좋아하는 친구도 별로 없고, 진짜 징하게 마시고 놀 만한 친구는 같이 여행가기 힘든 경우가 많고.

스스키노의 밤거리는 그대로 사진에 담기만 해도 밤에 살아 숨쉬는 대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하는데 부족함은 없지만

일반적인 외국인 관광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질펀하게 놀 수 있는 곳이 스스키노란 곳이라, 왠지 자주 오지 않는 곳이다.

 

 

 

삿포로 눈축제니까 꼭 홋카이도에 관련된 조각상만 나오란 법은 없어도

말을 타고 창을 들고있는 이 조각상은 대체 어떤 연유로 해서 이곳에 서게 된 건지 의아해진다.

 

제목과 설명이 적혀는 있었지만 상당한 수의 관광객들이 해류처럼 이동중이라 제대로 쳐다 볼 시간이 없다.

일본인 관광객 절반에 중국인이 다수인 외국 관광객 절반이 시끌벅적하게 사진 찍으며 거리를 채우고 있다.

대다수가 컴팩트 카메라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지만, 꽤나 육중한 DSLR 과 렌즈를 짊어진 사람들도 보인다.

 

유명 관광지에 오면 그나마 마음 편한 점이, 아무리 큰 카메라 들고 설쳐도 딱히 경계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일 뿐이지만, 이곳 스스키노 축제장은 야간 조명시간부터 근처 가게들이 불을 좀 꺼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각상 앞에 개별 조명이 있긴 해도 주위 가게들의 불빛이 워낙 강해서 피사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스트로보가 있으면 이럴 때 요긴하게 쓰이겠지만 사실 사람이 많아서 마음껏 터트리기도 미안하다.

 

하프를 켜며 내려오는 여신의 모습이 꽤나 인상깊었지만 도무지 만족할만한 구도와 광원이 나오질 않는다.

주위 불빛이 전부 꺼진 상태에서의 모습은 상당히 몽환적일 듯 한데.

 

 

 

한국처럼 취하기 위해서 마시지 않는다 뿐이지, 일본도 술 잘마시기로는 유명하다.

지역주가 꽤나 발달해 있어서 술의 종류는 상당히 다양한 편인데, 축제에 참가하는 회사들이다 보니 역시 술 관련 회사가 많다.

 

하이볼은 오리지날 신봉자들에겐 이단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가볍게 마시기 좋아서 요즘 트렌트에 알맞는 녀석.

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것들 조금씩이라도 맛을 보며 여행을 음미하겠는데, 별로 당기질 않는다.

 

 

 

표절인지 오마쥬인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녀석. 그런데 콜라병의 디테일에 신경쓰느라 곰의 디테일이 영 좋지 않다.

스스키노의 조각상들은 뭔가 미적인 완성도를 뽐낸다기 보다는 아이들 학예회에 들뜬 기분으로 출품하는 그런 기분인 듯 하다.

그 점이 오히려 축제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릴수도 있으니.

 

 

 

넓게 찍어도 주위가 산만해서 알아보기 힘들고, 잘라서 찍어도 영 난잡해 보이는 사진 덕분에

찍어놓고 숙소에 돌아와서 확인할 때도 이게 뭔가 아리송했던 작품.

 

물고기를 잡아채는 독수리 상인데, 디테일은 상당하지만 한 장에 담아내기가 매우 힘든 위치여서 아쉬웠다.

 

 

 

아이디어의 승리라고 해야 할까. 간단하지만 뭘 나타내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그러고보니 큰 조각상에서부터 아담하고 간결한 녀석들까지, 이 곳에 출품하는 얼음들은 별다른 제한이 없나 보다.

 

 

 

가만히 얼음조각들만 쳐다보며 걷고 있는 것도 축제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건지

중반쯤 걸어가자 아이들이나 연인들끼리 사진찍기 좋은 체험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아이들이 자리에서 떠난 틈을 찾아서 찍기 위해 잠시 기다렸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눈과 얼음만큼은 남아도는 이곳이니 좋은 추억거리 남기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날씨가 날씨라서 녹아버릴 염려도 없고.

 

 

 

굉장히 단순하고 투박한 조각상이지만 이런 미숙함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얼음이든 눈이든 기본적으로 추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겨울 홋카이도는 매력덩어리다.

물론 여름의 홋카이도 역시 일본답지 않은 거대한 생명력을 자랑하다 보니 놓칠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남들 생각은 거의 안하는 개인주의 충만한 성격이지만, 이 사진 찍으면서 관광객들이 즐거워하기를 잠깐이나마 바래 본다.

 

 

 

녹아버리면 아까울 듯한 퀄리티의 작품도 간간히 눈에 띈다.

동양식 인어의 유려한 모습은 조금씩 심해지는 눈발과 맞물려 물 속에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스스키노 조형물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표현력에서부터 후리소데의 질감을 살리려고 넣어좋은 촘촘한 구멍까지.

일주일의 축제기간 동안에만 빛을 발하고 사라지는 작품들이라 그런지 사진으로 담을 가치가 있는 기분이다.

 

 

 

청새치의 과장된 지느러미도 역동감을 살리는데 그만이다.

얼음의 특징 때문인지 굉장히 싱싱해 보인다. 청새치 고기는 먹어본 적이 없지만.

 

 

 

조촐하지만 달달한 기념사진 찍기 좋은 일루미네이션 로드도 마련해 놓았다.

밤이 길고 차가운 홋카이도 여행이라 나 같은 홀로 여행자가 즐기기에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듯.

 

 

 

유리 공방 체험처럼 얼음 조각 만들기 체험같은거 있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 봤는데

아무래도 가공 기구들이 일반인들에게는 좀 위험한 것들이 많을 것 같아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세밀한 곳이 많거나 세로로 길쭉한 조각상의 경우 무너지거나 부분부분 떨어져 나가는 거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강설량 빠방하고 영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별로 없는 삿포로의 겨울 특성상 별 문제가 없는 듯 하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두 번째.

 

이렇게 조형하려면 대체 몇 개의 블록을 사용해서 얼마나 세밀하게 깎아내야 할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축제 후 부서지거나 녹아내리는 모습을 볼 때의 제작자 마음은 과연 어떨런지.

 

 

 

심각한 상황이지만 왠지 연어 얼굴이 웃겨서 긴장감이 돌지 않는 유쾌한 작품.

 

 

 

의도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부에서 숨구멍같은 기포가 사방으로 뻗어나온 모습이 신기하다.

블록을 결합한 부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만들었을지 더욱 궁금한 방식.

 

 

 

사슴이 좀 위엄있어 보이는데, 실제로 에조시카(エゾシカ)라 불리는 홋카이도 사슴은 진짜 크고 카리스마 있다.

일본 본토 사슴의 2배 가까운 140kg 정도의 수컷은 오토바이 라이더들에게 불곰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

불곰은 좀처럼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지만 이 녀석들은 도로가에서도 태연히 놀고 있다가 오토바이가 달려오면 놀라서 뛰어가는데

그럴 경우 접촉사고라도 나면 그 거대한 덩치 덕에 라이더들도 큰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2010년 여름 시레토코에서 땀 뻘뻘 흘리며 자전거로 고개를 넘어갈 때에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풀을 뜯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

자전거에서 내려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도 전혀 도망갈 생각을 않는다. 실제로 저 녀석들이 덤비면 내가 더 위험하니까.

자전거야 속도가 느려서 쌍방 충분히 피할 수 있지만 라이더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진짜 노골적인 홍보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진찍는 사람이 많았던 장소. 그야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지만.

그것도 싸구려 조그마한 녀석들 넣은 게 아니고 기회만 있으면 뜯고 싶은 녀석들을 얼음속에 처박아 놨으니 당연하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가끔 한국어와 일본어로 '아깝게스리~' 라는 발언이 바람을 타고 귓가에 들리기도 했다.

중국어는 알아들을수가 없어서 무슨 말 한 건지 모를 뿐, 아마도 비슷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스시잠마이의 조각상은 그다지 공을 들이지 않고 모든 힘을 날생선 얼음속에 집어넣기에 투자한 기분인데

그래도 돌고래끼리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 부분은 묘하게 정감가는 느낌이다.

 

 

 

술도 아닌 그냥 생수 회사에서도 질 수 없다는 듯 공을 들여서 조각상을 전시해 놓았다.

안에는 정말로 액채가 들어있는 듯 한데, 얼어서 부피가 커지더라도 저 얼음덩어리를 깨부술 만한 힘은 아닌가보다.

 

사진 오른쪽에는 건장한 한국남성이라면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를 그 유명한 회사의 가게가 우연히 잡혔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세 번째.

 

얼음으로 조각한 용이라는 소제는 많이들 쓰여서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역시 내 키보다 더 큰 얼음이 이렇게 유려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상당한 임펙트가 있다.

 

 

 

조형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지만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한 장.

내 기억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인스턴트 라멘중 하나로 유명한 캐릭터다.

사실 중국인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느낌이 드는데, 익살적인 모습이 재밌기도 하지만 중국인들이 봤을 땐 어떨런지.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삿포로라서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성원은 대단한 수준이다.

한사발 들이키면 끝내줄 듯한 삿포로 맥주와 콜라보 한 것은 이곳 축구팀 콘사도레 삿포로(コンサドーレ札幌).

 

홋카이도 주민을 도산코(道産子) 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거꾸로 읽은 콘사도(こんさど) 와 스페인 단어 올레(ole) 를 결합해 만든 것이 콘사도레라는 이름.

야구팀인 닛폰햄 파이터즈 만큼 성적이 좋지는 않지만 강한 지역공동체 정신으로 묶여있는 삿포로이다 보니

이 팀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은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각별하다. 그래서 콘사도레 팀을 위한 모금함까지 마련되어 있다.

 

 

 

좀 전에 화려하게 비상하던 청새치가 여기서는 어부한테 낚이고 있다.

섬나라다 보니 낚시를 매우 좋아하는 일본인인데, 청새치를 혼자 낚는다면 아마 평생 자부심을 가지고 살지 않을런지.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기도 하는 청새치는 상어 이상으로 강력한 바다의 지배자중 하나로, 1인 낚시로 청새치를 낚는다는 건 엄청난 영광이다.

 

 

 

당시 삿포로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이 절찬 상영중이었기 때문에, 이 녀석도 등장했다.

펜텀까지 조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인지.

 

일본에서 오페라는 딱 한번 가 본적이 있는데, 관람 수준이나 부대 시설이나 한국의 어떤 공연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여서

그 이후 한국에서 갔던 공연에서는 열악한 환경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도쿄 여행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먹어본다는 그 유명한 스시잠마이(すしざんまい) 초밥집에서 만든 부스다.

가격대 성능비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워낙 유명해서 매니아들에게는 그닥 평가를 받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고.

 

예전에 참치 한 마리를 18억 주고 구입했다고 한국 뉴스에도 나온 그 가게다.

거대 체인이라 괜스레 참치 가격 올린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가게.

여기서도 그 뚝심을 발휘해서 참치 한 마리를 그냥 박아 넣어놓았다. 세상에 이렇게 아까울 수가.

 

가게 홍보를 위해서는 이만큼 시선을 끄는 방법이 또 없을테니 매우 적절한 선택이겠지만

기본적으로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된다는 철칙이 아주 어릴 적부터 머리에 박혀있는 본인으로서는 홍보 여부와 관계없이 그냥 저 참치가 아까울 뿐이다.

 

물론 참치는 원래 냉동한 것을 잘 해동시켜 먹는게 일반적이니, 축제 끝나고 그대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진 찍는다고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은 체로 셔터를 눌러재꼈더니 돌아올 때 즈음엔 좀 무리했다는 느낌이 든다.

옷을 두툼하게 입은 곳은 전혀 문제없지만 역시 카메라를 잡은 손과 얼굴이 문제다.

 

생전 처음 써보는 비니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주기 때문에, 비니가 가려주는 귓볼은 무사하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

손가락은 거의 감각이 없었지만 그래도 장갑 때문에 카메라 조작이 불편해 지는 것보다 이게 낫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스스키노의 화려한 밤거리를 기념삼아 남기고 슬금슬금 숙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스스키노를 빠져나와 모스버거에서 몸을 녹이며 치즈버거 세트를 맛있게 먹었지만

기온차가 심한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렌즈쪽에 서리가 생겨버려서 사진을 찍을수는 없었다. 렌즈에 눈이 묻는 걸 열심히 커버했는데 서리만큼은 어쩔수가 없다.

 

 

40분 가량 일기를 쓰며 버거를 씹어먹고 나서 상당히 조용해진 삿포로 시내를 걷는다.

스스키노가 최후의 보루일 뿐, 이곳도 늦은 밤이 되면 인적은 상당히 뜸해지는 편이다.

냉정할 정도로 차가워 진 밤거리는 삭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생전 처음보는 눈의 향연에 흥분한 나에겐 기분 좋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경북 토박이로 이런 눈을 즐길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는

그저 10일간의 여행동안 조금이라도 더 이런 눈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이러다가 한번 크게 당해서 눈을 똥가루 따위로 인식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특히 삿포로와 그 주변을 돌아보는 3일간의 여정은 그 다음부터 일어날 본격적인 여행의 몸풀기에 지나지 않는다.

부디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때까지 눈에 대한 나의 호의적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시계탑도 낮과는 달리 훨씬 차분해 진 느낌이라 여유롭게 사진을 담는다.

아마 홀로 여행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늦게까지 도심을 거닐며 산책을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내일부터는 홀로 여행중 생애 처음으로 이틀간 합류하는 현지 일행이 있어서 조금 긴장되기도 한다.

둘 다 초면인 사람이라서 상당히 긴장되지만, 삿포로와 오타루를 둘러보는 정도의 가볍고 보편적인 루트라서

맨날 혼자서 관광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파고드는 버릇만 잘 억제하면 평범한 동행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삿포로에 도착한 지 10시간 쯤 되었지만 여전히 이 풍경은 신선하고 즐겁기만 하다.

그렇게 눈이 왔는데 인도쪽은 말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그 눈이 전부 내 키보다 더 큰 높이로 옆에 치워져 있다는 게 놀랍다.

 

서울의 미끄러운 바닥보다도 훨씬 더 걸어다니기 편한 점 하나만으로도 삿포로의 첫날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호텔 근처의 편의점에서 따끈한 도시락 하나 사들고 숙소로 들어가 TV를 켠다. 히터를 틀지 않으면 조금 춥지만 그래도 아늑하게 견딜만 하다.

 

나침반님 집에서 하룻밤 자고 공항으로 가려던 계획은 미묘하게 실패에 가깝다.

새벽 5시에 공항 리무진을 타야 하는데 새벽 3시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인 것.

마음 속으로는 대충 그렇게 될 거란 사실을 예상하고 있기도 했고

실제로 나침반님과 수다떨지 않았더라도 여행 전날엔 잠을 자지 못하는 특성 상 뒤척이며 시간 보냈을 것.

 

여행 첫날엔 무리하지 말자는 의미로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는 게 관례에 가까워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7시에 도착한 인천공항은 기대감에 부푼 나의 마음을 한순간에 붕괴시킬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 있다.

 

평생 어느 시간대라도 이렇게까지 인파로 붐비는 인천공항은 본 적이 없다.

9시 5분 출발이라 넉넉하게 7시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진에어 카운터는 백여 명에 가까운 대기자로 빡빡하다.

서둘러 줄을 서서 발권받는데 40분 가까이 걸렸는데 게이트 통과하는 검색대에만도 지네처럼 줄이 늘어서 있다.

그 넓은 인천공항에서 각각의 게이트에 대기하고 있는 줄이 옆쪽 게이트 대기줄과 만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길이.

 

세상에 이럴수도 있나 싶은 생각으로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데, 나 말고도 걱정하는 사람은 많은지

지나가는 직원 붙잡고 이러다가 비행기 못타면 어떻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꽤 있다.

 

심장이 쫄깃해 질 정도의 긴장감을 견디며 출국장을 빠져나오던 시간이 8시 35분.

대체 무슨 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느긋하게 공항에 도착해 구경이나 하자던 계획은 완전히 물건너갔다.

 

어쨌든 좌석에 앉고 나니 긴장은 풀리고 이륙과 함께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낸다.

다들 어느 나라로 떠났는지 신 치토세 공항행 비행기는 빈 좌석이 꽤나 남아있어서 옆자리에 카메라를 던져놔도 문제 없다.

 

 

 

당시 서울에도 그럭저럭 눈이 왔었고, 살짝 얼어버린 바닥 때문에 고생도 좀 했지만

비행기가 고도를 올리면 올릴수록 시야가 눈구름으로 점점 흐려지는 것을 보니 살짝 걱정도 든다.

 

겨울의 홋카이도는 처음이라 그 어마어마하다는 눈 속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싶다.

홀로 여행이라 도시간 이동을 제외하면 거의 두 발로 움직여야 하는데

심한 평편족인 본인은 얼음바닥 위에서 균형잡기가 매우 힘들다. 발바닥 중앙이 툭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안정감이 없다.

 

겨울 여행은 몸조심이 제일이므로 평생 한 번도 써 본적 없는 비니도 베낭속에 넣어 놨고

튼튼한 장갑과 손목 방한대, 홈쇼핑에서 선전하던 아이젠 수납형 등산화도 신고 왔다.

구입한 돈이 아깝더라도 아이젠을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지만.

 

 

 

일본쪽으로 날아갈수록 좀 전에 봤던 한반도쪽 구름은 양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구름이라기 보단 아예 눈덩어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비행기 밑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도 역시 겨울 홋카이도라면 눈이 팍팍 내리기를 기원했던 만큼, 긴장과 함께 기대감도 커지는 기분.

 

 

 

저가항공이라서 홋카이도 가는 동안 굶을 줄 알았는데 가벼운 간식거리는 제공해 준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미식의 전당으로 소문난 곳이긴 한데

홀로 여행 도중에는 사실 아무리 자금 여유가 있어도 맛집 찾아다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부분 적당히 즐길만한 음식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먹기 때문에, 이런 간식 역시 되는대로 먹어주는게 이득이다.

이런 말 하는 이유는, 한 칸 건너 여자 승객이 빵을 반 쪽만 먹고 그냥 남겨버렸기 때문.

 

 

 

신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서는 아직까지 추위를 느낄 일이 없다. 워낙 따뜻해서 땀이 줄줄 흐를 정도니까.

 

일본에서도 홋카이도 하면 겨울에 끝내주게 추운 지역으로 대충 알려져 있어서 오해를 많이 사는데

날씨가 추운만큼 건물 내부의 난방 장치가 워낙 잘 되어 있는 바람에

오히려 요즘 홋카이도 젊은이들은 본토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탄다고 한다.

 

신 치토세 공항도 전력난이 걱정될 만큼 더운 편이라 베낭과 카메라 사이드백, 두꺼운 점퍼로 몸을 감싼 나로서는 견디기 힘들다.

빨리 짐을 내려놓아야 좀 움직일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 도착부터 느껴지는 시끌벅적한 축제의 기운은

아무래도 셔터를 누르지 않고서는 쉽게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에게는 피규어로 친숙한 하츠네 미쿠(初音ミク)가 사방천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적지 않은 문화컬쳐(?)로 다가온다.

물론 미쿠라는 캐릭터를 만든 회사가 삿포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역 상품으로서 홍보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삿포로 눈축제의 공식 입구인 공항 전체를 미쿠로 도배해 버리는 모습은 예상을 웃도는 덕력이다.

 

아마 오타쿠 문화와 전혀 접점이 없는 일반 관광객이라도 필연적으로 저 캐릭터 모습 정도는 눈에 박혀서 돌아가게 될 듯 하다.

 

 

 

공항에서 하룻밤 즐길 생각인지, 신 치토세 공항의 메인 홀에는 미쿠 관련 이벤트로 바글바글한 상태.

공항 여기저기에서 스템프 찍어오는 미션부터, 일러스트레이터의 원화 갤러리, 레이싱 기업들과의 스폰서 부스 등등

이번 축제에서 아예 끝장을 봐 버리자는 느낌으로 물량공세를 펼치는 분위기는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일본에서는 뉴스에도 몇번 나오고, 거대 자동차 회사의 글로벌 CM 에도 등장하는 등 단순한 오타쿠 캐릭터의 범주를 넘어선 편이긴 하지만

공항이라는 나름 딱딱한 공공 기관물에 이런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굉장한 임팩트를 가져다 준다.

 

 

 

나름 피규어도 몇 개 가지고 있고, 노래도 몇 곡 들어봐서 그럭저럭 이질감을 덜 느끼는 본인이라도

굉장히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그래도 시작부터 카메라 셔터를 좀 풀어놓을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기저기 담아본다.

땀흘리며 거대 카메라 들고 인형 찍어대는 뚱땡이는 분명 전형적인 오타쿠의 모습일텐데.

 

 

 

미쿠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녹색 머리에 가깝지만

본사인 크립톤 퓨쳐 소프트웨어가 삿포로에 있다는 이유로 눈 축제 마스코트에 지정된 이후

매년마다 눈축제 기간에서만 공개되는 한정판 바리에이션 모델들이 등장해 매니아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고 있다.

 

눈축제 하면 역시 눈이니 바리에이션의 대부분은 눈이나 흰색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지는 편.

가장 우측의 버전은 일본 전통 결혼식 때 사용하는 의복인 시로무쿠(白無垢) 를 입은 미쿠인데

참 마음에 들어서 하나 구입해볼까 했는데, 금새 품절되고 나서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라버려서 깔끔하게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신 치토세 공항은 국제선보다 국내선 쪽이 훨씬 활성화 된, 한국에서 보자면 이상한 구조로 되어있지만

규모면에선 꽤 좁은 편에 속해도 효율높은 배치를 통해 즐길만한 것들을 알뜰하게 모아놓은 느낌이 든다.

최상층엔 극장도 있는걸 봐서 확실히 모든 편의시설이 국내선 이용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도 들고.

 

위에서 사진 찍고 있으니, 이번 2014년 겨울버전 미쿠는 아무래도 마법사 의상인 듯 하다.

어차피 저런 한정판은 이미 예전에 예약판매로 동났고, 실제 눈축제 기간에 구매는 거의 불가능하니

그냥 이런 오타쿠 에너지로 가득 찬 공항을 담아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를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미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텔에 짐 풀어놓을 시간도 없이 공항 도착하자마자 몇 시간은 거뜬히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곳저곳 많이 꾸며놓았다.

위층을 한바퀴 둘러보니 실제로 일본 레이싱 경기에 스폰서로 참가중인 미쿠의 상판대기를 구경할 수 있다.

 

이 팀의 성적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차를 모는 레이서도 나름 미쿠 매니아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스폰서야 높으신 분들의 결정이니 실제로 레이서는 미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있지만

저런 프레임을 두르고 레이스를 펼치다 보면 어쨌든 이런 문화에 익숙해 지지 않을까 싶다.

쪽팔려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레이서라면 그건 참 불행한 일이겠지만.

 

 

 

첫째 날은 무리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가 짐 풀어낸 뒤에

잠깐 산책만 하고 맛있는 먹거리로 배를 채운다는 본인의 교과서적 절차가

이 신 치토세 공항에 불현듯 나타난 거대한 오덕의 불길에 갈팡질팡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쓰여있는 것처럼 이 미쿠 이벤트는 2월 11일까지라, 귀국편에서는 볼 수 없으니 오늘밖에 기회가 없다.

짐 좀 풀어놓고 다니고 싶어도 공항에서 코인 락커 사용하는 비용이 얼마나 아까운지.

아직 늙은 몸이라고 할 만한 처지는 아니니 그냥 땀 좀 흘리고 돌아다니기로 한다.

 

 

 

미쿠는 볼만큼 봤으니 신 치토세 공항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눈에 새겨둔다.

국내선에 바글바글한 내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만 봐도 짐작이 가지만

홋카이도라는 곳이 일본인 입장에서는 반쯤 해외여행 가는 기분으로 오는 곳이라서

특히나 이런 눈축제 기간엔 외국인만큼 내국인들 행렬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다들 공항에서 뭘 하느라 빨리 숙소로 이동하지 않는지, 모든 음식점이나 휴식용 벤치 등이 사람으로 꽉 차있어서

그냥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즐길 거리가 없다.

최상층의 극장, 게임 센터 등엔 사람이 별로 없어 널널했지만 지금 그런 거 볼 시간도 아니고.

 

 

 

일본의 공항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옛 향수 풍기는 구조물도 금방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안에 들어가서 만져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옛 전철 모형인데

이 전철이 움직이고 있을 당시엔 그냥 치토세 공항이라고, 한국의 몇몇 공항과 마찬가지로 항공자위대와 함께 사용하던 조그마한 곳이었다.

 

실제로 이 녀석을 타 본 사람도 아직 살아있을 나이지만 지금 도쿄와 신 치토세 공항의 일일 항공편수는

전 세계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굉장한 수송량을 자랑하고 있으니 참 감회가 새로울 듯 하다.

 

 

 

적당히 공항 구경을 마치고 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삿포로로 향한다.

삿포로발 열차는 이곳이 출발역이지만 축제 기간이라 워낙 사람이 많아서

일부러 열차 하나를 보내버린 후 맨 앞줄에서 대기하다가 잽싸게 들어가 좌석을 하나 확보한다.

 

삿포로까지 50분쯤 걸리는 거리라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던 겨울의 홋카이도 실내는 무조건 덥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빡빡한 인파속에 이 정도 짐과 옷가지를 껴안은채로 서 있으면 땀으로 범벅이 될 것이 뻔하다.

아니나다를까 서 있는 사람들은 거의 출근길 열차를 방불케 하는 형상이 되어버려서 아둥바둥거리기 시작한다.

 

노인네들도 좀 서 있는 바람에 살짝살짝 양심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편안하게 삿포로에 도착. 이렇게 오는 건 4년만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JR 여행센터에 가서 레일패스를 구입하는 것.

10일간의 적당히 긴 이번 여행은 렌터카를 쓰지 않고 홋카이도를 가로질러야 하는 긴 이동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레일패스의 힘이 필요하다.

외국인에게만 판매하는 이 레일패스는 이동거리가 길고 빈번할수록 압도적인 할인율을 자랑한다. 어쨌든 기간 내엔 무제한 이용이 가능하니까.

 

여행 전 준비과정에서 가장 머리를 싸매게 만든 것이 이 레일패스인데

플렉서블이라 하는, 4일간 사용할 수 있으며 날짜를 지정할 수 있는 패스를 제외하면

3,5,7일권 전부 개시하는 날부터 연속적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요금이 가장 많이 나오는 날을 잘 고려해서 개시일을 선택해야 하고, 그 전까지는 교통비를 최대한 줄여야 이득.

 

고민끝에 7일권으로 2월 12일부터 사용하는 레일 패스를 구매한다.

9~11일까지는 삿포로 눈축제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한 Y 일행과 지낼 예정이니

굳이 레일패스를 사용할 만큼 이동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안내원에게 한국 여권을 보여주자 한국어로 열차편 예약에 대해서 질문해 온다.

발음상의 미묘한 어색함은 있어도 거의 대학원생 레벨의 숙련도를 자랑하는 한국어다.

 

여행도 왔겠다 평소의 낯가림은 좀 접어둬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한국어 참 잘하시네요' 라고 일본어로 말해준다.

안내원도 웃으면서 일본어 잘하시네요 라고 한국어로 대답해 주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일본인 안내원이 한국어로 말하면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어로 대답하는 형이상학적인 상황이라 묘한 기분이 든다.

 

예정과 완벽히 맞춰서 이동하기는 힘들겠지만 일단 자리라도 예약해놓자는 의미에서

12일부터 시작될 장대한 장거리 기차여행 좌석을 하나하나 예약해 놓았다.

레일패스의 좋은 점은, 출발시간 전이라면 언제든 무료로 캔슬 가능하며, 남은 자리를 얼마든지 다시 예약할 수 있다는 것.

이번 여행은 뒤로 갈수록 굉장히 외진 곳으로 기어들어가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기차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하루 꼬박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수정의 여지를 조금 남겨놓은채로 일단 귀국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열차까지 전부 좌석예약을 마친다.

 

 

 

숙소는 천원 이천원이라도 저렴한 곳으로 잡아 놓았다.

어차피 어딜 가나 한참을 걸어다녀야 할 여행이라서 호텔의 위치는 별 관계가 없다.

 

삿포로의 정경은 생각만큼 눈이 많이 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자세히 보니 인도쪽의 눈을 놀랄 정도로 열심히 치워놓아서 생긴 착각에 불과했다.

인도쪽에 쌓였던 수많은 눈은 내 키보다도 더 큰 높이로 옆에 쌓여있으며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유심히 보니, 눈이 수십cm 이상 쌓인 채로 굳어버리는 바람에

그냥 도로면 전체가 위로 올라와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과연 겨울 삿포로는 느낌이 틀리다는 생각에 기분이 매우 좋아진 채로 호텔을 찾으러 나선다.

물론 중간에 볼만한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카메라는 손에 쥐고 있다. 생각한 것보다 걷기가 수월해서 카메라 박살낼 가능성은 좀 줄었다.

 

삿포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 녀석은 일본에서 한개밖에 없는 구식 원형 우체통.

원형 우체통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응모받은 디자인으로 설치한 녀석이라고 한다.

2001년에 설치한 녀석이면 분명 나로서도 몇 번은 봤을 법한 위치에 서 있는데

막상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 걸 보면, 처음 와보는 겨울 홋카이도에 시선이 예민해져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말하면 여름엔 아주 태평스럽게 돌아다녔다는 말도 되고.


연주하는 도중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줬다.

2분 남짓한 시간의 연주가 끝나자 카메라를 어깨에 매고 박수를 쳐 줬다.

서모 개그맨을 닮은 아저씨는 멋적게 웃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능숙하게 아리랑을 불어 주었다.

선율이 굉장히 아름다운 곡이라 예전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밤중에 공원에서 악기 연주하는거 정말 멋지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중앙 공원에서는 시끄럽다고 쫒겨나는 바람에 이곳에 왔어요.

특이하게 생긴 악기네요.

직접 만들었어요.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더군요.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저도 색소폰을 불긴 하는데 자전거 여행하는 도중이라 갖고 오질 못했네요.

저는 시코쿠에서 출장 왔는데, 혼자 출장 올때는 꼭 이녀석을 가지고 오죠.

좋은 추억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홋카이도 삿포로 TV탑 앞의 벤치에서 - 'よこち' 라는 이름의 회사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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