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왔을 때는 그래도 시야에 사람 한둘 정도는 보이곤 했는데
겨울 코야산은 시즌이 아닌지 자동차 말고는 사람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홀로 여행이었다면 매우 훈훈한 기분으로 경치를 즐겼겠지만
엄니와 함께 오니 '내가 지금 가이드를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다이몬으로 향하는 버스도 승객은 엄니와 저 둘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다이몬입니다. 여전히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네요.
이 녀석은 주위에 덩치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으면 사진으로 크기 가늠하기가 참 힘듭니다.
사진엔 나오지 않았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 몇분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동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엄니한테 덜 미안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흐리고 눈발 휘날리던 날씨는 잠깐동안이지만 매우 화창해지곤 합니다.
그래도 날씨는 추위서 엄니는 오래 구경하기보다는 빨리빨리 구경하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길 바라시네요.
엄니는 단체 관광 여행을 많이 다녀오셨기 때문에, 그 타이밍과 비교하면 확실히 제가 좀 느린 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이란 건 역시 남과 리듬을 조율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죠.
걸어서 험한 산길을 넘고 넘어 비로소 도착한 이 코야산의 정문 앞에 도착했던 순례자들의 기분이 어땠을런지.
사찰과 문화유산의 도시인 나라와 비교해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별로 모자랄 것 없는 이곳이라도
이렇게 한산한 모습인 것은 역시 접근성의 차이에서 기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완벽히 관광지화 되었다고 한다면
이곳은 진언종의 총본산 답게 불교 문화에 대한 좀 더 깊은 성찰을 위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편입니다.
이곳 산길 중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키이(紀伊) 산지의 침례도라는 길이 있는데
제 대학원 교수님께서 작년에 그 침례도 투어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쪽 침례도에서는 가이드분이 특정 구간마다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예절이 존재하는데
그 교수님께서 고문학 전공을 하셔서 동료 교수분들께 그 시를 해석해 주셨다고 합니다.
키이 산지의 침례도는 짐을 수십 Kg씩 실은 여행용 자전거로는 달리기가 너무나 힘든 곳이라
제가 자전거 여행할 때는 그 밑의 일반 도로 갈림길 휴게소 앞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 묵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밤에 트럭 기사분이 잠깐 주차를 해서 이야기 좀 나누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젊은 기사분은 가끔씩 여유있을 때 일부러 침레도 쪽을 트럭으로 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다이몬 구경을 마친 후 단상가람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코야산처럼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은 여름과 겨울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재미있더군요.
그것도 저처럼 여름의 코야산을 와 본 사람에게나 적용될 말이지
엄니께서는 인적도 없는 겨울 시골길을 처음 걸어보셨으니 어떤 기분이셨을지.
그래도 참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이라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곳을 좋아는 하지만 그래도 도시의 편의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도시 토박이 엄니께서는 이런 마을이 나름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죠.
단상가람은 눈이 거의 녹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찬란함을 더해주던 침염수가, 겨울엔 오히려 햇빛을 막아주는 바람에 눈이 그대로 쌓여 있네요.
2013년 1월의 대구는 눈 구경도 하기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나름 이 때는 눈 구경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달 후에 전 아예 눈 속에 파묻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엄니는 개한테도 목도리 걸어놨네 하면서 재밌어 하십니다.
구경 포인트가 특이한 건 유전인가 싶었네요.
여름과 비교해서 모든 모습이 확 바뀐 느낌이지만
인공물인 토이리만큼은 홀로 더욱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색채가 약해진 코야산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실제 토리이는 이런 색깔이 아니지만 왠지 대비를 좀 더 주고 싶어서 손을 봤습니다.
사람이 보글보글하는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산 속의 고요한 사찰이라서 그런지
이 조그만 토리이가 가지는 존재감이란게 더욱 크게 다가오더군요.
이곳도 내년 즈음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질거라 생각하니, 문화재 덩어리인 이곳이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지 살짝 걱정도 됩니다.
대체 뭣 때문에 이런 모양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 거목의 뿌리 밑부분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심히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몇 그루의 나무가 얽혀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사찰 내부에 위치한 신사입니다.
이 녀석은 지난 여름 여행기 때 글로 설명은 했지만 담아온 사진은 한 장도 없었던 묘한 사정을 갖고 있는데
이번 여행기에서는 사진만 이렇게 담아오고, 설명은 예전 여행기로 떠넘겨 버리기로 합니다.
여름의 단상가람을 보고 싶으시면 제 블로그 검색해 보시길.
여름엔 자연에 둘러싸여 정진하는 수도승의 모습이 우러러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 겨울에 이곳에서 뼛속까지 시려올 걸 생각하면, 역시 수행이 쉬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겨울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엄니도 체온 유지를 위해서인지 저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돌고 다니십니다.
홀로 여행과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제가 이렇게 사진 몇 장 찍지 않고 후다닥 돌아다닌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여행가서 증명사진 찍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고
그런 사람이라면 제가 카메라 들 때마다 찍어달라고 파인더 너머에서 튀어나오거나 그럴 텐데.
엄니께서는 '니 사진엔 관심 없다'는 식으로 마구 휘젓고 다니시니, 나중에 보여 드릴 사진이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사람 모습이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이 풍경이 마음에 들긴 합니다.
전 여행 사진 찍을때도 가능하면 사람이 파인더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라서.
물론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그래도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적인 면이 강하죠.
색채는 차분해지고 새들의 울음소리도 멈춘 겨울 단상가람이라도
사찰의 모습만큼은 변함없이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상가람의 중심 건물은 역시 이 근본대탑입니다만, 여전히 그렇게 인상적인 느낌을 주진 않습니다.
이제 다리가 아픈것도 아니고 해서 들어가 볼 수는 있지만 굳이 안 들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니께서도 그냥 밖에서 구경하지 들어갈 것 까지는 없다고 하십니다.
들어가면 나름 볼만한 것들이 있다는 소문인데, 사진 촬영 금지라서 더더욱 흥미가 동하지 않는 점도 있고.
그래도 근본대탑이고 하니 엄니 기념사진 한 장 찍어드립니다.
그런데 찍고나니 이게 엄니 기념사진인지 근본대탑 기념사진인지 모르겠네요.
코야산에서 가장 오래된 국보 부동당과 함께 근본대탑을 담아 봤습니다.
결코 바래지 않는 불변성을 상징하는 붉은 근본대탑과
나무로 만들어져 사라지기 쉬움에도 800년 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당의 대비가 묘한 기분을 들게 하더군요.
1197년에 세워진 부동당입니다. 다른 사찰들이 화재로 소실되는 와중에도 이 녀석만큼은 살아남았죠.
사실 단상가람 안에서 크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이 아닌데, 오히려 그렇기에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합니다.
역시 인생은 짧고 굵게 사는가 길고 얇게 사는가의 문제인 것일까요. 이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마을 인구당 사찰 수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보니
이게 절인지 민가인지 알 수 없는 곳도 꽤 있더군요.
겉으로 보기엔 문패도 달려있는 일반 민가로 보이는데, 언덕 위의 종루와 연결되어 있는 게 신기합니다.
종루로 연결된 길에는 왜 지붕까지 만들어 놓은 건지도 모르겠고.
오늘 하루만이라면 그렇게까지 무리한 일정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쌓인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건지 돌아가는 곳에 도착하자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기분이 듭니다.
오늘은 7시 전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을 듯 하니, 푹 쉬어야겠네요.
내일부터는 숙소를 옮겨서 나라에서 1박을 할 예정이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올라갈 때도 그랬지만 낭떠러지같은 모습을 보니 약간 섬뜩합니다.
이 무거운 전철을 지탱해주는 로프가 끊어지는 날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게 될테니까요.
코야산은 관광객을 위해 전철과 버스 시간이 철저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편리합니다만
그 편리함 때문에 지난 번 여행때부터 찍고 싶었던 풍경을 찍을 시간이 없어서 참 난감했죠.
이번에도 이미 대기중인 전철로 뛰어들어가는 도중에 간신히 한 장 남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코야산 산자락 밑의 풍경인데, 처음 봤을 때부터 매우 마음에 들던 모습이었습니다.
자전거로라면 아마 여기가 종점이겠죠. 세계문화유산 코야산 만큼이나 정겨운 모습의 오솔길이네요.
엄니나 저나 거의 녹초가 되어 꾸벅꾸벅 좁니다.
다행히도 코야산부터 오사카까지는 종점에서 종점이라 앉아가는 건 별 문제가 없었네요.
둘 다 성격이 예민해서 잠을 잘 못자는 편인데, 전철 안에서 고개가 홱 넘어갈 정도로 졸아 본 것도 오랜만입니다.
그래도 날씨가 많이 좋아지는 바람에 졸기 전에 한 장 담아봅니다.
전철 안이라 유리창 반사는 어쩔 수가 없는게 약간 아쉬웠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목적지와 목적지를 이동하는 이런 여행은 그 사이사이의 매력을 즐기기가 어려운 게 가장 아쉽더군요.
하지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여행이란 건 평생을 걸쳐서도 몇 번 즐기기 어려운 녀석이니
이번엔 이런 식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5시 반쯤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돌아가서 푹 쉬어도 되지만
오사카를 떠나기 전에 식사는 맛있게 한번 즐겨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백화점 식당층에 올라가 뭘 먹을까 한번 둘러봅니다.
엄니께서 고기나 속에 부담되는 걸 별로 안좋아하셔서 결국 일식집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저녁 세트라는 게 있어서 다양하게 나온다고 하니 그걸 주문하고, 그 외에 몇가지 추가해 보기로 합니다.
한국에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메뉴 밑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저 펜으로 꾹 누르면 자동 주문이 되는 재미있는 방식을 사용중이더군요.
초밥 전문점이 아니라 극찬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불만을 표시할 정도는 아니네요.
요건 제가 세트메뉴와 따로 주문한 초밥들입니다.
역시 오사카 중심가 백화점 식당가여서 그런지 가격대를 생각한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피곤한데 여기서 더 움직여 맛집을 찾아다니고 할 생각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튀김요리도 기본에 충실합니다. 따뜻하고 아삭아삭하고 재료 신선하고.
간장이 아니라 소금에 살짝 찍어먹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곳의 저녁 식사시간이 다들 그렇긴 합니다만
먹고 즐기는 걸로 유명한 칸사이 지방이다 보니, 반쯤 개별실 같은 느낌의 방 안에 있어도
사방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오네요. 엄니도 한국과 별로 다를게 없네 하십니다.
이게 참 맛있는 부위라고 하는데, 살은 별로 없지만 확실히 식감이 좋았습니다.
무슨 생선 머리를 간장에 쪄낸 녀석인데, 달달한 간장소스와 궁합이 좋았습니다.
생선의 머리부분이 맛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임에도, 전 먹을 살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죠.
역시 일정 이상의 질만 보장된다는 전제하에서 저한테 중요한 건 질보다 양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목욕을 마치고 나니 엄니께서 침대에 비닐 시트를 깝니다.
숙소가 작아서 따로 차 마실 공간이 없으니, 침대에 비닐 시트로 차 마실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제가 여행할 때는 절대로 비싼 숙소를 선택하지 않다 보니 이런 것도 꽤 익숙합니다.
이런 조그마한 비지니스 호텔에 들어와서까지도 차만큼은 마셔야 겠다는 엄니의 의지가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행 가방에 이런 차 도구 세트를 가지고 여행을 나오신다는 거죠.
이게 일본 같은 가까운 지역 여행뿐 아니라, 미국 갈때도 항상 가지고 가십니다.
이게 만약 술이었다면 부부 불화의 엄청난 요인이 될 만한 상황이지만.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지만 사실 이렇게 마시는 보이차라는 게 의외로 맛있습니다.
몸이 힘들수록 차는 더 맛있어 지는 법이죠. 이렇게 보면 술이나 차나 하는 일은 별로 다른게 없어 보이네요.
과자봉지는 이제껏 숙박하면서 사용하지 않은 일회용 칫솔 세트를 프론트에서 교환한 것입니다.
슈퍼 호텔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세트를 사용하지 않으면 과자로 바꿔 주는데, 엄니와 저는 그런 거 다 챙겨 왔으니까 말이죠.
식사 후 백화점 지하에서 먹을거리를 좀 사 왔습니다.
역시 여행 중에는 비타민과 식이섬유 섭취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으니 일부러 먹기좋고 보관 편한 미니토마토를 사 왔죠.
일본에서는 이게 야채 취급을 받으니, 그네들 시각에서 본다면 차 마시면서 생야채를 씹어먹는 모습일 듯.
엄니께서는 차가 참 맛있다고 홀짝홀짝 드십니다.
여행와서 들뜬 기분때문에 맛있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기엔
엄니나 저나 여행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고, 차 맛도 10년 이상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지죠.
사실은 이 여행용 차 세트는 집에 있는 걸 주섬주섬 꾸린 게 아니고
상비용으로 항상 꾸러미 속에 준비되어 있는 녀석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속에 들어있는 보이차는 집의 차방에서 금방금방 소비되는 녀석과 달리 오랜 시간 숙성중이었던 것이죠.
차 색도 매우 맑아서 사진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여행 와서 술 대신 차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물론 홀로 여행에서 이런 세트 가져올 정도로 제 짐사정이 그렇게 널널한 편은 아니지만.
내일은 나라로 출발해야 하니 9시쯤 되어 이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엄니도 매우 피곤해 하시니 잠은 깊게 주무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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