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에서 오랜만에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후 아침 일찍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쿄토 당일치기 여행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녀야 하는군요.
사실은 오사카 오고나서부터 빠릿빠릿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어.

쿄토와 오사카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당일치기가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사실 쿄토는 느긋하게 둘러볼려면 1주일은 잡아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오사카 관광이 주 목적이었던 이번 여행에서는 그냥 맛배기만 살짝 보여주는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네요.

숙소인 에비스쵸(恵美須町)역에서 아와지(淡路)역까지 간 다음 한큐쿄토선(阪急京都線)을 타고
쿄토 카와라마치(河原町)역까지 가는데 대략 4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아침시간이라 사람이 많네요.
아와지역에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는 전철은 급행, 쾌속, 준급행 등등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타야 합니다. 모든 역에 다 정차하는 전철을 잘못 탔다간 1시간 이상 소요될 수도 있습니다.

열차가 올때마다 방송으로 '카와라마치역까지 가려면 다음 열차를 타는게 더 빨리 도착합니다' 라고 말해주는데
관광객들에게 그게 쉽게 들릴지는 의문이니까, 전광판을 잘 확인해가며 타는게 좋겠죠.


열차의 종작역인 카와라마치역은 JR 쿄토역에서 꽤나 가깝기도 하고, 쿄토 시내의 중심가중 한 곳이라서 이동하기도 편합니다.
쿄토 버스 1일 승차권을 구입한 후 바로 금각사행 버스를 탑니다.
1일 승차권이 있으면 하룻동안 쿄토 시영버스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민영버스는 무료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이번에 한번 당했습니다. ㅡㅡ;)
왠만한 관광지는 시영버스로 충분히 쉽게 이동이 가능하기도 하고,
쿄토는 오사카에 비해 전철이 구석구석 뻗어있지 않기 때문에 버스가 최적의 이동 수단입니다.

아침부터 버스 안엔 한국인 관광객이 수두룩하네요. 방학이라서 그런가.
근데 이 친구들은 분명 금각사를 가는 길일텐데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버렸습니다. 뭔가 착각한 듯.


2년만에 보는 쿄토의 풍경이 참 반갑더군요.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제대로 된 관광이나 해보자 싶어서 무작정 내려온 쿄토였는데
그땐 자전거 여행의 피로가 쌓인 터라 뭔가 몽롱한 정신으로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금각사(金閣寺)는 쿄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중에 한곳인데요.
사실 친구와 동생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면 굳이 제가 이곳을 찾아가진 않았을 겁니다.
평생 한 번만 와 봐도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의 실제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인데, 금박을 입힌 정자가 워낙 유명해서 언제부턴가 금각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쿄토 외각에 위치한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이라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쿄토 여행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터라 자칫하면 엄청난 인파에 쓸려다닐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이번 여행땐 관광객이 아주 적어서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네요.
지난번 혼자 갔을 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아주 바글바글거려서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가 힘들었는데.


쿄토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는 금각사의 모습입니다.
조용한 연못과 철저하게 인공적으로 조경된 소나무들, 그리고 화려한 금빛 정자는
마치 별세계를 뚝 떼어다 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아름다움 만큼이나 이 금각사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는데요.
원래 금각사는 1397년 쇼군의 별장으로 만들어졌지만 1950년에 한 수도승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건물은 1955년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정말 세심하게 복원이 잘 되어있지만
역시 원 건축물과는 그 느낌상 아쉬운 부분이 많죠.


방화를 일으킨 수도승은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 사건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 전후 일본문학의 최고봉으로 뽑히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스승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미시마 유키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다면 일본의 어느 작가가 그 자격이 있겠나'라고 그의 문학성을 극찬하기도 한 만큼
그의 탐미주의에 대한 깊은 고찰과 광기가 묻어나는 최고 대표작 금각사는 전후 일본문학의 정점을 찍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후 일본문학을 공부하면서 금각사를 읽지 않으면 공부 헛한거나 마찬가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만큼
소설 금각사는 저기 보이는 실제 금빛 정자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훨씬 더 공포스러운 작품이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말년엔 극우주의자로 여러 기행을 벌이다가 할복 자살을 선택한 미시마 유키오라 한국에서는 그냥 또라이 취급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광기어린 집착과 고집, 오만이 없이는 금각사와 같은 소설이 탄생할 수 없었기에 더더욱 연민의 정을 느끼는 작가입니다.
금각사를 불태우던 자신의 작품 속 승려와 결국 비슷한 최후를 맞이한 작가의 모습은,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의 칭호를 받기에 손색이 없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일본을 대표하는 다른 탐미주의 작가인 타니자키 쥰이치로(谷崎潤一郞)의 페티시즘에 가까운 집착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미에 대한 두려울 정도로 순수한 집착은 마치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1902)이나
영화로 치자면 베르너 헤이조그의 아귀레, 신의 분노(Aguirre: The Wrath Of God, 1972)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입장권 명목으로 받은 부적(?)을 갖고 즐거운 기념사진을 찍는 일행들.
소설의 광기는 어디가고 훈훈한 모습이 연출됩니다.


금각사의 아름다움이야 뭐, 말로하면 쓸데없이 칼로리 소비하는 것 밖에 안되지만.
실제 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쿄토 반대쪽에 있는 은각사(銀閣寺)가 훨씬 중요합니다.

은각사는 원래 치쇼지(慈照寺)라는 이름의 사찰로, 금각사를 세운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의 손자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모방해서 만들었습니다. 요시마사는 절의 바깥을 은으로 감싸서 금각사와 대칭을 이루려고 했지만
그 후, 후계자 문제로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등 혼란의 시대가 계속되는 바람에
결국 은각사는 은으로 덮히지 못하고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 은각사의 토쿠도(東求堂) 사당은 1485년 건립되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의 국보입니다.
진짜 은으로 덮혀버렸다면 오히려 빛이 바랬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할 만큼
금각사와 달리 아담하고 정갈한 조그만 정원과 연못이 어우러진 토쿠도 사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본 사찰문화의 정수라고 할 만큼 화려하지 않은 미의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죠.

하지만 2008년부터 토쿠도 사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간 터라
지금은 돈 내고 들어가도 제대로 된 감상이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은각사는 코스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아쉬운대로 감상할 수는 있겠지만 기왕 감상하려면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하는게 좋겠죠.
평생 쿄토에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아쉬워할것 없이 이번엔 금각사만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실제 승려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금각사는 비록 1955년에 재건되었다고는 해도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산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정말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소실 전과 거의 100% 동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당시엔 일본도 경제사정이 워낙 좋아서 거의 물쓰듯이 이런 문화제 수복에 돈을 퍼부을 수 있었죠.

따라서 현재 보는 금각사의 모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덕분에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네요..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 곳입니다.
원래 별장으로 쓸 목적으로 이곳을 만들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 사후 사찰에 귀속되었지만
저런 곳을 만들어 노년을 보내려 했던 당시 일본 쇼군의 권력이란 참 놀라울 따름이네요.


저기엔 무엇이 적혀있었을까요.


금각사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제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주변 풍경을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곳은 금삐까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실제로 산책로도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사람도 적어서 유유히 사진 찍고 놀면서 구경 잘했네요. 1년중 350일 정도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인데
용케도 이런 날에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성년의 날 덕분에 힘들었던 관광 일정을 이런데서 보상받는 듯.


사진 좀 찍어보라고 친구한테 맡겼던 디카는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동생분이 직접 갖고온 똑딱이로 열심히 찍었죠.

차라리 동생분한테 디카를 맡기는게 좋았을지도.


바람도 심하지 않고 날씨도 적당하고
어제 시텐노지에서 비 쫄딱 맞아가며 강행군 했던 기억이 승화되어 갑니다.


중요 문화재까지는 아니지만 예전 일본의 휴게소(?)같은 분위기의 별장입니다.
서양 관광객들이 와서 신기하다는 듯 이리저리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더군요.


안으로 들어가진 못하지만 이런 데서 포즈 잘 잡아주는 동생분의 사진도 좀 남겨줘야죠.


이런 곳에도 세전함이... ㅡㅡ;
한국 사찰도 뭐, 돈은 미친듯이 좋아하니 남 욕할 필요는 없지만.


금각사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아서 15~20분 정도면 무리없이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산책로가 끝나가면 이제 다양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앉아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휴게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느긋하게 저기 앉아서 주변 경관을 만끽할 수도 있지만 오늘은 역시 좀 바쁘기도 하고...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지만 여기서 일본 역사와 미의식에 대해 담소를 나눌 만큼 내공이 출중하진 않은 고로
그냥 사진만 찍고 나왔습니다.


동생분은 기념품점에서 선물 몇개 챙겼습니다.
금각사를 빠져나와서 점심을 먹기위해 다시 카와라마치역으로 향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한 컷. 뷰파인더에 구애되지 마라고 소리쳤던 아줌씨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다양한 구도와 재미있어 보이는 화각을 이용하는 막간의 장난도 카메라의 즐거움이죠.

근데 필름카메라라서 돈이... 돈이... ㅡㅡ;

버스가 한동안 오지 않아서 정류소 옆의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뽑아먹었는데
제거 한입 먹어보고는 친구도 다른 종류로 하나 뽑아먹었습니다.


지난번 자전거 여행때도 한번 신세를 졌었던 회전초밥집 무사시노(武藏野)입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는,
한마디로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초밥집이라 헝그리 여행자들이 마음먹고 한 번쯤 가기에 좋은 곳이죠.

한국의 회전초밥집과 비교하면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품질입니다.


시작은 언제나처럼 계란말이로.
계란말이의 폭신함과 탄력, 달달한 맛의 조화로 초밥집의 실력을 가늠한다는 말이 있듯이
요리사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초밥이 이 계란말이니까요.

가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만족.


연어알도 튼실, 오이도 사각거리는게 적당히 풍미를 더하는군요.
한국 회전초밥집으로 따지자면 접시당 3천원~4천원 정도의 퀄리티입니다.
이곳은 접시 색깔별로 가격 차이가 있는게 아니라 모든 품목 균일가이고... 한국 돈으로 1800원 정도였던가?


아~ 강군이 이 사진을 보면 얼마나 괴로워할까. T_T
알면서도 여행기라는 명목으로 고문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나는 죄많은 인간이군요.


이곳에 돌아다니는 초밥은 거의 종류별로 다 먹어봤습니다.
생선이 힘겨운 친구는 문어초밥이나 새우초밥이나, 그냥 초심자용으로 알맞은거 주워먹고 있군요.
이번만큼은 지갑 신경쓰지 말고 뜻한 바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먹고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래도 조금 절제하긴 해서 요 정도로 끝을 봤네요.

그닥 많이 먹은것 같지도 않군요. 역시 무의식적으로 지갑 잔고에 대한 걱정이 앞선 탓도 있고.
하지만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은 건 아니니까 만족합니다. 한국서도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 초밥을 먹을 수 있다면
아마 일주일에 세 번정도는 찾아가서 꼬박꼬박 먹어줄텐데 말이죠.

배도 채웠겠다 이제 쿄토에 와서 구경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표 볼거리 키요미즈데라(清水寺)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