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미집은 아무래도 흔히 보이는 녀석보다 훨씬 더 긴 세월동안 만들어 진 녀석일 듯.

전통을 느끼러 방문하는 시라카와고의 갓쇼즈쿠리 양식과 왠지 어울릴 법한 집이다.

 

 

 

산책이랄 것도 없지만, 조금 걸어가자 본격적인 박물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장료를 받는 곳인데도 '그냥 거기 있었던 것'처럼 조성된 자연스러움은

지금 여기가 박물관인지 사람 사는 마을 안인지 헷갈리가 만들 정도.

 

첫인상은 '자기가 지향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는 박물관'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지만 날씨는 오전임에도 30도를 훌쩍 넘겼고

구름 너머에서 후광으로 멋을 부리고 있는 햇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런 날씨는 지금 뿐인듯 하다. 저 구름이 걷히는 때부터 이곳은 최고의 한여름 날씨를 보여줄 기세.

구름과 안개에 감싸인 산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전통 가옥을 보러 오는 시라카와고지만, 이 주변 환경만 둘러봐도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많은 관광객이 마을 쪽을 먼저 찾는지, 이곳엔 아직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도 무료 관람이 가능한 곳을 먼저 돌아보고, 마음에 들면 유료 관람쪽으로 올 거라 나름 추측을 해 보는데

본인은 어차피 오늘 하루 시라카와고의 여름 풍경을 속속들이 빨아먹을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최대한 사람과 섞이지 않도록 루트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다행히도 첫 번째 예상은 틀리지 않은 듯 하다.

 

혼자서 길 어디서나 멈춰서서 느긋하게 풍경을 즐긴 후, 슬금슬금 카메라를 치켜들고 셔터를 누를 때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누군가를 방해하거나 누군가가 방해하는 일이 없으니, 신선 놀음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겨울엔 끝없는 눈이 내리고, 연간 강수량도 상당한 곳이라 자칫하면 빗속의 관광이 될 가능성도 높았지만

이번 여행은 뭔가 날씨에 있어서는 축복을 받은건지, 가는 곳마다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 뿐이다.

 

시라카와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속에서 드러남에 틀림없지만, 그런 아쉬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여름의 시라카와고 역시 눈과 귀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라고 생각.

 

본래 자연의 매서움을 사람의 힘으로 극복해 살아가는 의지와 노력이 깃들어 있는 갓쇼즈쿠리 양식이라도

이렇게 풍요로움이 넘치는 한여름 풍경과의 묘하게 어색한 언밸런스 역시 대조를 이루어 관광객의 시야를 자극시킨다.

 

 

 

자전거로 오기가 보통 힘든곳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괴수는 많으니

정말로 도보나 자전거로 이곳까지 여행오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탓에 현대식 호텔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노숙도 금지되어 있어서, 당일치기로 떠나지 않는 한엔 민숙이나 여관에 묵을 수 밖에 없는데

자전거 여행자들이 그런 사치를 누리기는 쉽지 않은지, 가끔 이런 공터에 텐트치고 자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도 골머리를 썩히곤 한다고, 돈이 없다는데 여관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여행은 지역 주민들이나 외부 관광객들이나 상호 협조없이는 결코 만족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돈 내고 왔으니 내가 갑이라고 큰소리 치는 천한 것들은 제발 여행따위 좀 때려치워 줬으면 한다.

뭐, 자전거 여행자들은 돈도 없으면서 은근히 자존심과 서바이벌 정신으로 불타는 애들이 좀 있기도 하고.

일본같은 풍요로운 곳에서 서바이벌 같은거 해 봤자 그냥 어린애 장난일 뿐이다.

 

 

 

이곳 민속 박물관은 원형으로 된 부지 위에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배열되어 있고

루트는 일직선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가옥들 뒤쪽 언덕으로 한바퀴 돌아보거나

조성된 개울가 주위를 산책하거나 하면서 마음대로 걸어볼 수 있다.

 

일단 입구와 출구도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사실은 순로라는 방향지시가 별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사람이 많이 붐빌때나 단체 관광같은 경우에 필요한 하나의 가이드 역할 정도는 해 낼듯 하다.

 

길을 따라갈 일이 없으니 여기저기 뒤척이며 정신없이 동공 안에 이 풍경을 마구 각인시키며

거의 본능에 가깝게 카메라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수능이라도 준비하는 학생처럼 맹렬한 기세로 관광을 즐기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시라카와고 하면 생각나는게 갓쇼즈쿠리 양식 밖에 없었는데

직접 와서 감상해보니 갓쇼즈쿠리는 이를테면, 이곳의 본질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의 일종으로 인식되는 듯 하다.

눈과 비에 강한 갓쇼즈쿠리 양식이 태동하게 된 이유가, 시라카와고를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어 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생명력으로 넘쳐흐르는 듯한 압력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서 이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곳은 홋카이도의 비경 시레토코(知床) 정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중앙알프스 쪽이 원래 이런 곳이라서 완전히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험한 산맥 골짜기 사이의 조그만 평지에 형성된 마을의 외부와 단절된듯한 고립감과,

동시에 산맥의 풍요로운 품 속에 안긴 듯한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과거에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갓쇼즈쿠리 건물과 함께

이곳의 폭발적이며 잔인한 생명력이 어우러진 결과, 눈에 보이는 풍경에는 고즈넉함과 함께 거칠고 율동적인 힘의 파동이 느껴지는 듯 하다.

 

가옥 역시 이곳 자연에서 난 소재만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위화감이라곤 느껴지지 않고,

여름의 은혜로 인해 억새지붕 위쪽도 푸른 생명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곳이 겨울에 그렇게도 혹독한 곳인가 싶을 정도로 대조적인 인상을 남긴다.

 

계절의 흐름은 이렇게 사람에게 축복이 되는 동시에 시련이 되고, 그 반복에서 사람은 더욱 강인해 지는 것일까.

 

 

 

억새로만 지붕을 만들면, 눈은 둘째치고 비를 막을 수 있나 싶었는데

처마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니 그런 걱정은 별 의미가 없을 법도 하다. 두께도 밀도도 굉장해서 비가 샐 염려는 없을 듯.

실제로 이곳은 비도 아주 많이 오는 곳이지만,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지 않는 이상 비가 샌 적은 없다고 한다.

 

 

 

박물관에 위치한 가옥들은 전부 들어가 볼 수 있다.

마을쪽에 남겨져 있는 몇몇 중요문화재 건물들은 따로 요금을 받고 입장이 가능한데

이곳에서 이렇게 구경을 하다보니, 마을쪽 건물에는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쪽엔 사람도 많을것 같고.

 

갓쇼즈쿠리 건물도 시대 차이가 많이 나고, 지역에 따라 내부 양식은 차이가 큰 편이라

모든 집이 이런 구조는 아니다. 이 쪽은 특히나 기본적인 구조에서 많이 벗어난 듯한 모습.

날씨에 크게 곤혹스럽지 않은 지역에서 지어진 집인지, 꽤나 여유있는 공간 배치가 인상적이다.

 

 

 

유지 보수의 흔적은 확실하게 남아있어, 실거주 시기의 흔적은 조금 줄어든 느낌인데

그래도 몇몇 나무 기둥들은 한 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목재가 매우 풍부한 지역이었던 지리적 이점 외에도, 갓쇼즈쿠리 가옥의 지붕 이음새는

방향과 각도를 달리한 나무 기둥들이 엇갈려 배치됨으로서 하중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탄성이 강한 목재가 금속성 재료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눈이 쌓였을 때와 쌓이지 않았을 때의 하중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금속 기둥으로 지붕을 지탱하면 스트레스로 부러지거나 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이곳에서 금속을 쉽게 가공, 제련할 수 있었다고 해도 목재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엔 어떻게 돌고 돌아도 이 모습이 이 자연속에서 가장 적합한 모습이라는 것.

 

 

 

이 가옥은 이탈리아 한 도시와 자매결약을 맺은 기념 전시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탈리아도 참 가보고 싶은 곳인데, 비행기값이 워낙 비싸서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라카와고가 산골 깊숙한 마을이긴 한데, 제대로 된 자치회도 있고 홈페이지도 열성적으로 만들며

많지 않은 인원으로도 축제 꾸준히 여는 부지런한 곳이라서 이렇게 이탈리아와 자매결연도 맺고 하는가 보다.

 

 

 

요즘 일반적인 주택 기준으로는 이것도 꽤나 큰 편에 속하지만

갓쇼즈쿠리 가옥치고는 평균적인 크기인 듯 하다. 물론 일가 전체가 한 집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방식이니까 클 수밖에 없다.

 

오른쪽의 살짝 튀어나온 부분은, 의외로 깨끗한 화장실이었다.

시골에서 제일 난감할때가 푸세식 화장실에서 풍기는, 형언하기 어려운 악취를 참으며 일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다행히도 최신식 시설에다가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 맞은편에 옛날 화장실이 놓여있었는데, 여기는 외관 분위기만으로도 그런 냄새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 법 하다.

지금은 폐쇄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용도폐기된 간이건물이라 그런지 억새의 밀도도 떨어져있고, 주변 건물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렴풋이긴 하지만 나이를 먹은 갓쇼즈쿠리 건물이란 이런 식으로 바래져 가는건가 싶다. 100년이 넘어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봉분처럼.

 

 

 

시라카와고는 갓쇼즈쿠리 양식을 보존하고 있는 마을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이라

개발도 그만큼 많이 진척된 편이다. 교통도 나름 편리해졌고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상점도 많이 생겼다.

 

반대로 다른 마을에 비해 전통성이라던가 고즈넉함은 오히려 떨어지는 편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옛 건물들을 보전하고 있는 박물관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가옥을 하나의 틀에서 감상할 수 있어

마을 산책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곳보다 아이노쿠라(相倉) 같은 마을이 더욱 더 옛 모습을 잘 보존한 마을의 삶을 보여주는데

일본인이라면 몰라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게 이동 관광이 가능한 이곳을 배제하기가 쉽지는 않다.

여행에 있어서 시간관념에 대한 느긋함이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요소인데

이것저것 다 즐기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돈을 벌고싶고, 그런 마음을 길렀으면 좋겠다.

 

 

 

이곳 박물관은 좁은 부지에 건물들을 마구 이전해 놓은게 아니라 충분히 산책이 가능한 지형에 넉넉한 공간을 두고 만들어 놓은 덕에

어떤 곳은 '왜 이렇게 넓은 마당이 비어있나' 싶은 곳도 있다.

 

사실 성수기때는 100명이 넘는 단체관광도 흔하게 일어나는 곳이라

현재 본인이 즐기고 있는 1인 관람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생각해야할 공간적 구조가 느껴진다.

슬슬 하늘도 맑아져 오고 햇살은 따가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공기 덕분에 아직까지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나고야의 매연에서 탈출해 히다 타카야마의 깨긋한 공기를 이틀동안 즐겨서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깨끗한 타카야마와도 차원을 달리할 정도의 상쾌한 풀내음이 기분좋게 코를 자극한다.

 

이곳은 지형상 소가 없어서, 한국의 깊은 농촌에서 풀내음과 함께 섞여흐르는 구수한 소똥 냄새가 없다는게

오히려 약간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곳의 자연이 뿜어내는 향기란 평범한 녀석이 아니다.

 

 

 

그리스 절벽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나, 스위스 초원의 가슴벅찬 풍경등과는 달라도

일본의 산간마을이라는 주제를 나타내는데 가장 알맞은 장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같은 동아시아 지역이라도 한국과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가진다.

사찰이나 궁전 등 상당수의 옛 것들에서 나름 공통점을 보이는 국가들이지만

각각의 자연에 순응하는 인내와 적응력을 가진 오지의 주민들이 가지는 독특함은 다른 곳에서 흉내낼 수 없다.

삶이 고스란이 녹아들어가 있는 이 곳의 풍경은 동양인이 봐도 충분히 이국적이며 아름답다.