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넘어갈 무렵 일행은 우메다(梅田)역으로 향합니다. 우메다는 북부 오사카시의 교통, 상업 중심지입니다.

남부 오사카의 요충지인 난바가 칸사이 공항의 관문과도 같은 곳이라면
우메다는 일본 칸사이지방 철도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관문으로, 한큐선, 한신선, JR선등
일본 전국을 통하는 주요노선이 대부분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굉장한 번화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철과는 달리 일본의 전철은 국영, 시영, 민영 등 여러 종류로 나눠진 터라 노선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죠.
환승역을 공유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이름만 같지 출입구가 완전히 분리된 역도 많기 때문에
한국처럼 2호선 타다가 5호선으로 갈아타야지 하고 편히 생각하다가는 괜히 출구로 나가서 요금 더내고 갈아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특히 이 우메다역은 전철뿐 아니라 신칸센 등 일본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곳이라
한신선 우메다역과 한큐선 우메다역, JR 우메다역이 각각 존재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난바 지역처럼 주위에 먹고 놀고 즐길거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상가 지역은
쇼핑하기에는 오사카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즈니스 중심지역이라 거대한 고층 건물들일 빡빡히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볼만합니다.


일행이 목표로 한 스카이빌딩은 우메다역에서 15분~20분 정도 도보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라
일단 근처 파출소의 경찰에게 물어물어 길을 확인한 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어~ 칸사이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남자 경찰이 조금 설명해 주려다가
옆의 여자사람 경찰분께서 그나마 표준어로 또박또박 설명해 주시는 덕에 이해하기가 편했네요.

확실히 토호쿠(東北)지방보다 칸사이(関西) 사투리가 더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아주 지렁이가 굴러가는 듯한 느낌.

다리가 좀 뻐근했지만 속도가 느려지는 친구의 등짝을 채찍으로 몰아쳐가며(?) 열심히 걷고 걸어
주유패스 무료 쿠폰의 마지막을 장식할 스카이빌딩(スカイビル)에 도착했네요.

이곳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에서 7번째로 높은 건물로, 보시다시피 양쪽 건물 사이를 에스컬레이터와 아트리움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4개의 빌딩을 세우고 그 중간을 정원화 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건물을 2개까지밖에 세우지 못했다는군요.

쇼핑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특히 동생분은 모르겠지만 저와 친구는 윈도우 쇼핑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고로
이곳 우메다는 공중정원을 공짜로 올라가지 않았다면 별로 찾아갈 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로 기간이 만료되는 주유패스의 쿠폰을 마지막으로 사용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저렇게나 많은 쿠폰이 남아있지만 실질적으로 저걸 이틀만에 다 돌아본다는건 불가능하죠.
가끔 미친척하고 저 쿠폰들을 다 쓰려고 방방 뛰어다니는 여행객들도 있긴 한데
그건 관광이 아니라 완수해야할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듯한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ㅡㅡ;
거의 한 곳당 15~20분 이상 체류해서는 안되는, 도대체 뭘 구경하러 가는지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리는 극한의 도전이죠.


친구가 쿠폰 뜯기 신공을 발휘하는 동안 동생분은 지도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사진이나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야간이 되면 필카는 힘을 쓰기가 힘들기 때문에 낮동안 썼던 감도100 짜리 필름을 400짜리로 교체해서
최대한 쓸만한 녀석으로 만들어 놔야하기 때문에.

그냥 디카쓰면 되잖냐 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진은 역시 그날그날의 느낌입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최대한 필름으로 느낌을 내 보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닥치고 필름입니다.

그래도 이곳은 어제 방문했던 WTC 코스모타워 전망대보다는 사람이 많이 있더군요.
우메다란 지역 자체가 워낙 번화한 곳이기도 하고, 역시 주유패스를 이용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한국사람들이었는데, 역시 주유패스의 이익을 가장 잘 챙기는 쪽은 한국 여행객들이 아닌가 싶네요.


일단 전망대 내부는 WTC 타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높이는 WTC 타워가 훨씬 높기 때문에 약간 감흥이 덜할수도 있지만
베이 에이리어에 홀로 떨어져 독수공방중인 WTC 타워와 달리
스카이빌딩은 오사카시 최대의 번화가 우메다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기엔 이쪽이 더 좋을지도.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된 일행은 제가 장노출로 사진 찍어대는 동안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중.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런 야경좋은 전망대 위에
2인용 캡슐 호텔같은걸 창가에 주르륵 배치해 놓으면 (매트릭스처럼)
커플들이 많이 이용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럼 너무 노골적인 랜드마크 러브호텔이 되어버리는건가. ㅡㅡ;


셀카찍기가 거의 불가능한 필름카메라지만
창분에 비치는 조명 덕분에 셀카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 내부는 조명이 창문에 반사되는 바람에 야경사진 찍기가 힘들지만
WTC 타워와는 달리 이곳은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곳은 원형 정원이라 오사카시내를 360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분위기 좋더군요.
불행히도 삼각대가 없이는 장노출하기 알맞은 지지 장소가 없는고로 각도가 이렇게 하늘을 향하는 사진밖에 찍을 수가 없었네요.
뭐 이것도 나름 정취가 있는 것 같으니 만족합니다.

일단 뛰어내리려고 작정하면 멋있게 자살할 수 있는 곳이라 정원에는 경비원이 눈을 번뜩이고 있더군요.


위에서 두 번째 사진, 밑에서 스카이빌딩을 올려다 본 사진 중앙에 나온 공중정원을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레스토랑, 기념품샵 등이 위치해 있는데... 헝그리 여행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죠.

오사카 야경을 한바퀴 쭈욱 돌면서 구경한 후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데 동생분과 친구가 재미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이곳 공중정원은 야간이 되면 바닥이 반짝반짝 모래처럼 빛나는 야광 물질로 되어 있는데요.
빛을 밝혀주는 적외선 램프에 일행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의 형광물질이 반응한 겁니다.
PD 수첩이나 불만제로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공포의 형광물질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웃으면서 각자의 몸에 걸치고 있는 형광물질을 찾느라 바빴네요.
의외로 옷 여기저기에 형광물질이 많이 쓰이고 있었습니다. 천연 섬유로 만들었다는 제 버프도 아주 반짝반짝 빛을 발하더군요.
신발 쪽에도 환하게 불이 들어오고... 원래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여행의 재미있는 헤프닝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스카이빌딩 관람을 마치고 우메다역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위치한 거대 전자상가 요도바시 카메라(ヨドバシカメラ)에 들렀습니다.
이쯤되서 식사를 한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이곳 요도바시 카메라는 규모가 엄청나게 크더군요. 도쿄 아키하바라에 위치한 요도바시보다 훨씬 더 커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카메라 매장에서 죽치고 싶었지만 그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
옆에서 지루해할 일행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 바람에 그냥 밥이나 먹으러 올라갔습니다.

오사카 도착때부터 계속 먹고싶었지만 자금사정때문에 횟수를 제한해야 하는 초밥을 좀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양에 비해 가격이 좀 센편이긴 하지만 초밥 품질은 평범한 회전초밥보다 훨 나은 편입니다.


저는 일단 성게알과 연어알이 포함된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메뉴죠.
탱글탱글한 연어알이 저를 유혹하고 있네요.


미국서 유학중인 친구 강군이 무지하게 좋아하는 성게알.
이 사진 보면 아마 또 고통에 몸부림치겠군요. ㅡㅡ;


기름기 흐르는 참치 뱃살도 좋아합니다.
적당한 품질에 배를 많이 채우기 위해서는 역시 회전초밥이 낫긴 하지만
회전초밥집은 내일 쿄토여행때 점찍어둔 곳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무리 좀 해서 괜찮은 정식 세트를 먹습니다.


친구와 동생분은 무난한 세트를 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성게알같은 메뉴는 처음 도전하기엔 조금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특히 친구녀석은 생선을 거의 못먹는 타입이라 최대한 무난해 보이는걸 시켜야 했을 겁니다.


자금 여유만 널널했다면 저 혼자 이거 두 세트정도는 단칼에 해치울 수 있었는데...
그래도 진정한 초밥 사냥은 내일 쿄토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니 꾹 참으며 얼마 남지않은 초밥을 음미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후 저는 결국 짐 챙겨서 옆의 조그만 비즈니스 호텔로 향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코 고는 소리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잔터라, 오늘도 잠을 설쳤다간 내일 쿄토여행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결국 옆의 싸구려 비즈니스 호텔에 개인적으로 1박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 여행이란 건 예측불가능이군요.

저는 성격이 굉장히 예민해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잘 때도 30분~1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이 들 정도라
바로 옆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잠은 다 잔거나 마찬가집니다.

자기 코고는 소리때문에 쫓겨가는 제 모습을 보고 친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ㅡㅡ;
불행중 다행인지 숙소인 신세카이 거리는 굉장히 낡은 건물이나 숙소가 많아서
제가 찾아간 곳도 가족 단위로 꾸려나가는 조금만 민박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할머니께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따뜻한 녹차까지 한 잔 대접해 주시더군요.

엄청 낡은 곳이라 나무로 된 히터, 고풍스러운 타일 욕조 등 1980년대로 워프한 듯한 느낌이었지만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서 해방된 덕택에 평화스러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