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부스가 축제의 마지막 구역이다.

이제 슬슬 왔던길을 되돌아 가면 되는데, 렌즈를 바꿔끼우는게 귀찮다 보니 그냥 되는 화각만 맞춰서 찍어온 터라

돌아갈 때는 다른 렌즈 끼워서 다시 찍으며 돌아가면 된다. 귀찮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시 돌아갈 길이라 일부러 렌즈를 교환하지 않은 것도 있다.

 

어제 토요타 박물관은, 피사체들의 집합소 그 자체였기 때문에 부담없이 마구 찍어재낄 수 있었는데

히다 타카야마에 와서부터는 묘한 의무감 때문에 좀 지쳐있는 상태였다.

유명 관광지다 보니 뭐라도 좀 남겨야 하지 않겠냐는 쓸데없는 의무감.

 

원래 여행와서 집보다 더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오랜만의 여행인지 뭔가를 보고 즐겨야만 한다는 긴장감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운 좋게도 타카야마의 소박한 축제 거리를 거닐면서 그런 긴장감이 많이 풀어진 기분이라 다행.

조금 전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이렇게 조그만 공연장이 하나 생겨있다.

살짝 연습중인데, 동네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뛰어난 실력이고 프로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밴드로 느껴진다.

실력은 둘째치고 호흡 맞추는게 매우 익숙하고 노련하게 느껴지는것이, 상당히 오랜시간 함께 연습해 온 듯 하다.

 

 

 

원래는 드럼과 턴테이블까지 함께 하는 밴드인데, 아직 리허설 중이라 다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샹송 비슷한 곡을 보컬깨서 피로해 주시는데, 갑자기 아기 하나가 울면서 튀어와 안긴다.

일행인지 마을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구경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아기 안고 관객석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아이는 자지러지면서 엄마한테 돌아가려고 하고, 엄마는 할 수 없이 안아들고 노래를 계속한다.

 

그 덕분에 아이를 동반한 샹송이 연출되는 묘한 구경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 자기 엄마가 혼자 노래부르는 모습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닌가보다.

이 친구가 좀 크고나면, 타카아먀 가서 이 사진이라도 기념으로 하나 줘 볼까 싶기도 하다.

 

뭐라하든, 이런 헤프닝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축제라는게 정말 마음에 든다. 마을 축제란 이래야지.

 

 

 

좀 전의 미니카 레이싱장에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멈춰서 있다.

조금 귀엽긴 하지만 어쨌든 우렁찬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미니카들을 재미있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반은 아이들이고 반은 어른들이다. 직접 보면 어른들이라고 해서 재미있지 않을 리가 없다.

 

저런 무게와 저런 스피드로 저런 오르막 급커브를 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일탈을 꿈꾸는 미니카가 가끔 튀어오르긴 하지만, 손가락 하나로도 들 수 있는 미니카의 무게가 저 코너를 돌기 위해서는

상당히 철저한 계산으로 무게추를 이용해 접지력을 높혀야 한다. 장난감이라고 해도 과학적인 지식은 필요하다.

 

 

 

일단 구경은 한바퀴 마쳤으니 이제 남은건 즐거운 군것질 시간 뿐.

운이 좋은건지, 저 위의 신성한 존재께서 이런 이벤트를 예측하시고 나한테 '돈 널널히 가져가거라'라고 귀뜸을 한 건지.

먹을것 정도는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자금을 가져왔기 때문에 고민거리가 하나 줄었다.

 

자전거여행 당시엔 정말 입에 침이 고이도록 먹고싶어도 저 4000원쯤 하는 꼬치 5개도 함부로 먹지 못할 정도였으니

나름 추억과 동시에 트라우마로도 남아있는데, 이번엔 거리낄 게 없다.

맥주만큼은 혼자 서서 홀짝홀짝 마시고 싶지 않으니 그냥 꼬치 정도로 만족해 본다.

 

 

 

내가 손이 좀 큰건지, 혼자서 5개 짜리를 주문하고 나서야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 군것질 하려면 여기서 5개씩이나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막상 쳐다보고 있으니 너무 맛있어보여서 그만.

 

식탐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맛있는 걸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진리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 한방 찍는다. 다들 주문이 밀려 엄청 바쁜데 미안한 기분도 들지만, 후다닥 찍고 빠져나온다.

이 앞의 냄새는 진짜 사람 미치고 환장하게 만드는데, 이것과 맥주 한잔이라는 조합은 악마의 유혹인 듯.

유명한 모 도박만화의 지하감옥에서 이 맥주와 닭꼬치를 이용한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그거 본 사람들은 다들 이 조합의 파괴력이 가지는 의미를 절절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짭쪼름한 소스에 지방 풍부한 꼬치의 부드러운 식감이 아름다울 뿐.

역시 이럴때는 함께 여행가는 사람이 있는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 하나 차지하고 맥주 한잔씩 마시며 하루 여행의 끝언저리를 즐기는 것도 매력적일 듯 하다.

 

하지만 다들 열심히 살고 있어서인지, 좀처럼 함께 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아쉬운 점.

홀로 여행도 너무나 좋아하니 아쉬울건 없고, 아직 살면서 여행 떠날 기회는 많이 남아있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광각으로 교환하고 다시 한번 길을 돌아가면, 안보이던 모습이 들어와서 신선하다.

이거 참 신선한 발상인데, 골판지 시어터는 히타치 대리점 쇼윈도우에 전시된 TV를 이용해서 상용중이었던 사실.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모습.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느긋한 자세로 감상중인 어른들도 꽤 있었다는게 인상깊기도 했다.

 

 

 

골판지 놀이터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람 역시 어릴때는 고양이와 비슷한 동물일런지, 이런 좁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다니면 굉장히 흥분되고 모험심이 활성화되는 기분이 든다.

 

혹시 이 골판지들, 토토로를 틀어주던 그 대리점에서 가져온 녀석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참 멋진 대리점일 듯. 아이디어와 축제 참가정신이 빛을 발하는 곳이니, 내가 이곳 주민이라면 그 가게에서 TV 한대 살지도 모르겠다.

 

 

 

소소하지만 아이디어를 잘 짜낸 곳이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고양이처럼 얼굴 쏙 내미는 모습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부모 있는 앞에서 초상권을 침해한다는게 좀.

CG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본인이 원빈처럼 생겼다면 별 저항감 없이 사진 찍어도 다들 좋아하지 않았을려나.

 

 

 

이곳의 정식 명칭은 '골판지 미로'였다. 미로치고는 친절하게시리 입구까지 표기해 놓았다.

밑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완전 초짜의 작품은 아닌데, 이곳엔 왠지 예술감각이 좋은 사람이 많은 걸까.

 

혈기왕성한 애들이 아직 이 미로를 박살내지 않았다는게 가장 신기한 점이긴 하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한국에서도 작은 축제에서는 이거 한번 시도해 보는게 어떨까 싶다.

얼마나 빨리 박살나는지도 한번 비교해 보고 싶고.

 

 

 

한국이라면야 아직 초저녁이지만, 이런 작은 축제는 9시쯤 되면 슬슬 파장분위기로 변해간다.

오랜 경험과 계산으로, 4시간 정도밖에 열리지 않는 이런 축제에서 소비될만한 컨텐츠나 먹거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묘하게 품절이 될까말까 하면서 재고 역시 거의 남아있지 않는 절묘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물론 상인들끼리 뒤풀이 할 만큼의 먹거리는 남겨놨지만, 마지막 떨이를 위해 노점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떨이라 좋긴 한데, 닭꼬치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본인은 더 많이 먹는건 좀 사양이라서

기억에 남을만한 뭔가를 하나 먹는걸로 군것질은 끝내고 싶다. 물론 밤에 호텔서 깨작거릴 먹거리는 별개로 하고.

 

마을을 거닐면서 생각하지만, 거주하기는 참 좋은 곳이다. 자연환경 좋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고 생필품 시장도 풍족하고.

한국의 홍대거리나 강남, 명동같은 번화가는 없지만, 그런 것 없이도 잘 사는 나같은 성격은 이곳에서 뿌리박아도 불만 없을것 같다.

 

 

 

물론 타카야마라는 곳이 그냥 풍경좋은 시골이 아니라 돈꽤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부촌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나가노의 중앙알프스 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산골 마을 몇몇은 물좋고 공기좋고 경치좋은 곳이 많아서

부자들이 펜션이나 고급 호텔서 휴양을 취하는데 특화된 마을이 몇군데 있다.

 

타카야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부촌임에는 틀림없고

카루이자와 같은 곳은, 경치좋은 호텔 1박에 50만원은 기본이고 결혼식 한번 올리는데 1억원은 껌값인 곳이기도 하다.

진짜 돈있는 사람은 호텔 따위가 아니라 전용 별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축제 거리에서 교차되는 이런 음식골목은, 아무래도 축제 당일엔 좀 한산해 질 수밖에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을 전체의 부흥을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라멘집이나 닭꼬치집 앞에 서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데

외부 자본이나 인력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축제라고 어필하는 듯이 보인다.

 

 

 

칠석날에 자주 쓰이는 조릿대잎이 걸려있는것도 오랜만에 본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음력으로 칠석을 지내니, 이 당시엔 아직 칠석이 아니었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 칠석이라 이미 한참 지난 후다.

 

물론 지나칠 수 없는 큰 축제 기간인 칠석이라서, 한 달 뒤인 8월 7일에도 칠석 축제를 하는 곳이 많다.

 

 

 

축제 거리 사이에는 딱 한 군데 사거리가 있는데, 원래는 차량 통제구역이었지만

축제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도로쪽은 통행이 가능한 듯 하다.

좀 전까지 완전히 개방되어있던 사거리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신호에 맞춰 통제를 하고 있다.

 

물론 정상적으로 신호도 작동하고 있지만, 보행자 천국에 익숙해진 축제 관람객들이 혹시 신호를 보지 못할까 싶어서

일부러 신호에 맞춰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세삼 느끼지만 참 대단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보니 정말로 신호를 보지 못한 채 건너가려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짓 발짓으로 멈춰세우는 것을 보니, 정말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배치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 볼때 제일 짜증나는게, 서 있는 사람 바로 앞에서 호루라기를 마구 불어재끼는 것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파란불입니다. 지나가세요' 라거나 '곧 빨간불로 바뀝니다' 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봉사하는 사람에게 많은걸 바랄수는 없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말로서 의미를 전하는 것과, 시끄러운 소음으로 경고하듯 쏘아붙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배려의 차이다.

 

 

 

인파 때문이었는지, 그냥 못 보고 지나친 건지

갈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산지이긴 하지만 물이 풍부한 곳이라 그런지, 복을 부르는 마네키네코의 품 안에 낚시대와 물고기가 안겨 있다.

마을 상가에는 항상 놓여있는 이 녀석은, 지역마다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는데, 이런 산악지대에서 낚시대를 안은 녀석 좀 신선하다.

 

마네키네코란 한국어로 '손짓하는 고양이'라는 뜻인데,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옛날 한 지방 영주가 고양이의 손짓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 싶어 다가갔더니, 원래 서 있던 장소에 벼락이 떨어져 구사일생했다는 등의 일화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오른발을 들고 있으면 돈이, 왼발을 들고 있으면 손님이 모인다는 설이 있는데, 이 녀석은 돈이 좀 더 좋은가 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유투브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고양이가 앞발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살살 손짓하는 모습은 '이리 오라'는게 아니라 공격 준비태세다.

사람이 자기 본위대로 해설하다 보니, 쫓아내려던 고양이는 고마운 영물이 되어버렸고, 그건 그거대로 행복한 이야기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