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에 일어나 로비에서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먹는다.

아무리 인색하고 궁핍한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라고 해도,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는 행동 역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보니, 별로 맛없는 무료 조식은 간단히 배만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비엔나 소세지 한무더기와 주먹밥 6개씩이나 집어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일본인들이라면 보통 많이먹어봤자 주먹밥 2개 정도, 나는 평균 3개, 많이먹으면 4개쯤 먹지만

이번엔 배가 빵빵해질만큼 입으로 집어넣는다. 그래도 싸구려 주먹밥이니 눈치보일일은 없다.

 

식사 끝내고 적당히 휴식을 취한 후 9시 30분쯤 로비로 나간다.

30분 간역으로 이곳에서 우에노(上野)역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하기 때문.

자동차로 가면 10분 남짓한 거리일 뿐이지만 걸어가기엔 상당히 먼 거리고, 전철타면 어쨌든 돈이 나가니까.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일본에서는 이런 셔틀버스를 최대한 이용하는게 이득이다.

 

승차중에 설문조사 응해달라고 하는데, 무료 이용이고 하니 흔쾌히 작성해줬다.

설문 항목중에 '운전 신호를 잘 지키고 정속으로 운행하던가요?' 라는 질문이 있는게 조금 특이했다.

셔틀버스 운행에 대한 적성검사라도 하는 듯한 내용이라서, 아무래도 이쪽 운전수일은 호텔 정규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은 되게 무뚝뚝하지만 지킬건 다 지키는 기사분이니 어쩄든 좋게 평가해줬다.

 

공짜로 우에노에 도착하니 기분도 상쾌하다. 일본의 교통비는 정말 무서워서.

하지만 오늘은 이제부터 상당한 금액의 교통비를 지출해야 하니 각오를 단단히 한다.

 

도쿄 여행의 기준점이라고 할 만한 우에노역. 주요 철도 노선 대부분이 이곳으로 모이고

근처에서 저렴한 숙박장소 찾기도 쉽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다.

물론 좀 더 편안하고 향락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도쿄역 중심으로 180도 빙글 돌려서 반대방향에 위치하는

시부야나 신쥬쿠 같은 곳에 숙소를 정하는게 낫기도 하다. 좀 비싸긴 해도 그곳 역시 교통의 요지중 요지이고,

그쪽에 자리잡으면 밤새도록 쇼핑이나 먹거리 즐기는데 교통비 들 필요가 없다. 온통 그런 곳 천지니까.

 

 

 

12월 초순이었지만,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의 향기는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고출산 장려 기념일이라고 부르는게 더 알맞을듯 하지만

일본은 어쨌든 지진과 원전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터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기부의 의미가 강조되는듯 하다.

 

요 2년 가까운 기간동안 일본의 시민기부액수는 놀라울 정도로 폭증했는데

피해지역의 참상이 상상을 초월하니,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국회 감사에서 재해지역에 사용되어야 할 기금중 상당수가 어이없게도

어제 그 스카이트리 홍보비용으로 쓰여졌다는 내용이 나오는걸 보니, 이쪽 시민들은 열받지 않으려나.

 

정부가 그 꼬라지를 하고 있으면 정말 기부하려는 마음이 싹 사라질법도 한데

후쿠시마 대지진의 피해가 너무나도 커서 그런 정치불신마저도 하찮게 보일만큼 급박하기 때문에

여전히 개인 기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좀 낡긴 했지만 우에노역은 여전히 크고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역 앞에 유명한 재래시장 '아메요코'가 서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전후 초기부터 재건사업이 시작된 곳이라 개발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이곳 우에노 역도 여기저기 추가 출입구 새로 뚫고, 내부를 조금조금 야금야금 증축하고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상가를 유치하고 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역이 되어버렸다.

 

세련된 부티크 샵과 훌륭한 베이커리, 꽤나 맛이 괜찮은 커피전문점, 60~70년대 블루스바까지 공존하면서

공간이 워낙 구불구불하게 증축되다보니 위쪽 지붕이 2m가 채 되지않는 낮은 지역도 있어서 그거 높히려고 또 공사중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호평받는 우에노 지역이니

이 난잡함도 그리 기분 나쁘진 않을듯 하다.

 

 

 

우에노가 출발역이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서 40분정도 달려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요코하마 역은 아니고, 몇 정거장 옆에 있는 칸나이(関内)역.

왕복 전철비가 2만원 가까이 깨지니, 평소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다.

 

예전 킨키지방의 코야산같은 곳이라면 기꺼이 2시간 버스타고 다녀오겠지만

요코하마는 도쿄와 그닥 다를바 없는 큰 도시라서, 내 취향이 아니다.

해변가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그곳 야경도 괜찮은 편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노력과 수고를 들여서 '도시'를 구경하는건 취향이 아니다.

 

나름 도쿄 부근에서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지만 예전 자전거 여행때는 그냥 후다닥 지나쳐 버리고

그 앞의 에노시마에 들어가서 고양이들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엔 교통비를 감수해가며 도쿄에서 찾아올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아사쿠사 근처에 숙소를 잡은것부터 시작해서

이번 도쿄여행 전체가 이날 요코하마에 오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에노까지 무료 셔틀버스도 확인했고, 우에노에서 이곳 칸나이 역까지 직통으로 올수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도시에는 그닥 흥미가 동하지 않는 성격덕분에

화창한 날씨 아래서 도쿄보다 좀 더 시원하게 뚫린 다차선 도로를 마주해도

그냥 산은 산이요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이동해서 미 해군기지 근처까지 가면 분위기가 좀 바뀐다고 하던데,

그리고 항구로 유명했던 지역이니만큼 일본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도 있어서

맛있는거 먹으러 가기에는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것 때문에 온 게 아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애초에 이만한 시간과 교통비 들여서 여기까지 오지도 않는다.

차라리 교통비 더 들여서 옛 사찰과 유적이 가득한 닛코(日光)에나 갔겠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일기예보를 너무 믿어서는 안되는 것 같다.

어제가 내 여행기간중 가장 맑은 날이라고 몇번이고 일기예보를 확인했고

그래서 일부러 어제 스카이트리를 찾아간 것인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화창하다.

 

물론 오늘은 예정이 잡혀있으니 어차피 스카이트리 가진 않았겠지만

예보가 이렇다는 건 내일이나 모래 역시 어제보다 더 맑을수도 있다는 반증이 되니까.

아무튼 요코하마에 대해서는 당일치기 관광객보다도 아는게 없는 일자무식이니

그냥 역에서 나와서 아무곳이나 걸어다닌다. 아직 약속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은 일요일이라서, 좀 번화한 상가골목으로 들어가자 인파가 밀물처럼 채워지기 시작한다.

요코하마가 이렇게 번잡했나 싶을 정도로, 하긴 이곳에 대해 하는건 하나도 없지만.

 

이제와서는 좀 촌티나는거 아닌가 싶을, 검은 가죽잠바와 타이트한 가죽바지, 번쩍번쩍하는 가죽구두를 신고

머리에 한껏 힘을 세운 젊은애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의외로 아무 생각없이 찾아온 거리는 꽤나 번화가인 모양이다.

자동차는 원래부터 통행금지였고, 자전거도 타고 가는건 금지라서 나이먹은 경찰관이 길복판에 떡하니 서서

자전거 타고다니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만큼 인파가 심한 곳이라는 반증.

 

운좋게도 중고책 전문점 북오프가 바로 앞에 있어서 40분동안 책이나 읽었다.

북오프는, 따끈따끈한 신간은 별로 없지만 모든 책에 커버가 씌여있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서서 읽어도 뭐라하지 않는게 장점이다.

여름에 여행중엔 에어콘 바람 실컷 만끽한게 좀 미안해서, 가끔 저렴한 중고책을 일부러 사들고 나간 적도 있고.

 

 

 

약속시간까지 30분쯤 남았지만 장소를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서 결국 점장분한테 전화까지 때려야 했다.

애초에 요코하마에 한 번도 온적이 없는 내가 이곳을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점장분도 처음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면서 힘들어하신다.

특히 왠만하면 스마트폰의 기능으로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과 달리, 난 로밍폰이라서 데이터를 쓰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하나하나 설명해준 덕에 어째 설명 한번만으로 잘 찾아왔다.

 

찾고보니 방금 전 책읽었던 북 오프점에서 딱 두 골목만 안으로 들어가면 위치했던 곳이지만

설명없이 이 좁은 골목을 찾아다닌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골목은 성인 두 사람만 나란히 서면 꽉 찰정도로 좁으니까.

 

'BAR de 남극요리인 MIRAI' 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인데

펭귄마크의 아이콘이 묘한 인상을 남긴다. 남극요리인이라는 타이틀과 펭귄이라니.

슬쩍 '쥔장이 남극에서 요리하다 왔나보군' 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사실은 그 말이 맞다.

 

관광 가이드북에 실려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10년도에 개장해서 역사가 깊은 곳도 아니고

디지털 지도나 가이드북이 없다면 (이 곳이 실려있는 가이드북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지만)

정말로 찾아가기 힘든 외진 구석에 조그맣게 위치한 지하 음식점이다.

아마도 한국인이 이곳을 찾는건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객석이 내 방만한 작디작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한국에서도 꽤나 인기를 끈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의 저자 이시다 유스케(石田ゆうすけ)씨의 토크 라이브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

 

사실 이번 도쿄 무료 항공권은 출발 2달 전에 미리 받아놓은 것이라서

도쿄서 뭘 할까 이리저리 생각하는 도중에 우연히 이시다씨의 토크 라이브가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고

서둘러 이시다씨한테 연락해서 자리 하나 예약한 상황이었다.

 

여행 좋아하는, 특히 자전거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이시다 씨는

7년 반동안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며 95000km 를 달렸다.

원서 제목은 '行かずに死ねるか!' 이고, 직역하면 '안가보고 죽을쏘냐!' 라는 좀 강한 어조가 되는데

그래도 '가보기전엔 죽지마라' 라는 의역 역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은 독자에게 말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책이라

남에게 명령형으로 들리는 제목으로 의역한 것만은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10평도 안되보이는 좁디좁은 바에 예약된 청중은 30명이 넘어서

서로서로 무릎의 온기를 느낄 정도로 바싹 붙어서 간신히 앉아있는다.

워낙 소규모 토크 라이브에, 이시다씨나 바 주인장분이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가비 따로, 마실거 한잔 의무적으로 주문해야 하는 빡빡한 요금제이지만

그 정도야 부담하고서라도 이시다씨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이 토크 라이브는 일본 각지를 도는 순회 강연이고

공교롭게도 오늘이 세계일주 토크의 마지막인 아시아편이었다.

가보기전엔~ 책에는 의외로 아시아쪽 루트에 대한 에피소드가 좀 적은편인데

토크를 시작하면서 이시다씨가 해명을 했다. 에피소드가 적어서 안쓴게 아니고 너무 많아서 쓸수가 없었다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야 별로 신기할 것도 없을 터.

하루하루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자 저뭄의 연속이고

인간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색, 체중, 키, 언어, 문화 등등 모든 것에서 다를수밖에 없는

타인들과의 접점과 접점이 끊임없이 겹쳐지며 만들어 지는게 여행이란 녀석이니까.

 

노트북에 프로젝터를 연결하고, 끝까지 나타나지 않은 예약손님 몇명을 좀 더 기다려보다가

결국 토크를 시작한다. 기분같아서는 취재기자처럼 토크 도중도중에 사진을 마구 날리고 싶었지만

당연히 해서는 안될 일이고, 책에 실리지 않은 귀중한 사진들도 맘대로 유출할 수는 없으니까.

 

맥주 한잔 마시며 위트 넘치는 이시다씨의 토크를 감상한다.

사실 아무리 말하고 말해도 그 7년 반의 여행을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몇천 분의 일이라도 그때 그가 느꼈던 기분을, 토크를 듣는 이곳의 사람들이 살짝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이 토크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시다씨와 비교하는건 택도 없지만, 어쨌든 1년동안 자전거로 일본일주 한 경험이 있다보니

이야기 중간중간에 감회에 젖은 묘사로 살짝 눈을 감는듯 마는듯 하며 빛의 속도로 그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이시다씨의 미묘한 표정 하나하나에 나 역시 스스로의 추억에 휩싸이는, 이상동몽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2시간 토크후 10분 휴식후, 또 2시간 토크라는 장거리 마라톤이었고

책에서 빠트릴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 등

풀어나가자면 이런 포스팅 몇 개는 채울 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이곳은 이시다씨의 정보 소개하는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몇가지만 남겨보자면, 이시다씨가 가장 감격에 겨웠던 아프리카 사막의 풍경사진 이벤트.

휴식시간동안 이시다씨는 사막 사진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BGM 으로 틀어주었다.

나도 워낙 많이 듣는 곡이라서, 착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헤르베르트 카라얀이 지휘한 버전일 것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버전으로, 아마 아다지오 & 파헬벨 앨범에 있던 녀석일 듯.

 

파헬벨의 캐논은 대중적으로 300년동안 너무나도 사랑받아왔기 때문에

요즘 흔히 들리는 기타나 가야금,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등등의 베리에이션 외에도

시대의 흐름과 나라별 오케스트라, 그리고 지휘자별로도 그 음색이 굉장히 다르다.

나같은 클래식 생초보라도 너무나 쉽게 구별이 될 정도로 다양한 버전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시길.

 

 

 

카라얀이 쫌생이중의 쫌생이에다 비겁자이긴 해도 진짜 천재는 천재다.

 

이시다씨는 자전거 타면서 그 지역의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듣는데

사막의 풍경만큼은 그 어떤 음악보다 클래식이 어울렸다고 회상했다.

 

음악의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막에는 음악이 어울린다는 점 하나만은 극히 동감한다.

사하라 마라톤 때도, 야간 레이스 당시 사람은 커녕 빛 한줄기도 없는 광야 속에서 홀로 걷고 있으니

저절로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던 추억이 있으니까. 이시다씨의 사막은 나의 사막과 맞닿아 있다.

 

  

 

 

내가 참가한다고 미리 연락을 해서 그런지, 상식적으로 봤을때는 원래 일정에 들어가 있지 않을

한국에서의 이벤트를 마지막에 첨가해 주셨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이 그의 7년반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이긴 했지만

본인 스스로도 한국은 살짝 거쳐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아니었으면 일부러 이번 토크 라이브에 집어넣었을 리가 없다.

 

숯불갈비 사진을 보여주면서 참 맛있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이시다씨는 그 마른 몸과는 달리 먹는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전국 각지의 먹거리 이야기를 컬럼으로 연재중이다. 책도 냈다. 먹는건 여행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진에 찍힌 반찬들을 언급하면서 '이게 다 공짜에다가 리필도 된답니다' 라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다음으로 나온 사진이 홍어 삼합 사진이었다...

그걸 보는순간 난 머릿속으로 '어느 인정많고 장난끼넘치는 사람이 이시다씨를 골려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이시다씨와 내 눈이 슬쩍 마주치며 서로 씨익 미소를 짓는다.

 

이시다씨는 '오늘 한국분도 오셨으니까 그분한테 설명을 들어보죠' 라고 하고 발언대를 나한테 넘긴다.

사실 홍어를 일본어로 뭐라 하는지 몰랐다. 자주 먹는 생선은 둘째치고 난 한국에서도 홍어를 거의 안먹으니까.

한국사람들도 잘 안먹는다는 설명 곁들여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먹는 삼합에 대해서도 잠깐 설명했다.

이시다씨는 그때의 암모니아 입자가 아직도 콧속에 박혀있는듯, 이미 홍어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조사를 했고

세계에서 악취강한 음식 2위에 랭크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위는 먹어본적 없단다. 다행이로세.

 

홍어라는 음식은 평생 이시다씨의 머릿속에 남아있을테니 그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이지만.

이시다씨는 이제까지 '이걸 자신한테 내준건 순수한 호의에서였을까, 장난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걸까' 고민해 왔다고 한다.

텍사스 주 사람한테 날계란 먹으라고 건내주는것도 이렇게 홍어 주는것만한 장난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문화에 대해 모르는 이시다씨라면 아마 머리 좀 아팠을 듯 하다. 진짜 맛있어서 권해준 거라면 의심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니까.

하지만 내가 장난이라고 확실히 못박아주니 시원한 표정으로 웃는다.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구나 싶다.

 

쉬는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책을 갖고 온다.

사인회 자체는 뭐 어디서든 하는 것이니 별 감흥이 없지만

인기는 있어도 메이저는 아닌 이런 이시다씨의 조그만 토크 라이브에 찾아와

가까이서 생생한 체험을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상당히 부러운 점이다.

이 좁은 음식점에 들어와서 여행 좋아하는 작가와 토크 라이브를 스스럼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

이시다씨는 휴식시간에 벌써 맥주 한병 까서 마시고 있고... 사실 청중들도 다들 맥주정도는 마시면서 듣고 있다.

작가 사인회라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이벤트도 이곳에서 일어나니 친근해서 좋다.

 

이번 여행에는 사하라 멤버 나침반님이 소장중인 '가보기전에~' 책을 들고왔다.

사인 허락을 받지 않아서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혹시 싫어하시면 새책 구입해 드리는걸로 하고.

일본어로는 닉네임인 '나침반씨에게' 라고 적고, 이시다씨가 한글로도 적어준다고 해서 성함을 적어드렸다.

이시다씨는 '나침반 한자는 어려워요' 라고 난색을 표했다. 진짜 어려운 단어긴 하다.

 

물론 라이트룸으로 팍팍 찍어버렸기 때문에 실제 성함이 영영영 은 아니다.

밑의 저 '일일 일생' 이라는 단어는, 이제와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이미 위에 적어놨다.

 

4시간에 걸친 아시아편 토크는, 나에게는 물론이고, 이시다씨처럼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준비중인 나침반님에게도

흥미가 동할만한 정보나 감상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건 나침반님에게 필요한 정보니 여행후 나침반님 만나서 말씀드렸다.

 

토크가 끝나고 뒷풀이가 있다고 주인장분이 안내를 해 주신다.

물론 여기서부터는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놀아보는 시간이라 지불해야 할 금액이 꽤 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시다씨와 이야기하는데 돈이 아까워서 포기할수는 없다.

30명의 독자들중 6명이 남고, 이시다씨와 와이프분까지 해서 총 8명이 뒷풀이를 위해 바에 남는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