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를 대표하는 먹거리라면, 넓적한 면발의 키시멘, 지역 토종닭 코친, 그리고 적된장을 이용한 요리를 들 수 있다.

 

키시멘은 깔끔한 우동맛에 우리네 칼국수와 비슷한 면이 특징이고

코친은 한국의 야생 장닭처럼 겉과 속이 쫄깃쫄깃하고 탄력넘치는 고급 닭이다.

적된장은 나고야를 포함한 일본 중부지방 사람들의 별미로, 보통 쌀을 발효시키는 일본의 흰된장과 달리

한국처럼 콩을 발효시켜 만드는 녀석이라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다.

 

물론 콩을 쓴다고 해도 제조방법은 많이 다르고, 한국 된장보다 숙성도는 낮아서 달달하고 먹기 편한 느낌.

 

도쿄쪽의 흰된장은 여기 비하면 맛이 심심할 정도로, 일본음식중 특이할 정도로 맛과 향이 진한 편이라

이 녀석을 듬뿍 넣어서 우동재료와 함께 푹 끓여낸 된장전골우동(味噌煮込みうどん)이 내 입맛에 맞다.

 

조금 달게 만들면 새우튀김이나 돈까스 등에도 발라져 나오는데, 이것도 달달하고 짜릿한게 맛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오리지날틱한 맛을 느끼려면 관광객 많이 모이는 가게가 아니라

지역민 상대로 하는 조그만 가게에서 된장전골우동을 먹어보는게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하지만 나고야 역시 허벌나게 덥다. 대구와 거의 비슷한 기온.

대구에서는 그냥 집안에 들어박혀만 있어도 괴로웠는데, 5kg 가까이 되는 숄더백 짊어지고 충분히 데워진 아스팔트거리를 걸으니

왜 그렇게도 북적이던 나고야 시내가 한산해 보이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그래도 음식점 찾아가는 도중에 퍼질러진 검은 냥이 한마리를 담아내니 흐르는 땀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한장 찍고 갈길 가는데, 앞의 담장에 이 녀석의 새끼 한마리가 잘 놀고있다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다.

내가 어미와 자기 사이에 있어서, 어미 쪽으로 가고는 싶은데 가지는 못하겠고 안절부절하다가

나와 자기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라도 있는 듯, 벽에 바싹 붙어서 어기적어기적 나를 통과해 어미쪽으로 달아난다.

 

 

 

토요코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그만 음식점 야마모토야(山本屋)에 도착.

 

좌석수가 20개도 되지 않는 조그만 가게인데, 그 중 절반은 주방과 마주한 카운터석이다.

젊은 주인장이 친절하게 맞아줬지만 아무래도 사진찍고 일기쓰고 하는데 카운터석은 좀 방해가 되어서 창문가 2인석에 편안히 자리를 잡는다.

주방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보리차 다 마시니 바로 리필도 해 주는 등, 손님 신경은 확실히 서 주고 있다.

 

나 말고 중년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이 유일한 손님이었는데

가벼운 안주와 술 한잔 하면서 젊은 주인장과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단골손님인 듯.

 

처음보는 사람과는 정말로 말트기 어려운 나한테도 가능한 한 신경을 써주려고 주인장이 노력하는게 보인다.

사실 그 사람들은 이런 가게 이끌어가는 이야기, 아베노믹스에 대한 이야기, 한국인 등산객 이야기 등을 하고 있어서

내가 뭔가 아는듯이 끼어들기도 좀 그렇고 그런 상황이긴 했다.

 

그런데 한국인 등산객이 어쩌구 하는 말은, 흘려들으면서도 뭔 일인가 싶었다.

이 당시까지는 전혀 그쪽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나고야에 오면 꼭 한번은 먹어보는 된장전골우동의 자태가 드러난다.

적된장에 파, 버섯, 코친을 넣은 수타우동.

 

슈퍼에서 완성품 적된장을 쓰는 가게도 없진 않지만, 가게 이름에 프라이드를 가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연구하고 개발한 적된장의 맛을 사용하는게 일반적이고, 그런 고로 가게마다 맛이 꽤나 다른 편이다.

 

지난 자전거 여행때 먹었던 녀석은, 나이 70은 넘은 노부부가 평생을 꾸려온 가게에서 주문했는데

위화감을 줄여주는 달콤짭짤한 적된장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가게에서나 나올법한 진하기 그지없는 새까만 녀석을 사용해서

그 어마어마한 자극과 농후한 식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일반적인 관광객도 즐길만한 맛.

 

공장에서 생산된 탱글탱글 면발과 달리 살짝 무딘 감이 느껴지지만 씹는맛이 있는 수타면도 훌륭하다.

해산물로 낸 국물의 칼칼한 시원함과는 달리 진득하게 목을 타고 넘어오는 구수한 된장국물의 맛은

한국사람에게는 좀 임팩트가 덜하겠지만, 관서지방 사람들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모양이다.

 

중간에 몇조각 들어있는 코친 역시 제대로 된 녀석을 사용했는지

껍데기는 물론 속살까지 쫄깃쫄깃하게 씹히는게 무난한 식감의 된장전골 안에서도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을 한다.

이런 녀석을 접한적이 없는 일반적인 관광객의 경우엔 반드시 코친이 들어간 우동을 먹기를 권한다.

워낙 우직한 맛이라, 중간에 살짝 집어먹는 코친의 식감이 전체적인 평가를 올려줄거라 생각한다.

 

식사를 마치고 일기를 좀 쓰니 여성 단골이 한명 더 들어왔다. 반갑게 잡담 나누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끼어들고 싶은 생각도 없잖아 들기는 하는데, 그것보다 더 강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렇게 과거를 되짚어가는 여행에서조차 그 두려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38살의 젊은 주인장 혼자서 영업하는 야마모토야에서 나와 훌렁훌렁 사카에(栄)를 향해 걷는다.

사카에는 나고야 제일의 번화가. 나고야 역에서 직선으로 주욱 뻗은 대로 양쪽에 온갖 쇼핑몰과 즐길거리가 넘친다.

일본에서는 드물 정도로 도로가 넓고 쭉쭉 뻗어있는게 나고야인데, 이유는 당연히 토요타 때문이다.

 

사카에는 도로 중앙에 상당한 규모의 공원도 조성되어 있어서 홈리스들의 고마운 서식처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중 새벽 4시 40분쯤 도착했을 때, 나도 홈리스들 옆에서 신문지 덮고 잠이나 좀 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차피 하루 자고나서 다시 도쿄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노숙은 무리였지만.

 

그 사카에에서 나름 유명한 스팟이 이곳 TV 타워. 도쿄 타워와 마찬가지로 원형은 어느 나라의 어떤 타워인 듯.

낮에는 그냥 그런 타워지만 밤에는 조명덕에 한번쯤 스윽 둘러볼만한 모습으로 변신하긴 한다.

나고야도 역시 콘트리트의 숲이라, 도시의 생명은 해가 지고나서부터 숨을 쉬기 시작한다.

 

 

 

여정을 적지 않아서 거리가 별로 멀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꽤나 걸었다.

야마모토야의 된장전골우동이, 버스, 비행기, 전철등으로 소비한 기력과 무더위로 소모한 체력에 비해 너무 강렬했는지

오장육부가 아주 수퍼 오케스트라 규모의 떼창을 열연하며 신나게 가스를 배출해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무덥고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한 나고야 시내.

사카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몇몇 비지니스맨들 외엔 사람도 없는 무더운 저녁이라

들킬 염려도 없이 신속하게 가스를 배출해 낸 덕분에 별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이 대로의 끝에 보이는게 나고야역. 거리상으로는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돌아갈때도 이만큼 걸어야 한다는게 좀 아찔해지긴 한다. 전철 타면 바로 갈수 있지만 왠지 타기가 싫다.

 

40분쯤 걸으니 손수건은 한 바퀴 짜내서 땀이 후두둑 떨어질 정도고

뜨거운 공기가 콧속에 들어가니 머리가 기분좋게 어질어질한게, 마치 미지근한 물속을 헤엄치는 기분이다.

마시지도 않은 술에 살짝 취한 듯, 눈을 옅게 감고 몸을 흔들거리며 걸어다니니 정말 여기가 육지인가 싶다.

 

 

 

TV 타워 주변엔 비어가든이 열여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넘기고 있다.

 

하지만 비어가든 하면 삿포로를 잊을 수 없는 나로서는, 같은 여름날의 비어가든이라도

삿포로의 그 청량한 더위와 끝내주게 짜릿한 맥주의 맛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물 속에서 마시는 느낌이 들 듯한 이곳의 진득한 공기속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 속에서 맥주를 마실 기분이 들려면, 선인들의 지혜가 살아숨쉬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나 그랑 블루가 시범을 보여줬듯이

같이 술잔을 기울일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고로 지금은 패스.

 

 

 

이녀석이 술만 같이 마셔줬다면 아마 비어가든도 흔쾌히 즐겼을텐데.

일반인 출입금지의 송전기 근처로 냥이 한마리가 슬금슬금 걸어오더니

누군가 가져다놓은 먹이그릇에 입을 살짝 갖다대고 느긋하게 들어눕는다.

 

사람이 못들어가게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곳의 홈리스들에겐 그 권력의 지엄함조차 무릎쓰며

저 냥이한테 먹이그릇을 가져다 놓아야 할 사명감이 있었나 보다.

 

덕분에 저 냥이님께서는 이토록 사람이 붐비는 사카에 한복판에서

이렇게도 느긋한 자태를 보이며 혼자만의 공간을 만끽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감흥이 적었던 과거의 여행은, 지금와서도 별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나고야는 어째서 그렇게 자주 스쳐갔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마음이 열리지 않았을까.

 

나고야 시내 안은 정말 도쿄와 다를바 하나없는 분위기라서 그랬던 점도 있고

반대로 나고야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한두 시간 밖으로 나가면 굉장한 볼거리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쇼핑이 목적이라면 나고야는 도쿄까지의 항공료를 줄일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지만

나고야 주변의 볼거리들을 만끽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나고야는 단지 짐을 풀고 잠을 자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일단 TV 타워를 보는게 목적이었으니까 더 이상 미련없이 숙소쪽으로 돌아간다.

물론 왔던 길을 다시가는건 지겨우니까 좀 더 번화가를 통과해 돌아가기로 한다.

 

사카에에서 TV 타워만큼 유명한 관람차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어쨌든 이 네거리가 나고야 전체에서 가장 번화가니까.

 

썬샤인 사카에라는, 도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 제목의 빌딩 앞에 떡하니 세워져있는 관람차는

돈키호테 등에 붙어있는 장난감같은 관람차와는 달리 제대로 된 녀석이다.

대체 나고야 시내 한가운데서 저걸 타고 뭘 보겠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짜로 타보라면 한번쯤 시도는 해보겠지만, 아직까지는 저기 타는것보다 저것의 존재의의를 고심해 보는게 더 재미있다.

썬샤인 사카에 빌딩 창가에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인사는 주욱 나눌 수 있을지도. 박애주의자에겐 편안한 무빙워크가 될 듯.

 

관람차 우측 하단엔 뭔가 거대한 처차들의 떼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국에서 3명 아이돌 하면 SES, 4명 아이돌 하면 핑클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일본에서 떼 아이돌 하면 생각나는게 AKB48 밖에 없다. 쟤네들이 AKB 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베스킨라빈스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아이돌인지. 일본에서 생활하는 이상 노래를 안들어볼수는 없을 정도로

온갖 CM이라는 CM에는 다 나오는 애들이라 들어는 봤지만, 불행히도 내 취향은 아니다.

 

 

 

관람차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니 왠걸 또 한마리의 냥이가 나를 즐겁게 해 주려고 자세를 잡고 있다.

오늘 하루 이렇게 많은 냥이를 만난 것만 해도 나고야 시내를 둘러볼 가치는 충분히 충족되고도 남았다.

 

나고야에서 가장 번화가인 썬샤인 사카에 빌딩 앞의 인도에서 고양이를 만나다니

좀전부터 계속 열탕 속을 휘적이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정말 모르는 사이에 술이라도 한잔 마신거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이쪽 사람들이 냥이한테는 친근하다는 반증일수도 있고.

하지만 냥이는 냥이라, 사람들이 헤치지 않아도 당연히 내가 시커먼 카메라를 들이대니 긴장 좀 탄다.

조금만 더 앞으로 갔다가는 뒷다리에 힘을 넣어 튀어도망갈 준비를 할것 같아서 여기까지만 즐기고 뒤로 물러난다.

 

 

 

사카에에서 마루노우치까지 대로를 통해 돌아온다면 볼 일이 없지만

번화가의 기분을 만끽하려고 좁은 골목길쪽으로 흘러들어갔다면, 노골적인 풍속업소들이 줄줄이 늘어선 광경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외국 여행자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도쿄도 그렇고 그런 곳은 많지만, 이곳 나고야는 시내 최고의 번화가에 아주 대놓고 영업중인 곳이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돈 좀 만져야 놀아볼 수 있는 고급 캬바레나, 단골 손님만 접대하는 간판작은 VIP 클럽이 빌딩 3층에서 7층까지 좌르륵 들어가 있고

번쩍번쩍한 언니들의 얼굴을 벽면에 크게 붙여놓고 알송달송한 표현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풍경이 골목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사쿠라'라고 불리는 호객행위는 이런 노골적인 풍속영업에서도 단호히 금지되어있는 편에 속하는데

그래도 내가 그쪽 골목을 걸어가니 호리호리한 청년이 '어떻습니까?' 하고 슬쩍 말을 걸어오는걸 보면

물장사 자체를 막아버리지 않는 이상 법률적인 금지는 사실상 애처운 눈가람일 뿐인 듯 하다.

 

클럽이나 캬바레같은 점잔빼는 곳 말고, 아예 '본론만 간단히'를 모토로 하는 풍속점도 너무 당당히 영업중이다.

나고야에서 놀랐던 몇 안되는 점이라면 아마 이런 사카에의 밤거리 정도랄까.

노파심도 뭐도 아니지만, 일본에서 '에스테'나 '헬스클럽' 이라고 이름붙여진 곳에 들어갈 생각은 않는게 좋다.

한국의 헬스클럽은 거기서 '피트니스'나 '짐'이라고 불린다.

저 두곳은 목욕탕이다. 예전에 어떤 형제국가의 이름으로 불렸던 그 탕 말이다.

 

워낙 더위에 맛이 가 있었던 상태라, 새로운 경험 하는셈 치고 한번 즐겨볼까 하고 생각도 해 볼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자금이 널널해도 이런데서 아가씨 끼고 놀만큼 부자는 아니었고

아마 그런 곳에서 놀고 난 후엔 성격대로 심한 자괴감에 휩싸일 것 같은 확신이 들어서 패스.

 

원전사고 때문인지 호텔에서도 불필요한 전등을 꺼 주시고

에어콘은 28도로 맞춰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정중하게 안내되어 있지만

한국의 지랄같은 전력대책에 아주 뿔이 날대로 난 본인으로서는 콧방귀도 끼지 않고 25도로 온도를 맞췄다.

내가 호텔 와서까지 땀흘려야겠나. 물론 잠 잘때는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27도 정도로 맞춰도 충분히 시원했지만.

 

첫날부터 너무 무리한거 아닌가 싶지만 이번엔 별로 걱정이 없다.

내일도 나고야에서 머무는데, 여러번 언급했듯이 나고야에서는 무리해서 돌아다니며 볼 만한 곳이 내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지난번 자전거 여행때 가보지 못한 주변 볼거리를 찾아보다가, 토요타 박물관이라는 곳을 찜해놓았다.

취향에 맞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진은 듬뿍 담을 수 있을 듯 하고

나고야 시내의 빌딩숲과 쇼핑몰을 서성이는 것보다는 알찬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일본 버라이어티를 즐기며 느긋하게 침대속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