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미즈데라를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로 내려갑니다.
키요미즈자카(淸水坂)라는 원가 비공식틱한 이름이 붙어있는 이곳 거리는 왼쪽으로 산넨자카(三年坂)로 이어지는
메인 로드인데, 산넨자카는 요즘 이 키요미즈자카의 기념품점과 음식점들에 밀려 거의 이름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산넨자카가 유명했던 건 거의 100년 전쯤이라,
지금은 유명한 '이곳에서 굴러 넘어지면 3년안에 죽는다'는 소문만 남고
그냥 키요미즈자카에 흡수되다시피 했죠.

키요미즈데라를 빠져나올 때쯤 되니 눈도 그치고 날씨도 풀려가는 듯 합니다.
머피아저씨 면상 좀... ㅡㅡ;


보통 이곳 상점가에서는 이곳의 명물인 야츠하시 팥떡(八ッ橋)과 녹차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유명합니다.
야츠하시는 투명할 정도로 얇은 삼각형 모양 피에다가 팥고물을 넣어 만드는 찹쌀떡 종류인데요.
요즘엔 팥고물 대신에 딸기크림, 계피크림 등등 다양한 베리에이션 제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명물 과자란 어딜 가나 마찬가지지만, 이름값에 비해서 특출나게 독특한 맛은 없어요.
떡 종류가 발달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그럴것 같습니다. 그냥 별다를 것 없고 모양만 귀여운 떡입니다.

기념품점은 잘 안들어가는데 동생분이 슬금슬금 들어가서 구경하다가 이 녀석을 발견하고 덥썩해버렸네요.
꽤나 센 가격때문에 (한국돈으로 4만원쯤?) 동생분이 한참을 고민했지만
제가 미친척하고 구입하니 결국은 덩달아 구입해버렸습니다.

햇빛만 들어오면 차방에서 애교를 떨어대니(빛을 받으면 꼬리가 달랑거립니다)
무리해서 구입해 온 보람은 있네요. 알고보니 이곳 가게에서는 우수 관광품으로 선정되었답니다.


일단 키요미즈데라를 빠져나와 버스타고 금새 도착할 수 있는 쿄토역 앞으로 나왔습니다.
랜드마크로서는 한참 모자라는 듯한 느낌의 쿄토타워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네요.
쿄토역 주변은 일본의 고도라는 느낌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건물들의 집합소라
그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녀석이 이 쿄토타워와 쿄토역이라 할 수 있을 듯.

무료 쿠폰이 있는것도 아니고 저 곳에 올라갈 일은 없습니다.
아직 한 번도 안올라가 봤는데, 언젠간 올라갈 일이 있을려나요.


똑같이 이질적인 녀석이라도 이 쿄토역은 그래도 나름 사연이 깊은 건물입니다.
처음 이녀석을 봤을 땐 그 거대함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죠.

원래 1877년 벽돌 빌딩으로 시작했던 쿄토역은 개축과 화재 소실로 인해 여러 번 재건축을 거친 끝에
쿄토역 건립 1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하라 히로시(原廣司)가 
설계를 맡은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호텔, 백화점, 극장등 첨단 복합 문화공간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쿄토역은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전철역이죠.


높이 60m에 이르는 타원형 구조의 건축 양식 도면을 처음 접했던 당시 사람들은
하라 히로시에게 폭언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부으며
'쿄토의 미관과 정신을 오염시키는 최악의 건축물'이라는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잘나신 분들이 언제나 그렇듯 '쿄토' 하면 나즈막하고 전통적인 미적 감각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믿은 거죠.


하지만 역이 완공된 후 수많은 해외 유수의 건축 디자인상을 수상하고
쿄토 최고의 명물로 단숨에 부상하는 등 쿄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게 했다는 찬사가 이어진 후로는
아무도 이곳에 대해 트집잡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술가의 혜안을 윗자리의 잘나신 분들이 어찌 이해하리오.



참고로 하라 히로시는 지난 번 오카사 여행기에서 소개했던 우메다 스카이빌딩을 디자인하기도 했으며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이라는 홋카이도 삿포로의 돔구장을 설계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가장 쿄토답지 않은 느낌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소화해 낸 그의 능력은 정말 천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직접 한바퀴 둘러보지 않으면 이곳의 신선함을 체험하기 힘들 것 같네요.
쿄토의 관광 코스에 꼭 한번 넣어볼 만한 멋진 건축물이니
고즈넉한 쿄토의 문화 유산들과 대비되는 이곳을 감상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원래는 이 다음에 제가 좋아하는 만화박물관에 가려고 했습니다만...
자전거 여행 당시의 거리감각으로 이녀석을 찾다 보니 영 동떨어진 곳을 찾다가 시간이 흘러가 버렸네요. ㅡㅡ;

자전거 여행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느껴졌는데, 실은 쿄토역에서 도보로 40분 가까이 걸어가는 거리였습니다.
확실히 시간은 상대적인 건가 봐요.

사실 만화박물관은 오후 5시 까지밖에 개장하지 않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도착했더라도 30분밖에 관람하지 못했겠지만.


지난 자전거 여행때 들렀던 쿄토 만화박물관.
원래는 초등학교 건물이었는데, 폐교하면서 학교 전체를 만화박물관으로 개조했습니다.
복도, 교실 모든곳에 빽빽히 만화들이 가득차 있어서 간단한 입장료만 내면 어디서든 아무렇게나 만화를 볼 수 있죠.

운동장에 누워서 느긋하게 만화를 즐기는 이 곳의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당일치기 쿄토 여행이라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4박 5일간의 짧은 여행도 내일로 마지막이군요.
실질적으로 관광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8시가 다 되서 도착한 오덕들의 성지 덴덴타운에서 수집해 갈 원서 코믹스를 몇권 샀습니다.

일반 소설이든 코믹스든 한해 출판되는 서적의 양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서
일본의 서점에 가면 항상 부럽고 부러워요.

이런 일본도 미국 출판시장의 1/10도 되지않는다니...
그저 도서관이나 지역별로 많이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현실은 사대강 따위나 파재끼는 시궁창...

덴덴타운도 거의 8시쯤엔 문을 닫기 때문에 오덕쇼핑은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끝났구요.
내일은 아침에 짐 챙기고 나가면 공항 가기 전까지 딱히 멀리 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또 덴덴타운이나 어슬렁 거리겠죠. 그러니까 오늘은 그저 배 든든히 채우고 숙소에서 편히 쉬면 됩니다.

숙소 들어가기 전 일단 저렴한 규동체인점 스키야(すき家)에서 맛만 살짝 보기로 했습니다.

동생분은 치즈 카레.


친구는 소고기 덮밥 곱배기


저는 카레 소고기 덮밥 곱배기 시켰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뒷풀이겸 해서 배를 가득가득 채우는게 제 여행의 전통이라
비록 자금이 부족해서 저렴한 녀석이긴 하지만 배불리 실컷 먹었네요.

이곳 스키야는 일본 규동집의 절대 아성이었던 요시노야(吉野家)를 제치고
2009년 일본 규동 체인 매상 1위를 차지한 떠오르는 신흥 규동집입니다.
요시노야보다도 저가를 유지하면서, 품질에서 떨어지지 않는 대신 줄어드는 이윤을 증가하는 고객수로 채운다는 전략으로 인해
당당시 요시노야와 경쟁해서 승리를 쟁취한 곳이죠.

한국에서는 별것 아니겠지만 사실 일본의 거대 규동체인은
서민경제의 가장 민감한 지표의 하나로 작용할 만큼 일본 시장의 분위기를 살피는데 필수적인 요소라서
이런 체인점들의 전략과 승부는 매년 일본 경제신문의 주요 관심거리중 하나입니다.


숙소에 돌아와 마지막 밤을 준비합니다.
오늘같은 날 오덕들은 챙겨온 전리품들을 감상하느라 정신없죠.

힘든 여행을 마치고 만화책을 펼칠 때의 기분은 꽤나 즐겁습니다.


여행 마지막 밤인데 필름이 좀 남아서 숙소의 전경과 함께 자연샷을 남발하기 시작합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역작 '터번을 쓴 소녀 or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를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찍었습니다.
심각한 초상권 침해라면서 태클을 걸어 올 동생분이 걱정이지만 주요 부위는 다 가린 것 같은데? ㅡㅡ;


매일매일 생산되는 수건과 손수건은 이렇게 널어두면 적당히 마릅니다.
숙소가 수건을 1인당 한개씩밖에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여분의 수건을 한국서 가져왔었죠.


욕실과 화장실은 복도에 각각 비치되어 있지만
방 안에도 간이 세면대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을 때는 요긴하게 쓰이죠.


스키야에서 배는 채웠지만 끝이 얼마 남지않은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채우고 싶어서
맥도날드에서 햄거버도 사고, 편의점에서 과자랑 음료수 등등도 사왔습니다.

오늘 다 먹진 못하지만 실컷 먹고 내일 아침에 또 먹을겁니다.

항상 돌이켜보면 짧게 느껴지는 아쉬운 여행이지만, 세계 일주라도 하지 않는 한 항상 짧게 느껴지는건 당연할 듯.
언젠간 짧게 느껴지지 않는 여행도 가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