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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신 기념으로 아버지 후원으로 홋카이도 여행을 갔습니다.
사실은 가족들 모두가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일단 여건만 되면 어디로든 뜨느라 바쁘네요.
형님부부도 9월에 이탈리아쪽 간다고 하고... 결혼 2년차에 해외여행 도대체 몇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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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札幌)역에서 엎어지면 2분거리 비즈니스 호텔 잡아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작년 자전거 여행할때 애용했던 저렴하고 시설좋은 전국 체인이죠.
일단 첫날은 멀리 나가기도 뭣하고 해서 삿포로 시내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삿포로 시내의 중심점 역할을 하는 오오도리 공원(大通公園)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니 이곳은 맥주축제가 한창이더군요.
여름엔 맥주축제, 겨울엔 얼음축제로 조용할 날이 별로 없는 공원입니다.
계획도시인 삿포로는 이곳 오오도리공원의 TV탑을 기준으로 해서 바둑판 모양으로 길이 배열되어있어
동서남북만 한자로 읽을줄 알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관광하기 편한 곳입니다.
아직 술 마시고 퍼질러지기엔 이른 시간의 평일이라 한산하다 싶었는데, 시간 조금 지나보니 오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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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명물 중 하나인 TV탑이 나오게 부모님 한 컷.
삿포로 사진은 작년에 자전거 여행하면서 많이 찍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올리면 좀 더 풍성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언젠간 그것도 따로 포스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이번에 찍은것만 올리기로 합니다.
보통 8월 삿포로의 평균 기온은 21도 정도였는데, 요즘은 온난화가 진행되어서 이 날의 최고기온은 28도... ㅡㅡ;
이상 저온현상이 계속되던 대구보다도 더운 날씨였습니다. 이제 홋카이도가 춥다는 말도 옛 추억인듯.
(하지만 작년 자전거 여행땐 정말 무지하게 추웠는데 말이죠. 10월 중순~하순인데 얼어죽는줄 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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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버지 덕분에 앉아서 닭꼬치와 함께 한 잔 했습니다.
제일 근처에 있던 부스가 산토리라서 삿포로 와서 처음으로 산토리 맥주를 마시게 됐군요.
전 흑맥주를 좋아하는터라 한 잔 시켜서 엄니와 함께 나눠마셨습니다.
서빙하는 점원들은 정신없이 바쁘고 여기저기 마이크에서 뿜어나오는 고음의 진행자 목소리 때문에 축제분위기는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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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마시려고 하는 아버지를 말리면서 오오도리 공원을 주욱 둘러봅니다.
아버지께서는 본인만 인정 안하실 뿐 명백한 알콜중독으로, 어디로 가든 여행보다 술이 앞서는 분이라
마시고 싶은만큼 마시게 두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뻔할 뻔자여서, 저녁식사때 많이 드시라고 하고 발걸음을 제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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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도리 공원은 시계탑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삿포로 최대의 공원입니다만
일본의 내로라하는 맥주회사들이 총출동한 축제라서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산토리, 기린, 아사히, 삿포로 등의 부스에서 각각 독특한 케이스에 맥주를 담아서 팔고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자리 여유가 충분했지만 20~30분 만에 사람들로 꽉꽉 차버릴 정도였죠.
한 부스당 좌석이 1000개는 족히 되어 보였지만 자리가 없어서 잔디에 앉아서 마시는 사람도 많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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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삿포로에서는 삿포로 맥주밖에 마셔본 적이 없어서... ㅡㅡ;
아버지께서 눈을 반짝이셨지만
어차피 내일 예정되어 있는 삿포로 맥주공원에서 양고기 징기스칸과 함께 맥주도 무제한 제공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날씨도 덥고 여행 첫날이라 좀 피곤하고 해서 저녁을 좀 일찍 먹기로 했습니다.
특히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가이드역을 맡은 저로서는 여행사 직원처럼 정해놓은 플랜 정리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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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러 가면서 살짝 길을 돌아 삿포로의 유명한 시장 거리인 타누키 코지(貍小路) 도 슬쩍 둘러봤습니다.
돔 형식으로 된 아케이드 상가인 이곳은, 지금은 홋카이도 역 주변과 스스키노에 밀리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여전히 맛있는 요리점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참고로 타누키란 사진 위에 보이는 저 너구리를 뜻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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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첫날이라 좀 고급 음식을 맛보고자 해서 찾아간 곳은 스스키노(すすきの) 거리였습니다.
스스키노는 한국의 명동, 도쿄의 긴자 거리와 비슷한 삿포로 최대의 환락가입니다.
왠만한 호텔과 음식점은 삿포로역 주위와 이곳 스스키노에 거의 다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 저녁은 옛 영화동호회 지인분의 친구분이 추천하셨던 일식전문점 이소킨 쿄쿄오부 에사치코우(磯金 漁業部 枝幸港) 에서 먹기로 결정.

홋카이도에선 게 요리를 먹는게 정석이라지만, 포항, 영덕에서 맛있는 게를 어릴적부터 많이 먹어온 터라 굳이 여기서 비싸게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홋카이도의 게가 맛있는 제철은 겨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게요리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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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하고 가지 않아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2시간 후에 오는 손님방이 남아있으니 그때까지 식사를 마칠수 있다면 괜찮다고 하길래 승락했네요.

작년 자전거 여행땐 항상 배고픈 거지처럼 돈을 아꼈으니 이런 좋은 음식점엔 들어가 본 적도 없는 고로,
음식량이나 맛 같은것도 잘 모르는 터라 그냥 주인장 추천 코스요리를 부탁했습니다.
술은 추가요금을 내면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양보다는 질이라는 컨셉으로 나가기로 하고
이 집에서 가장 추천할 수 있는 일본주를 부탁했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가격이었지만 이런 곳이 아니면 언제 맛볼까 하는 심정이었네요.

맥주 한두 잔이 한계인 저한테는 상당히 독한 도수였지만 목넘김도 부드럽고 입안에 은근히 풍기는 씁쓸한 향이 나쁘진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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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요리 첫번째는 전체 3종류로, 오징어절임, 소고기 로스 타타키(ロースのタタキ), 크림치즈 훈제연어말이입니다.
타타키는 겉만 살짝 구운 요리를 말하는데, 보통은 참치 등 어류의 요리방법이지만 소고기에도 적용을 시켰더군요.
입맛을 돋구는데 적당한 요리들이었네요. 오징어절임은 술안주로 좋을것 같아서 남겨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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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먹어봅시다. 이번 요리는 사시미 후나모리(刺身舟盛り)입니다. 한국어로 하자면 '배모양 접시에 올린 회' 정도 될까요.
참치, 꽁치, 고등어, 새우, 조갯살 등이 올라와 있습니다.
한국서는 상당한 고급 일식집이 아니면 보기 힘든 신선도였네요. 삿포로에서도 유명한 집이라 확실히 요리에 확신을 가지고 있을 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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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 때문이었는지 요리 나오는 속도가 좀 빠르더군요. 회를 반도 못먹었는데 여름야채 조림이 나왔습니다.
전부 홋카이도산 야채를 사용했다고 자랑하는데 야채엔 그닥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 그냥 입에 집어넣기만... ㅡㅡ;
일본 요리가 전체적으로 짠 맛이 강한편이라, 집에서 대체로 싱겁게 먹는 저희 가족 입맛엔 조금 부담이 되긴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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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모르는 정체불명의 고기인데, 살코기가 반, 알이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뱃속에 큼지막한 알이 가득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알이 제가 먹어본 것중 가장 탱탱하고 단단해서 한알 한알 이빨로 꼭꼭 터트려 먹지 않으면 잘 씹히지 않을 정도였네요.
여기까지만 먹어도 상당히 배가 부른데, 코스요리가 아직 4개나 더 남았다는게 놀라웠습니다.
일식집에서 배불리 먹을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코스요리의 양이 이렇게 많을줄은 몰랐죠.
그래도 제 돈주고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고급요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바지의 지퍼를 풀고 다음 요리를 기다렸습니다.

* 다행히 메뉴가 적힌 쪽지를 한국에 들고와서 지금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ハタハタ(하타하타)란 녀석인데 이건 한국의 '도루묵' 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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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소스로 맛을 낸 닭날개입니다. 이것 역시 조금 짠 편이라 먹으면서 오늘 푹푹 붓겠구나 싶더군요.
일정 레벨 이상의 닭을 사용하면 당연한 거지만 속살에도 비린내 없이 깔끔한 육질을 자랑했습니다.
한국서 7~8천원짜리 싸구려 프라이드 치킨은 속살 뜯어보면 비린내가 확 퍼지는게 가끔 끔찍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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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포만감을 넘어 터질려고 하는데 아직도 음식은 계속 나옵니다. 버섯과 조갯살을 넣어 볶은 밥.
배가 그렇게 불러도 남기기는 아까울만큼 맛있었습니다. 고소한 버섯과 조개향이 어우러져서 최고!
이건 나중에 집에서도 한번 해먹어 보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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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진작에 배불러서 포기해 버렸지만 전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이곳 쥔장이 자랑하는 특제 냉라면. 면발도 그렇고 국물도 깔끔하고 시원한게 코스요리 마무리로는 손색없었습니다.
옆의 양배추 소금절임도 아삭하고 괜찮았지만 좀 많이 짜서 다 먹긴 힘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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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인 여유는 많이 있어서 배를 좀 진정시키고 아버지 술 다 드실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디저트라고 하나 더 갖다줍니다.
(디저트는 일본어로 別腹(べつばら)라고 합니다. 디저트가 들어갈 배는 따로 있다는 뜻이겠죠. 재미있었던 표현입니다)
홋카이도하면 소프트 아이스크림. 그래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넣은 도나빵(ドナパン)이 나왔습니다.
이 도나빵이 뭔지 도통 알수가 없었는데, 도라야키(ドラ焼き)에 생크림이나 크레이프를 넣은, 홋카이도 특유의 빵이라는 듯 합니다.
그럼 도라야키는 무엇인가. 도라에몽이 좋아하는 한국의 찰보리빵 같은 겁니다. ㅡㅡ; 원래는 안에 팥이 들어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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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듯한 배를 쥐어잡고 천천히 스스키노의 화려한 밤거리를 구경하며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스스키노와 삿포로 역은 지하철로 2코스 떨어진 곳이라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걷는걸 좋아하시는 부모님이라 일부러 도보로.
거기다 여행왔는데 밤거리 경치 구경도 하고, 굳이 지하철로 갈 필요는 없었죠.

작년 자전거 여행땐 하루종일 비를 맞으며 판쵸 우의 덮어쓰고, 항구도시 토마코마이(苫小牧)에서 삿포로까지
12시간동안 달려서 도착한 곳이 스스키노의 밤거리였다는걸 생각해보니,
헝그리하게 여행할 때의 풍경과 지금처럼 느긋한 경비를 가지고 여행할 때의 퐁경이 이렇게 다르다는게 참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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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많이 드신 아버지는 돌아오자마자 뻗으셨고
엄니께서 제 방에 와서 한국서 준비해온 보이차를 끓였습니다.
차 마실 데가 침대 위 밖에 없어서 안내책자를 깔판으로 삼아 차를 마셨는데, 불행히도 차가 시트위에 묻어버렸더군요.
아무래도 내일 청소하는 분께서 '이녀석 자다가 쌌구나' 라고 오해하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바람에
메모지에 '그거 오줌이 아니라 찻물이에요' 라고 쓸까 생각도 했는데, 인간이 너무 소심하게 보일까봐 그냥 놔뒀습니다.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께 보여드리려고 시작한 여행이니 제 입장에서는 본인의 관광보다 부모님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터라
제가 좋아하는 여행인 '최대한 헝그리하게, 최대한 빡세게'는 자제하고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느긋한 여행이 되도록 일정을 잡았습니다.

여행사 패키지처럼 여기 찔끔 구경했다가 저기 찔끔 구경했다가 하는건 정말 남는거 없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명한 관광지 덜 둘러보더라도 시간 들여서 느긋하게 몇 군데만 돌아다닐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