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조식먹으러 가며 '오늘 원래 체크아웃인데 1박 더 가능한가' 물어본다.

예정했던 시라카와고 근처의 온천여관이 연락을 받지 않아서, 그냥 당일치기로 이곳에 돌아오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

실제로 그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어차피 이곳 타카야마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나치게 교통비를 많이 쓰는 루트이긴 했다.

 

오늘부터 일본은 진짜 휴가철 시작이라 직원에게 물어볼 때도 좀 걱정은 되었다.

타카야마에 숙소가 워낙 많아서, 이곳에 빈방이 없어도 그냥 아침 일찍 역앞에 가면 빈방 있는 호텔 찾는게 어렵지는 않지만

또 짐 챙겨서 나가고 하는거 굉장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곳 슈퍼호텔은 여러가지로 마음에 든다.

 

일본서 가장 애용하는 비지니스 호텔은 토요코인이지만, 그건 서비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지점이 워낙 많아서이다.

슈퍼호텔이 위치한 도시에서는 가급적 슈퍼호텔을 이용하려 한다. 서비스의 질은 확실히 이쪽이 낫기 때문.

 

슈퍼호텔은 모든 지점의 객실에 열쇠가 필요없는 암호식 도어락을 설치했으며

카드키조차 필요없이, 숙박료를 지불하고 받는 영수증에 비밀번호가 적혀있어서 그 후로 카운터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체크아웃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암호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퇴실시에도 그냥 짐싸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조식의 수준은 토요코 인의 두 배 정도 뛰어나다. 구색맞추기인 토요코 인의 조식에 비해

제대로 된 반찬이 최소 서너가지는 나오는데다, 낫토 등의 건강반찬도 항시 구비되어 있고, 음료수 자판기도 조식시간에는 무료 이용이다.

 

거기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시스템이 또 마음에 든다. 치약과 칫솔을 한국서 가지고 왔으니 이곳의 비치품을 사용할 일이 없는데

지나칠 뻔하고 넘어가려던 일회용 치솔세트 표지에 '사용하지 않은 칫솔을 프론트에 가져다 주시면, 소소하지만 과자를 선물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혹시나싶어 가져다주니 정말로 과자를 하나 준다. 과자 자체는 일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녀석이지만

크기는 매우 매우 작아서, 사실 한국 돈으로 300원쯤 할 만한 녀석이지만 그래도 칫솔 반납하고 받는 이 기분은 뿌듯하다.

환경보호도 되고 호텔측에서도 예산 절감에 도움이 되니 나쁠 거 없다.

 

슈퍼 호텔은 이런 식으로,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을 아슬아슬한 선까지 최대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여유자금으로 조식의 질이나 다양한 높이의 배게 등등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사용중이다.

토요코 인에 비해 인간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 인간미도 접객능력이 좀 부족한데서 오는 어설픔의 미학에 들어가는 범주니까

숙소로서의 편의성만을 이야기하자면 슈퍼호텔이 더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단 2013년 현재의 시점에서.

 

2008년 즈음의 슈퍼호텔은 아직 이런 시스템적인 우월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은 초보 수준이었고

불결해 보이는 실내 구조나, 과하게 절약하려고 하는 인건비 때문에 불편함도 느껴지곤 했었기 때문에

당시엔 토요코 인보다 더 추천한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랬던 것이 5년 지난 지금에는 확실히 성과를 보고 있는듯 해서, 경영이라는게 참 피말리는 것이구나 싶기도 하다.

토요코 인은 한때 서비스를 너무 강화하다가 수지가 안맞았는지, 신용카드사처럼 슬슬 혜택을 줄여가고 있는 실정이라

현재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급에서는 유일무이한 라이벌 체인이라 어떻게 승부가 진행되는지 구경하는것도 재미있다.

 

매번 말하지만, 요금 조금만 올리면 이 두 체인보다 훨씬 뛰어난 루트인 호텔이 있다.

비지니스 호텔은 필요하지만 너무 싸구려는 싫다 싶은 사람, 무조건 루트인이다. 불만스러운 점이 거의 없는 최고의 1인용 비지니스 호텔.

 

알아보던 직원이 조금 머뭇거리며 '방은 있습니다만'이라고 말끝을 흐리는게 묘하게 걱정된다.

원래 어제는 5600엔 정도에 투숙했지만 오늘부터는 성수기 시즌이라 요금이 7500엔으로 확 오른다고.

비지니스호텔이 8만원 가까이 하는건 확실히 뼈아픈 가격이긴 하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이곳 시설수준이 꽤 마음에 들어서

흔쾌히 1박 추가를 요청했다. 사실 오늘 예정되었던 온천여관 요금은 그거보다 훨씬 비쌌으니 별 손해도 아니긴 하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슈퍼호텔의 1층 온천도 진짜 천연온천이라고 크게 광고를 하고 있으니, 거기도 한번 이용해 볼까 싶다.

 

 

 

조식 든든히 먹고 타카야마역 버스 터미널로 나왔는데, 출발 20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라카와고 방면의 버스 정류장 앞은 관광객들로 가득하다. 줄을 다 서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인파라서

버스 한 대로는 다 타지도 못할 것 같은 걱정이 들 정도. 하지만 익숙한 일인 듯 버스가 꽉 차면 바로 후속버스가 사람을 실어간다고 한다.

 

시라카와고의 명성이 과연 허언만은 아니구나 싶다.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이곳에서 버스 타는게 그나마 제일 편하고

타카야마 하나만 해도 외국인이 잔뜩 찾아오는 곳인데, 이곳보다 더 외진 곳인 시라카와고로 가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미어 터진다.

 

아슬아슬하게 첫 번째 버스를 탔지만, 빈 자리 한 군데도 없이 빡빡하게 앉아있으니

차라리 뒤에 오는 버스를 좀 기다렸다 타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탑승객의 절반쯤은 외국인 관광객.

 

날씨가 생각만큼 화창하진 않았지만, 자주 언급했듯 일본의 전통 가옥들은 흐린 날씨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다.

좁고 험한 터널을 몇 개씩이나 지나가며 점점 현실 세계와 멀어지는 듯한 산속을 통과한 끝에, 마침내 탁 트인 공간이 보이며 안도감을 느낀다.

아침이라 주차장은 여유가 있는 편인데,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대기중인 외국인들이 꽤 많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하루 숙박을 한 듯.

타카야마 역시 자연 풍부한 곳이니까 괴리감이 덜한 편이지, 도시에서 바로 이곳 시라카와고로 이동하면 주위를 둘러싼 풍경에 현실감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내리자마자 바로 다리가 보이는데, 저 다리를 건너면 마을이 나타난다. 하지만 예전부터 오고 싶었던 곳이라

바로 저곳으로 달려가 버리는건 왠지 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반대쪽으로 돌아 걸어가 본다.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정류장쪽에도 옛 가옥들이 몇채 서 있다. 물론 대부분 장사하는 가게이긴 하지만.

구름은 잔뜩 끼었지만 비가 올 만한 구름은 아니고,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비치는 걸로 봐서는, 조만간 구름이 걷혀질지도 모르겠다.

가게 간판이 약간 미스매치인 기분도 들지만, 여기서도 이곳 시라카와고 건물의 특징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곳에서 건축물 구경좀 하고 돌아가버려도 문제는 없을듯 한데

생각보다 훨씬 관광지화 된 느낌이 들어서 첫 인상은 기대보다 살짝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이곳 시라카와고를 포함한 주변의 몇몇 마을들은 특이한 건물 구조로 예전부터 이름이 높았지만

자전거로 이곳을 온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좁고 험한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 자전거 여행때는 보고 싶었음에도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몇 안되는 장소중 하다였다.

 

문득 여름에 어디 가볼까 싶다가, 본가 차실의 벽에 걸려있는 달력 사진에 이 시라카와고의 전경이 나와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곳에 대한 흥미가 발동해 이렇게 찾아오게 된 것.

사실은 눈이 한창 내릴 무렵의 시라카와고가 진정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건 언젠가 또 가볼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상업 활동을 위해 오리지날에 비하면 여러가지로 개,증축이 이루어진 건물이긴 해도,

원래 어디서나 보기 쉬웠지만 이제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건축양식을 유감없이 발산중인 건물은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불리는 녀석.

뜻 그대로 합장하는 듯한 지붕 모양을 가졌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지역 여기저기에 많이 지어져 있었지만, 대부분 깊은 산골에 위치한 마을이었기에 점차 사라지고

이곳 시라카와고 근처와 고카야마(五箇山)에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을 보존중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명칭도 '시라카와고와 고카야마의 갓쇼즈쿠리 마을' 이라고 되어 있어

버스에서 발을 내리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부분이 전부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구 1800명 정도의 아담한 산골마을인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개발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생활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관광객 입장에서는 버스 정류장 앞의 기념품점 혹은 매점이라는, 제일 상업성에 물들고 품질이 떨어질 듯한 위치에 놓인 가게들마저

놀라울 정도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은 전통적인 갓쇼즈쿠리를 그대로 본받았고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는 현대식 구조들도

스스로 모습을 감추는 듯 주위 분위기와 이질없이 통일감을 형성한다.

 

실제로 시라카와고 전체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의 조화에 있어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로

이곳이 가지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 건축물의 조합은, 일본 안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부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이번엔 아주 찬찬히 씹어먹어줄 요령으로, 다들 향하는 마을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걸어가 본다.

뭔가 있을까 싶었는데, 입장료는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야외박물관 갓쇼즈쿠리 민가원' 이라는 곳의 입구아 눈에 들어온다.

 

설명을 보니 시라카와고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주택이나,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이 떠날 때 두고 간 건물들을 모아서

옛 생활상을 표현해 놓은 민속박물관 같은 곳이라는 듯. 아직 마을쪽에 비해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볍게 생각하면, 시라카와고에서 최대의 볼거리이자 유일한 볼거리인 이 갓쇼즈쿠리 주택은 마을로 들어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굳이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곳이었으면 아마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중 하나가 이곳 시라카와고였으니

오늘 이곳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건 전부 다 휩쓸어 가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임없이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본 갓쇼즈쿠리 건물이었지만, 한동안은 아무리 많이 봐도 심심하지 않을 듯 하다.

이곳 박물관에 진짜 사람이 사는 건 아니지만, 건물들은 실제 사람이 거주하던 것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

그 현실성과 함께,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묘한 모양새의 건물들이 내뿜는 비현실적인 감각은

앞으로 반나절 넘게 주욱 바라볼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기가 힘들다.

 

 

 

꾸민다는 단어의 의미는 매무 미묘해서, 아주 사소한 표현방식의 차이만으로도 부정과 긍정의 경계를 넘어간다.

이곳 시라카와고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주욱 느끼고 있는 점인데, 이곳은 분명 관광객을 위해 '꾸민' 곳이지만

결코 치장이나 가식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순수한 꾸밈이라는 기분이 든다.

 

마을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장사를 위해 모여든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 험한 산속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생활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이들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따뜻할 때는 농사 짓고, 겨울이 오기전에 지붕을 수리하고, 끝없는 눈이 오면 그저 묵묵히 눈을 치울 뿐.

 

집은 예쁘고 튼튼하게 꾸며져 있지만, 사람이 꾸밈없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순수함이 느껴진다.

 

 

 

당시 일기를 쓰면서도, 블로그에서 갓쇼즈쿠리에 대해서 설명을 늘어놔야 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일단은 단지 그 때의 시선만을 따라가기로 하며, 언젠가는 포스팅에서 설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알고 가면 더 재미가 있는 곳이긴 하지만

모르고 간다고 해서 이 건축물이 가지는, 자연에 대해 순응적이면서도 저항적인 사람의 힘을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다.

박물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이 건물은, 갓쇼즈쿠리 마을의 전체적인 역사를 소개하는 안내소 역할을 한다.

 

 

 

그 앞에 놓인 갓쇼즈쿠리 지붕의 골격 샘플이다. 이제껏 나온 사진 몇장에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갓쇼즈쿠리 지붕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우며, 경사 또한 따가울 정도로 매섭게 설계되어 있다. 지지대가 하중을 얼마나 견디느냐가 큰 관건.

혹독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거기에 맞는 생활 패턴을 찾아가는 인간의 적응력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이런 숲속이 뭐 그리 혹독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혹독하지 않은 곳이었다면 이런 가옥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해발 3000m 의 산맥에 둘러싸인 해발 500m 부근의 이 마을은 세계적으로도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곳이다.

모스크바보다도 더 많이 내리며, 한국 최고의 강설량을 자랑하는 울릉도가 1.5m 정도인 반면 이곳의 평균 강설량은 10.5m 정도.

 

아주 오래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긴 했으나, 워낙 산세가 험하고 눈이 많이 내려서 주위 마을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으니

전후 일본이 이렇게까지 부흥하지 못했다면 아마 갓쇼즈쿠리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안내소 안에는 비디오 상영이나 예전 신문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에 직힌 60년대 도로 사정을 보면, 그나마 저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시절의 모습이라는 게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자동차도 전기도 없는 시절에 이곳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하다.

 

당시 시카라와고 근처의 카즈라(加須良)라는 지역은,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촌을 실행했는데

그때 남겨진 갓쇼즈쿠리 건물들을 옮겨와 보존한 것이 이곳 야외박물관이라고 한다.

 

 

 

2층에는 갓쇼즈쿠리 건물의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데, 크기만 작을 뿐이지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고 보면 된다.

지붕이 워낙 두껍고 가파르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집의 다락방과는 달리 4~5층에 달하는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집이 커지고, 이곳 사람들은 친족 전체가 모이는 공동체 생활형식을 따르게 되었다.

겨울 약 4개월 가까이 밖에 나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설이 내리는 곳이라, 집단생활은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현재는 주위에 댐도 많이 건설되고 전기도 들어오기 때문에 살만 하지만, 예전엔 겨울을 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이었다.

 

이런 식의 건축물은, 눈의 무게를 분산시키는데 특화되어 있지만 난방 등에는 매우 취약하다.

그저 눈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나머지를 포기하고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 이 갓쇼즈쿠리 가옥.

실제로는 더욱 공고히 연결되어 있는 현대사회임에도, 너무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인해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부한 말의 의미는, 이곳 시라카와고에서는 단어의 의미가 살갗을 파고들 만큼 절실하리라 생각한다.

이곳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었으니. 협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밖으로 나오니 길이 군데군데 갈린다. 꼭 순번대로 돌아다닐 필요도 없는듯 하다.

이런 작은 건물은 보통 거주용이 아니라 창고 역할을 한다.

 

마을의 95%가 산지라서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지만, 갓쇼즈쿠리 건물의 지붕을 유지 보수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양의 억새와 땔깜용 나무를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소보다는 말이 유용했고, 곡식 역시 동물의 힘보다는 넉넉한 물의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고.

 

 

 

그런 물레방앗간의 모습도 참 고즈넉하게 전시해 놓았다.

야외 박물관이고, 실제 사용하던 건물들을 이전해 놓은 것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풍요롭고 보존 상태가 훌륭한 모습은 아마 실제 주민들의 생활상과는 좀 다를수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사람들이 생활중인 시라카와고 내부의 갓쇼즈쿠리 60채조차 유지 보수하는데 큰 노력이 따르는데

그 험한 산골에 방치된 폐가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이곳까지 가져와 다시 재건하는 일은 어땠을지.

 

본인의 성격이 좀 뒤틀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사람 살지않는 이런 박물관에서는

좀 더 당시의 생활상을 과격하게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야 물론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을 최대한 소개하고 싶겠지만, 시라카와고는 고요함 속에서 자연에 대한 거친 투쟁으로 완성된 마을이니까.

 

 

 

물레방아는 한중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하게 분포되어 있으니 그리 신기할 건 없다.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왠지 어릴적엔 요녀석이 언제 방아를 쿵하고 찧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일본의 중앙알프스쪽은 의외로 물이 풍부해서, 아직도 물레방아를 쓰는 곳이 조금 남아있는데

아직 기계로 찧은 밀가루와 물레방아로 찧은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과자, 국수의 맛 차이를 체험해보지 못해서

과연 맛이 다르긴 할까 하고 가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빙글 돌며 올라가는 언덕 위에는 본격적으로 여러 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듯 하다.

이곳 박물관은 입구부터 처음 물레방앗간 까지는 그냥 자연 풍부한 산책로 느낌이라

돈 내고 들어와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법 하지만, 좀 더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건축물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마을쪽의 갓쇼즈쿠리 건물은 상당수가 민박집이나 가게를 열고 있고,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해도 사람이 살고있으니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데

이곳은 박물관이라 그런 염려가 없이, 계획적으로 디자인된 길을 따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고 했지만 사실 단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긴 하다. 사람 사는 냄새는 외국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니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을것 같진 않지만

입구 만들어놓고 박물관이라고 해 놓았어도, 사실상 박물관 주변에 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태어나서 처음 온 본인으로서도, 그냥 뒤쪽에 수풀 좀 헤치며 들어가면 얼마든지 숨어들어갈 수 있을듯 하다.

역시 이곳까지의 교통비만 수만원이 넘는 곳이다보니, 겨우 500엔의 입장료를 아끼려고 이 고요한 마을을 더렵히진 않겠지.

도쿄의 시부야 같은 곳이라면 왠지 사악해 질 수도 있을것 같지만, 이곳의 가득한 녹색은 사람 마음을 씻어주는 기분이다.

 

 

 

약 7시간동안 돌아다니기에 그리 다급하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지만

카메라 들고 다니며 사진 담는데는 생각만큼 널널한 시간도 아니다.

 

보통은 렌즈를 바꾸지 않고 한바퀴 돌며, 그 다음 렌즈를 바꿔서 또 한바퀴 도는게 보통인데

이번엔 그럴 만한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을 듯 하다. 여전히 온도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번거롭긴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 봐 가며 렌즈를 갈아끼우며 전진한다.

혼자 서서 렌즈 꾸물꾸물 교환하는게 좀 민망하긴 해도, 이곳만큼 사진 찍는데 부담가질 필요 없는 곳도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오늘 진짜 마음먹고 배터지게 사진 찍을 수 있을법한 기분이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