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항공편이 저녁 늦게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마지막 날엔 시간이 촉박하죠.
그나마 이번엔 오후 항공편이라 오전에 조금 돌아다닐 시간이 있긴 하지만
숙소 주변이 아니고서는 후딱 다녀와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갈 곳은 정해져 있는거나 마찬가지.

체크아웃 후 짐을 숙소에 맡겨놓고 후다닥 나옵니다.
오사카로 여행가는 헝그리 한국 여행자들에겐 이미 유명한 그린파인.


그러고보니 숙소에서 나와 3분 거리인 츠텐가쿠에는 결국 못 올라가봤습니다. ㅡㅡ;
주유패스 무료 티켓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 후 숙소로 돌아올 즈음이면
이녀석 개장 시간이 지난 후라서 결국 올라가보지 못했군요.

지금이라면 돈 내고 올라갈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공짜 전망대는 숱하게 올라가봤으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이럴 때 쓰는건가 싶네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구경하지 못하다니.


이른 시간이라 저녁때만큼 사람이 많진 않은 난바역입니다.
이곳 난바역 지하상가는 난바 워크(なんばウォーク)라고 해서 다양한 잡화점,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볼거리입니다.
이곳으로 온 이유는 엄니께서 부탁하신 홍차를 구해보기 위해서였지만
그 홍차는 사실 도쿄 쪽에 가게를 두고 있어서 이곳에서 구하기란 처음부터 어려웠네요.

일단 찾아보는 흉내라도 내 보려고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역시 제대로 된 홍차를 파는 곳은 없었습니다.
난바역 지하의 거대 식품매장도 둘러봤지만 전부 녹차 종류만 있고 홍차는 없네요.


홍차 찾기는 실패하고, 일단 다시 걸어서 숙소가 있는 에비스쵸 역으로 가기로 하는데
일단 그 전에 동생분이 오사카에서 먹고 싶다는 음식 중 하나인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난바 워크에서 적당한 가게 하나 찾아 들어가서 오무소바(オムそば) 하나하고 모던야키(モダン燒) 하나를 시켰습니다.

저는 지난번 히로시마 여행때도 굳이 오코노미야키를 찾아먹진 않았던 만큼
좋아 환장하는 타코야키에 비해 그닥 끌리지는 않는 음식이지만
일행과 함께 온 여행이니 이런 것도 한번 도전해 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먹어보기로 결정.


아침녘에 오코노미란 것도 참 특이한 조합이긴 한데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
오무소바는 말 그대로 오무라이스에 쌀 대신 소바를 넣은 음식이구요.

모던야키는 오코노미야키에 소바를 넣어 만드는 퓨전음식 비슷한 겁니다.
이것도 오코노미의 종류이기도 하고, 오사카 명물이라고 하니 시켜봤는데
그냥 소바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 이외엔 오코노미야키와 다른 점이 별로 없네요.
원래 오코노미야라는 녀석이 기본 재료만 들어가면 뭘 넣던 철판에 굽기만 하면 되는 녀석이라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왜 이녀석은 모던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기다리고 있으면 종업원이 알아서 만들어줍니다.
저는 오코노미를 맛있게 만들 능력은 없기 때문에 그냥 숙련자가 만들어주는게 편하네요.
바로 만든 것이라 따끈따끈하게 맛있긴 했는데, 역시 제 취향과는 그닥이었습니다.
집에서 부쳐먹는 정구지 찌짐이 더 맛있어서 그런지 이런 류의 음식은 밖에서 먹고싶은 생각이 안나는군요.

그냥 오사카에 왔다는 기념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난바워크를 이동하면서 다시 숙소 쪽으로 걸어갑니다.
숙소 근처에 오덕들의 성지인 덴덴타운이 자리잡고 있으니 시간 보내기로는 제격이죠.

친구녀석은 아직 더 사고싶은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저도 지난번 포스팅 때 보여드린 보컬로이드 피규어를 손에 넣고 싶었기 때문에.


매번 밤에만 찾아와서 그런지 낮에 보는 덴덴타운은 꽤나 신선하군요.
여기서부터 덴덴타운을 가로질러 쭈욱 걷기만 하면 숙소가 나옵니다.


가게 안은 대부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냥 주변 거리만 줄창 찍어댔습니다.
이곳 거리는 마치 용산 선인상가 주변을 보는 것 같아서 친근한 느낌도 듭니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비하면 아직 컴퓨터 관련 상가도 좀 남아있는 편이라.


일본이 전체적인 불황이다 보니 이곳도 장사 쉽게 할수는 없는 듯.
아키하바라가 오덕들의 성지로 거듭나기 전에도 이곳에서는 나름 유명한 지역상가들이 꽤 있었는데
애니메이트나 게이머즈, 메론 북스 등의 거대 체인점들이 들어서면서
이곳만의 특색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네요. 어느 나라나 거대 체인이 지역 상권을 점령해 가는 모습은 서글픕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맙시다 라는 문구입니다.
길고양이나 비둘기나 이제는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네요.

처음 일본에 갔던 중학교 2학년때는
비둘기 먹이 자판기 옆에 가기만 해도 비둘기들이 온 몸에 달라붙기도 했는데 말이죠.
지금은 물론 자판기도, 비둘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일본에 올 때마다 항상 궁금하지만
매번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는 메이드카페.

까페는 느긋하게 차 마시면서 숨좀 돌리고 책이나 읽는 재미로 가는 건데
저런 데서 냥냥한 목소리로 뭐라뭐라 하는 메이드복 차림의 종업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면
별로 느긋하게 있지 못할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남은 돈 탈탈 털어서 피규어 등등을 구입하고
아직도 수중에 돈이 남아 뭐 좀 더사야 하나 안절부절하는 친구를 닥달하면서
다시 숙소가 있는 신세카이로 돌아왔습니다.

공항 검색대를 안전하게 통과하려면 필름을 다 써야 하기때문에
의미없어 보이는 늠름한 할리 데이비슨도 한 장 찍어줬습니다.

사실 고성능 필름카메라인 세븐이에는 필름 끝단 남기고 강제 이송해주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남아도 별 관계는 없지만, 기분상 매거진에 들어있는 필름은 다 찍어주고 싶은 게 여행이란 녀석이죠.


결국 올라가지 못한 츠텐가쿠를 바라보면 언제나 쓴웃음만 나옵니다.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러 다시 난바역으로.
기념품이다 오덕 물품이다 해서 짐이 뭔가 좀 늘어난 느낌입니다.
책이 무게도 무겁고 부피도 크고 해서 좀 힘들군요.


4박 5일만에 오사카와 쿄토를 둘러본다는 건
그냥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도 4박 5일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적인 여유는 꽤 있군요.
늦어서 헐레벌떡 하는것 보다는 여유있는게 좋으니.

이곳에서 이곳 오사카 여행의 마지막 별미를 맛볼 차례입니다.


각종 여행 매체에서 추천하던 빵집 구테(グーテ)의 신선한 빵입니다.
아침에 돌아다녔던 난바 워크에 자리잡고 있는 이 빵집은 1948년에 개점한 이후
오사카를 대표하는 빵집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사카 시내에만 10개가 넘는 체인점이 있고, 각각 개성있는 빵과 음식을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본 난바점 하나만으로는 이 곳의 매력을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역시 빵은 맛있었습니다. 천연 효모를 사용해서 신선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빵만 먹고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결국 공항내 식당에서 또 한끼 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라면을 너무 적게 먹은 것 같아서... ㅡㅡ;

별 맛없는 평범한 라면이라도 돌아가는 길의 아쉬움을 달랠 만큼의 가치는 있더군요.


저만 먹는것도 좀 그러니 다른 것도 시켰습니다.
따끈따끈한 닭튀김과


앙증맞은 닭꼬치도 함께.
자금을 두둑하게 소지한 친구 일행덕분에 이런것도 먹어보는군요.
사실 전 소지금이 완벽하게 바닥나서... T_T

처음부터 얼마 갖고가지도 않았지만 예상이 없었던 고양이 인형과 피규어 지출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여행가면 얘네들이 만족을 좀 했을려나 하는 눈치때문에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듭니다.
물론 혼자 다닐때와는 다른 즐거움도 있으니 가끔은 이렇게 떼로 몰려가는것도 나쁘진 않겠죠.
다음엔 또 혼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군요.

동생분은 아픈데 질질 끌고다녀서 참...
다음엔 몸상태 좋을때 가기로 하죠.

친구한테는 조금만 더 바람잡아넣었으면
닌텐도 DS도 사게 만들수 있었는데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